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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90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운증용변(雲蒸龍變) - 용 두 마리가 싸울 때는 기다려라

by प्रज्ञा 202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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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魏豹者, 故魏諸公子也. 其兄魏咎, 故魏時封爲寧陵君. 秦滅魏, 遷咎爲家人. 陳勝之起王也, 咎往從之. 陳王使魏人周市徇魏地, 魏地已下, 欲相與立周市爲魏王. 周市曰: “天下昏亂, 忠臣乃見. 今天下共畔秦, 其義必立魏王後乃可.” 齊ㆍ趙使車各五十乘, 立周市爲魏王. 市辭不受, 迎魏咎於陳. 五反, 陳王乃遣立咎爲魏王. 章邯已破陳王, 乃進兵擊魏王於臨濟. 魏王乃使周市出請救於齊ㆍ楚. 齊ㆍ楚遣項它ㆍ田巴將兵隨市救魏. 章邯遂擊破殺周市等軍, 圍臨濟. 咎爲其民約降. 約定, 咎自燒殺.

1. 위표는(魏豹者), 옛 위나라의(故魏) 여러 공자 가운데 한 명이다(諸公子也). 그 형은(其兄) 위구이고(魏咎), 옛 위나라 시절(故魏時) 봉해서(封) 영릉군이 되었다(爲寧陵君). 진나라가(秦) 위나라를 없애고(滅魏), 구를 옮겨서(遷咎) 평민으로 만들었다(爲家人). 진승이(陳勝之) 난을 일으켜(起) 왕이 되자(王也), 위구가(咎) 가서 따랐다(往從之). 진승이(陳王) 위나라 사람 주불을 시켜(使魏人周市) 위나라 땅을 복종시키도록 하고(徇魏地), 위나라 지역이(魏地) 함락되고 나서(已下), 사로 함께(相與) 주불을 세워(立周市) 위왕으로 삼으려고 했다(爲魏王).

주불이 말하길(周市曰): “천하가(天下) 혼란스러우면(昏亂), 충신이(忠臣) 곧 드러난다(乃見). 지금(今) 천하가(天下) 함께(共) 진나라를 배반했는데(畔秦), 그 의리는(其義) 반드시(必) 위왕의 후손을 세우는 것이(立魏王後) 옳다(乃可).”라고 했다. 제나라와 조나라가(齊趙) 각각 마차 50승을 보내(使車各五十乘), 주불을 세워(立周市) 위왕으로 삼으려고 했다(爲魏王). 주불이(市) 사양하며(辭) 받아들이지 않고(不受), 진나라에서(於陳) 위구를 맞이했다(迎魏咎).

<사자가> 다섯 번을 오가고서(五反), 진왕이(陳王乃) 보내주어(遣) 위구를 세워(立咎) 위왕으로 삼았다(爲魏王). 장한이(章邯) 이미(已) 진왕을 격파하고(破陳王), 이에(乃) 병사를 보내(進兵) 임제에서(於臨濟) 위왕을 공격했다(擊魏王). 위왕이(魏王) 이에(乃) 주불을 가도록 해서(使周市出) 제나라와 초나라에(於齊楚) 구원을 요청했다(請救). 제나라와 초나라가(齊楚) 항타와 전파를 보내(遣項它田巴) 병사를 이끌고(將兵) 주불을 따라(隨市) 위나라를 구원했다(救魏). 장한이(章邯) 마침내(遂) 주불 등의 군사를(周市等軍) 공격해서 깨뜨려 죽이고(擊破殺), 임제를 포위했다(圍臨濟). 위구가(咎) 그 백성을 위해(爲其民) 항복을 약속했다(約降). 약속이 정해지가(約定), 위구가(咎) 스스로 불을 질러 죽었다(自燒殺).

 

* 家人(가인): 평민 백성, 서인(庶人)


2. 魏豹亡走楚. 楚懷王予魏豹數千人, 複徇魏地. 項羽已破秦, 降章邯. 豹下魏二十餘城, 立豹爲魏王. 豹引精兵從項羽入關. 漢元年, 項羽封諸侯, 欲有梁地, 乃徙魏王豹於河東, 都平陽, 爲西魏王. 漢王還定三秦, 渡臨晉, 魏王豹以國屬焉, 遂從擊楚於彭城. 漢敗, 還至滎陽, 豹請歸視親病, 至國, 卽絶河津畔漢. 漢王聞魏豹反, 方東憂楚, 未及擊, 謂酈生曰: “緩頬往說魏豹, 能下之, 吾以萬戸封若.” 酈生說豹. 豹謝曰: “人生一世閒, 如白駒過隙耳. 今漢王慢而侮人, 罵詈諸侯群臣如罵奴耳, 非有上下禮節也, 吾不忍複見也.” 於是漢王遣韓信擊虜豹於河東, 傳詣滎陽, 以豹國爲郡. 漢王令豹守滎陽. 楚圍之急, 周苛遂殺魏豹.

2. 위표는(魏豹) 초나라로 도망갔다(亡走楚). 초 회왕이(楚懷王) 위구에게(魏豹) 수천 명을 주고(數千人), 다시(複) 위나라 땅을 복속시키도록 했다(徇魏地). 항우가(項羽) 이미(已) 진나라를 격파하고(破秦), 장한을 항복시켰다(降章邯). 위표가(豹) 위나라 20여 성을(魏二十餘城) 항복시키자(下), 위표를 세워(立豹) 위왕으로 삼았다(爲魏王). 위표가(豹) 정예병을 이끌고(引精兵) 항우를 따라(從項羽) 함곡관으로 들어갔다(入關).

한나라 원년에(漢元年), 항우가(項羽) 제후를 봉할 때(封諸侯), <항우가> 양나라 땅을 가지려고 했고(欲有梁地, 乃) 하동으로(於河東) 위왕 표를 옮기고(徙魏王豹), 평양에 도읍해서(都平陽), 서위왕이 되었다(爲西魏王). 한왕이(漢王) 삼진을 평정하고(定三秦) 돌아오며(還), 임진을 건너는데(渡臨晉), 위왕 표가(魏王豹) 나라를(以國) 바치고(屬焉), 마침내(遂) 팽성에서(於彭城) 초나라를 공격했다(從擊楚). 한나라가 패하자(漢敗), 돌아와(還) 영양에 이르러(至滎陽), 위표가(豹) 돌아가(歸) 부모의 병을 돌볼 것을(視親病) 청했고(請), 나라에 이르러서(至國), 바로(卽) 나루터를 없애고(絶河津) 한나라를 배반했다(畔漢).

한왕이(漢王) 위표가 배반한 것을(魏豹反) 들었지만(聞), 동쪽으로(方東) 초나라를 걱정해서(憂楚), 공격할 수 없었고(未及擊), 역생에게 말하길(謂酈生曰): “부드럽게(緩頬) 가서(往) 위표를 설득해서(說魏豹), 그를 항복시킬 수 있다면(能下之), 내가(吾) 만 호로(以萬戸) 그대를 봉하겠다(封若).”라고 했다. 역생이 위표를 설득했다(酈生說豹).

위표가 말하길(豹謝曰): “인생(人生) 한 세상 사이에(一世閒), 흰 망아지가(白駒) 지나는 것을(過)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을 뿐이다(隙耳). 지금(今) 한왕이 오만하고(漢王慢而) 사람을 모욕하며(侮人), 제후와 여러 신하를 꾸짖는 것이(罵詈諸侯群臣) 노비를 꾸지는 것과 같으니(如罵奴耳), 상하의 예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非有上下禮節也), 내가(吾) 차마(不忍) 다시 볼 수 없다(複見也).”라고 했다.

이에(於是) 한왕이(漢王) 한신을 보내(遣韓信) 하동에서(於河東) 위표를 공격하고(擊虜豹), 역참의 수레로 형양으로 보내고(傳詣滎陽), 위표의 나라를(以豹國) 군으로 삼았다(爲郡). 한왕이(漢王) 위표로 하여금(令豹) 형양을 지키도록 했는데(守滎陽), 초군의 포위가(楚圍之) 급해지가(急), 주가가(周苛) 마침내(遂) 위표를 죽였다(殺魏豹).

 

* 緩頬(완협): 온건(穩健)하게 천천히 말함, (남을) 대신해서 사정하다. 중재하다.

* 白駒過隙(백구과극):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으로, 인생(人生)이나 세월(歲月)이 덧없이 짧음을 이르는 말.

* 罵詈(매리): 욕하고 꾸짖음.

* 傳詣(전예): 역참의 수레로 보내다. 傳(전)은 역참(驛站)의 수레다.


3. 彭越者, 昌邑人也, 字仲. 常漁钜野澤中, 爲群盜. 陳勝ㆍ項梁之起, 少年或謂越曰: “諸豪桀相立畔秦, 仲可以來, 亦效之.” 彭越曰: “兩龍方鬪, 且待之.” 居歲餘, 澤閒少年相聚百餘人, 往從彭越, 曰: “請仲爲長.” 越謝曰: “臣不願與諸君.” 少年彊請, 乃許. 與期旦日日出會, 後期者斬. 旦日日出, 十餘人後, 後者至日中. 於是越謝曰: “臣老, 諸君彊以爲長. 今期而多後, 不可盡誅, 誅最後者一人.” 令校長斬之. 皆笑曰: “何至是? 請後不敢.” 於是越乃引一人斬之, 設壇祭, 乃令徒屬. 徒屬皆大驚, 畏越, 莫敢仰視. 乃行略地, 收諸侯散卒, 得千餘人.

3. 팽월은(彭越者), 창읍 사람으로(昌邑人也), 자가 중이다(字仲). 늘(常) 거야택에서(钜野澤中) 고기 잡고(漁), 무리 지어 도둑질했다(爲群盜).

진승과 항량이(陳勝項梁之) 반란을 일으키자(起), 젊은이 가운데 누군가(少年或) 팽월에게 말하길(謂越曰): “여러 호걸이(諸豪桀) 서로 일어서서(相立) 진나라를 배반하니(畔秦), 당신도(仲) 가서(來), 또한(亦) 그들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可以效之).”라고 했다.

팽월이 말하길(彭越曰): “두 용이(兩龍) 막 싸우려고 하면(方鬪), 잠시(且) 그것을 기다려야 한다(待之).”라고 했다.

1년 여가 지나서(居歲餘), 거야택 가운데(澤閒) 젊은이가(少年) 서로(相) 백여 명을 모아(聚百餘人), 가서(往) 팽월을 쫓으며 말하길(從彭越, 曰): “청컨대(請) 그대가(仲) 우두머리가 되어 주십시오(爲長).”라고 했다.

팽월이 말하길(越謝曰): “나는(臣) 여러분과 함께하길(與諸君) 원하지 않는다(不願).”라고 했다.

젊은이들이(少年) 강하게 요청하자(彊請), 이에 허락했다(乃許). 더불어(與) 다음날(旦日) 해가 뜰 때 만날 것을(日出會) 약속하고(期), 기한에 늦은 사람은(後期者) 목을 베기로 했다(斬). 다음날 아침(旦日) 해가 뜨고(日出), 십여 명이(十餘人) 늦었는데(後), 늦은 사람이(後者) 한낮에 이르렀다(至日中).

이에(於是) 팽월이 말하길(越謝曰): “내가 늙었는데(臣老), 여러분이(諸君) 강하게(彊以) 우두머리가 되도록 했고(爲長). 지금(今) 기한을 정했는데(期而) 늦은 사람이 많으니(多後), 다 죽일 수 없고(不可盡誅), 가장 늦은 사람 한 명을 죽이겠다(誅最後者一人).”라고 했다. 교장을 시켜(令校長) 베도록 했다(斬之).

모두(皆) 웃으며 말하길(笑曰): “어찌(何) 이런 지경에 이르십니까(至是)? 청컨대(請) 나중에는(後) 감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不敢).”라고 했다.

이에(於是) 팽월은(越乃) 한 사람을 끌어내(引一人) 베고는(斬之), 단을 설치해서(設壇) 제사 지내고(祭), 곧(乃) 무리에게 명령을 내렸다(令徒屬). 무리가(徒屬) 모두(皆) 크게 놀라고(大驚), 팽월을 두려워해서(畏越), 누구도(莫) 감히(敢) 올려보는 사람이 없었다(仰視). 이에(乃) 나가서(行) 땅을 공략하고(略地), 제후의 흩어진 병졸을 모아서(收諸侯散卒), 천여 명을 얻었다(得千餘人).

 

* 徒屬(도속): 뜻을 같이하여 일을 함께 하는 무리.


4. 沛公之從碭北擊昌邑, 彭越助之. 昌邑未下, 沛公引兵西. 彭越亦將其衆居钜野中, 收魏散卒. 項籍入關, 王諸侯, 還歸, 彭越衆萬餘人毋所屬. 漢元年秋, 齊王田榮畔項王, (漢乃使人賜彭越將軍印, 使下濟陰以擊楚. 楚命蕭公角將兵擊越, 越大破楚軍. 漢王二年春, 與魏王豹及諸侯東擊楚, 彭越將其兵三萬餘人歸漢於外黃. 漢王曰: “彭將軍收魏地得十餘城, 欲急立魏後. 今西魏王豹亦魏王咎從弟也, 眞魏後.” 乃拜彭越爲魏相國, 擅將其兵, 略定梁地. 漢王之敗彭城解而西也, 彭越皆複亡其所下城, 獨將其兵北居河上. 漢王三年, 彭越常往來爲漢遊兵, 擊楚, 絶其後糧於梁地. 漢四年冬, 項王與漢王相距滎陽, 彭越攻下睢陽ㆍ外黃十七城.

4. 패공이(沛公之) 탕의 북쪽을 따라(從碭北) 창읍을 공격했는데(擊昌邑), 팽월이(彭越) 그것을 도왔다(助之). 창읍이(昌邑) 함락되지 않았는데(未下), 패공이(沛公) 병사를 이끌고(引兵) 서쪽으로 갔다(西). 팽월도(彭越) 도한(亦) 그 무리를 이끌고(將其衆) 거야에 머물면서(居钜野中), 위나라의 흩어진 병사를 거두었다(收魏散卒). 항적이(項籍) 함곡관에 들어가서(入關), 제후들을 왕으로 삼았고(王諸侯), <제후들이> 돌아갔는데(還歸), 팽월의 무리가(彭越衆) 만여 명인데(萬餘人) 속할 곳이 없었다(毋所屬). 

한나라 원년 가을에(漢元年秋), 제왕 전영이(齊王田榮) 항우를 배반했고(畔項王), 한나라가(漢) 이에(乃) 사람을 보내(使人) 팽월에게 장군 인수를 주며(賜彭越將軍印), 제음에서 내려가(下濟陰以)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使 擊楚). 초나라가(楚) 숙공각에게 명해서(命蕭公角) 군사를 이끌고(將兵) 팽월을 공격하도록 했지만(擊越), 팽월이(越) 초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다(大破楚軍). 한왕 2년 봄에(漢王二年春), 위왕 표와 제후와 함께(與魏王豹及諸侯) 동쪽으로(東) 초나라를 공격하니(擊楚), 팽월이(彭越) 그 병사 삼천을 이끌고(將其兵三萬餘人) 외황에서(於外黃) 한나라로 돌아왔다(歸漢).

한왕이 말하길(漢王曰): “팽장군이(彭將軍) 위나라 땅을 거두어(魏地) 십여 개 성을 얻었으니(得十餘城), 급히 위나라의 후사를 세우려고 한다(欲急立魏後). 지금(今) 서위왕 위표도(西魏王豹) 또한(亦) 위왕 구의(魏王咎) 아우이니(從弟也), 틀림없이(眞) 위나라의 후손이다(魏後).” 라고 했다.

이에(乃) 팽월에게 벼슬을 주어(拜彭越) 위나라 상국으로 삼고(爲魏相國), 오로지(擅) 그 군사를 이끌고(將其兵), 양나라 땅을 공략해서 평정하도록 했다(略定梁地). 한왕이(漢王之) 팽성에서 패하고(敗彭城) 흩어져(解而) 서쪽으로 가니(西也), 팽월은(彭越) 그 함락시켰던 성을(其所下城) 모두(皆) 다시 잃고(複亡), 홀로(獨) 병사를 이끌고(將其兵) 북쪽으로 가서(北) 하수가에 머물렀다(居河上). 

한왕 3년에(漢王三年), 팽월이(彭越) 늘(常) 왕래하며(往來) 한나라의 유격병이 되어(爲漢遊兵), 초나라를 공격하고(擊楚), 양나라에서(於梁地) 그 후방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絶其後糧).

한나라 4년 겨울에(漢四年冬), 항왕과 한왕이(項王與漢王) 영양에서(滎陽) 서로 대치했는데(相距), 팽월이(彭越) 수양과 외항의 17개 성을(睢陽外黃十七城) 공격해서 함락시켰다(攻下).


5. 項王聞之, 乃使曹咎守成皐, 自東收彭越所下城邑, 皆複爲楚. 越將其兵北走谷城. 漢五年秋, 項王之南走陽夏, 彭越複下昌邑旁二十餘城, 得穀十餘萬斛, 以給漢王食. 漢王敗, 使使召彭越竝力擊楚. 越曰: “魏地初定, 尙畏楚, 未可去.” 漢王追楚, 爲項籍所敗固陵. 乃謂留侯曰: “諸侯兵不從, 爲之奈何?” 留侯曰: “齊王信之立, 非君王之意, 信亦不自堅. 彭越本定梁地, 功多, 始君王以魏豹故, 拜彭越爲魏相國. 今豹死毋後, 且越亦欲王, 而君王不蚤定. 與此兩國約: 卽勝楚, 睢陽以北至谷城, 皆以王彭相國: 從陳以東傅海, 與齊王信. 齊王信家在楚, 此其意欲複得故邑. 君王能出捐此地許二人, 二人今可致: 卽不能, 事未可知也.”

5. 항왕이(項王) 그것을 듣고(聞之), 이에(乃) 조구를 시켜(使曹咎) 성고를 지키도록 하고(守成皐), 직접 동으로 와서(自東) 팽월이 항복시켰던 성읍을(彭越所下城邑) 거두어(收), 모두(皆) 다시(複) 초나라 것으로 만들었다(爲楚). 팽월은(越) 그 병사를 이끌고(將其兵) 북쪽(北) 곡성으로 달아났다(走谷城).

한왕 5년 가을에(漢五年秋), 항왕이(項王之) 남으로(南) 양하로 도망갔는데(走陽夏), 팽월이(彭越) 다시(複) 창읍 주변 20개 성을 함락시키고(下昌邑旁二十餘城), 곡식(穀) 십만여 곡을 얻어서(十餘萬斛, 以) 한왕의 식량을 대주었다(給漢王食). 한왕이 패하자(漢王敗), 사자를 보내(使使) 팽월을 불러서(召彭越) 함께 힘을 합쳐서(竝力) 초나라를 공격했다(擊楚).

팽월이 말하길(越曰): “위나라가(魏地) 처음 안정되었고(初定), 아직(尙) 초나라를 두려워하므로(畏楚), 떠날 수 없습니다(未可去).”라고 했다. 한왕은(漢王) 초나라를 추격하다가(追楚), 항적에게 고릉에서 패배를 당했다(爲項籍所敗固陵).

이에(乃) 유후에게 말하길(謂留侯曰): “제후의 병사가(諸侯兵) 따르지 않으니(不從), 그것을 위해(爲之) 어찌해야 하는가(奈何)?”라고 했다.

유후가 말하길(留侯曰): “제왕(齊王) 한신이(信之) 즉위한 것은(立), 군왕의 뜻이 아니고(非君王之意), 한신도(信) 또한(亦) 스스로 견고하지 못합니다(不自堅). 팽월은(彭越) 본래(本) 양나라를 안정시켰으니(定梁地), 공이 많은데(功多), 애초에(始) 군왕께서(君王) 위표 때문에(以魏豹故), 팽월을 임명해서(拜彭越) 위나라 상국을 삼았습니다(爲魏相國). 지금(今) 위표가 죽고(豹死) 후사가 없고(毋後), 또한(且) 팽월도 또한(越亦) 왕이 되려고 하는데(欲王, 而) 군왕께서(君王) 일찍 정하지 않았습니다(不蚤定). 이 두 나라와(與此兩國) 약속한다면(約): 바로(卽) 초나라를 이길 수 있으니(勝楚), 수양부터(睢陽以) 북으로(北) 곡성에 이르기까지(至谷城), 모두(皆) 팽월 상국을 왕으로 삼고(以王彭相國): 진나라부터(從陳) 동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以東傅海), 제왕 한신에게 주어야 합니다(與齊王信). 제왕 한신의 집이(齊王信家) 초나라에 있으므로(在楚), 이것은(此) 그 뜻이(其意) 옛 고향을(故邑) 다시 얻으려는 것입니다(欲複得). 군왕께서(君王) 이 두 땅을 내어(能出捐此地) 두 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許二人), 두 사람을(二人) 지금(今) 오게 할 수 있고(可致): 곧 할 수 없다면(卽不能), 일을(事) 알 수 없습니다(未可知也).”라고 했다.


6. 於是漢王乃發使使彭越, 如留侯策. 使者至, 彭越乃悉引兵會垓下, 遂破楚. (五年項籍已死. 春, 立彭越爲梁王, 都定陶. 六年, 朝陳. 九年, 十年, 皆來朝長安. 十年秋, 陳豨反代地, 高帝自往擊, 至邯鄲, 徴兵梁王. 梁王稱病, 使將將兵詣邯鄲. 高帝怒, 使人讓梁王. 梁王恐, 欲自往謝. 其將扈輒曰: “王始不往, 見讓而往, 往則爲禽矣. 不如遂發兵反.” 梁王不聽, 稱病. 梁王怒其太僕, 欲斬之. 太僕亡走漢, 告梁王與扈輒謀反. 於是上使使掩梁王, 梁王不覺, 捕梁王, 囚之雒陽. 有司治反形己具, 請論如法. 上赦以爲庶人, 傳處蜀靑衣. 西至鄭, 逢呂後從長安來, 欲之雒陽, 道見彭王. 彭王爲呂後泣涕, 自言無罪, 願處故昌邑. 呂後許諾, 與俱東至雒陽. 呂後白上曰: “彭王壯士, 今徙之蜀, 此自遺患, 不如遂誅之. 妾謹與俱來.” 於是呂後乃令其舍人彭越複謀反. 廷尉王恬開奏請族之. 上乃可, 遂夷越宗族, 國除.

6. 이에(於是) 한왕은(漢王乃)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서(發使使彭越), 유후의 계책처럼 했다(如留侯策). 사자가 이르자(使者至), 팽월이(彭越) 곧(乃) 모든 병사를 이끌고(悉引兵) 해하에 모여(會垓下), 마침내(遂) 초나라를 격파했다(破楚).

5년에(五年) 항적이 이미 죽었다(項籍已死). 봄에(春), 팽월을 세워(立彭越) 양왕으로 삼고(爲梁王), 정도에 도읍했다(都定陶). 6년에(六年), 진에서 조회했다(朝陳). 9년과 10년에(九年, 十年), 모두(皆) 와서(來) 장안에서 조회했다(朝長安). 10년 가을에(十年秋), 진희가(陳豨) 대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反代地), 고제가(高帝) 직접 가서(自往) 공격하고(擊), 한단에 이르러(至邯鄲), 양왕에게서(梁王) 병사를 징발했다(徴兵). 양왕이(梁王) 병을 핑계대고(稱病), 장수를 시켜(使將) 군사를 이끌고(將兵) 한단에 이르게 했다(詣邯鄲). 고제가 노하여(高帝怒), 사람을 시켜(使人) 양왕을 꾸짖었다(讓梁王). 양왕이 두려워하며(梁王恐), 직접 가서 사죄하려고 했다(欲自往謝).

그 장수(其將) 호첩이 말하길(扈輒曰): “왕께서(王) 애초(始) 가지 않았는데(不往), 꾸짖음을 당하고(見讓而) 가니(往), 간다면(往則) 사로잡힐 것입니다(爲禽矣). 두루 병사를 모아(遂發兵) 반란하는 것만(反) 못합니다(不如).”라고 했다.

양왕이(梁王) 들어주지 않고(不聽), 병을 핑계 삼았다(稱病). 양왕이(梁王) 그 태복에게 노하여(怒其太僕), 그를 베려고 했다(欲斬之). 태복이(太僕) 한나라에 도망가서(亡走漢), 양왕과 호첩이(梁王與扈輒) 모반하려는 것을(謀反) 알렸다(告).

이에(於是) 황제가(上) 사자를 보내(使使) 양왕을 엄습하도록 했는데(掩梁王), 양왕이 깨닫지 못했고(梁王不覺), 양왕을 사로잡아(捕梁王), 낙양에 가두었다(囚之雒陽). 유사가(有司) 반란의 형세가 갖추어진 것을(反形己具) 조사하고(治), 법대로 논할 것을 요청했다(請論如法). 황제가(上) 사면하고(赦) 서인으로 삼아서(以爲庶人), 역마에 태워(傳) 촉 청의에 머물도록 했다(處蜀靑衣).

서쪽으로(西) 정에 이르러(至鄭), 여후가(呂後) 장안을 따라(從長安) 가는 것을(來) 만났는데(逢), 낙양에 가려다가(欲之雒陽), 길에서(道) 팽왕을 만났다(見彭王). 팽왕이(彭王) 여후에게(爲呂後) 눈물을 흘리며(泣涕), 자신에게(自) 죄가 없음을 말하고(言無罪), 고향인 창읍에 머물기를 원했다(願處故昌邑). 여후가 허락하고(呂後許諾), 함께(與俱) 동으로 와서(東) 낙양에 이르렀다(至雒陽).

여후가(呂後) 황제에게 말하길(白上曰): “팽왕은(彭王) 장사인데(壯士), 지금(今) 옮겨서(徙) 촉으로 가는 것은(之蜀), 이것은(此) 스스로(自) 걱정거리를 남기는 것이니(遺患), 마침내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不如遂誅之). 제가(妾) 삼가(謹) 함께 왔습니다(與俱來).”라고 했다.

이에(於是) 여후가(呂後) 곧(乃) 그 사인을 시켜서(令其舍人) 팽월이(彭越) 다시 반란을 모의한다고 했다(複謀反). 정위(廷尉) 왕염개가(王恬開) 종족을 죽일 것을 주청했다(奏請族之). 황제가 허락하니(上乃可), 마침내(遂) 팽월의 종족을 죽이고(夷越宗族), 나라가 없어졌다(國除).

 

* 反形已具(반형이구) : 모반의 증거를 구비함.

* 奏請(주청): 임금께 상주()하여 청()함.


7. 太史公曰: 魏豹ㆍ彭越雖故賤, 然已席卷千里, 南面稱孤, 喋血乘勝日有聞矣. 懷畔逆之意, 及敗, 不死而虜囚, 身被刑戮, 何哉? 中材已上且羞其行, 況王者乎! 彼無異故, 智略絶人, 獨患無身耳. 得攝尺寸之柄, 其雲蒸龍變, 欲有所會其度, 以故幽囚而不辭云.

7.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위표와 팽월은(魏豹彭越) 비록(雖) 본래(故) 천한 사람이었지만(賤), 그러나(然已) 천 리를 석권하고(席卷千里), 남면하여(南面) 고를 칭하고(稱孤), 피를 밟고(喋血) 승세를 타서(乘勝) 나날이(日) 명성이 있었다(有聞矣). 반역할 뜻을 품었다가(懷畔逆之意), 실패함에 이르러(及敗), 죽지 않고(不死而) 포로로 갇혔다가(虜囚), 몸이(身) 형벌로 죽임을 당했으니(被刑戮), 어째서인가(何哉)? 중간의 재능 이상인 사람이라면(中材已上) 또한(且) 이런 행실을 부끄러워하는데(羞其行), 하물며(況) 왕 노릇하던 사람은 어떻겠는가(王者乎)! 저들에게(彼) 다른 까닭이 없고(無異故), 지략이(智略) 남보다 뛰어났지만(絶人), 오직(獨) 몸이 없어지는 것남을(無身) 걱정했을 뿐이다(耳). 조그마한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得攝尺寸之柄), 그(其) 물이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 되는 변화 속에서(雲蒸龍變), 그 헤아림을 잘할 수 있으려 했고(欲有所會其度, 以) 그러므로(故) 감금되는 것이라도(幽囚而) 사양하지 않은 것이다(不辭云).

 

* 尺寸(척촌): ‘한 자 한 치’라는 뜻으로,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마한 것을 이르는 말.

* 雲蒸龍變(운증용변): ‘물이 증발(蒸發ㆍ烝發)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변(變)하여 용(龍)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영웅호걸(英雄豪傑)이 기회(機會)를 얻어 일어남을 이르는 말.

* 幽囚(유수): 잡아 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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