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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6 자객열전(刺客列傳) 3/3] 역수가(易水歌) / 형가의 암살 시도가 실패하다

by प्रज्ञा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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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太子逢迎, 卻行爲導, 跪而蔽席. 田光坐定, 左右無人, 太子避席而請曰: "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田光曰: "臣聞騏驥盛壯之時, 一日而馳千里; 至其衰老, 駑馬先之. 今太子聞光盛壯之時, 不知臣精已消亡矣. 雖然, 光不敢以圖國事, 所善荊卿可使也." 太子曰: "願因先生得結交於荊卿, 可乎?" 田光曰: "敬諾." 即起, 趨出. 太子送至門, 戒曰: "丹所報, 先生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也!" 田光俛而笑曰: "諾." 僂行見荊卿, 曰: "光與子相善, 燕國莫不知. 今太子聞光壯盛之時, 不知吾形已不逮也, 幸而教之曰『燕秦不兩立, 願先生留意也』. 光竊不自外, 言足下於太子也, 願足下過太子於宮." 荊軻曰: "謹奉教." 田光曰: "吾聞之, 長者爲行, 不使人疑之. 今太子告光曰: '所言者, 國之大事也, 願先生勿泄』, 是太子疑光也. 夫爲行而使人疑之, 非節俠也." 欲自殺以激荊卿, 曰: "願足下急過太子, 言光已死, 明不言也." 因遂自刎而死. 

28 태자가(太子) 나아가 맞이하고(逢迎), 물러나(卻行) <길을> 인도하고는(爲導), 꿇어앉아(跪而) 자리의 먼지를 털었다(蔽席). 전광이(田光) 좌정하고(坐定), 주변에 사람이 없자(左右無人),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太子避席而) 청하며 말하길(請曰): "연나라와 진나라는(燕秦) 양립할 수 없으니(不兩立), 원컨대(願) 선생이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先生留意也)."라고 했다.

전광이 말하길(田光曰): "신은(臣) 준마가(騏驥) 기운이 왕성할 때는(盛壯之時), 하루에(一日而) 천리를 달리고(馳千里); 쇠약하고 늙었을 때는(至其衰老), 둔한 말이라도(駑馬) 그것을 앞지른다고(先之) 들었습니다(聞). 지금(今) 태자는(太子) 제가 왕성하던 시절을(光盛壯之時) 들었지만(聞), 신의 정력이(臣精) 이미 없어진 것을(已消亡) 알지 못합니다(不知矣). 비록 그렇지만(雖然), 제가(光) 감히(敢) 국사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以圖國事), 사이좋게 지내는 형경이라면(所善荊卿) 사자로 보낼만합니다(可使也)."라고 했다.

태자가 말하길(太子曰): "원컨대(願) 선생을 통해(因先生) 형경과(於荊卿) 교제를 맺는 것이(得結交), 가능할까요(可乎)?"라고 했다.

전광이 말하길(田光曰): "삼가 받들겠습니다(敬諾)."라고 했다. 곧 일어나(即起), 달려 나갔다(趨出).

태자가(太子) 배웅하며(送) 문에 이르러(至門), 경계하며 말하길(戒曰): "제가(丹) 말한 것과(所報), 선생이 말한 것은(先生所言者), 나라의 큰 일이니(國之大事也), 원컨대(願) 선생께서(先生) 새나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勿泄也)!"라고 했다.

전광이(田光) 고개를 숙이고(俛而) 웃으며 말하길(笑曰): "알겠습니다(諾)."라고 했다.

재빨리 가서(僂行) 형경을 만나서(見荊卿), 말하길(曰): "나와 그대가(光與子) 서로 사이가 좋은 것은(相善), 연나라에서(燕國)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莫不知). 지금(今) 태자가(太子) 내가 왕성하던 시절을 듣고(聞光壯盛之時), 내 몸이(吾形) 이미 따라가지 못함을(已不逮) 알지 못하고(不知也), 황송하게도(幸而) 하교하여 말하길(教之曰) 『연나라와 진나라가(燕秦) 양립할 수 없으니(不兩立), 원컨대(願) 선생이 뜻을 남겨주기 바랍니다(先生留意也)』라고 했다. 내가(光) 슬그머니(竊) 나의 바깥으로 여기고(不自外), 태자에게(於太子也) 그대를 말했으니(言足下), 원컨대(願) 그대가(足下) 궁에서(於宮) 태자에게 들르기 바란다(過太子)."라고 했다.

형가가 말하길(荊軻曰): "삼가(謹)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奉教)."라고 했다.

전광이 말하길(田光曰): "내가 들으니(吾聞之), 장자가(長者) 행동할 때는(爲行), 남의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도록 한다(不使人疑之)고 했다. 지금(今) 태자가 나에게 말하길(太子告光曰): '말한 것은(所言者), 나라의 큰 일이니(國之大事也), 원컨대(願) 선생께서(先生) 새나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勿泄)'라고 했으니, 이것은(是) 태자가(太子) 나를 의심한 것이다(疑光也). 무릇(夫) 행동하면서(爲行而) 남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한다면(使人疑之), 절개 있는 협객이 아니다(非節俠也)."라고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自殺以) 형경을 격동시키려고 하며(激荊卿), 말하길(曰): "원컨대(願) 그대가(足下) 급히(急) 태자를 만나서(過太子), 내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고(言光已死), 말하지 않았음을 밝혀 주시오(明不言也)."라고 했다. 그리고는(因) 마침내(遂) 스스로 목을 찔러(自刎而) 죽었다(死).

 

* 避席(피석): 웃어른에게 공경()을 표()하기 위()하여 모시던 자리에서 일어남. 피좌().

* 留意(유의): 마음에 새겨 두어 조심()하며 관심()을 가짐.


29 荊軻遂見太子, 言田光已死, 致光之言. 太子再拜而跪, 膝行流涕, 有頃而後言曰: "丹所以誡田先生毋言者, 欲以成大事之謀也. 今田先生以死明不言, 豈丹之心哉!" 荊軻坐定, 太子避席頓首曰: "田先生不知丹之不肖, 使得至前, 敢有所道, 此天之所以哀燕而不棄其孤也. 今秦有貪利之心, 而欲不可足也. 非盡天下之地, 臣海內之王者, 其意不厭. 今秦已虜韓王, 盡納其地. 又舉兵南伐楚, 北臨趙; 王翦將數十萬之眾距漳·鄴, 而李信出太原·雲中. 趙不能支秦, 必入臣, 入臣則禍至燕. 燕小弱, 數困於兵, 今計舉國不足以當秦. 諸侯服秦, 莫敢合從. 丹之私計愚, 以爲誠得天下之勇士使於秦, 闚以重利; 秦王貪, 其勢必得所願矣. 誠得劫秦王, 使悉反諸侯侵地, 若曹沫之與齊桓公, 則大善矣; 則不可, 因而刺殺之. 彼秦大將擅兵於外而內有亂, 則君臣相疑, 以其閒諸侯得合從, 其破秦必矣. 此丹之上願, 而不知所委命, 唯荊卿留意焉." 久之, 荊軻曰: "此國之大事也, 臣駑下, 恐不足任使." 太子前頓首, 固請毋讓, 然後許諾. 於是尊荊卿爲上卿, 舍上舍. 太子日造門下, 供太牢具, 異物閒進, 車騎美女恣荊軻所欲, 以順適其意.

29 형가가(荊軻) 마침내(遂) 태자를 만나서(見太子), 전광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고(言田光已死), 전광의 말을 이르게 했다(致光之言).

태자가(太子) 재배하고(再拜而) 무릎을 꿇고(跪), 무릎으로 기며(膝行) 눈물을 흘리고(流涕), 잠깐 있다가(有頃而後) 말하길(言曰): "내가(丹) 참으로(誡) 전 선생이 말하지 말도록 한 것은(所以田先生毋言者), 큰 일의 계책을(大事之謀) 이루려고 한 것이다(欲以成也). 지금(今) 전 선생이(田先生) 죽음으로(以死) 말하지 않았음을 밝히니(明不言), 어찌(豈) 내 마음이겠는가(丹之心哉)!"라고 했다.

형가가 좌정하고(荊軻坐定),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太子避席)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길(頓首曰): "전 선생이(田先生) 제가 어리석은 것을(丹之不肖) 알지 못하고(不知), 앞으로 나아가(得至前), 감히(敢) 말할 것이 있도록 하셨으니(使有所道), 이것은(此) 하늘이(天之) 연나라를 불쌍히 여겨(所以哀燕而) 그 외로움을 버리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不棄其孤也). 지금(今) 진나라에(秦)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있고(有貪利之心, 而) 욕심은(欲) 만족할 줄 모릅니다(不可足也). 천하의 땅을 다하고(盡天下之地), 사해의 왕을 모두 신하로 삼지 않으면(臣海內之王者), 그 마음이(其意) 싫증 내지 않을 것입니다(不厭). 지금(今) 진나라가(秦) 이미(已) 한왕을 사로잡고(虜韓王), 그 땅을 모두 바치도록 했습니다(盡納其地). 또(又) 군사를 일으켜(舉兵) 남으로(南) 초나라를 정벌하고(伐楚), 북으로(北) 조나라에 닥쳐서(臨趙); 왕전이(王翦) 수십만 무리를 이끌고(將數十萬之眾) 장수 업성을 막고(距漳·鄴, 而) 이신은(李信) 태원과 운중으로 나왔습니다(出太原·雲中). 조나라가(趙) 진나라를 버티지 못하고(不能支秦), 반드시 신하가 될 것이고(必入臣), 신하로 들어가면(入臣則) 화가 연나라에 이를 것입니다(禍至燕). 연나라가 작고 약해서(燕小弱), 자주(數) 전쟁에 곤경을 당했고(困於兵), 지금(今) 계책을 세우고(計) 나라를 들어도(舉國) 진나라를 당할 수 없습니다(不足以當秦). 제후들이(諸侯) 진나라에 복종하고(服秦), 아무도(莫) 감히(敢) 합종하지 않습니다(合從). 저의(丹之) 사사로운 계책이 어리석지만(私計愚, 以) 참으로(爲誠) 천하의 용사를 얻어(得天下之勇士)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고(使於秦), 큰 이익으로 유혹하고(闚以重利); 진왕이 탐하면(秦王貪), 그 기세가(其勢) 반드시(必) 원하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得所願矣). 참으로(誠) 진왕을 위협해서(得劫秦王), 제후의 침략당한 땅을(諸侯侵地) 모두 돌려주도록 해서(使悉反), 조말이(曹沫之) 제 환공과 함께 한 것처럼 한다면(與齊桓公, 則) 매우 좋을 것이고(大善矣); 그렇게 할 수 없다면(則不可), 따라서(因而)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刺殺之). 진나라의 대장은(彼秦大將) 바깥에서 군대를 멋대로 하고 있고(擅兵於外而) 안에서(內) 혼란이 있다면(有亂, 則) 군신이 서로 의심하고(君臣相疑, 以) 그 틈에(其閒) 제후가 합종할 수 있고(諸侯得合從), 그 진나라를 깨뜨리는 것이(其破秦)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必矣). 이것이(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고(丹之上願, 而) 명을 맡길 사람을 알지 못하니(不知所委命), 형경께서(唯荊卿)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留意焉)."라고 했다.

한참 지나서(久之), 형가가 말하길(荊軻曰): "이것은(此) 나라의 큰 일이고(國之大事也), 제가 둔하고 낮아서(臣駑下), 사신을 맡기기에 부족할까 걱정됩니다(恐不足任使)."라고 했다.

태자가(太子) 앞으로 가서(前) 머리를 조아리고(頓首), 진실로(固) 사양하지 말 것을 청하고 나서(請毋讓, 然後) 허락했다(許諾). 이에(於是) 형가를 높여(尊荊卿) 상경으로 삼고(爲上卿), 상급 관사에 머물도록 했다(舍上舍). 태자가(太子) 날마다(日) 문하로 가서(造門下), 태뢰의 음식을 제공하고(供太牢具), 기이한 물건을(異物) 보내고(閒進), 수레와 말, 미녀로(車騎美女) 형가가 원하는 것을(荊軻所欲) 마음대로 하도록 해서(, 以) 그 뜻을 맞춰주었다(順適其意). 

 
30 久之, 荊軻未有行意. 秦將王翦破趙, 虜趙王, 盡收入其地, 進兵北略地至燕南界. 太子丹恐懼, 乃請荊軻曰: "秦兵旦暮渡易水, 則雖欲長侍足下, 豈可得哉!" 荊軻曰: "微太子言, 臣願謁之. 今行而毋信, 則秦未可親也. 夫樊將軍, 秦王購之金千斤, 邑萬家. 誠得樊將軍首與燕督亢之地圖, 奉獻秦王, 秦王必說見臣, 臣乃得有以報." 太子曰: "樊將軍窮困來歸丹, 丹不忍以己之私而傷長者之意, 願足下更慮之!" 

30 오래 지나도록(久之), 형가에게(荊軻) <진나라로> 가려는 뜻이 없었다(未有行意). 진나라 장수(秦將) 왕전이(王翦) 조나라를 깨뜨리고(破趙), 조왕을 포로로 잡고(虜趙王), 그 땅을 모두 거두고(盡收入其地), 군대를 보내(進兵) 북쪽의 땅을 빼앗아(北略地) 연나라 남쪽 경계에 이르렀다(至燕南界).

태자 단이(太子丹) 두려워하며(恐懼), 이에(乃) 형가에게 청하여 말하길(請荊軻曰): "진나라 군대가(秦兵) 머지 않아(旦暮) 역수를 넘어오면(渡易水, 則) 비록(雖) 그대를(足下) 오래 모시고 싶지만(欲長侍), 어찌(豈) 가능하겠습니까(可得哉)!"라고 했다.

형가가 말하길(荊軻曰): "태자의 말이 없더라도(微太子言), 신이(臣) 뵙기를 원했습니다(願謁之). 지금(今) 떠나더라도(行而) 믿을만한 것이 없으면(毋信, 則) 진왕을(秦)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未可親也). 번 장군은(夫樊將軍), 진왕이(秦王) 황금 천 근과 만 호의 읍으로 찾고 있습니다(購之金千斤, 邑萬家). 만약(誠) 번 장군의 머리와(樊將軍首與) 연나라 독항의 지도를(燕督亢之地圖) 얻어(得), 진왕에게 바친다면(奉獻秦王), 진왕은(秦王) 반드시(必) 신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說見臣), 신이(臣乃) 보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得有以報)."라고 했다.

태자가 말하길(太子曰): "번 장군은(樊將軍) 곤궁해서(窮困) 나에게 왔고(來歸丹), 제가(丹)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以己之私而) 장자의 뜻을 상하게 하는 것을(傷長者之意) 차마 할 수 없으니(不忍), 원컨대(願) 그대가(足下)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更慮之)!"라고 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

31 荊軻知太子不忍, 乃遂私見樊於期曰: "秦之遇將軍可謂深矣, 父母宗族皆爲戮沒. 今聞購將軍首金千斤, 邑萬家, 將柰何?" 於期仰天太息流涕曰: "於期每念之, 常痛於骨髓, 顧計不知所出耳!" 荊軻曰: "今有一言可以解燕國之患, 報將軍之仇者, 何如?" 於期乃前曰: "爲之柰何?" 荊軻曰: "願得將軍之首以獻秦王, 秦王必喜而見臣, 臣左手把其袖, 右手揕其匈, 然則將軍之仇報而燕見陵之愧除矣. 將軍豈有意乎?" 樊於期偏袒搤捥而進曰: "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 乃今得聞教!" 遂自剄. 太子聞之, 馳往, 伏尸而哭, 極哀. 既已不可柰何, 乃遂盛樊於期首函封之. 

31 형가가(荊軻) 태자가 차마 하지 못할 것을 알고(知太子不忍), 이에(乃) 마침내(遂) 몰래(私) 번오기를 만나(見樊於期曰): "진나라가(秦之) 장군을 대우한 것이(遇將軍) 심하다고 할만하고(可謂深矣), 부모와 종족이(父母宗族) 모두(皆) 죽임을 당했습니다(爲戮沒). 지금(今) 듣건대(聞) 장군의 머리를(將軍首) 금 천 근과 만 호의 읍으로(金千斤, 邑萬家) 구한다는데(購), 장차 어찌하시렵니까(將柰何)?"라고 했다.

번오기가(於期) 하늘을 보며(仰天) 크게 한숨을 쉬고(太息)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流涕曰): "내가(於期)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每念之), 늘(常) 골수에 고통스러운데(痛於骨髓), 돌아보아도(顧) 계책이(計) 나올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不知所出耳)!"라고 했다.

형가가 말하길(荊軻曰): "지금(今) 한 마디로(一言可以) 연나라의 근심을 없애고(解燕國之患), 장군의 원수를 갚을 것이 있다면(報將軍之仇者), 어찌 하시겠습니까(何如)?"라고 했다.

번오기가(於期) 곧 앞으로 와서 말하길(乃前曰): "그것을 위해(爲之) 어찌할까요(柰何)?"라고 했다.

형가가 말하길(荊軻曰): "원컨대(願) 장군의 머리를 얻어(得將軍之首以) 진왕에게 바치면(獻秦王), 진왕이(秦王) 반드시(必) 기뻐하고(喜而) 신을 만날 것이고(見臣), 신의 왼손이(臣左手) 그 소매를 잡고(把其袖), 오른손이(右手) 그 가슴을 찌르면(揕其匈), 그렇다면(然則) 장군의 원수를 갚고(將軍之仇報而) 연나라가(燕) 업신여김 당한 것을(見陵之愧) 없앨 수 있습니다(除矣). 장군이(將軍) 어찌(豈) 생각하십니까(有意乎)?"라고 했다.

번오기가(樊於期)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偏袒) 팔을 움켜쥐고(搤捥而) 나아가 말하길(進曰): "이것은(此) 내가(臣之) 밤낮으로(日夜) 이를 갈고(切齒) 걱정하던 것인데(腐心也), 지금(乃今) 가르치을 얻었습니다(得聞教)!"라고 했다. 마침내(遂) 스스로 목을 찔렀다(自剄). 태자가 이것을 듣고(太子聞之), 달려와(馳往), 시체에 엎드려(伏尸而) 곡을 하고(哭), 매우 슬퍼했다(極哀). 이미(既) 어쩔 수 없었으니(已不可柰何), 마침내(乃遂) 번오기의 머리를 상자에 담아(盛樊於期首函) 봉했다(封之). 


32 於是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 得趙人徐夫人匕首, 取之百金, 使工以藥焠之, 以試人, 血濡縷, 人無不立死者. 乃裝爲遣荊卿. 燕國有勇士秦舞陽, 年十三, 殺人, 人不敢忤視. 乃令秦舞陽爲副. 荊軻有所待, 欲與俱; 其人居遠未來, 而爲治行. 頃之, 未發, 太子遲之, 疑其改悔, 乃復請曰: "日已盡矣, 荊卿豈有意哉? 丹請得先遣秦舞陽." 荊軻怒, 叱太子曰: "何太子之遣? 往而不返者, 豎子也! 且提一匕首入不測之彊秦, 仆所以留者, 待吾客與俱. 今太子遲之, 請辭決矣!" 遂發. 

32 이에(於是) 태자가(太子) 천하의 날카로운 비수를(天下之利匕首) 미리 구해서(豫求), 조나라 서부인의 비수를 얻어(得趙人徐夫人匕首), 황금 백 근에 취하고(取之百金), 공인을 시켜(使工) 독약으로(以藥) 담금질해서(焠之, 以) 사람에게 시험하니(試人), 피가(血) 한 가닥을 적시면(濡縷), 사람 중에(人) 서서 죽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無不立死者). 이에(乃) 행장을 꾸려(裝) 형경을 보냈다(爲遣荊卿). 연나라에(燕國) 용사 진무량이 있었는데(有勇士秦舞陽), 나이 열셋에(年十三), 사람을 죽이고(殺人), 사람들이(人)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不敢忤視). 이에(乃) 진무량에게 명을 내려(令秦舞陽) 보좌로 삼았다(爲副). 형가에게(荊軻)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有所待), 함께하려고 했지만(欲與俱); 그 사람이(其人) 먼 곳에 살아(居遠) 오지 못했는데(未來, 而) 행장이 꾸려졌다(爲治行).

한참이 지나도(頃之), 출발하지 않자(未發), 태자가 그것을 미룬다고 여기고(太子遲之), 그가 마음을 바꾼 것인지 의심하여(疑其改悔), 이에(乃) 다시 청하여 말하길(復請曰): "날짜가(日) 이미 다했는데(已盡矣), 형경이(荊卿) 혹시(豈) 생각이 있는지요(有意哉)? 제가 청컨대(丹請) 먼저(先) 진무량을 보내려고 합니다(遣秦舞陽)."라고 했다.

형가가 노하여(荊軻怒), 태자를 꾸짖어 말하길(叱太子曰): "어찌(何) 태자가(太子) 그를 보냅니까(之遣)? 가서(往而) 돌아오지 않는 것은(不返者), 저 녀석입니다(豎子也)! 또한(且)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提一匕首) 예측할 수 없는 강한 진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入不測之彊秦), 仆所以留者, 待吾客與俱. 今太子遲之, 請辭決矣!" 遂發. 


33 太子及賓客知其事者, 皆白衣冠以送之. 至易水之上, 既祖, 取道, 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 爲變徵之聲, 士皆垂淚涕泣. 又前而爲歌曰: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復爲羽聲慨, 士皆瞋目, 發盡上指冠. 於是荊軻就車而去, 終已不顧. 

33 태자와(太子及) 빈객 중에(賓客) 이 일을 아는 사람은(知其事者), 모두(皆) 흰 옷과 관을 쓰고(白衣冠以) 그를 배웅했다(送之). 역수 가에 이르러(至易水之上),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既祖), 길을 취해(取道), 고점리가(高漸離) 축을 치고(擊筑), 형가가 맞춰서(荊軻和而) 노래하며(歌), 변치의 소리를 내자(爲變徵之聲), 사가(士) 모두(皆) 눈물을 떨구고(垂淚) 울었다(涕泣).

또(又) 앞으로 나아가(前而) 노래하기를(爲歌曰): "바람이 소슬하고(風蕭蕭兮) 역수는 차구나(易水寒), 장사가 한 번 떠나면(壯士一去兮)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不復還)!"라고 했다.

다시(復) 우성이 되어(爲羽聲) 강개하니(慨), 사가 모두(士皆) 눈을 부릅뜨고(瞋目), 일어섬이(發) 모두(盡) 관을 찔렀다(上指冠). 이에(於是) 형가가(荊軻) 수레에 나아가(就車而) 떠났는데(去), 끝내(終已) 돌아보지 않았다(不顧). 


34 遂至秦, 持千金之資幣物, 厚遺秦王寵臣中庶子蒙嘉. 嘉爲先言於秦王曰: "燕王誠振怖大王之威, 不敢舉兵以逆軍吏, 願舉國爲內臣, 比諸侯之列, 給貢職如郡縣, 而得奉守先王之宗廟. 恐懼不敢自陳, 謹斬樊於期之頭, 及獻燕督亢之地圖, 函封, 燕王拜送于庭, 使使以聞大王, 唯大王命之." 秦王聞之, 大喜, 乃朝服, 設九賓, 見燕使者咸陽宮. 荊軻奉樊於期頭函, 而秦舞陽奉地圖柙, 以次進. 至陛, 秦舞陽色變振恐, 群臣怪之. 荊軻顧笑舞陽, 前謝曰: "北蕃蠻夷之鄙人, 未嘗見天子, 故振慴. 願大王少假借之, 使得畢使於前." 秦王謂軻曰: "取舞陽所持地圖." 軻既取圖奏之, 秦王發圖, 圖窮而匕首見. 因左手把秦王之袖, 而右手持匕首揕之. 未至身, 秦王驚, 自引而起, 袖絕. 拔劍, 劍長, 操其室. 時惶急, 劍堅, 故不可立拔. 荊軻逐秦王, 秦王環柱而走. 群臣皆愕, 卒起不意, 盡失其度. 而秦法, 群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 諸郎中執兵皆陳殿下, 非有詔召不得上. 方急時, 不及召下兵, 以故荊軻乃逐秦王. 而卒惶急, 無以擊軻, 而以手共搏之. 是時侍醫夏無且以其所奉藥囊提荊軻也. 秦王方環柱走, 卒惶急, 不知所爲, 左右乃曰: "王負劍!" 負劍, 遂拔以擊荊軻, 斷其左股. 荊軻廢, 乃引其匕首以擿秦王, 不中, 中桐柱. 秦王復擊軻, 軻被八創. 軻自知事不就, 倚柱而笑, 箕踞以罵曰: "事所以不成者, 以欲生劫之, 必得約契以報太子也." 於是左右既前殺軻, 秦王不怡者良久. 已而論功, 賞群臣及當坐者各有差, 而賜夏無且黃金二百溢, 曰: "無且愛我, 乃以藥囊提荊軻也." 

34 마침내(遂) 진나라에 이르러(至秦), 천금의 예물을 가지고(持千金之資幣物), 진왕이 아끼는 신하인(秦王寵臣) 중서자 몽가에게(中庶子蒙嘉) 주었다(厚遺).

몽가가(嘉) 형가를 위해(爲) 먼저 진왕에게 말하길(先言於秦王曰): "연왕이(燕王) 참으로(誠)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하고(振怖大王之威), 감히(敢) 거병해서(舉兵以) 군사에 거스르지 못하니(逆軍吏), 원컨대(願) 나라를 들어(舉國) 신하가 되고(爲內臣), 제후의 열에 참여해서(比諸侯之列), 공물 바치는 것을(給貢職) 군현처럼 해서(如郡縣, 而) 선왕의 종묘를 받들기를(得奉守先王之宗廟) 바라고 있습니다. 두려워서(恐懼) 감히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不敢自陳), 삼가(謹) 번오기의 머리를 베고(斬樊於期之頭), 또(及) 연나라 독항의 지도를 바쳐(獻燕督亢之地圖), 함에 담아 봉하고(函封), 연왕이(燕王) 궁정에서 배웅해서(拜送于庭), 사자를 시켜(使使以) 대왕에 들려드리도록(聞大王) 했으니, 대왕께서(唯大王) 그에게 명하시기 바랍니다(命之)."라고 했다.

진왕이 이것을 듣고(秦王聞之), 크게 기뻐하며(大喜), 이에(乃) 조복을 입고(朝服), 구빈을 베풀어(設九賓), 연나라 사자를(燕使者) 함양궁에서 만났다(咸陽宮). 형가가(荊軻) 번오기의 머리가 든 상자를 바치고(奉樊於期頭函, 而) 진무양이(秦舞陽) 지도가 든 상자를 바치고(奉地圖柙, 以) 차례로 나아갔다(次進). 계단에 이르러(至陛), 진무양이(秦舞陽) 얼굴색이 변하여(色變) 두려움에 떨자(振恐), 군신이 괴이하게 여겼다(群臣怪之).

형가가(荊軻) 고양을 돌아보며 웃고(顧笑舞陽), 앞으로 나아가(前) 사과하며 말하길(謝曰): "북방(北蕃) 오랑캐의(蠻夷之) 비천한 사람이(鄙人), 일찍이 천자를 본 적이 없고(未嘗見天子), 그러므로(故) 떨고 두려워합니다(振慴). 원컨대(願) 대왕께서(大王) 조금(少) 사정을 보아(假借之), 앞에서(於前) 사신의 일을 마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使得畢使)."라고 했다.

진왕이(秦王) 형가에게 말하길(謂軻曰): "무양이 가진(舞陽所持) 지도를 가져오라(地圖)."라고 했다.

형가가(軻既) 지도를 취해(取圖) 그에게 바치자(奏之), 진왕이 지도를 폈고(秦王發圖), 지도가 펼쳐지자(圖窮而) 비수가 보였다(匕首見). 왼손으로(因左手) 진왕의 소매를 잡고(把秦王之袖, 而) 오른손으로(右手) 비수를 잡아(持匕首) 그를 찔렀다(揕之). 몸이 이르기 전에(未至身), 진왕이 놀라(秦王驚), 스스로 당겨(自引而) 일어나며(起), 소매가 떨어졌다(袖絕). 검을 뽑았는데(拔劍), 검이 길어(劍長), 그 집만 잡았다(操其室). 때가(時) 황급하고(惶急), 검이 견고했고(劍堅), 그러므로(故) 뽑을 수없었다(不可立拔). 형가가(荊軻) 진왕을 쫓아가자(逐秦王), 진왕이(秦王) 기둥을 돌아(環柱而) 달아났다(走). 군신이(群臣) 모두(皆) 놀랐지만(愕), 갑자기 일어나(卒起) 생각지 못했으므로(不意), 그 헤아림을 모두 잃었다(盡失其度). 그러나(而) 진나라 법에(秦法), 군신 중에(群臣) 전에서 모시는 사람은(侍殿上者) 한 치 한 자의 무기도 가질 수 없었고(不得持尺寸之兵); 여러 낭중이(諸郎中) 무기를 잡고(執兵) 모두(皆) 뜰아래 늘어서 있었지만(陳殿下), 불러들이는 명이 있지 않으면(非有詔召) 올라갈 수 없었다(不得上). 바야흐로(方) 급한 때에(急時), 아래 있는 병사를 부를 수 없었고(不及召下兵), 이 때문에(以故) 형가가(荊軻) 곧(乃) 진왕을 쫓았다(逐秦王). 그러나(而) 돌연(卒) 급박하고(惶急), 형가를 칠 수 없어서(無以擊軻, 而) 손으로(以手) 함께 그를 쳤다(共搏之). 이때(是時) 시의(侍醫) 하무저가(夏無且) 그가 가진 약주머니를(以其所奉藥囊) 형가에게 던졌다(提荊軻也). 진왕이(秦王) 바야흐로(方) 기둥을 돌아 달아날 때(環柱走), 황급해서(卒惶急), 할 것을 알지 못했는데(不知所爲), 좌우에서 말하길(左右乃曰): "왕께서(王) 칼을 등에 지십시오(負劍)!"라고 했다. 칼을 등에 지고(負劍), 마침내(遂) 뽑아서(拔以) 형가를 쳐서(擊荊軻), 그 왼쪽 넓적다리를 잘랐다(斷其左股). 형가가 쓰러져서(荊軻廢), 이에(乃) 비수를 당겨(引其匕首以) 진왕에 던졌지만(擿秦王), 맞추지 못하고(不中), 구리 기둥에 맞았다(中桐柱). 진왕이(秦王) 다시 형가를 쳐서(復擊軻), 형가가(軻) 여덟 곳을 다쳤다(被八創). 형가는(軻) 일이 이루어지지 못함을(事不就) 스스로 알고(自知), 기둥에 기대어(倚柱而) 웃으며(笑), 다리를 벌리고 앉아(箕踞以) 꾸짖어 말하길(罵曰): "일이(事)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所以不成者), 산 채로 잡아서(生劫之), 반드시(必) 약속을 얻어(得約契以) 태자에게 보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以欲報太子也)."라고 했다.

이에(於是) 좌우가(左右) 이미 나와서(既前) 형가를 죽였지만(殺軻), 진왕이(秦王) 내키지 않는 것이(不怡者) 오래되었따(良久). 얼마 지나서(已而) 공을 논하고(論功), 군신과 연관된 사람에게 상을 주었는데(賞群臣及當坐者) 각각(各) 차등이 있었고(有差, 而) 하무적에게 황금 200일을 주며 말하길(賜夏無且黃金二百溢, 曰): "무적이(無且) 나를 사랑해서(愛我), 이에(乃) 약주머니를(以藥囊) 형가에게 던졌다(提荊軻也)."라고 했다.

 

35 於是秦王大怒, 益發兵詣趙, 詔王翦軍以伐燕. 十月而拔薊城. 燕王喜·太子丹等盡率其精兵東保於遼東. 秦將李信追擊燕王急, 代王嘉乃遺燕王喜書曰: "秦所以尤追燕急者, 以太子丹故也. 今王誠殺丹獻之秦王, 秦王必解, 而社稷幸得血食." 其後李信追丹, 丹匿衍水中, 燕王乃使使斬太子丹, 欲獻之秦. 秦復進兵攻之. 後五年, 秦卒滅燕, 虜燕王喜. 

35 이에(於是) 진왕이(秦王) 크게 화를 내며(大怒), 더욱(益) 군사를 보내고(發兵) 조나라에 조서를 내려(詣趙), 왕전의 군대를 불러(詔王翦軍以) 연나라를 쳤다(伐燕). 10개월 만에(十月而) 계성이 함락되었다(拔薊城). 연왕 희와 태자 단 등은(燕王喜·太子丹等) 모두(盡) 그 정예병을 이끌고(率其精兵) 동으로 가서(東) 요동을 지켰다(保於遼東).

진나라 장군(秦將) 이신이(李信) 연왕을 추격해서(追擊燕王) 급박해지자(急), 대왕 가는(代王嘉) 이에(乃) 연왕 희에게 편지를 보내서 말하길(遺燕王喜書曰): "진나라가(秦) 연나나를 급하게 쫓는 것은(所以尤追燕急者), 태자 단 때문입니다(以太子丹故也). 지금(今) 왕께서(王) 만약(誠) 단을 죽여(殺丹) 진왕에게 바친다면(獻之秦王), 진왕은(秦王) 반드시 물러날 것이고(必解, 而) 사직은(社稷) 다행히(幸) 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得血食)."라고 했다.

그 뒤(其後) 이신이 단을 추격하자(李信追丹), 단은(丹) 연수 가운데 숨었고(匿衍水中), 연왕이(燕王) 이에(乃) 사자를 시켜(使使) 태자 단을 베고(斬太子丹), 진왕에게 바치려고 했다(欲獻之秦). 진나라가(秦) 다시(復) 병사를 보내(進兵) 공격했다(攻之). 5년 뒤에(後五年), 진나라가(秦) 마침내(卒) 연나라를 멸망시키고(滅燕),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虜燕王喜). 


36 其明年, 秦并天下, 立號爲皇帝. 於是秦逐太子丹·荊軻之客, 皆亡. 高漸離變名姓爲人庸保, 匿作於宋子. 久之, 作苦, 聞其家堂上客擊筑, 傍偟不能去. 每出言曰: "彼有善有不善." 從者以告其主, 曰: "彼庸乃知音, 竊言是非." 家丈人召使前擊筑, 一坐稱善, 賜酒. 而高漸離念久隱畏約無窮時, 乃退, 出其裝匣中筑與其善衣, 更容貌而前. 舉坐客皆驚, 下與抗禮, 以爲上客. 使擊筑而歌, 客無不流涕而去者. 宋子傳客之, 聞於秦始皇. 秦始皇召見, 人有識者, 乃曰: "高漸離也." 秦皇帝惜其善擊筑, 重赦之, 乃矐其目. 使擊筑, 未嘗不稱善. 稍益近之, 高漸離乃以鉛置筑中, 復進得近, 舉筑樸秦皇帝, 不中. 於是遂誅高漸離, 終身不復近諸侯之人. 

36 그 다음 해에(其明年), 진나라가(秦) 천하를 병합하고(并天下), 즉위하여(立) 부르기를(號) 황제라고 했다(爲皇帝). 이에(於是) 진나라가(秦) 태자 단과 형가의 빈객을 쫓아(逐太子丹·荊軻之客), 모두 달아났다(皆亡). 고점리는(高漸離) 이름과 성을 바꾸고(變名姓) 남을 위한 머슴이 되어(爲人庸保), 송자에 숨었다(匿作於宋子). 오래 지나서(久之), 괴로움이 일어나고(作苦), 그 집 당상에서(其家堂上) 객이 축 타는 소를 듣고(客擊筑), 곁에서 서성거리며(傍偟) 떠나지 못했다(不能去).

매번(每) 말을 내어 말하길(出言曰): "저것은 좋고(彼有善) 저건 좋지 못하다(有不善)."라고 했다.

종자가(從者) 이것을 주인에게 고하여(以告其主), 말하길(曰): "저 일꾼이(彼庸) 바로(乃) 음을 알아서(知音), 잘잘못을 슬며시 말합니다(竊言是非)."라고 했다.

집주인이(家丈人) 불러서(召) 앞에서 축을 타도록 시키자(使前擊筑), 앉은 사람들이(一坐) 잘했다고 칭찬하며(稱善), 술을 주었다(賜酒). 이에(而) 고점리는(高漸離) 오랫동안 숨어 지내며(久隱) 두려움과 가난이(畏約) 끝이 없을 때라고(無窮時) 생각하고(念), 이에 물러나(乃退), 그 짐 꾸러미에서(其裝匣中) 축과 좋은 옷을(筑與其善衣) 꺼내어(出), 용모를 바꾸고(更容貌而) 앞으로 나섰다(前). 손님들이(舉坐客) 모두 놀라고(皆驚), 내려와(下) 함께 대등한 예를 취하고(與抗禮), 상객으로 삼았다(以爲上客). 축을 타도록 하고(使擊筑而) 노래를 부르니(歌), 손님 가운데(客) 눈물 흘리며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無不流涕而去者). 송자에서(宋子) 돌아가며(傳) 그를 객으로 대우하자(客之), 진시황에게 소문이 났다(聞於秦始皇).

진시황이(秦始皇) 불러서 볼 때(召見), 사람들 중에(人)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有識者), 말하길(乃曰): "고점리입니다(高漸離也)."라고 했다.

진시황은(秦皇帝) 그가 축을 잘 타는 것을(其善擊筑) 아깝게 여기고(惜), 거듭 용서하고(重赦之), 그 눈을 멀게 했다(乃矐其目). 축을 타도록 시켰는데(使擊筑),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未嘗不稱善). 조금씩 더욱(稍益) 그를 가까이 하자(近之), 고점리가(高漸離) 남덩어리를(乃以鉛) 축 안에 두었다가(置筑中), 다시(復) 나아가(進) 가까이 갈 수 있자(得近), 축을 들어(舉筑) 진시황을 내리쳤지만(樸秦皇帝), 맞추지 못했다(不中). 이에(於是) 마침내(遂) 고점리를 죽이고(誅高漸離), 평생(終身) 다시(復) 제후의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近諸侯之人). 


37 魯句踐已聞荊軻之刺秦王, 私曰: "嗟乎, 惜哉其不講於刺劍之術也! 甚矣吾不知人也! 曩者吾叱之, 彼乃以我爲非人也!" 

37 노구천이(魯句踐) 형가가 진왕을 찌른 것을(荊軻之刺秦王) 듣고서(已聞), 혼자 말하길(私曰): "아(嗟乎), 애석하구나(惜哉) 그가(其) 검을 찌르는 기술을(於刺劍之術) 배우지 않았구나(不講也)! 깊구나(甚矣) 내가(吾) 사람을 알지 못한 것이(不知人也)! 옛날(曩者) 내가(吾) 그를 꾸짖었을 때(叱之), 저 사람이(彼乃) 나를(以我)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겠구나(爲非人也)!"라고 했다. 


38 太史公曰:世言荊軻, 其稱太子丹之命, 「天雨粟, 馬生角」也, 太過. 又言荊軻傷秦王, 皆非也. 始公孫季功·董生與夏無且游, 具知其事, 爲余道之如是. 自曹沫至荊軻五人, 此其義或成或不成, 然其立意較然, 不欺其志, 名垂後世, 豈妄也哉! 

38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세상에서(世) 형가를 말할 때(言荊軻), 태자 단의 운명을 일컫기를(其稱太子丹之命), 「하늘에서(天) 곡식비를 내리고(雨粟), 말에(馬) 뿔이 났다(生角)」라고 하니(也), 지나치게 잘못되었다(太過). 또(又) 형가가(荊軻) 진왕을 상하게 했다고(傷秦王) 말하는 것은(言), 모두 틀렸다(皆非也). 애초에(始) 공손계공과 동중서와(公孫季功·董生與) 하무적이 어울렸는데(夏無且游), 그 일을(其事) 모두 알아서(具知), 나에게 말한 것이(爲余道之) 이와 같다(如是). 조말부터(自曹沫) 형가까지(至荊軻) 다섯 사람은(五人), 이처럼(此) 그 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其義或成)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지만(或不成), 그러나(然) 그 뜻을 세운 것이(其立意) 분명하고(較然), 그 뜻을 속이지 않아서(不欺其志), 이름이(名) 후세에 내려졌으니(垂後世), 어찌(豈) 허망한 것이겠는가(妄也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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