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魏安釐王二十年, 秦昭王已破趙長平軍, 又進兵圍邯鄲. 公子姊爲趙惠文王弟平原君夫人, 數遺魏王及公子書, 請救於魏. 魏王使將軍晉鄙將十萬眾救趙. 秦王使使者告魏王曰: "吾攻趙旦暮且下, 而諸侯敢救者, 已拔趙, 必移兵先擊之." 魏王恐, 使人止晉鄙, 留軍壁鄴, 名爲救趙, 實持兩端以觀望. 平原君使者冠蓋相屬於魏, 讓魏公子曰: "勝所以自附爲婚姻者, 以公子之高義, 爲能急人之困. 今邯鄲旦暮降秦而魏救不至, 安在公子能急人之困也!且公子縱輕勝, 棄之降秦, 獨不憐公子姊邪?" 公子患之, 數請魏王, 及賓客辯士說王萬端. 魏王畏秦, 終不聽公子. 公子自度終不能得之於王, 計不獨生而令趙亡, 乃請賓客, 約車騎百餘乘, 欲以客往赴秦軍, 與趙俱死.
6 위 안회왕 20년에(魏安釐王二十年), 진나라(秦) 소왕이(昭王) 이미(已) 장평에서 조나라 군대를 깨뜨리고(破趙長平軍), 또(又) 군대를 진격시켜(進兵) 한단을 포위했다(圍邯鄲). 공자의 누이가(公子姊) 조나라 혜문왕의 동생 평원군의 부인이고(爲趙惠文王弟平原君夫人), 여러 번(數) 위왕고 공자에게 편지를 보내(遺魏王及公子書), 위나라에서 구원해 주기를 청했다(請救於魏). 위왕이(魏王) 장군 진비를 시켜(使將軍晉鄙( 군사 10만을 이끌고(將十萬眾)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救趙).
진왕이 사자를 보내(秦王使使者) 위왕에게 말하길(告魏王曰): "내가(吾) 조나라를 공격해서(攻趙) 하루아침이면(旦暮且) 무너뜨릴 것이고(下, 而) 제후 중에(諸侯) 감히(敢) 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救者), 조나라를 정벌하고 나서(已拔趙), 반드시(必) 군대를 옮겨(移兵) 먼저 공격할 것이다(先擊之)."라고 했다.
위왕이 두려워하며(魏王恐), 사람을 시켜(使人) 진비가 멈추도록 하고(止晉鄙), 군대를 머무르게 하여(留軍) 업에 보루를 쌓고(壁鄴), 명분은(名) 조나라를 구원하는 것이지만(爲救趙), 실제로는(實) 양단을 잡고(持兩端以) 관망했다(觀望).
평원군이(平原君) 사자로(使者) 높은 벼슬이치를(冠蓋) 계속 위나라에 보내서(相屬於魏), 위공자를 꾸짖어 말하길(讓魏公子曰): "내가(勝) 스스로(自附) 혼인관계를 맺은 것은(所以爲婚姻者), 공자가 의를 높이 사고(公子之高義), 급한 사람의 곤란함을 도와줄 것이라(爲能急人之困) 여겨서이다(以). 지금 한단이(今邯鄲) 하루아침이면(旦暮) 진나라에 항복할 것인데(降秦而) 위나라의 구원이 이르지 않았으니(魏救不至), 어찌(安) 공자가 급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在公子能急人之困也)! 또(且) 공자가(公子) 나를 가벼이 여기고(縱輕勝), 버려두어(棄之) 진나라에 항복하도록 하는데(降秦), 어찌(獨) 공자의 누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不憐公子姊邪)?"라고 했다.
공자가 그것을 걱정해서(公子患之), 여러 번(數) 위왕에게 청하고(請魏王), 빈객과 변사로(及賓客辯士) 온갖 수단으로 왕을 설득했다(說王萬端). 위왕이 진나라를 두려워해서(魏王畏秦), 끝내(終) 공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不聽公子). 공자가(公子) 스스로 생각하기를(自度) 끝내(終) 왕을 설득할 수 없다고 여기고(不能得之於王), 홀로 살고서(不獨生而) 조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다고 여겨(計令趙亡), 이에(乃) 빈객에게 청하여(請賓客), 수레와 기마 100여 승을 불러 모아(約車騎百餘乘), 빈객과 가서(以客往) 진나라 군대와 부딪치고(赴秦軍), 조나라와 함께 죽으려 했다(欲與趙俱死).
* 冠蓋(관개): 높은 벼슬아치가 타던, 말 네 마리가 끌던 수레.
* 急人之困(급인지곤): 남의 곤란에 열성껏 도와주다.
* 萬端(만단): 수 없이 많은 갈래나 토막. 여러 가지.
7 行過夷門, 見侯生, 具告所以欲死秦軍狀. 辭決而行, 侯生曰: "公子勉之矣, 老臣不能從." 公子行數里, 心不快, 曰: "吾所以待侯生者備矣, 天下莫不聞, 今吾且死而侯生曾無一言半辭送我, 我豈有所失哉?" 復引車還, 問侯生. 侯生笑曰: "臣固知公子之還也." 曰: "公子喜士, 名聞天下. 今有難, 無他端而欲赴秦軍, 譬若以肉投餒虎, 何功之有哉?尚安事客?然公子遇臣厚, 公子往而臣不送, 以是知公子恨之復返也." 公子再拜, 因問. 侯生乃屏人閒語, 曰: "嬴聞晉鄙之兵符常在王臥內, 而如姬最幸, 出入王臥內, 力能竊之. 嬴聞如姬父爲人所殺, 如姬資之三年, 自王以下欲求報其父仇, 莫能得. 如姬爲公子泣, 公子使客斬其仇頭, 敬進如姬. 如姬之欲爲公子死, 無所辭, 顧未有路耳. 公子誠一開口請如姬, 如姬必許諾, 則得虎符奪晉鄙軍, 北救趙而西卻秦, 此五霸之伐也." 公子從其計, 請如姬. 如姬果盜晉鄙兵符與公子.
7 행렬이(行) 이문을 지나면서(過夷門), 후생을 만나(見侯生), 진나라 군사와 함께 죽기로 한 상황을(所以欲死秦軍狀) 자세히 알렸다(具告).
인사하고(辭決而) 가려는데(行), 후생이 말하길(侯生曰): "공자께서(公子) 노력하시지만(勉之矣), 노신은 따를 수 없습니다(老臣不能從)."라고 했다.
공자가(公子) 몇 리를 가다가(行數里), 마음이 개운치 않아(心不快), 말하기를(曰): "내가(吾) 후생을 대우한 것이(所以待侯生者) 완벽한 것임을(備矣), 천하에서(天下) 누구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는데(莫不聞), 지금(今) 내가(吾) 장차(且) 죽으려는데도(死而) 후생이(侯生) 오히려(曾) 나를 보내는 한마디 반의 말도 없으니(無一言半辭送我), 나에게(我) 어찌(豈) 잘못한 것이 있는가(有所失哉)?"라고 했다.
다시(復) 마차를 이끌고(引車) 돌아와(還), 후생에게 물었다(問侯生).
후생이 웃으며 말하길(侯生笑曰): "신은(臣) 진실로(固) 공자가 돌아올 것을 알았습니다(知公子之還也)."라고 했다.
말하길(曰): "공자가(公子) 선비를 좋아하고(喜士), 명성이(名) 천하에 알려졌습니다(聞天下). 지금(今) 어려움이 있는데(有難), 다른 방법도 없이(無他端而) 진나라 군대에게 부딪치려고 하니(欲赴秦軍), 비유하자면(譬) 고기를(以肉) 굶주린 호랑이에게 던지는 것과(投餒虎) 같은데(若), 어찌(何) 효과가 있을까요(功之有哉)? 일찍이(尚) 어찌하여(安) 빈객을 모셨습니까(事客)? 그러나(然) 공자께서(公子) 신을 두터이 대우했지만(遇臣厚), 공자가 가는데도(公子往而) 신이 송별하지 않는 것인(臣不送), 이 때문에(以是) 공자의 원망이(公子恨之)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을 알았습니다(知復返也)."라고 했다.
공자가 두 번 절하고(公子再拜), 인하여 물었다(因問).
후생이(侯生) 곧(乃) 사람을 물리치고(屏人) 조용히 말하길(閒語, 曰): "제가 들으니(嬴聞) 진비의 병부가(晉鄙之兵符常) 왕의 침실에 있고(在王臥內, 而) 여희가(如姬) 가장 총애를 받아(最幸), 왕의 침실을 드나들 수 있으니(出入王臥內), 힘으로(力) 그것을 훔칠 수 있습니다(能竊之). 제가 듣기로(嬴聞) 여희의 아버지가(如姬父) 남에게 죽임 당했는데(爲人所殺), 여희가(如姬) 3년 동안 재물을 써서(資之三年), 왕으로부터 그 아랫사람까지(自王以下) 그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지만(欲求報其父仇), 누구도 하지 못했습니다(莫能得). 여희가(如姬) 공자에게 눈물로 호소하고(爲公子泣), 공자가(公子) 객을 시켜(使客) 그 원수의 머릴 베도록 해서(斬其仇頭), 여희에게 바쳤다고 하던데요(敬進如姬). 여희가(如姬之) 공자를 위해 죽을 수도 있으나(欲爲公子死), 사례하는 것이 없는 것은(無所辭), 돌아보건대(顧) 기회가 없었습니다(未有路耳). 공자가(公子) 진실로(誠) 한 번(一) 입을 열어(開口) 여희에게 청하면(請如姬), 여희가(如姬) 반드시 허락할 것입니다(必許諾), 그러면(則) 호부를 얻어(得虎符)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奪晉鄙軍), 북으로(北) 조나라를 구하고(救趙而) 서로(西) 진나라를 물리치면(卻秦), 이것은(此) 오패의 공적일 것입니다(五霸之伐也)."라고 했다.
공자가 그 계책을 따라(公子從其計), 여희에게 청했다(請如姬). 여희가(如姬) 과연(果) 진비의 병부를 훔쳐(盜晉鄙兵符) 공자에게 주었다(與公子).
* 一言半辭(일언반사): 一言半句. 극히 짧은 말.
8 公子行, 侯生曰: "將在外, 主令有所不受, 以便國家. 公子即合符, 而晉鄙不授公子兵而復請之, 事必危矣. 臣客屠者朱亥可與俱, 此人力士. 晉鄙聽, 大善; 不聽, 可使擊之." 於是公子泣. 侯生曰: "公子畏死邪?何泣也?" 公子曰: "晉鄙嚄唶宿將, 往恐不聽, 必當殺之, 是以泣耳, 豈畏死哉?" 於是公子請朱亥. 朱亥笑曰: "臣乃市井鼓刀屠者, 而公子親數存之, 所以不報謝者, 以爲小禮無所用. 今公子有急, 此乃臣效命之秋也." 遂與公子俱. 公子過謝侯生. 侯生曰: "臣宜從, 老不能. 請數公子行日, 以至晉鄙軍之日, 北鄉自剄, 以送公子." 公子遂行.
8 공자가 가려는데(公子行), 후생이 말하길(侯生曰): "장수가(將) 바깥에 있으면(在外), 왕의 명령에도(主令)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있으니(有所不受), 그것으로(以) 국가를 편안하게 합니다(便國家). 공자가(公子) 곧(即) 부절을 맞추더라도(合符, 而) 진비가(晉鄙) 공자에게 군대를 주지 않고(不授公子兵而) 다시(復) 그것을 <왕에게> 청한다면(請之), 일이(事) 반드시 위급할 것입니다(必危矣). 신의 친구(臣客) 백정 주해가(屠者朱亥) 함께 할 수 있다면(可與俱), 이 사람이(此人) 힘이 장사입니다(力士). 진비가 말을 들어준다면(晉鄙聽), 매우 좋지만(大善); 들어주지 않는다면(不聽), <주해를> 시켜서 죽일 수 있습니다(可使擊之)."라고 했다. 이에 공자가 울었다(於是公子泣).
후생이 말하길(侯生曰): "공자는(公子) 죽는 것을 두려워합니까(畏死邪)? 어째서 우는가요(何泣也)?"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公子曰): "진비는(晉鄙) 용맹스러운 노장으로(嚄唶宿將), 가더라도(往) 말을 듣지 않을까 염려되고(恐不聽), 반드시(必) 죽여야 하니(當殺之), 이 때문에(是以) 울 뿐이지(泣耳), 어찌(豈)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畏死哉)?"라고 했다.
이에(於是) 공자가 주해에게 요청했다(公子請朱亥). 주해가 웃으며 말하길(朱亥笑曰): "신은 곧(臣乃) 시장의 백정인데도(市井鼓刀屠者, 而) 공자께서(公子) 직접(親) 여러 번 오셨으니(數存之), 보답하지 않은 것은(所以不報謝者), 작은 예를 차리는 것이 쓸모없었기 때문입니다(以爲小禮無所用). 지금(今) 공자에게(公子) 급한 일이 있고(有急), 이것은 곧(此乃) 신이 목숨을 바칠(臣效命之) 때입니다(秋也)."라고 했다.
마침내(遂) 공자와 함께 갔다(與公子俱). 공자가(公子) 후생에게 들러 인사했다(過謝侯生).
후생이 말하길(侯生曰): "신이(臣) 마땅히 따라가야 하지만(宜從), 늙어서 그럴 수 없습니다(老不能). 청컨대(請) 공자의 떠난 날을 헤아려(數公子行日), 진비의 군대에게 도착하는 날에(以至晉鄙軍之日), 북향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北鄉自剄, 以) 공자를 전송하겠습니다(送公子)."라고 했다. 공자가 마침내 길을 떠났다(公子遂行).
9 至鄴, 矯魏王令代晉鄙. 晉鄙合符, 疑之, 舉手視公子曰: "今吾擁十萬之眾, 屯於境上, 國之重任, 今單車來代之, 何如哉?" 欲無聽. 朱亥袖四十斤鐵椎, 椎殺晉鄙, 公子遂將晉鄙軍. 勒兵下令軍中曰: "父子俱在軍中, 父歸; 兄弟俱在軍中, 兄歸; 獨子無兄弟, 歸養." 得選兵八萬人, 進兵擊秦軍. 秦軍解去, 遂救邯鄲, 存趙. 趙王及平原君自迎公子於界, 平原君負ゆ矢爲公子先引. 趙王再拜曰: "自古賢人未有及公子者也." 當此之時, 平原君不敢自比於人. 公子與侯生決, 至軍, 侯生果北鄉自剄.
9 업에 도착해서(至鄴), 위왕의 명령인 것처럼 속여(矯魏王令) 진비를 대신했다(代晉鄙). 진비가 부절을 맞춰 보고는(晉鄙合符), 그것을 의심해서(疑之), 손을 들어(舉手) 공자를 보며 말하길(視公子曰): "지금(今) 나는(吾) 10만의 무리를 가지고(擁十萬之眾), 국경에 주둔해서(屯於境上), 나라의 중요한 임무를 맡았는데(國之重任), 지금(今) 마차 한 대로 와서(單車來) 그것을 대신하다고 하니(代之), 어찌 된 일입니까(何如哉)?"라고 했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欲無聽). 주해가(朱亥) 40근 철퇴를 소매에 숨겼다가(袖四十斤鐵椎), 진비를 쳐 죽이고(椎殺晉鄙), 공자가(公子) 마침내(遂) 진비의 군대를 이끌었다(將晉鄙軍).
군대를 점검하고(勒兵) 군중에 명을 내려 말하길(下令軍中曰): "부자가(父子) 모두(俱) 군중에 있으면(在軍中), 아버지는 돌아가고(父歸); 형제가 모두 군중에 있으면(兄弟俱在軍中), 형은 돌아가고(兄歸); 독자이면서 형제가 없으면(獨子無兄弟),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라(歸養)."라고 했다.
선발한 병사 8만을 얻어(得選兵八萬人), 군대를 진격시켜(進兵) 진나라 군대를 습격했다(擊秦軍). 진나라 군대가 포위를 풀고 물러나니(秦軍解去), 마침내(遂) 한단을 구하고(救邯鄲), 조나라를 보존했다(存趙). 조왕과(趙王及) 평원군이(平原君) 직접(自) 경계에서 공자를 맞이하고(迎公子於界), 평원군이(平原君) 화살통을 메고(負矢) 공자를 위해(爲公子) 앞서 인도했다(先引).
조왕이(趙王) 두 번 절하며 말하길(再拜曰): "예로부터(自古) 어진 사람 중에(賢人) 공자에 미칠 만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未有及公子者也)."라고 했다.
당시에(當此之時), 평원군이(平原君) 감히 사람들에게 자기를 비교하지 못했따(不敢自比於人). 공자와 후생이 헤어져(公子與侯生決), 진비의 군대에 이를 무렵(至軍), 후생이(侯生) 과연(果) 북쪽을 향해(北鄉)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自剄).
* 勒兵(늑병): 병사(兵士)의 대오(隊伍)를 정돈(整頓)하여 자세(仔細)히 검열(檢閱)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