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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기화가거(奇貨可居) / 진귀한 재물은 모아둘 만하다

by प्रज्ञा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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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呂不韋者, 陽翟大賈人也. 往來販賤賣貴, 家累千金. 

1 여불위는(呂不韋者), 양책의(陽翟) 큰 상인이다(大賈人也). 오가며(往來) 싸게 사서(販賤) 비싸게 팔아(賣貴), 집안에(家) 천금을 모았다(累千金). 


2 秦昭王四十年, 太子死. 其四十二年, 以其次子安國君爲太子. 安國君有子二十餘人. 安國君有所甚愛姬, 立以爲正夫人, 號曰華陽夫人. 華陽夫人無子. 安國君中男名子楚, 子楚母曰夏姬, 毋愛. 子楚爲秦質子於趙. 秦數攻趙, 趙不甚禮子楚. 

2 진 소양왕 40년에(秦昭王四十年), 태자가 죽었다(太子死). 그 42년에(其四十二年), 그 둘째 아들 안국군을(以其次子安國君)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안국군에게(安國君) 자식이 20여 명이 있었다(有子二十餘人). 안국군에게(安國君) 아끼는 여인이 있었는데(有所甚愛姬), 세워(立) 정부인으로 삼고(以爲正夫人), 호를(號) 화양부인이라고 했다(曰華陽夫人). 화양부인에게(華陽夫人) 자식이 없었다(無子). 안국군의(安國君) 둘째 아들은(中男) 이름이 자초인데(名子楚), 자초의 어머니를(子楚母) 하희라고 했는데(曰夏姬), 사랑을 받지 못했다(毋愛). 자초가(子楚) 진나라의 인질이 되어(爲秦質) 조나라에 갔다(子於趙). 진나라가(秦) 여러 번(數) 조나라를 공격하자(攻趙), 조나라가(趙) 자초를 잘 대우하지 않았다(不甚禮子楚). 


기화가거(奇貨可居)

3 子楚, 秦諸庶孽孫, 質於諸侯, 車乘進用不饒, 居處困, 不得意. 呂不韋賈邯鄲, 見而憐之, 曰「此奇貨可居」. 乃往見子楚, 說曰: "吾能大子之門." 子楚笑曰: "且自大君之門, 而乃大吾門!" 呂不韋曰: "子不知也, 吾門待子門而大." 子楚心知所謂, 乃引與坐, 深語. 呂不韋曰: "秦王老矣, 安國君得爲太子. 竊聞安國君愛幸華陽夫人, 華陽夫人無子, 能立適嗣者獨華陽夫人耳. 今子兄弟二十餘人, 子又居中, 不甚見幸, 久質諸侯. 即大王薨, 安國君立爲王, 則子毋幾得與長子及諸子旦暮在前者爭爲太子矣." 子楚曰: "然. 爲之柰何?" 呂不韋曰: "子貧, 客於此, 非有以奉獻於親及結賓客也. 不韋雖貧, 請以千金爲子西游, 事安國君及華陽夫人, 立子爲適嗣." 子楚乃頓首曰: "必如君策, 請得分秦國與君共之." 

3 자초는(子楚), 진나라의(秦) 여러 서자의(諸庶) 아들이었는데(孽孫), 제후에게 인질이고(質於諸侯), 수레와 말, 재물이(車乘進用) 넉넉하지 못했고(不饒), 사는 곳이 곤궁해서(居處困), 의욕이 없었다(不得意). 여불위가(呂不韋) 한단에서 장사하면서(賈邯鄲), 보고서 불쌍하게 여겨(見而憐之), 말하길(曰) '이 기이한 보물은(此奇貨) 사 둘 만하다(可居)'라고 했다.

이에(乃) 가서 자초를 만나(往見子楚), 설득하여 말하길(說曰): "내가(吾) 그대의 가문을(子之門) 위대하게 만들겠다(能大)."라고 했다.

자초가 웃으며 말하길(子楚笑曰): "먼저(且) 그대의 문을 크게 만드는 것으로부터(自大君之門, 而) 이에(乃)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大吾門)!"라고 했다.

여불위가 말하길(呂不韋曰): "그대가 알지 못하지만(子不知也), 내 가문이(吾門) 그대의 가문에 기대어(待子門而) 커질 것이다(大)."라고 했다.

자초가(子楚) 속으로(心) 말한 것을 알아듣고(知所謂), 이에(乃) 인도하여 함께 앉아서(引與坐), 속마음을 말했다(深語).

여불위가 말하길(呂不韋曰): "진왕이 늙었고(秦王老矣),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습니다(安國君得爲太子). 가만히 들으니(竊聞) 안국군이(安國君) 화양부인을 총애하는데(愛幸華陽夫人), 화양부인에게(華陽夫人) 자식이 없고(無子), 후사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能立適嗣者) 오직(獨) 화양부인 뿐입니다(華陽夫人耳). 지금(今) 그대의 형제가(子兄弟) 20여 명인데(二十餘人), 그대는(子) 또한(又) 둘째이고(居中), 총애를 받지 못하고(不甚見幸), 제후에게 오랫동안 인질이 되어 있습니다(久質諸侯). 만약(即) 대왕이 죽는다면(大王薨), 안국군이 즉위해서(安國君立) 왕이 될 것이고(爲王, 則) 그대는(子) 첫째와 여러 형제와 더불어(與長子及諸子) 아침저녁으로(旦暮) 태자가 되려고 다투는 것마저도(在前者爭爲太子) 기대할 수 없습니다(毋幾得矣)."라고 했다.

자초가 말하길(子楚曰): "그렇다면(然). 그것을 위해(爲之) 어찌해야 하는가(柰何)?"라고 했다.

여불위가 말하길(呂不韋曰): "그대는 가난하고(子貧), 이곳에서는 객에 불과하고(客於此), 부모에게 봉양하고(奉獻於親及) 빈객과 사귈 수 있는 것이(有以 結賓客) 아닙니다(也). 제가(不韋) 비록 가난하지만(雖貧), 청컨대(請) 천금으로(以千金) 그대를 위해(爲子) 서쪽으로 가서(西游),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섬기고(事安國君及華陽夫人), 자식으로 세워(立子) 후사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爲適嗣)."라고 했다.

자초가(子楚) 이에(乃)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길(頓首曰): "반드시(必) 그대의 계책과 같다면(如君策), 청컨대(請) 진나라를 나누어 얻어(得分秦國) 그대와 함께 가지겠다(與君共之)."라고 했다.

 

* 孽孫(얼손): 서자의 아들. 

* 進用(진용): 재물의 씀씀이. 밑천.

* 適嗣(적사): 정처(正妻) 소생의 장자(長子). 適은 嫡과 통한다.

* 毋幾(무기): 희망이 없다.


4 呂不韋乃以五百金與子楚, 爲進用, 結賓客;而復以五百金買奇物玩好, 自奉而西游秦, 求見華陽夫人姊, 而皆以其物獻華陽夫人. 因言子楚賢智, 結諸侯賓客遍天下, 常曰「楚也以夫人爲天, 日夜泣思太子及夫人」. 夫人大喜. 不韋因使其姊說夫人曰: "吾聞之, 以色事人者, 色衰而愛弛. 今夫人事太子, 甚愛而無子, 不以此時蚤自結於諸子中賢孝者, 舉立以爲適而子之, 夫在則重尊, 夫百歲之後, 所子者爲王, 終不失勢, 此所謂一言而萬世之利也. 不以繁華時樹本, 即色衰愛弛後, 雖欲開一語, 尚可得乎? 今子楚賢, 而自知中男也, 次不得爲適, 其母又不得幸, 自附夫人, 夫人誠以此時拔以爲適, 夫人則竟世有寵於秦矣." 華陽夫人以爲然, 承太子閒, 從容言子楚質於趙者絕賢, 來往者皆稱譽之. 乃因涕泣曰: "妾幸得充後宮, 不幸無子, 願得子楚立以爲適嗣, 以託妾身." 安國君許之, 乃與夫人刻玉符, 約以爲適嗣. 安國君及夫人因厚餽遺子楚, 而請呂不韋傅之, 子楚以此名譽益盛於諸侯. 

4 여불위가(呂不韋) 이에(乃) 500금을(以五百金) 자초에게 주고(與子楚), 쓸 돈으로 삼아(爲進用), 빈객과 사귀도록 하고(結賓客; 而) 다시(復) 500금으로(以五百金) 기이한 물건과 진귀한 노리개를 사서(買奇物玩好), 직접 들고서(自奉而) 서쪽으로 진나라에 가서(西游秦), 화양부인의 언니를 만나기를 청하고(求見華陽夫人姊, 而) 모두(皆) 그 물건을(以其物) 화양부인에게 바쳤다(獻華陽夫人). 이어(因) 자초가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말하고(言子楚賢智), 제후와 빈객을 사귀는 것이(結諸侯賓客) 천하에 널리 하면서(遍天下), 늘 말하길(常曰) '저는(楚也) 화양부인을 하늘로 여기고(以夫人爲天), 밤낮으로(日夜) 울면서(泣) 태자와 부인을 사모합니다(思太子及夫人'라고 합니다. 부인이 크게 기뻐했다(夫人大喜).

여불위가(不韋) 이에(因) 그 언니로 하여금(使其姊) 부인인 설득 하도록 말하면서(說夫人曰): "내가 듣건대(吾聞之), 색으로 남을 섬기는 사람은(以色事人者), 색이 사라지면(色衰而) 사랑도 시듭니다(愛弛). 지금(今) 부인이 태자를 섬기는 것이(夫人事太子), 매우 사랑을 받지만(甚愛而) 자식이 없고(無子), 이때에(不以此時) 일찍(蚤) 스스로 여러 아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과 사귀는 것으로(自結於諸子中賢孝者), 발탁해서(舉立以) 후사로 삼아(爲適而) 아들로 만들면(子之), 남편이 있으면(夫在則) 존중받고(重尊), 무릇(夫) 백세의(남편이 죽은) 뒤에도(百歲之後), 자식 된 사람이 왕이 되면(所子者爲王), 끝내(終) 세력을 잃지 않을 것이니(不失勢), 이것이(此) 이른바(所謂) 한마디 말로(一言而) 만세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萬世之利也). 번화할 때 뿌리를 키워두지 않으면(不以繁華時樹本), 곧(即) 색이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뒤에(色衰愛弛後), 비록(雖) 한마디 말을 말하려고 해도(欲開一語), 오히려 할 것이 있을까요(尚可得乎)? 지금(今) 자초가 현명하고(子楚賢, 而) 둘째 아들이니(中男也), 둘째가 후사가 될 수 없음을(次不得爲適) 스스로 알고(自知), 그 어머니도(其母) 또(又) 총애를 받지 못하니(不得幸), 스스로(自) 부인에게 의지할 것이니(附夫人), 부인이(夫人) 진실로(誠) 이때에(以此時) 뽑아서 적자로 삼으면(拔以爲適), 부인은(夫人則) 세상을 마칠 때에(竟世) 진나라에서 총애가 있을 것입니다(有寵於秦矣)."라고 했다.

화양부인이(華陽夫人) 그럴듯하다고 여겨(以爲然,) 태자가 한가한 틈을 타(承太子閒), 조용히 말하길(從容言)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가 있는 사람인데(子楚質於趙者) 매우 현명해서(絕賢),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來往者) 모두(皆) 그를 칭찬하고 높이 평가합니다(稱譽之).

이어(乃因) 울면서 말하길(涕泣曰): "신첩이(妾) 다행히(幸) 후궁을 차지했지만(得充後宮), 불행히도(不幸) 자식이 없으니(無子), 원컨대(願) 자초를 얻어 세워(得子楚立) 후계자로 삼아(以爲適嗣, 以) 신첩의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託妾身)."라고 했다.

안국군이 허락하자(安國君許之), 이에(乃) 부인에게(夫人) 옥부를 새겨 주고(刻玉符,) 약속하여(約) 후사로 삼았다(以爲適嗣). 안국군과 부인이(安國君及夫人) 이에(因) 자초에게 많은 물건을 보내고(厚餽遺子楚, 而) 여불위에게 청하여(請呂不韋) 돌보도록 하고(傅之), 자초가(子楚) 이것으로(以此) 제후들에게 이름이 더욱 알려졌다(名譽益盛於諸侯). 

 

* 從容(종용): 차분하고 들뜨지 않아 찬찬하게.

* 稱譽(칭예): 다른 사람의 좋고 훌륭한 점을 들어 추어주거나 높이 평가함


5 呂不韋取邯鄲諸姬絕好善舞者與居, 知有身. 子楚從不韋飲, 見而說之, 因起爲壽, 請之. 呂不韋怒, 念業已破家爲子楚, 欲以釣奇, 乃遂獻其姬. 姬自匿有身, 至大期時, 生子政. 子楚遂立姬爲夫人. 

5 여불위가(呂不韋) 한단에서(邯鄲) 여러 첩 중에서(諸姬) 매우 예쁘고 춤을 잘 추는 여자를 얻어(絕好善舞者) 함께 살았는데(與居), 임신한 것을 알았다(知有身). 자초가(子楚) 불위와 술을 마시다가(從不韋飲), 보고서(見而) 기뻐하며(說之), 이에(因) 장수를 기원하며(起爲壽), 청했다(請之). 여불위가 화가 났지만(呂不韋怒), 사업이(業) 이미 자초를 위해 집안을 무너뜨리고(已破家爲子楚), 기이한 보물을 낚으려는 것을(欲以釣奇) 생각하고(念), 이에(乃) 마침내(遂) 그 여자를 바쳤다(獻其姬). 여자가(姬) 임신한 것을(有身) 스스로 숨기고(自匿), 아이를 낳을 때에 이르러(至大期時), 아들 정을 낳았다(生子政). 자초가(子楚) 마침내 여자를 세워(遂立姬) 부인으로 삼았다(爲夫人). 

 

* 有身(유신): 임신.

* 大期(대기) :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낳을 달.


6 秦昭王五十年, 使王齮圍邯鄲, 急, 趙欲殺子楚. 子楚與呂不韋謀, 行金六百斤予守者吏, 得脫, 亡赴秦軍, 遂以得歸. 趙欲殺子楚妻子, 子楚夫人趙豪家女也, 得匿, 以故母子竟得活. 秦昭王五十六年, 薨, 太子安國君立爲王, 華陽夫人爲王后, 子楚爲太子. 趙亦奉子楚夫人及子政歸秦. 

6 진 소왕 50년에(秦昭王五十年), 왕기로 하여금(使王齮) 한단을 포위하도록 하고(圍邯鄲), 급박해지자(急), 조나라가(趙) 자초를 죽이려고 했다(欲殺子楚). 자초와 여불위가(子楚與呂不韋) 모의하여(謀), 금 600근 써서(行金六百斤) 자기를 지키는 관리를 매수하고(予守者吏), 탈출해서(得脫), 도망가서(亡) 진나라에 군대에 이르러(赴秦軍), 마침내(遂) 돌아갈 수 있었다(以得歸). 조나라가(趙) 자초의 처자식을 죽이려고 했지만(欲殺子楚妻子), 자초의 부인이(子楚夫人) 조나라 부호의 딸이었고(趙豪家女也), 숨을 수 있어서(得匿), 이 때문에(以故) 모자가(母子) 마침내 살아날 수 있었다(竟得活). 진 소왕 56년에(秦昭王五十六年), 죽고(薨), 태자 안국군이 즉위해서(太子安國君立) 왕이 되고(爲王), 화양부인이(華陽夫人) 왕후가 되고(爲王后), 자초가 태자가 되었다(子楚爲太子). 조나라도 또한(趙亦) 자초의 부인과 아들 정을 받들어(奉子楚夫人及子政) 진나라에 돌려보냈다(歸秦). 


7 秦王立一年, 薨, 謚爲孝文王. 太子子楚代立, 是爲莊襄王. 莊襄王所母華陽后爲華陽太后, 真母夏姬尊以爲夏太后. 莊襄王元年, 以呂不韋爲丞相, 封爲文信侯, 食河南雒陽十萬戶. 

7 진왕이 즉위하고(秦王立) 1년이 지나(一年), 죽고(薨), 시호는(謚) 효문왕이라고 했다(爲孝文王). 태자 자초가(太子子楚) 대신 즉위하니(代立), 이 사람이(是) 장양왕이다(爲莊襄王). 장양왕이(莊襄王) 어머니 화양후를(所母華陽后) 화양태후로 삼고(爲華陽太后), 생모 하희를 높여서(真母夏姬尊) 하태후로 삼았다(以爲夏太后). 장양왕 원년(莊襄王元年), 여불위를(以呂不韋) 승상으로 삼고(爲丞相), 봉하여(封) 문신후로 삼아(爲文信侯), 하남 낙양의 10만 호를 식읍으로 주었다(食河南雒陽十萬戶). 


8 莊襄王即位三年, 薨, 太子政立爲王, 尊呂不韋爲相國, 號稱「仲父」. 秦王年少, 太后時時竊私通呂不韋. 不韋家僮萬人. 

8 장양와이 즉위하고(莊襄王即位) 3년이 지나(三年), 죽고(薨), 태장 정이 즉위해서(太子政立) 왕이 되니(爲王), 여불위를 존중하여(尊呂不韋) 상국으로 삼고(爲相國), 부르기를 중보라고 했다(號稱「仲父」). 진왕의 나이가 어려(秦王年少), 태후가 때때로(太后時時) 몰래(竊) 여불위와 사통했다(私通呂不韋). 여불위의 집에(不韋家) 하인이 만 명이 있었다(僮萬人). 


일자천금(一字千金)

9 當是時, 魏有信陵君, 楚有春申君, 趙有平原君, 齊有孟嘗君, 皆下士喜賓客以相傾. 呂不韋以秦之彊, 羞不如, 亦招致士, 厚遇之, 至食客三千人. 是時諸侯多辯士,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 集論以爲八覽·六論·十二紀, 二十餘萬言.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號曰呂氏春秋. 布咸陽市門, 懸千金其上, 延諸侯游士賓客有能增損一字者予千金. 

9 당시(當是時), 위나라에(魏) 신릉군이(有信陵君), 초나라에(楚) 춘신군이(有春申君), 조나라에(趙) 평원군이(有平原君), 제나라에(齊) 맹상군이 있어(有孟嘗君), 모두(皆) 선비에게 몸을 낮추고(下士) 빈객을 좋아해서(喜賓客以) 서로 다투었다(相傾). 여불위는(呂不韋) 진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해서(以秦之彊), 그와 같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羞不如), 또한(亦) 선비를 불러 모아(招致士), 두텁게 대우하자(厚遇之), 식객이 3000 명에 이르렀다(至食客三千人). 이때(是時) 제후에게(諸侯) 변사가 많았는데(多辯士), 순욱의 무리와 같은 사람들은(如荀卿之徒), 책을 지어(著書) 천하에 배포했다(布天下). 여불위가(呂不韋) 이에(乃) 그 식객을 시켜(使其客人) 사람마다(人) 들은 것을 적게 하고(著所聞), 논의를 팔람, 육론, 십이기로 묶으니(集論以爲八覽·六論·十二紀), 24만 여 글자가 되었다(二十餘萬言). 천지, 만물 고금의 일을 갖추었다고 여겨(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부르기를(號) 여씨춘추라고 했다(曰呂氏春秋). 함양 시장 문에 배포하고(布咸陽市門), 그 위에 천금을 걸고(懸千金其上), 제후의 유사와 빈객을 불러(延諸侯游士賓客)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사람이라면(有能增損一字者) 천금을 준다고 했다(予千金).


10 始皇帝益壯, 太后淫不止. 呂不韋恐覺禍及己, 乃私求大陰人嫪毐以爲舍人, 時縱倡樂, 使毐以其陰關桐輪而行, 令太后聞之, 以啗太后. 太后聞, 果欲私得之. 呂不韋乃進嫪毐, 詐令人以腐罪告之. 不韋又陰謂太后曰: "可事詐腐, 則得給事中." 太后乃陰厚賜主腐者吏, 詐論之, 拔其須眉爲宦者, 遂得侍太后. 太后私與通, 絕愛之. 有身, 太后恐人知之, 詐卜當避時, 徙宮居雍. 嫪毐常從, 賞賜甚厚, 事皆決於嫪毐. 嫪毐家僮數千人, 諸客求宦爲嫪毐舍人千餘人. 

10 시황제가 더욱 커가는데(始皇帝益壯), 태후의 음행이 그치지 않았다(太后淫不止). 여불위는(呂不韋) 발각되어(覺)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염려해서(禍及己), 이에(乃) 은밀히(私) 대음인인 노애를 구해(求大陰人嫪毐) 사인으로 삼고(以爲舍人), 때때로(時) 광대의 음악을 풀어놓고(縱倡樂), 노애로 하여금(使毐) 그 음경을(以其陰)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걸고(關桐輪而) 가도록 해서(行), 태후가 그것을 듣도록 해서(令太后聞之, 以) 태후를 꾀어냈다(啗太后). 태후가 듣고(太后聞), 과연(果) 은밀하게 그를 얻으려고 했다(欲私得之). 여불위가 이에(呂不韋乃) 노애를 바치고(進嫪毐), 영인으로 하여금(詐令人) 부형의 죄로 고발했다(以腐罪告之). 여불위는 또(不韋又) 은밀하게 태후에게 말하길(陰謂太后曰): "거짓 부형을 받게 하면(可事詐腐, 則) 급사중으로 삼으십시오(得給事中)."라고 했다.

태후가(太后) 이에(乃) 은밀하게(陰) 부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主腐者吏) 많은 뇌물을 주고(厚賜), 거짓으로 판결하도록 하고(詐論之), 그 눈썹과 수염을 뽑아(拔其須眉) 환관으로 만들어(爲宦者), 마침내(遂) 태후를 모시게 되었다(得侍太后). 태후가(太后) 사사로이 정을 통하면서(私與通), 매우 아꼈다(絕愛之). 임신하게 되자(有身), 태후는(太后) 사람들이 알 것을 염려해서(恐人知之), 거짓 점을 치고(詐卜) 재앙을 피하기 위해(當避時), 궁을 옮겨(徙宮) 옹에 머물렀다(居雍). 노애가(嫪毐) 늘 따르며(常從), 매우 많은 상을 받았고(賞賜甚厚), 일이 모두(事皆) 노애에게서 결정되었다(決於嫪毐). 노애의 집안에(嫪毐家) 사인이(僮) 수천 명이었고(數千人), 여러 빈객이(諸客) 벼슬을 얻으려고(求宦) 노애의 사인이 된 사람이(爲嫪毐舍人) 천여 명이었다(千餘人). 

 

* 腐罪(부죄): 부형(腐刑)에 처하는 죄. 부형(腐刑)은 궁형(宮刑)을 말하며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

* 避時(피시): 재앙을 피하기 위해 거처를 바꿈.


11 始皇七年, 莊襄王母夏太后薨. 孝文王后曰華陽太后, 與孝文王會葬壽陵. 夏太后子莊襄王葬芷陽, 故夏太后獨別葬杜東, 曰「東望吾子, 西望吾夫. 後百年, 旁當有萬家邑」. 

11 진시황 7년에(始皇七年), 장양왕의 어머니(莊襄王母) 하태후가 죽었다(夏太后薨). 효문왕후가(孝文王后) 화양태후에게 말하여(曰華陽太后), 효문왕과 더불어(與孝文王) 수릉에 함께 장사 지냈다(會葬壽陵). 하태후의 아들(夏太后子) 장양와이(莊襄王) 화양에 묻혔고(葬芷陽), 그러므로(故) 하태후는(夏太后) 홀로(獨) 두원 동쪽에 따로 장사 지냈으니(別葬杜東), 말하길(曰) '동쪽으로(東) 내 아들을 보고(望吾子), 서쪽으로(西) 내 남편을 볼 것이다(望吾夫). 백년 뒤에(後百年), 옆에는(旁) 마땅히(當) 만호의 읍이 있을 것이다(有萬家邑)'라고 했다. 


12 始皇九年, 有告嫪毐實非宦者, 常與太后私亂, 生子二人, 皆匿之. 與太后謀曰「王即薨, 以子爲後」. 於是秦王下吏治, 具得情實, 事連相國呂不韋. 九月, 夷嫪毐三族, 殺太后所生兩子, 而遂遷太后於雍. 諸嫪毐舍人皆沒其家而遷之蜀. 王欲誅相國, 爲其奉先王功大, 及賓客辯士爲游說者眾, 王不忍致法. 

12 진시황 9년에(始皇九年), 노애가(嫪毐) 실제(實) 환관이 아니고(非宦者), 늘(常) 태후와 사통해서(與太后私亂), 자식 둘을 낳았고(生子二人), 모두(皆) 숨겨 두고(匿之), 태후와 모의하여 말하길(與太后謀曰) '왕이 죽는다면(王即薨), 자식으로(以子) 후사를 삼을 것이다(爲後)'라고 했다고 고발한 일이 있었다(有告). 이에(於是) 진왕이(秦王) 관리를 보내 단속하니(下吏治), 모두(具) 사실이었고(得情實), 일이(事) 상국 여불위와 연관되었다(連相國呂不韋). 9월에(九月), 노애의 삼족을 죽이고(夷嫪毐三族), 태후가 낳은 두 자식을 죽이고(殺太后所生兩子, 而) 마침내(遂) 태후를 옹에 옮겼다(遷太后於雍). 여러 노애의 사인은(諸嫪毐舍人) 모두(皆) 그 집안을 몰수하고(沒其家而) 촉으로 옮겼다(遷之蜀). 왕이(王) 상국을 죽이려고 했지만(欲誅相國), 그 선왕을 받든 공이 크기 때문에(爲其奉先王功大), 빈객과 변사가(及賓客辯士) 변호하는 사람이 많아(爲游說者眾), 왕이(王) 차마 법대로 하지 못했다(不忍致法). 

 

* 下吏(하리): 법관(法官)을 보내 심문하다.


13 秦王十年十月, 免相國呂不韋. 及齊人茅焦說秦王, 秦王乃迎太后於雍, 歸復咸陽, 而出文信侯就國河南. 

13 진왕 10년 10월에(秦王十年十月), 상국 여불위를 면직시켰다(免相國呂不韋). 제나라 사람 모초가 진왕을 설득하자(及齊人茅焦說秦王), 진왕이 이에(秦王乃) 옹에서 태후를 맞아들여(迎太后於雍), 함양으로 돌아오고(歸復咸陽, 而) 문신후를 내보내(出文信侯) 봉국 하남으로 가도록 했다(就國河南). 


14 歲餘, 諸侯賓客使者相望於道, 請文信侯. 秦王恐其爲變, 乃賜文信侯書曰: "君何功於秦? 秦封君河南, 食十萬戶. 君何親於秦? 號稱仲父. 其與家屬徙處蜀!" 呂不韋自度稍侵, 恐誅, 乃飲酖而死. 秦王所加怒呂不韋·嫪毐皆已死, 乃皆復歸嫪毐舍人遷蜀者. 

14 1년이 지나(歲餘), 제후의 빈객과 사자가(諸侯賓客使者) 길에서 서로 바라볼 정도로(相望於道), 문신후를 청했다(請文信侯). 진왕이(秦王) 그 변이 될 것을 염려하고(恐其爲變), 이에(乃) 문신후에게 편지를 써서 말하길(賜文信侯書曰):

"그대가(君) 진나라에 무슨 공이 있는가(何功於秦)? 진나라가(秦) 그대를 하남에 봉하고(封君河南), 십만 호를 식읍으로 주었다(食十萬戶). 그대는(君) 진나라에 어떤 친족이 있는가(何親於秦)? 부르기를(號) 중보라고 했는가(稱仲父). 그 가속과 함께(其與家屬) 촉으로 옮겨 머물라(徙處蜀)!"라고 했다.

여불위가(呂不韋) 점점 압박해 옴을 스스로 알고(自度稍侵), 죽임 당할까 두려워(恐誅), 이에(乃) 짐독을 마시고 죽었다(飲酖而死). 진왕이(秦王) 화를 품었던(所加怒) 여불위와 노애가 모두 죽자(呂不韋·嫪毐皆已死), 이에(乃) 노애의 사인 중에(嫪毐舍人) 촉으로 옮긴 사람을(遷蜀者) 돌아오도록 했다(復歸)


15 始皇十九年, 太后薨, 謚爲帝太后, 與莊襄王會葬茝陽. 

15 시황제 19년에(始皇十九年), 태후가 죽었다(太后薨), 시호를(謚) 제태후로 하고(爲帝太后), 장양왕과 함께(與莊襄王) 지양에 함께 장사지냈다(會葬茝陽). 


16 太史公曰:不韋及嫪毐貴, 封號文信侯. 人之告嫪毐, 毐聞之. 秦王驗左右, 未發. 上之雍郊, 毐恐禍起, 乃與黨謀, 矯太后璽發卒以反蘄年宮. 發吏攻毐, 毐敗亡走, 追斬之好畤, 遂滅其宗. 而呂不韋由此絀矣. 孔子之所謂「聞」者, 其呂子乎? 

16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여불위와 노애는(不韋及嫪毐) 존귀할 때(貴), 봉하여(封) 문신후로 불렸다(號文信侯). 누군가(人之) 노애를 고발하고(告嫪毐), 노애도 그것을 들었다(毐聞之). 진왕이(秦王) 측근에게 검증하도록 하고(驗左右),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未發). 왕이(上之) 옹에서 교제사를 지내자(雍郊), 노애는(毐) 재앙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고(恐禍起), 이에(乃) 무리와 함께 모의하고(與黨謀), 태후의 도장을 위조해서(矯太后璽發) 마침내(卒) 기년궁에서 반란을 일으켰다(以反蘄年宮). 관리를 일으켜(發吏) 노애를 공격해서(攻毐), 노애가 패하여 도망치자(毐敗亡走), 추격하여(追) 호치에서 목을 베고(斬之好畤), 마침내(遂) 그 일족을 없앴고(滅其宗, 而) 여불위도(呂不韋) 이것 때문에(由此) 쫓겨났다(絀矣). 공자가(孔子之) 이른바(所謂) 문(명성)이라고 한 것은(聞者), 아마(其) 여불위인가(呂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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