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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7 이사열전(李斯列傳) 1/3] 간축객서(諫逐客書) / 진나라가 이사를 등용하여 객경으로 삼다

by प्रज्ञा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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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李斯者, 楚上蔡人也. 年少時, 爲郡小吏, 見吏舍廁中鼠食不絜, 近人犬, 數驚恐之. 斯入倉, 觀倉中鼠, 食積粟, 居大廡之下, 不見人犬之憂. 於是李斯乃嘆曰: "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 

1 이사는(李斯者), 초나라(楚) 상제 사람이다(上蔡人也). 나이가(年) 어렸을 때(少時), 군의 소리가 되어(爲郡小吏), 관리 숙소(吏舍) 화장실에서(廁中) 쥐가(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다가(食不絜),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오면(近人犬), 자주(數) 놀라고 두려워하는 꼴을(驚恐之) 보았다(見). 그러나(斯) 창고에 들어가서(入倉), 창고 가운데 있는 쥐가(倉中鼠), 쌓아둔 곡식을 먹고(食積粟), 큰 집 아래에 살면서(居大廡之下), 사람이나 개의 걱정을 당하지 않는 것을(不見人犬之憂) 보았다(觀).

이에(於是) 이사가(李斯) 탄식하며 말하길(乃嘆曰): "사람의(人之) 현명함과 못남이(賢不肖) 비유하자면(譬如) 쥐와 같으니(鼠矣), 자신이 처한 것에(所自處) 달렸을 뿐이구나(耳)!"라고 했다. 


2 乃從荀卿學帝王之術. 學已成, 度楚王不足事, 而六國皆弱, 無可爲建功者, 欲西入秦. 辭於荀卿曰: "斯聞得時無怠, 今萬乘方爭時, 游者主事. 今秦王欲吞天下, 稱帝而治, 此布衣馳騖之時而游說者之秋也. 處卑賤之位而計不爲者, 此禽鹿視肉, 人面而能閒行者耳. 故詬莫大於卑賤, 而悲莫甚於窮困. 久處卑賤之位, 困苦之地, 非世而惡利, 自託於無爲, 此非士之情也. 故斯將西說秦王矣." 

2 이에(乃) 순경을 따라(從荀卿) 제왕의 기술을 배웠다(學帝王之術). 학문이 이루어지고 나서(學已成), 초왕이(楚王) 섬기기에 부족하고(不足事, 而) 여섯 나라가(六國) 모두 약해서(皆弱), 공을 세울 만한 나라가 없음을(無可爲建功者) 헤아리고(度), 서쪽으로 가서(西) 진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入秦).

순경에게 인사하며 말하길(辭於荀卿曰): "저는(斯) 때를 얻으면(得時) 게으르지 말라고(無怠) 들었는데(聞), 지금(今) 만승의 제후가(萬乘) 바야흐로(方) 때를 다투고(爭時), 유세객이(游者) 일을 주로 합니다(主事). 지금(今) 진왕이(秦王) 천하를 삼키려고 하며(欲吞天下), 제를 일컫고(稱帝而) 다스리니(治), 이것은(此) 벼슬 없는 선비가(布衣) 달려갈 때이고(馳騖之時而) 유세객의 때입니다(游說者之秋也). 비천한 자리에 머물면서(處卑賤之位而) 계책을 만들지 않는 것은(計不爲者), 이것은(此) 짐승이(禽鹿) 고기를 보고도(視肉), 사람이 쳐다본다고(人面而) 사잇길로 가는 것일 뿐입니다(能閒行者耳). 그러므로(故) 치은(詬) 비천한 것보다 큰 것이 없고(莫大於卑賤, 而) 슬픔은(悲) 곤궁한 것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莫甚於窮困). 비천한 지위와(卑賤之位), 곤궁한 자리에(困苦之地) 오래 있으면서(久處), 세상을 비난하고(非世而) 이익을 미워하며(惡利),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於無爲) 자기를 맡기는 것은(託), 이것은(此) 선비의 마음이 아닙니다(非士之情也). 그러므로(故) 저는(斯) 서쪽(西) 진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說秦王矣)."라고 했다.

 

* 禽鹿(금록) : 禽獸와 같다. 날짐승과 길짐승. 모든 짐승. 

* 人面而能閒行者耳: '사람 모습을 하고서, 억지로 살아가는(한가로이 지내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3 至秦, 會莊襄王卒, 李斯乃求爲秦相文信侯呂不韋舍人; 不韋賢之, 任以爲郎. 李斯因以得說, 說秦王曰: "胥人者, 去其幾也. 成大功者, 在因瑕釁而遂忍之. 昔者秦穆公之霸, 終不東并六國者, 何也? 諸侯尚眾, 周德未衰, 故五伯迭興, 更尊周室. 自秦孝公以來, 周室卑微, 諸侯相兼, 關東爲六國, 秦之乘勝役諸侯, 蓋六世矣. 今諸侯服秦, 譬若郡縣. 夫以秦之彊, 大王之賢, 由灶上騷除, 足以滅諸侯, 成帝業, 爲天下一統, 此萬世之一時也. 今怠而不急就, 諸侯復彊, 相聚約從, 雖有黃帝之賢, 不能并也." 秦王乃拜斯爲長史, 聽其計, 陰遣謀士齎持金玉以游說諸侯. 諸侯名士可下以財者, 厚遺結之; 不肯者, 利劍刺之. 離其君臣之計, 秦王乃使其良將隨其後. 秦王拜斯爲客卿. 

3 진나라에 이르렀을 때(至秦), 마침(會) 장양왕이 죽었고(莊襄王卒), 이사가(李斯) 이에(乃) 진나재상(秦相) 문신후 여불위의(文信侯呂不韋) 사인이 되었고(求爲舍人); 여불위가(不韋) 그를 현명하다고 생각해서(賢之), 등용하여(任以) 낭으로 삼았다(爲郎).

이사가(李斯) 이것으로(因以) 유세할 수 있게 되자(得說), 진왕을 설득하여 말하길(說秦王曰): "평범한 사람은(胥人者), 그 기회를 보내지만(去其幾也). 성공한 사람은(成大功者),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因瑕釁而) 나아가 독하게 하는 것에(遂忍之) 있습니다(在). 옛날(昔者) 진 목공이(秦穆公之) 패자가 되고서(霸), 끝내(終) 동쪽으로(東) 여섯 나라를 병합하지 못한 것은(并六國者), 어째서인가요(何也)? 제후가(諸侯) 여전히 많고(尚眾), 주나라의 덕이(周德) 아직 약해지지 않았고(未衰), 그러므로(故) 오패가(五伯) 번갈아 일어나(迭興), 다시(更) 주 왕실을 존중해서입니다(尊周室). 진 효공 이래로(自秦孝公以來), 주 왕실이(周室) 낮고 미약해지고(卑微), 제후들이(諸侯) 서로 겸병해서(相兼), 관동은(關東) 여섯 나라가 되었고(爲六國), 진나라가(秦之) 승세를 타고(乘勝) 제후를 부려온 것이(役諸侯), 대개(蓋) 6세가 되었습니다(六世矣). 지금(今) 제후들이(諸侯) 진나라에 복종해서(服秦), 마치 군현과 같습니다(譬若郡縣). 무릇(夫) 진나라의 강함과(以秦之彊), 대왕의 현명함은(大王之賢), 부엌의 먼지를 청소하는 것과(灶上騷除) 같아서(由), 제후를 멸하고(滅諸侯), 제업을 이루어(成帝業), 천하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고(足以爲天下一統), 이것은(此) 만세의 한 번 있을 일입니다(萬世之一時也). 지금(今) 게으름 피우고(怠而) 급하게 나아가지 않으면(不急就), 제후들이(諸侯) 다시 강해져서(復彊), 서로 모여(相聚) 합종을 약속하면(約從), 비록(雖) 황제의 현명함이 있더라도(有黃帝之賢), 병합할 수 없습니다(不能并也)."라고 했다.

진왕이(秦王) 이에(乃) 이사를 등용하여(拜斯) 장사로 삼고(爲長史), 그 계책을 듣고(聽其計), 은밀하게(陰) 모사가 금과 옥을 가지고(謀士齎持金玉以) 제후를 설득하도록(游說諸侯) 보냈다(遣). 제후의 명사 가운데(諸侯名士) 재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可下以財者), 후한 선물로 묶고(厚遺結之); 기꺼이 하지 않는 사람은(不肯者), 날카로운 검으로 찔렀다(利劍刺之). 그 임금과 신하를 떨어뜨리는(離其君臣之) 계책을 쓰고(計), 진왕이(秦王) 이에(乃) 그 뛰어난 장수를 시켜(使其良將) 그 뒤를 따르게 했다(隨其後). 진왕이(秦王) 이사를 등용해서(拜斯) 객경으로 삼았다(爲客卿). 


4 會韓人鄭國來閒秦, 以作注溉渠, 已而覺. 秦宗室大臣皆言秦王曰: "諸侯人來事秦者, 大抵爲其主游閒於秦耳, 請一切逐客." 李斯議亦在逐中. 斯乃上書曰: 

4 때마침(會) 한나라의(韓人) 정국이(鄭國) 와서(來) 진나라를 이간질시키려고(閒秦, 以) 주개거(물 대는 운하)를 만들려다가(作注溉渠), 얼마 안 되어 발각되었다(已而覺). 진나라의(秦) 종실과 대신이(宗室大臣) 모두(皆) 진왕에게 말하길(言秦王曰): "제후국의 사람이 와서(諸侯人來) 진나라를 섬기는 사람은(事秦者), 대체로(大抵) 자기 군주를 위해(爲其主) 진나라에(於秦) 이간질시키는 유세를 할 뿐이니(游閒耳), 청컨대(請) 모두(一切) 빈객을 쫓아내야 합니다(逐客)."라고 했다. 이사가(李斯) 의논의 대상이 되었고(議) 또한(亦) 내쫓기는 사람 가운데 있었다(在逐中). 이사가(斯) 이에(乃) 글을 올려 말하길(上書曰): 


5 臣聞吏議逐客, 竊以爲過矣. 昔繆公求士, 西取由余於戎, 東得百里奚於宛, 迎蹇叔於宋, 來丕豹·公孫支於晉. 此五子者, 不產於秦, 而繆公用之, 并國二十, 遂霸西戎.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彊,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楚·魏之師, 舉地千里, 至今治彊. 惠王用張儀之計, 拔三川之地, 西并巴·蜀, 北收上郡, 南取漢中, 包九夷, 制鄢·郢, 東據成皋之險, 割膏腴之壤, 遂散六國之從, 使之西面事秦, 功施到今. 昭王得范睢, 廢穰侯, 逐華陽, 彊公室, 杜私門, 蠶食諸侯, 使秦成帝業. 此四君者, 皆以客之功. 由此觀之, 客何負於秦哉! 向使四君卻客而不內, 疏士而不用, 是使國無富利之實而秦無彊大之名也. 

5 신이 듣건대(臣聞) 관리들이(吏) 빈객을 쫓아낼 것을 의논한다고 하니(議逐客), 가만히 생각해 보면(竊) 잘못된 것입니다(以爲過矣). 옛날(昔) 목공이(繆公) 선비를 구해서(求士), 서쪽으로(西) 융에서 유여를 취했고(取由余於戎), 동으로(東)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고(得百里奚於宛), 송에서 건숙을 맞이하고(迎蹇叔於宋), 진에서 비표와 공손자를 오도록 했습니다(來丕豹·公孫支於晉). 이 다섯 사람은(此五子者),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지만(不產於秦, 而) 목공이 이들을 등용하고(繆公用之), 스무 나라를 병합하고(并國二十), 마침내(遂) 서융의 패자가 되었습니다(霸西戎). 효공은(孝公) 상앙의 법을 채용해서(用商鞅之法), 풍속을 바꾸어(移風易俗), 백성이(民) 이것으로 번성했고(以殷盛), 나라가(國) 이것으로 부강해져서(以富彊), 백성이(百姓) 쓰이는 것을 즐거워하고(樂用), 제후가 친히 복종하고(諸侯親服),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사로잡아(獲楚·魏之師), 땅을 들어낸 것이(舉地) 천리이고(千里), 지금까지(至今) 다스려지고 강성합니다(治彊). 혜왕이(惠王) 장의의 계책을 써서(用張儀之計), 삼천의 땅을 빼앗고(拔三川之地), 서쪽으로(西) 파촉을 병합하고(并巴·蜀), 북쪽으로(北) 상군을 거두고(收上郡), 남쪽으로 한중을 취하고(南取漢中), 구이를 포섭해서(包九夷), 언과 영을 제압하고(制鄢·郢), 동으로(東) 성고의 험지에 의지하고(據成皋之險), 기름진 땅을 떼어 받아(割膏腴之壤), 마침내(遂) 육국의 합종을 흩어버리고(散六國之從), 그들로 하여금(使之) 서면하여(西面) 진을 섬기도록 해서(事秦), 공을 베푼 것이(功施) 오늘에 이르렀습니다(到今). 소왕이(昭王) 범저를 얻어(得范睢), 양후를 폐하고(廢穰侯), 화양군을 내쫓고(逐華陽), 공실을 강하게 만들고(彊公室), 사문을 막고(杜私門), 제후를 잠식하여(蠶食諸侯), 진나라로 하여금(使秦) 제업을 이루도록 했습니다(成帝業). 이 네 임금은(此四君者), 모두(皆) 빈객의 공을 이용했습니다(以客之功). 이것으로 보면(由此觀之), 빈객이(客) 어찌(何) 진나라를 저버린 것이겠습니까(負於秦哉)! 만약(向) 네 군주가(使四君) 빈객을 물리치고(卻客而) 안으로 들이지 않고(不內), 선비를 멀리하고(疏士而) 등용하지 않았다면(不用), 이것은(是) 나라로 하여금(使國) 부유하고 이롭다는 실질이 없도록 하고(無富利之實而) 진나라에(秦) 강대하다는 명성을 없도록 했을 것입니다(無彊大之名也). 


6 今陛下致昆山之玉, 有隨·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劍, 乘纖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靈鼉之鼓. 此數寶者, 秦不生一焉, 而陛下說之, 何也? 必秦國之所生然後可, 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 犀象之器不爲玩好, 鄭·衛之女不充後宮, 而駿良駃騠不實外廄, 江南金錫不爲用, 西蜀丹青不爲采. 所以飾後宮充下陳娛心意說耳目者, 必出於秦然後可, 則是宛珠之簪, 傅璣之珥, 阿縞之衣, 錦繡之飾不進於前,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不立於側也. 夫擊甕叩缶彈箏搏髀, 而歌呼嗚嗚快耳(目)者, 真秦之聲也; 鄭·衛·桑閒·昭·虞·武·象者, 異國之樂也.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 退彈箏而取昭虞, 若是者何也? 快意當前, 適觀而已矣. 今取人則不然.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 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在乎人民也.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6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곤륜산의 옥이 이르도록 하고(致昆山之玉), 수씨와 화씨의 보물을 가졌고(有隨·和之寶), 명월주를 늘어뜨리고(垂明月之珠), 태아검을 차고(服太阿之劍), 섬리마를 타고(乘纖離之馬), 취봉기를 세우고(建翠鳳之旗), 영타고를 두었습니다(樹靈鼉之鼓). 이(此) 몇 가지 보물은(數寶者), 진나라가(秦)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不生一焉, 而) 폐하가(陛下)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說之), 어째서입니까(何也)? 반드시(必) 진나라가(秦國之) 만든 것만이(所生然後) 가능하다면(可, 則) 이것은(是) 야광벽이(夜光之璧) 조정을 꾸밀 수 없고(不飾朝廷), 코뿔소 뿔과 상아로 만든(犀象之) 기물이(器) 노리갯감이 될 수 없고(不爲玩好), 정나라와 위나라 여자가(鄭·衛之女) 후궁으로 들어올 수 없고(不充後宮, 而) 결제 같은 준마가(駿良駃騠) 바깥 마구간을 채울 수 없고(不實外廄), 강남의 금과 주석은(江南金錫) 쓰일 수 없으며(不爲用), 서촉의 단청이(西蜀丹青) 칠해질 수 없습니다(不爲采). 후궁을 꾸미고(飾後宮) 당아래 늘어 세워(充下陳) 마음을 즐겁게 하고(娛心意) 눈과 귀를 기쁘게 하는 것도(所以說耳目者), 반드시(必) 진나라에서 나온 뒤에야(出於秦然後) 가능하다면(可, 則) 이것은(是) 완주 땅의 비녀와(宛珠之簪), 부기의 귀걸이(傅璣之珥), 아호의 옷(阿縞之衣), 금수의 장식도(錦繡之飾) 앞에 나올 수 없고(不進於前, 而) 세속을 따라(隨俗) 우아하게 만들고(雅化) 아름답게 꾸민(佳冶) 예쁜 조나라 여인도(窈窕趙女) 곁에 설 수 없습니다(不立於側也). 무릇(夫) 항아리를 치고(擊甕) 부를 두드리고(叩缶) 쟁을 퉁기고(彈箏) 넓적다리를 치면서(搏髀, 而) 노래 부르며(歌呼嗚嗚)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快耳(目)者), 참으로(真) 진나라 소리이고(秦之聲也); 정, 위, 상간, 소, 우, 무, 상은(鄭·衛·桑閒·昭·虞·武·象者),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異國之樂也). 지금(今) 항아리를 치고, 부를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棄擊甕叩缶而) 정과 위에 나아가고(就鄭衛), 쟁을 퉁기는 것을 물리고(退彈箏而) 소와 우를 취했는데(取昭虞), 이와 같은 것은(若是者) 어째서인가요(何也)?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快意) 앞에 있고(當前), 보기에 좋기 때문입니다(適觀而已矣). 지금(今) 사람을 취하는 것은(取人則) 그렇지 않습니다(不然). 가부를 묻지 않고(不問可否), 굽고 곧은 것을 따지지 않고(不論曲直),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非秦者) 버리고(去), 빈객이 된 사람은(爲客者) 쫓아냅니다(逐). 그렇다면(然則) 이것은(是)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所重者) 좋은 음악과 주옥에 있고(在乎色樂珠玉, 而) 가볍게 여기는 것이(所輕者)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在乎人民也). 이것은(此) 천하를 차지하고(跨海內) 제후를 제압하는(制諸侯之) 방법이 아닙니다(非所以術也). 


7 臣聞地廣者粟多, 國大者人眾, 兵彊則士勇. 是以太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卻眾庶, 故能明其德. 是以地無四方, 民無異國, 四時充美, 鬼神降福,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 今乃棄黔首以資敵國, 卻賓客以業諸侯, 使天下之士退而不敢西向, 裹足不入秦,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 

7 신이 듣건대(臣聞) 땅이 넓으면(地廣者) 곡식이 많고(粟多), 나라가 크면(國大者) 사람이 많고(人眾), 군대가 강하면(兵彊則) 병사가 용감합니다(士勇). 이 때문에(是以) 태산은(太山) 흙덩이를 양보하지 않고(不讓土壤), 그러므로(故) 그 크기를 이루었고(能成其大); 하태는(河海)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不擇細流), 그러므로(故) 그 깊이를 이루었고(能就其深); 왕자는(王者) 많은 백성을 물리치지 않고(不卻眾庶), 그러므로(故)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能明其德). 이 때문에(是以) 땅에(地) 사방의 구분이 없고(無四方), 백성에(民) 다른 나라의 구분이 없고(無異國), 사계절이(四時) 아름답고(充美), 귀신이 복을 내리니(鬼神降福), 이것은(此) 오제와 삼왕이(五帝·三王之) 적수가 없던 까닭입니다(所以無敵也). 지금(今) 이에(乃) 백성을 버려서(棄黔首以) 적국을 이롭게 하고(資敵國), 빈객을 물리쳐서(卻賓客以) 제후의 업적을 이루도록 하고(業諸侯), 천하의 선비로 하여금(使天下之士) 물러나서(退而) 감히 서쪽으로 오지 못하게 해서(不敢西向), 발을 묶고(裹足) 진나라에 들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不入秦), 이것은(此) 이른바(所謂) '도적에게 군사를 빌려주고(藉寇兵而) 도둑에게 식량을 주는(齎盜糧)」 것입니다(者也). 


8 夫物不產於秦, 可寶者多; 士不產於秦, 而願忠者眾. 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讎,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 求國無危, 不可得也. 

8 무릇(夫) 물건이(物) 진나라에서 나지 않은 것 중에(不產於秦), 보물이라고 할 것이 많고(可寶者多); 선비가(士)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더라도(不產於秦, 而) 충성하기를 바라는 사람이(願忠者) 많습니다(眾). 지금(今) 빈객을 쫓아내서(逐客以) 적국을 이롭게 하고(資敵國), 백성을 줄여서(損民以) 원수에게 보태주는 것은(益讎), 안으로(內) 저저로 비고(自虛而) 바깥으로(外) 제후에게 원한을 심어주어(樹怨於諸侯), 나라에(國) 위험이 없기를(無危) 바라더라도(求), 그러게 할 수 없습니다(不可得也). 

 

9 秦王乃除逐客之令, 復李斯官, 卒用其計謀. 官至廷尉. 二十餘年, 竟并天下, 尊主爲皇帝, 以斯爲丞相. 夷郡縣城, 銷其兵刃, 示不復用. 使秦無尺土之封, 不立子弟爲王, 功臣爲諸侯者, 使後無戰攻之患. 

9 진왕이(秦王) 이에(乃) 축객령을 거두고(除逐客之令), 다시(復) 이사의 관직을 주어(李斯官), 마침내(卒) 그 계책을 썼다(用其計謀). 관직이(官) 정위에 이르렀따(至廷尉). 20여년이 지나(二十餘年), 마침내(竟) 천하를 병합하고(并天下), 군주를 높여(尊主) 황제로 만들고(爲皇帝), 이사를(以斯) 승상으로 삼았다(爲丞相). 군현의 성을 허물고(夷郡縣城), 그 무기와 칼을 녹여(銷其兵刃), 다시 쓰지 않을 것을 보여주었다(示不復用). 진나라로 하여금(使秦) 한 치의 땅을 봉하는 것도 없도록 하고(無尺土之封), 자제를 세워(立子弟) 왕으로 삼지 않고(爲王), 공신을(功臣) 제후로 삼은 것은(爲諸侯者), 나중에(後) 전란의 걱정거리를 없도록(無戰攻之患) 하려는 것이었다(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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