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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4/5] 교주고슬(膠柱鼓瑟) / 조괄의 어머니가 조괄을 추천하지 않은 이유

by प्रज्ञा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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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고슬(膠柱鼓瑟)

14 後四年, 趙惠文王卒, 子孝成王立. 七年, 秦與趙兵相距長平, 時趙奢已死, 而藺相如病甐, 趙使廉頗將攻秦, 秦數敗趙軍, 趙軍固壁不戰. 秦數挑戰, 廉頗不肯. 趙王信秦之閒. 秦之閒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 趙王因以括爲將,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 趙王不聽, 遂將之. 

14 4년 뒤에(後四年), 조 혜문왕이 죽고(趙惠文王卒), 아들(子) 효성왕이 즉위했다(孝成王立). 칠 년(七年), 진나라와 조나라 군대가(秦與趙兵) 장평에서 서로 대치했는데(相距長平), 이때(時) 조사는 이미 죽었고(趙奢已死, 而) 인상여는 병으로 위독했으므로(藺相如病甐), 조나라는(趙) 염파를 시켜(使廉頗) 장수로 삼아(將) 진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는데(攻秦), 진나라가(秦) 여러 번(數) 조나라 군대를 깨뜨렸지만(敗趙軍), 존나라 군대는(趙軍) 보루를 굳게 하고(固壁) 싸우지 않았다(不戰). 진나라가(秦) 여러 번(數) 싸움을 걸었지만(挑戰), 염파는 기꺼이 싸우지 않았다(廉頗不肯). 조왕이(趙王) 진나라 간첩의 말을 믿었다(信秦之閒).

진나라 간첩이 말하길(秦之閒言曰): "진나라가(秦之) 꺼리는 것은(所惡), 오직(獨)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馬服君趙奢之子趙括) 장수가 되는 것을(爲將) 두려워할 뿐이다(耳)."라고 했다.

조왕이(趙王) 이에(因) 조괄을 장수로 삼아(以括爲將), 염파를 대신하게 했다(代廉頗).

인상여가 말하길(藺相如曰): "왕께서(王) 명성으로(以名) 조괄을 부리려고 하지만(使括), 거문고 기둥을 아교로 붙여 고정하고(膠柱而) 연주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鼓瑟耳). 조괄은(括) 다만(徒) 그 아버지의 서책을 읽었을 뿐(能讀其父書傳), 변화에 맞추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不知合變也)."라고 했다.

조왕이 듣지 않고(趙王不聽), 마침내(遂) 그를 장수로 삼았다(將之). 

 

* 교주고슬(膠柱鼓瑟): 글자의 뜻은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이고 슬을 타다"란 뜻이다. 슬은 고대 중국 악기의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비슷한 악기인 거문고로 대신 풀이하기도 한다. 기러기발이란 슬 줄에 달려있는 안족(雁足) 혹은 현주(絃柱)를 가리킨다. 이것을 움직이며 소리를 조절하는 건데, 좋은 소리가 나오는 위치를 찾았다고 아교로 고정시키고 슬을 탄다는 말이다. 줄이란 주위 환경에 따라 느슨해졌다 팽팽해졌다 하는 건데 당장에 좋은 소리가 나왔다고 고정시키면 당연히 다른 환경에선 못 쓰게 된다. 때문에 이 표현은 고지식하여 규칙에만 얽매이고 융통성이 전혀 없는 이를 뜻한다.

* 相距(상거):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는 두 곳의 거리() 또는 떨어져 있는 사이.


紙上談兵(지상담병)

15 趙括自少時學兵法, 言兵事, 以天下莫能當. 嘗與其父奢言兵事, 奢不能難, 然不謂善. 括母問奢其故, 奢曰: "兵, 死地也, 而括易言之. 使趙不將括即已, 若必將之, 破趙軍者必括也." 及括將行, 其母上書言於王曰: "括不可使將." 王曰: "何以?" 對曰: "始妾事其父, 時爲將, 身所奉飯飲而進食者以十數, 所友者以百數, 大王及宗室所賞賜者盡以予軍吏士大夫, 受命之日, 不問家事. 今括一旦爲將, 東向而朝, 軍吏無敢仰視之者, 王所賜金帛, 歸藏於家, 而日視便利田宅可買者買之. 王以爲何如其父? 父子異心, 願王勿遣." 王曰: "母置之, 吾已決矣." 括母因曰: "王終遣之, 即有如不稱, 妾得無隨坐乎?" 王許諾. 

15 조괄이(趙括) 어릴 때부터(自少時) 병법을 배우고(學兵法), 군사에 대해 말하면(言兵事), 천하의 누구로도(以天下莫) 감당할 수 없었다(能當). 일찍이(嘗) 그 아버지 조사와 함께(與其父奢) 군사 일을 말했는데(言兵事), 조사가(奢) 당해낼 수 없었지만(不能難), 그러나(然)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다(不謂善).

조괄의 어머니가(括母) 조사에게 그 까닭을 묻자(問奢其故), 조사가 말하길(奢曰): "전쟁이란(兵), 죽음의 땅이고(死地也, 而) 조괄은(括) 너무 쉽게 말한다(易言之). 조나라로 하여금(使趙) 조괄을 장수로 삼지 않게 한다면(不將括即) 그만이지만(已), 만약(若) 반드시 장수로 삼는다면(必將之), 조나라 군대를 깨뜨리는 것은(破趙軍者) 반드시(必) 조괄일 것이다(括也)."라고 했다.

조괄이 떠나려고 하자(及括將行), 그 어머니가(其母) 글을 올려(上書) 왕에게 말하길(言於王曰): "조괄을(括) 장수로 삼을 수 없습니다(不可使將)."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무어 때문인가(何以)?"라고 했다.

<어머니가>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처음(始) 소첩이(妾) 그 아버지를 모실 때(事其父), 당시(時) 장군이었는데(爲將), 몸소(身) 음식을 받들어 먹이는 사람이(所奉飯飲而進食者) 수십 명이고(以十數), 벗이 된 사람이(所友者) 수백 명이었는데(以百數), 대왕과(大王及) 종실이(宗室) 상으로 준 것은(所賞賜者) 모두(盡) 그것으로(以)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고(予軍吏士大夫), 명을 받은 날에는(受命之日),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不問家事). 지금(今) 조괄이(括) 하루아침에(一旦) 장수가 되어(爲將), 동으로 향해서(東向而) 조회를 받지만(朝), 군리 중에(軍吏) 감히 우러러보는 사람이 없고(無敢仰視之者), 왕께서 내려준 금과 비단은(王所賜金帛), 집에 돌아와 감추어 두고(歸藏於家, 而) 날마다(日) 이익이 될 땅과 집을 보고(視便利田宅) 살 수 있는 것을(可買者) 삽니다(買之). 왕께서(王) 어찌 그 아버지와 같을 것이라고 여기십니까(以爲何如其父)? 부자가 마음이 다르니(父子異心), 원컨대(願) 왕께서 보내지 마소서(王勿遣)."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어머니는(母) 그만두시오(置之), 내가 이미 결정했다(吾已決矣)."라고 했다.

조괄의 어머니가(括母) 이에 말하길(因曰): "왕께서(王) 끝내(終) 그를 보내서(遣之), 곧(即) 직무를 감당 못할 일이 있거든(有如不稱), 저에게(妾) 연루시켜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겠습니까(得無隨坐乎)?"라고 했다.

왕이 허락했다(王許諾). 

 

* 不能難(불능난): 반박하지 못하다. 難은 반박하다.

* 不將括即已(부장괄즉이) : 조괄을 장수로 삼지 않다. 即은 則과 같다.

* 東向(동향): 서쪽에 앉아 동쪽을 보다. 옛날 제왕들은 남면(南面)하였으며, 공후장상公侯將相은 동면(東面)하였다.

* 不稱(불칭):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다.

* 隨坐(수좌): 연좌(連坐)하다. 연루되다.

 

16 趙括既代廉頗, 悉更約束, 易置軍吏. 秦將白起聞之, 縱奇兵, 詳敗走, 而絕其糧道, 分斷其軍爲二, 士卒離心. 四十餘日, 軍餓, 趙括出銳卒自博戰, 秦軍射殺趙括. 括軍敗, 數十萬之衆遂降秦, 秦悉阬之. 趙前後所亡凡四十五萬. 明年, 秦兵遂圍邯鄲, 歲餘, 幾不得脫. 賴楚·魏諸侯來救, 乃得解邯鄲之圍. 趙王亦以括母先言, 竟不誅也. 

16 조괄이(趙括) 염파를 대신하고 나서(既代廉頗), 약속을 모두 바꾸고(悉更約束), 군리를 바꾸었다(易置軍吏). 진나라 장수 백기가(秦將白起) 이것을 듣고(聞之), 기병을 풀어(縱奇兵), 거짓으로(詳) 패하여 도망치면서(敗走, 而) 그 군량 운송로를 끊고(絕其糧道), 조나라 군대를 나누어(分斷其軍) 둘로 만들자(爲二), 사졸이(士卒) 마음이 떠났다(離心). 40여 일이 지나(四十餘日), 군사들이 굶주리고(軍餓), 조괄이(趙括) 정예 병사를 내보내(出銳卒) 직접(自) 전투에 뛰어들었지만(博戰), 진나라 군대가(秦軍) 조괄을 활로 쏴 죽였다(射殺趙括). 조괄의 군대가 패하고(括軍敗), 수십만 명이(數十萬之衆) 마침내(遂) 진나라에 항복하고(降秦), 진나라가(秦) 모두 생매장했다(悉阬之). 조나라가(趙) <싸움을> 전후로(前後) 잃은 군사가(所亡) 모두(凡) 45만이었다(四十五萬). 다음 해에(明年), 진나라 군대가(秦兵) 마침내(遂) 한단을 포위하고(圍邯鄲), 1년 남짓(歲餘), 거의(幾) 벗어나지 못했다(不得脫). 초나라와 위나라 제후에게 의지하여(賴楚·魏諸侯) 구원병이 와서(來救), 이에(乃) 한단의 포위를 풀었다(得解邯鄲之圍). 조왕도 또한(趙王亦) 조괄의 어머니가 앞서 했던 말 때문에(以括母先言), 마침내(竟) 죽이지 않았다(不誅也). 

 

* 易置(역치): 바꾸어 놓음.


17 自邯鄲圍解五年, 而燕用栗腹之謀, 曰「趙壯者盡於長平, 其孤未壯」, 舉兵擊趙. 趙使廉頗將, 擊, 大破燕軍於鄗, 殺栗腹, 遂圍燕. 燕割五城請和, 乃聽之. 趙以尉文封廉頗爲信平君, 爲假相國. 

17 한단위 포위가 풀리고 나서(自邯鄲圍解) 5년이 지나서(五年, 而) 연나라가(燕) 율복의 계책을 사용하여(用栗腹之謀), 말하길(曰) '조나라 장정이(趙壯者) 장평에서 다 없어지고(盡於長平), 그 고아들이(其孤) 장성하지 못했다(未壯'라고 하여, 군대를 일으켜(舉兵) 조나라를 습격했다(擊趙). 조나라가(趙) 염파를 시켜(使廉頗) 장수로 삼고(將), 습격하여(擊), 호읍에서(於鄗) 연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大破燕軍), 율복을 죽이고(殺栗腹), 마침내(遂) 연나라를 포위했다(圍燕). 연나라가(燕) 성 다섯 개를 떼어주고(割五城) 화친을 청하자(請和), 이에 들어주었다(乃聽之). 조나라가(趙) 위문으로(以尉文) 염파를 봉하고(封廉頗) 신평군으로 삼고(爲信平君), 임시 상국으로 임명했다(爲假相國). 


18 廉頗之免長平歸也, 失勢之時, 故客盡去. 及復用爲將, 客又復至. 廉頗曰: "客退矣!" 客曰: "吁! 君何見之晚也? 夫天下以市道交, 君有勢, 我則從君, 君無勢則去, 此固其理也, 有何怨乎?" 居六年, 趙使廉頗伐魏之繁陽, 拔之. 

18 염파가(廉頗之) 장평에서 파면되어(免長平) 돌아왔을 때(歸也), 세를 잃은 때이고(失勢之時), 그러므로(故) 빈객이 모두 떠났다(客盡去). 다시 등용되어 장군이 되자(及復用爲將), 빈객이(客) 또(又) 다시 이르렀다(復至).

염파가 말하길(廉頗曰): "빈객은 물러가라(客退矣)!"라고 했다.

빈객이 말하길(客曰): "아(吁)! 그대는 어찌(君何) 견해가 더딘가(見之晚也)? 무릇(夫) 천하 사람들은(天下) 시장의 도리로(以市道) 교제하는 것이니(交), 그대에게(君) 세가 있으면(有勢), 내가 그대를 따르고(我則從君), 그대에게 세가 없으면(君無勢則) 떠나는 것이니(去), 이것이(此) 진실로(固) 그 이치인데(其理也), 어찌 원망할 것이 있습니까(有何怨乎)?"라고 했다.

6년이 지나(居六年), 조나라가(趙) 염파를 시켜(使廉頗) 위나라의 번양 치게 하고(伐魏之繁陽), 함락시켰다(拔之). 

 

* 市道(시도): 장사의 상도(商道).


19 趙孝成王卒, 子悼襄王立, 使樂乘代廉頗. 廉頗怒, 攻樂乘, 樂乘走. 廉頗遂奔魏之大梁. 其明年, 趙乃以李牧爲將而攻燕, 拔武遂·方城. 

19 조 효성왕이 죽고(趙孝成王卒), 아들(子) 도양왕이 즉위해서(悼襄王立), 악승을 시켜(使樂乘) 염파를 대신하게 했다(代廉頗). 염파가 화를 내며(廉頗怒), 악승을 치고(攻樂乘), 악승이 달아났다(樂乘走). 염파가(廉頗) 마침내(遂) 위나라 대량으로 달아났다(奔魏之大梁). 그 이듬해에(其明年), 조나라가(趙) 곧(乃) 이목을(以李牧) 장수로 삼아(爲將而) 연나라를 치고(攻燕), 무수와 방성을 함락시켰다(拔武遂·方城). 


20 廉頗居梁久之, 魏不能信用. 趙以數困於秦兵, 趙王思復得廉頗, 廉頗亦思復用於趙. 趙王使使者視廉頗尙可用否. 廉頗之仇郭開多與使者金, 令毀之. 趙使者既見廉頗, 廉頗爲之一飯斗米, 肉十斤, 被甲上馬, 以示尙可用. 趙使還報王曰: "廉將軍雖老, 尙善飯, 然與臣坐, 頃之三遺矢矣." 趙王以爲老, 遂不召. 

20 염파가(廉頗) 대량에 머문 것이 오래되었지만(居梁久之), 위나라가(魏) 믿을 수 없었다(不能信用). 조나라가(趙) 여러번(數) 진나라 군대에게 곤란을 당했기 때문에(困於秦兵), 조왕이(趙王) 다시 염파를 등용하려고 생각하고(思復得廉頗), 염파도 또한(廉頗亦) 다시 조나라에 등용되려고 생각했다(思復用於趙). 조왕이(趙王) 사자를 시켜(使使者) 염파가 여전히 등용될 수 있는지 보도록 했다(視廉頗尙可用否). 염파의 원수인(廉頗之仇) 곽개가(郭開) 사자에게 금을 많이 주고(多與使者金), 그를 모함하도록 했다(令毀之). 조나라 사자가(趙使者) 염파를 만나고서(既見廉頗), 염파가(廉頗) 그를 위해(爲之) 한 끼에(一飯) 쌀 한 말과(斗米), 고기 열 근(肉十斤)을 먹고, 갑옷을 입고(被甲) 말에 올라(上馬, 以) 여전히 쓸만한 것을 보여주었다(示尙可用).

조나라 사자가 돌아와(趙使還) 왕에게 보고하길(報王曰): "염장군이(廉將軍) 비록 늙었지만(雖老), 여전히(尙) 밥을 잘 먹었는데(善飯), 그런데(然) 신과 함께 앉아서(與臣坐), 잠깐 동안(頃之) 세 번 대변을 보았습니다(三遺矢矣)."라고 했다.

조왕이(趙王) 늙었다고 여기고(以爲老), 마침내(遂) 부르지 않았다(不召). 

 

* 遺矢(유시) : 대변을 보다. 矢는 屎(대변 ‘시’)와 같다.


21 楚聞廉頗在魏, 陰使人迎之. 廉頗一爲楚將, 無功, 曰: "我思用趙人." 廉頗卒死于壽春. 

21 초나라가(楚)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것을 듣고(聞廉頗在魏), 은밀하게(陰) 사람을 보내(使人) 그를 맞이했다(迎之). 염파가(廉頗) 한 번(一) 초나라의 장수가 되었지만(爲楚將), 공이 없었고(無功), 말하길(曰): "나는(我) 조나라 군사가 되기를 생각한다(思用趙人)."라고 했다.

염파가(廉頗) 마침내(卒) 수춘에서 죽었다(死于壽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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