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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5/5] 지사필용(知死必勇) / 죽을 것을 알면 용기가 생긴다 22 李牧者, 趙之北邊良將也. 常居代鴈門, 備匈奴. 以便宜置吏, 市租皆輸入莫府, 爲士卒費. 日擊數牛饗士, 習射騎, 謹烽火, 多閒諜, 厚遇戰士. 爲約曰: "匈奴即入盜, 急入收保, 有敢捕虜者斬." 匈奴每入, 烽火謹, 輒入收保, 不敢戰. 如是數歲, 亦不亡失. 然匈奴以李牧爲怯, 雖趙邊兵亦以爲吾將怯. 趙王讓李牧, 李牧如故. 趙王怒, 召之, 使他人代將.  22 이목은(李牧者), 조나라(趙之) 북쪽 국경의(北邊) 뛰어난 장수였다(良將也). 일찍이(常) 대군과 안문군에서 살며(居代鴈門), 흉노에 대비했다(備匈奴). 편의에 따라(以便宜) 관리를 두고(置吏), 시장의 조세를(市租) 모두 거두어(皆輸) 막부로 들여가서(入莫府), 사졸의 비용에 썼다(爲士卒費). 하루에(日) 몇 마리 소를 잡아(擊數牛) 병사들에게 술자리를 마.. 2024. 5. 10.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4/5] 교주고슬(膠柱鼓瑟) / 조괄의 어머니가 조괄을 추천하지 않은 이유 교주고슬(膠柱鼓瑟) 14 後四年, 趙惠文王卒, 子孝成王立. 七年, 秦與趙兵相距長平, 時趙奢已死, 而藺相如病甐, 趙使廉頗將攻秦, 秦數敗趙軍, 趙軍固壁不戰. 秦數挑戰, 廉頗不肯. 趙王信秦之閒. 秦之閒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 趙王因以括爲將,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 趙王不聽, 遂將之.  14 4년 뒤에(後四年), 조 혜문왕이 죽고(趙惠文王卒), 아들(子) 효성왕이 즉위했다(孝成王立). 칠 년(七年), 진나라와 조나라 군대가(秦與趙兵) 장평에서 서로 대치했는데(相距長平), 이때(時) 조사는 이미 죽었고(趙奢已死, 而) 인상여는 병으로 위독했으므로(藺相如病甐), 조나라는(趙) 염파를 시켜(使廉頗) 장수로 삼아(將) 진나라를 공격하도.. 2024. 5. 10.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3/5] 양서투혈(兩鼠鬪穴) / 좁은 구멍에서 쥐가 싸우면 용감한 쥐가 이긴다. 10 趙奢者, 趙之田部吏也. 收租稅而平原君家不肯出趙, 奢以法治之, 殺平原君用事者九人. 平原君怒, 將殺奢. 奢因說曰: "君於趙爲貴公子, 今縱君家而不奉公則法削, 法削則國弱, 國弱則諸侯加兵, 諸侯加兵是無趙也, 君安得有此富乎? 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國彊則趙固, 而君爲貴戚, 豈輕於天下邪?" 平原君以爲賢, 言之於王. 王用之治國賦, 國賦大平, 民富而府庫實.  10 조사는(趙奢者), 조나라(趙之) 전부리였다(田部吏也). 조세를 걷으려는데(收租稅而) 평원군 집안이(平原君家) 조나라에 내는 것을 들어주지 않자(不肯出趙), 조사가(奢) 법에 따라(以法) 그들을 다스려(治之), 평원군의 일하는 사람(平原君用事者) 아홉을 죽였다(殺九人). 평원군이 노하여(平原君怒), 조사를 죽이려고 했다(將殺奢). 조사가.. 2024. 5. 8.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2/5] 문경지교(刎頸之交) / 위급한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 6 其後秦伐趙, 拔石城. 明年, 復攻趙, 殺二萬人.  6 그 뒤(其後)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서(秦伐趙), 석성을 빼앗았다(拔石城). 다음 해에(明年), 다시(復) 조나라를 공격해서(攻趙), 2만 명을 죽였다(殺二萬人).  7 秦王使使者告趙王, 欲與王爲好會於西河外澠池. 趙王畏秦, 欲毋行. 廉頗·藺相如計曰: "王不行, 示趙弱且怯也." 趙王遂行, 相如從. 廉頗送至境, 與王訣曰: "王行, 度道里會遇之禮畢, 還, 不過三十日. 三十日不還, 則請立太子爲王. 以絕秦望." 王許之, 遂與秦王會澠池. 秦王飲酒酣, 曰: "寡人竊聞趙王好音, 請奏瑟." 趙王鼓瑟. 秦御史前書曰「某年月日, 秦王與趙王會飲, 令趙王鼓瑟」. 藺相如前曰: "趙王竊聞秦王善爲秦聲, 請奏盆缻秦王, 以相娛樂." 秦王怒, 不許. 於是相如前進缻, 因跪請秦王. .. 2024. 5. 7.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1/5]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지킨 인상여의 용기와 지혜 1 廉頗者, 趙之良將也. 趙惠文王十六年, 廉頗爲趙將伐齊, 大破之, 取陽晉, 拜爲上卿, 以勇氣聞於諸侯. 藺相如者, 趙人也, 爲趙宦者令繆賢舍人.  1 염파는(廉頗者), 조나라의(趙之) 뛰어난 장수다(良將也). 조 혜문왕 16년에(趙惠文王十六年), 염파가(廉頗) 조나라의 장수가 되어(爲趙將) 제나라를 쳐서(伐齊), 크게 무찌르고(大破之), 양진을 빼앗아(取陽晉), 벼슬을 받아(拜) 상경이 되었고(爲上卿), 용맹함으로(以勇氣) 제후 사이에 명성을 날렸다(聞於諸侯). 인상여는(藺相如者), 조나라 사람으로(趙人也), 조나라 환자령(趙宦者令) 무현의(繆) 사인이었다(爲賢舍人).   * 宦者令(환자령): 환관의 우두머리.* 舍人(사인): (고관대작의 집에 기숙하는) 식객(食客). 시종. 화씨벽(和氏璧) / 완벽귀조( .. 2024. 5. 6.
[史記列傳(사기열전) 80 악의열전(樂毅列傳) 3/3]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15 樂閒居燕三十餘年, 燕王喜用其相栗腹之計, 欲攻趙, 而問昌國君樂閒. 樂閒曰: "趙, 四戰之國也, 其民習兵, 伐之不可." 燕王不聽, 遂伐趙. 趙使廉頗擊之, 大破栗腹之軍於鄗, 禽栗腹·樂乘. 樂乘者, 樂閒之宗也. 於是樂閒奔趙, 趙遂圍燕. 燕重割地以與趙和, 趙乃解而去.  15 악간이(樂閒) 연나라에 머문 것이(居燕) 30여 년인데(三十餘年), 연왕 희가(燕王喜) 재상 율복의 계책을 써서(用其相栗腹之計),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며(欲攻趙, 而) 창국군 악간에게 물었다(問昌國君樂閒). 악간이 말하길(樂閒曰): "조나라는(趙), 사방에서 싸우는 나라로(四戰之國也), 그 백성이 전쟁에 익숙하니(其民習兵), 정벌하는 것은 안됩니다(伐之不可)."라고 했다.연왕이 듣지 않고(燕王不聽), 마침내(遂) 조나라를 쳤다(伐趙)... 2024. 5. 6.
[史記列傳(사기열전) 80 악의열전(樂毅列傳) 2/3] 보연왕서(報燕王書) / 신하와 군주의 의리는 무엇인가 5 齊田單後與騎劫戰, 果設詐誑燕軍, 遂破騎劫於即墨下, 而轉戰逐燕, 北至河上, 盡復得齊城, 而迎襄王於莒, 入于臨菑.  5 제나라 전단은(齊田單) 나중에(後) 기겁과 싸웠는데(與騎劫戰), 결국(果) 연나라 군대를 속이고(設詐誑燕軍), 마침내(遂) 즉묵성 아래서(於即墨下) 기겁을 물리치고(破騎劫, 而) 돌아다니며 싸워(轉戰) 연나라 군대를 쫓아내고(逐燕), 북으로(北) 하수 가에 이르러(至河上), 제나라 성을 모두 되찾고(盡復得齊城, 而) 거에서 양왕을 맞이해(迎襄王於莒), 임치에 들어갔다(入于臨菑).  6 燕惠王後悔使騎劫代樂毅, 以故破軍亡將失齊; 又怨樂毅之降趙, 恐趙用樂毅而乘燕之獘以伐燕. 燕惠王乃使人讓樂毅, 且謝之曰: "先王舉國而委將軍, 將軍爲燕破齊, 報先王之讎, 天下莫不震動, 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 .. 2024. 5. 6.
[史記列傳(사기열전) 80 악의열전(樂毅列傳) 1/3] 벌제위명(伐齊爲名) / 충신이 역적이 되는 순간 1 樂毅者, 其先祖曰樂羊. 樂羊爲魏文侯將, 伐取中山, 魏文侯封樂羊以靈壽. 樂羊死, 葬於靈壽, 其後子孫因家焉. 中山復國, 至趙武靈王時復滅中山, 而樂氏後有樂毅.  1 악의는(樂毅者), 그 선조가(其先祖) 악양이다(曰樂羊). 악양은(樂羊) 위 문호의 장수였고(爲魏文侯將), 중산을 쳐서 빼앗고(伐取中山), 위 문후가(魏文侯) 악양을(樂羊) 영수에(以靈壽) 봉했다(封). 악양이 죽고(樂羊死), 영수에 장사 지냈고(葬於靈壽), 그 후(其後) 자손이(子孫) 그곳에서 집안을 이루었다(因家焉). 중산이(中山) 다시 나라가 되었으나(復國), 조 무령왕에 이르러(至趙武靈王時) 다시(復) 중산을 멸망시켰고(滅中山, 而) 악씨의 후손 중에(樂氏後) 악의가 있었다(有樂毅).  선시어외(先始於隗)2 樂毅賢, 好兵, 趙人舉之. 及.. 2024. 5. 3.
[史記列傳(사기열전) 79 범저채택열저(范睢蔡澤列傳) 6/6] 일중천이 월만즉휴(日中則移 月滿則虧) / 달도 차면 기운다 성공자거(成功自去)32 蔡澤少得閒, 因曰: "夫商君·吳起·大夫種, 其爲人臣盡忠致功則可願矣, 閎夭事文王, 周公輔成王也, 豈不亦忠聖乎? 以君臣論之, 商君·吳起·大夫種其可願孰與閎夭·周公哉?" 應侯曰: "商君·吳起·大夫種弗若也." 蔡澤曰: "然則君之主慈仁任忠, 惇厚舊故, 其賢智與有道之士爲膠漆, 義不倍功臣, 孰與秦孝公·楚悼王·越王乎?" 應侯曰: "未知何如也." 蔡澤曰: "今主親忠臣, 不過秦孝公·楚悼王·越王, 君之設智, 能爲主安危修政, 治亂彊兵, 批患折難, 廣地殖穀, 富國足家, 彊主, 尊社稷, 顯宗廟, 天下莫敢欺犯其主, 主之威蓋震海內, 功彰萬里之外, 聲名光輝傳於千世, 君孰與商君·吳起·大夫種?" 應侯曰: "不若." 蔡澤曰: "今主之親忠臣不忘舊故不若孝公·悼王·句踐, 而君之功績愛信親幸又不若商君·吳起·大夫種, 然而君之祿位.. 2024. 5. 2.
[史記列傳(사기열전) 79 범저채택열저(范睢蔡澤列傳) 5/6] 성인불상(聖人不相) / 채택이 응후를 설득하다 성인불상(聖人不相)28 蔡澤者, 燕人也. 游學干諸侯小大甚衆, 不遇. 而從唐舉相, 曰: "吾聞先生相李兌, 曰『百日之內持國秉』, 有之乎?" 曰: "有之." 曰: "若臣者何如?" 唐舉孰視而笑曰: "先生曷鼻, 巨肩, 魋顏, 蹙齃, 膝攣. 吾聞聖人不相, 殆先生乎?" 蔡澤知唐舉戲之, 乃曰: "富貴吾所自有, 吾所不知者壽也, 願聞之." 唐舉曰: "先生之壽, 從今以往者四十三歲." 蔡澤笑謝而去, 謂其御者曰: "吾持粱刺齒肥, 躍馬疾驅, 懷黃金之印, 結紫綬於要, 揖讓人主之前, 食肉富貴, 四十三年足矣." 去之趙, 見逐. 之韓、魏, 遇奪釜鬲於涂. 聞應侯任鄭安平、王稽皆負重罪於秦, 應侯內慚, 蔡澤乃西入秦.  28 채택은(蔡澤者), 연나라 사람이다(燕人也). 타향에서 배우고(游學) 제후에게 벼슬을 구한 것이(干諸侯) 크건 작건(小大).. 2024. 4. 30.
[史記列傳(사기열전) 79 범저채택열저(范睢蔡澤列傳) 4/6] 탁발난수(擢髮難數) / 머리카락을 뽑아 다 헤아릴 수 없다 제포지의(绨袍之義)19 范睢既相秦, 秦號曰張祿, 而魏不知, 以爲范睢已死久矣. 魏聞秦且東伐韓、魏, 魏使須賈於秦. 范睢聞之, 爲微行, 敝衣閒步之邸, 見須賈. 須賈見之而驚曰: "范叔固無恙乎!" 范睢曰: "然." 須賈笑曰: "范叔有說於秦邪?" 曰: "不也. 睢前日得過於魏相, 故亡逃至此, 安敢說乎!" 須賈曰: "今叔何事?" 范睢曰「臣爲人庸賃." 須賈意哀之, 留與坐飲食, 曰: "范叔一寒如此哉!" 乃取其一綈袍以賜之. 須賈因問曰: "秦相張君, 公知之乎? 吾聞幸於王, 天下之事皆決於相君. 今吾事之去留在張君. 孺子豈有客習於相君者哉?" 范睢曰: "主人翁習知之. 唯睢亦得謁, 睢請爲見君於張君." 須賈曰: "吾馬病, 車軸折, 非大車駟馬, 吾固不出." 范睢曰: "願爲君借大車駟馬於主人翁." 19 범저가(范睢) 진나라 재상이 되고 나서.. 2024. 4. 30.
[史記列傳(사기열전) 79 범저채택열저(范睢蔡澤列傳) 3/6] 목실번자피기지(木實繁者披其枝) / 열매가 많으면 가지가 부러진다 17 范睢日益親, 復說用數年矣, 因請閒說曰: "臣居山東時, 聞齊之有田文, 不聞其有王也; 聞秦之有太后·穰侯·華陽·高陵·涇陽, 不聞其有王也. 夫擅國之謂王, 能利害之謂王, 制殺生之威之謂王. 今太后擅行不顧, 穰侯出使不報, 華陽·涇陽等擊斷無諱, 高陵進退不請. 四貴備而國不危者, 未之有也. 爲此四貴者下, 乃所謂無王也. 然則權安得不傾, 令安得從王出乎? 臣聞善治國者, 乃內固其威而外重其權. 穰侯使者操王之重, 決制於諸侯, 剖符於天下, 政適伐國, 莫敢不聽. 戰勝攻取則利歸於陶, 國獘御於諸侯; 戰敗則結怨於百姓, 而禍歸於社稷. 《詩》曰『木實繁者披其枝, 披其枝者傷其心; 大其都者危其國, 尊其臣者卑其主』. 崔杼·淖齒管齊, 射王股, 擢王筋, 縣之於廟梁, 宿昔而死. 李兌管趙, 囚主父於沙丘, 百日而餓死. 今臣聞秦太后·穰侯用事, 高陵·華陽·涇..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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