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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史記列傳(사기열전) 77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3/4]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 / 덕인망지(德人忘之) / 절절대은(折節大隱)

by प्रज्ञा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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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베푼 은덕은 잊어야 한다 / 덕인망지(德人忘之)

 

10 魏王怒公子之盜其兵符, 矯殺晉鄙, 公子亦自知也. 已卻秦存趙, 使將將其軍歸魏, 而公子獨與客留趙. 趙孝成王德公子之矯奪晉鄙兵而存趙, 乃與平原君計, 以五城封公子. 公子聞之, 意驕矜而有自功之色. 客有說公子曰: "物有不可忘, 或有不可不忘. 夫人有德於公子, 公子不可忘也; 公子有德於人, 願公子忘之也. 且矯魏王令, 奪晉鄙兵以救趙, 於趙則有功矣, 於魏則未為忠臣也. 公子乃自驕而功之, 竊為公子不取也." 於是公子立自責, 似若無所容者. 趙王埽除自迎, 執主人之禮, 引公子就西階. 公子側行辭讓, 從東階上. 自言罪過, 以負於魏, 無功於趙. 趙王侍酒至暮, 口不忍獻五城, 以公子退讓也. 公子竟留趙. 趙王以鄗為公子湯沐邑, 魏亦復以信陵奉公子. 公子留趙. 

10 위왕은(魏王) 공자가(公子之) 자기 병부를 훔치고(盜其兵符), 속여서(矯) 진비를 죽인 것에(殺晉鄙) 화를 냈고(怒), 공자도 또한(公子亦) 스스로 <자기 죄를> 알았다(自知也). 이미(已) 진나라를 물리치고(卻秦) 조나라를 보존했고(存趙), 장수를 시켜(使將) 그 군대를 이끌고(將其軍) 위나라로 돌아가도록 하고(歸魏, 而) 공자 홀로(公子獨) 빈객과 함께(與客) 조나라에 머물렀다(留趙).

조 효성왕이(趙孝成王) 공자가(公子之) 왕명을 속여(矯) 진비의 군대를 빼앗고(奪晉鄙兵而) 조나라를 보존시킨 것을(存趙) 고맙게 여기고(德), 이에(乃) 평원군과 함께 상의해서(與平原君計), 5개 성으로(以五城) 공자를 봉했다(封公子). 공자가 이것을 듣고(公子聞之), 마음이(意) 교만해지고(驕矜而) 스스로 공이 있다는(有自功之) 얼굴빛을 드러냈다(色).

빈객 중에(客) 공자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 말하길(有說公子曰): "일에는(物)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고(有不可忘), 혹(或)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有不可不忘). 무릇(夫) 사람들 중에(人) 공자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有德於公子), 공자께서는(公子) 잊으면 안 되고(不可忘也); 공자에게(公子) 남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有德於人), 바라건대(願) 공자께서 그것을 잊어야 합니다(公子忘之也). 또(且) 위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속여(矯魏王令), 진비의 군대를 빼앗아(奪晉鄙兵以) 조나라를 구한 것은(救趙), 조나라에게는(於趙則) 공이 있는 것이지만(有功矣), 위나라에게는(於魏則)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未為忠臣也). 공자가(公子) 이에(乃) 스스로 교만해지고(自驕而) 공으로 삼는다면(功之), 참으로(竊) 공자를 위해(為公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不取也)."라고 했다.

이에(於是) 공자가(公子) 스스로를 책망하고(立自責), 몸 둘 곳이 없는 사람처럼 했다(似若無所容者). 조왕이(趙王) 비질하고 청소해서(埽除) 직접 맞이하고(自迎), 주인의 예를 잡아서(執主人之禮), 공자를 이끌어(引公子) 서쪽 계단으로 나아갔다(就西階). 공자가(公子) 옆으로 비껴 걸으며(側行) 사양하고(辭讓), 동쪽 계단을 따라(從東階) 올라갔다(上). 스스로(自) 죄를 짓고(罪過, 以) 위나라를 배신했으며(負於魏), 조나라에 공이 없다고(無功於趙) 말했다(言). 조왕이(趙王) 술을 접대하여(侍酒) 저녁에 이르자(至暮), 입으로(口) 차마 5개 성을 준다고 말하지 못했는데(不忍獻五城), 공자가 사양했기 때문이다(以公子退讓也). 공자가(公子) 마침내(竟) 조나라에 머물렀다(留趙). 조왕이(趙王) 호 땅을(以鄗) 공자를 위해(為公子) 탕목읍으로 주었고(湯沐邑), 위나라도(魏) 또한(亦) 다시(復) 신릉으로(以信陵) 공자를 받들었다(奉公子). 공자는 조나라에 머물렀다(公子留趙). 

 

* 驕矜(교긍): 교만()하고 자부()함. 또는 교만()하고 자부()하는 생각.

 

노름꾼과 술꾼 사이에 숨은 현자 / 절절대은(折節大隱)

11 公子聞趙有處士毛公藏於博徒, 薛公藏於賣漿家, 公子欲見兩人, 兩人自匿不肯見公子. 公子聞所在, 乃閒步往從此兩人游, 甚歡. 平原君聞之, 謂其夫人曰: "始吾聞夫人弟公子天下無雙, 今吾聞之, 乃妄從博徒賣漿者游, 公子妄人耳." 夫人以告公子. 公子乃謝夫人去, 曰: "始吾聞平原君賢, 故負魏王而救趙, 以稱平原君. 平原君之游, 徒豪舉耳, 不求士也. 無忌自在大梁時, 常聞此兩人賢, 至趙, 恐不得見. 以無忌從之游, 尚恐其不我欲也, 今平原君乃以為羞, 其不足從游." 乃裝為去. 夫人具以語平原君. 平原君乃免冠謝, 固留公子. 平原君門下聞之, 半去平原君歸公子, 天下士復往歸公子, 公子傾平原君客. 

11 공자는(公子) 조나라에(趙有) 처사 모공이(處士毛公) 노름꾼 사이에 숨어 있고(藏於博徒), 설공이(薛公) 술집에 숨어 있다고(藏於賣漿家) 듣고서(聞), 공자가(公子) 두 사람을 만나보려고 했지만(欲見兩人), 두 사람이(兩人) 스스로 숨어(自匿) 공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不肯見公子). 공자가(公子) 있는 곳을 듣고(聞所在), 바로(乃) 신분을 감추고 가서(閒步往) 두 사람이 노는 것을 따랐는데(從此兩人游), 매우 즐거웠다(甚歡).

평원군이 그것을 듣고(平原君聞之), 그 부인에게 말하길(謂其夫人曰): "처음에(始) 내가 듣기로(吾聞) 부인의 동생 공자가(夫人弟公子) 천하에 짝이 없는 인재라고 들었는데(天下無雙), 지금(今) 내가 들으니(吾聞之), 겨우(乃) 헛되이(妄) 노름꾼과 술꾼을 따라 논다고 하니(從博徒賣漿者游), 공자가(公子)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妄人耳)."라고 했다. 부인이 이것을 공자에게 일러주었다(夫人以告公子).

공자가 이에(公子乃) 부인에게 인사하고(謝夫人) 떠나며 말하길(去, 曰): "처음에(始) 내가 듣기로(吾聞) 평원군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고(平原君賢), 그러므로(故) 위왕을 배신하고(負魏王而) 조나라를 구해서(救趙, 以) 평원군에게 걸맞게 했습니다(稱平原君). 평원군이 어울리는 것이(平原君之游), 단지(徒) 호걸을 등용할 뿐(豪舉耳), 선비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不求士也). 내가 대량에 있을 때부터(無忌自在大梁時), 늘(常) 이 두 사람이 현명하다고 들었고(聞此兩人賢), 조나라에 와서(至趙), 만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恐不得見). 제가(以無忌) 따라 놀면서도(從之游), 오히려(尚) 그들이 나를 바라지 않을까 걱정하는데(恐其不我欲也), 지금(今) 평원군이(平原君) 곧(乃) 부끄럽게 여기니(以為羞), 그는(其) 따라 놀기에 부족합니다(不足從游)."라고 했다.

이에(乃) 짐을 꾸리고(裝) 떠나려고 했다(為去). 부인이(夫人) 모두(具) 이것으로(以) 평원군에게 말했다(語平原君). 평원군이(平原君) 곧(乃) 관을 벗고 사과하며(免冠謝), 공자가 머물리기를 바랐다(固留公子). 평원군 문하에서(平原君門下) 이것을 듣고(聞之), 반이(半) 평원군을 떠나(去平原君) 공자에게 가고(歸公子), 천하의 선비가(天下士) 다시(復) 와서 공자에게 가니(往歸公子), 공자가(公子) 평원군의 식객 마음을(平原君客) 기울게 했다(傾)

 

* 博徒(박도): 노름꾼. 노름을 일삼는 사람.


12 公子留趙十年不歸. 秦聞公子在趙, 日夜出兵東伐魏. 魏王患之, 使使往請公子. 公子恐其怒之, 乃誡門下: "有敢為魏王使通者, 死." 賓客皆背魏之趙, 莫敢勸公子歸. 毛公、薛公兩人往見公子曰: "公子所以重於趙, 名聞諸侯者, 徒以有魏也. 今秦攻魏, 魏急而公子不恤, 使秦破大梁而夷先王之宗廟, 公子當何面目立天下乎?" 語未及卒, 公子立變色, 告車趣駕歸救魏. 

12 공자가(公子) 조나라에 10년을 머물면서(留趙十年) 돌아가지 않았다(不歸). 진나라는(秦) 공자가 조나라에 있다는 것을 듣고(聞公子在趙), 밤낮으로(日夜) 군사를 내어(出兵) 동쪽으로(東) 위나라를 쳤다(伐魏). 위왕이 이것을 걱정하여(魏王患之), 사신을 시켜(使使) 가도록 해서(往) 공자에게 청했다(請公子). 공자가(公子) 그 노여움을 두려워해서(恐其怒之), 곧(乃) 문하에 경계하기를(誡門下): "감히(敢) 위왕을 위해(為魏王) 사신을 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使通者), 죽을 것이다(死)."라고 했다.

빈객이(賓客) 모두(皆) 위나라를 배신하고(背魏) 조나라에 갔으므로(之趙), 누구도(莫) 감히(敢) 공자가 돌아갈 것을 권하지 않았다(勸公子歸).

모공과 설공 두 사람이(毛公、薛公兩人) 와서 공자를 보고 말하길(往見公子曰): "공자가(公子) 조나라에서 중용되는 까닭은(所以重於趙), 이름이(名) 제후에게 알려진 것은(聞諸侯者), 다만(徒) 위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以有魏也). 지금(今)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고(秦攻魏), 위나라가 급한데도(魏急而) 공자가 구하지 않고(公子不恤), 진나라로 하여금(使秦) 대량을 깨뜨리고(破大梁而) 선왕의 종묘를 폐허로 만들도록 둔다면(夷先王之宗廟), 공자께서(公子) 마땅히(當) 무슨 면목으로(何面目) 천하에 설 수 있을까요(立天下乎)?"라고 했다.

말이(語) 끝남에 이르기도 전에(未及卒), 공자가(公子) 얼굴색이 변하여(立變色), 수레에 일러(告車) 멍에 매는 것을 재촉하고(趣駕) 위나라로 돌아가 구했다(歸救魏). 


13 魏王見公子, 相與泣, 而以上將軍印授公子, 公子遂將. 魏安釐王三十年, 公子使使遍告諸侯. 諸侯聞公子將, 各遣將將兵救魏. 公子率五國之兵破秦軍於河外, 走蒙驁. 遂乘勝逐秦軍至函谷關, 抑秦兵, 秦兵不敢出. 當是時, 公子威振天下, 諸侯之客進兵法, 公子皆名之, 故世俗稱魏公子兵法. 

13 위왕이 공자를 만나(魏王見公子), 서로 함께 울면서(相與泣, 而) 상장군의 인수를(以上將軍印) 공자에게 주어(授公子), 공자가 마침내 장군이 되었다(公子遂將). 위 안리왕 30년에(魏安釐王三十年), 공자가(公子) 사신을 두루 보내(使使遍) 제후에게 고했다(告諸侯). 제후들이(諸侯) 공자가 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聞公子將), 각자(各) 장수와 장병을 보내(遣將將兵) 위나라를 구했다(救魏). 공자가(公子) 다섯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率五國之兵) 하외에서 진나라 군대를 깨뜨리고(破秦軍於河外), 몽오가 놀라 달아나게 했다(走蒙驁). 마침내(遂) 승세를 타고(乘勝) 진나라 군대를 쫓아(逐秦軍) 함곡관에 이르러(至函谷關), 진나라 군대를 억누르니(抑秦兵), 진나라 군대가(秦兵) 감히 나오지 못했다(不敢出). 당시에(當是時), 공자가(公子) 천하에 위엄을 떨쳐(威振天下), 제후의 빈객들이(諸侯之客) 병법을 올리자(進兵法), 공자가 모아(公子皆) 이름 붙였고(名之), 그러므로(故) 세상에서(世俗) 위공자 병법이라고 일컬었다(稱魏公子兵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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