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포지의(绨袍之義)
19 范睢既相秦, 秦號曰張祿, 而魏不知, 以爲范睢已死久矣. 魏聞秦且東伐韓、魏, 魏使須賈於秦. 范睢聞之, 爲微行, 敝衣閒步之邸, 見須賈. 須賈見之而驚曰: "范叔固無恙乎!" 范睢曰: "然." 須賈笑曰: "范叔有說於秦邪?" 曰: "不也. 睢前日得過於魏相, 故亡逃至此, 安敢說乎!" 須賈曰: "今叔何事?" 范睢曰「臣爲人庸賃." 須賈意哀之, 留與坐飲食, 曰: "范叔一寒如此哉!" 乃取其一綈袍以賜之. 須賈因問曰: "秦相張君, 公知之乎? 吾聞幸於王, 天下之事皆決於相君. 今吾事之去留在張君. 孺子豈有客習於相君者哉?" 范睢曰: "主人翁習知之. 唯睢亦得謁, 睢請爲見君於張君." 須賈曰: "吾馬病, 車軸折, 非大車駟馬, 吾固不出." 范睢曰: "願爲君借大車駟馬於主人翁."
19 범저가(范睢) 진나라 재상이 되고 나서(既相秦), 진나라에서(秦) 부르기를(號) 장록이라 하므로(曰張祿, 而) 위나라에서는(魏) 알지 못했고(不知), 범저가 이미 죽은 것이(范睢已死) 오래되었다고 여겼다(以爲久矣). 윈나라가(魏) 듣기에(聞) 진나라가(秦) 또(且) 동으로(東)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려고 한다기에(伐韓、魏), 위나라가(魏) 진나라에(於秦) 수고를 사신으로 보냈다(使須賈). 범저가(范睢) 이것을 듣고(聞之), 은밀하게 가서(爲微行), 헌 옷을 입고(敝衣) 한가로이 살피며(閒步) 숙소로 가서(之邸), 수고를 만났다(見須賈).
수고가(須賈) 그를 보고는(見之而) 놀라 말하길(驚曰): "범숙은(范叔) 진실로(固) 별 탈이 없었는가(無恙乎)!"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그렇습니다(然)."라고 했다.
수고가 웃으며 말하길(須賈笑曰): "범숙에게(范叔) 진나라에(於秦) 유세할 것이 있는가(有說邪)?"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曰): "아닙니다(不也). 제가(睢) 전에(前日) 위나라 재상에게 죄를 지었고(得過於魏相), 그러므로(故) 도망쳐서(亡逃) 여기에 이르렀는데(至此), 어찌(安) 감히 유세를 하겠습니까(敢說乎)!"라고 했다.
수고가 말하길(須賈曰): "지금(今) 범숙은(叔) 무슨 일을 하는가(何事)?"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신은(臣) 남을 위해서(爲人) 품을 팔고 있습니다(庸賃)."라고 했다.
수고가(須賈) 속으로(意) 애처롭게 여기고(哀之), 머물게 하고(留) 함께 앉아서(與坐) 음식을 먹으며(飲食), 말하길(曰): "범숙이(范叔) 가난한 것이(一寒) 이와 같다니(如此哉)!"라고 했다. 이에(乃) 명주 솜옷 한 벌을 꺼내(取其一綈袍以) 그에게 주었다(賜之).
수고가 이어 묻기를(須賈因問曰): "진나라 재상이(秦相) 장군이라는데(張君), 그대는(公) 아는가(知之乎)? 내가 듣기로(吾聞) 왕에게 총애를 받아(幸於王), 천하의 일이(天下之事) 모두(皆) 재상에게서 결정된다고(決於相君) 들었다. 지금(今) 내 일의(吾事之) 되고 안됨이(去留) 장군에 달렸다(在張君). 그대에게(孺子) 혹시(豈) 재상을 잘 아는(習於相君) 객이 있는가(有客者哉)?"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주인이(主人翁) 그를 잘 압니다(習知之). 오직(唯) 저도(睢) 또한(亦) 볼 수 있었는데(得謁), 제가(睢) 청해서(請) 장군에(於張君) 그대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爲見君)."라고 했다.
수고가 말하길(須賈曰): "내 말이 병이 들고(吾馬病), 마차의 차축이 부러져서(車軸折), 네 말리 말이 끄는 큰 수레가 아니니(非大車駟馬), 내가(吾) 진실로(固) 나갈 수가 없네(不出)."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원컨대(願) 그대를 위해(爲君) 네 마리 말이 끄는 큰 수레를(大車駟馬) 주인에게(於主人翁) 빌리겠습니다(借)."라고 했다.
* 無恙(무양): 몸에 탈이 없다. 恙은 근심 ‘양’
* 一寒如此(일한여차): 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
* 去留(거류): 떠남과 머묾 일이 되고 안됨 죽음과 삶.
* 孺子(유자): 나이 어린 남자(男子).
탁발난수(擢髮難數) / 청운직상(靑雲直上)
20 范睢歸取大車駟馬, 爲須賈御之, 入秦相府. 府中望見, 有識者皆避匿. 須賈怪之. 至相舍門, 謂須賈曰: "待我, 我爲君先入通於相君." 須賈待門下, 持車良久, 問門下曰: "范叔不出, 何也?" 門下曰: "無范叔." 須賈曰: "鄉者與我載而入者." 門下曰: "乃吾相張君也." 須賈大驚, 自知見賣, 乃肉袒厀行, 因門下人謝罪. 於是范睢盛帷帳, 待者甚眾, 見之. 須賈頓首言死罪, 曰: "賈不意君能自致於青雲之上, 賈不敢復讀天下之書, 不敢復與天下之事. 賈有湯鑊之罪, 請自屏於胡貉之地, 唯君死生之!" 范睢曰: "汝罪有幾?" 曰: "擢賈之發以續賈之罪, 尚未足." 范睢曰: "汝罪有三耳. 昔者楚昭王時而申包胥爲楚卻吳軍, 楚王封之以荊五千戶, 包胥辭不受, 爲丘墓之寄於荊也. 今睢之先人丘墓亦在魏, 公前以睢爲有外心於齊而惡睢於魏齊, 公之罪一也. 當魏齊辱我於廁中, 公不止, 罪二也. 更醉而溺我, 公其何忍乎? 罪三矣. 然公之所以得無死者, 以綈袍戀戀, 有故人之意, 故釋公." 乃謝罷. 入言之昭王, 罷歸須賈.
20 범저가 돌아가(范睢歸) 네 마리 말이 끄는 큰 수레를 가져와(取大車駟馬), 수고를 위해(爲須賈) 몰아(御之), 진 재상부에 들어갔다(入秦相府). 부중에서(府中) 멀리서 보고는(望見), 아는 사람들이(有識者) 모두(皆) 피하고 숨었다(避匿). 수고가 이상하게 여겼다(須賈怪之).
재상의 집 문에 이르러(至相舍門), 수고에게 말하길(謂須賈曰): "나를 기다리시면(待我), 내가(我) 그대를 위해(爲君) 먼저 들어가서(先入) 상군에게 통보하겠습니다(通於相君)."라고 했다.
수고가 문 아래서 기다리며(須賈待門下), 수레를 지킨 것이(持車) 오래되어(良久), 문지기에게 묻기를(問門下曰): "범숙이 나오지 않으니(范叔不出), 어찌 된 것인가(何也)?"라고 했다.
문지기가 말하길(門下曰): "범숙이란 사람이 없습니다(無范叔)."라고 했다.
수고가 말하길(須賈曰): "좀 전에(鄉者) 나와 함께 마차를 타고(與我載而) 들어간 사람이다(入者)."라고 했다.
문지기가 말하길(門下曰): "바로(乃) 우리 재상(吾相) 장군입니다(張君也)."라고 했다.
수고가 크게 놀라(須賈大驚), 자기가(自) 속은 것을 알고(知見賣), 바로(乃) 웃통을 벗고(肉袒) 무릎으로 걸어서(厀行), 문지기를 통해(因門下人) 죄를 빌었다(謝罪). 이에(於是) 범저가(范睢) 장막을 치고(盛帷帳), 따르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待者甚眾), 그를 만났다(見之).
수고가(須賈) 머리를 조아리며(頓首) 죽을 죄를 빌며(言死罪), 말하길(曰): "제가(賈) 그대의 능력으로(君能) 스스로(自) 이처럼 높은 자리에 이를 것이라고(致於青雲之上) 생각하지 못하고(不意), 제가(賈) 감히(敢) 다시는(復) 천하의 글을 읽지 않고(不讀天下之書), 감히 다시는 천하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不敢復與天下之事). 저에게(賈) 끓는 솥에 들어갈 죄가 있지만(有湯鑊之罪), 청컨대(請) 스스로(自) 오랑캐 땅으로 물러갈 수 있도록 하고(屏於胡貉之地), 오직(唯) 그대가(君) 살리고 죽일 것입니다(死生之)!"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너의 죄가(汝罪) 얼마나 있는가(有幾)?"라고 했다.
<수고가> 말하길(曰): "저의 머리카락을 다 뽑아서(擢賈之發以) 저의 죄를 갚아도(續賈之罪), 오히려 충분하지 않습니다(尚未足)."라고 했다.
범저가 말하길(范睢曰): "너의 죄는(汝罪) 셋이 있다(有三耳). 옛날(昔者) 초 소왕 시절에(楚昭王時而) 신포서가(申包胥) 초나라를 위해(爲楚) 오나라 군대를 물리치자(卻吳軍), 초왕이(楚王) 형 땅의 5000호로(以荊五千戶) 그를 봉하려고 했는데(封之), 신포서가 사양하고(包胥辭) 받지 않았는데(不受), 선조의 묘가 형 땅에 있었기 때문이다(爲丘墓之寄於荊也). 지금(今) 내 선조의 묘도(睢之先人丘墓) 또한(亦) 위나라에 있는데(在魏), 그대가(公) 전에(前) 내가(以睢) 제나라에 딴마음을 품었다고 여기고(爲有外心於齊而) 위제에게 나를 모함했으니(惡睢於魏齊), 그대의 죄가 하나이다(公之罪一也). 위제가(魏齊) 변소에서 나를 욕보일 때를(辱我於廁中) 당해서(當\), 그대가 말리지 않았으니(公不止), 죄가 둘이다(罪二也). 다시(更) 취해서(醉而) 나에게 오줌을 눌 대(溺我), 그대가(公) 모르 척했으니(其何忍乎), 죄가 셋이다(罪三矣). 그러나(然) 공이(公之) 죽음을 당하지 않는 까닭은(所以得無死者), 솜옷으로(以綈袍) 옛정을 그리워하고(戀戀), 옛사람을 생각함이 있었고(有故人之意), 그러므로(故) 그대를 풀어주겠다(釋公)."라고 했다.
이에(乃) 용서하고 쫓아냈다(謝罷). 들어가(入) 소왕에게 보고하고(言之昭王), 수고를 돌려보냈다(罷歸須賈).
* 見賣(견매): 속임을 당함. 賣는 속이다.
* 肉袒(육단) :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냄.
* 青雲之上(청운지상): 지극히 높은 벼슬을 비유함.
* 丘墓(구묘): 송장이나 유골(遺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선조의 묘를 말함.
* 戀戀(연연): 집착(執着)하여 미련을 둠, 그리워서 애태움.
* 罷歸(파귀): 일을 끝마치고 돌아감. 파(罷)하여 돌아감.
21 須賈辭於范睢, 范睢大供具, 盡請諸侯使, 與坐堂上, 食飲甚設. 而坐須賈於堂下, 置莝豆其前, 令兩黥徒夾而馬食之. 數曰: "爲我告魏王, 急持魏齊頭來!不然者, 我且屠大梁." 須賈歸, 以告魏齊. 魏齊恐, 亡走趙. 匿平原君所.
21 수고가(須賈) 범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辭於范睢), 범저가(范睢) 크게 음식을 차려(大供具), 제후의 사신을 모두 청해서(盡請諸侯使), 함께(與) 당상에 앉아(坐堂上), 음식을 성대하게 베풀었다(食飲甚設). 그러나(而) 수고는 당하에 앉게 하고서(坐須賈於堂下), 그 앞에(其前) 여물과 콩을 두고(置莝豆), 묵형을 받은 두 사람 사이에 끼도록 해서(令兩黥徒夾而) 말처럼 먹도록 했다(馬食之).
꾸짖으며 말하길(數曰): "나를 위해(爲我) 위왕에게 고해서(告魏王), 빨리(急) 위제의 목을 가지고(持魏齊頭) 오도록 해라(來)! 그렇지 않으면(不然者), 내가(我) 장차(且) 대량을 도륙하겠다(屠大梁)."라고 했다.
수고가 돌아와(須賈歸, 以) 위왕에게 고했다(告魏齊). 위제가 두려워하며(魏齊恐), 도망쳐서(亡) 조나라로 갔다(走趙). 평원군의 거처에 숨었다(匿平原君所).
* 供具(공구): 부처나 보살(菩薩)에게 공양(供養)하는 향(香)ㆍ화(華)ㆍ번개(幡蓋)ㆍ음식(飮食) 따위.
* 甚設(심설): 성대히 베풀다.
* 黥徒(경도): 묵형을 당한 죄인들. 묵형(墨刑)은 죄인의 이마나 팔뚝 따위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
22 范睢既相, 王稽謂范睢曰: "事有不可知者三, 有不柰何者亦三. 宮車一日晏駕, 是事之不可知者一也. 君卒然捐館舍, 是事之不可知者二也. 使臣卒然填溝壑, 是事之不可知者三也. 宮車一日晏駕, 君雖恨於臣, 無可柰何. 君卒然捐館舍, 君雖恨於臣, 亦無可柰何. 使臣卒然填溝壑, 君雖恨於臣, 亦無可柰何." 范睢不懌, 乃入言於王曰: "非王稽之忠, 莫能內臣於函谷關; 非大王之賢聖, 莫能貴臣. 今臣官至於相, 爵在列侯, 王稽之官尚止於謁者, 非其內臣之意也." 昭王召王稽, 拜爲河東守, 三歲不上計. 又任鄭安平, 昭王以爲將軍. 范睢於是散家財物, 盡以報所嘗困戹者. 一飯之德必償, 睚眥之怨必報.
22 범저가 재상이 되고서(范睢既相), 왕계가 범저에게 말하길(王稽謂范睢曰): "일에는(事) 알 수 없는 것이 셋이 있고(有不可知者三), 어찌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셋이 있습니다(有不柰何者亦三). 궁의 수레가(宮車) 어느 아침에(一日) 늦게 멍에를 메는 것(晏駕), 이것이(是) 일을 알 수 없는 것의 하나입니다(事之不可知者一也). 그대가(君) 갑자기(卒然) 관사를 버리는(죽는) 것(捐館舍), 이것이(是) 일을 알 수 없는 두 번째입니다(事之不可知者二也). 신으로 하여금(使臣) 갑자기(卒然) 구덩이를 메우게 하는(죽는) 것(填溝壑), 이것이(是) 일을 알 수 없는 세 번째입니다(事之不可知者三也). 임금이 갑자가 죽으면(宮車一日晏駕), 그대가(君) 비록(雖) 신을 <왕에게 추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해도(恨於臣), 어찌할 수 없습니다(無可柰何). 그대가 갑자기 죽는다면(君卒然捐館舍), 그대가(君) 비록(雖) 신을 <왕에게 추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해도(恨於臣), 어찌할 수 없습니다(無可柰何). 신이 갑자기 죽는다면(使臣卒然填溝壑), 그대가(君) 비록(雖) 신을 <왕에게 추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해도(恨於臣), 어찌할 수 없습니다(無可柰何)."라고 했다.
범저가 기뻐하지 않았지만(范睢不懌), 곧(乃) 들어가 왕에게 말하길(入言於王曰): "왕계의 충성이 아니었다면(非王稽之忠), 누구도(莫) 함곡관에서(於函谷關) 신을 들어오도록 할 수 없었고(能內臣); 대왕의 현명함과 성덕이 아니었다면(非大王之賢聖), 누구도 신을 귀하게 여길 수 없었습니다(莫能貴臣). 지금(今) 신의 관직이(臣官) 재상에 이르렀고(至於相), 작위는(爵) 열후에 있지만(在列侯), 왕계의 관직은(王稽之官) 오히려(尚) 알자에 그쳤으니(止於謁者), 非신을 데려온 뜻이 아닐 것입니다(其內臣之意也)."라고 했다.
소왕이(昭王) 왕계를 불러(召王稽), 하동태수로 임명하고(拜爲河東守), 3년 동안(三歲) 상계하지 않도록 했다(不上計). 又任鄭安平, 昭王以爲將軍. 范睢於是散家財物, 盡以報所嘗困戹者. 一飯之德必償, 睚眥之怨必報.
* 宮車一日晏駕(궁거일일안가): 궁의 수레가 아침에 늦게 나간다는 것은 왕이 조회에 늦는다는 의미로 제왕이 붕어한다는 뜻이다. 晏駕(안가)는 직역하면 (궁의 수레가) 늦게 나가다.
* 晏駕(안가): 임금이 세상(世上)을 떠남.
* 捐館舍(연관사): 관사를 내버려 두다. 즉, 죽는다는 뜻.
* 填溝壑(전구학): 구덩이나 골짜기를 메우다. 즉, 객사한다는 뜻.
* 上計(상계): 매년 수도로 사람을 보내 인구와 재물, 식량 등을 기록한 장부를 바치도록 하는 일.
23 范睢相秦二年, 秦昭王之四十二年, 東伐韓少曲、高平, 拔之.
23 범저가(范睢) 진나라 재상이 되고 2년이 지나(相秦二年), 진 소왕 42년에(秦昭王之四十二年), 동으로(東) 한나라 소곡과 고평일 치고(伐韓少曲、高平, 빼앗았다(拔之).
24 秦昭王聞魏齊在平原君所, 欲爲范睢必報其仇, 乃詳爲好書遺平原君曰; 「寡人聞君之高義, 願與君爲布衣之友, 君幸過寡人, 寡人願與君爲十日之飲." 平原君畏秦, 且以爲然, 而入秦見昭王. 昭王與平原君飲數日, 昭王謂平原君曰: "昔周文王得呂尚以爲太公, 齊桓公得管夷吾以爲仲父, 今范君亦寡人之叔父也. 范君之仇在君之家, 願使人歸取其頭來; 不然, 吾不出君於關." 平原君曰: "貴而爲交者, 爲賤也; 富而爲交者, 爲貧也. 夫魏齊者, 勝之友也, 在, 固不出也, 今又不在臣所." 昭王乃遺趙王書曰: "王之弟在秦, 范君之仇魏齊在平原君之家. 王使人疾持其頭來; 不然, 吾舉兵而伐趙, 又不出王之弟於關." 趙孝成王乃發卒圍平原君家, 急, 魏齊夜亡出, 見趙相虞卿. 虞卿度趙王終不可說, 乃解其相印, 與魏齊亡, 閒行, 念諸侯莫可以急抵者, 乃復走大梁, 欲因信陵君以走楚. 信陵君聞之, 畏秦, 猶豫未肯見, 曰: "虞卿何如人也?" 時侯嬴在旁, 曰: "人固未易知, 知人亦未易也. 夫虞卿躡屩檐簦, 一見趙王, 賜白璧一雙, 黃金百鎰; 再見, 拜爲上卿; 三見, 卒受相印, 封萬戶侯. 當此之時, 天下爭知之. 夫魏齊窮困過虞卿, 虞卿不敢重爵祿之尊, 解相印, 捐萬戶侯而閒行. 急士之窮而歸公子, 公子曰『何如人』. 人固不易知, 知人亦未易也!" 信陵君大慚, 駕如野迎之. 魏齊聞信陵君之初難見之, 怒而自剄. 趙王聞之, 卒取其頭予秦. 秦昭王乃出平原君歸趙.
24 진 소왕이(秦昭王) 위제가(魏齊) 평원군의 처소에 있다는 것을(在平原君所) 듣고(聞), 범저를 위해(爲范睢) 반드시 그 원수를 갚아주려 했고(欲必報其仇), 이에(乃) 거짓으로(詳) 화친을 위한 문서를(爲好書) 평원군에게 보내 말하길(遺平原君曰):
"과인이(寡人) 듣기로(聞) 그대가 의리가 높으니(君之高義), 원컨대(願) 그대와 함께(與君) 신분을 넘은 친구가 되고 싶으니(爲布衣之友), 그대가(君) 관인에게 들른다면(幸過寡人), 과인이(寡人) 그대와 함께(與君) 열흘 동안 술을 마시고 싶다(願爲十日之飲)."라고 했다.
평원군이 진나라를 두려워했지만(平原君畏秦), 또(且) 그럴듯하다고 여겨(以爲然, 而) 진나라에 들어와(入秦) 소왕을 만났다(見昭王).
소왕과 평원군이(昭王與平原君) 며칠 술을 마시다(飲數日), 소왕이(昭王) 평원군에게 말하길(謂平原君曰): "옛날(昔) 주 문왕이(周文王) 여상을 얻어(得呂尚) 태공으로 삼았고(以爲太公), 제 환공이(齊桓公) 관이오를 얻어(得管夷吾) 중보로 삼았고(以爲仲父), 지금(今) 범군도 또한(范君亦) 과인의 숙보다(寡人之叔父也). 범군의 원수가(范君之仇) 그대의 집에 있는데(在君之家), 원컨대(願) 사람을 가도록 해서(使人歸) 그 머리를 취해서 오도록 하라(取其頭來); 그렇지 않으면(不然), 내가(吾) 함곡관에서(於關) 그대가 나가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不出君)."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귀할 때(貴而) 사귀는 것은(爲交者), 천하게 되었을 때를 위해서이고(爲賤也); 부유하면서(富而) 사귀는 것은(爲交者), 가난할 때를 위해서입니다(爲貧也). 저 위제는(夫魏齊者), 제 벗이고(勝之友也), <집에> 있더라도(在), 진실로(固) 내어줄 수 없고(不出也), 지금 또(今又) 신의 집에 있지 않습니다(不在臣所)."라고 했다.
소왕이(昭王) 이에(乃) 조왕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길(遺趙王書曰): "왕의 동생이(王之弟) 진나라에 있는데(在秦), 범군의 원수(范君之仇) 위제가(魏齊) 평원군의 집에 있습니다(在平原君之家). 왕께서(王) 사람을 보내(使人) 빨리(疾) 그 머리를 가지고 오도록 하고(持其頭來); 그렇지 않으면(不然), 내가(吾) 군대를 일으켜(舉兵而) 조나라를 칠 것이고(伐趙), 또(又) 왕의 동생을(王之弟) 함곡관에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不出於關)."라고 했다.
조 효성왕이(趙孝成王) 이에(乃) 군대를 보내(發) 평원군의 집을 포위했고(卒圍平原君家), 다급해지자(急), 위제가 밤을 틈타(魏齊夜) 도망 나가서(亡出), 조나라 재상 우경을 만났다(見趙相虞卿). 우경이(虞卿) 조왕을(趙王) 끝내(終) 설득할 수 없음을(不可說) 헤아리고(度), 이에(乃) 그 인수를 풀고(解其相印), 위제와 함께 도망쳐(與魏齊亡), 가는 중에(閒行), 제후 중에(諸侯) 누구라도(莫) 급하게 갈 만한 사람이 없음을(可以急抵者) 생각하고(念), 이에(乃) 다시(復) 대량으로 달아나(走大梁), 신릉군에 의지해서(因信陵君以) 초나라로 달아나려고 했다(欲走楚). 신릉군이 듣고(信陵君聞之), 진나라를 두려워해서(畏秦), 오히려(猶) 머뭇거리며(豫) 기꺼리 보려고 하지 않고 말하길(未肯見, 曰):
"우경은(虞卿) 어떤 사람인가(何如人也)?"라고 했다.
이때(時) 후영이 옆에 있다가 말하길(侯嬴在旁, 曰): "사람은(人) 진실로(固) 쉽게 알 수 없고(未易知), 남을 아는 것도(知人) 또한(亦) 쉽지 않습니다(未易也). 저 우경이(夫虞卿) 짚신을 신고(躡屩) 삿갓을 쓰고(檐簦), 조왕을 한 번 보고(一見趙王), 백옥 한 쌍과 황금 100일을 받았고(賜白璧一雙, 黃金百鎰); 두 번 만나서(再見), 상경에 임명되었고(拜爲上卿); 세 번 만나서(三見), 마침내(卒) 재상의 인수를 받고(受相印), 만호후에 봉해졌습니다(封萬戶侯). 당시에(當此之時), 천하 사람들이(天下) 그를 알려고 다투었습니다(爭知之). 무릇(夫) 위제가 곤궁해져서(魏齊窮困) 우경에게 들르자(過虞卿), 우경이(虞卿) 감히(敢) 작록의 존귀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不重爵祿之尊), 인수를 풀고(解相印), 만호후를 버리고(捐萬戶侯而) 슬며시 나왔습니다(閒行). 선비의 곤궁함을 급하게 여겨서(急士之窮而) 공자에게 귀의했는데(歸公子), 공자가 말하길(公子曰) '어떤 사람인가何如人)'라고 했습니다. 사람은(人) 진실로 알기 쉽지 않고(固不易知), 남을 아는 것도 또한 쉽지 않습니다(知人亦未易也)!"라고 했다.
신릉군이 크게 부끄러워하면(信陵君大慚), 말을 몰아(駕) 야로 나가(如野) 그를 맞이했다(迎之). 위제는(魏齊) 신릉군이(信陵君之) 처음에(初) 만나기 어려워한 것을(難見之) 듣고(聞), 화가 나서(怒而) 스스로 목을 찔렀다(自剄). 조왕이 그것을 듣고(趙王聞之), 마침내(卒) 그 머리를 잘라(取其頭) 진나라에 주었다(予秦). 진 소왕이(秦昭王) 이에(乃) 평원군을 조나라에 돌려보냈다(出平原君歸趙).
25 昭王四十三年, 秦攻韓汾陘, 拔之, 因城河上廣武.
25 소왕 43년에(昭王四十三年), 진나라가(秦) 한나라의 분과 형을 쳐서(攻韓汾陘), 빼앗고(拔之), 이에(因) 하수 가의 광무에 성을 쌓았다(城河上廣武).
26 後五年, 昭王用應侯謀, 縱反閒賣趙, 趙以其故, 令馬服子代廉頗將. 秦大破趙於長平, 遂圍邯鄲. 已而與武安君白起有隙, 言而殺之. 任鄭安平, 使擊趙. 鄭安平爲趙所圍, 急, 以兵二萬人降趙. 應侯席槁請罪. 秦之法, 任人而所任不善者, 各以其罪罪之. 於是應侯罪當收三族. 秦昭王恐傷應侯之意, 乃下令國中: "有敢言鄭安平事者, 以其罪罪之." 而加賜相國應侯食物日益厚, 以順適其意. 後二歲, 王稽爲河東守, 與諸侯通, 坐法誅. 而應侯日益以不懌.
26 5년 뒤에(後五年), 소왕이(昭王) 응후의 계책을 써서(用應侯謀), 반간계에 따라(縱反閒) 조나라를 속이고(賣趙), 조나라가(趙) 이 까닭 때문에(以其故), 마복의 아들로 하여금(令馬服子) 염파를 대신해(代廉頗) 장수로 삼았다(將). 진나라가(秦) 장평에서(於長平) 조나라를 대파하고(大破趙), 마침내(遂) 한단을 포위했다(圍邯鄲). 얼마 안 있어(已而) 무안군 백기와(與武安君白起) 사이가 안 좋아(有隙), 말해서 그를 죽였다(言而殺之). 정안평에게 맡기고(任鄭安平), 조나라를 치도록 했다(使擊趙). 정안평이(鄭安平) 조나라에게 포위를 당해서(爲趙所圍), 급해지자(急), 군사 2만 명으로(以兵二萬人) 조나라에 항복했다(降趙). 응후가(應侯) 멍석을 깔고(席槁) 죄를 청했다(請罪). 진나라의 법에(秦之法), 사람을 임용해서(任人而) 임무를 받은 사람이(所任) 잘하지 못하면(不善者), 각자(各) 그 죄로(以其罪) 벌을 주었다(罪之). 이에(於是) 응후의 죄는(應侯罪) 마땅히(當) 삼족을 체포해야 했다(收三族). 진 소왕이(秦昭王) 응후의 마음을(應侯之意) 상하게 할까 염려해서(恐傷), 이에(乃) 나라에 영을 내리기를(下令國中):
"감히(敢) 정안평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有言鄭安平事者), 그 죄로(以其罪) 그를 벌할 것이다(罪之)."라고 했다.
그리고(而) 상국 응후에게(相國應侯) 음식과 물품을 내려(加賜食物) 날로 더욱 후하게 대하고(日益厚, 以) 그 마음을 달랬다(順適其意). 2년 뒤에(後二歲), 왕계가(王稽) 하동태수가 되어(爲河東守), 제후와 내통하다(與諸侯通), 사형을 벌을 받았다(坐法誅). 이에(而) 응후가(應侯) 날로 더욱(日益以) 불안했다(不懌).
* 席稿請罪(석고청죄): 짚으로 된 방석에 꿇어앉아 벌을 청하다. 稿는 짚으로 된 방석.
* 坐法(좌법): 죄에 의하여 처벌을 받다.
27 昭王臨朝嘆息, 應侯進曰: "臣聞『主憂臣辱, 主辱臣死』. 今大王中朝而憂, 臣敢請其罪." 昭王曰: "吾聞楚之鐵劍利而倡優拙. 夫鐵劍利則士勇, 倡優拙則思慮遠. 夫以遠思慮而御勇士, 吾恐楚之圖秦也. 夫物不素具, 不可以應卒, 今武安君既死, 而鄭安平等畔, 內無良將而外多敵國, 吾是以憂." 欲以激勵應侯. 應侯懼, 不知所出. 蔡澤聞之, 往入秦也.
27 소왕이(昭王) 조회에 나와서(臨朝) 한숨을 쉬자(嘆息), 응후가 나와 말하길(應侯進曰):
"신이 듣기로(臣聞) '군주가 근심이 있으면(主憂) 신하는 치욕을 당하고(臣辱),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主辱) 신하는 죽는다(臣死)'라고 했습니다. 지금(今) 대왕께서(大王) 조회 중에 걱정하시니(中朝而憂), 신이(臣) 감히 그 죄를 청합니다(敢請其罪)."라고 했다.
소왕이 말하길(昭王曰): "내가 듣기로(吾聞) 초나라의 철검이(楚之鐵劍) 날카롭지만(利而) 광대는 시원치 않다고 한다(倡優拙). 무릇(夫) 철검이 예리하면(鐵劍利則) 병사가 용맹하고(士勇), 광대가 시원치 않으면(倡優拙則) 생각이 원대할 것이다(思慮遠). 무릇(夫) 원대한 생각으로(以遠思慮而) 용감한 병사를 이끌면(御勇士), 내가(吾) 초나라가 진나라를 도모할 것이(楚之圖秦) 두려워진다(恐也). 무릇(夫) 일은(物) 평소에 갖추어지지 않으면(不素具), 급하게 대응할 수 없으니(不可以應卒), 지금(今) 무안군이 이미 죽었고(武安君既死, 而) 정안평 등의 배반해서(鄭安平等畔), 안으로(內) 뛰어난 장수가 없고(無良將而) 밖으로는(外) 적국이 많아(多敵國), 내가() 이것을 걱정한다(吾是以憂)."라고 했다.
이것으로(以) 응후를 격려하려고 했지만(欲激勵應侯), 응후가 두려워하며(應侯懼), 나갈 곳을 알지 못했다(不知所出). 채택이 이것을 듣고(蔡澤聞之), 와서(往) 진나라에 들어왔다(入秦也).
* 倡優(창우), 俳優(배우): 연극(演劇)이나 영화(映畫) 속의 인물(人物)로 분장(扮裝)하여 연기(演技)하는 사람, 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