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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6 자객열전(刺客列傳) 2/4] 방약무인(傍若無人) / 범상치 않은 사람의 행보

by प्रज्ञा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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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其後二百二十餘年秦有荊軻之事. 

20 그 뒤(其後) 200여 년이 지나(二百二十餘年) 진나라에서(秦) 형가의 일이 있었다(有荊軻之事). 


21 荊軻者, 衛人也. 其先乃齊人, 徙於衛, 衛人謂之慶卿. 而之燕, 燕人謂之荊卿. 

21 형가는(荊軻者), 위나라 사람이다(衛人也). 그 선조는(其先乃) 제나라 사람인데(齊人), 위나라에 옮겨왔고(徙於衛), 위나라 사람들이(衛人) 경경이라고 불렀다(之慶卿). 그리고 연나라에 가서(而之燕), 연나라 사람들이(燕人) 형경이라고 불렀다(謂之荊卿). 


22 荊卿好讀書擊劍, 以術說衛元君, 衛元君不用. 其後秦伐魏, 置東郡, 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 

22 형경은(荊卿) 책 읽기와 칼 쓰기를 좋아해서(好讀書擊劍, 以) 위나라 원군에게 유세했지만(術說衛元君), 위 원군이(衛元君) 등용하지 않았다(不用). 그 뒤(其後) 진나라가 위나라를 침략해서(秦伐魏), 동군을 두고(置東郡), 위 원군의 일족을(衛元君之支屬) 야왕에 옮기도록 했다(於野王). 


23 荊軻嘗游過榆次, 與蓋聶論劍, 蓋聶怒而目之. 荊軻出, 人或言復召荊卿. 蓋聶曰: "曩者吾與論劍有不稱者, 吾目之; 試往, 是宜去, 不敢留." 使使往之主人, 荊卿則已駕而去榆次矣. 使者還報, 蓋聶曰: "固去也, 吾曩者目攝之!" 

23 형가가 일찍이(荊軻嘗) 떠돌며(游) 유차를 지날 때(過榆次), 갑섭과(與蓋聶) 검을 논했는데(論劍), 갑섭이 노하여(蓋聶怒而) 그를 노려봤다(目之). 형가가 나가자(荊軻出), 누군가(人或)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復召荊卿) 말했다(言).

갑섭이 말하길(蓋聶曰): "지난 번에(曩者) 나와 검술을 논하면서(吾與論劍) 생각이 맞지 않는 것이 있어서(有不稱者), 내가 그를 노려보았는데(吾目之); 시험 삼아 가본다면(試往), 그가(是) 마땅히 떠났을 것이고(宜去), 감히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不敢留)."라고 했다.

사람을 시켜(使使) 그 주인에게 가도록 했는데(往之主人), 형경이(荊卿則) 이미 멍에를 매고(已駕而) 유차를 떠났다(去榆次矣).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使者還報),

가섭이 말하길(蓋聶曰): "진실로 갔을 것이니(固去也), 내가(吾) 지난 번에(曩者) 노려보며 그를 위협했다(目攝之)!"라고 했다. 

 

* 曩者(낭자): 지나간 차례나 때.

* 不稱(불칭) : 적합하지 않다. 맞지 않다.

* 攝(섭) : 懾(두려워할 ‘섭’)과 통하여 (무력으로) 위협하다.


24 荊軻游於邯鄲, 魯句踐與荊軻博, 爭道, 魯句踐怒而叱之, 荊軻嘿而逃去, 遂不復會. 

24 형가가(荊軻) 한단에서 노닐 때(游於邯鄲), 노구천과 형가가(魯句踐與荊軻) 박 놀이를 했는데(博), 길을 다투었고(爭道), 노구천이 노하여(魯句踐怒而) 그를 꾸짖으니(叱之), 형가가 말 없이(荊軻嘿而) 달아나서(逃去), 마침내(遂) 다시 만나지 않았다(不復會). 

 

* 魯句踐(노구천) : 노나라 출신으로 한단(邯鄲)에서 형가(荊軻)가 노구천(魯句踐)과 쌍륙을 하다가 그 규칙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였고, 노구천이 위협적인 태도로 형가(荊軻)에게 소리치자 형가는 그냥 물러났다. 노구천(魯句踐)은 주나라 제후국 노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2세기 인물로서 주공단의 후손이다. 여러 사람들은 형가를 겁쟁이라며 비웃었지만 형가는 굳이 사소한 일로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방약무인(旁若無人)

25 荊軻既至燕, 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 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離飲於燕市, 酒酣以往, 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荊軻雖游於酒人乎, 然其爲人沈深好書; 其所游諸侯, 盡與其賢豪長者相結. 其之燕, 燕之處士田光先生亦善待之, 知其非庸人也. 

25 형가가(荊軻) 연나라에 가서(既至燕), 연나라의 개잡는 사람과(燕之狗屠及) 비파를 잘 타는 사람인 고점리를(善擊筑者高漸離) 좋아했다(愛). 형가가(荊軻) 술 마시기를 즐겼고(嗜酒), 매일(日) 개 백정과 고점리와 함께(與狗屠及高漸離) 연나라 시장에서 술을 마시고(飲於燕市), 술이 오르면(酒酣以) 가서(往), 고점리가 비파를 치고(高漸離擊筑), 형가가 <소리에> 맞춰(荊軻和而)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며(歌於市中), 서로 즐기고(相樂也), 곧 서로 울며(已而相泣), 곁에(旁)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若無人者). 荊軻雖游於酒人乎, 然其爲人沈深好書; 其所游諸侯, 盡與其賢豪長者相結. 其之燕, 燕之處士田光先生亦善待之, 知其非庸人也. 

 

* 擊筑(격축): 축(筑)을 연주함. 축(筑)은 쟁(爭)과 같은 모양과 구조에 가늘고 긴 봉 모양의 몸체 위에 5줄의 현을 달아 죽편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다.


26 居頃之, 會燕太子丹質秦亡歸燕. 燕太子丹者, 故嘗質於趙, 而秦王政生於趙, 其少時與丹驩. 及政立爲秦王, 而丹質於秦. 秦王之遇燕太子丹不善, 故丹怨而亡歸. 歸而求爲報秦王者, 國小, 力不能. 其後秦日出兵山東以伐齊·楚·三晉, 稍蠶食諸侯, 且至於燕, 燕君臣皆恐禍之至. 太子丹患之, 問其傅鞠武. 武對曰: "秦地遍天下, 威脅韓·魏·趙氏, 北有甘泉·谷口之固, 南有涇·渭之沃, 擅巴·漢之饒, 右隴·蜀之山, 左關·殽之險, 民眾而士厲, 兵革有餘. 意有所出, 則長城之南, 易水以北, 未有所定也. 柰何以見陵之怨, 欲批其逆鱗哉!" 丹曰: "然則何由?" 對曰: "請入圖之." 

26 얼마 뒤(居頃之), 마침(會) 연나라 태자 단이(燕太子丹) 진나라에 인질로 갔다가(質秦) 연나라로 도망쳐 돌아왔다(亡歸燕). 연태자 단은(燕太子丹者), 일찍이(故嘗) 조나라에 인질로 갔다가(質於趙, 而) 진왕 정이(秦王政) 조나라에서 태아나고(生於趙), 그가 어렸을 때(其少時) 단과 함께 사이좋게 지냈다(與丹驩). 정이 즉위하여(政立) 진왕이 되었을 때(爲秦王, 而) 단이(丹) 진나라에 인질로 갔다(質於秦). 진왕이(秦王之) 연태자 단을 만나서(遇燕太子丹) 잘 대우하지 않았고(不善), 그러므로(故) 단이 원망하며(丹怨而) 도망쳐 돌아왔다(亡歸). 돌아와서(歸而) 진왕에게 복수할 사람을(爲報秦王者) 구했지만(求), 나라가 작고(國小), 힘이 할 수 없었다(力不能). 그뒤(其後) 진나라가(秦) 날마다(日) 산동으로 군대를 보내(出兵山東以) 제나라와 초나라, 삼진을 침략하고(伐齊·楚·三晉), 제후의 조금씩 잠식하고(稍蠶食諸侯), 또(且) 연나라에 이르러(至於燕), 연나라 임금과 신하가(燕君臣) 모두(皆)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恐禍之至). 태자 단이(太子丹) 이것을 걱정하여(患之), 그의 태부 국무에게 물었다(問其傅鞠武).

무가 대답하길(武對曰): "진나라의 땅이(秦地) 천하에 퍼져 있어(遍天下), 한나라와 위나라, 조나라를 위협하고(威脅韓·魏·趙氏), 북쪽에(北) 감천과 곡구의 견고함이 있고(有甘泉·谷口之固), 남쪽에(南) 경수와 위수의 기름진 땅이 있고(有涇·渭之沃), 파와 한중의 넉넉함을 독차지하고(擅巴·漢之饒), 오른쪽으로(右) 농과 촉의 산이 있고(隴·蜀之山), 왼쪽으로(左) 관과 효의 험한 곳이 있고(關·殽之險), 백성이 많고(民眾而) 병사가 사나우며(士厲), 무기와 장비에(兵革) 넉넉함이 있습니다(有餘). 뜻에(意) 나올 곳이 있다면(有所出, 則) 장성의 남쪽과(長城之南), 역수의 북쪽에는(易水以北), 안정된 곳이 없을 것입니다(未有所定也). 어찌(柰何) 능욕당한 원한으로(以見陵之怨), 그 역린을 거스르려고 합니까(欲批其逆鱗哉)!"라고 했다.

단이 말하길(丹曰): "그렇다면(然則) 어찌해야 합니까(何由)?"라고 했다.

대답하기를(對曰): "청컨대(請) 들어가서 생각해보겠습니다(入圖之)." 

 

* 稍蠶食之(초잠식지): 점차적으로 조금씩 침략(侵略)하여 들어감.


아호지혜(餓虎之蹊) /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 고기를 던져놓다

27 居有閒, 秦將樊於期得罪於秦王, 亡之燕, 太子受而捨之. 鞠武諫曰: "不可. 夫以秦王之暴而積怒於燕, 足爲寒心, 又況聞樊將軍之所在乎? 是謂『委肉當餓虎之蹊』也, 禍必不振矣! 雖有管·晏, 不能爲之謀也. 願太子疾遣樊將軍入匈奴以滅口. 請西約三晉, 南連齊·楚, 北購於單于, 其後乃可圖也." 太子曰: "太傅之計, 曠日彌久, 心惛然, 恐不能須臾. 且非獨於此也, 夫樊將軍窮困於天下, 歸身於丹, 丹終不以迫於彊秦而棄所哀憐之交, 置之匈奴, 是固丹命卒之時也. 願太傅更慮之." 鞠武曰: "夫行危欲求安, 造禍而求福, 計淺而怨深, 連結一人之後交, 不顧國家之大害, 此所謂『資怨而助禍』矣. 夫以鴻毛燎於爐炭之上, 必無事矣. 且以鵰鷙之秦, 行怨暴之怒, 豈足道哉! 燕有田光先生, 其爲人智深而勇沈, 可與謀." 太子曰: "願因太傅而得交於田先生, 可乎?" 鞠武曰: "敬諾." 出見田先生, 道「太子願圖國事於先生也」. 田光曰: "敬奉教." 乃造焉. 

27 얼마간 시간이 지나(居有閒), 진나라의 장수 번오기가(秦將樊於期) 진왕에게 죄를 짓고(得罪於秦王), 도망쳐서 연나라에 오니(亡之燕), 태자가 받아들이고(太子受而) 거처를 주었다(捨之).

국무가 간하기를(鞠武諫曰): "안됩니다(不可). 전 진왕은 포악하기 때문에(夫以秦王之暴而) 연나라에 원한을 쌓으면(積怒於燕), 서늘한 마음이 되는데(足爲寒心), 또한(又) 하물며(況) 번 장군이 있는 곳을(樊將軍之所在) 듣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乎)? 이것은(是)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當餓虎之蹊) 고기를 놓은 것과(委肉) 같은 말로(也), 화가(禍) 반드시(必) 거두어지지 않을 것입니다(不振矣)! 비록(雖) 관중과 안영이 있더라도(有管·晏), 그것을 위해(爲之) 계책을 낼 수 없습니다(不能謀也). 원컨대(願) 태자께서(太子) 빨리(疾) 번 장군을 보내서(遣樊將軍) 흉노 땅에 들어가도록 해서(入匈奴以) 말을 없애십시오(滅口). 청컨대(請) 서쪽으로(西) 삼진과 약속하고(約三晉), 남쪽으로(南) 제초와 연합하고(連齊·楚), 북쪽으로(北) 선우와 화친하고(購於單于), 그 뒤에(其後) 비로소(乃) 도모할 수 있습니다(可圖也)."라고 했다.

태자가 말하길(太子曰): "태부의 계획은(太傅之計), 허송세월하며(曠日) 더욱 오래 걸리니(彌久), 마음이 근심스럽고(心惛然), 두려움은(恐) 잠시라도 기다리지 못합니다(不能須臾). 또(且) 다만 이것에 있어서만이 아니라(非獨於此也), 번 장군이(夫樊將軍) 천하에서 곤궁해져서(窮困於天下), 나에게 몸을 의탁했는데(歸身於丹), 내가(丹) 끝내(終) 강한 진나라에 핍박받는 것으로(以迫於彊秦而) 가여운 친구를 버릴 수 없고(棄所哀憐之交), 그를 흉노에 둔다면(置之匈奴), 이것은(是) 진실로(固) 내 운명이 다했을(丹命卒之) 때입니다(時也). 원컨대(願) 태부께서(太傅) 다시(更) 생각해보십시오(慮之)."라고 했다.

국무가 말하길(鞠武曰):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夫行危) 편안함을 구하려고 하고(欲求安), 재앙을 만들면서(造禍而) 복을 구하려고 하면(求福), 계책이 얕아지고(計淺而) 원한은 깊어지며(怨深), 한 사람의 나중 교류를(一人之後交) 이어가려고(連結), 나라의 큰 해악을(國家之大害) 돌아보지 않는 것은(不顧), 이것은(此) 이른바(所謂) 『원한을 쌓아서(資怨而) 재앙을 만드는 것(助禍)』입니다(矣). 기러기 깃털로(夫以鴻毛) 화로 위에서 태우는 것은(燎於爐炭之上), 반드시(必) 일이 되지 않습니다(無事矣). 또(且) 독수리나 매 같은 진나라로(以鵰鷙之秦), 원망과 포악한 노여움을 행한다면(行怨暴之怒), 어찌(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足道哉)! 연나라에(燕) 전광 선생이 있어(有田光先生), 그 사람 됨이 지혜롭고 깊으며(其爲人智深而) 용감하고 침착하니(勇沈), 함께 상의할만 합니다(可與謀)."라고 했다.

태자가 말하길(太子曰): "원컨대(願) 태부를 통해(因太傅而) 전 선생과 사귀고 싶은데(得交於田先生), 가능할까요(可乎)?"라고 했다.

국무가 말하길(鞠武曰): "삼가 받들것입니다(敬諾)."라고 했다. 나가서(出) 전 선생을 만나고(見田先生), 태자가(太子) 선생에게(於先生) 국사를 의논하기를 바란다고(願圖國事也) 말했따(道).

전광이 말하길(田光曰): "삼가(敬) 가르침을 받듭니다(奉教)."라고 했다. 이에(乃) <태자를> 만났다(造焉). 

 

* 曠日(광일): 쓸데없이(하는 일이 없이)많은 날을 허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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