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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史記列傳(사기열전) 77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4/4] 순주부인(醕酒婦人 / 비방 한 마디로 인재를 죽음으로 몰아가다 / 암혈은자(巖穴隱者)

by प्रज्ञा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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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秦王患之, 乃行金萬斤於魏, 求晉鄙客, 令毁公子於魏王曰: "公子亡在外十年矣, 今爲魏將, 諸侯將皆屬, 諸侯徒聞魏公子, 不聞魏王. 公子亦欲因此時定南面而王, 諸侯畏公子之威, 方欲共立之." 秦數使反閒, 偽賀公子得立爲魏王未也. 魏王日聞其毁, 不能不信, 後果使人代公子將. 公子自知再以毁廢, 乃謝病不朝, 與賓客爲長夜飲, 飲醇酒, 多近婦女. 日夜爲樂飲者四歲, 竟病酒而卒. 其歲, 魏安釐王亦薨. 

14 진왕이 이것을 걱정해서(秦王患之), 이에(乃) 금 만 근을 위나라에 풀어(行金萬斤於魏), 진비의 <옛> 빈객을 찾아서(求晉鄙客), 위왕에게 공자를 헐뜯도록 시켜서 말하길(令毁公子於魏王曰): "공자가(公子) 도망가서(亡) 나라 밖에서 10년을 머물렀는데(在外十年矣), 지금(今) 위나라 장수가 되었고(爲魏將), 제후의 장수들이(諸侯將) 모두 속했으니(皆屬), 제후들이(諸侯) 다만(徒) 위공자의 말을 듣고(聞魏公子), 위왕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不聞魏王). 공자도(公子) 또한(亦) 이때를 틈타(因此時) 남면하고 왕이 되려고 하니(定南面而王), 제후들의(諸侯) 공자의 위세를 두려워해서(畏公子之威), 바야흐로(方) 함께 세우려고 합니다(欲共立之)."라고 했다.

진나라가(秦) 여러 차례(數) 첩자를 시켜(使反閒), 공자가 위왕에 즉위했는지 아닌지를 묻고(公子得立爲魏王未) 거짓으로 축하했다(偽賀也). 위왕이(魏王) 날마다(日) 그 헐뜯는 말을 듣고(聞其毁), 불신하지 않을 수 없었고(不能不信), 나중에(後) 결국(果) 다른 사람을 시켜(使人) 공자를 대신해서 장군으로 삼았다(代公子將). 공자가(公子) <모함으로> 다시 쫓겨난 것을 스스로 알고(自知再以毁廢), 이에(乃) 병을 핑계로(謝病) 조정에 나가지 않고(不朝), 빈객과 더불어(與賓客) 밤낮으로 술자리를 만들어(爲長夜飲), 술을 마시고(飲醇酒), 많이(多) 여자를 가까이했다(近婦女). 밤낮으로(日夜) 즐기고 마신 것이(爲樂飲者) 4년이 되어(四歲), 마침내(竟) 술병이 나서(病酒而) 죽었다(卒). 그 해에(其歲), 위 안희왕도 또한 죽었다(魏安釐王亦薨). 

 

*  反閒(반간):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다. (적을) 이간시키다.

* 毀廢(훼폐): 쫓겨나다.

* 醇酒(순주): 전국(-)으로 된 술.


15 秦聞公子死, 使蒙驁攻魏, 拔二十城, 初置東郡. 其後秦稍蠶食魏, 十八歲而虜魏王, 屠大梁. 

15 진나라는(秦) 공자가 죽은 것을 듣고(聞公子死), 몽오를 시켜(使蒙驁) 위나라를 공격하고(攻魏), 성 20개를 빼앗아(拔二十城), 처음에는(初) 동군을 두었다(置東郡). 그 뒤에(其後) 진나라가(秦) 점차(稍) 위나라를 잠식해서(蠶食魏), 18년이 지나(十八歲而) 위왕을 사로잡고(虜魏王), 대량을 쳐부쉈다(屠大梁(. 


16 高祖始微少時, 數聞公子賢. 及即天子位, 每過大梁, 常祠公子. 高祖十二年, 從擊黥布還, 爲公子置守冢五家, 世世歲以四時奉祠公子. 

16 고조가(高祖) 처음에(始) 미천하고(微) 어릴 때(少時), 여러 번(數) 공자가 어질다는 말을 들었다(聞公子賢). 천자에 즉위해서(及即天子位), 항상(每) 대량을 지날 때마다(過大梁), 늘(常) 공자에게 제사 지냈다(祠公子). 고조 12년에(高祖十二年), 경포를 치고서(從擊黥布) 돌아오면서(還), 공자를 위해(爲公子) 묘지기 다섯 가구를 두고(置守冢五家), 대대로(世世) 해마다(歲) 4계절에(以四時) 공자에게 제사 지내도록 했다(奉祠公子). 


17 太史公曰:吾過大梁之墟, 求問其所謂夷門. 夷門者, 城之東門也. 天下諸公子亦有喜士者矣, 然信陵君之接巖穴隱者, 不恥下交, 有以也. 名冠諸侯, 不虛耳. 高祖每過之而令民奉祠不絶也. 

17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吾) 대량의 옛터를 지나다가(過大梁之墟), 이문이라고 말하는 곳을(其所謂夷門) 물어서 찾았다(求問). 이문이란(夷門者), 성의 동문이다(城之東門也). 천하의 여러 공자도(天下諸公子) 또한(亦) 선비를 좋아했지만(有喜士者矣), 그러나(然) 신릉군이(信陵君之) 산과 계곡에 숨은 선비를 만나고(接巖穴隱者), 신분이 낮은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것은(不恥下交), 그럴듯하다(有以也). 명성이(名) 제후 중에 으뜸인 것이(冠諸侯), 헛소문일 뿐이 아니다(不虛耳). 고조가(高祖) 늘(每) 이곳을 지나며(過之而) 백성들로 하여금(令民) 제사를 받들어(奉祠)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不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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