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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57] 유종원(柳宗元)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 나무 심는 이야기

by प्रज्ञा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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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槖駝不知始何名. 疾僂, 隆然伏行, 有類槖駝者. 故鄕人號之曰‘駝,’ 駝聞之曰: “甚善. 名我固當.” 因捨其名, 亦自謂槖駝云.

곽탁타는(郭槖駝) 처음에(始) 어떤 이름이었는지(何名) 알지 못한다(不知). 곱사등이 병이 있고(疾僂), 등에 혹이 솟고(隆然) 구부리고 다녔는데(伏行), 낙타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有類槖駝者). 그러므로(故) 마을 사람들이(鄕人) 그를 타라고 불렀고(號之曰‘駝,’) 타가 그것을 듣고 말하길(駝聞之曰): “매우 좋다(甚善). 이름이(名) 나에게(我) 참으로 알맞다(固當).”라고 했다. 이에(因) 그 이름을 버리고(捨其名), 또한(亦) 스스로(自) 타라고 불렀다(謂槖駝云).

 

* 槖駝(탁타) : 槖은 주머니의 일종인 전대를 말하고 駝는 낙타다. 낙타의 등에 자루처럼 불룩 솟은 혹이 있어 탁타라 말하기도 한다.

* 隆然(융연): 높이 솟은 모양.

 

其鄕曰豊樂鄕, 在長安西. 駝業種樹, 凡長安豪家富人, 爲觀遊及賣果者皆爭迎取養. 視駝所種樹, 或移徙, 無不活, 且碩茂, 蚤實以蕃. 他植者雖窺伺傚慕, 莫能如也.

그 마을은(其鄕) 풍락향이라고 불렀는데(曰豊樂鄕), 장안 서쪽에 있다(在長安西). 타가(駝) 나무 심는 것을 업으로 삼았는데(業種樹), 모든(凡) 장안의 세력 있는 집안이나(長安豪家) 부자가(富人), <나무를> 보며 거닐고(爲觀遊及) 과일을 사기 위해서(賣果者) 모두(皆) 다투어(爭) 맞이하여(迎) 보살피도록 했다(取養). 타가 나무 심는 것을 보면(視駝所種樹), 혹 옮기더라도(或移徙), 살아나지 않는 것이 없고(無不活), 또(且) 크게 번성하고(碩茂), 일찍 열매를 맺고(蚤實以) 많았다(蕃). 다른 나무 심는 사람이(他植者) 비록(雖) 엿보고(窺伺) 따라 해도(傚慕), 누구도(莫) 같을 수 없었다(能如也).

 

* 種樹(종수): 식물(植物)을 심어 가꿈.

* 碩茂(석무): 크게 성(盛)함, 자손(子孫)이 번성(蕃盛ㆍ繁盛)함.

* 蚤實以蕃(조실이번): 蚤(조)는 '일찍'이란 뜻이고 蕃(번)은 열매가 많은 것을 말한다. 以는 而와 같이 사용되어 앞뒤를 이어주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有問之, 對曰: “槖駝非能使木壽且孶也, 以能順木之天, 以致其性焉爾. 凡植木之性, 其本欲舒, 其培欲平, 其土欲故, 其築欲密. 旣然已, 勿動勿慮, 去不復顧. 其蒔也若子, 其置也若棄, 則其天者全而其性得矣. 故吾不害其長而已, 非有能碩而茂之也, 不抑耗其實而已, 非有能蚤而蕃之也.

그에게 물어봄이 있으면(有問之), 대답하길(對曰): “내가(槖駝) 나무로 하여금(能使木) 오래 살고(壽且) 무성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孶也), 나무의 본성을 따르고(以能順木之天), 그 성을 지극하게 하도록 할 뿐입니다(以致其性焉爾). 무릇(凡) 심어진 나무의 본성은(植木之性), 그 뿌리가(其本) 펴지기를 바라고(欲舒), 그 북돋움이 평평하길 바라고(其培欲平), 그 흙이 오래되길 바라고(其土欲故), 그 다지는 것이 촘촘하길 바랍니다(其築欲密). 이미(旣) 그렇게 되고 나서(然已), 움직이지 않고(勿動) 걱정하지 않고(勿慮), 버려두고(去) 다시 돌아보지 않습니다(不復顧). 그 묘목은(其蒔也) 자식처럼 여기지만(若子), 그 두는 것은(其置也) 버려진 것처럼 하면(若棄, 則) 그 본성이 온전하고(其天者全而) 그 본성이 얻어집니다(其性得矣). 그러므로(故) 나는(吾) 그 자라남을 해치지 않을 뿐이고(不害其長而已), 크게 하고 무성하게 하는 것이 있지 않으며(非有能碩而茂之也), 그 열매 맺는 것을 억누르지 않을 뿐이고(不抑耗其實而已), 일찍 맺거나 많이 맺도록 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다(非有能蚤而蕃之也).

 

他植者則不然, 根拳而土易, 其培之也若不過焉, 則不及焉. 苟有能反是者, 則又愛之太恩, 憂之太勤, 旦視而暮撫, 已去而復顧. 甚者爪其膚, 以驗其生枯; 搖其本, 以觀其疏密. 而木之性, 日以離矣. 雖曰: ‘愛之,’ 其實害之; 雖曰: ‘憂之,’ 其實讐之. 故不我若也, 吾又何能爲矣哉?”

다른(他) 나무 심는 사람은(植者則) 그렇지 않으니(不然), 뿌리를 모으고(根拳而) 흙을 바꾸고(土易), 그 북돋움은(其培之也) 지나치지 않으면(若不過焉, 則)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不及焉). 참으로(苟) 이것을 반대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有能反是者, 則) 또 사랑하는 것이(又愛之) 너무 지나치고(太恩), 걱정하는 것이 너무 힘써서(憂之太勤), 아침에 보고(旦視而) 저녁에 어루만지며(暮撫), 이미 버려두고(已去而) 다시 돌아봅니다(復顧). 심한 사람은(甚者) 그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서(爪其膚, 以) 살았는지 말랐는지 시험하고(驗其生枯); 그 뿌리를 흔들어서(搖其本, 以) 성근지 조밀한지를 봅니다(觀其疏密). 그러나(而) 나무의 본성은(木之性), 날로(日以) 멀어집니다(離矣). 비록 말하길(雖曰): ‘사랑한다(愛之),’라고 하지만, 그 실질은 해치는 것이고(其實害之); 비록 말하길 걱정한다(雖曰: ‘憂之,’)라고 하지만, 그 실질은 원수가 됩니다(其實讐之). 그러므로(故) 나는 그처럼 하지 않으니(不我若也), 내가(吾) 또(又) 무엇을 잘하겠습니까(何能爲矣哉)?”라고 했다.

 

問者曰: “以子之道, 移之官理可乎?” 駝曰: “我知種樹而已, 理非吾業也. 然吾居鄕, 見長人者好煩其令, 若甚憐焉, 而卒以禍. 旦暮吏來而呼曰: ‘官命促爾耕, 勖爾植, 督爾穫, 蚤繰而緖, 蚤織而縷, 字而幼孩, 遂而鷄豚.’ 鳴鼓而聚之, 擊木而召之, 吾小人具饔飱以勞吏者, 且不得暇, 又何以蕃吾生而安吾性邪. 故病且怠, 若是則與吾業者, 其亦有類乎.” 問者喜曰: “不亦善夫. 吾問養樹, 得養人術.”

묻는 사람이 말하길(問者曰): “그대의 도로(以子之道), 관리의 다스림에 옮기는 것은(移之官理) 어떤가(可乎)?”라고 했다.

타가 말하길(駝曰): “나는(我) 나무 심는 것을 알 뿐이고(知種樹而已), 다스리는 것은(理) 내 일이 아닙니다(非吾業也). 그러나(然) 내가 고향에 머물면서(吾居鄕),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長人者) 그 영을 번거롭게 하기를(煩其令) 좋아하는 것을 보았는데(好), 매우 가엾게 여기는 것 같지만(若甚憐焉, 而) 마침내(卒) 화가 되었습니다(以禍). 아침저녁마다(旦暮) 관리들이 와서(吏來而) 불러 말하길(呼曰): ‘나라의 명령으로(官命) 너의 밭을 갈라고 재촉하고(促爾耕), 너의 심기를 권장하고(勖爾植), 너의 수확을 독촉하고(督爾穫), 너의 실을 고치에서 뽑는 것을(繰而緖) 빨리하라고 하며(蚤), 너의 옷감을 짜기를 빨리하라고 하고(蚤織而縷), 너의 아이를 잘 양육하라고 하며(字而幼孩), 너의 닭과 돼지를 잘 길러라(遂而鷄豚).’라고 합니다. 북을 울려서(鳴鼓而) 모으고(聚之), 나무를 쳐서(擊木而) 부르고(召之), 우리 백성이(吾小人) 모두(具) 아침밥과 저녁밥으로(饔飱以) 관리를 위로하는 것도(勞吏者), 또한(且) 틈을 얻을 수 없는데(不得暇), 또(又) 어찌(何以)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蕃吾生而) 우리 본성을 편안하게 하겠습니까(安吾性邪). 그러므로(故) 병들고(病且) 태만해졌으니(怠), 이와 같으면(若是則) 우리 일과(與吾業者), 그것이 또한(其亦) 비슷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有類乎).”라고 했다.

물은 사람이 기뻐하며 말하길(問者喜曰): “또한 좋지 않은가요(不亦善夫). 내가(吾) 나무 심는 법을 물었는데(問養樹), 사람 돌보는 법을 얻었다(得養人術).”라고 했다.

 

* 繰而緖(소이서): 繰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것을 말한다. 而는 여(汝)와 같은 뜻으로 아래로 而鷄豚(이계돈)까지 모두 '너'라는 뜻으로 쓰였다.

* 字而幼孩(자이유해): 字는 '양육하다'란 뜻이고, 孩는 두세 살 먹은 어린아이를 말한다. 

* 饔飱(옹손): 아침밥과 저녁밥을 아울러 이르는 말.

 

傳其事, 以爲官戒也.

이 일을 전해서(傳其事), 관리의 경계로 삼을 것이다(以爲官戒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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