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始皇三十四年, 置酒咸陽宮, 博士仆射周青臣等頌始皇威德. 齊人淳于越進諫曰: "臣聞之, 殷周之王千餘歲, 封子弟功臣自爲支輔. 今陛下有海內, 而子弟爲匹夫, 卒有田常·六卿之患, 臣無輔弼, 何以相救哉? 事不師古而能長久者, 非所聞也. 今青臣等又面諛以重陛下過, 非忠臣也." 始皇下其議丞相. 丞相謬其說, 絀其辭, 乃上書曰: "古者天下散亂, 莫能相一, 是以諸侯并作, 語皆道古以害今, 飾虛言以亂實, 人善其所私學, 以非上所建立. 今陛下并有天下, 別白黑而定一尊; 而私學乃相與非法教之制, 聞令下, 即各以其私學議之, 入則心非, 出則巷議, 非主以爲名, 異趣以爲高, 率群下以造謗. 如此不禁, 則主勢降乎上, 黨與成乎下. 禁之便. 臣請諸有文學詩書百家語者, 蠲除去之. 令到滿三十日弗去, 黥爲城旦. 所不去者, 醫藥卜筮種樹之書. 若有欲學者, 以吏爲師." 始皇可其議, 收去詩書百家之語以愚百姓, 使天下無以古非今. 明法度, 定律令, 皆以始皇起. 同文書. 治離宮別館, 周遍天下. 明年, 又巡狩, 外攘四夷, 斯皆有力焉.
10 시황제 34년에(始皇三十四年), 함양궁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置酒咸陽宮), 박사(博士) 복야와 주청신 등이(仆射周青臣等) 시황제의 덕을 칭송했다(頌始皇威德).
제나라 사람(齊人) 순우월이(淳于越) 나아가 간하길(進諫曰): "신이 듣건대(臣聞之), 은나와 주나라의 왕업이(殷周之王) 천여 년이고(千餘歲), 자제와 공신을 봉해서(封子弟功臣) 스스로 지탱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自爲支輔).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천하를 가지만(有海內, 而) 자제가(子弟) 평민이 되었으니(爲匹夫), 갑작스럽게(卒) 전상과 육경의 근심이 있다면(有田常·六卿之患), 신하가(臣) 보필할 수 없으니(無輔弼), 어찌(何以) 서로 구할 수 있겠습니까(相救哉)? 일이(事) 옛것을 본받지 않고(不師古而) 오래가는 것은(能長久者), 들어본 것이 없습니다(非所聞也). 지금(今) 주청신 등이(青臣等又) 면전에서 아첨해서(面諛以) 폐하의 잘못을 다시 하도록 하니(重陛下過), 충신이 아닙니다(非忠臣也)."라고 했다. 시황제가(始皇) 승상에게(丞相) 그 의논을 내렸다(下其議).
승상이(丞相)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하며(謬其說), 그 말을 물리치고(絀其辭), 이에(乃) 서를 올려 말하길(上書曰): "옛날(古者) 천하가(天下) 흩어지고 어지러울 때(散亂), 누구도(莫) 서로 하나로 만들 수 없었고(能相一), 이 때문에(是以) 제후가 함께 일어났는데(諸侯并作), 말은(語) 모두(皆) 옛것을 말해서(道古以) 지금을 해치고(害今), 허황된 말을 꾸며서(飾虛言以) 실질을 어지럽혀서(亂實), 사람들이(人) 그 사사로운 학문을 좋게 여기고(善其所私學, 以) 위에서 세운 것을 비난했습니다(非上所建立).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천하를 모두 가졌고(并有天下), 흑백을 구별해서(別白黑而) 하나를 정해(定一) 높였는데(尊; 而) 사사로운 학문이(私學) 이에(乃) 서로 함께(相與) 법교의 제도를 비난하니(非法教之制), 령이 내려진 것을 듣고(聞令下), 곧(即) 각자(各) 그 사사로운 학문으로(以其私學) 의논해서(議之), <조정에> 들어오면(入則) 마음으로 비난하고(心非), 나가면(出則) 거리에서 의논하니(巷議), 임금을 비방하는 것을(非主) 명성으로 삼고(以爲名), 다른 주장을(異趣) 고상하게 여기고(以爲高), 무리를 몰아서(率群下以) 비방에 이릅니다(造謗). 이것이 금하지 않는다면(如此不禁, 則) 위로(乎上) 임금의 권세가 내려가고(主勢降), 아래로(乎下) 당파가 이루어집니다( 黨與成). 금지하는 것이(禁之) 편합니다(便). 신이 청컨대(臣請) 모든(諸) 문학, 시서, 백가의 말을 가진 사람들에게(有文學詩書百家語者), 그것을 없애서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蠲除去之). 명령이 도달하고(令到) 30일을 채우고도(滿三十日) 버리지 않는다면(弗去), 묵형에 처하고(黥) 성단으로 삼아야 합니다(爲城旦). 버리지 말 것은(所不去者), 의약, 점술, 농업의 책입니다(醫藥卜筮種樹之書). 만약(若) 배우려는 사람이 있다면(有欲學者), 관리를(以吏) 스승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爲師)."라고 했다.
시황제는(始皇) 그 논의가 옳다고 여겨(可其議), 시서백가의 말을 모두 거두어(收去詩書百家之語以)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고(愚百姓), 천하로 하여금(使天下) 옛것으로 지금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했다(無以古非今). 법도를 밝히고(明法度), 율령을 정하니(定律令), 모두(皆) 시황제로서 시작했다(以始皇起). 글자를 같게 만들고(同文書), 이궁과 별관을 수리하고(治離宮別館), 천하에 두루 두었다(周遍天下). 다음 해에(明年), 또(又) 순수에 나서(巡狩), 바깥의(外) 사이를 평정했으니(攘四夷), 이사에게(斯) 모두(皆) 힘쓴 것이 있다(有力焉).
11 斯長男由爲三川守, 諸男皆尚秦公主, 女悉嫁秦諸公子. 三川守李由告歸咸陽, 李斯置酒於家, 百官長皆前爲壽, 門廷車騎以千數. 李斯喟然而嘆曰: "嗟乎! 吾聞之荀卿曰『物禁大盛』. 夫斯乃上蔡布衣, 閭巷之黔首, 上不知其駑下, 遂擢至此. 當今人臣之位無居臣上者, 可謂富貴極矣. 物極則衰, 吾未知所稅駕也!"
11 이사의 장남(斯長男) 유가(由) 삼천의 태수가 되었고(爲三川守), 여러 아들이(諸男) 모두(皆) 진나라 공주와 결혼했고(尚秦公主), 딸은(女) 모두(悉) 진나라 여러 공자에게 시집갔다(嫁秦諸公子). 삼천 태수(三川守) 이유가(李由) 함양에 돌아와서(告歸咸陽), 이사가(李斯) 집에서 술자리를 열었는데(置酒於家), 백관이(百官長) 모두(皆) 앞으로 나와(前) 장수를 빌고(爲壽), 문과 뜰에(門廷) 수레와 말이(車騎) 수 천이나 되었다(以千數).
이사가(李斯) 한숨을 쉬고(喟然而) 탄식하며 말하길(嘆曰): "아(嗟乎)! 내가 듣기로(吾聞之) 순경이 말하길(荀卿曰) 만물이(物) 크게 융성해지는 것을 금해라(禁大盛)라고 했다. 무릇(夫) 내가(斯) 바로(乃) 상제의 평민으로(上蔡布衣), 시골 마을의(閭巷之) 백성이었는데(黔首), 임금이(上) 아둔한 것을 알지 못하고(不知其駑下), 마침내(遂) 발탁해서(擢) 지금에 이르렀다(至此). 지금(當今) 신하의 지위로(人臣之位)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고(無居臣上者), 부귀가 극에 달했다고 할만하다(可謂富貴極矣). 만물이 극에 이르면(物極則) 쇠하는데(衰), 내가(吾) 엄멈출 곳을(所稅駕) 알지 못하겠구나(未知也)!"라고 했다.
* 駑下(노하): ‘둔(鈍)한 말 아래’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自己)를 낮추어 이르는 말.
* 稅駕(탈가) : 말의 멍에를 풀고 수레를 멈춘다는 뜻으로, 휴식함을 이른다. 稅는 벗을 ‘탈’.
12 始皇三十七年十月, 行出游會稽, 并海上, 北抵瑯邪. 丞相斯·中車府令趙高兼行符璽令事, 皆從. 始皇有二十餘子, 長子扶蘇以數直諫上, 上使監兵上郡, 蒙恬爲將. 少子胡亥愛, 請從, 上許之. 餘子莫從.
12 시황제(始皇) 37년 10월에(三十七年十月), 나가서(行出) 회계를 유람하고(游會稽), 해안을 따라(并海上), 북으로(北) 낭야에 이르렀다(抵瑯邪). 승상 이사와(丞相斯) 중거부령 조고가(中車府令趙高) 부새령의 일을(符璽令事) 함께 하면서(兼行), 모두 따랐다(皆從). 시황제에게(始皇)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有二十餘子), 맏아들(長子) 부소가(扶蘇) 자주(以數) 솔직하게(直) 임금에게 간하므로(諫上), 임금이(上) 상군의 군대를 감독하도록 하고(使監兵上郡), 몽염이(蒙恬) 장수가 되었다(爲將). 막내아들 호해는(少子胡亥愛), 따르기를 청하자(請從), 임금이 허락했다(上許之). 나머지 자식은(餘子)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莫從).
13 其年七月, 始皇帝至沙丘, 病甚, 令趙高爲書賜公子扶蘇曰: "以兵屬蒙恬, 與喪會咸陽而葬." 書已封, 未授使者, 始皇崩. 書及璽皆在趙高所, 獨子胡亥·丞相李斯·趙高及幸宦者五六人知始皇崩, 餘群臣皆莫知也. 李斯以爲上在外崩, 無真太子, 故祕之. 置始皇居輼輬車中, 百官奏事上食如故, 宦者輒從輼輬車中可諸奏事.
13 그해 7월에(其年七月), 시황제가(始皇帝) 사구에 이르러(至沙丘), 병이 심해지자(病甚), 조고에게 명을 내려(令趙高) 편지를 써서(爲書) 공자 부소에게 보내며 말하길(賜公子扶蘇曰): "군대를(以兵) 몽염에게 속하게 하고(屬蒙恬), 함양에서 초상을 치르고(與喪會咸陽而) 장사 지내라(葬)."라고 했다.
편지가(書) 이미 밀봉되어(已封), 사자에게 주기 전에(未授使者), 시황제가 죽었다(始皇崩). 편지와 옥새는(書及璽) 모두(皆) 조고에게 있었는데(在趙高所), 오직(獨) 아들 호해와(子胡亥) 승상 이사(丞相李斯), 조고와(趙高及) 총애하는 환관(幸宦者) 오륙 명 만이(五六人) 시황제가 죽은 것을 알았고(知始皇崩), 나머지 여러 신하는(餘群臣) 모두(皆) 알지 못했다(莫知也). 이사가(李斯) 임금이 바깥에 있다가(以爲上在外) 죽었고(崩), 정식 태자가 없고(無真太子), 그러므로(故) 비밀로 했다(祕之). 시황제를(始皇) 온량거 안에 두고(置居輼輬車中), 백관이(百官) 임금에게 일을 아뢰고(奏事) 식사 올리는 것이(上食) 전과 같았고(如故), 환관이(宦者) 온량거 안에서(輼輬車中) 나랏일을 처리했다(輒從可諸奏事).
14 趙高因留所賜扶蘇璽書, 而謂公子胡亥曰: "上崩, 無詔封王諸子而獨賜長子書. 長子至, 即立爲皇帝, 而子無尺寸之地, 爲之柰何?" 胡亥曰: "固也. 吾聞之, 明君知臣, 明父知子. 父捐命, 不封諸子, 何可言者!" 趙高曰: "不然. 方今天下之權, 存亡在子與高及丞相耳, 願子圖之. 且夫臣人與見臣於人, 制人與見制於人, 豈可同日道哉!" 胡亥曰: "廢兄而立弟, 是不義也; 不奉父詔而畏死, 是不孝也; 能薄而材谫, 彊因人之功, 是不能也: 三者逆德, 天下不服, 身殆傾危, 社稷不血食." 高曰: "臣聞湯·武殺其主, 天下稱義焉, 不爲不忠. 衛君殺其父, 而衛國載其德, 孔子著之, 不爲不孝. 夫大行不小謹, 盛德不辭讓, 鄉曲各有宜而百官不同功. 故顧小而忘大, 後必有害; 狐疑猶豫, 後必有悔. 斷而敢行, 鬼神避之, 後有成功. 願子遂之!" 胡亥喟然嘆曰: "今大行未發, 喪禮未終, 豈宜以此事干丞相哉!" 趙高曰: "時乎時乎, 閒不及謀! 贏糧躍馬, 唯恐後時!"
14 조고가(趙高) 부소에게 내리는 것인(所賜扶蘇) 옥새가 찍힌 편지를(璽書) 쥐고서(因留, 而) 공자 호해에게 말하길(謂公子胡亥曰): "상께서 돌아가셨지만(上崩), 여러 아들을 왕으로 봉하는(封王諸子) 조서를 내린 적이 없고(無詔而) 오직(獨) 장자에게 편지를 내렸습니다(賜長子書). 장자가 와서(長子至), 즉위하여(即立) 황제가 되면(爲皇帝, 而) 자식들에게는(子) 한 치의 땅도 없을 것이니(無尺寸之地), 어찌하겠습니까(爲之柰何)?"라고 했다.
호해가 말하길(胡亥曰): "당연하다(固也). 내가 듣기로(吾聞之), 현명한 군주는(明君) 신하를 알고(知臣), 현명한 아버지는(明父) 자식을 안다(知子). 아버지가(父) 목숨을 버릴 때까지(捐命), 여러 아들을 봉하지 않았으니(不封諸子), 무엇을(何) 말할 수 있겠는가(可言者)!"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趙高曰): "그렇지 않습니다(不然). 지금(方今) 천하의 권력을(天下之權), 가지느냐 가지지 못하는가는(存亡) 공자와 저, 승상에 달렸을 뿐이니(在子與高及丞相耳), 원컨대(願) 공자께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子圖之). 또(且) 무릇(夫)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臣人與) 남에게 신하가 되는 것(見臣於人), 남을 제압하는 것과(制人與) 남에게 제압당하는 것이(見制於人), 어찌(豈) 같다고(可同) 말할 수 있습니까(日道哉)!"라고 했다.
호해가 말하길(胡亥曰): "형을 폐하고(廢兄而) 동생을 세운다면(立弟), 이것은(是) 불의이고(不義也); 아버지의 조서를 받들지 않고(不奉父詔而) 죽음을 두려워한다면(畏死), 이것은(是) 불효이고(不孝也); 능력이 박하고(能薄而) 재능이 보잘것없는데(材谫), 억지로(彊) 남의 공에 의지하는 것은(因人之功), 이것은(是) 능력이 없는 것이니(不能也): 세 가지는(三者) 덕을 거스르므로(逆德), 천하가 복종하지 않고(天下不服), 몸이 아마도(身殆) 위태로울 것이고(傾危), 사직이(社稷) 제사를 받지 못할 것이다(不血食)."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신이 듣건대(臣聞) 탕왕고 무왕은(湯·武) 그 주인을 죽였지만(殺其主), 천하가(天下) 의롭다고 칭송했고(稱義焉), 불충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不爲不忠). 위군은(衛君) 그 아버지를 죽였지만(殺其父, 而) 위나라는(衛國) 그 덕을 받들었고(載其德), 공자가 그것을 드러냈지만(孔子著之), 불효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不爲不孝). 무릇(夫) 큰 일을 행하는 것은(大行) 작게 삼가지 않고(不小謹), 성대한 덕은(盛德) 사양하지 않으며(不辭讓), 마을마다(鄉曲各) 마땅함이 있고(有宜而) 백관은(百官) 공이 같지 않습니다(不同功). 그러므로(故) 작은 것을 돌아보다(顧小而) 큰 것을 잃고(忘大), 나중에(後) 반드시(必) 해가 있고(有害); 의심하고(狐疑) 주저하면(猶豫), 나중에 반드시(後必)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有悔). 결단해서 감행하면(斷而敢行), 귀신도 피하고(鬼神避之), 나중에 성공이 있을 것입니다(後有成功). 원컨대(願) 공자께서 따르시길 바랍니다(子遂之)!"라고 했다.
호해가(胡亥) 탄식하며 말하길(喟然嘆曰): "지금(今) 큰 일도(大行) 드러내지 않았고(未發), 상례도(喪禮)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未終), 어찌(豈) 이 일로(宜以此事) 승상에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干丞相哉)!"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趙高曰): "급하고 급하니(時乎時乎), 한가하게(閒) 생각이 미칠 수 없습니다(不及謀)! 식량을 지고(贏糧) 말을 달려도(躍馬), 오직(唯) 때를 늦을까 걱정됩니다(恐後時)!"라고 했다.
* 狐疑(호의): ‘여우가 의심(疑心)이 많다.’는 뜻으로, 매사(每事)에 지나치게 의심(疑心)함을 이르는 말.
* 猶豫(유예):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
15 胡亥旣然高之言, 高曰: "不與丞相謀, 恐事不能成, 臣請爲子與丞相謀之." 高乃謂丞相斯曰: "上崩, 賜長子書, 與喪會咸陽而立爲嗣. 書未行, 今上崩, 未有知者也. 所賜長子書及符璽皆在胡亥所, 定太子在君侯與高之口耳. 事將何如?" 斯曰: "安得亡國之言! 此非人臣所當議也!" 高曰: "君侯自料能孰與蒙恬? 功高孰與蒙恬? 謀遠不失孰與蒙恬? 無怨於天下孰與蒙恬? 長子舊而信之孰與蒙恬?" 斯曰: "此五者皆不及蒙恬, 而君責之何深也?" 高曰: "高固內官之廝役也, 幸得以刀筆之文進入秦宮, 管事二十餘年, 未嘗見秦免罷丞相功臣有封及二世者也, 卒皆以誅亡. 皇帝二十餘子, 皆君之所知. 長子剛毅而武勇, 信人而奮士, 即位必用蒙恬爲丞相, 君侯終不懷通侯之印歸於鄉里, 明矣. 高受詔教習胡亥, 使學以法事數年矣, 未嘗見過失. 慈仁篤厚, 輕財重士, 辯於心而詘於口, 盡禮敬士, 秦之諸子未有及此者, 可以爲嗣. 君計而定之." 斯曰: "君其反位! 斯奉主之詔, 聽天之命, 何慮之可定也?" 高曰: "安可危也, 危可安也. 安危不定, 何以貴聖?" 斯曰: "斯, 上蔡閭巷布衣也, 上幸擢爲丞相, 封爲通侯, 子孫皆至尊位重祿者, 故將以存亡安危屬臣也. 豈可負哉! 夫忠臣不避死而庶幾, 孝子不勤勞而見危, 人臣各守其職而已矣. 君其勿復言, 將令斯得罪." 高曰: "蓋聞聖人遷徙無常, 就變而從時, 見末而知本, 觀指而睹歸. 物固有之, 安得常法哉! 方今天下之權命懸於胡亥, 高能得志焉. 且夫從外制中謂之惑, 從下制上謂之賊. 故秋霜降者草花落, 水搖動者萬物作, 此必然之效也. 君何見之晚?" 斯曰: "吾聞晉易太子, 三世不安; 齊桓兄弟爭位, 身死爲戮; 紂殺親戚, 不聽諫者, 國爲丘墟, 遂危社稷: 三者逆天, 宗廟不血食. 斯其猶人哉, 安足爲謀!" 高曰: "上下合同, 可以長久; 中外若一, 事無表裏. 君聽臣之計, 即長有封侯, 世世稱孤, 必有喬松之壽, 孔·墨之智. 今釋此而不從, 禍及子孫, 足以爲寒心. 善者因禍爲福, 君何處焉?" 斯乃仰天而嘆, 垂淚太息曰: "嗟乎! 獨遭亂世, 旣以不能死, 安託命哉!" 於是斯乃聽高. 高乃報胡亥曰: "臣請奉太子之明命以報丞相, 丞相斯敢不奉令!"
15 호해가(胡亥) 이미(旣) 조고의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는데(然高之言), 조고가 말하길(高曰): "승상과 함께 모의하지 않으면(不與丞相謀), 일이(事)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니(恐不能成), 신이 청컨대(臣請) 공자를 위해(爲子) 승상과 의논하겠습니다(與丞相謀之)."라고 했다.
조고가 이에(高乃) 승상 이사에게 말하길(謂丞相斯曰): "황제가 돌아가시고(上崩), 장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賜長子書), 상과 함께(與喪) 함양에서 모여(會咸陽而) 세워서(立) 후사를 삼으라 했습니다(爲嗣). 편지가(書) 아직 가지 않았는데(未行), 지금(今) 황제가 돌아가시고(上崩), 아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未有知者也). 장자에게 가는 편지와(所賜長子書及) 옥새는(符璽) 모두(皆) 호해에게 있으니(在胡亥所), 태자를 정하는 것은(定太子) 그대와 나의 입에 달렸을 뿐입니다(在君侯與高之口耳). 일을(事) 장차 어찌할 것인가요(將何如)?"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길(斯曰): "어찌(安) 나라를 망치는 말을 하는가(得亡國之言)! 이것은(此) 신하가 마땅히 의논할 것이 아니다(非人臣所當議也)!"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그대는(君侯) 스스로 헤아려볼 때(自料) 몽염과(與蒙恬) 누가 더 능력이 있는가(能孰)? 공이 높은 것은(功高) 몽염과 함께(與蒙恬) 누가 더 나은가(孰)? 멀리 꾀하고(謀遠) 실수하지 않는 것은(不失) 몽염과 함께 누가 더 나은가(孰與蒙恬)? 천하에 원한이 없는 것은(無怨於天下) 몽염과 누가 더 나은가(孰與蒙恬)? 장자가(長子) 오래 지내어(舊而) 믿는 것에는(信之) 몽염과 누가 더 나은가(孰與蒙恬)?"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길(斯曰): "이 다섯 가지는(此五者0 모두(皆) 몽염에게 미치지 못하지만(不及蒙恬, 而) 그대는(君) 따지는 것이(責之) 어찌 심한가(何深也)?"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저는(高) 본래(固) 내관의(內官之) 하찮은 일을 하지만(廝役也), 다행히(幸) 형법의 문서 일을 얻어(得以刀筆之文) 진나라 궁궐에 들어와서(進入秦宮), 일을 관정한 것이(管事) 20여 년이지만(二十餘年), 진나라에서(秦) 쫓겨난 승상이나 공신 가운데(免罷丞相功臣) 봉토가 2대를 간 사람이 있는 것을(有封及二世者) 본 적이 없으니(未嘗見也), 마침내(卒) 모두(皆) 죽임을 당했습니다(以誅亡). 황제가(皇帝) 20여 명을 자식을 두었지만(二十餘子), 모두(皆) 그대가 압니다(君之所知). 장자는(長子) 강직하고(剛毅而) 용맹스러우며(武勇), 사람을 믿고(信人而) 사를 떨쳐 일으키는 사람이니(奮士), 즉위하면(即位) 반드시(必) 몽염을 등용해서(用蒙恬) 승상을 삼을 것이고(爲丞相), 그대는(君侯) 끝내(終) 통후의 인수를 품지 못하고(不懷通侯之印) 고향에 돌아갈 것이(歸於鄉里), 분명합니다(明矣). 제가(高) 조서를 받아(受詔) 호해를 가르쳐서(教習胡亥), 법을 배우도록 한 것이(使學以法事) 여러 해인데(數年矣), 잘못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未嘗見過失). 인자하고(慈仁) 두터우며(篤厚),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輕財) 사를 중용하게 여기며(重士), 마음에 분별이 있지만(辯於心而) 입에서는 어눌하고(詘於口), 예를 다하여(盡禮) 사를 공경하니(敬士), 진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秦之諸子) 이에 미치는 사람이 있지 않으니(未有及此者), 후사로 삼을만합니다(可以爲嗣). 그대가 생각해서(君計而) 결정하세요(定之)."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길(斯曰): "그대는(君) 제자리로 돌아가라(其反位)! 나는(斯) 진나라 주인의 조칙을 받고(奉主之詔), 하늘의 명을 듣는 것이니(聽天之命), 무엇을 생각해서(何慮之) 정할 수 있겠는가(可定也)?"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편안함이(安) 위험할 수 있고(可危也), 위험함이(危) 편안할 수 있습니다(可安也). 편안함과 위험함을(安危) 정하지 못한다면(不定), 어찌(何以) 성인으로 귀하에 여기겠습니까(貴聖)?"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길(斯曰): "나는(斯), 상채(上蔡) 시골의(閭巷) 평민이었는데(布衣也), 황상이(上) 다행히(幸) 발탁하여(擢) 승상으로 삼고(爲丞相), 봉하여(封) 통후가 되었으며(爲通侯), 자손이(子孫) 모두(皆) 지존의 지위와(至尊位) 많은 봉록을 받는 사람이고(重祿者), 그러므로(故) 장차(將) 존망과 안위를(以存亡安危) 나에게 속하게 했다(屬臣也). 어찌(豈) 등질 수 있겠는가(可負哉)! 무릇(夫) 충신은(忠臣) 죽음을 피하려고(避死而) 요행을 바라지 않고(不庶幾), 효자는(孝子) 부지런히 힘쓰고(勤勞而) 위험을 당하지 않으니(不見危), 신하는(人臣) 각자(各) 자기 직책을 지킬 뿐이다(守其職而已矣). 그대는(君) 다시 말하지 말고(其勿復言), 장차(將) 나로 하여금(令斯) 죄를 짓게 하려는 것인가(得罪)."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대개(蓋) 성인은(聖人) 변해서(遷徙) 정해진 일정함이 없고(無常), 변화에 나아가(就變而) 때를 따르고(從時), 끝을 보고(見末而) 근본을 알며(知本), 가리키는 것을 보고(觀指而) 돌아가는 것을 본다고(睹歸) 들었습니다(聞). 만물은 본래(物固) 그러한 것이 있는데(有之), 어찌(安) 정해지 법이 있습니까(得常法哉)! 방금(方今) 천하의 권력이(天下之權命) 호해에게 걸렸으며(懸於胡亥), 제가(高)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能得志焉). 또한(且) 저(夫) 바깥을 따라(從外) 안을 제어하는 것을(制中) 혹이라 하고(謂之惑), 아래를 따라 위를 제어하는 것을(從下制上) 적이라 합니다(謂之賊). 그러므로(故) 가을 서리가 내리면(秋霜降者) 잎과 꽃이 떨어지고(草花落), 물이 요동치면(水搖動者) 만물이 일어나니(萬物作), 이것은(此) 반드시 그러한(必然之) 효과입니다(效也). 그대는(君) 어찌(何) 보는 것이 늦습니까(見之晚)?"라고 했다.
이사가 말하길(斯曰): "내가 듣기로(吾聞) 진나라가(晉) 태자랄 바꾸고(易太子), 3대가 불안했고(三世不安); 제나라 환공 형제가(齊桓兄弟) 자리를 다투어(爭位), 몸이 죽어(身死) 살육을 당했고(爲戮); 주왕이(紂) 친척을 죽이고(殺親戚), 간언하는 것을 듣지 않고(不聽諫者), 나라가(國) 폐허가 되어(爲丘墟), 마침내(遂) 사직이 위태롭게 되었으니(危社稷): 세 가지는(三者) 하늘을 거슬러(逆天), 종묘가(宗廟) 제사를 받지 못한 것이다(不血食). 나는(斯) 그 같은 사람인데(其猶人哉), 어찌(安) 모반을 꾀할 수 있겠는가(足爲謀)!"라고 했다.
조고가 말하길(高曰): "상하가(上下) 합쳐서 하나가 되면(合同), 오래 갈 수 있고(可以長久); 안과 밖이(中外) 하나처럼 되면(若一), 일에(事) 겉과 속이 없습니다(無表裏). 그대가(君) 신의 계책을 듣는다면(聽臣之計), 오랫동안(即長) 봉후의 직책이 있을 것이고(有封侯), 자손 대대로(世世) 고라고 칭하며(稱孤), 반드시(必) 왕자교와 적송자의 장수가 있을 것이고(有喬松之壽), 공자와 묵자의 지혜가 있을 것입니다(孔·墨之智). 지금 이것을 버리고(今釋此而) 따르지 않는다면(不從), 화가(禍) 자손에게 미치고(及子孫), 냉혹한 마음이 되기에 충분합니다(足以爲寒心). 잘하는 사람은(善者) 화를 통해서(因禍) 복을 만드니(爲福), 그대는(君) 어찌 대응할 것입니까(何處焉)?"라고 했다.
이사는(斯乃) 하늘을 우러러(仰天而) 탄식하며(嘆), 눈물을 흘리고(垂淚) 크게 한숨 쉬며 말하길(太息曰): "아(嗟乎)! 홀로(獨) 난세를 만나서(遭亂世), 이미(旣) 죽을 수도 없고(以不能死), 어디에(安) 목숨을 맡기겠는가(託命哉)!"라고 했다.
이에(於是) 이사가(斯乃) 조고의 말을 들어주었다(聽高). 조고가(高乃) 호해에게 보고하길(報胡亥曰): "신이(臣) 청컨대(請) 태자의 밝을 뜻을 받들어(奉太子之明命以) 조고에게 알렸고(報丞相), 승상 이사가(丞相) 감히(斯)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敢不奉令)!"라고 했다.
* 刀筆之文(도필지문) : 형법의 문서.
16 於是乃相與謀, 詐爲受始皇詔丞相, 立子胡亥爲太子. 更爲書賜長子扶蘇曰: "朕巡天下, 禱祠名山諸神以延壽命. 今扶蘇與將軍蒙恬將師數十萬以屯邊, 十有餘年矣, 不能進而前, 士卒多秏, 無尺寸之功, 乃反數上書直言誹謗我所爲, 以不得罷歸爲太子, 日夜怨望. 扶蘇爲人子不孝, 其賜劍以自裁! 將軍恬與扶蘇居外, 不匡正, 宜知其謀. 爲人臣不忠, 其賜死, 以兵屬裨將王離." 封其書以皇帝璽, 遣胡亥客奉書賜扶蘇於上郡.
16 이에(於是) 곧(乃) 서로 함께 모의해서(相與謀), 시황제의 조서를 승상이 받은 것처럼(受始皇詔丞相) 거짓으로 꾸미고(詐爲), 공자 호해를 세워(立子胡亥)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다시(更) 편지를 만들어(爲書) 큰아들 부소에게 내려 말하길(賜長子扶蘇曰): "짐이(朕) 천하를 순행하며(巡天下), 명산의 여러 신에게(名山諸神) 제사를 드리고(禱祠以) 수명을 연장하려 한다(延壽命). 지금(今) 부소와 장군 몽염이(扶蘇與將軍蒙恬) 군대 수십 만을 이끌고(將師數十萬以) 변방에 주둔하 것이(屯邊), 10여 년인데(十有餘年矣), 나아가 앞으로 가지 못하며(不能進而前), 사졸이(士卒) 많이 줄고(多秏), 한 치의 공도 없는데(無尺寸之功), 도리어(乃反) 자주(數) 글을 올려(上書) 내가 한 것을(我所爲) 직언하여 비방하고(直言誹謗, 以) 그만두고 돌아와(罷歸) 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을(不得爲太子), 밤낮으로 원망하니(日夜怨望). 부소의(扶蘇) 자식 된 것이(爲人子) 불효하므로(不孝), 그 검을 내린 것으로(其賜劍以)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自裁)! 장군 몽염은(將軍恬) 부소와 함께(與扶蘇) 바깥에 머물려(居外),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不匡正), 마땅히(宜) 그 모략을 알았을 것이다(知其謀). 신하가(爲人臣) 불충하니(不忠), 그 죽음을 내리며(其賜死, 以) 군대는(兵) 비장 왕리에게 속하도록 한다(屬裨將王離)."라고 했다.
그 편지를 봉하고(封其書以) 황제의 옥새를 찍어(皇帝璽), 호해의 객을 시켜(遣胡亥客) 편지를 받들고(奉書) 상군에 있는(於上郡) 부소에게 보냈다(賜扶蘇).
17 使者至, 發書, 扶蘇泣, 入內舍, 欲自殺. 蒙恬止扶蘇曰: "陛下居外, 未立太子, 使臣將三十萬眾守邊, 公子爲監, 此天下重任也. 今一使者來, 即自殺, 安知其非詐? 請復請, 復請而後死, 未暮也." 使者數趣之. 扶蘇爲人仁, 謂蒙恬曰: "父而賜子死, 尚安復請!" 即自殺. 蒙恬不肯死, 使者即以屬吏, 系於陽周.
17 사자가 이르러(使者至), 편지를 열고(發書), 부소가 울며(扶蘇泣), 안으로 들어가(入內舍),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欲自殺).
몽염이(蒙恬) 부수를 말리며(止扶蘇) 말하길(曰): "폐하가(陛下) 바깥에 계시면서(居外),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았고(未立太子), 신을 시켜(使臣) 30만 무리를 이끌고(將三十萬眾) 변경을 지키도록 하며(守邊), 공자가(公子) 감시하도록 했는데(爲監), 이것은(此) 천하의 중요한 임무입니다(天下重任也). 지금(今) 사자 한 명이 와서(一使者來),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即自殺), 어찌(安) 그 거짓이 아닌지를 알겠습니까(知其非詐)? 청컨대(請) 다시 청하고(復請), 다시 청하고 나서(復請而後) 죽더라도(死), 늦지 않습니다(未暮也)."라고 했다.
사자가(使者) 여러 차례(數) 재촉했다(趣之). 부소의 사람됨이(扶蘇爲人) 어질어서(仁), 몽염에게 말하길(謂蒙恬曰): "아버지가(父而) 자식에게 죽음을 내렸는데(賜子死), 어찌(尚安) 다시 청하겠는가(復請)!"라고 했다.
바로 자살했다(即自殺). 몽염이(蒙恬) 기꺼이 죽으려 하지 않자(不肯死), 사자가(使者) 곧(即) 옥리에게 속하게 하고(以屬吏), 양주에 가두었다(系於陽周).
18 使者還報, 胡亥·斯·高大喜. 至咸陽, 發喪, 太子立爲二世皇帝. 以趙高爲郎中令, 常侍中用事.
18 사자가(使者) 돌아와 보고하자(還報), 호해와 이사, 조고가 크게 기뻐했다(胡亥·斯·高大喜). 함양에 이르러(至咸陽), 황제의 죽음을 밝히고(發喪), 태자를 세워(太子立) 이세 황제로 삼았다(爲二世皇帝). 조고를(以趙高) 낭중령으로 삼고(爲郎中令), 늘(常) 궁중에서 모시며(侍中) 일을 썼다(用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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