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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1/5]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지킨 인상여의 용기와 지혜

by प्रज्ञा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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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廉頗者, 趙之良將也. 趙惠文王十六年, 廉頗爲趙將伐齊, 大破之, 取陽晉, 拜爲上卿, 以勇氣聞於諸侯. 藺相如者, 趙人也, 爲趙宦者令繆賢舍人. 

1 염파는(廉頗者), 조나라의(趙之) 뛰어난 장수다(良將也). 조 혜문왕 16년에(趙惠文王十六年), 염파가(廉頗) 조나라의 장수가 되어(爲趙將) 제나라를 쳐서(伐齊), 크게 무찌르고(大破之), 양진을 빼앗아(取陽晉), 벼슬을 받아(拜) 상경이 되었고(爲上卿), 용맹함으로(以勇氣) 제후 사이에 명성을 날렸다(聞於諸侯). 인상여는(藺相如者), 조나라 사람으로(趙人也), 조나라 환자령(趙宦者令) 무현의(繆) 사인이었다(賢舍人). 

 

* 宦者令(환자령): 환관의 우두머리.

* 舍人(사인): (고관대작의 집에 기숙하는) 식객(食客). 시종.


화씨벽(和氏璧) / 완벽귀조( 完璧歸趙)

2 趙惠文王時, 得楚和氏璧. 秦昭王聞之, 使人遺趙王書, 願以十五城請易璧. 趙王與大將軍廉頗諸大臣謀: 欲予秦, 秦城恐不可得, 徒見欺; 欲勿予, 即患秦兵之來. 計未定, 求人可使報秦者, 未得. 宦者令繆賢曰: "臣舍人藺相如可使." 王問: "何以知之?" 對曰: "臣嘗有罪, 竊計欲亡走燕, 臣舍人相如止臣, 曰: '君何以知燕王?' 臣語曰: '臣嘗從大王與燕王會境上, 燕王私握臣手, 曰「願結友」. 以此知之, 故欲往.' 相如謂臣曰: '夫趙彊而燕弱, 而君幸於趙王, 故燕王欲結於君. 今君乃亡趙走燕, 燕畏趙, 其勢必不敢留君, 而束君歸趙矣. 君不如肉袒伏斧質請罪, 則幸得脫矣.' 臣從其計, 大王亦幸赦臣. 臣竊以爲其人勇士, 有智謀, 宜可使." 於是王召見, 問藺相如曰: "秦王以十五城請易寡人之璧, 可予不?" 相如曰: "秦彊而趙弱, 不可不許." 王曰: "取吾璧, 不予我城, 柰何?" 相如曰: "秦以城求璧而趙不許, 曲在趙. 趙予璧而秦不予趙城, 曲在秦. 均之二策, 寧許以負秦曲." 王曰: "誰可使者?" 相如曰: "王必無人, 臣願奉璧往使. 城入趙而璧留秦; 城不入, 臣請完璧歸趙." 趙王於是遂遣相如奉璧西入秦. 

2 조나라 혜문왕 때(趙惠文王時), 초나라의 화씨벽을 얻었다(得楚和氏璧). 진 소왕이 이것을 듣고(秦昭王聞之), 사람을 시켜(使人)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서(遺趙王書), 원컨대(願) 15개 성을(以十五城) 보옥과 바꾸기를 청한다고 했다(請易璧). 조왕이(趙王) 대장군 염파와(與大將軍廉頗) 여러 대신과 상의하기를(諸大臣謀): 진나라에 주려고 하니(欲予秦), 진나라의 성을(秦城) 얻지 못하고(不可得), 다만 속임을 당할까(徒見欺) 걱정되고(恐); 주지 않으려고 하니(欲勿予), 바로 진나라의 군대가 올까 걱정된다(即患秦兵之來). 계책이 정해지지 않았고(計未定), 사신으로 가서 진나라에 보고할 만한(可使報秦者) 사람을 구했지만(求人), 얻지 못했다(未得).

환자령 무현이 말하길(宦者令繆賢曰): "신의 사인(臣舍人) 인상여가(藺相如) 사신을 할만합니다(可使)."라고 했다.

왕이 묻기를(王問): "어찌(何以) 아는가(知之)?"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신에게(臣) 일찍이(嘗) 죄가 있었는데(有罪), 남몰래(竊) 연나라로 도주하려고 계획했는데(計欲亡走燕), 신의 사인(臣舍人) 인상여가 신을 말리며 말하길(相如止臣, 曰): '그대는(君) 어찌(何以) 연왕을 알게 되었습니까(知燕王)?'라고 했습니다.

신이 말하길(臣語曰): '신이(臣) 일찍이(嘗) 대왕을 따라(從大王) 연왕과(與燕王) 국경 근처에서 만났는데(會境上), 연왕이(燕王) 슬며시(私) 신의 손을 잡으며(握臣手), 말하길(曰) '원컨대 친구가 되고 싶소(願結友)'라고 했다. 이것으로 알게 되었고(以此知之), 그러므로(故) 가려고 한다(欲往).'라고 했습니다.

인상여가 신에게 말하길(相如謂臣曰): '무릇(夫) 조나라는 강하고(趙彊而) 연나라는 약한데(燕弱, 而) 그대가(君) 조왕에게 총애를 받았고(幸於趙王), 그러므로(故) 연왕이(燕王) 그대와 맺어지고 싶었을 겁니다(欲結於君). 지금(今) 그대가(君) 곧(乃) 조나라에서 도망쳐(亡趙) 연나라로 간다면(走燕), 연나라는 조나라를 두려워해서(燕畏趙), 그 형세가(其勢) 반드시(必) 감히 그대를 머무르게 하지 못하고(不敢留君, 而) 그대를 묶어(束君)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歸趙矣). 그대가(君) 웃통을 벗고(肉袒) 부절에 엎드려(伏斧質) 죄를 청하고(請罪, 則) 다행히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만(幸得脫) 못합니다(不如矣).'라고 했습니다.

신이(臣) 그 계책을 따랐고(從其計), 대왕도 또한(大王亦) 다행히 신을 용서했습니다(幸赦臣). 신은 삼가(臣竊) 그 사람이 용사이고(其人勇士), 지모가 있으니(有智謀), 마땅히 보낼만하다고(宜可使) 생각합니다(以爲)."라고 했다.

이에(於是) 왕이 불러서 보고(王召見), 인상여게에 묻기를(問藺相如曰): "진왕이(秦王) 15개 성을(以十五城) 과인의 벽과 바꾸자고 청하는데(請易寡人之璧), 주겠는가 주지 않겠는가(可予不)?"라고 했다.

인상여가 말하길(相如曰): "진나라가 강하고(秦彊而) 조나라가 약하니(趙弱), 허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可不許)."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내 화씨벽을 취하고(取吾璧), 우리에게 성을 주지 않는다면(不予我城), 어떻게 하겠는가(柰何)?"라고 했다.

인상여가 말하길(相如曰): "진나라가(秦) 성으로(以城) 화씨벽을 요구하고(求璧而) 조나라가 허락하지 않는다면(趙不許), 잘못은(曲) 조나라에 있습니다(在趙). 조나라가 화씨벽을 주고(趙予璧而) 진나라가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으면(秦不予趙城), 잘못은 진나라에 있습니다(曲在秦). 두 계책을 비교해 보면(均之二策), 차라리(寧) 허락해서(許以) 진나라의 잘못을 떠맡겨야 합니다(負秦曲)."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누가(誰) 사자로 갈만한가(可使者)?"라고 했다.

인상여가 말하길(相如曰): "왕께(王) 반드시 사람이 없다면(必無人), 신이(臣) 원컨대(願) 화씨벽을 받들고(奉璧) 산신으로 가고자 합니다(往使). 성이 조나라에 들어오면(城入趙而) 화씨벽을 진나라에 두고(璧留秦); 성이 들어오지 않으면(城不入), 신이(臣) 화씨벽을 온전하게 하여 조나라에 돌아오겠습니다(請完璧歸趙)."라고 했다.

조왕이(趙王) 이에(於是) 마침내(遂) 상영가 화씨벽을 받들고 보내(遣相如奉璧) 서쪽으로 진나라에 들어갔다(西入秦).

 

* 화씨벽(和氏璧): 《한비자》에 따르면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강가에서 원석을 발견하여 문왕이 도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변화가 초 여왕에게 원석을 바쳤으나 옥세공인이 가짜 돌이라고 판정을 내리자 분노한 여왕은 변화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돌을 바쳤는데 이번에도 가짜라는 판정을 받고 나머지 한 다리도 잘렸다. 문왕이 즉위하자 다시 옥을 바치려 했는데 다리가 없어 갈 수가 없자 변화는 원석을 안고 엉엉 울었다. 문왕이 이야기를 듣고 원석을 가져다 반으로 갈라 보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빛깔을 가진 옥이 나왔고, 문왕이 그것을 잘라 도장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천자를 계승할 때 쓰였으나 도장을 찍는 용도는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들어갔는데, 조나라가 망한 뒤 진시황은 화씨벽을 빼앗아 천자를 황제로 명명하고 등극을 한다. 또 진시황제는 남전옥으로 전국옥새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전국을 통일한 인장용 옥새이며, 화씨벽으로 만든 천자의 옥새와 다른 용도의 도장이다. 이후 화씨벽은 진나라가 망하고 전한의 옥새가 되었다가, 효원황태후 때 화씨벽으로 만든 옥새를 벽에 던져 깨지는 바람에 때워서 사용하게 되었다. 후한과 위나라, 서진, 동진, 수나라, 당나라를 거쳤다가 오대십국 시대에 석경당이 요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 후당을 치자 후당 마지막 황제 이종가가 천자 옥새를 끌어안고 분신자살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위키백과>
* 均之二策(균지이책): 두 계책을 따져보다. 均은 '따져보다, 평가하다'란 뜻이다.


3 秦王坐章臺見相如, 相如奉璧奏秦王. 秦王大喜, 傳以示美人及左右, 左右皆呼萬歲. 相如視秦王無意償趙城, 乃前曰: "璧有瑕, 請指示王." 王授璧, 相如因持璧卻立, 倚柱, 怒髪上沖冠, 謂秦王曰: "大王欲得璧, 使人發書至趙王, 趙王悉召群臣議, 皆曰'秦貪, 負其彊, 以空言求璧, 償城恐不可得'. 議不欲予秦璧. 臣以爲布衣之交尚不相欺, 況大國乎! 且以一璧之故逆彊秦之驩, 不可. 於是趙王乃齋戒五日, 使臣奉璧, 拜送書於庭. 何者? 嚴大國之威以修敬也. 今臣至, 大王見臣列觀, 禮節甚倨; 得璧, 傳之美人, 以戲弄臣. 臣觀大王無意償趙王城邑, 故臣復取璧. 大王必欲急臣, 臣頭今與璧俱碎於柱矣!" 相如持其璧睨柱, 欲以擊柱. 秦王恐其破璧, 乃辭謝固請, 召有司案圖, 指從此以往十五都予趙. 相如度秦王特以詐詳爲予趙城, 實不可得, 乃謂秦王曰: "和氏璧, 天下所共傳寶也, 趙王恐, 不敢不獻. 趙王送璧時, 齋戒五日, 今大王亦宜齋戒五日, 設九賓於廷, 臣乃敢上璧." 秦王度之, 終不可彊奪, 遂許齋五日, 舍相如廣成傳. 相如度秦王雖齋, 決負約不償城, 乃使其從者衣褐, 懷其璧, 從徑道亡, 歸璧于趙. 

3 진왕이(秦王) 장대에 앉아(坐章臺) 인상여를 만났는데(見相如), 인상여가(相如) 화씨벽을 받들어(奉璧) 진왕에게 올렸다(奏秦王). 진왕이 크게 기뻐하며(秦王大喜), 전하여(傳以) 미인과 좌우에 보여주자(示美人及左右), 좌우가 모두(左右皆) 만세를 불렀다(呼萬歲).

인상여는(相如) 진왕에게(秦王) 조나라에 성을 줄 뜻이 없음을(無意償趙城) 보고는(視), 이에(乃) 앞으로 나가 말하길(前曰): "화씨벽에(璧) 흠이 있으니(有瑕), 청컨대(請) 왕에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指示王)."라고 했다.

왕이(王) 화씨벽을 주자(授璧), 인상여가(相如) 이에(因) 화씨벽을 가지고(持璧) 뒤로 물러서서(卻立), 기둥에 기대어(倚柱), 머리카락이 솟아 관을 찌를 것처럼 화를 내며(怒髪上沖冠), 진왕에게 말하길(謂秦王曰): "대왕께서(大王) 화씨벽을 얻으려고(欲得璧), 사람을 시켜(使人) 편지를 보내서(發書) 조왕에게 이르렀고(至趙王), 조왕이(趙王) 군신을 모두 모아(悉召群臣) 의논하자(議), 모두 말하길(皆曰) '진나라가 욕심이 많고(秦貪), 그 강함에 기대서(負其彊, 以) 헛된 말로 화씨벽을 요구하여(空言求璧), 성으로 갚겠다는 것을(償城) 얻지 못할까 걱정됩니다(恐不可得)'라고 했습니다. 진나라에게 화씨벽을 주지 않기로(不欲予秦璧) 의논을 정했습니다(議). 신은(臣) 보통사람의 교제에서도(布衣之交) 오히려(尚) 서로 속이지 않는데(不相欺), 하물며(況) 대국은 어떻겠는가(大國乎)라고 생각했습니다(以爲)! 또한(且) 화씨벽 하나 때문에(以一璧之故) 강한 진나라의 즐거움을 거스르는 것은(逆彊秦之驩), 안된다과 여겼습니다(不可). 이에(於是) 조왕은(趙王) 5일 동안 재계하고(乃齋戒五日), 신으로 하여금(使臣) 화씨벽을 받들게 하고(奉璧), <진나라> 조정에(於庭) 편지를 보냈습니다(拜送書). 어째서인가요(何者)? 큰 나라의 위엄을 존중해서(嚴大國之威以) 공경을 다한 것입니다(修敬也). 지금(今) 신이 이르러(臣至), 대왕께서(大王) 신을 열관에서 만났으니(見臣列觀), 예절이 매우 거만한 것이고(禮節甚倨); 화씨벽을 얻어(得璧), 미인에게 전하여(傳之美人, 以) 신을 희롱했습니다(戲弄臣). 신이 보건대(臣觀) 대왕에게는(大王) 조왕에게 성읍을 보상으로 줄 뜻이 없고(無意償趙王城邑), 그러므로(故) 신은(臣) 다시 화씨벽을 취했습니다(復取璧). 대왕께서(大王) 반드시(必) 신을 급하게 만들려고 한다면(欲急臣), 신의 머리는(臣頭) 지금(今) 화씨벽과 함께(與璧) 기둥에서 같이 부서질 것입니다(俱碎於柱矣)!"라고 했다.

인상여가(相如) 그 화씨벽을 가지고(持其璧) 기둥을 노려보며(睨柱), 그것으로 기둥을 치려고 했다(欲以擊柱). 진왕은(秦王) 그가 화씨벽을 깰까 봐 걱정해서(恐其破璧), 이에(乃) 사과하는 말을(辭謝) 억지로 청하며(固請), 유사를 불러(召有司) 지도를 보며(案圖), 여기부터 저기까지 15개 도를 가리키며(指從此以往十五都) 조나라에 주었다(予趙).

인상여는(相如) 진왕이(秦王) 다만(特) 속여서(以詐) 조나라에 성을 주는 척하고(予趙城), 실제로(實) 얻을 수 없음을 알고(不可得), 이에(乃) 진왕에게 말하길(謂秦王曰): "화씨벽은(和氏璧), 천하에 함께 전하는(天下所共傳) 보물이고(寶也), 조왕이 두려워하여(趙王恐), 감히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敢不獻). 조왕이(趙王) 화씨벽을 보낼 때(送璧時), 재계를 5일 동안 했으니(齋戒五日), 지금(今) 대왕도 또한(大王亦) 마땅히(宜) 5일 동안 재계하고(齋戒五日), 조정에(於廷) 구빈의 예를 행한다면(設九賓), 신이 곧(臣乃) 감히(敢) 화씨벽을 바칠 것입니다(上璧)."라고 했다.

진왕이(秦王) 헤아려보고(度之), 끝내(終) 강제로 뺏을 수 없으므로(不可彊奪), 마침내(遂) 5일 동안 재계할 것을 허락하고(許齋五日), 인상여을 광성전에 묵도록 했다(舍相如廣成傳). 인상여는(相如) 진왕이 비록 재계하더라도(秦王雖齋), 결국(決) 약속을 저버리고(負約) 성을 보상하지 않을 것을 알고(不償城), 이에(乃) 그 종자를 시켜(使其從者) 허름한 옷을 입고(衣褐), 화씨벽을 품고(懷其璧), 샛길을 따라(從徑道) 도망쳐서(亡), 조나라에 화씨벽을 돌려보냈다(歸璧于趙). 

 

* 却立(각립): 뒤로 물러서다.

* 怒髪上沖冠(노발상충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다. 노발대발하다. 怒髪沖冠.

* 布衣之交(포의지교): 평민 간의 교제. 벼슬이 없는 선비와 서민의 교제라는 뜻으로,  신분이나 지위를 떠나고, 이익 따위도 바라지 않는 교제를 비유하는 말.

* 列觀(열관) : 장대(章台)를 말한다. 진나라가 사신을 존중하지 않아 조정에서 접견하지 않고 일반 대에서 접견한 것을 뜻한다.

* 從此以往(종차이왕): 지금()부터 그 뒤.

* 詳為(양위): 거짓으로 하다. 詳은 佯과 같으며 거짓.


4 秦王齋五日後, 乃設九賓禮於廷, 引趙使者藺相如. 相如至, 謂秦王曰: "秦自繆公以來二十餘君, 未嘗有堅明約束者也. 臣誠恐見欺於王而負趙, 故令人持璧歸, 閒至趙矣. 且秦彊而趙弱, 大王遣一介之使至趙, 趙立奉璧來. 今以秦之彊而先割十五都予趙, 趙豈敢留璧而得罪於大王乎? 臣知欺大王之罪當誅, 臣請就湯鑊, 唯大王與群臣孰計議之." 秦王與群臣相視而嘻. 左右或欲引相如去, 秦王因曰: "今殺相如, 終不能得璧也, 而絕秦趙之驩, 不如因而厚遇之, 使歸趙, 趙王豈以一璧之故欺秦邪!" 卒廷見相如, 畢禮而歸之. 

4 진왕이(秦王) 5일 동안 재계하고 나서(齋五日後), 이에(乃) 조정에 구빈의 예를 행하고(設九賓禮於廷), 조나라 사자 인상여를 인도했다(引趙使者藺相如).

인상여가 이르러(相如至), 진왕에게 말하길(謂秦王曰): "진나라가(秦) 목공 이래로(自繆公以來) 20여 군주가 있었는데(二十餘君), 약속을 굳게 지킨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未嘗有堅明約束者也). 신은(臣) 진실로(誠) 왕에게 속임을 당하고(見欺於王而) 조나라를 저버릴까(負趙) 걱정되었고(恐), 그러므로(故) 사람을 시켜(令人) 화씨벽을 가지고(持璧) 돌아가도록 해서(歸), 사잇길로(閒) 조나라에 이르렀습니다(至趙矣). 또(且) 진나라는 강하고(秦彊而) 조나라는 약해서(趙弱), 대왕께서(大王) 사자 한 명을 보내(遣一介之使) 조나라에 이르자(至趙), 조나라는(趙) 곧(立) <명령을> 받들어(奉) 화씨벽을 보냈습니다(璧來). 지금(今) 진나라의 강함으로(以秦之彊而) 먼저(先) 15개 성읍을 떼어(割十五都) 조나라에 준다면(予趙), 조나라가(趙) 어찌(豈) 감히(敢) 화씨벽을 남겨두어(留璧而) 대왕께 죄를 짓겠습니까(得罪於大王乎)? 신은(臣) 대왕을 속인 죄로(欺大王之罪) 마땅히 죽임 당할 것을 알고 있으니(當誅), 신이 청컨대(臣請) 끓는 가마솥에 나아가기를 바랍니다(就湯鑊), 다만(唯) 대왕께서(大王) 신하들과 함께(與群臣) 이것을 충분히 상의하시기 바랍니다(孰計議之)."라고 했다.

진왕이(秦王) 군신과 함께(與群臣) 서로 바라보며(相視而) 쓴웃음을 지었다(嘻). 좌우 신하 중에(左右) 누군가(或) 인상여를 끌고 가려고 하자(欲引相如去), 진왕이 말하길(秦王因曰): "지금(今) 인상여를 죽이면(殺相如), 끝내(終) 화씨벽을 얻을 수 없고(不能得璧也, 而) 진나라와 조나라의 좋은 사이가 끊어지니(絕秦趙之驩), 인하여 후하게 대접하고(因而厚遇之), 조나라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만(使歸趙) 못하니(不如), 조왕이(趙王) 어찌(豈) 화씨벽 하나 때문에(以一璧之故) 진나라를 속이겠는가(欺秦邪)!"라고 했다.

마침내(卒) 인상여를(相如) 인상여를 보고(廷見), 예를 마치고(畢禮而) 돌려보냈다(歸之). 

 

* 堅明約束(견명약속): 단호하고 명확하게 맹약을 준수함.


5 相如既歸, 趙王以爲賢大夫使不辱於諸侯, 拜相如爲上大夫. 秦亦不以城予趙, 趙亦終不予秦璧. 

5 인상여가 돌아오고 나서(相如既歸), 조왕이(趙王) 현명한 대부가 사신으로 가서(賢大夫使) 제후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았다고(不辱於諸侯) 여기고(以爲), 벼슬을 주어(拜) 상여를 상대부로 삼았다(相如爲上大夫). 진나라도 또한(秦亦) 성을 조나라에 주지 않고(不以城予趙), 조나라도 또한(趙亦) 끝내(終) 화씨벽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不予秦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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