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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史記列傳(사기열전) 7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2/4] 남의 힘을 빌어 일을 이룬 사람들 / 인인성사(因人成事)

by प्रज्ञा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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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平原君已定從而歸, 歸至於趙, 曰: "勝不敢復相士. 勝相士多者千人, 寡者百數, 自以爲不失天下之士, 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 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遂以爲上客. 

5 평원군은(平原君) 합종이 정해지고 나서(已定從而) 돌아왔는데(歸, 조나라에 이르러 말하길(歸至於趙, 曰): "내가(勝) 감히(敢) 다시는(復)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相士). 내가 선비를 고른 것이(勝相士) 많게는(多) 천 명이고(者千人), 적게는(寡者) 백 명인데(百數), 스스로(自) 천하의 선비에 대해 실수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以爲不失天下之士), 지금(今) 바로(乃) 모 선생에 대해서는(於毛先生而) 실수했다(失之也). 모 선생이(毛先生) 한 번(一) 초나라에 가서(至楚, 而) 조나라로 하여금(使趙) 구정과 대려보다 무겁게 만들었다(重於九鼎大呂). 모 선생의(毛先生) 세 치 혀는(以三寸之舌), 백만 명의 군대보다 강했다(彊於百萬之師). 내가 감히 다시는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勝不敢復相士)."라고 했다.

모수를(遂) 상객으로 삼았다(以爲上客). 

 

6 平原君既返趙, 楚使春申君將兵赴救趙, 魏信陵君亦矯奪晉鄙軍往救趙, 皆未至. 秦急圍邯鄲, 邯鄲急, 且降, 平原君甚患之. 邯鄲傳舍吏子李同說平原君曰: "君不憂趙亡邪?" 平原君曰: "趙亡則勝爲虜, 何爲不憂乎?" 李同曰: "邯鄲之民, 炊骨易子而食, 可謂急矣, 而君之後宮以百數, 婢妾被綺縠, 餘粱肉, 而民褐衣不完, 糟糠不厭. 民困兵盡, 或剡木爲矛矢, 而君器物鐘磬自若. 使秦破趙, 君安得有此?使趙得全, 君何患無有?今君誠能令夫人以下編於士卒之閒, 分功而作, 家之所有盡散以饗士, 士方其危苦之時, 易德耳." 於是平原君從之, 得敢死之士三千人. 李同遂與三千人赴秦軍, 秦軍爲之卻三十里. 亦會楚、魏救至, 秦兵遂罷, 邯鄲復存. 李同戰死, 封其父爲李侯. 

6 평원군이(平原君) 조나라에 돌아온 뒤에(既返趙), 초나라가(楚) 춘신군으로 하여금(使春申君) 군대를 이끌고(將兵) 조나라를 구하라고 보냈는데(赴救趙), 위나라(魏) 신릉군도 또한(信陵君亦) 진비의 군대를 속여서 빼앗고(矯奪晉鄙軍) 조나라를 구워하는 갔는데(往救趙), 모두(皆) 도착하지 못했다(未至). 진나라가(秦) 서둘러(急) 한단을 포위하고(圍邯鄲), 한단이 급박해지고(邯鄲急), 또(且) 항복하려고 하지(降), 평원군이 크게 걱정했다(平原君甚患之).

한단의(邯鄲) 전사의(傳舍) 관리 아들인(吏子) 이동이(李同) 평원군을 설득해 말하길(說平原君曰): "군께서(君) 조나라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까(不憂趙亡邪)?"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조나라가 망하면(趙亡則) 내가 포로가 될 것인데(勝爲虜), 어찌(何) 걱정하지 않겠느냐(爲不憂乎)?"라고 했다.

이동이 말하길(李同曰): "한단의 백성이(邯鄲之民), 뼈로 밥을 짓고(炊骨) 자식을 바꾸어(易子而) 먹는데(食), 급하다고 할 만 하지만(可謂急矣, 而) 군의 후궁이(君之後宮以) 백 여 명이고(百數), 시녀들이(婢妾) 비단옷을 입고(被綺縠), 쌀고 고기나 남아도는데(餘粱肉, 而) 백성은(民) 거친 베옷도(褐衣) 완전하지 않고(不完), 술지게미도 포식하지 못합니다(糟糠不厭). 백성은 곤궁하고(民困) 병기도 다해서(兵盡), 혹(或) 나무를 깎아(剡木) 창과 화살을 만드는데(爲矛矢, 而) 군의 기물과(君器物) 종경은(鐘磬) 그대로입니다(自若). 만약(使) 진나라가(秦) 조나라를 무너뜨리면(破趙), 군에게(君) 어찌(安) 이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得有此)? 만약(使) 조나라가 온전하다면(趙得全), 군께서(君) 어찌(何) 이런 것이 있을 수 없음을 걱정합니까(患無有)? 지금(今) 군께서(君) 진실로(誠) 부인 이하의 사람들을 시켜(能令夫人以下) 사졸 가운데 편성하고(編於士卒之閒), 일을 나누어(分功而) 시키고(作), 집안의(家之) 가진 것을(所有) 모두 풀어(盡散以) 사졸을 먹이면(饗士), 사졸이(士) 바야흐로(方) 그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때에도(其危苦之時), 쉽게(易) 은혜롭게 여길 것입니다(德耳)."라고 했다.

이에(於是) 평원군이 그것을 따라서(平原君從之), 감히 죽음을 각오한(敢死之) 병사 3천을 얻었다(士三千人). 이동이(李同) 마침내(遂) 3천 명과 함께(與三千人) 진나라 군대에 달려들어(赴秦軍), 진나라 군대가(秦軍) 30리를 물러나게 만들었다(爲之卻三十里). 또한(亦) 초나라, 위나라의 구원병이 모여(會楚、魏救) 이르니(至), 진나라 군대가(秦兵) 돌아가고(遂罷), 한단이(邯鄲) 다시 보존되었다(復存). 이동이 전사했는데(李同戰死), 그 아버지를 이후에 봉했다(封其父爲李侯). 

 

* 矯奪(교탈): 속이어 빼앗음.

* 婢妾(비첩): 종으로 첩()이 된 계집.

* 綺縠(기곡): 호사스러운 옷. 綺(기)는 비단, 縠(곡)은 주름 비단.

* 不厭(불염): 실컷 먹지 못함. 厭은 饜과 같으며 포식하다는 뜻.

* 自若(자약): 태연하다. 태연자약하다.


7 虞卿欲以信陵君之存邯鄲爲平原君請封. 公孫龍聞之, 夜駕見平原君曰: "龍聞虞卿欲以信陵君之存邯鄲爲君請封, 有之乎?" 平原君曰: "然." 龍曰: "此甚不可. 且王舉君而相趙者, 非以君之智能爲趙國無有也. 割東武城而封君者, 非以君爲有功也, 而以國人無勳, 乃以君爲親戚故也. 君受相印不辭無能, 割地不言無功者, 亦自以爲親戚故也. 今信陵君存邯鄲而請封, 是親戚受城而國人計功也. 此甚不可. 且虞卿操其兩權, 事成, 操右券以責;事不成, 以虛名德君. 君必勿聽也." 平原君遂不聽虞卿. 

7 우경은(虞卿) 신릉군이(信陵君之) 한단을 보존한 것 때문에(存邯鄲) 평원군을 위하여(爲平原君) 봉읍 청하려고 했다(請封).

공손룡이 그것을 듣고(公孫龍聞之), 밤에(夜) 수레를 몰아(駕) 평원군을 만나서 말하길(見平原君曰): "제가 들으니(龍聞) 우경이(虞卿) 신릉군이 한단을 보존한 것 때문에(以信陵君之存邯鄲) 군을 위해(爲君) 봉읍을 청하려고 한다는데(請封), 그런 일이 있습니까(有之乎)?"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그렇다(然)."라고 했다.

공손룡이 말하길(龍曰): "이것은(此) 매우(甚) 옳지 않습니다(不可). 다만(且) 왕이(王) 군을 등용해서(舉君而) 조나라에서 재상으로 삼은 것은(相趙者), 군의 지혜와 능력이(君之智能爲) 조날에(趙)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國無有也). 동무성을 떼어(割東武城而) 군을 봉한 것도(封君者), 군에게 공이 있고(以君爲有功也, 而) 나라 사람 중에(以國人) 공훈이 없기 때문이(無勳) 아니고(非), 바로(乃) 군께서 친척이기 때문입니다(以君爲親戚故也). 군께서(君) 재상의 인을 받고(受相印) 능력이 없음으로 사양하지 않고(不辭無能), 땅을 떼어주니(割地) 공이 없다고 말하지 않은 것도(不言無功者), 또한(亦) 스스로(自) 친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以爲親戚故也). 지금(今) 신릉군이(信陵君) 한단을 보존해 주었는데(存邯鄲而) 봉읍을 청한다면(請封), 이것은(是) 친척으로서 성을 받고(親戚受城而) 나라 사람으로서(國人) 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計功也). 이것은(此) 매우 옳지 않습니다(甚不可). 또(且) 우경이(虞卿) 그 두 저울을 쥐고서(操其兩權), 일이 성사되면(事成), 우권을 쥐고서 보상을 요구하고(操右券以責);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事不成), 허명으로(以虛名) 군에게 은혜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德君). 군께서는(君) 반드시(必) 듣지 말아야 합니다(勿聽也)."라고 했다.

평원군이(平原君) 마침내(遂) 우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不聽虞卿). 


8 平原君以趙孝成王十五年卒. 子孫代, 後竟與趙俱亡. 

8 평원군이(平原君) 효성왕 15년에(以趙孝成王十五年) 죽었다(卒). 자손이 대를 이었지만(子孫代), 나중에(後) 결국(竟) 조나라와 함께(與趙俱) 망했다(亡). 


9 平原君厚待公孫龍. 公孫龍善爲堅白之辯, 及鄒衍過趙言至道, 乃絀公孫龍. 

9 평원군이(平原君) 공손룡을 후하게 예우했다(厚待公孫龍). 공손룡은(公孫龍) 견백지변에 뛰어났는데(善爲堅白之辯), 추연이 조나라를 지남에 이르러(及鄒衍過趙) 지극한 도를 말하자(言至道), 이에(乃) 공손룡을 멀리했다(絀公孫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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