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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3/5] 양서투혈(兩鼠鬪穴) / 좁은 구멍에서 쥐가 싸우면 용감한 쥐가 이긴다.

by प्रज्ञा 202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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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趙奢者, 趙之田部吏也. 收租稅而平原君家不肯出趙, 奢以法治之, 殺平原君用事者九人. 平原君怒, 將殺奢. 奢因說曰: "君於趙爲貴公子, 今縱君家而不奉公則法削, 法削則國弱, 國弱則諸侯加兵, 諸侯加兵是無趙也, 君安得有此富乎? 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國彊則趙固, 而君爲貴戚, 豈輕於天下邪?" 平原君以爲賢, 言之於王. 王用之治國賦, 國賦大平, 民富而府庫實. 

10 조사는(趙奢者), 조나라(趙之) 전부리였다(田部吏也). 조세를 걷으려는데(收租稅而) 평원군 집안이(平原君家) 조나라에 내는 것을 들어주지 않자(不肯出趙), 조사가(奢) 법에 따라(以法) 그들을 다스려(治之), 평원군의 일하는 사람(平原君用事者) 아홉을 죽였다(殺九人). 평원군이 노하여(平原君怒), 조사를 죽이려고 했다(將殺奢).

조사가(奢) 설득하며 말하길(因說曰): "그대는(君) 조나라에서(於趙) 귀공자인데(爲貴公子), 지금(今) 그대의 집안이공익을 받들지 않는 것을(君家而不奉公) 내버려 둔다면(則) 법이 손상될 것이고(法削), 법이 손상되면(法削則) 나라가 약해지고(國弱), 나라가 약해지면(國弱則) 제후들이 군대를 보낼 것이고(諸侯加兵), 제후들이 군대를 보내면(諸侯加兵) 곧(是) 조나라가 없어질 것이니(無趙也), 그대에게(君) 어찌(安) 이런 부가 있겠습니까(得有此富乎)? 그대의 귀함으로(以君之貴), 공익을 받드는 것이(奉公) 법에 있는 대로 한다면(如法則) 상하가 공평해지고(上下平), 상하가 공평해지만(上下平則) 나라가 강해지고(國彊), 나라가 강해지면(國彊則) 조나라가 튼튼해질 것이고(趙固, 而) 그대는(君) 임금의 인척이니(爲貴戚), 어찌(豈) 천하에서 가벼이 여겨질까요(輕於天下邪)?"라고 했다.

평원군이(平原君) 현명한 사람이라고 여겨(以爲賢), 왕에게 그를 말했다(言之於王). 왕이 그를 등용해서(王用之) 나라의 세금을 다스리게 하자(治國賦), 나라의 세금이 크게 공평해져서(國賦大平), 백성이 부유해지고(民富而) 창고가 가득 찼다(府庫實). 

 

* 조사(趙奢,?~?)는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趙)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조나라 말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명장으로 손꼽힌다. 조괄(趙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마복군(馬服君)의 칭호를 받았다. 연여(閼與)에서 진나라(秦)의 객경 호양(胡陽)을 격퇴하였다.(위키백과)

* 田部吏(전부리): 전답(田畓)의 조세 징수를 맡은 관리.

* 縱(종): 방임하다. 내버려 두다.

* 貴戚(귀척): 임금의 인척().


양서투혈(兩鼠鬪穴)

11 秦伐韓, 軍於閼與. 王召廉頗而問曰: "可救不?" 對曰: "道遠險狹, 難救." 又召樂乘而問焉, 樂乘對如廉頗言. 又召問趙奢, 奢對曰: "其道遠險狹, 譬之猶兩鼠鬬於穴中, 將勇者勝." 王乃令趙奢將, 救之. 

11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려고(秦伐韓), 연여에 군대를 보냈다(軍於閼與).

왕이 염파를 불러 묻기를(王召廉頗而問曰): "구할 수 없겠는가(可救不)?"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길이 멀고 험한 데다(道遠險) 좁아서(狹), 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難救)."라고 했다.

또(又) 악승을 불러 그것을 묻자(召樂乘而問焉), 악승의 대답이(樂乘對) 염파의 말과 같았다(如廉頗言). 또(又) 조사를 불러 묻자(召問趙奢),

조사가 대답하기를(奢對曰): "그 길이(其道) 멀고 험한 데다가(遠險) 좁으니(狹), 비유하자면(譬之) 두 마리 쥐가 굴에서 싸우는 것과 같고(猶兩鼠鬬於穴中), 장차 용감한 쥐가 이길 것입니다(將勇者勝)."라고 했다.

왕이 이에(王乃) 조사에게 명을 내려(令趙奢) 장수로 삼고(將), 구원하도록 했다(救之). 


12 兵去邯鄲三十里, 而令軍中曰: "有以軍事諫者死." 秦軍軍武安西, 秦軍鼓譟勒兵, 武安屋瓦盡振. 軍中候有一人言急救武安, 趙奢立斬之. 堅壁, 留二十八日不行, 復益增壘. 秦閒來入, 趙奢善食而遣之. 閒以報秦將, 秦將大喜曰: "夫去國三十里而軍不行, 乃增壘, 閼與非趙地也." 趙奢既已遣秦閒, 卷甲而趨之, 二日一夜至, 今善射者去閼與五十里而軍. 軍壘成, 秦人聞之, 悉甲而至. 軍士許歷請以軍事諫, 趙奢曰: "內之." 許歷曰: "秦人不意趙師至此, 其來氣盛, 將軍必厚集其陣以待之. 不然, 必敗." 趙奢曰: "請受令." 許歷曰: "請就鈇質之誅." 趙奢曰: "胥後令邯鄲." 許歷復請諫, 曰: "先據北山上者勝, 後至者敗." 趙奢許諾, 即發萬人趨之. 秦兵後至, 爭山不得上, 趙奢縱兵擊之, 大破秦軍. 秦軍解而走, 遂解閼與之圍而歸. 

12 군대와(兵) 한단과의 거리가(去邯鄲) 30여 리가 되자(三十里, 而) 군중에 영을 내려 말하길(令軍中曰): "군사의 일로(以軍事) 조언하는 사람이 있다면(諫者) 죽을 것이다(死)."라고 했다.

진나라 군대가(秦軍) 무안 서쪽에 주둔하고(軍武安西), 진나라 군대가(秦軍)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鼓譟) 대오를 정돈하는데(勒兵), 무안의 집 기와가(武安屋瓦) 모두 흔들렸다(盡振). 군중(軍中) 척후 중에(候) 한 사람이 있어(有一) 빨리(急) 무안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자(救武安), 조사가(趙奢) 베었다(立斬之). 보루를 튼튼히 하고(堅壁), 머물며(留) 28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二十八日不行), 다시(復) 보루를 더욱 높였다(益增壘). 진나라 첩자가(秦閒) 들어오자(來入), 조사가(趙奢) 잘 대접하고(善食而) 돌려보냈다(遣之).

첩자가(閒) 이것으로(以) 진나라 장수에게 보고하자(報秦將), 진나라 장수가(秦將) 크게 기뻐하며 말하길(大喜曰): "나라와의 거리가(夫去國) 30여 리인데(三十里而) 군대가 움직이지 않고(軍不行), 이에 보루를 쌓았으니(乃增壘), 연여는(閼與) 조나라 땅이 아니다(非趙地也)."라고 했다.

조사가(趙奢) 진나라 첩자를 돌려보내고 나서(既已遣秦閒), 갑옷을 벗고(卷甲而) 달려서(趨之), 2일 하룻밤 만에(二日一夜) 이르러(至), 활 잘 쏘는 사람을(今善射者) 연여와의 거리가(去閼與) 50여 리 되는 곳에(五十里而) 주둔시켰다(軍). 군대의 보루가 완성되자(軍壘成), 진나라 군대가 이것을 듣고(秦人聞之), 모든 군사를 모아(悉甲而) 이르렀다(至).

군사 허력이(軍士許歷) 군사의 일로 조언을 청하자(請以軍事諫), 조사가 말하길(趙奢曰): "들어오게 해라(內之)."라고 했다.

허력이 말하길(許歷曰): "진나라는(秦人) 조나라 군대가 온 것을(趙師至此) 생각하지 못하고(不意), 그 오는 기세가(其來氣) 왕성할 것이니(盛), 장차(將) 군대가(軍) 반드시(必) 그 진에 두텁게 모이도록 하고(厚集其陣以) 기다려야 합니다(待之). 그렇지 않으면(不然),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必敗)."라고 했다.

조사가 말하길(趙奢曰): "청컨대(請)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다(受令)."라고 했다.

허력이 말하길(許歷曰): "청컨대(請) 부질의 형벌에 나아가도록 해주십시오(就鈇質之誅)."라고 했다.

조사가 말하길(趙奢曰): "잠시 뒤에(胥後) 한단에서 령을 내리겠다(令邯鄲)."라고 했다.

허력이(許歷) 다시 조언을 청하며 말하길(復請諫, 曰): "먼저(先) 북산 위를 점령하는 사람이(據北山上者) 이길 것이고(勝), 나중에 오는 사람이(後至者) 질 것입니다(敗)."라고 했다.

조사가 허락하고(趙奢許諾), 곧(即) 만 명을 뽑아(發萬人) 달려가도록 했다(趨之). 진나라 군대가(秦兵) 나중에 이르러(後至), 산에서 싸웠지만(爭山)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不得上), 조사가(趙奢) 병사를 풀어(縱兵) 습격하고(擊之), 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大破秦軍). 진나라 군대가 <포위를> 풀고(秦軍解而) 달아나니(走), 마침내(遂) 연여의 포위를 풀고*解閼與之圍而) 돌아왔다(歸). 

 

* 秦軍軍(진군군): 진나라 군대가 진을 치다. 뒤의 軍(군)은 '진(陣)을 치다, 군대를 주둔하다'라는 뜻이다.

* 勒兵(늑병): 병사()의 대오()를 정돈()하여 자세(仔細)히 검열()하는 일.

* 候(후): 척후. 염탐꾼.

* 卷甲(권갑): ‘갑옷(-)을 말아 둔다.’는 뜻으로, 전쟁()을 그만둠을 이르는 말.

* 鈇質(부질): =斧質. 형구(刑具). 부월(斧鉞)의 형과 심질(椹質)의 형을 말한다.


13 趙惠文王賜奢號爲馬服君, 以許歷爲國尉. 趙奢於是與廉頗·藺相如同位. 

13 조 혜문왕이(趙惠文王) 조사에게 호를 내려(賜奢號) 마복군으로 삼고(爲馬服君), 허력을(以許歷) 국위로 삼았다(爲國尉). 조사가(趙奢) 이에(於是) 염파, 인상여와 더불어(與廉頗·藺相如) 지위가 같아졌다(同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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