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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5/5] 지사필용(知死必勇) / 죽을 것을 알면 용기가 생긴다

by प्रज्ञा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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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李牧者, 趙之北邊良將也. 常居代鴈門, 備匈奴. 以便宜置吏, 市租皆輸入莫府, 爲士卒費. 日擊數牛饗士, 習射騎, 謹烽火, 多閒諜, 厚遇戰士. 爲約曰: "匈奴即入盜, 急入收保, 有敢捕虜者斬." 匈奴每入, 烽火謹, 輒入收保, 不敢戰. 如是數歲, 亦不亡失. 然匈奴以李牧爲怯, 雖趙邊兵亦以爲吾將怯. 趙王讓李牧, 李牧如故. 趙王怒, 召之, 使他人代將. 

22 이목은(李牧者), 조나라(趙之) 북쪽 국경의(北邊) 뛰어난 장수였다(良將也). 일찍이(常) 대군과 안문군에서 살며(居代鴈門), 흉노에 대비했다(備匈奴). 편의에 따라(以便宜) 관리를 두고(置吏), 시장의 조세를(市租) 모두 거두어(皆輸) 막부로 들여가서(入莫府), 사졸의 비용에 썼다(爲士卒費). 하루에(日) 몇 마리 소를 잡아(擊數牛) 병사들에게 술자리를 마련하고(饗士),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고(習射騎), 봉화를 신중하게 준비하고(謹烽火), 첩자를 많이 두고(多閒諜), 전사를 두텁게 대우했다(厚遇戰士).

명을 내려 말하길(爲約曰): "흉노가(匈奴) 들어와 도적질 하면(即入盜), 빨리 들어와(急入) 성을 지키고(收保), 감히 적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다면(有敢捕虜者) 벨 것이다(斬)."라고 했다.

흉노가 매번 들어오면(匈奴每入), 봉화가 올라가고(烽火謹), 빨리 들어와(輒入) 성을 지키고(收保), 감히 싸우지 않았다(不敢戰). 이와 같이(如是) 몇 해가 지나자(數歲), 또한(亦) 잃는 것이 없었다(不亡失). 그러자(然) 흉노는(匈奴) 이목을(以李牧) 겁쟁이라고 여기고(爲怯), 비록(雖) 조나라 변방의 군사도(趙邊兵) 또한(亦) 우리 장수가 비겁하다고 여겼다(以爲吾將怯). 조왕이 이목을 꾸짖고(趙王讓李牧), 이목은(李牧) 옛날처럼 했다(如故). 조왕이 노하여(趙王怒), 그를 불러들이고(召之), 다른 사람을 시켜(使他人) 장수를 대신하게 했다(代將). 

 

* 이목(李牧, ? ~ 기원전 228)은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趙)의 재상이자 장군이다. 조나라 말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명장으로 손꼽힌다. 본명은 이촬(李繓)이고 자가 목(牧)이지만, 본명보다는 이목(李牧)으로 알려져 있다. 벼슬이 상국(相國)에 이르렀으며 무안군(武安君)의 칭호를 받았다. 북쪽의 흉노(匈奴)와 서쪽의 진나라(秦) 등을 상대로 많은 전공을 거두었다. <위키백과>

* 便宜(편의): 형편(便)이 좋음, 그때그때에 적응()한 처치().

* 收保(수보): 성을 지킴. 保는 堡와 같다.


23 歲餘, 匈奴每來, 出戰. 出戰, 數不利, 失亡多, 邊不得田畜. 復請李牧. 牧杜門不出, 固稱疾. 趙王乃復彊起使將兵. 牧曰: "王必用臣, 臣如前, 乃敢奉令." 王許之. 

23 1년 남짓한 동안(歲餘), 흉노가 올 때마다(匈奴每來), 나가서 싸웠다(出戰). 출전하면(出戰), 번번이(數) 불리해서(不利), 잃는 것이 많았고(失亡多), 변방의 백성은(邊)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수 없었다(不得田畜). 다시(復) 이목을 청했다(請李牧). 이목이(牧) 두문불출하고(杜門不出), 고집스럽게(固) 병을 핑계 댔다(稱疾). 조왕이(趙王) 이에(乃) 다시(復) 강제로(彊) 일으켜(起) 병사를 이끌도록 했다(使將兵).

이목이 말하길(牧曰): "왕께서(王) 반드시(必) 신을 등용한다면(用臣), 신은(臣) 전과 같이 할 것이니(如前), 이에(乃) 감히 명을 받듭니다(敢奉令)."라고 했다.

왕이 이것을 허락했다(王許之). 


24 李牧至, 如故約. 匈奴數歲無所得. 終以爲怯. 邊士日得賞賜而不用, 皆願一戰. 於是乃具選車得千三百乘, 選騎得萬三千匹, 百金之士五萬人, 彀者十萬人, 悉勒習戰. 大縱畜牧, 人民滿野. 匈奴小入, 詳北不勝, 以數千人委之. 單于聞之, 大率眾來入. 李牧多爲奇陳, 張左右翼擊之, 大破殺匈奴十餘萬騎. 滅襜襤, 破東胡, 降林胡, 單于奔走. 其後十餘歲, 匈奴不敢近趙邊城. 

24 이목이 이르자(李牧至), 예전과 같이 명을 내렸다(如故約). 흉노에게(匈奴) 몇 년 동안(數歲) 얻는 것이 없었고(無所得), 끝내(終) 겁쟁이라고 여겼다(以爲怯). 변방의 병사들이(邊士) 매일(日) 상과 하사품을 얻었지만(得賞賜而) 쓰지 못했고(不用), 모두(皆) 한 번 싸우기를 원했다(願一戰). 이에(於是) 곧(乃) 전차를 골라 1300대를 갖추고(具選車得千三百乘), 기마를 뽑아(選騎) 13,000 필을 얻고(得萬三千匹), 100금을 받은 용사 5만 명과(百金之士五萬人), 궁수 10만 명을 갖추어(彀者十萬人), 모두(悉) 싸움을 익히도록 했다(勒習戰). 가축을 크게 풀어(大縱畜) 방목하니(牧), 백성이 들에 가득 찼다(人民滿野). 흉노가(匈奴) 조금 들어오자(小入), 거짓으로 패하여(詳北) 이기지 못하고(不勝, 以) 수천 명을 버려두었다(數千人委之). 선우가 이것을 듣고(單于聞之), 무리를 크게 이끌고(大率眾) 들어왔다(來入). 이목이(李牧) 기진을 많이 펼쳐(多爲奇陳), 좌우 날개를 펼쳐(張左右翼) 습격하고(擊之), 크게 무찔러(大破) 흉노의 기병 10만을 죽였다(匈奴十餘萬騎). 담람을 멸망시키고(滅襜襤), 동호를 깨뜨리고(破東胡), 임호를 항복시키고(降林胡), 선우가 달아났다(單于奔走). 그 뒤로(其後) 10여 년이 지나도록(十餘歲), 흉노가(匈奴) 감히 조나라 국경의 성 가까이 오지 않았다(不敢近趙邊城). 


25 趙悼襄王元年, 廉頗既亡入魏, 趙使李牧攻燕, 拔武遂、方城. 居二年, 龐煖破燕軍, 殺劇辛. 後七年, 秦破殺趙將扈輒於武遂, 斬首十萬. 趙乃以李牧爲大將軍, 擊秦軍於宜安, 大破秦軍, 走秦將桓齮. 封李牧爲武安君. 居三年, 秦攻番吾, 李牧擊破秦軍, 南距韓、魏. 

25 조 도양왕 원년에(趙悼襄王元年), 염파가 도망쳐 위나라에 들어가고 나서(廉頗既亡入魏), 조나라가(趙) 이목으로 하여금(使李牧) 연나라를 공격하게 하고(攻燕), 무수와 방성을 함락시켰다(拔武遂、方城). 2년이 지나(居二年), 방훤이(龐煖) 연나라 군대를 깨뜨리고(破燕軍), 극신을 죽였다(殺劇辛). 7년 뒤에(後七年), 진나라가(秦) 무수성에서(於武遂) 조나라 장군 호첩을 죽이고(破殺趙將扈輒), 10만 명을 베었다(斬首十萬). 조나라가 이에(趙乃) 이목을(以李牧) 대장군으로 삼아(爲大將軍), 의안에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고(擊秦軍於宜安), 진나라 군대를 크게 깨뜨려(大破秦軍), 진나라 장수 환의가 달아났다(走秦將桓齮). 이목을 봉하여(封李牧) 무안군으로 삼았다(爲武安君). 3년이 지나(居三年), 진나라가(秦) 번오를 공격하자(攻番吾), 이목이(李牧) 진나라 군대를 습격해서 깨뜨리고(擊破秦軍), 남으로(南) 한나라와 위나라를 막았다(距韓、魏). 


26 趙王遷七年, 秦使王翦攻趙, 趙使李牧、司馬尚御之. 秦多與趙王寵臣郭開金, 爲反閒, 言李牧、司馬尚欲反. 趙王乃使趙蔥及齊將顏聚代李牧. 李牧不受命, 趙使人微捕得李牧, 斬之. 廢司馬尚. 後三月, 王翦因急擊趙, 大破殺趙蔥, 虜趙王遷及其將顏聚, 遂滅趙. 

26 조왕 천 7년에(趙王遷七年), 진나라가(秦) 왕홀을 시켜(使王翦)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자(攻趙), 조나라가(趙) 이목과 사마상을 시켜(使李牧、司馬尚) 막았다(御之). 진나라가(秦) 조왕의 총신(趙王寵臣) 곽개에게(郭開) 금을 많이 주고(多與金), 이간질시켜서(爲反閒), 이목과 사마상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말했다(言李牧、司馬尚欲反). 조왕이(趙王) 이에(乃) 조총과(使趙蔥及) 제나라 장수 안취를 시켜(齊將顏聚) 이목을 대신하게 하려고 했다(代李牧). 이목이(李牧) 명을 받지 않자(不受命), 조나라가(趙) 사람을 시켜(使人) 몰래 이목을 붙잡아서(微捕得李牧), 목을 베고(斬之), 사마상을 물러나게 했다(廢司馬尚). 3개월이 지나(後三月), 왕홀이(王翦) 조나라를 급습해서(因急擊趙), 조총을 크게 깨뜨려 죽이고(大破殺趙蔥), 조왕 천과 그 장수 안취를 붙잡았고(虜趙王遷及其將顏聚), 마침내(遂) 조나라를 멸망시켰다(滅趙). 


27 太史公曰:知死必勇, 非死者難也, 處死者難. 方藺相如引璧睨柱, 及叱秦王左右, 勢不過誅, 然士或怯懦而不敢發. 相如一奮其氣, 威信敵國, 退而讓頗, 名重太山, 其處智勇, 可謂兼之矣!

27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죽을 줄 알면(知死) 반드시 용감해지고(必勇),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非死者難也), 죽음에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處死者難). 바야흐로(方) 인상여가(藺相如) 화씨벽을 돌려받고(引璧) 기둥을 노려보며(睨柱), 진왕의 주위 신하를 꾸짖을 때(及叱秦王左右), 형세는(勢) 죽음을 넘어설 수 없었지만(不過誅), 그러나(然) 선비가(士) 혹(或) 겁을 먹고(怯懦而) 감히 드러내지 못한다(不敢發). 인상여가(相如) 그 기세를 한 번 떨치자(一奮其氣), 위엄이(威) 적국에 미치고(信敵國), 물러나(退而) 염파에게 양보했지만(讓頗), 명성이(名) 태산처럼 무거웠고(重太山), 그 지혜와 용기를(其處智勇), 모두 가졌다고 이를만하다(可謂兼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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