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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4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1/2] 거세개탁 중취독성(擧世皆濁 衆醉獨醒) /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는 사람

by प्रज्ञा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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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屈原者, 名平, 楚之同姓也. 爲楚懷王左徒. 博聞彊志, 明於治亂, 嫻于辭令. 入則與王圖議國事, 以出號令; 出則接遇賓客, 應對諸侯. 王甚任之. 

1 굴원은(屈原者), 이름이 평이고(名平), 초나라와 같은 성이다(楚之同姓也). 초나라 회왕의 좌도가 되었다(爲楚懷王左徒). 널리 듣고(博聞) 잘 기억했고(彊志), 혼란을 다스리는 것에 밝고(明於治亂), 글 쓰는 것을 잘했다(嫻于辭令). 들어가면(入則) 왕과 나랏일을 의논하여(與王圖議國事, 以) 명령을 내리고(出號令); 나가면(出則) 빈객을 접대하고(接遇賓客), 제후를 응대하여(應對諸侯). 왕이(王) 그를 매우 신임했다(甚任之). 

 

* 辭令(사령): 남을 맞아 접대할  쓰는 형식적인 말.

* 號令(호령): 부하나 동물 따위를 지휘하여 명령함.


2 上官大夫與之同列, 爭寵而心害其能. 懷王使屈原造爲憲令, 屈平屬草槁未定. 上官大夫見而欲奪之, 屈平不與, 因讒之曰: "王使屈平爲令, 眾莫不知, 每一令出, 平伐其功, (曰)以爲『非我莫能爲』也." 王怒而疏屈平. 

2 상관대부와 굴원이(上官大夫與之) 같은 지위였는데(同列), 총애를 다투다(爭寵而) 마음으로(心) 그 능력을 시기했다(害其能). 회왕이(懷王) 굴원으로 하여금(使屈原) 나라의 법을 만들도록 했는데(造爲憲令), 굴원이(屈平) 마침(屬) 초고가 정해지지 않았다(草槁未定). 상관대부가 보고(上官大夫見而) 그것을 뺐으려고 했는데(欲奪之),

굴원이 주지 않자(屈平不與), 이에(因) 그를 모함하기를(讒之曰): "왕께서(王) 굴원으로 하여금(使屈平) 법령을 만들도록 했는데(爲令), 무리 중에(眾) 누구도(莫)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데(不知), 매번(每) 법령 하나가 나올 때마다(一令出), 굴원이(平) 자기 공을 자랑하고(伐其功), '내가 아니면(非我) 누구도 할 수 없다(莫能爲)'라고 말합니다((曰)以爲也)."라고 했다.

왕이 노하여(王怒而) 굴원을 멀리했다(疏屈平). 

 

* 憲令(헌령): 나라의 법


니이불재(泥而不滓) / 진흙 속에서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3 屈平疾王聽之不聰也, 讒諂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 方正之不容也, 故憂愁幽思而作離騷. 離騷者, 猶離憂也. 夫天者, 人之始也; 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 疾痛慘怛, 未嘗不呼父母也. 屈平正道直行, 竭忠盡智以事其君, 讒人閒之, 可謂窮矣. 信而見疑, 忠而被謗, 能無怨乎? 屈平之作離騷, 蓋自怨生也. 國風好色而不淫, 小雅怨誹而不亂. 若離騷者, 可謂兼之矣. 上稱帝嚳, 下道齊桓, 中述湯武, 以刺世事. 明道德之廣崇, 治亂之條貫, 靡不畢見. 其文約, 其辭微, 其志絜, 其行廉, 其稱文小而其指極大, 舉類邇而見義遠. 其志絜, 故其稱物芳. 其行廉, 故死而不容自疏. 濯淖汙泥之中, 蟬蛻於濁穢, 以浮游塵埃之外, 不獲世之滋垢, 皭然泥而不滓者也. 推此志也, 雖與日月爭光可也. 

3 굴원은(屈平) 왕이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밝지 못하고(王聽之不聰也), 참소와 아첨이 밝음을 가리고(讒諂之蔽明也), 간사하고 비뚤어진 것이 공정을 가리고(邪曲之害公也), 곧고 바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方正之不容也) 걱정했고(疾), 그러므로(故) 시름에 사여(憂愁) 깊이 생각하고(幽思而) 이소를 지었다(作離騷). 이소는(離騷者), 걱정스러운 일을 만나다와 같다(猶離憂也). 하늘은(夫天者), 사람의 시작이고(人之始也); 부모는(父母者), 사람의 근본이다(人之本也). 사람이 다하면(人窮則) 근본으로 돌아가고(反本), 그러므로(故) 힘들고 곤궁하면(勞苦倦極), 하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고(未嘗不呼天也); 아프고(疾痛) 참담하면(慘怛), 부모를 찾지 않는 사람이 없다(未嘗不呼父母也). 굴원은(屈平) 바른 길을 걷도(正道) 바르게 행동하며(直行), 충성을 다하고(竭忠) 지혜를 다해서(盡智以) 그 임금을 섬겼는데(事其君), 헐뜯는 사람들이(讒人) 그것을 갈라(閒之), 곤궁해졌다고 할 수 있다(可謂窮矣). 신의를 지켰지만(信而) 의심을 받고(見疑), 충성했지만(忠而) 비방을 받아(被謗), 원한이 없을 수 있겠는가(能無怨乎)? 굴원이(屈平之) 이소를 지은 것은(作離騷), 대체로(蓋) 원망으로부터(自怨) 생겨난 것이다(生也). 국풍이(國風) 색을 좋아하지만(好色而) 음란하지 않고(不淫), 소아가(小雅) 원망하고 비방했지만(怨誹而) 문란하지 않다(不亂). 이소와 같은 것은(若離騷者), 겸했다고 말할 수 있다(可謂兼之矣). 위로는(上) 제곡을 칭송하고(稱帝嚳), 아래로는(下) 제 환공을 말하고(道齊桓), 중간에는(中) 탕왕과 무왕을 서술해서(述湯武, 以) 세상의 일을 풍자했다(刺世事). 도덕의 넓은 숭고함과(道德之廣崇), 난을 다스리는 조리를(治亂之條貫) 밝혀서(明), 모두 드러내지 않은 것이 없다(靡不畢見). 그 글이 간결하고(其文約), 그 말이 은미하고(其辭微), 그 뜻이 깨끗하고(其志絜), 그 행실이 청렴햐니(其行廉), 그 글에서 일컬은 것은(其稱文) 작지만(小而) 그 뜻은(其指) 매우 크고(極大), 들은 비유는(舉類) 가깝지만(邇而) 보이는 뜻은(見義) 심원했다(遠). 그 뜻이 깨끗하고(其志絜), 그러므로(故) 그 사물을 일컬은 것이(其稱物) 향기롭다(芳). 그 행동이 청렴하고(其行廉), 그러므로(故) 죽어서도(死而) 스스로 밝힌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不容自疏). 진흙 구덩이에서(汙泥之中) 더러움을 씻는 것이(濯淖), 매미가(蟬) 더러운 가운데서 허물을 벗는 듯하고(蛻於濁穢, 以) 티끌과 먼지 바깥에서 떠돌다가(浮游塵埃之外), 세상의 더러움에 붙잡히지 않고(不獲世之滋垢), 깨끗하게(皭然) 진흙 속에서(泥而) 더러워지지 않았다(不滓者也). 이 뜻을 미루어(推此志也), 비록(雖) 해와 달과 더불어(與日月) 빛을 다툴만하다(爭光可也). 

 

* 讒諂(참첨): 참소하고 아첨함.

* 憂愁(우수): 마음이나 분위기가 시름에 싸인 상태

* 疾痛(질통): 병으로 인한 아픔

* 慘怛(참달):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 條貫(조관): 조리(條理). 사회생활의 도리.

* 自疏(자소): 스스로 해명함.

* 蟬蛻(선세): 매미의 허물.

* 濁穢(탁예): 더럽고 흐리다.

* 皭然(작연): 결백한 모습.


4 屈平既絀, 其後秦欲伐齊, 齊與楚從親, 惠王患之, 乃令張儀詳去秦, 厚幣委質事楚, 曰: "秦甚憎齊, 齊與楚從親, 楚誠能絕齊, 秦願獻商、於之地六百里." 楚懷王貪而信張儀, 遂絕齊, 使使如秦受地. 張儀詐之曰: "儀與王約六里, 不聞六百里." 楚使怒去, 歸告懷王. 懷王怒, 大興師伐秦. 秦發兵擊之, 大破楚師於丹、淅, 斬首八萬, 虜楚將屈丐, 遂取楚之漢中地. 懷王乃悉發國中兵以深入擊秦, 戰於藍田. 魏聞之, 襲楚至鄧. 楚兵懼, 自秦歸. 而齊竟怒不救楚, 楚大困. 

4 굴원이 쫓겨나고(屈平既絀), 그 뒤(其後)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고 했고(秦欲伐齊), 제나라와 초나라가(齊與楚) 합종하고 있어기에(從親), 혜왕이 걱정해서(惠王患之), 이에(乃) 장의로 하여금(令張儀) 거짓으로 진나라에 가서(詳去秦), 두터운 예물로(厚幣委質) 초나라를 섬기며 말하길(事楚, 曰):

"진나라가(秦) 제나라를 많이 미워하는데(甚憎齊), 제나라와 초나라가(齊與楚) 합종하고 있으므로(從親), 초나라가(楚) 참으로(誠) 젠나라와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면(能絕齊), 진나라가(秦) 상과 오의 땅 600리를 바치기를 원합니다(願獻商、於之地六百里)."라고 했다.

초 회왕이(楚懷王) 욕심이 나서(貪而) 장의를 믿고(信張儀), 마침내(遂) 제나라와 관계를 끊고(絕齊), 사신으로 하여금(使使) 진나라에 가서(如秦) 땅을 받도록 했다(受地).

장의가(張儀) 그를 속이며 말하길(詐之曰): "장의와 초왕이(儀與王) 6리를 약속했고(約六里), 600리란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不聞六百里)."라고 했다.

초나라 사자가(楚使) 화나가 나서 떠났고(怒去), 돌아가(歸) 회왕에게 보고했다(告懷王). 회왕이 노하여(懷王怒), 크게 군대를 일으켜(大興師) 진나라를 쳤다(伐秦). 진나라가(秦) 군대를 일으켜(發兵) 공격했는데(擊之), 단과 석에서(於丹、淅)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大破楚師), 8만 명의 머리를 베고(斬首八萬), 초나라 장수 굴개를 사로잡았으며(虜楚將屈丐), 마침내(遂) 초나라의 한중 땅을 빼앗았다(取楚之漢中地). 회왕이 이에(懷王乃) 나라 안의 병사를 모두 동원해서(悉發國中兵以) 깊숙이 들어가 진나라를 공격하고(深入擊秦), 남전에서 싸웠다(戰於藍田). 위나라가 이것을 듣고(魏聞之), 초나라를 습격해서(襲楚) 등에 이르렀다(至鄧). 초나라 병사들이 두려워하며(楚兵懼), 진나라에서 돌아왔지만(自秦歸, 而) 제나라가(齊) 노하여(竟怒) 초나라를 구하지 않자(不救楚), 초나라가 크게 곤란해졌다(楚大困). 

 

* 委質(위질): 고대 신하가 군주에게 헌신의 표시로 바치는 예물. 質은 贄(폐백 ‘지’)와 통한다.


5 明年, 秦割漢中地與楚以和. 楚王曰: "不願得地, 願得張儀而甘心焉." 張儀聞, 乃曰: "以一儀而當漢中地, 臣請往如楚." 如楚, 又因厚幣用事者臣靳尚, 而設詭辯於懷王之寵姬鄭袖. 懷王竟聽鄭袖, 復釋去張儀. 是時屈平既疏, 不復在位, 使於齊, 顧反, 諫懷王曰: "何不殺張儀?" 懷王悔, 追張儀不及. 

5 이듬해에(明年), 진나라가(秦) 한중 땅을 떼어(割漢中地) 초나라에 주면서(與楚以) 화해했다(和).

초왕이 말하길(楚王曰): "땅을 얻기를 원하지 않고(不願得地), 장의를 얻어(得張儀而) 마음이 편해지를(甘心焉) 바란다(願)."라고 했다.

장의가 듣고(張儀聞), 이에 말하길(乃曰): "나 한 사람으로(以一儀而) 한중 땅을 감당할 수 있다면(當漢中地), 신이 청컨대(臣請) 초나라에 갈 것입니다(往如楚)."라고 했다.

초나라에 가서(如楚), 또(又) 권력을 장악한 신하 근상에게(用事者臣靳尚) 후한 예물을 이용해서(因厚幣, 而) 회왕의 애첩 청수에게(於懷王之寵姬鄭袖) 궤변을 늘어놓게 했다(設詭辯). 회왕이(懷王) 마침내(竟) 정곡의 말을 들어주어(聽鄭袖), 다시(復) 풀어주고(釋) 장의를 보냈다(去張儀).

이때(是時) 굴원은 쫓겨난 뒤로(屈平既疏), 다시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不復在位),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使於齊), 돌아와(顧反), 회왕에게 조언하며 말하길(諫懷王曰): "어찌(何) 장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不殺張儀)?"라고 했다.

회왕이 후회하고(懷王悔), 장의를 쫓았지만(追張儀) 미치지 못했다(不及). 

 

* 用事者(용사자) : 권력을 장악한 사람.


6 其後諸侯共擊楚, 大破之, 殺其將唐眛. 

6 그뒤(其後) 제후들이(諸侯) 함께 초나라를 공격해서(共擊楚), 크게 무찌르고(大破之), 그 장수 당말을 죽였다(殺其將唐眛). 


7 時秦昭王與楚婚, 欲與懷王會. 懷王欲行, 屈平曰: "秦虎狼之國, 不可信, 不如毋行." 懷王稚子子蘭勸王行: "柰何絕秦歡!" 懷王卒行. 入武關, 秦伏兵絕其後, 因留懷王, 以求割地. 懷王怒, 不聽. 亡走趙, 趙不內. 復之秦, 竟死於秦而歸葬. 

7 이때(時) 진 소왕이(秦昭王) 초왕과(與楚) 혼인을 맺으려고(婚), 화왕과 만나려고 했다(欲與懷王會).

회왕이 가려고 하자(懷王欲行), 굴원이 말하길(屈平曰): "진나라는(秦) 호랑이나 이리 같은 나라이고(虎狼之國), 믿을 수 없으니(不可信), 가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不如毋行)."라고 했다.

회왕의(懷王) 어린 아들(稚子) 자려가(子蘭) 회왕이 가도록 권했고(勸王行): "어찌(柰何) 진나라의 환대를 거절하려고 합니까(絕秦歡)!"라고 했다.

회왕이 마침내 떠났다(懷王卒行). 무관에 들어서자(入武關), 진나라가(秦) 병사를 매복하고(伏兵) 뒤를 끊어(絕其後), 이에(因) 회왕을 잡아두고(留懷王, 以)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求割地). 회왕이 노하여(懷王怒), 들어주지 않았다(不聽). 도망쳐(亡) 조나라에 갔지만(走趙), 조나라가 들여보내지 않았다(趙不內). 다시 진나라에 가서(復之秦), 끝내(竟) 진나라에서 죽어서(死於秦而) 돌아와 장사 지냈다(歸葬).


8 長子頃襄王立, 以其弟子蘭爲令尹. 楚人既咎子蘭以勸懷王入秦而不反也. 

8 맏아들(長子) 경양왕이 즉위하고(頃襄王立, 以) 그 동생 자란이(其弟子蘭) 영윤이 되었다(爲令尹). 초나라 사람들이(楚人) 자란이(既子蘭) 회왕이 진나라로 가도록 권하고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以勸懷王入秦而不反) 질책했다(也). 


정설불식(井泄不食)

9 屈平既嫉之, 雖放流, 睠顧楚國, 系心懷王, 不忘欲反, 冀幸君之一悟, 俗之一改也. 其存君興國而欲反覆之, 一篇之中三致志焉. 然終無可柰何, 故不可以反, 卒以此見懷王之終不悟也. 人君無愚智賢不肖, 莫不欲求忠以自爲, 舉賢以自佐, 然亡國破家相隨屬, 而聖君治國累世而不見者, 其所謂忠者不忠, 而所謂賢者不賢也. 懷王以不知忠臣之分, 故內惑於鄭袖, 外欺於張儀, 疏屈平而信上官大夫、令尹子蘭. 兵挫地削, 亡其六郡, 身客死於秦, 爲天下笑. 此不知人之禍也. 《易》曰: "井泄不食, 爲我心惻, 可以汲. 王明, 并受其福." 王之不明, 豈足福哉! 

9 굴원이(屈平) 이미 그것을 미워했고(既嫉之), 비록 귀양을 갔지만(雖放流), 초나라를 그리워하고(睠顧楚國), 회왕에게 마음을 두어(系心懷王), 잊지 못하고 돌아가려고 했고(不忘欲反), 다행히(幸) 임금이 한 번 깨닫고(君之一悟), 세상이 한 번 바뀌기를(俗之一改) 바랐다(也). 그(其) 임금을 보존하고(存君) 나라를 흥하게 하여(興國而) 되돌려 일으키려고(欲反覆之), <이소> 한 편 가운데(一篇之中) 세 번이나 뜻을 전했다(三致志焉). 그러나(然) 끝내(終)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無可柰何), 그러므로(故) 돌아가지 못하고(不可以反), 결국(卒) 이것으로(以此) 회왕이 끝내 깨닫지 못한 것을(懷王之終不悟) 알 수 있다(也). 임금 가운데(人君)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현명하거나 모자란 것을 가리지 않고(無愚智賢不肖), 충신을 구해서(求忠以) 자신을 위하기를(自爲)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고(莫不欲), 어진 사람을 등용해서(舉賢以) 자기를 보좌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自佐), 그러나(然) 나라를 망하게 하고(亡國) 가정을 깨뜨리는 것이(破家) 서로 계속되며(相隨屬, 而) 성군이(聖君)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治國) 대대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累世而不見者), 그(其) 이른바(所謂) 충신이 충성하지 않고(忠者不忠, 而) 이른바(所謂) 현자가 현명하게 하지 않아서이다(賢者不賢也). 회왕이(懷王) 충신의 구분을 알지 못했고(以不知忠臣之分), 그러므로(故) 안으로(內) 정수에게 미혹되었고(惑於鄭袖), 밖으로(外) 장의에게 속고(欺於張儀), 굴원을 멀리하고(疏屈平而) 상관대부와 영윤자란을 믿었다(信上官大夫、令尹子蘭). 군대가 꺾이고(兵挫) 땅이 줄어들어(地削), 그 6군을 잃고(亡其六郡), 몸은(身) 진나라에서 객사해서(客死於秦),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爲天下笑). 이것은(此) 사람을 알지 못한(不知人之) 재앙이다(禍也).

역에 이르길(《易》曰): "우물이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井泄不食), 내 마음이 슬프고(爲我心惻), 물을 길 수 있다(可以汲). 왕이 현명하면(王明), 모두(并) 그 복을 받는다(受其福)."라고 했다. 왕이 현명하지 못하니(王之不明), 어찌(豈) 복이 있겠는가(足福哉)! 

 

* 放流(방류): 귀양을 보냄.

* 睠顧(권고): =권고(眷顧). 그리워하다. 정을 두고 돌봄.

* 冀幸(기행): 요행을 바라다.

* 井泄不食(정설불식) : 역경(易經) 48.정괘(井卦) 구삼효(九三爻)에 “우물이 깨끗이 치워졌는데도 먹지 않아서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물을 길어 쓸 만하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을 것이다(井渫不食,為我心惻,可用汲,王明,並受其福).” 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이 재주와 지혜가 있는데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여 행하지 못함을 근심하고 서글퍼하는 것이다.


10 令尹子蘭聞之大怒, 卒使上官大夫短屈原於頃襄王, 頃襄王怒而遷之. 

10 영윤자란이(令尹子蘭) 이것을 듣고(聞之) 크게 노하여(大怒), 마침내(卒) 상관대부를 시켜(使上官大夫) 경양왕에게 굴원을 헐뜯도록 하고(短屈原於頃襄王), 경양왕이 노하여(頃襄王怒而) 그를 내쫓았다(遷之). 

 

거세혼탁아독청 중인개취아독성(舉世混濁我獨清, 眾人皆醉我獨醒)
11 屈原至於江濱, 被髪行吟澤畔. 顏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歟? 何故而至此?" 屈原曰: "舉世混濁而我獨清, 眾人皆醉而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夫聖人者, 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舉世混濁, 何不隨其流而揚其波? 眾人皆醉, 何不餔其糟而啜其醨? 何故懷瑾握瑜而自令見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人又誰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常流而葬乎江魚腹中耳, 又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俗之溫蠖乎!" 

11 굴원이(屈原) 강가에 이르러(至於江濱), 머리를 풀고(被髪) 물가를 거닐며 읊조렸다(行吟澤畔). 안색이 초췌하고(顏色憔悴), 몰골이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形容枯槁).

어부가 보고(漁父見而) 묻기를(問之曰): "그대는(子) 삼려대부가 아닌가(非三閭大夫歟)? 무슨 이유로(何故而) 이곳에 이르렀는가(至此)?"라고 했다.

굴원이 말하길(屈原曰): "온 세상이(舉世) 혼탁한데(混濁而) 나만 홀로 깨끗하고(我獨清), 여러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眾人皆醉而) 나만 홀로 취하지 않았으니(我獨醒), 이 때문에(是以) 내쫓겼습니다(見放)."라고 했다.

어부가 말하길(漁父曰): "무릇 성인은(夫聖人者), 외물에 걸리고 막히지 않고(不凝滯於物而) <변화를> 따를 수 있습니다(能與世推移). 온 세상이 혼탁한데(舉世混濁), 어찌(何) 그 흐름을 따라(隨其流而) 물결을 높이지 않습니까(揚其波)? 모든 사람이 취했는데(眾人皆醉), 어찌(何) 그 지게미를 먹고 밑술을 마시지 않습니까(不餔其糟而啜其醨)? 무슨 까닭으로(何故) 아름다운 옥을 품고서(懷瑾握瑜而) 스스로(自) 내쫓김을 당합니까(令見放爲)?"라고 했다.

굴원이 말하길(屈原曰): "내가 듣건대(吾聞之), 방금 머리 감은 사람은(新沐者) 반드시 관을 털고(必彈冠), 방금 몸을 씻은 사람은(新浴者) 반드시 옷을 터니(必振衣), 사람이(人) 또(又) 누가(誰) 이런 깨끗한 몸으로(以身之察察), 외물의 더러움을 받아들이겠는가(受物之汶汶者乎)! 차라리(寧) 상류에 뛰어 들어(赴常流而)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 뿐이니(葬乎江魚腹中耳), 또(又) 어찌(安) 깨끗한 백색으로(以皓皓之白而) 세상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는가(蒙世俗之溫蠖乎)!"라고 했다. 

 

* 行吟(행음): 1. 거닐면서 글을 읊음, 2. 귀양살이하면서 글을 읊음

* 澤畔(택반):못의 가장자리

* 凝滯(응체): 사물의 흐름이 걸리고 막혀 나아가지 못함, 정체되다. 얽매이다.

* 瑾(근), 瑜(유) : 아름다운 옥(玉)의 이름. 여기서는 고상한 품격을 비유.

* 新沐(신목) : 금방 머리를 감다. 沐浴(목욕)의 沐은 머리를 감는 것이며 浴은 몸을 씻는 것이다.

* 察察(찰찰) : 맑고 깨끗함. 결백함.
* 汶汶(문문) : 더러워진 모양. 모욕.

* 皓皓(호호) : 깨끗하고 흰 모양.


12 乃作懷沙之賦. 其辭曰:

12 이에(乃) 회사라는 부를 지었다(作懷沙之賦). 그 글에서 말하길(其辭曰):


13 陶陶孟夏兮, 草木莽莽. 傷懷永哀兮, 汩徂南土. 眴兮窈窈, 孔靜幽墨. 冤結紆軫兮, 離愍之長鞠; 撫情效志兮, 俛詘以自抑. 

13 따뜻한 초여름에(陶陶孟夏兮), 초목이 무성하구나(草木莽莽). 마음을 상한 것이(傷懷) 매우 슬프고(永哀兮), 남으로 급히 간다(汩徂南土). 앞을 보니(眴兮) 망망하고(窈窈), 지극히 고요하고 조용하구나(孔靜幽墨). 원통함이 가슴에 맺혀(冤結紆軫兮), 풀어볼 길이 영원히 막혔네(離愍之長鞠); 마음 달래고 어루만지며(撫情效志兮), 고개 숙여(俛詘以) 스스로 억누르네(自抑). 

 

* 陶陶(도도): 날씨가 따뜻한 모양. 양기가 왕성하게 넘치는 모양.

* 汩徂(율조): 급히 가다.


14 刓方以爲圜兮, 常度未替; 易初本由兮, 君子所鄙. 章畫職墨兮, 前度未改; 內直質重兮, 大人所盛. 巧匠不斲兮, 孰察其揆正? 玄文幽處兮, 矇謂之不章; 離婁微睇兮, 瞽以爲無明. 變白而爲黑兮, 倒上以爲下. 鳳皇在笯兮, 雞雉翔舞. 同糅玉石兮, 一而相量. 夫黨人之鄙妒兮, 羌不知吾所臧. 
15 任重載盛兮, 陷滯而不濟; 懷瑾握瑜兮, 窮不得余所示. 邑犬群吠兮, 吠所怪也; 誹駿疑桀兮, 固庸態也. 文質疏內兮, 眾不知吾之異采; 材樸委積兮, 莫知余之所有. 重仁襲義兮, 謹厚以爲豐; 重華不可牾兮, 孰知余之從容! 迸固有不并兮, 豈知其故也? 湯禹久遠兮, 邈不可慕也. 懲違改忿兮, 抑心而自彊; 離湣而不遷兮, 願志之有象. 進路北次兮, 日昧昧其將暮; 含憂虞哀兮, 限之以大故. 
16 亂曰:浩浩沅、湘兮, 分流汨兮. 修路幽拂兮, 道遠忽兮. 曾唫恒悲兮, 永嘆慨兮. 世既莫吾知兮, 人心不可謂兮. 懷情抱質兮, 獨無匹兮. 伯樂既歿兮, 驥將焉程兮? 人生稟命兮, 各有所錯兮. 定心廣志, 餘何畏懼兮? 曾傷爰哀, 永嘆喟兮. 世溷不吾知, 心不可謂兮. 知死不可讓兮, 願勿愛兮. 明以告君子兮, 吾將以爲類兮. 

 

17 於是懷石遂自(投)[沈]汨羅以死. 

17 이에(於是) 돌을 품고(懷石) 마침내(遂) 멱라강에 스스로 던져(自(投)[沈]汨羅以) 죽었다(死). 


18 屈原既死之後, 楚有宋玉、唐勒、景差之徒者, 皆好辭而以賦見稱; 然皆祖屈原之從容辭令, 終莫敢直諫. 其後楚日以削, 數十年竟爲秦所滅. 

18 굴원이 죽은 뒤에(屈原既死之後), 초나라에(楚) 송옥, 당륵, 경차 같은 무리가 있어(有宋玉、唐勒、景差之徒者), 모두(皆) 글짓기를 좋아하고(好辭而) 부로(以賦) 칭송을 받았지만(見稱); 그러나(然) 모두(皆) 굴원이 제시한 글체를 조종으로 삼을 뿐(祖屈原之從容辭令), 끝내(終) 누구도(莫) 감히 바로 조언하지 못했다(敢直諫). 그 뒤(其後) 초나라가 날로 약해지다가(楚日以削), 수십 년이 지나(數十年) 마침내(竟) 진나라에 멸망당했다(爲秦所滅). 


19 自屈原沈汨羅後百有餘年, 漢有賈生, 爲長沙王太傅, 過湘水, 投書以弔屈原. 

19 굴원이 멱라강에 빠진 때로부터(自屈原沈汨羅) 그 뒤 백여 년이 지나(後百有餘年), 한나라에(漢) 가생이 있었는데(有賈生),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爲長沙王太傅), 호수를 지나다(過湘水), 글을 지어(投書以) 굴원을 애도했다(弔屈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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