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3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1/2] 말 한마디로 100만 대군을 돌려세운 노중련의 배짱

by प्रज्ञा 2024. 5. 24.
반응형

1 魯仲連者, 齊人也. 好奇偉俶儻之畫策, 而不肯仕宦任職, 好持高節. 游於趙. 

1 노중련은(魯仲連者),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기이하고(奇偉) 뛰어난(俶儻之) 계책 세우기를 좋아하고(畫策, 而) 벼슬에 나가거나 직을 맡기를 달가워하지 않고(不肯仕宦任職), 고상한 절개를 지키길 좋아했다(好持高節). 조나라에서 유세했다(游於趙). 

 

* 노중련魯仲連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기원전 305년경 ~ 기원전 245년)으로 유세가이며 노련(魯連)이라고도 칭한다. 밀양 노씨(密陽 魯氏)의 시조 격이다. 나이 열두 살 때 유명한 논객과 설전을 벌여 발라버렸으며, 천리구(千里驅)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성한 뒤에도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고 천하를 주유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았다.

* 俶儻(척당): =倜儻。호방하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다.
* 畫策(획책): 계책을 세우다. 획책하다.

* 仕宦(사환): 예전에, 관청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보는 자리에 부임하여 일함을 이르던 

 

2 趙孝成王時, 而秦王使白起破趙長平之軍前後四十餘萬, 秦兵遂東圍邯鄲. 趙王恐, 諸侯之救兵莫敢擊秦軍. 魏安釐王使將軍晉鄙救趙, 畏秦, 止於蕩陰不進. 魏王使客將軍新垣衍閒入邯鄲, 因平原君謂趙王曰: "秦所爲急圍趙者, 前與齊湣王爭彊爲帝, 已而復歸帝; 今齊[湣王]已益弱, 方今唯秦雄天下, 此非必貪邯鄲, 其意欲復求爲帝. 趙誠發使尊秦昭王爲帝, 秦必喜, 罷兵去." 平原君猶預未有所決. 

2 조나라 효성왕 때(趙孝成王時, 而) 진왕이(秦王) 백기를 시켜(使白起) 장평의 싸움 전후로(長平之軍前後)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무찌르고(破趙四十餘萬), 진나라 군대가(秦兵) 마침내(遂) 동으로(東) 한단을 포위했다(圍邯鄲). 조왕이 두려워하고(趙王恐), 제후의 구원병 중에(諸侯之救兵) 누구도(莫) 감히 진나라 군대를 습격하지 못했다(敢擊秦軍). 위 안리왕이(魏安釐王) 장군 진비를 시켜(使將軍晉鄙) 조나라를 구하도록 했는데(救趙), 진나라를 두려워해서(畏秦), 탕음에서 멈추고(止於蕩陰) 나아가지 못했다(不進).

위왕이(魏王) 객장군 신원연을 시켜(使客將軍新垣衍) 사잇길로 한단에 들어가(閒入邯鄲), 평원군을 통해(因平原君) 조왕에게 말하길(謂趙王曰): "진나라가(秦) 급하게 조나라를 포위한 까닭은(所爲急圍趙者), 전에(前) 제 민왕과(與齊湣王) 강함을 겨루어(爭彊) 제를 칭했다가(爲帝), 얼마 후에(已而) 제에서 <왕으로> 복귀했고(復歸帝); 지금(今) 제 민왕이(齊湣王) 이미 더욱 약해져서(已益弱), 바야흐로(方) 지금(今) 오직 진나라가(唯秦) 천하에서 으뜸이 되었으니(雄天下), 이것은(此) 반드시 한단을 욕심내서가(必貪邯鄲) 아니라(非), 그 뜻이(其意) 다시 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欲復求爲帝). 조나라가(趙) 진심으로(誠) 사신을 보내(發使) 진 소왕을 높여 제로 불러주면(尊秦昭王爲帝), 진나라가(秦) 반드시 기뻐하고(必喜), 군대를 거두고 물러갈 것이다(罷兵去)."라고 했다.

평원군이(平原君) 여전히(猶) 망설이면서(預) 결정하는 것이 있지 않았다(未有所決). 

 

* 復歸帝(복귀제): 황제의 칭호를 취소하여 왕호를 쓰다.


3 此時魯仲連適游趙, 會秦圍趙, 聞魏將欲令趙尊秦爲帝, 乃見平原君曰: "事將柰何?" 平原君曰: "勝也何敢言事! 前亡四十萬之眾於外, 今又內圍邯鄲而不能去. 魏王使客將軍新垣衍令趙帝秦, 今其人在是. 勝也何敢言事! 」魯仲連曰: "吾始以君爲天下之賢公子也, 吾乃今然後知君非天下之賢公子也. 梁客新垣衍安在?吾請爲君責而歸之." 平原君曰: "勝請爲紹介而見之於先生." 平原君遂見新垣衍曰: "東國有魯仲連先生者, 今其人在此, 勝請爲紹介, 交之於將軍." 新垣衍曰: "吾聞魯仲連先生, 齊國之高士也. 衍人臣也, 使事有職, 吾不願見魯仲連先生." 平原君曰: "勝既已泄之矣." 新垣衍許諾. 

3 이때(此時) 노중련이(魯仲連) 조나라에 가서 유세했는데(適游趙), 마침(會) 진나라가 조나라를 포위했고(秦圍趙), 위나라 장수가(魏將欲) 조나라로 하여금(令趙) 진나라를 높여 제라고 부르게 하려는 것을(尊秦爲帝) 들었고(聞), 이에(乃) 평원군을 만나 말하길(見平原君曰): "이 일을(事) 장차(將) 어찌할 것인가요(柰何)?"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제가(勝也) 어찌 감히(何敢) 말할 수 있겠는가(言事)! 전에(前) 밖에서(於外) 40만의 무리를 잃었고(亡四十萬之眾), 지금 또(今又) 안에서(內) 한단이 포위되었는데(圍邯鄲而) 물리칠 수 없다(不能去). 위왕이(魏王) 객정군 신원연을 시켜(使客將軍新垣衍) 조나라로 하여금(令趙) 진나라를 제라고 부르라고 했지만(帝秦), 지금(今) 그 사람이 이곳에 있다(其人在是). 내가(勝也) 어찌 감히(何敢) 말할 수 있겠는가(言事)!"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仲連曰): "내가(吾) 처음(始) 그대를(以君) 천하의 현명한 공자로 여겼는데(爲天下之賢公子也), 내가(吾) 곧(乃) 지금 이후로(今然後) 그대가(君) 천하에서 현명한 공자가 아님을(非天下之賢公子) 알겠습니다(也). 양나라 객장(梁客) 신원연이(新垣) 어찌 있습니까(衍安在)? 내가 청컨대(吾請) 그대를 위해(爲君) 꾸짖고 돌려보내겠습니다(責而歸之)."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내가 청컨대(勝請) 소개해서(爲紹介而) 선생과 그를 만나도록 하겠소(見之於先生)."라고 했다.

평원군이(平原君) 마침내(遂) 신원연을 만나 말하길(見新垣衍曰): "동쪽 나라에(東國) 노중련 선생이 있는데(有魯仲連先生者), 지금(今) 그 사람이(其人) 이곳에 있으니(在此), 내가 청컨대(勝請) 소개해서(爲紹介), 장군에게 그를 사귀도록 하고 싶습니다(交之於將軍)."라고 했다.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내가 듣기로(吾聞) 노중련 선생은(魯仲連先生), 제나라의(齊國之) 고결한 선비라고 들었습니다(高士也). 제가(衍) 남의 신하가 되어(人臣也), 사신의 직책에 있으니(使事有職), 내가(吾) 노중련 선생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不願見魯仲連先生)."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제가(勝) 이미(既已) 그에게 말했습니다(泄之矣)."라고 했다.

신원연이 허락했다(新垣衍許諾). 

 

* 梁客(양객) : 위나라는 기원전 340년 상앙이 이끄는 진나라군에게 대패하여 황하 이서 지역을 잃었고, 진나라를 두려워하며, 수도를 안읍(安邑)에서 동쪽 지역인 대량(大梁, 현재의 開封)으로 천도하였다. 대량으로 천도를 한 이후는 별칭인 양나라(梁)로 불렸다.


4 魯連見新垣衍而無言. 新垣衍曰: "吾視居此圍城之中者, 皆有求於平原君者也; 今吾觀先生之玉貌, 非有求於平原君者也, 曷爲久居此圍城之中而不去?" 魯仲連曰: "世以鮑焦爲無從頌而死者, 皆非也. 眾人不知, 則爲一身. 彼秦者, 棄禮義而上首功之國也, 權使其士, 虜使其民. 彼即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 所爲見將軍者, 欲以助趙也." 

4 노중련이(魯連) 신원연을 만나(見新垣衍而) 말이 없었다(無言).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내가(吾) 이 포위된 성안에(此圍城之中) 머무는(居) 사람을(者) 살펴보니(視), 모두(皆) 평원군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고(有求於平原君者也); 지금(今) 내가(吾) 선생의 용모를 보니(觀先生之玉貌), 평원군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非有求於平原君者也), 어찌(曷) 이 포위된 성안에(此圍城之中) 오래 머물며(爲久居而) 떠나지 않습니까(不去)?"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仲連曰): "세상에서(世) 포초가(以鮑焦) 너그럽지 못해서(爲無從頌而) 죽었다고 하는데(死者), 모두(皆) 틀렸습니다(非也). 여러 사람들이(眾人) 알지 못하면서(不知, 則) 자기 몸을 위했다고 합니다(爲一身). 저 진나라는(彼秦者), 예의를 버리고(棄禮義而) 공적을 으뜸으로 여기는 나라이고(上首功之國也), 권모술수로(權) 그 사졸을 부리고(使其士), 노예를 대하는 것으로(虜) 그 백성을 부립니다(使其民). 저들이(彼) 만약(即) 제멋대로(肆然而) 제가 되면(爲帝), 잘못을 저지르고(過而) 천하에 정치를 한다면(爲政於天下, 則) 나는(連) 동해에 뛰어들어 죽는 일이 있을 뿐(有蹈東海而死耳), 나는(吾) 차마 그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不忍爲之民也). 장군을 만난 까닭은(所爲見將軍者), 조나라를 도와주려는 것입니다(欲以助趙也)."라고 했다.

 

* 玉貌(옥모): 1. 아름다운 용모, 2. 남의 용모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

* 鮑焦(포초) : 춘추시대의 은자(隱者)이며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죽었다고 한다. 포초를 인용해서 자신이 성에 있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 上首功(상수공): 上은 尚과 통하여 숭상(崇尚),. 존중이란 뜻이다. 首功(수공)은 전공(戰功), 가장 으뜸가는 공적을 말한다.

* 即肆然(즉사연): 即(즉)은 '가령 ~이라 한다면'이란 뜻이고, 肆然(사연)은 '제멋대로 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란 뜻이다.


5 新垣衍曰: "先生助之將柰何?" 魯連曰: "吾將使梁及燕助之, 齊·楚則固助之矣." 新垣衍曰: "燕則吾請以從矣; 若乃梁者, 則吾乃梁人也, 先生惡能使梁助之?" 魯連曰: "梁未睹秦稱帝之害故耳. 使梁睹秦稱帝之害, 則必助趙矣." 

5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선생이 제나라를 돕는 것은(先生助之) 장차(將) 어찌하려는 것인가요(柰何)?"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連曰): "내가 장차(吾將) 양나라와 연나라로 하여금(使梁及燕) 돕도록 만들 것이고(助之), 제나라와 초나라는(齊·楚則) 본래(固) 돕고 있습니다(助之矣)."라고 했다.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연나라라면(燕則) 내가 청컨대(吾請) 그것으로(以) 따를 것이고(從矣); 양나라와 같은 경우라면(若乃梁者, 則) 내가 곧(吾乃) 양나라 사람인데(梁人也), 선생이(先生) 어찌(惡) 양나라가 돕도록 만들 수 있습니까(能使梁助之)?"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連曰): "양나라는(梁) 진나락 제를 칭했을 때의 해악을(秦稱帝之害) 보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未睹故耳). 양나라로 하여금(使梁) 진나라가 칭제할 때의 해악을 보도록 하면(睹秦稱帝之害, 則) 반드시(必) 조나를 도울 것입니다(助趙矣)."라고 했다. 


6 新垣衍曰: "秦稱帝之害何如?" 魯連曰: "昔者齊威王嘗爲仁義矣, 率天下諸侯而朝周. 周貧且微, 諸侯莫朝, 而齊獨朝之. 居歲餘, 周烈王崩, 齊後往, 周怒, 赴於齊曰: '天崩地坼, 天子下席. 東藩之臣因齊後至, 則斮.' 齊威王勃然怒曰: '叱嗟, 而母婢也!' 卒爲天下笑. 故生則朝周, 死則叱之, 誠不忍其求也. 彼天子固然, 其無足怪." 

6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진나락 칭제할 때의 해악이(秦稱帝之害) 어떠합니까(何如)?"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連曰): "옛날(昔者) 제 위왕이(齊威王) 일찍이(嘗) 인의를 행했고(爲仁義矣), 천하의 제후를 이끌고(率天下諸侯而) 주나라에 조회했습니다(朝周). 주나라가(周) 가난하고 또 미약해서(貧且微), 제후 중에(諸侯) 누구도 조회하지 않았지만(莫朝, 而) 제나라는(齊) 홀로 조회했습니다(獨朝之). 일 년이 지나(居歲餘), 주 열왕이 죽고(周烈王崩), 제나라가(齊) 늦게 <문상하러> 왔는데(後往), 주나라가 노하여(周怒), 제나라에 화를 내며 말하길(赴於齊曰): '하늘이 무너지고(天崩) 땅이 꺼져서(地坼), 천자가(天子) 돗자리를 깔고 자는구나(下席). 동쪽 속국 신하인(東藩之臣) 제나라가 늦게 왔으니(因齊後至, 則) 목을 베어라(斮).'라고 했습니다. 제 위왕이(齊威王) 발끈하고(勃然) 화를 내며 말하길(怒曰): '잘못을 꾸짖으며(叱嗟, 而) 어머니가 계집종이다(母婢也)!'라고 했습니다. 마침내(卒)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爲天下笑). 그러므로(故) <열왕이> 살아서는(生則) 주나라에 조회했지만(朝周), 죽어서 꾸짖었으니(死則叱之), 참으로(誠) 그 요구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不忍其求也). 저(彼) 천자는(天子) 본래 그러하니(固然),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其無足怪)."라고 했다. 

 

* 下席(하석) : (상가의 예로) 돗자리에서 자다.

* 叱嗟(질차): 잘못을 꾸짖어 나무람


7 新垣衍曰: "先生獨不見夫仆乎?十人而從一人者, 寧力不勝而智不若邪?畏之也." 魯仲連曰: "嗚呼! 梁之比於秦若仆邪?" 新垣衍曰: "然." 魯仲連曰: "吾將使秦王烹醢梁王." 新垣衍怏然不悅, 曰: "噫嘻, 亦太甚矣先生之言也! 先生又惡能使秦王烹醢梁王?" 魯仲魯曰: "固也, 吾將言之. 昔者九侯·鄂侯·文王, 紂之三公也. 九侯有子而好, 獻之於紂, 紂以爲惡, 醢九侯. 鄂侯爭之彊, 辯之疾, 故脯鄂侯. 文王聞之, 喟然而嘆, 故拘之牖里之庫百日, 欲令之死. 曷爲與人俱稱王, 卒就脯醢之地?齊湣王之魯, 夷維子爲執策而從, 謂魯人曰: '子將何以待吾君?』魯人曰: '吾將以十太牢待子之君.' 夷維子曰: '子安取禮而來[待]吾君?彼吾君者, 天子也. 天子巡狩, 諸侯辟舍, 納筦籥, 攝衽抱機, 視膳於堂下, 天子已食, 乃退而聽朝也.' 魯人投其籥, 不果納. 不得入於魯, 將之薛, 假途於鄒. 當是時, 鄒君死, 湣王欲入弔, 夷維子謂鄒之孤曰: '天子弔, 主人必將倍殯棺, 設北面於南方, 然後天子南面弔也.' 鄒之群臣曰: '必若此, 吾將伏劍而死.' 固不敢入於鄒. 鄒·魯之臣, 生則不得事養, 死則不得賻襚, 然且欲行天子之禮於鄒·魯, 鄒·魯之臣不果納. 今秦萬乘之國也, 梁亦萬乘之國也. 俱據萬乘之國, 各有稱王之名, 睹其一戰而勝, 欲從而帝之, 是使三晉之大臣不如鄒·魯之仆妾也. 且秦無已而帝, 則且變易諸侯之大臣. 彼將奪其所不肖而與其所賢, 奪其所憎而與其所愛. 彼又將使其子女讒妾爲諸侯妃姬. 處梁之宮. 梁王安得晏然而已乎?而將軍又何以得故寵乎?" 

7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선생은(先生) 단지(獨) 저 하인들을 보지 못했습니까(不見夫仆乎)? 열 사람이면서도(十人而)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이(從一人者), 어찌(寧) 힘이 이기지 못하고(力不勝而) 지혜가 모자라서이겠습니까(智不若邪)? 두려워하는 것입니다(畏之也)."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仲連曰): "아(嗚呼)! 양나라가(梁之) 진나라와 비교해서(比於秦) 하인과 같은 것입니까(若仆邪)?"라고 했다.

신원연이 말하길(新垣衍曰): "그렇습니다(然)."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仲連曰): "내가(吾) 장차(將) 진나라 왕으로 하여금(使秦王) 팽형과 해형을 하도록 만들겠습니다(烹醢梁王)."라고 했다.

신원연이(新垣衍) 못마땅하고(怏然) 불쾌하게 여기며(不悅), 말하길(曰): "아(噫嘻), 또한(亦) 너무 심하군요(太甚矣) 선생의 말이(先生之言也)! 선생이(先生) 또 어찌(又惡) 진왕을 시켜서(能使秦王) 양왕을 팽형이나 해형에 처할 수 있겠습니까(烹醢梁王)?"라고 했다.

노중련이 말하길(魯仲魯曰): "확실하게(固也), 내가 장차 말하겠습니다(吾將言之). 옛날(昔者) 구후와 악후, 문왕이(九侯·鄂侯·文王), 걸왕의 삼공이었습니다(紂之三公也). 구후에게(九侯) 딸이 있어(有子而) 예뻤으며(好), 주왕에게 바쳤는데(獻之於紂), 주왕이(紂) 못생겼다고 여기고(以爲惡), 구후를 팽형에 처했습니다(醢九侯). 악후의 간언이(鄂侯爭之) 강력했는데(彊), 말 잘하는 것을 미워했고(辯之疾), 그러므로(故) 악후를 포형에 처했습니다(脯鄂侯). 문왕이 이것을 듣고(文王聞之), 한숨을 쉬며 크게 탄식했고(喟然而嘆), 그러므로(故) 유리의 창고에(牖里之庫) 100일 동안 가두어(拘之百日), 죽이려고 했습니다(欲令之死). 어찌(曷) 다른 사람과 함께(爲與人) 모두(俱) 왕으로 일컬어지는데(稱王), 마침내(卒) 포형과 팽형을 당하는 처지에 나아가려고 합니까(就脯醢之地)?

제 민왕이(齊湣王) 노나라에 갈 때(之魯), 이유자가(夷維子爲) 채찍을 들고(執策而) 따라가며(從), 노나라 사람들에게 말하길(謂魯人曰): '그대들은(子) 장차(將) 어떻게(何以) 우리 임금을 대접할 것인가(待吾君)?'라고 하자, 노나라 사람들이 말하길(魯人曰): '우리는 장차(吾將) 십태뢰로(以十太牢) 그대의 임금을 대접할 것이다(待子之君).'라고 했다. 이유자가 말하길(夷維子曰): '그대들은(子) 어디에서(安) 예절을 취해서(取禮而) 우리 군주를 대접하려고 하는 것인가(來待吾君)? 저 우리 임금은(彼吾君者), 천자다(天子也). 천자가 순수하면(天子巡狩), 제후는 집에서 피해 주고(諸侯辟舍), 열쇠를 바치고(納筦籥), 옷깃을 잡고(攝衽) 상을 준비해서(抱機), 당 아래서 밥상을 살피고(視膳於堂下), 천자가 먹기를 마치면(天子已食), 이에(乃) 물러나서(退而) 정사를 듣는다(聽朝也).'라고 했습니다. 노나라 사람들이(魯人) 성문을 걸어 잠그고(投其籥),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不果納).

노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不得入於魯), 설나라로 가려고 했는데(將之薛), 추나라에 길을 빌렸습니다(假途於鄒). 당시에(當是時), 추나라 임금이 죽었는데(鄒君死), 민왕이(湣王) 들어가 조문하려고 하자(欲入弔), 이유자가(夷維子) 추왕의 아들에게 말하길(謂鄒之孤曰): '천자가 조문하면(天子弔), 주인은(主人) 반드시(必) 빈소의 관을 돌려서(將倍殯棺), 남방에서 북면하도록 하고 나서(設北面於南方, 然後) 천자가(天子) 남면하고 조문하도록 한다(南面弔也).'라고 했습니다. 추나라의 여러 신하가 말하길(鄒之群臣曰): '반드시(必) 그렇게 해야 한다면(若此), 우리가 장차(吾將) 칼에 엎어져 죽을 것이다(伏劍而死).'라고 했습니다. 끝내(固) 감히 추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不敢入於鄒). 추나라와 노나라의 신하가(鄒·魯之臣), 살아서는(生則) 섬기고 봉양하지 못했고(不得事養), 죽어서는(死則) 재물과 옷가지를 넉넉히 하지 못했지만(不得賻襚), 그러나 또(然且) 노나라와 추나라에서(於鄒·魯) 천자의 예를 행하려고 하자(欲行天子之禮), 노나라와 추나라의 신하들이(鄒·魯之臣)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不果納).

지금(今) 진나라는 만승지국이고(秦萬乘之國也), 양나라도 또한(梁亦) 만승지국입니다(萬乘之國也). 모두(俱) 만승지국에 의지해서(據萬乘之國), 각자(各) 왕의 이름을 일컫는 명분이 있는데(有稱王之名), 그 한 번 싸워서 이기는 것을 보고(睹其一戰而勝), 복종해서 제라고 부르려고 하니(欲從而帝之), 이것은(是) 삼진의 대신들로 하여금(使三晉之大臣) 추나라와 노나라의 하인과 첩보다(鄒·魯之仆妾) 못하게 만드는 일입니다(不如也). 또(且) 진나라에(秦) 제에서 그치려는 일이 없다면(無已而帝, 則) 또(且) 제후의 대신을 바꿀 것입니다(變易諸侯之大臣). 저들이(彼) 장차(將) 모자라다고 여기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奪其所不肖而) 현명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주고(與其所賢), 미워하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奪其所憎而) 아끼는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與其所愛). 저들이 또(彼又) 장차(將) 자기 자녀와 첩으로 하여금(使其子女讒妾) 제후의 비빈으로 만들어(爲諸侯妃姬), 양나라 궁궐에 머물게 할 것입니다(處梁之宮). 양왕이(梁王) 어찌(安)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得晏然而已乎)? 그리고(而) 장군이(將軍) 또(又) 어찌(何以) 옛날의 총애를 받겠습니까(得故寵乎)?"라고 했다. 

 

* 烹醢(팽해): 고대의 혹형으로 烹(팽)은 삶아 죽이는 것이며 醢(해)는 죽여서 젓갈을 담는 형을 말한다.

* 怏然(앙연): 흡족하지 않고 야속하거나 원망하는 데가 있다.

* 喟然而嘆(위연이탄): 한숨을 쉬며 크게 탄식함

* 十太牢(십태뢰): 제사 때, 소·양·돼지 머리 하나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일태뢰(一太牢)라고 하며 십태뢰는 제후의 예로 대접한다는 뜻이다.

* 納管龠(납관약): 열쇠를 넘겨주다. 納은 넘겨주다. 管龠(관약)은 열쇠.
* 攝衽(섭임): 옷깃을 걷어 올리다.

* 抱機(포기): 탁자를 준비하다. 機는 幾와 통하여 작은 상.

* 視膳(시선): 밥상을 돌보다, 음식의 맛을 살피다. 膳은 식사.

* 倍殯棺(배빈관): 빈소의 관을 등지다. 倍는 背와 통한다.

* 仆妾(복첩): 남자 종과 여자 종.


8 於是新垣衍起, 再拜謝曰: "始以先生爲庸人, 吾乃今日知先生爲天下之士也. 吾請出, 不敢復言帝秦." 秦將聞之, 爲卻軍五十里. 適會魏公子無忌奪晉鄙軍以救趙, 擊秦軍, 秦軍遂引而去. 

8 이에(於是) 신원연이 일어나(新垣衍起), 재배하고(再拜) 사과하며 말하길(謝曰): "처음(始) 선생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以先生爲庸人), 내가(吾) 곧(乃) 오늘(今日) 선생이 천하의 선비임을 알았습니다(知先生爲天下之士也). 내가 청컨대(吾請) 나가서는(出), 감히 다시 진나라를 제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不敢復言帝秦)."라고 했다.

진나라 장수가 이것을 듣고(秦將聞之), 군을 50리 물러나게 했다(爲卻軍五十里). 마침(適) 위공자 무기가(魏公子無忌)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奪晉鄙軍以) 조나라를 구원해서(救趙), 진나라 군대를 습격하고(擊秦軍), 진나라 군대가(秦軍) 마침내(遂) 이끌고 물러갔다(引而去). 


9 於是平原君欲封魯連, 魯連辭讓(使)者三, 終不肯受. 平原君乃置酒, 酒酣起前, 以千金爲魯連壽. 魯連笑曰: "所貴於天下之士者, 爲人排患釋難解紛亂而無取也. 即有取者, 是商賈之事也, 而連不忍爲也." 遂辭平原君而去, 終身不復見. 

9 이에(於是) 평원군이(平原君) 노중련을 봉하려고 했는데(欲封魯連), 노중련이(魯連) 사양한 것이 세 번이고(辭讓(使)者三), 끝내(終) 기꺼이 받으려 하지 않았다(不肯受). 평원군이(平原君) 이에(乃) 술자리를 마련하고(置酒), 술이 돌자(酒酣) 일어나 앞으로 가서(起前), 천금으로(以千金) 노중련의 장수를 빌었다(爲魯連壽).

노중련이 웃으며 말하길(魯連笑曰): "이른바(所貴) 천하에서 선비란(於天下之士者), 남을 위해(爲人) 근심을 없애고(排患) 어려움을 풀고(釋難) 분란을 해결하지만(解紛亂而) 얻는 것이 없습니다(無取也). 곧(即) 취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有取者), 이것은(是) 장사꾼의 일이고(商賈之事也, 而) 저는(連) 차마 할 수 없습니다(不忍爲也)."라고 했다.

마침내(遂) 평원군에게 인사하고(辭平原君而) 떠나서(去), 끝내(終身) 다시 보지 않았다(不復見). 


10 其後二十餘年, 燕將攻下聊城, 聊城人或讒之燕, 燕將懼誅, 因保守聊城, 不敢歸. 齊田單攻聊城歲餘, 士卒多死而聊城不下. 魯連乃爲書, 約之矢以射城中, 遺燕將. 《書》曰:

10 그 뒤(其後) 20여 년이 지나서(二十餘年), 연나라 장수가(燕將) 요성을 공격해서 함락시켰는데(攻下聊城), 요성 사람 중에(聊城人) 누군가(或) 연나라에 참소하니(讒之燕), 연나라 장수가(燕將) 죽임 당할까 두려워(懼誅), 이에(因) 요성을 지키고(保守聊城), 감히 돌아가지 못했다(不敢歸). 제나라 전단이(齊田單) 요성을 공격한 것이(攻聊城) 1년 여가 되어(歲餘), 사졸이 많이 죽었지만(士卒多死而) 요성이 함락되지 않았다(聊城不下). 노중련이(魯連) 이에(乃) 편지를 써서(爲書), 그것을 화살에 묶어(約之矢以) 성 안으로 쏘아(射城中), 연나라 장수에게 보냈다(遺燕將). 편지에서 말하길(《書》曰):


11 吾聞之, 智者不倍時而棄利, 勇士不死而滅名, 忠臣不先身而後君. 今公行一朝之忿, 不顧燕王之無臣, 非忠也; 殺身亡聊城, 而威不信於齊, 非勇也; 功敗名滅, 後世無稱焉, 非智也. 三者世主不臣, 說士不載, 故智者不再計, 勇士不怯死. 今死生榮辱, 貴賤尊卑, 此時不再至, 願公詳計而無與俗同. 

11 내가 듣기로(吾聞之), 지혜로운 사람은(智者) 좋은  때를 등져서(不倍時而) 이익을 버리지 않고(棄利), 용감한 사람은(勇士) 죽음을 겁내 명성을 없애지 않고(不死而滅名), 충신은(忠臣) 몸을 앞세우고 임금을 뒤로하지 않는다(不先身而後君)고 했습니다. 지금(今) 공이(公) 하루아침의 분노를 행해서(行一朝之忿), 연왕에게 <좋은> 신하가 없음을(燕王之無臣) 돌아보자 않는 것은(不顧), 충성이 아니고(非忠也); 몸을 잃고(殺身) 요성을 잃는다면(亡聊城, 而) 위엄이(威) 제나라에서 펼쳐지지 않으니(不信於齊), 용맹이 아니고(非勇也); 공이 없어지고(功敗) 명성이 없어지면(名滅), 후세에(後世) 칭송이 없을 것이니(無稱焉), 지혜로움이 아니다(非智也). 세 가지 행동은(三者) 세상의 군주가(世主) 신하로 삼지 않고(不臣), 유세하는 선비가(說士) 입에 올리지 않고(不載), 그러므로(故) 지혜로운 사람은(智者) 두 번 생각하지 않고(不再計), 용감한 사람은(勇士)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不怯死). 지금(今) 삶과 죽음(死生), 영광과 치욕(榮辱), 귀천과 존비는(貴賤尊卑), 이때가(此時) 다시 이르지 않을 것이니(不再至), 원컨대(願) 공께서 잘 생각해서(公詳計而) 세속과 같아짐이 없기를 바란다(無與俗同). 

 

* 威不信於齊(위불신어제): 제나라에 위엄을 떨치지 못하다. 信(신)은 伸과 통하여 펼치다.

* 再計(재계): 망설이다. 주저하다.


12 且楚攻齊之南陽, 魏攻平陸, 而齊無南面之心, 以爲亡南陽之害小, 不如得濟北之利大, 故定計審處之. 今秦人下兵, 魏不敢東面; 衡秦之勢成, 楚國之形危; 齊棄南陽, 斷右壤, 定濟北, 計猶且爲之也. 且夫齊之必決於聊城, 公勿再計. 今楚魏交退於齊, 而燕救不至. 以全齊之兵, 無天下之規, 與聊城共據期年之敝, 則臣見公之不能得也. 且燕國大亂, 君臣失計, 上下迷惑, 栗腹以十萬之眾五折於外, 以萬乘之國被圍於趙, 壤削主困, 爲天下僇笑. 國敝而禍多, 民無所歸心. 今公又以敝聊之民距全齊之兵, 是墨翟之守也. 食人炊骨, 士無反外之心, 是孫臏之兵也. 能見於天下. 雖然, 爲公計者, 不如全車甲以報於燕. 車甲全而歸燕, 燕王必喜; 身全而歸於國, 士民如見父母, 交游攘臂而議於世, 功業可明. 上輔孤主以制群臣, 下養百姓以資說士, 矯國更俗, 功名可立也. 亡意亦捐燕棄世, 東游於齊乎?裂地定封, 富比乎陶·衛, 世世稱孤, 與齊久存, 又一計也. 此兩計者, 顯名厚實也, 願公詳計而審處一焉. 

12 또(且) 초나라가(楚) 제나라의 남양을 치고(攻齊之南陽), 위나라가 평륙을 치고(魏攻平陸, 而) 제나라에(齊) 남쪽으로 가려는 마음이 없으니(無南面之心), 남양을 잃는 해가 작고(亡南陽之害小), 제수 북쪽을 얻는 이익이 큰 것보다(得濟北之利大) 못하다고(不如) 여기고(以爲), 그러므로(故) 계책을 정하고(定計) 살펴 대처하는 것이다(審處之). 지금(今) 진나라가 병사를 내려보내면(秦人下兵), 위나라가(魏) 감히 동쪽을 바라보지 못하고(不敢東面); 진나라와의 형세가 균형을 이루면(衡秦之勢成), 초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지고(楚國之形危); 제나라가(齊) 남양을 버리고(棄南陽), 오른쪽 땅을 잘라(평륙을 단념하고)(斷右壤), 제수 북쪽을 평정하는 것은(定濟北), 계책이(計) 오히려(猶) 또한(且) 되는 것이다(爲之也). 또(且) 무릇 제나라는(夫齊之) 반드시(必) 요성에서 결론을 낼 것이니(決於聊城), 공은 다시 생각하지 마시오(公勿再計). 지금(今) 초나라와 위나라가(楚魏) 제나라에서 교대로 물러가고(交退於齊, 而) 연나라의 구원병이(燕救) 오지 않습니다(不至). 모든 제나라의 군대로(以全齊之兵), 천하의 제약도 없이(無天下之規), 요성과 더불어(與聊城) 함께 의지한 1년의 피폐함이면(共據期年之敝, 則) 신이 보건대(臣見) 공이 얻을 수 없습니다(公之不能得也). 또(且) 연나라가 크게 혼란스럽고(燕國大亂), 군신이 계책을 잘못 세우고(君臣失計), 상하가 미혹되어(上下迷惑), 율복이(栗腹) 10만의 군사로(以十萬之眾) 바깥에서 다섯 번이나 꺾였고(五折於外), 만승지국으로도(以萬乘之國) 조나라에 포위 다해서(被圍於趙), 땅이 깎이고(壤削) 군주가 곤란을 겪고(主困),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爲天下僇笑). 나라가 황폐해지고(國敝而) 재앙이 많아서(禍多), 백성에게(民) 마음을 둘 곳이 없습니다(無所歸心). 지금(今) 공이 또(公又)) 요성의 백성으로(以敝聊之民) 모든 제나라의 군대에 맞서는 것은(距全齊之兵), 이것은(是) 묵적의 지킴입니다(墨翟之守也). 사람을 먹고(食人) 뼈를 때면서(炊骨), 병사들에게(士) 반기를 들 마음이 없으니(無反外之心), 이것은(是) 손빈의 병법입니다(孫臏之兵也). 능력은(能) 천하에 드러났습니다(見於天下).

비록 그렇지만(雖然), 공을 위해 생각해 보면(爲公計者), 전차와 군사를 보전하여(全車甲以) 연나라에 보답하는 것만(報於燕) 못합니다(不如). 전차와 군사를 보전해서(車甲全而) 연나라로 돌아가면(歸燕), 연왕이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燕王必喜); 몸을 보전하여(身全而) 나라에 돌아가면(歸於國), 사민이(士民) 부모를 본 것처럼 할 것이니(如見父母), 친구들은(交游) 소매를 걷어 올리고(攘臂而) 세상에서 의논하여(議於世), 공적을 밝힐 것입니다(功業可明). 위로는(上) 외로운 군주를 도와서(輔孤主以) 여러 신하를 통제하고(制群臣), 아래로는(下) 백성을 봉양해서(養百姓以) 유세가에게 제공하고(資說士), 나라를 바로잡고(矯國) 풍속을 고쳐서(更俗), 공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功名可立也). <이럴> 뜻이 없다면(亡意) 또한(亦) 연나라를 버리고(捐燕) 세상을 버리고(棄世), 동으로(東) 제나라에서 노니는 것은 어떤가요(游於齊乎)? 땅을 떼어(裂地) 봉지를 정해주고(定封), 부유함은(富) 도공이나 위공에 비할 것이고(比乎陶·衛), 대대로(世世) 고라고 일컬으며(稱孤), 제나라와(與齊) 오랫동안 보존할 것이니(久存), 또한(又) 한 가지 방법입니다(一計也). 이(此) 두 가지 계책은(兩計者), 이름을 드러내고(顯名) 실리를 두터이 하는 것이니(厚實也), 원컨대(願) 공은(公) 깊이 생각하고(詳計而) 한 가지를 살펴 처신하길 바랍니다(審處一焉). 

 

* 墨翟之守(묵적지수):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 묵적은 목수 출신으로 기계를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묵자가 공수반을 만나 초나라와 송나라의 가상의 전쟁을 하는데 공수반이 성을 공격하는 방법을 아홉 번이나 바꾸면서 기계로 공격하였으나 묵자가 모두 이를 막아냈다.

* 攘臂(양비): 소매를 걷어올림


13 且吾聞之, 規小睗者不能成榮名, 惡小恥者不能立大功. 昔者管夷吾射桓公中其鉤, 篡也; 遺公子糾不能死, 怯也; 束縛桎梏, 辱也. 若此三行者, 世主不臣而鄉里不通. 鄉使管子幽囚而不出, 身死而不反於齊, 則亦名不免爲辱人賤行矣. 臧獲且羞與之同名矣, 況世俗乎! 笔管子不恥身在縲紲之中而恥天下之不治, 不恥不死公子糾而恥威之不信於諸侯, 故兼三行之過而爲五霸首, 名高天下而光燭鄰國. 曹子爲魯將, 三戰三北, 而亡地五百里. 鄉使曹子計不反顧, 議不還踵, 刎頸而死, 則亦名不免爲敗軍禽將矣. 曹子棄三北之恥, 而退與魯君計. 桓公朝天下, 會諸侯, 曹子以一劍之任, 枝桓公之心於壇坫之上, 顏色不變, 辭氣不悖, 三戰之所亡一朝而復之, 天下震動, 諸侯驚駭, 威加吳·越. 若此二士者, 非不能成小廉而行小睗也, 以爲殺身亡軀, 絕世滅後, 功名不立, 非智也. 故去感忿之怨, 立終身之名; 棄忿悁之節, 定累世之功. 是以業與三王爭流, 而名與天壤相獘也. 願公擇一而行之. 

13 또 내가 듣기로(且吾聞之), 사소한 일에 얽매이는 사람은(規小睗者)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不能成榮名), 작은 치욕을 싫어하는 사람은(惡小恥者)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不能立大功) 합니다. 옛날(昔者) 관이오가(管夷吾) 환공을 쏘아(射桓公) 그 쇠고리를 맞힌 것은(中其鉤), 반역이고(篡也); 공자 규를 버리고(遺公子糾) 죽지 않은 것은(不能死), 비겁한 짓이고(怯也); 묶여서(束縛) 쇠고랑을 찬 것은(桎梏), 치욕입니다(辱也). 만약(若) 이 셋 가지 행동을 저지르 사람이라면(此三行者), 세상 군주가(世主) 신하로 삼지 않고(不臣而) 마을에서도(鄉里)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不通). 만약(鄉) 관중으로 하여금(使管子) 죄수가 되어(幽囚而) 나가지 못하거나(不出), 죽어서(身死而) 제나라에 돌아가지 못했다면(不反於齊, 則) 또한(亦) 명성은(名)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고(爲辱人) 천박하게 행동했다는 것을(賤行)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不免)矣. 노비라도 또한(臧獲且) 그와 같은 명성을 가지는 것을(與之同名矣) 부끄럽게 여겼을 것이니(羞), 하물며(況) 세상 사람들은 어떻겠는가(世俗乎)! 그러므로(笔) 관자는(管子) 몸이 감옥에 있는 것을(身在縲紲之中)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不恥而)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恥天下之不治), 공자 규를 위해 죽지 않은 것을(不死公子糾) 부끄러워하지 않고(不恥而) <제나라의> 위엄이(威之) 제후들에게 펼쳐지지 않는 거승ㄹ(不信於諸侯) 부끄러워했고(恥), 그러므로(故) 세 가지 잘못을 하고도(兼三行之過而) 오패의 우두머리로 만들고(爲五霸首), 명성이(名) 천하에 높아지고(高天下而) 빛이(光) 이웃나라에 비쳤습니다(燭鄰國).

조자가(曹子) 노나라의 장수가 되어(爲魯將), 세 번 싸워서(三戰) 세 번 지고(三北, 而) 땅 500리를 잃었습니다(亡地五百里). 만약(鄉) 조자로 하여금(使曹子) 계책이(計) 뒤를 돌아보지 않고(不反顧), 의논하여(議) 발꿈치를 돌리지 않고(不還踵), 목을 베고(刎頸而) 죽었다면(死, 則) 또한(亦) 명성은(名) 패배한 군대의 잡힌 장수라는 것을(爲敗軍禽將)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不免矣). 조자가(曹子) 세 번이나 진 치욕을 버리고(棄三北之恥, 而) 물러나(退) 노나라 임금과 계획을 세웠습니다(與魯君計). 환공이(桓公) 천하를 조회하며(朝天下), 제후를 모으자(會諸侯), 조자가(曹子) 한 자루 칼에 맡기고(以一劍之任), 단상 위에서(於壇坫之上) 환공의 심장을 겨누었는데(枝桓公之心), 안색이 변하지 않고(顏色不變), 목소리가 어그러지지 않아(辭氣不悖), 세 번 싸움에서 잃은 것을(三戰之所亡) 하루아침에(一朝而) 돌려받았으니(復之), 천하가 뒤흔들리고(天下震動), 제후가 놀라고(諸侯驚駭), 위엄이(威) 오나라와 월나라까지 미쳤습니다(加吳·越).

이 두 사람과(此二士者) 같은 것은(若) , 작은 청렴과 절개를(小廉而行小睗)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非不能成也), 자신이 죽고 후손이 없어지는 것으로(以爲殺身亡軀, 絕世滅後), 공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功名不立), 지혜가 아니라고 여긴 것이빈다(非智也). 그러므로(故) 분한 원한을 버리고(去感忿之怨), 종신의 명성을 세웠고(立終身之名); 분한 절개를 버리고(棄忿悁之節), 대대손손 공을 세웠습니다(定累世之功). 이 때문에(是以) 공적은(業) 삼왕과 더불어(與三王) 다툴 수 있고(爭流, 而) 명성은(名) 천지와 더불어(與天壤) 서로 무너질 것입니다(영원할 것입니다)(相獘也). 원컨대(願) 공이 하나를 택하여(公擇一而) 행하기를 바랍니다(行之). 

 

* 規小睗(규소석): 사소한 일을 도모하다. 睗(석)은 번갯불. 소석(小睗)은 소절(小節). 사소한 일.

* 臧獲(장획):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대대로  집에서 천한 일을 하던 사람.

* 還踵(선종): 발꿈치를 돌리다. 還은 돌 ‘선’.

* 天壤(천양): 하늘과 땅.


14 燕將見魯連書, 泣三日, 猶豫不能自決. 欲歸燕, 已有隙, 恐誅; 欲降齊, 所殺虜於齊甚眾, 恐已降而後見辱. 喟然嘆曰: "與人刃我, 寧自刃." 乃自殺. 聊城亂, 田單遂屠聊城. 歸而言魯連, 欲爵之. 魯連逃隱於海上, 曰: "吾與富貴而詘於人, 寧貧賤而輕世肆志焉." 

14 연나라 장수가(燕將) 노중련의 편지를 보고(見魯連書), 삼 일을 울며(泣三日), 오히려(猶) 망설이며(豫)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不能自決). 연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欲歸燕), 이미(已) 틈이 있어서(有隙),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고(恐誅); 제나라에 항복하려고 했지만(欲降齊), 제나라에서 포로를 죽인 것이(所殺虜於齊) 매우 많아(甚眾), 항복하고서(已降而後) 치욕을 당할까(見辱) 두려웠다(恐).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하길(喟然嘆曰): "남이 나를 베도록 하느니(與人刃我), 차라리 스스로 베겠다(寧自刃)."라고 했다.

이에(乃) 자살했다(自殺). 요성이 혼란스럽자(聊城亂), 전단이(田單) 마침내(遂) 요성의 <백성을> 모두 죽였다(屠聊城). 돌아와(歸而) 노중련에게 말하며(言魯連), 그에게 작위를 주려고 했다(欲爵之).

노중련이(魯連) 도망가(逃) 바닷가에 숨으며(隱於海上), 말하길(曰): "내가(吾) 부귀하며(與富貴而) 남에게 굽히는 것보다(詘於人), 차라리(寧) 가난하고 천하며(貧賤而) 세상을 가벼이 보고(輕世) 내 뜻대로 하겠다(肆志焉)."라고 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