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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史記列傳) 87 이사열전(李斯列傳) 1/3] 간축객서(諫逐客書) / 진나라가 이사를 등용하여 객경으로 삼다 1 李斯者, 楚上蔡人也. 年少時, 爲郡小吏, 見吏舍廁中鼠食不絜, 近人犬, 數驚恐之. 斯入倉, 觀倉中鼠, 食積粟, 居大廡之下, 不見人犬之憂. 於是李斯乃嘆曰: "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  1 이사는(李斯者), 초나라(楚) 상제 사람이다(上蔡人也). 나이가(年) 어렸을 때(少時), 군의 소리가 되어(爲郡小吏), 관리 숙소(吏舍) 화장실에서(廁中) 쥐가(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다가(食不絜),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오면(近人犬), 자주(數) 놀라고 두려워하는 꼴을(驚恐之) 보았다(見). 그러나(斯) 창고에 들어가서(入倉), 창고 가운데 있는 쥐가(倉中鼠), 쌓아둔 곡식을 먹고(食積粟), 큰 집 아래에 살면서(居大廡之下), 사람이나 개의 걱정을 당하지 않는 것을(不見人犬之憂) 보았다(觀). 이에(於是).. 2024. 9. 7.
[사기열전(史記列傳) 86 자객열전(刺客列傳) 3/3] 역수가(易水歌) / 형가의 암살 시도가 실패하다 28 太子逢迎, 卻行爲導, 跪而蔽席. 田光坐定, 左右無人, 太子避席而請曰: "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田光曰: "臣聞騏驥盛壯之時, 一日而馳千里; 至其衰老, 駑馬先之. 今太子聞光盛壯之時, 不知臣精已消亡矣. 雖然, 光不敢以圖國事, 所善荊卿可使也." 太子曰: "願因先生得結交於荊卿, 可乎?" 田光曰: "敬諾." 即起, 趨出. 太子送至門, 戒曰: "丹所報, 先生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也!" 田光俛而笑曰: "諾." 僂行見荊卿, 曰: "光與子相善, 燕國莫不知. 今太子聞光壯盛之時, 不知吾形已不逮也, 幸而教之曰『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光竊不自外, 言足下於太子也, 願足下過太子於宮." 荊軻曰: "謹奉教." 田光曰: "吾聞之, 長者爲行, 不使人疑之. 今太子告光曰: '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 是太子疑.. 2024. 9. 7.
[사기열전(史記列傳) 86 자객열전(刺客列傳) 2/4] 방약무인(傍若無人) / 범상치 않은 사람의 행보 20 其後二百二十餘年秦有荊軻之事.  20 그 뒤(其後) 200여 년이 지나(二百二十餘年) 진나라에서(秦) 형가의 일이 있었다(有荊軻之事).  21 荊軻者, 衛人也. 其先乃齊人, 徙於衛, 衛人謂之慶卿. 而之燕, 燕人謂之荊卿.  21 형가는(荊軻者), 위나라 사람이다(衛人也). 그 선조는(其先乃) 제나라 사람인데(齊人), 위나라에 옮겨왔고(徙於衛),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경경이라고 불렀다(謂之慶卿). 그리고 연나라에 가서(而之燕), 연나라 사람들이(燕人) 형경이라고 불렀다(謂之荊卿).  22 荊卿好讀書擊劍, 以術說衛元君, 衛元君不用. 其後秦伐魏, 置東郡, 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22 형경은(荊卿) 책 읽기와 칼 쓰기를 좋아해서(好讀書擊劍, 以) 위나라 원군에게 유세했지만(術說衛元君), 위 원군이(衛元君.. 2024. 9. 4.
[전국책(戰國策) 진책2(秦策 二) 60(4-2) 일거양득(一擧而兼兩虎) / 한 번 찌를 힘으로 두 마리 호랑이를 잡다 楚絶齊, 齊擧兵伐楚. 陳軫謂楚王曰: “王不如以地東解於齊, 西講於秦.” 楚王使陳軫之秦. 秦王謂軫曰: “子秦人也, 寡人與子故也. 寡人不佞, 不能親國事也, 故子棄寡人事楚王. 今齊、楚相伐, 或謂救之便, 或謂救之不便, 子獨不可以忠爲子主計, 以其餘爲寡人乎?”초나라가(楚) 제나라와 절교하자(絶齊), 제나라가(齊) 군대를 일으켜(擧兵) 초나라를 쳤다(伐楚). 진진이(陳軫) 초왕에게 말하길(謂楚王曰): “왕께서(王) 땅으로(以地) 동쪽으로(東) 제나라와 화해하고(解於齊), 서쪽으로(西) 진나라와 강화하는 것만(講於秦) 못합니다(不如).”라고 했다. 초왕이(楚王) 진진을 시켜(使陳軫) 진나라에 가도록 했다(之秦). 진왕이(秦王) 진진에게 말하길(謂軫曰): “그대는(子) 진나라 사람이고(秦人也), 과인과 그대는(寡人與子) .. 2024. 9. 3.
[전국책(戰國策) 진책2(秦策 二) 59(4-1) 제조초공진(齊助楚攻秦) / 장의가 초왕을 속이다 齊助楚攻秦, 取曲沃. 其後, 秦欲伐齊, 齊、楚之交善, 惠王患之, 謂張儀曰: “吾欲伐齊, 齊、楚方懽, 子爲寡人慮之, 奈何?” 張儀曰: “王其爲臣約車幷幣, 臣請試之.”제나라가 초나라를 도와서(齊助楚) 진나라를 공격하고(攻秦), 곡옥을 취했다(取曲沃). 그 뒤(其後), 진나라가(秦)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지만(欲伐齊), 제나라와 초나라의 교류가(齊楚之交) 좋았고(善), 혜왕이 그것을 걱정하여(惠王患之), 장의에게 말하길(謂張儀曰): “내가(吾)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데(欲伐齊), 제나라와 초나라가(齊楚) 함께 잘 지내니(方懽), 그대가(子) 과인을 위해(爲寡人) 계획을 세운다면(慮之), 어찌하겠는가(奈何)?”라고 했다.장의가 말하길(張儀曰): “왕께서(王) 그(其) 신을 위하여(爲臣) 마차와 함께 폐물을 준.. 2024. 8. 15.
[사기열전(史記列傳) 86 자객열전(刺客列傳) 1/2]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조말지맹(曹沫之盟) / 목숨을 건 비지니스1 曹沫者, 魯人也, 以勇力事魯莊公. 莊公好力. 曹沫爲魯將, 與齊戰, 三敗北. 魯莊公懼, 乃獻遂邑之地以和. 猶復以爲將.  1 조말은(曹沫者), 노나라 사람이고(魯人也), 용맹함과 힘으로(以勇力) 노 장공을 모셨다(事魯莊公). 장공은(莊公) 힘을 좋아했다(好力). 조말이(曹沫) 노나라 장수가 되어(爲魯將), 제나라와 싸워서(與齊戰), 세 번 졌다(三敗北). 노 장공이 두려워하여(魯莊公懼), 이에(乃) 수읍의 땅을 바치고(獻遂邑之地以) 화친했다(和). 오히려(猶) 다시(復) 장군으로 삼았다(以爲將).  2 齊桓公許與魯會于柯而盟. 桓公與莊公既盟於壇上, 曹沫執匕首劫齊桓公, 桓公左右莫敢動, 而問曰: "子將何欲?" 曹沫曰: "齊彊魯弱, 而大國侵魯亦甚矣. 今魯城壞即壓齊境,.. 2024. 6. 10.
[사기열전(史記列傳) 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기화가거(奇貨可居) / 진귀한 재물은 모아둘 만하다 1 呂不韋者, 陽翟大賈人也. 往來販賤賣貴, 家累千金.  1 여불위는(呂不韋者), 양책의(陽翟) 큰 상인이다(大賈人也). 오가며(往來) 싸게 사서(販賤) 비싸게 팔아(賣貴), 집안에(家) 천금을 모았다(累千金).  2 秦昭王四十年, 太子死. 其四十二年, 以其次子安國君爲太子. 安國君有子二十餘人. 安國君有所甚愛姬, 立以爲正夫人, 號曰華陽夫人. 華陽夫人無子. 安國君中男名子楚, 子楚母曰夏姬, 毋愛. 子楚爲秦質子於趙. 秦數攻趙, 趙不甚禮子楚.  2 진 소양왕 40년에(秦昭王四十年), 태자가 죽었다(太子死). 그 42년에(其四十二年), 그 둘째 아들 안국군을(以其次子安國君)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안국군에게(安國君) 자식이 20여 명이 있었다(有子二十餘人). 안국군에게(安國君) 아끼는 여인이 있었는데(有所甚愛姬).. 2024. 6. 3.
[사기열전(史記列傳) 84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2/2] 모자를 신발 삼아 신을 수 없다 20 賈生名誼, 雒陽人也. 年十八, 以能誦詩屬書聞於郡中. 吳廷尉爲河南守, 聞其秀才, 召置門下, 甚幸愛. 孝文皇帝初立, 聞河南守吳公治平爲天下第一, 故與李斯同邑而常學事焉, 乃徵爲廷尉. 廷尉乃言賈生年少, 頗通諸子百家之書. 文帝召以爲博士.  20 가생의 이름은 의이고(賈生名誼), 낙양 사람이다(雒陽人也). 나이 8살에(年十八), 시를 외고 글을 잘 짓는 것으로(以能誦詩屬書) 낙양에 소문이 났다(聞於郡中). 오씨 정위가(吳廷尉爲) 하남 태수가 되어(河南守), 그가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듣고(聞其秀才), 불러서(召) 문하에 두었는데(置門下), 매우 아꼈다(甚幸愛). 효문황제가(孝文皇帝) 즉위하고(初立), 하남태수 오공이(河南守吳公) 다스리는 것이(治平) 천하제일이라는 것을(爲天下第一) 들었고(聞), 본래(故) 이사.. 2024. 5. 29.
[사기열전(史記列傳) 84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1/2] 거세개탁 중취독성(擧世皆濁 衆醉獨醒) /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는 사람 1 屈原者, 名平, 楚之同姓也. 爲楚懷王左徒. 博聞彊志, 明於治亂, 嫻于辭令. 入則與王圖議國事, 以出號令; 出則接遇賓客, 應對諸侯. 王甚任之.  1 굴원은(屈原者), 이름이 평이고(名平), 초나라와 같은 성이다(楚之同姓也). 초나라 회왕의 좌도가 되었다(爲楚懷王左徒). 널리 듣고(博聞) 잘 기억했고(彊志), 혼란을 다스리는 것에 밝고(明於治亂), 글 쓰는 것을 잘했다(嫻于辭令). 들어가면(入則) 왕과 나랏일을 의논하여(與王圖議國事, 以) 명령을 내리고(出號令); 나가면(出則) 빈객을 접대하고(接遇賓客), 제후를 응대하여(應對諸侯). 왕이(王) 그를 매우 신임했다(甚任之).   * 辭令(사령): 남을 맞아 접대할 때 쓰는 형식적인 말.* 號令(호령): 부하나 동물 따위를 지휘하여 명령함. 2 上官大夫與之同.. 2024. 5. 28.
[사기열전(史記列傳)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2/2] 중구삭금(衆口鑠金) /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 15 鄒陽者, 齊人也. 游於梁, 與故吳人莊忌夫子·淮陰枚生之徒交. 上書而介於羊勝·公孫詭之閒. 勝等嫉鄒陽, 惡之梁孝王. 孝王怒, 下之吏, 將欲殺之. 鄒陽客游, 以讒見禽, 恐死而負累, 乃從獄中上書曰:  15 추양은(鄒陽者),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양나라에서 떠돌면서(游於梁), 옛 오나라 사람인 장기부자와 (與故吳人莊忌夫子) 회음 사람인 매생의 무리와(淮陰枚生之徒) 사귀었다(交). 글을 올려(上書而) 양승과 공손궤의 틈에 끼었다(介於羊勝·公孫詭之閒), 양승 등이(勝等) 추양을 질투해서(嫉鄒陽), 양 효왕에게(梁孝王) 그를 험담했다(惡之). 효왕이 노하여(孝王怒), 그를 옥리에게 내려보내(下之吏), 장차(將) 죽이려고 했다(欲殺之). 추양이(鄒陽) 빈객으로 유세하다가(客游, 以) 참소를 당해(讒) 붙잡히게 .. 2024. 5. 26.
[사기열전(史記列傳)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1/2] 말 한마디로 100만 대군을 돌려세운 노중련의 배짱 1 魯仲連者, 齊人也. 好奇偉俶儻之畫策, 而不肯仕宦任職, 好持高節. 游於趙.  1 노중련은(魯仲連者),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기이하고(奇偉) 뛰어난(俶儻之) 계책 세우기를 좋아하고(好畫策, 而) 벼슬에 나가거나 직을 맡기를 달가워하지 않고(不肯仕宦任職), 고상한 절개를 지키길 좋아했다(好持高節). 조나라에서 유세했다(游於趙).    * 노중련魯仲連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기원전 305년경 ~ 기원전 245년)으로 유세가이며 노련(魯連)이라고도 칭한다. 밀양 노씨(密陽 魯氏)의 시조 격이다. 나이 열두 살 때 유명한 논객과 설전을 벌여 발라버렸으며, 천리구(千里驅)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성한 뒤에도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고 천하를 주유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았다. * 俶儻(척당): =倜儻。호방하다.. 2024. 5. 24.
[사기열전(史記列傳) 82 전단열전(田單列傳)] 화우지계(火牛之計) /천 마리 소를 풀어 연나라 군대를 물리치다 1 田單者, 齊諸田疏屬也. 湣王時, 單爲臨菑市掾, 不見知. 及燕使樂毅伐破齊, 齊湣王出奔, 已而保莒城. 燕師長驅平齊, 而田單走安平, 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而傅鐵籠. 已而燕軍攻安平, 城壞, 齊人走, 爭涂, 以折車敗, 爲燕所虜, 唯田單宗人以鐵籠故得脫, 東保即墨. 燕既盡降齊城, 唯獨莒、即墨不下. 燕軍聞齊王在莒, 并兵攻之. 淖齒既殺湣王於莒, 因堅守, 距燕軍, 數年不下. 燕引兵東圍即墨, 即墨大夫出與戰, 敗死. 城中相與推田單, 曰: "安平之戰, 田單宗人以鐵籠得全, 習兵." 立以爲將軍, 以即墨距燕. 1 전단은(田單者), 제나라(齊) 여러 전씨의(諸田) 먼 일가다(疏屬也). 민왕 때(湣王時), 전단이(單) 임치의 시장 관리가 되었지만(爲臨菑市掾), 알려지지 않았다(不見知). 연나라가(燕) 악의를 시켜(使樂毅) 제나라를 정벌..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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