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蒙恬者, 其先齊人也. 恬大父蒙驁, 自齊事秦昭王, 官至上卿. 秦莊襄王元年, 蒙驁爲秦將, 伐韓, 取成皐ㆍ滎陽, 作置三川郡. 二年, 蒙驁攻趙, 取三十七城. 始皇三年, 蒙驁攻韓, 取十三城. 五年, 蒙驁攻魏, 取二十城, 作置東郡. 始皇七年, 蒙驁卒. 驁子曰武, 武子曰恬. 恬嘗書獄典文學. 始皇二十三年, 蒙武爲秦裨將軍, 與王翦攻楚, 大破之, 殺項燕. 二十四年, 蒙武攻楚, 虜楚王. 蒙恬弟毅. 始皇二十六年, 蒙恬因家世得爲秦將, 攻齊, 大破之, 拜爲內史. 秦已竝天下, 乃使蒙恬將三十萬衆北逐戎狄, 收河南. 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於是渡河, 據陽山, 逶蛇而北. 暴師於外十餘年, 居上郡. 是時蒙恬威振匈奴.
1. 몽염은(蒙恬者), 그 선조가(其先)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몽염의 할아버지(恬大父) 몽오는(蒙驁), 제나라로부터 와서(自齊) 진 소왕을 섬겼고(事秦昭王), 관직이(官) 상경에 이르렀다(至上卿). 진 장양왕 원년에(秦莊襄王元年), 몽오가(蒙驁) 진나라 장수가 되어(爲秦將), 한나라를 쳐서(伐韓), 성고와 형양을 취하고(取成皐滎陽), 삼천군을 설치했다(作置三川郡). 2년에(二年), 몽오가(蒙驁) 조나라를 공격해서(攻趙), 37개 성을 취했다(取三十七城). 시황제 3년에(始皇三年), 몽오가 한나라를 공격해서(蒙驁攻韓), 30개 성을 취했다(取十三城). 5년에(五年), 몽오가 위나라를 공격해서(蒙驁攻魏), 20개 성을 취하고(取二十城), 동군을 설치했다(作置東郡).
시황제 7년에(始皇七年), 몽오가 죽었다(蒙驁卒). 몽오의 아들은(驁子) 무라고 했는데(曰武), 무의 아들을(武子) 염이라고 했다(曰恬). 몽염은(恬) 일찍이(嘗) 소송을 기록하고(書獄) 문헌을 담당했다(典文學). 시황제 23년에(始皇二十三年), 몽무가(蒙武) 진나라 비장군이 되어(爲秦裨將軍), 왕전과 함께(與王翦) 초나라를 공격해서(攻楚), 크게 무찌르고(大破之), 항연을 죽였다(殺項燕). 24년에(二十四年), 몽무가 초나라를 공격해서(蒙武攻楚), 초왕을 사로잡았다(虜楚王). 몽염의 동생은(蒙恬弟) 몽의다(毅).
시황제 26년에(始皇二十六年), 몽염이(蒙恬) 가문으로 인하여(因家世) 진나라 장수가 되어(得爲秦將), 제나라를 공격하고(攻齊), 크게 무찔러서(大破之), 벼슬을 받아(拜) 내사가 되었다(爲內史). 진나라가 이미(秦已) 전하를 합병하고(竝天下), 이에(乃) 몽염으로 하여금(使蒙恬) 30만 군사를 이끌고(將三十萬衆) 북쪽으로(北) 융적을 쫓아내도록 하니(逐戎狄), 하남을 거두었다(收河南). 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於是渡河, 據陽山, 逶蛇而北. 暴師於外十餘年, 居上郡. 是時蒙恬威振匈奴.
* 蒙恬(몽염):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 장군으로. 몽무(蒙武)의 장남이자, 몽의(蒙毅)의 형이다. 기원전 221년, 제나라를 멸망시킬 때 큰 공을 세워서 내사에 임명되었다. 특히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그에게 대군을 주어 흉노와 융족 등의 북방의 기마민족들을 견제하게 하였다.
* 書獄典文學: 書獄은 소송에 관한 기록 업무이고 典은 主管한다는 뜻이다. 文學은 문헌서적을 말한다.
* 家世(가세): 문벌(門閥) 대대(代代)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지체.
2. 始皇甚尊寵蒙氏, 信任賢之. 而親近蒙毅, 位至上卿, 出則參乘, 入則禦前. 恬任外事而毅常爲內謀, 名爲忠信, 故雖諸將相莫敢與之爭焉. 趙高者, 諸趙疏遠屬也. 趙高昆弟數人, 皆生隱宮, 其母被刑僇, 世世卑賤. 秦王聞高彊力, 通於獄法, 擧以爲中車府令. 高旣私事公子胡亥, 喩之決獄. 高有大罪, 秦王令蒙毅法治之. 毅不敢阿法, 當高罪死, 除其宦籍. 帝以高之敦於事也, 赦之, 複其官爵. 始皇欲遊天下, 道九原, 直抵甘泉, 迺使蒙恬通道, 自九原抵甘泉, 塹山堙谷, 千八百里. 道未就.
2. 시황제가(始皇) 몽씨를(蒙氏) 매우 높여주고 총애하며(甚尊寵), 신임하고(信任) 현명하다고 여겼다(賢之). 그러므로(而) 몽의를 친근하게 여기고(親近蒙毅), 지위가(位) 상경에 이르렀으며(至上卿), 나가면(出則) 수레를 함께 타고(參乘), 들어가면 어전에 두었다(入則禦前). 몽염은(恬) 바깥일을 맡고(任外事而) 몽의가(毅) 늘(常) 안에서 계책을 만들고(爲內謀), 충성스럽고 믿음직하다는(爲忠信) 명성을 얻었고(名), 그러므로(故) 비록(雖) 여러 장수와 재상 가운데(諸將相) 누구도(莫) 감히(敢) 그와 다투려 하지 않았다(與之爭焉).
조고는(趙高者), 여러 조씨의(諸趙疏) 먼 친척이다(遠屬也). 조고의 형과 동생이(趙高昆弟) 몇 명 있는데(數人), 모두(皆) 환관으로 살았고(生隱宮), 그 어머니가(其母) 형벌을 받았으며(被刑僇), 대대로(世世) 비천했다(卑賤). 진왕이(秦王) 조고가 강력하고(高彊力), 옥법에 능통하다는 것을(通於獄法) 듣고(聞), 등용해서(擧) 중거부령으로 삼았다(以爲中車府令). 조고가(高) 이미(旣) 사적으로(私) 공자 호해를 섬겼고(事公子胡亥), 그에게(之) 판결에 대해(決獄) 가르쳐주었다(喩). 조고에게(高) 큰 죄가 있어(有大罪), 진왕이(秦王) 몽의로 하여금(令蒙毅) 법으로 다스리도록 했다(法治之). 몽의가(毅)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하고(不敢阿法), 조고의 죄가(高罪) 사형에 해당하므로(當死), 그 환적을 없앴다(除其宦籍). 황제는(帝) 조고가(高之) 일에 힘쓴다고(敦於事) 여기고(以也), 그를 사면해서(赦之), 그 관작을 회복시켰다(複其官爵).
시황제가(始皇) 천하를 유람하려고 하면서(欲遊天下), 구원을 지나(道九原), 바로(直) 감천에 이르도록(抵甘泉), 이에(迺) 몽염을 시켜(使蒙恬) 길을 통하게 하니(通道), 구원부터(自九原) 감천까지(抵甘泉), 산을 깎고(塹山) 계곡을 메운 것이(堙谷), 1,800리가 되었다(千八百里). 길이(道) 아직 이르지 못했다(未就).
* 尊寵(존총): 총애(寵愛)를 주는 사람을 높여서 그에게서 받는 총애(寵愛)를 말함.
* 參乘(참승): 높은 사람을 모시고 탐.
* 諸趙: 조씨 왕족의 각 파.
* 疏遠屬(소원속): 먼 친족.
* 隱宮(은궁): 궁형(宮刑)을 받은 자는 어두운 방에 있으므로 은궁(隱宮)이라고 한 것이다. 宮은 음란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남자는 거세하고 婦人은 유폐(幽閉)한다.
3. 始皇三十七年冬, 行出遊會稽, 竝海上, 北走琅邪. 道病, 使蒙毅還禱山川, 未反. 始皇至沙丘崩, 袐之, 群臣莫知. 是時丞相李斯ㆍ公子胡亥ㆍ中車府令趙高常從. 高雅得幸於胡亥, 欲立之, 又怨蒙毅法治之而不爲己也. 因有賊心, 迺與丞相李斯ㆍ公子胡亥陰謀, 立胡亥爲太子. 太子已立, 遣使者以罪賜公子扶蘇ㆍ蒙恬死. 扶蘇已死, 蒙恬疑而複請之. 使者以蒙恬屬吏, 更置. 胡亥以李斯舍人爲護軍. 使者還報, 胡亥已聞扶蘇死, 卽欲釋蒙恬. 趙高恐蒙氏複貴而用事, 怨之.
3. 시황제(始皇) 37년 겨울에(三十七年冬), 행차가 나가(行出) 회계를 유람하고(遊會稽), 해안을 따라 나란히(竝海上), 북으로(北) 낭야에 도착했다(走琅邪). 도중에(道) 병이 들어(病), 몽의를 시켜(使蒙毅) 돌아가(還) 산천에 기도하도록 했는데(禱山川),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未反).
시황제가(始皇) 사구에 이르러(至沙丘) 죽자(崩), 그것을 비밀로 해서(袐之), 군산 가운데(群臣) 누구도 알지 못했다(莫知). 이때(是時) 승상 이사와(丞相李斯) 공자 호해(公子胡亥), 중거부령 조고가(中車府令趙高) 늘 따랐다(常從). 조고가(高) 평소(雅) 호해에게(於胡亥) 총애를 받았는데(得幸), 그를 즉위시키려 하고(欲立之), 또(又) 몽의가(蒙毅) 법대로 자기를 다스려(法治之而) 자기를 위하지 않은 것에(不爲己) 원한이 있었다(怨也). 이 때문에(因) 해치려는 마음이 있었고(有賊心), 이에(迺) 승상 이사와 공자 호해와 함께(與丞相李斯公子胡亥) 음모를 꾸며(陰謀), 호해를 즉위시켜(立胡亥)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태자가(太子) 즉위하고(已立), 사자를 보내(遣使者) 공자 부소와 몽염에게(公子扶蘇ㆍ蒙恬) 죄를 씌우고(以罪賜) 죽였다(死). 부소가 죽고(扶蘇已死), 몽염이 의심하여(蒙恬疑而) 다시 명을 청했다(複請之). 사자가(使者) 몽염을(以蒙恬) 관리에게 넘기고(屬吏), <다른 사람을> 다시 배치했다(更置). 호해가(胡亥) 이사의 사인을(以李斯舍人) 호군으로 삼았다(爲護軍). 사자가(使者) 돌아와 보고하자(還報), 호해는(胡亥) 부소가 죽은 것을 듣고(已聞扶蘇死), 바로(卽) 몽염을 풀어주려고 했다(欲釋蒙恬). 조고는(趙高) 몽씨가 다시 귀해져서(蒙氏複貴而) 정권을 잡고(用事), 원한을 가지게 되는 것을(怨之) 두려워했다(恐).
* 屬吏(촉리): 주관하는 관리에게 처리하도록 넘김.
* 用事(용사): 정권을 잡다.
4. 毅還至, 趙高因爲胡亥忠計, 欲以滅蒙氏, 乃言曰: “臣聞先帝欲擧賢立太子久矣, 而毅諫曰: “不可”. 若知賢而兪弗立, 則是不忠而惑主也. 以臣愚意, 不若誅之.” 胡亥聽而繋蒙毅於代. 前已囚蒙恬於陽周. 喪至鹹陽, 已葬, 太子立爲二世皇帝, 而趙高親近, 日夜毁惡蒙氏, 求其罪過, 擧劾之. 子嬰進諫曰: “臣聞故趙王遷殺其良臣李牧而用顔聚, 燕王喜陰用荊軻之謀而倍秦之約, 齊王建殺其故世忠臣而用后勝之議. 此三君者, 皆各以變古者失其國而殃及其身. 今蒙氏, 秦之大臣謀士也, 而主欲一旦棄去之, 臣竊以爲不可. 臣聞輕慮者不可以治國, 獨智者不可以存君. 誅殺忠臣而立無節行之人, 是內使群臣不相信而外使鬪士之意離也, 臣竊以爲不可.”
4. 몽의가(毅) 돌아와 이르자(還至), 조고가(趙高) 이에(因) 호해를 위해(爲胡亥) 충성스러운 계책을 낸다면서(忠計), 몽씨를 없애려고 하며(欲以滅蒙氏), 이에 말하길(乃言曰): “신이 듣건대(臣聞) 선제가(先帝) 현명한 사람을 들어(欲擧賢) 태자로 세우려한 것이(立太子) 오래 되었는데(久矣, 而) 몽의가 말하길(毅諫曰):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합니다. 만약(若) 현명함을 알면서(知賢而) 세우지 않는 것이 낫다고 했다면(兪弗立, 則) 이것은(是) 불충이고(不忠而) 주군을 미혹한 것입니다(惑主也). 때문에(以)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臣愚意), 벌하는 것만 못합니다(不若誅之).”라고 했다.
호해가(胡亥) 듣고(聽而) 대에(於代) 몽의를 가두었다(繋蒙毅). 앞서(前) 이미(已) 양주에서(於陽周) 몽염을 가두었다(囚蒙恬). 시신이(喪) 함양에 도착해서(至鹹陽), 장사 지내고 나서(已葬), 태자가 즉위하여(太子立) 이세 황제가 되었고(爲二世皇帝, 而) 조고가(趙高) 가까이 있으면서(親近), 밤낮으로(日夜) 몽씨를 헐뜯고(毁惡蒙氏), 그 죄과를 구해서(求其罪過), 탄핵했다(擧劾之).
자영이(子嬰) 나아가 간하길(進諫曰): “신이 듣건대(臣聞) 옛날(故) 조왕 천이(趙王遷) 그 훌륭한 신하 이목을 죽이고(殺其良臣李牧而) 안취를 등용했고(用顔聚), 연왕 희가(燕王喜) 은밀하게(陰) 형가의 계책을 써서(用荊軻之謀而) 진과의 약속을(秦之約) 배반했고(倍), 제왕 건이(齊王建) 그 오랜 충신을 죽이고(殺其故世忠臣而) 후승의 논의를 채용했습니다(用后勝之議). 이(此) 세 임금이(三君者), 모두(皆) 각자(各) 옛것을 바꿔서(以變古者) 그 나라를 잃고(失其國而) 재앙이(殃) 그 몸에 미쳤습니다(及其身). 지금(今) 몽씨는(蒙氏), 진나라의(秦之) 큰 신하이고 모사인데(大臣謀士也, 而) 황제께서(主) 하루아침에(一旦) 그들을 버리려고 한다면(欲棄去之), 신은(臣) 삼가(竊) 안된다고 생각합니다(以爲不可). 신이 듣건대(臣聞) 경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輕慮者)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不可以治國), 홀로(獨) 지혜로운 사람은(智者) 임금 자리를 보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不可以存君). 충신을 죽이고(誅殺忠臣而) 절조가 없는 사람을(無節行之人) 세우면(立), 이것은(是) 안으로(內)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使群臣)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不相信而) 밖으로(外) 투사의 마음이(鬪士之意) 떠나게 하는 것이니(使離也), 신은(臣) 삼가(竊) 안된다고 생각합니다(以爲不可).”라고 했다.
5. 胡亥不聽. 而遣禦史曲宮乘傳之代, 令蒙毅曰: “先主欲立太子而卿難之. 今丞相以卿爲不忠, 罪及其宗. 朕不忍, 乃賜卿死, 亦甚幸矣. 卿其圖之!” 毅對曰: “以臣不能得先主之意, 則臣少宦, 順幸沒世, 可謂知意矣. 以臣不知太子之能, 則太子獨從, 周旋天下, 去諸公子絶遠, 臣無所疑矣. 夫先主之擧用太子, 數年之積也, 臣乃何言之敢諫, 何慮之敢謀! 非敢飾辭以避死也, 爲羞累先主之名, 願大夫爲慮焉, 使臣得死情實. 且夫順成全者, 道之所貴也: 刑殺者, 道之所卒也.
5. 호해가 듣지 않았다(胡亥不聽). 그리고(而) 어사 국궁을 보내(遣禦史曲宮) 역마를 타고(乘傳) 대로 가서(之代), 몽의에게 명하여 말하길(令蒙毅曰): “선주가(先主) 태자를 세우려고 했는데(欲立太子而) 경이(卿) 그것을 꺼렸다(難之). 지금(今) 승상은(丞相) 경이(以卿) 불충하다고 여기고(爲不忠), 죄가(罪) 그 가문에 미치도록 하려고 한다(及其宗). 짐은(朕) 차마 그럴 수 없어서(不忍), 이에(乃) 경에게 죽음을 내리니(賜卿死), 또한(亦) 매우 다행이다(甚幸矣). 경은(卿) 그것을 생각해 보라(其圖之)!”라고 했다.
몽의가 대답하길(毅對曰): “신이(以臣) 선왕의 뜻을(先主之意)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면(不能得 , 則) 신이(臣) 어려서부터(少) 벼슬해서(宦), 죽을 때까지 총애를 받았으니(順幸沒世), 뜻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可謂知意矣). 신이 태자의 능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면(以臣不知太子之能, 則) 태자가(太子) 홀로 따르며(獨從), 천하를 주유했으므로(周旋天下), 여러 공자와의 거리가(去諸公子) 뛰어나고 월등한 것은(絶遠), 신에게(臣) 의심할 것이 없었습니다(無所疑矣). 무릇(夫) 선주께서(先主之) 태자로 삼은 것은(擧用太子), 몇 년의(數年之) 쌓인 것이고(積也), 신은 이에(臣乃) 무슨 말을(何言之) 감히 간하고(敢諫), 무슨 생각을(何慮之) 감히 도모하겠습니까(敢謀)! 감히 핑계를 대고(敢飾辭以) 죽음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非避死也), 선제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을(累先主之名)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니(爲羞), 원컨대(願) 대부께서(大夫) 이것을 생각해서(爲慮焉), 신으로 하여금(使臣) 실정에 따라 죽도록 해주십시오(得死情實). 또한(且夫) 순리를 따라(順) <생명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成全者), 도가(道之)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所貴也): 형벌을 받고 죽는 것은(刑殺者), 도가(道之)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所卒也).
* 乘傳(승전): 말을 타고 명령을 전달하다.
* 順幸(순행): 총애를 받다.
* 飾詞(식사): 구실. 핑계.
6. 昔者秦穆公殺三良而死, 罪百里奚而非其罪也, 故立號曰: “繆”. 昭襄王殺武安君白起. 楚平王殺伍奢. 吳王夫差殺伍子胥. 此四君者, 皆爲大失, 而天下非之, 以其君爲不明, 以是籍於諸侯. 故曰: “用道治者不殺無罪, 而罰不加於無辜”. 唯大夫留心!” 使者知胡亥之意, 不聽蒙毅之言, 遂殺之. 二世又遣使者之陽周, 令蒙恬曰: “君之過多矣, 而卿弟毅有大罪, 法及內史.” 恬曰: “自吾先人, 及至子孫, 積功信於秦三世矣. 今臣將兵三十餘萬, 身雖囚繋, 其勢足以倍畔, 然自知必死而守義者, 不敢辱先人之敎, 以不忘先主也. 昔周成王初立, 未離繈緥, 周公旦負王以朝, 卒定天下.
6. 옛날(昔者) 진 목공이(秦穆公) 세 훌륭한 신하를 죽이고(殺三良而死), 백리해에게 죄를 물었는데(罪百里奚而) 그 죄가 아니었고(非其罪也), 그러므로(故) 호를 세워(立號): “류繆”라고 했다(曰). 소양왕은(昭襄王) 무안군 백기를 죽였습니다(殺武安君白起). 초 평왕은(楚平王) 오사를 죽였습니다(殺伍奢). 오왕 부차는(吳王夫差) 오자서를 죽였습니다(殺伍子胥). 이(此) 네 임금은(四君者), 모두(皆) 큰 실수를 했고(爲大失, 而) 천하가 비난하고(天下非之), 그 임금이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에(以其君爲不明), 이것으로(以是) 제후들에게 나쁜 평판을 얻었습니다(籍於諸侯).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도리를 써서(用道) 다스리는 사람은(治者) 죄 없는 사람을(無罪) 죽이지 않고(不殺, 而) 벌을(罰) 무고한 사람에게(於無辜) 가하지 않습니다(不加)'. 대부께서(唯大夫)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留心)!”라고 했다. 사자는(使者) 호해의 뜻을(胡亥之意) 알았으므로(知), 몽의의 말을 듣지 않고(不聽蒙毅之言), 마침내(遂) 그를 죽였다(殺之).
이세 황제가(二世) 또(又) 사자를 보내(遣使者) 양주로 가서(之陽周), 몽염에게 명하여 말하길(令蒙恬曰): “그대의 잘못이(君之過) 많은데(多矣, 而) 경의 동생(卿弟) 몽의에게(毅) 큰 죄가 있으므로(有大罪), 내사에게 이르렀다(法及內史).”라고 했다.
몽염이 말하길(恬曰): “우리 선조로부터(自吾先人), 자손에 이르기까지(及至子孫), 쌓은 공적이(積功) 진실로(信) 진나라에서(於秦) 3대에 이릅니다(三世矣). 지금(今) 신은(臣) 병사 30만여 명을 이끌고 있고(將兵三十餘萬), 몸은(身) 비록(雖) 갇혔지만(囚繋), 그 세력은(其勢) 배반하기에 충분한데도(足以倍畔), 그러나(然) 스스로(自) 반드시 죽을 것을(必死) 알면서도(知而) 의리를 지키는 것은(守義者), 감히 선조의 가르침을 욕되게 하지 않고(不敢辱先人之敎), 선왕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以不忘先主也). 옛날(昔) 주 성왕이(周成王) 처음 즉위해서(初立), 아직 포대기를 떠나지 못했지만(未離繈緥), 주공 단이(周公旦) 왕을 등에 업고(負王以) 조회하여(朝), 마침내(卒)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定天下).
* 籍(적): 藉과 통하여 평판이 나쁘다는 뜻이다.
* 法及(법급): 연좌하다. 연루되다.
* 襁褓(강보): 포대기.
7. 及成王有病甚殆, 公旦自揃其爪以沈於河, 曰: “王未有識, 是旦執事. 有罪殃, 旦受其不祥.” 乃書而藏之記府, 可謂信矣. 及王能治國, 有賊臣言: “周公旦欲爲亂久矣, 王若不備, 必有大事.” 王乃大怒, 周公旦走而奔於楚. 成王觀於記府, 得周公旦沈書, 乃流涕曰: “孰謂周公旦欲爲亂乎!” 殺言之者而反周公旦. 故周書曰: “必參而伍之”. 今恬之宗, 世無二心, 而事卒如此, 是必孽臣逆亂, 內陵之道也. 夫成王失而複振則卒昌: 桀殺關龍逢, 紂殺王子比幹而不悔, 身死則國亡. 臣故曰過可振而諫可覺也. 察於參伍, 上聖之法也. 凡臣之言, 非以求免於咎也, 將以諫而死, 願陛下爲萬民思從道也.” 使者曰: “臣受詔行法於將軍, 不敢以將軍言聞於上也.” 蒙恬喟然太息曰: “我何罪於天, 無過而死乎?” 良久, 徐曰: “恬罪固當死矣. 起臨洮屬之遼東, 城塹萬餘里, 此其中不能無絶地脈哉? 此乃恬之罪也.” 乃呑藥自殺.
7. 성왕에게(成王) 병이 있어(有病) 매우 위태로움에 이르자(及甚殆), 주공 단이(公旦) 스스로(自) 자기 손톱을 자르고(揃其爪以) 황하에 던지며 말하길(沈於河, 曰): “왕에게(王) 아직 식견이 없어(未有識), 이 단이(是旦) 일을 집행하고 있습니다(執事). 죄가 있다면(有罪殃), 제가(旦) 그 불길함을(其不祥) 받겠습니다(受).”라고 했다.
이에(乃) 글로 적어(書而) 그것을 기록부에(之記府) 보관했으니(藏), 믿음직스럽다고 할만합니다(可謂信矣).
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때(及王能治國), 해로운 신하가 있어(有賊臣) 말하길(言): “주공 단이(周公旦) 난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欲爲亂) 오래되었으니(久矣), 왕께서(王) 만약(若) 대비하지 않으면(不備), 반드시(必) 큰 일이 있을 것입니다(有大事).”라고 했다.
왕이 이에(王乃) 크게 화를 내자(大怒), 주공 단이(周公旦) 도망가(走而) 초나라로 갔다(奔於楚). 성왕이(成王) 기록부를 보다가(觀於記府), 주공단의 침서를 얻고(得周公旦沈書), 이에(乃)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流涕曰): “누가(孰) 주공 단이(周公旦) 난을 일으키려고 한다고(欲爲亂) 말했는가(謂乎)!”라고 했다. 말한 사람을 죽이고(殺言之者而) 주공 단을 돌아오도록 했다(反周公旦).
그러므로(故) 주서에 이르길(周書曰): “반드시(必) 비교하고 살펴라(參而伍之)”라고 했다. 지금(今) 저의 집안은(恬之宗), 대대로(世) 다른 마음이 없었는데(無二心, 而) 일이(事) 갑작스럽게(卒) 이와 같이 되었으니(如此), 이것은(是) 반드시(必) 불충한 신하가(孽臣) 반역하려고(逆亂), 안에서(內) 능멸하는 것을(陵之) 말한 것입니다(道也). 무릇(夫) 성왕이 잘못했지만(成王失而) 다시(複) 떨치고(振則) 일어났고(卒昌): 걸왕은(桀) 관룡봉을 죽였고(殺關龍逢), 주왕은(紂) 왕자 비간을 죽였지만(殺王子比幹而) 후회하지 않았다가(不悔), 자신은 죽고(身死則) 나라는 망했습니다(國亡). 신은(臣) 그러므로(故) 잘못을 바로잡고(過可振而) 간언을 깨달아야 한다고(諫可覺) 말할 것입니다(曰也). 살피는 것을(察) 반복하는 것이(於參伍), 뛰어난 성군의(上聖之) 법도입니다(法也). 무릇(凡) 저의 말은(臣之言), 허물에서(於咎) 벗어남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고(非以求免也), 장차(將) 간언했기 때문에(以諫而) 죽더라도(死), 원컨대(願) 폐하께서(陛下) 만민을 위해서(爲萬民) 생각하고(思) 도를 따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從道也).”라고 했다.
사자가 말하길(使者曰): “저는(臣) 조서를 받아서(受詔) 장군에게(於將軍) 법을 집행하는 것이니(行法), 감히 장군의 말을(不敢以將軍言) 황제에게 들려드릴 수 없습니다(聞於上也).”라고 했다.
몽염이(蒙恬) 한탄하고(喟然) 크게 한숨 쉬며 말하길(太息曰): “내가(我) 하늘에(於天) 무슨 죄를 지었기에(何罪), 잘못이 없는데(無過而) 죽는 것인가(死乎)?”라고 했다.
한참 지나서(良久), 천천히 말하길(徐曰): “내 죄가(恬罪) 참으로(固) 죽어 마땅하다(當死矣). 임조에서 일어나(起臨洮) 잇달아(屬) 요동까지 가서(之遼東), 성을 쌓고 땅을 판 것이(城塹) 일만여 리이니(萬餘里), 이것은(此) 그 가운데(其中) 지맥을 끊지 않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不能無絶地脈哉)? 이것이 바로(此乃) 내 죄구나(恬之罪也).”라고 했다.
이에(乃) 약을 삼키도(呑藥) 자살했다(自殺).
* 必參而伍之: 경험에 비추어 공적을 비교하고 반복하여 자세히 살펴 실수를 꾸짖음. <韓非子 備內> 參伍는 여러 가지 징후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진단함을 말한다.
* 孽臣: 불충한 신하. 趙高를 말한다.
* 參伍(참오): 이리저리 뒤섞이다. 마구 뒤섞이다.
* 良久(양구): 한참 지나, 꽤 오래.
8. 太史公曰: 吾適北邊, 自直道歸, 行觀蒙恬所爲秦築長城亭障, 塹山堙谷, 通直道, 固輕百姓力矣. 夫秦之初滅諸侯, 天下之心未定, 痍傷者未瘳, 而恬爲名將, 不以此時彊諫, 振百姓之急, 養老存孤, 務修衆庶之和, 而阿意興功, 此其兄弟遇誅, 不亦宜乎! 何乃罪地脈哉?
8.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吾) 북쪽 변경에 가서(適北邊), 곧은 길을 통해서(自直道) 돌아왔는데(歸), 가면서(行) 몽염이(蒙恬) 진나라를 위해 장성과 정장을 쌓은 것을(所爲秦築長城亭障) 보니(觀), 산을 깎고(塹山) 계곡을 메워(堙谷), 곧은 길을 통하게 했으니(通直道), 참으로(固) 백성의힘을 가벼이 여겼다(輕百姓力矣). 무릇(夫) 진나라가(秦之) 처음에(初) 제후를 없애고(滅諸侯), 천하의 마음이(天下之心)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未定), 상처 입은 사람이(痍傷者) 아직 낫지 않았는데(未瘳, 而) 몽염은(恬) 명색이 장군이 되어(爲名將), 이 때(此時) 강하게 간언하거나(彊諫), 백성의 급함을 돌보거나(振百姓之急), 노인을 봉양하고(養老) 고아를 보존하고(存孤), 백성의 화합을(衆庶之和) 닦는 것에 힘쓰지 않고(不以務修, 而) 아첨하는 뜻으로(阿意) 공을 세웠으니(興功), 이것은(此) 그 형제가(其兄弟) 죽임을 당한 것도(遇誅),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不亦宜乎)! 어찌(何乃) 지맥에게 죄를 묻는가(罪地脈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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