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周之制, 士見于大夫卿公, 介以厚其別, 詞以正其名, 贄以效其情, 儀以致其敬, 四者備矣, 謂之禮成. 士之相見, 如女之從人, 有願見之心, 而無自行之義. 必有紹介爲之前焉, 所以別嫌而愼微也. 故曰: “介以厚其別.”
주나라 제도에(宗周之制), 선비가(士) 대부와 공경을 만날 때는(見于大夫卿公), 소개로(介以) 그 구별을 두텁게 하고(厚其別), 말로(詞以) 그 명분을 바르게 하고(正其名), 폐백으로(贄以) 그 정성을 다하고(效其情), 예의로(儀以) 그 공경을 지극하게 했으니(致其敬), 네 가지가(四者) 갖추어진 것을(備矣), 이것을 예가 이루어졌다고 했다(謂之禮成). 선비가(士之) 서로 만날 때는(相見), 마치(如) 여자가(女之) 남을 따르는 것처럼(從人),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더라도(有願見之心, 而) 스스로 가는 일이 없는(無自行之) 뜻이 있었습니다(義). 반드시(必) 소개가(紹介) 그를 위해(爲之) 거기에 앞서 있는 것은(有前焉), 분별일 꺼리고 작은 일에 신중하기 때문입니다(所以別嫌而愼微也).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소개로(介以) 그 분별을 두텁게 한다(厚其別).”라고 했습니다.
* 紹介(소개): 둘 사이에서 양편(兩便)의 일이 진행(進行)되게 주선(周旋)함.
* 愼微(신미): 작은 일에도 소홀(疏忽)하지 아니하고 신중(愼重)함.
名以擧事, 詞以道名, 名者先王所以定民分也, 名正則詞不悖, 分定則民不犯. 故曰: “詞以正其名.”
명분으로(名以) 일을 드러내고(擧事), 말로(詞以) 명분을 인도하는 것이니(道名), 명분이란(名者) 선왕이(先王) 백성의 분수를 정한 것이고(所以定民分也), 명분이 바르면(名正則) 말이 어긋나지 않고(詞不悖), 분수가 정해지면(分定則) 백성이 범하지 않았습니다(民不犯).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말로(詞以) 그 명분을 바르게 한다(正其名).”라고 했습니다.
言不足以盡意, 名不可以過情, 又爲之贄, 以成其終. 故授受焉, 介以通名, 擯以將命, 勤亦至矣. 然因人而後達也, 禮莫重於自盡. 故祭主於盥, 婚主於迎, 賓主於贄. 故曰: “贄以效其情.”
말은(言) 뜻을 다하기에 부족하고(不足以盡意), 명분은(名) 정을 넘어설 수 없으므로(不可以過情), 또(又) 폐백을 드려(爲之贄, 以) 그 끝일 이룹니다(成其終). 그러므로(故) 주고받는 것에(授受焉), 소개로(介以) 명분을 통하게 하고(通名), 인도해서(擯以) 명을 받들게 하고(將命), 애쓰는 것이(勤) 또한 지극했습니다(亦至矣). 그러나(然) 남을 따르고 나서(因人而後) 도달하는 것은(達也), 예에(禮) 무엇도(莫) 스스로 다하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습니다(重於自盡). 그러므로(故) 제사는(祭) 손 씻는 것을 주로 하고(主於盥), 혼인은(婚) 맞이하는 것을 주로 하고(主於迎), 손님맞이는(賓) 폐백을 주로 합니다(主於贄).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폐백으로(贄以) 그 정을 드러낸다(效其情).”라고 했습니다.
誠發于心而諭于身, 達于容色, 故又有儀焉. 詞以三請, 贄以三獻, 三揖而升, 三拜而出, 禮繁則泰, 簡則野, 三者禮之中也. 故曰: “儀以致其敬.”
정성은(誠) 마음에서 나오고(發于心而) 몸에 드러나고(諭于身), 얼굴빛에 이르고(達于容色), 그러므로 또(故又) 예의가 있습니다(有儀焉). 말로(詞以) 세 번 요청하고(三請), 폐백으로(贄以) 세 번 드리고(三獻), 세 번 읍하고(三揖而) 오르고(升), 세 번 절하고(三拜而) 나가니(出), 예가 번거로우면(禮繁則) 너무 크고(泰), 간략하면(簡則) 조잡하니(野), 세 번은(三者) 예가 적당한 것입니다(禮之中也).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예의로(儀以) 그 공경에 이른다(致其敬).”라고 했습니다.
是以貴不陵賤, 下不援上, 謹其分守, 順于時命, 志不屈而身不辱, 以成其善, 當是之世, 豈特士之自賢? 蓋亦有禮爲之節也. 夫周之制禮, 其所爲防至矣, 及其晩世, 禮存而俗變, 猶自市而失身, 況於禮之亡乎.
이 때문에(是以) 귀한 사람은(貴) 천한 사람을 능멸하지 않고(不陵賤), 아랫사람은(下) 윗사람에게 오르지 않고(不援上), 삼가(謹) 그 분수를 지키고(其分守), 시대의 명을 따르고(順于時命), 뜻은 굽히지 않고(志不屈而) 몸은 욕되지 않으며(身不辱, 以) 그 선함을 이루니(成其善), 당시에 세상에(當是之世), 어찌(豈) 다만(特) 선비가 스스로 현명한 것이겠습니까(士之自賢)? 대개(蓋亦) 예가 조절하는 것이 있어서입니다(有禮爲之節也). 무릇(夫) 주나라가(周之) 예를 제정했을 때(制禮), 그 막는 것이(其所爲防) 지극했는데(至矣), 그 후세에 이르러(及其晩世), 예가 남았지만(禮存而) 풍속이 변했고(俗變), 오히려(猶) 자기를 내세우다가(自市而) 몸을 잃었으니(失身), 하물며(況) 예가 없어진 것에서는 어떤가요(於禮之亡乎).
自周之禮亡, 士知免者寡矣. 世無君子明禮以正之, 旣相循以爲常, 而史官又載其事, 故其弊習而不自知也.
주나라의 예가 없어진 때로부터(自周之禮亡), 선비가(士) 면한 사람이 적은 것을 알았습니다(知免者寡矣). 세상에(世) 군자가 예를 밝혀서(君子明禮以) 그것을 바르게 하는 일이(正之) 없어지고(無), 이미 서로 따라서(旣相循以) 일상이 되었고(爲常, 而) 사관이(史官) 또(又) 그 일을 기록했고(載其事), 그러므로(故) 그것이 폐습이지만(其弊習而)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不自知也).
師道鄙人也. 然有聞於南豊先生, 不敢不勉也. 先生謂師道曰: “子見林秀州乎?” 曰: “未也.” 先生曰: “行矣.” 師道承命以來, 謹因先生而請焉.
제가(師道) 비천한 사람입니다(鄙人也). 그렇지만(然) 남풍선생에게 들은 것이 있어(有聞於南豊先生),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敢不勉也).
선생이(先生) 제가 말씀하시길(謂師道曰): “그대는(子) 임수주를 만났는가(見林秀州乎)?”라고 했습니다.
말하길(曰):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未也).”라고 했습니다.
선생이 말씀하시길(先生曰): “가서 보아라(行矣).”라고 했습니다.
제가(師道) 명을 받은 이래로(承命以來), 삼가(謹) 선생의 말을 따라(因先生而) 청합니다(請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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