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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91 경포열전(鯨布列傳)] 투모생환(妒媢生患) - 질투가 재앙을 만들어 나라를 망쳤다

by प्रज्ञा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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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黥布者, 六人也, 姓英氏. 秦時爲布衣. 少年, 有客相之曰: “當刑而王.” 及壯, 坐法黥. 布欣然笑曰: “人相我當刑而王, 幾是乎?” 人有聞者, 共俳笑之. 布已論輸麗山, 麗山之徒數十萬人, 布皆與其徒長豪桀交通, 迺率其曹偶, 亡之江中爲群盜. 陳勝之起也, 布迺見番君, 與其衆叛秦, 聚兵數千人. 番君以其女妻之. 章邯之滅陳勝, 破呂臣軍, 布乃引兵北擊秦左右校, 破之淸波, 引兵而東. 聞項梁定江東會稽, 涉江而西. 陳嬰以項氏世爲楚將, 迺以兵屬項梁, 渡淮南, 英布ㆍ蒲將軍亦以兵屬項梁. 項梁涉淮而西, 擊景駒ㆍ秦嘉等, 布常冠軍. 項梁至薛, 聞陳王定死, 迺立楚懷王. 項梁號爲武信君, 英布爲當陽君. 項梁敗死定陶, 懷王徙都彭城, 諸將英布亦皆保聚彭城.
1. 경표는(黥布者), 육 사람이고(六人也), 성은 영씨다(姓英氏). 진나라 때(秦時) 평민이었다(爲布衣). 어렸을 때(少年), 객이 있어(有客) 그를 관상을 보고 말하길(相之曰): “마땅히(當) 벌을 받고(刑而) 왕이 될 것이다(王).”라고 했따. 장성해서(及壯), 법에 저촉되어 묵형을 받았다(坐法黥). 경포가(布) 기뻐하고 웃으며 말하길(欣然笑曰): “누군가(人) 내 관상을 보고(相我) 벌을 받고(當刑而) 왕이 된다고 했으니(王), 이것에 가깝지 않은가(幾是乎)?”라고 했다.

사람들 가운데(人) 들은 사람은(有聞者), 모두(共) 그를 비웃었다(俳笑之). 영포가(布) 판결을 받고(已論) 여산으로 보내졌는데(輸麗山), 여산의 무리가(麗山之徒) 수십 만이었고(數十萬人), 경포가(布) 모두(皆) 그 무리의 그 우두머리와 호걸과(與其徒長豪桀) 사귀고(交通), 이에(迺) 그 또래를 이끌고(率其曹偶), 도망가서(亡之) 강 가운데서(江中) 도적이 되었다(爲群盜).

진승이(陳勝之) 반란을 일으키자(起也), 경포가(布) 이에(迺) 심군을 만나서(見番君), 그 무리와 더불어(與其衆) 진나라를 배반하고(叛秦), 군사를 모은 것이(聚兵) 수천 명이었다(數千人). 심군이(番君) 그 딸을(以其女) 그에게 시집보냈다(妻之). 장한이(章邯之) 진승을 멸망시키고(滅陳勝), 여신의 군대를 격파하자(破呂臣軍), 경포가(布) 이에(乃) 병사를 이끌고(引兵) 북쪽으로(北) 진나라 좌우 교위를 공격해서(擊秦左右校), 청파에서 격파하고(破之淸波), 병사를 이끌고(引兵而) 동으로 갔다(東). 항량이(項梁) 강동의 회계를 평정하고(定江東會稽), 강을 건너(涉江而) 서쪽으로 온다는 것을(西) 들었다(聞). 진영이(陳嬰) 항씨가(以項氏) 대대로(世) 초나라 장군인 것을 알아(爲楚將), 이에(迺) 병사를(以兵) 항량에게 속하게 하고(屬項梁), 강을 건너(渡) 회남으로 가며(淮南), 영포와 포장군도(英布蒲將軍) 또한(亦) 병사를(以兵) 항량에게 귀속시켰다(屬項梁).

항량이(項梁) 회하를 건너(涉淮而) 서쪽으로 가서(西), 경구와 진가 등을 공격했고(擊景駒秦嘉等), 경포가(布) 늘(常) 선봉이 되었다(冠軍). 항량이(項梁) 설에 이르러(至薛), 진왕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듣고(聞陳王定死), 이에(迺) 초회왕을 세웠다(立楚懷王). 항량이(項梁) 호를(號) 무신군으로 삼고(爲武信君), 영포가(英布) 당양군이 되었다(爲當陽君). 항량이(項梁) 정도에서 패하여 죽자(敗死定陶), 패왕이(懷王) 팽성으로(彭城) 도읍을 옮겼고(徙都), 여러 장수와 영포도(諸將英布) 또한(亦) 모두(皆) 팽성을 보호하려 모였다(保聚彭城).

 

* 布衣(포의): 평민인 백성.

* 坐法(좌법): 법을 어겨 죄를 받다, 죄에 의하여 처벌을 받다.

* 黥(경) : 묵형(墨刑), 이마에 죄인이라는 표시를 먹실로 새기는 고대 형벌.

* 欣然(흔연): 기뻐하는 모양.

* 曹偶(조우): 동배. 같은 또래의 벗. 曹는 무리, 偶는 같은 부류.

* 定死(정사): 확실히 죽다.

 

2. 當是時, 秦急圍趙, 趙數使人請救. 懷王使宋義爲上將, 範曾爲末將, 項籍爲次將, 英在ㆍ蒲將軍皆爲將軍, 悉屬宋義, 北救趙. 及項籍殺宋義於河上, 懷王因立籍爲上將軍, 諸將皆屬項籍. 項籍使布先渡河擊秦, 布數有利, 籍迺悉引兵涉河從之, 遂破秦軍, 降章邯等. 楚兵常勝, 功冠諸侯. 諸侯兵皆以服屬楚者, 以布數以少敗衆也. 項籍之引兵西至新安, 又使布等夜擊阬章邯秦卒二十餘萬人. 至關, 不得入, 又使布等先從閒道破關下軍, 遂得入, 至鹹陽. 布常爲軍鋒. 項王封諸將, 立布爲九江王, 都六.

2. 당시(當是時), 진나라가(秦) 조나라를 긴급하게 포위하고(急圍趙), 조나라가(趙) 여러 차례(數) 사람을 보내(使人) 구원을 요청했다(請救). 회왕이(懷王) 송의를 시켜(使宋義) 상장으로 삼고(爲上將), 범증을(範曾) 말장으로 삼고(爲末將), 항적이(項籍) 차장이 되었고(爲次將), 영재와 포장군이(英在蒲將軍) 모두(皆) 장군이 되어(爲將軍), 모두(悉) 송의에게 속하게 하고(屬宋義), 북쪽으로 가서(北)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救趙). 항적이(及項籍) 강가에서(於河上) 송의를 죽이자(殺宋義), 회왕이(懷王) 이에(因) 항적을 세워(立籍) 상장군으로 삼고(爲上將軍), 여러 장수가(諸將) 모두(皆) 항적에게 속하게 되었다(屬項籍).

항적이(項籍) 영포로 하여금(使布) 먼저 강을 건너(先渡河) 진나라를 공격하게 했는데(擊秦), 영포가(布) 자주(數) 유리해지가(有利), 항적이(籍) 이에(迺) 병사를 모두 이끌고(悉引兵) 강을 건너(涉河) 그를 따르게 하고는(從之), 마침내(遂)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破秦軍), 장한 등을 항복시켰다(降章邯等). 초 나라가 군사가(楚兵) 늘 이겼고(常勝), 공적은(功) 제후 가운데 으뜸이었다(冠諸侯). 제후의 군사가(諸侯兵) 모두(皆) 초나라에 복속한 것은(服屬楚者), 영포가(布) 여러 번(數) 적은 군사로(以少) 많은 수를 무찔렀기(敗衆) 때문이다(也).

항적이(項籍之) 병사를 이끌고(引兵) 서쪽으로(西) 신안에 이르러서(至新安), 또(又) 영포 등을 시켜(使布等) 밤에(夜) 장한의 진나라 군사 20여 만 명을(章邯秦卒二十餘萬人) 공격해서 생매장했다(擊阬). 함곡관에 이르러(至關), 들어가지 못하자(不得入), 또(又) 영포 등으로 하여금(使布等) 먼저(先) 샛길을 따라(從閒道) 함곡관 아래 군사를 깨 드리게 하고(破關下軍), 마침내 들어가서(遂得入), 함양에 이르렀다(至鹹陽). 영포는(布) 늘(常) 군의 선봉이 되었다(爲軍鋒). 항왕이(項王) 여러 장수를 봉하고(封諸將), 영포를 세워(立布) 구강왕으로 삼았고(爲九江王), 육에 도읍했다(都六).

 

3. 漢元年四月, 諸侯皆罷戲下, 各就國. 項氏立懷王爲義帝, 徙都長沙, 迺陰令九江王布等行擊之. 其八月, 布使將擊義帝, 追殺之郴縣. 漢二年, 齊王田榮畔楚, 項王往擊齊, 徴兵九江, 九江王布稱病不往, 遣將將數千人行. 漢之敗楚彭城, 布又稱病不佐楚. 項王由此怨布, 數使使者誚讓召布, 布愈恐, 不敢往. 項王方北憂齊ㆍ趙, 西患漢, 所與者獨九江王, 又多布材, 欲親用之, 以故未擊.

3. 한나라 원년 4월에(漢元年四月), 제후가(諸侯) 모두(皆) 휘하에서 떠나(罷戲下), 각자(各) 나라로 향했다(就國). 항씨가(項氏) 회왕을 세워(立懷王) 의제로 삼고(爲義帝), 장사로 도읍을 옮겼고(徙都長沙), 이에(迺) 은밀하게(陰) 구강왕 영포 등에게 명하여(令九江王布等) 가는 길에 습격하도록 했다(行擊之). 그해 8월에(其八月), 영포가(布) 장수를 시켜(使將) 의제를 습격하고(擊義帝), 추격하여(追) 침현에서 죽였다(殺之郴縣).

한나라 2년에(漢二年), 제왕 전영이(齊王田榮) 초나라를 배반하자(畔楚), 항왕이(項王) 가서(往) 제나라를 공격하며(擊齊), 구강에서(九江) 병사를 징발했는데(徴兵), 구강왕 영포가(九江王布) 병을 핑계로(稱病) 가지 않고(不往), 장수를 보내(遣將) 수 천의 군사를 이끌게 했다(將數千人行). 한나라가(漢之) 팽성에서 초나라에 패했지만(敗楚彭城), 영포는(布) 또한(又) 병을 핑계로(稱病) 초나라를 돕지 않았다(不佐楚). 항왕이(項王) 이것 때문에(由此) 영포에게 원한을 품었고(怨布), 여러 번(數) 사자를 보내(使使者) 꾸짖으며(誚讓) 영포를 불렀는데(召布), 영포가(布) 더욱 두려워하며(愈恐), 감히 가지 못했다(不敢往). 항왕이(項王) 바야흐로(方) 북쪽으로(北) 제나라와 조나라를 걱정하고(憂齊趙), 서쪽으로(西) 한나라가 걱정거리가 되었고(患漢), 함께 하는 사람은(所與者) 오직(獨) 구강왕이고(九江王), 또(又) 영포의 재능이 많았으므로(多布材), 가까이서 그를 쓰려고 했고(欲親用之, 以) 그러므로(故) 공격하지 않았다(未擊).

 

* 戲下(휘하): 장군의 지휘 아래, 戲는 麾와 같으며 대장기를 말한다.

* 誚讓(초양): 견책하다. 잘못을 꾸짖고 나무람.

 

4. 漢三年, 漢王擊楚, 大戰彭城, 不利, 出梁地, 至虞, 謂左右曰: “如彼等者, 無足與計天下事.” 謁者隨何進曰: “不審陛下所謂.” 漢王曰: “孰能爲我使淮南, 令之發兵倍楚, 留項王於齊數月, 我之取天下可以百全.” 隨何曰: “臣請使之.”

迺與二十人俱, 使淮南. 至, 因太宰主之, 三日不得見. 隨何因說太宰曰: “王之不見何, 必以楚爲彊, 以漢爲弱, 此臣之所以爲使. 使何得見, 言之而是邪, 是大王所欲聞也: 言之而非邪, 使何等二十人伏斧質淮南市, 以明王倍漢而與楚也.” 太宰迺言之王, 王見之. 隨何曰: “漢王使臣敬進書大王禦者, 竊怪大王與楚何親也.” 淮南王曰: “寡人北鄕而臣事之.”

4. 한날 3년에(漢三年), 한왕이(漢王) 초를 공격해서(擊楚), 팽성에서 크게 싸웠는데(大戰彭城), 불리하자(不利), 양나라로 나가서(出梁地), 우에 이르러(至虞), 좌우에 말하길(謂左右曰): “너희들과 같은 사람은(如彼等者), 천하의 일을(計天下事) 함께 도모하기에 충분하지 않구나(無足與).”라고 했다.

알자(謁者) 수하가 나서며 말하길(隨何進曰): “폐하가 말한 것을(陛下所謂) 알지 못하겠습니다(不審).”라고 했다.

한왕이 말하길(漢王曰): “누가(孰) 나를 위해(能爲我) 회남에 사자로 가서(使淮南), 그로 하여금(令之) 군사를 일으켜(發兵) 초나라를 배반하게 하고(倍楚), 초왕을(項王) 제나라에(於齊) 몇 달이라도(數月) 머물게 한다면(留), 내가(我之) 천하를 얻는 것이(取天下) 모두 완전할 것이다(可以百全).”라고 했다.

수하가 말하길(隨何曰): “제가(臣) 사신으로 가기를 청합니다(請使之).”라고 했다.

이에(迺) 20여 명을 갖추어서(與二十人俱), 회남에 사신으로 갔다(使淮南). 이르러서(至), 이에(因) 태재의 집에 머물렀는데(太宰主之), 3일 동안(三日) 만나지 못했다(不得見). 수하가(隨何) 이에(因) 태재를 설득하여 말하길(說太宰曰): “왕이(王之) 저를 만나지 않는 것은(不見何), 반드시(必) 초나라가 강하고(以楚爲彊), 한나라가 약하니(以漢爲弱), 이것이(此) 신이(臣之) 사자로 온 까닭입니다(所以爲使). 제가(使何) 뵙고서(得見), 말한 것이 옳다면(言之而是邪), 그것은(是) 대왕이(大王) 듣고 싶던 것이고(所欲聞也): 말한 것이 옳지 않다면(言之而非邪), 저와 20 명은(使何等二十人) 회남 시장에서(淮南市) 머리를 숙이고(伏) 부질형으로 목을 잘라(斧質, 以) 왕께서(王) 한나라를 등지고(倍漢而) 초나라와 함께하는 것임을(與楚) 밝히면 됩니다(也).”라고 했다.

태재가(太宰) 이에(迺) 왕에게 말했고(言之王), 왕이 만났다(王見之).

수하가 말하길(隨何曰): “한왕이(漢王) 저를 시켜(使臣) 대왕의 시종에게(大王禦者) 공경하게 편지를 보냈는데(敬進書), 삼가(竊) 대왕과 초나라가(大王與楚) 어떤 친분이 있는지(何親) 궁금합니다(也).”라고 했다.

회남왕이 말하길(淮南王曰): “나는(寡人) 북향하고(北鄕而) 신하로 섬기는 사람이다(臣事之).”라고 했다.

 

* 不審(불심): 아는 것이 자세(仔細)하지 아니하거나 의심스러움.

* 斧質(부질): 형구(刑具). 부월(斧鉞)의 형과 심질(椹質)의 형을 말한다. 도끼로 목을 베고 참수하는 형을 말한다.

* 御者(어자): 왕의 시종. 존경의 의미로 직접 전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5. 隨何曰: “大王與項王俱列爲諸侯, 北鄕而臣事之, 必以楚爲彊, 可以託國也. 項王伐齊, 身負板築, 以爲士卒先, 大王宜悉淮南之衆, 身自將之, 爲楚軍前鋒, 今迺發四千人以助楚. 夫北面而臣事人者, 固若是乎? 夫漢王戰於彭城, 項王未出齊也, 大王宜騒淮南之兵渡淮, 日夜會戰彭城下, 大王撫萬人之衆, 無一人渡淮者, 垂拱而觀其孰勝. 夫託國於人者, 固若是乎? 大王提空名以鄕楚, 而欲厚自託, 臣竊爲大王不取也. 然而大王不背楚者, 以漢爲弱也. 夫楚兵雖彊, 天下負之以不義之名, 以其背盟約而殺義帝也. 然而楚王恃戰勝自彊, 漢王收諸侯, 還守成皐ㆍ滎陽, 下蜀ㆍ漢之粟, 深溝壁壘, 分卒守徼乘塞, 楚人還兵, 閒以梁地, 深入敵國八九百里, 欲戰則不得, 攻城則力不能, 老弱転糧千里之外: 楚兵至滎陽ㆍ成皐, 漢堅守而不動, 進則不得攻, 退則不得解. 故曰楚兵不足恃也. 使楚勝漢, 則諸侯自危懼而相救. 夫楚之彊, 適足以致天下之兵耳. 故楚不如漢, 其勢易見也.

5. 수하가 말하길(隨何曰): “대왕과 항우가(大王與項王) 함께 늘어서(俱列) 제후가 되었는데(爲諸侯), 북향하고(北鄕而) 신하로 그를 섬긴다면(臣事之), 반드시(必) 초나라를(以楚) 강하게 여기고(爲彊), 나라를 맡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可以託國也). 항왕이(項王) 제나라를 정벌하면서(伐齊), 몸소(身) 판자와 공이를 지고(負板築), 사졸의 선봉이 되었으니(以爲士卒先), 대왕은(大王) 마땅히(宜) 회남의 병사를 모아(悉淮南之衆), 몸소(身自) 그들을 이끌고(將之), 초나라 군대의 선봉이 되었어야 하는데(爲楚軍前鋒), 지금 이제(今迺) 4천 명을 모아(發四千人以) 초나라를 도왔습니다(助楚). 무릇(夫) 북면하고(北面而) 신하로 남을 섬기는 사람이(臣事人者), 진실로(固)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若是乎)? 무릇(夫) 한왕이(漢王) 팽성에서 싸울 때(戰於彭城), 항왕이(項王) 제나라를 나오지 않았을 때(未出齊也), 대왕은(大王) 마땅히(宜) 회남의 병사를 모아(騒淮南之兵) 회수를 건너(渡淮), 밤낮으로 가서(日夜) 팽성 아래서 싸워야 했지만(會戰彭城下), 대왕은(大王) 만 명의 무리를 어루만지며(撫萬人之衆), 한 명도(一人) 회수를 건넌 사람이 없이(渡淮者), 팔짱을 끼고(垂拱而) 누가 이기는지를 살피기만 했습니다(觀其孰勝). 무릇(夫) 남에게(於人) 나라를 맡긴 사람이(託國者), 참으로(固)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若是乎)?

대왕은(大王) 헛된 이름을 가지고(提空名以) 초나라를 향해(鄕楚, 而) 너무 자신을 맡기려고 하는데(欲厚自託), 제가(臣) 생각해 보면(竊) 대왕이 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爲大王不取也). 그렇지만(然而) 대왕이(大王) 초나라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不背楚者), 한나라가 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以漢爲弱也). 무릇(夫) 초나라 군대가(楚兵) 비록 강하지만(雖彊), 천하에서(天下) 그에게(之) 불의하다는 명성을(以不義之名) 붙이고 있으니(負), 그 <함곡관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맹약을 배반하고(其背盟約而) 의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殺義帝也).

그러나(然而) 초왕은(楚王) 싸움에서 이기고(戰勝) 스스로 강하다고(自彊) 자부하고 있지만(恃), 한왕은(漢王) 제후를 거두어(收諸侯), 돌아와(還) 성고와 영양을 지키며(守成皐滎陽), 하촉과 한의 곡식을 들여오고(下蜀漢之粟), 도랑을 깊게 하고(深溝) 보루를 튼튼히 하며(壁壘), 병사를 나누어(分卒) 변경을 지키고(守徼) 요새를 올라가 있으니(乘塞), 초나라가(楚人) 군대를 돌려보내려면(還兵), 양나라 땅 사이로(閒以梁地), 적국을 8~900리나(敵國八九百里) 깊이 들어가야 하고(深入), 싸우려고 해도(欲戰則) 할 수 없고(不得), 성을 공격하려 해도(攻城則) 힘이 부족하고(力不能), 노약자가(老弱) 천리 밖에서(千里之外) 식량을 날라야 하니(転糧): 초나라 군대가(楚兵) 형양과 성고에 이르면(至滎陽成皐), 한나라를 굳게 지키고(漢堅守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不動), 나아가서(進則) 공격할 수 없고(不得攻), 물러나도(退則) <추격(포위)>를 풀 수 없습니다(不得解).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초나라 군대는(楚兵) 믿기에 부족합니다(不足恃也). 만약(使) 초나라가 한나라를 이기면(楚勝漢, 則) 제후들은(諸侯) 스스로 위험을 느끼고 두려워해서(自危懼而) 서로 구할 것입니다(相救). 초나라의 강함은(夫楚之彊), 다만(適) 천하의 군대를(天下之兵) 이르게 하기에 족할 뿐입니다(足以致耳). 그러므로(故) 초나라가(楚) 한나라보다 못한 것은(不如漢), 그 세로(其勢) 쉽게 알 수 있습니다(易見也).

 

* 板築(판축): 판자(板子)와 판자(板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일. 또는 그 판자(板子)와 공이.

* 騷(소): 掃와 통하여 전부라는 뜻이다.

* 垂拱(수공):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다.’는 뜻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음을 이르는 말.

* 守徼(수요): 변방을 지킴. 徼는 경계.

 

6. 今大王不與萬全之漢而自託於危亡之楚, 臣竊爲大王惑之. 臣非以淮南之兵足以亡楚也. 夫大王發兵而倍楚, 項王必留: 留數月, 漢之取天下可以萬全. 臣請與大王提劍而歸漢, 漢王必裂地而封大王, 又況淮南, 淮南必大王有也. 故漢王敬使使臣進愚計, 願大王之留意也.” 淮南王曰: “請奉命.” 陰許畔楚與漢, 未敢泄也.

楚使者在, 方急責英布發兵, 舍傳舍. 隨何直入, 坐楚使者上坐, 曰: “九江王已歸漢, 楚何以得發兵?” 布愕然. 楚使者起. 何因說布曰: “事已搆, 可遂殺楚使者, 無使歸, 而疾走漢竝力.” 布曰: “如使者敎, 因起兵而擊之耳.”

於是殺使者, 因起兵而攻楚. 楚使項聲ㆍ龍且攻淮南, 項王留而攻下邑. 數月, 龍且擊淮南, 破布軍. 布欲引兵走漢, 恐楚王殺之, 故閒行與何俱歸漢.

6. 지금(今) 대왕은(大王) 모두 갖춘 한나라와(萬全之漢) 함께 하지 않고(不與而) 위험하고 망해가는 초나라에(於危亡之楚) 자신을 맡기고 있으니(自託), 신은(臣) 삼가(竊) 대왕을 위해(爲大王) 그것을 의혹으로 여깁니다(惑之). 신은(臣) 회남의 병사가(淮南之兵)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足以亡楚)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非以也). 무릇(夫) 대왕이(大王) 군사를 일으켜(發兵而) 초나라를 배반하면(倍楚), 항왕은(項王) 반드시 멈출 것이고(必留): 멈춘 것이(留) 몇 달이 되면(數月), 한나라가(漢之) 천하를 취하는 것이(取天下) 아주 완전할 것입니다(可以萬全). 신은 청컨대(臣請) 대왕과 함께(與大王) 검을 들고(提劍而) 한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니(歸漢), 한왕은(漢王) 반드시(必) 땅을 떼어(裂地而) 대왕을 봉할 것이니(封大王), 또(又) 하물며 회남은 어떻겠습니까(況淮南), 회남은(淮南) 반드시(必) 대왕에게 속할 것입니다(大王有也). 그러므로(故) 한왕이(漢王) 공경스럽게(敬) 사신을 보내(使使臣) 어리석은 계책을 올리도록 했으니(進愚計), 원컨대(願) 대왕께서(大王之) 뜻을 두시기 바랍니다(留意也).”라고 했다.

회남왕이 말하길(淮南王曰): “청컨대(請) 명을 받들도록 해주십시오(奉命).”라고 했다. 몰래(陰) 초나라를 배반하고(畔楚) 한나라와 함께하겠다고(與漢) 허락했지만(許), 감히 누설하지 않았다(未敢泄也).

초나라 사자가(楚使者) 있으면서(在), 막(方) 영포가 군사를 일으킬 것을(英布發兵) 급하고 독촉하면서(急責), 객사에 머물고 있었다(舍傳舍).

수하가(隨何) 곧장 들어가(直入), 초나라 사자의 윗자리에(楚使者上坐) 앉으며(坐), 말하길(曰): “구강왕은(九江王) 이미(已) 한나라에 귀의했는데(歸漢), 초나라가(楚) 어찌(何以) 군사를 얻겠는가(得發兵)?”라고 했다.

영포가 깜짝 놀랐고(布愕然), 초나라 사자가(楚使者) 일어섰다(起).

수하가(何) 이어(因) 영포에게 말하길(說布曰): “일이(事) 이미 만들어졌으니(已搆), 초나라 사자를(楚使者) 죽여(可遂殺), 사자가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고(無使歸, 而) 한나라로 달려가서(疾走漢) 힘을 모아야 합니다(竝力).”라고 했다.

영포가 말하길(布曰): “사자의 가르침처럼(如使者敎), 이에(因) 병사를 일으켜(起兵而) 공격할 뿐이다(擊之耳).”라고 했다.

이에(於是) 사자를 죽이고(殺使者), 이어(因) 병사를 일으켜(起兵而) 초나라를 공격했다(攻楚). 초나라가(楚) 항정과 용저로 하여금(使項聲龍) 회남을 공격하게 하고(攻淮南), 항왕은 머물며(項王留而) 하읍을 공격했다(攻下邑). 몇 달이 지나(數月), 용저가(龍且) 회남을 공격해서(擊淮南), 영포군을 격파했다(破布軍). 영포가(布) 병사를 이끌고(欲引兵) 한나라로 달아나면서(走漢), 초왕이 죽일 것을 염려했고(恐楚王殺之), 그러므로(故) 샛길로(閒行) 수하와 더불어(與何) 한나라에 함께 귀의했다(俱歸漢).

 

* 愕然(악연): 몹시 놀라는 모양(模樣).

* 構(구): 이루어지다.

* 竝力(병력): 힘을 한데 모음.

 

7. 淮南王至, 上方踞床洗, 召布入見, 布(甚大怒, 悔來, 欲自殺. 出就舍, 帳禦飮食從官如漢王居, 布又大喜過望. 於是迺使人入九江. 楚已使項伯收九江兵, 盡殺布妻子. 布使者頗得故人幸臣, 將衆數千人歸漢. 漢益分布兵而與俱北, 收兵至成皐. 四年七月, 立布爲淮南王, 與擊項籍. 漢五年, 布使人入九江, 得數縣. 六年, 布與劉賈入九江, 誘大司馬周殷, 周殷反楚, 遂擧九江兵與漢擊楚, 破之垓下. 項籍死, 天下定, 上置酒. 上折隨何之功, 謂何爲腐儒, 爲天下安用腐儒. 隨何跪曰: “夫陛下引兵攻彭城, 楚王未去齊也, 陛下發步卒五萬人, 騎五千, 能以取淮南乎?” 上曰: “不能.”

隨何曰: “陛下使何與二十人使淮南, 至, 如陛下之意, 是何之功賢於步卒五萬人騎五千也. 然而陛下謂何腐儒, 爲天下安用腐儒, 何也?” 上曰: “吾方圖子之功.” 迺以隨何爲護軍中尉. 布遂剖符爲淮南王, 都六, 九江ㆍ廬江ㆍ衡山ㆍ予章郡皆屬布.

7. 회남왕이 이르렀을 때(淮南王至), 한왕은(上) 막(方) 평상에 걸터앉아(踞床) 씻고 있다가(洗), 영포를 불어(召布) 들여보내 만났고(入見), 영포가(布) 매우 노하고(甚大怒), 온 것을 후회하며(悔來), 자살하려고 했다(欲自殺). 나와서(出) 막사로 나아가니(就舍), 막사사와 음식(帳禦飮食) 시종이(從官) 한왕의 거처와 같으므로(如漢王居), 영포가(布) 또(又) <대우가> 기대를 넘은 것을(過望) 크게 기뻐했다(大喜). 이에(於是) 곧(迺) 사자를(使人) 구강으로 들여보냈다(入九江). 초나라가(楚) 이미(已) 항백을 시켜(使項伯) 구강의 병사를 거두었고(收九江兵), 영포의 처자식을 모두 죽였다(盡殺布妻子). 영포의 사자가(布使者) 옛 친구와(故人) 총애하던 신하를(幸臣) 자못 얻어서(頗得), 무리 수천을 이끌고(將衆數千人) 한나라로 돌아왔다(歸漢). 한나라가(漢) 영포에게(布) 군사를 더 나누어주고(益分兵而) 함께 북으로 가서(與俱北), 병사를 거두며(收兵) 성고에 이르렀다(至成皐). 4년 7월에(四年七月), 영포를 세워(立布) 회남왕으로 삼고(爲淮南王), 함께(與) 항적을 공격했다(擊項籍).

한나라 5년에(漢五年), 영포가(布) 사람을 시켜(使人) 구강에 들어가도록 하고(入九江), 몇 개 현을 얻었다(得數縣). 6년에(六年), 영포와(布與) 유고가(劉賈) 구강에 들어갔고(入九江), 대사마 주은을 꾀자(誘大司馬周殷), 주은이(周殷) 초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反楚), 마침내(遂) 구강에서 병사를 일으켜(擧九江兵) 한나라와 더불어(與漢) 초나라를 공격하고(擊楚), 해하에서 깨뜨렸다(破之垓下).

항적이 죽고(項籍死), 천하가 안정되자(天下定), 황제가(上) 술자리를 베풀었다(置酒). 황제가(上) 수하의 공을 깎아내려(折隨何之功), 수하는 부패한 선비이니(何爲腐儒), 천하를 위하여(爲天下) 어찌(安) 부패한 선비를 쓰겠는가(用腐儒)라고 했다(謂).

수하가(隨何) 꿇어앉아 말하길(跪曰): “폐하께서(夫陛下) 병사를 이끌고(引兵) 팽성을 공격하고(攻彭城), 초왕이(楚王) 아직 제나라를 떠나지 않았을 때(未去齊也), 폐하가(陛下) 보졸 5만과(步卒五萬人), 기병 5만을 일으켜(騎五千), 회남을 취할 수 있었을까요(能以取淮南乎)?”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할 수 없다(不能).”라고 했다.

수하가 말하길(隨何曰): “폐하께서(陛下) 저와 20명을 시켜(使何與二十人) 회남에 사신으로 가도록 했고(使淮南), 이르러(至), 폐하의 뜻처럼 했는데(如陛下之意), 이것은(是) 저의 공적이(何之功) 보졸 5만과 기병 5천 보다(於步卒五萬人騎五千) 나은 것입니다(也). 그런데도(然而) 폐하께서(陛下) 제가 부패한 선비이니 천하를 위해 어찌 부패한 선비를 쓰겠는가라고 말한 것은(謂何腐儒, 爲天下安用腐儒), 어째서인가요(何也)?”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내가(吾) 막(方) 그대의 공적을(子之功) 생각해보았다(圖).”라고 했다.

이에(迺) 수하를(以隨何) 호군중위로 삼았다(爲護軍中尉). 경포가(布) 마침내(遂) 제후에 봉해져(剖符) 회남왕이 되었고(爲淮南王), 육에 도읍하고(都六), 구강과 여강, 형산, 여장군이(九江廬江衡山予章郡) 모두(皆) 경포에게 속했다(屬布).

 

* 剖符(부부): ‘부절(符節)을 쪼갠다.’는 뜻으로, 제후(諸侯)를 봉(封)함을 이르는 말. 

 

8. 七年, 朝陳. 八年, 朝雒陽. 九年, 朝長安. 十一年, 高后誅淮陰侯, 布因心恐. 夏, 漢誅梁王彭越, 醢之, 盛其醢遍賜諸侯. 至淮南, 淮南王方獵, 見醢, 因大恐, 陰令人部聚兵, 候伺旁郡警急. 布所幸姫疾, 請就醫, 醫家與中大夫賁赫對門, 姫數如醫家, 賁赫自以爲侍中, 迺厚餽遺, 從姫飮醫家. 姫侍王, 從容語次, 譽赫長者也. 王怒曰: “汝安從知之?” 具說狀. 王疑其與亂. 赫恐, 稱病. 王愈怒, 欲捕赫. 赫言變事, 乘傳詣長安. 布使人追, 不及. 赫至, 上變, 言布謀反有端, 可先未發誅也. 上讀其書, 語蕭相國. 相國曰: “布不宜有此, 恐仇怨妄誣之. 請擊赫, 使人微験淮南王.”

8. 7년에(七年), 진에서 조회했다(朝陳). 8년에(八年), 낙양에서 조회했다(朝雒陽). 9년에(九年), 장안에서 조회했다(朝長安). 11년에(十一年), 고후가(高后) 회음후를 죽이자(誅淮陰侯), 경포가(布) 이에(因) 마음으로 의심이 생겼다(心恐). 여름에(夏), 한나라가(漢) 양왕 팽월을 죽이고(誅梁王彭越), 소금에 절였고(醢之), 그 살덩이를 담아(盛其醢) 제후에게 두려 내려보냈다(遍賜諸侯). 회남에 이르자(至淮南), 회남왕이(淮南王) 막 사냥하려고 했는데(方獵), 살덩이를 보고(見醢), 이에 크게 두려워하며(因大恐), 은밀하게(陰) 사람을 시켜(令人部) 병사를 모으로(聚兵), 주변 군을 살피고(候伺旁郡) 갑작스런 일에 대비하도록 했다(警急).

경포가(布) 아끼는 첩이 병에 걸렸는데(所幸姫疾), 의원을 청하니(請就醫), 의원의 집과(醫家與) 중대부 비혁의 집이(中大夫賁赫) 문을 마주하고 있었는데(對門), 희첩이(姫) 자주(數) 의원에 집에 갔고(如醫家), 분혁은(賁赫) 스스로(自) 시중이었으므로(以爲侍中), 이에(迺) 선물을 많이 바치고(厚餽遺), 희첩을 따라(從姫) 의원 집에서 술을 마셨다(飮醫家). 희첩이(姫) 왕을 모시다가(侍王), 한가로이 말을 하다가(從容語次), 비혁을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譽赫長者也).

왕이 노하여 말하길(王怒曰): “너는(汝) 어디에서(安從) 그를 알게 되었느냐(知之)?”라고 했다. 상황을 모두 설명했지만(具說狀, 왕은(王) 그와 더불어 사통했다고 의심했다(疑其與亂).

비혁이 두려워하며(赫恐), 병을 핑계댔다(稱病). 왕이(王) 더욱 노하여(愈怒), 비혁을 체포하려고 했다(欲捕赫). 비혁이(赫) 변란을 말하며(言變事), 역마를 타고(乘傳) 장안에 이르렀다(詣長安). 영포가(布) 사람을 시켜(使人) 쫓았지만(追), 이르지 못했다(不及). 비혁이 도착하자(赫至), 변란을 보고하고(上變), 영포가 모반한 것에(布謀反) 단서가 있다고(有端) 말하며(言), 일어나지 않았으니 먼저 죽여야 한다고 했다(可先未發誅也). 황제가(上) 그 글을 읽고(讀其書), 상국 소하에게 말했다(語蕭相國).

상국이 말하길(相國曰): “영포에게(布) 마땅히(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으니(有此), 원한이 있어(恐仇怨) 망령되이 무고한 것입니다(妄誣之). 청컨대(請) 비혁을 가두고(擊赫), 사람을 보내(使人) 회남왕을 은밀히 살피기를(微験淮南王) 청합니다.”라고 했다.

 

* 饋遺(궤유): 선물하다. 선사하다.

* 傳(전): 역참(驛站)의 마차.

* 上變(상변): 반역을 고발하는 글을 올림.

* 警急(경급): 갑작스런 변고()에 대비()하는 경계().

* 仇怨(구원):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

 

9. 淮南王布見赫以罪亡, 上變, 固已疑其言國陰事: 漢使又來, 頗有所験, 遂族赫家, 發兵反. 反書聞, 上迺赦賁赫, 以爲將軍. 上召諸將問曰: “布反, 爲之奈何?” 皆曰: “發兵擊之, 阬豎子耳. 何能爲乎!” 汝陰侯滕公召故楚令尹問之. 令尹曰: “是故當反.” 滕公曰: “上裂地而王之, 疏爵而貴之, 南面而立萬乘之主, 其反何也?” 令尹曰: “往年殺彭越, 前年殺韓信, 此三人者, 同功一體之人也. 自疑禍及身, 故反耳.” 滕公言之上曰: “臣客故楚令尹薛公者, 其人有籌筴之計, 可問.” 上迺召見問薛公. 薛公對曰: “布反不足怪也. 使布出於上計, 山東非漢之有也: 出於中計, 勝敗之數未可知也: 出於下計, 陛下安枕而臥矣.”

9. 회남왕 영포는(淮南王布) 비혁이 죄 때문에(赫以罪) 도망가서(亡), 변란을 보고한 것을(上變) 보고(見), 참으로(固已) 그가(其) 나라의 은밀한 일을 말했다고(言國陰事) 의심했고(疑): 한나라 사신이(漢使) 또 와서(又來), 자못(頗) 시험하는 것이 있으니(有所験), 마침내(遂) 비혁의 집안을 다 죽이고(族赫家), 병사를 일으켜(發兵) 반란을 일으켰다(反). 반란이(反) 글로 들려오자(書聞), 황제가(上) 이에(迺) 비혁을 사면하고(赦賁赫), 장군으로 삼았다(以爲將軍).

황제가(上) 여러 장수를 불러(召諸將) 묻기를(問曰):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는데(布反), 그것을 위해(爲之) 어찌해야 하는가(奈何)?”라고 했다.

모두 말하길(皆曰): “병사를 일으켜(發兵) 공격하고(擊之), 그놈을 묻어버리면 그만입니다(阬豎子耳). 무엇을(何) 할 수 있겠습니까(能爲乎)!”라고 했다.

여음후(汝陰侯) 등공이(滕公) 옛 초나라 영윤을 불러(召故楚令尹) 물었다(問之). 영윤이 말하길(令尹曰): “반란한 것은 당연합니다(是故當反).”라고 했다.

등공이 말하길(滕公曰): “황제가(上) 땅을 찢어(裂地而) 왕으로 만들었고(王之), 작위를 나누어(疏爵而) 귀하게 만들어서(貴之), 남면하고(南面而) 만승의 주인으로 섰는데(立萬乘之主),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其反) 어째서인가(何也)?”라고 했다.

영윤이 말하길(令尹曰): “지난해에(往年) 팽월을 죽였고(殺彭越), 그 전해에(前年) 한신을 죽였고(殺韓信), 이 세 사람은(此三人者), 같은 공을 세운(同功) 한 몸과 같은 사람입니다(一體之人也). 스스로(自) 화가 몸에 이를 것을(禍及身) 의심했고(疑), 그러므로(故) 반란을 일으켰을 뿐입니다(反耳).”라고 했다.

등공이(滕公) 그것을 황제에게 말하길(言之上曰): “저의 빈객 가운데(臣客) 옛 초의 영윤(故楚令尹) 설공이란 사람이 있는데(薛公者), 그 사람에게(其人) 괜찮은 계책이 있으니(有籌筴之計), 물어볼만 합니다(可問).”라고 했다.

황제가(上) 이에(迺) 불러서 보고(召見) 설공에게 물었다(問薛公).

설공이 대답하길(薛公對曰): “영포의 반란은(布反)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不足怪也). 만약(使) 영포가(布) 최고의 계책을 낸다면(出於上計), 산동은(山東) 한나라의 소유가 아닐 것이고(非漢之有也): 중간의 계책을 낸다면(出於中計), 승패의 수를(勝敗之數) 알 수 없고(未可知也): 낮은 계책을 낸다면(出於下計), 폐하께서(陛下) 베개를 편안히 하고(安枕而) 누울 수 있습니다(臥矣).”라고 했다.

 

* 族(족): 멸족(滅族).

* 豎子(수자): 풋내기.

* 籌筴(주책): 이익()과 손해()를 헤아려 생각한 꾀.

 

10. 上曰: “何謂上計?” 令尹對曰: “東取吳, 西取楚, 竝齊取魯, 傳檄燕ㆍ趙, 固守其所, 山東非漢之有也.” “何謂中計?” “東取吳, 西取楚, 竝韓取魏, 據敖庾之粟, 塞成皐之口, 勝敗之數未可知也.” “何謂下計?” “東取吳, 西取下蔡, 歸重於越, 身歸長沙, 陛下安枕而臥, 漢無事矣.” 上曰: “是計將安出?” 令尹對曰: “出下計.” 上曰: “何謂廢上中計而出下計?” 令尹曰: “布故麗山之徒也, 自致萬乘之主, 此皆爲身, 不顧後爲百姓萬世慮者也, 故曰出下計.” 上曰: “善.” 封薛公千戸. 迺立皇子長爲淮南王. 上遂發兵自將東擊布.

10. 황제가 말하길(上曰): “최고의 계책은(上計) 무엇을 말하는가(何謂)?”라고 했다.

영윤이 대답하길(令尹對曰): “동으로(東) 오나라를 취하고(取吳), 서쪽으로 초나라를 취하고(西取楚), 제나라를 병합해서(竝齊) 노나라를 취하고(取魯), 연나라와 조나라에 격문을 돌려(傳檄燕趙), 그곳을(其所) 굳게 지키면(固守), 산동의(山東) 한나라의 것이 아닙니다(非漢之有也).”라고 했다.

“중간의 계책을 무엇을 말하는가(何謂中計)?”

“동으로 오를 취하고(東取吳), 서로 초를 취하고(西取楚), 한나라를 병합하고 위나라를 취해서(竝韓取魏), 오창의 곡식을 의지하고(據敖庾之粟), 성고 입구를 막는다면(塞成皐之口), 승패를 알 수 없습니다(勝敗之數未可知也).”라고 했다.

“낮은 계책은 무엇을 말하는가(何謂下計)?”라고 했다.

“동으로 오를 취하고(東取吳), 서로 하채를 취하고(西取下蔡), 월나라에 중요한 것을 두고(歸重於越), 자신은(身) 장사로 돌아간다면(歸長沙), 폐하께서(陛下) 베개를 편안히 하고 눕고(安枕而臥), 한나라에(漢) 일이 없을 것입니다(無事矣).”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그의 계책은(是計) 장차(將) 어찌 나올 것인가(安出)?”라고 했다.

영윤이 대답하길(令尹對曰): “하책을 낼 것입니다(出下計).”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어찌(何) 상책과 중책을 없애고(廢上中計而) 하책을 낼 것이라고(出下計) 말하는가(謂)?”라고 했다.

영윤이 말하길(令尹曰): “영포는(布) 옛(故) 여산의 무리이고(麗山之徒也), 스스로(自) 만승의 주인에 이르렀지만(致萬乘之主), 이것은(此) 모두(皆) 자신을 위한 것이고(爲身), 나중에(後) 백성의 만세를 위한(爲百姓萬世) 생각을(慮) 돌아본 것이 아니고(不顧者也), 그러므로(故) 하책을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曰出下計).”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좋다(善).”

설공을(薛公) 천호에 봉했다(千戸). 이에(迺) 황자 유장을 세워(立皇子長) 회남왕으로 삼았다(爲淮南王). 황제가(上) 마침내(遂) 군사를 일으켜(發兵) 스스로 이끌고(自將) 동으로 가서(東) 영포를 쳤다(擊布).

 

11. 布之初反, 謂其將曰: “上老矣, 厭兵, 必不能來. 使諸將, 諸將獨患淮陰ㆍ彭越, 今皆已死, 餘不足畏也.” 故遂反. 果如薛公籌之, 東擊荊, 荊王劉賈走死富陵. 盡劫其兵, 渡淮擊楚. 楚發兵與戰徐ㆍ僮閒, 爲三軍, 欲以相救爲奇. 或說楚將曰: “布善用兵, 民素畏之. 且兵法, 諸侯戰其地爲散地. 今別爲三, 彼敗吾一軍, 餘皆走, 安能相救!” 不聽. 布果破其一軍, 其二軍散走. 遂西, 與上兵遇蘄西, 會甀. 布兵精甚, 上迺壁庸城, 望布軍置陳如項籍軍, 上惡之. 與布相望見, 遙謂布曰: “何苦而反?” 布曰: “欲爲帝耳.” 上怒罵之, 遂大戰. 布軍敗走, 渡淮, 數止戰, 不利, 與百餘人走江南. 布故與番君婚, 以故長沙哀王使人紿布, 偽與亡, 誘走越, 故信而隨之番陽. 番陽人殺布茲鄕民田舍, 遂滅黥布.

立皇子長爲淮南王, 封賁赫爲期思侯, 諸將率多以功封者.

11. 영포가(布之) 처음 반란을 일으키고(初反), 그 장수들에게 말하길(謂其將曰): “황제가 늙었고(上老矣), 싸움을 싫어하니(厭兵), 반드시(必) 올 수 없다(不能來). 여러 장수를 시키겠지만(使諸將), 여러 장수 가운데(諸將) 오직(獨) 회음후와 팽월만 걱정거리인데(患淮陰彭越), 지금(今) 모두 이미 죽었으니(皆已死), 나머지는(餘) 두려워할 것이 없다(不足畏也).”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遂反). 과연(果) 설공이 꾀를 낸 것처럼(如薛公籌之), 동으로 형주를 치니(東擊荊), 형왕 유고가(荊王劉賈) 달아나서(走) 부릉에서 죽었다(死富陵). 그 병사를 모두 빼앗아서(盡劫其兵), 회하를 건너(渡淮) 초를 공격했다(擊楚). 초가(楚) 병사를 일으켜(發兵) 서와 동 사이에서(徐僮閒) 싸웠는데(與戰), 3개 부대를 만들어서(爲三軍), 서로 구원하는 것을(以相救) 기이한 계책으로 삼으려고 했다(爲奇).

누군가(或) 초장을 설득하길(說楚將曰): “영포가(布) 용병을 잘하고(善用兵), 백성들이(民) 평소 두려워합니다(素畏之). 또(且) 병법에(兵法), 제후가(諸侯) 자기 땅에서 싸우는 것은(戰其地) 산지라고 합니다(爲散地). 지금(今) 별도로(別) 셋으로 만들었는데(爲三), 저들이(彼) 우리 일군을 깨뜨리면(敗吾一軍), 나머지는(餘) 모두 달아날 것이니(皆走), 어찌(安) 서로 구할 수 있겠습니까(能相救)!”라고 했다.

말을 듣지 않았다(不聽). 영포가(布) 과연(果) 그 일군을 깨뜨리자(破其一軍), 그 두 군사가(其二軍) 흩어져 달아났다(散走).

마침내(遂) 서쪽으로 와서(西), 황제의 병사와(與上兵) 기현의 서쪽(蘄西), 회추에서 만났다(會甀). 영포의 병사가(布兵) 정예병이었고(精甚), 황제가(上) 이에(迺) 용성을 굳게 지키며(壁庸城), 영포의 군사를 바라보니(望布軍) 진을 친 것이(置陳) 항적의 군대와 같았고(如項籍軍), 황제가 그를 미워했다(上惡之).

영포와(與布) 서로 바라보다(相望見), 멀리서(遙) 영포에게 말하길(謂布曰): “무엇이 괴로워서(何苦而) 모반했는가(反)?”라고 했다.

영포가 말하길(布曰): “황제가 되려고 할 뿐이다(欲爲帝耳).”라고 했다.

황제가(上) 노하여 꾸짖고(怒罵之), 마침내 크게 싸웠다(遂大戰). 영포의 군대가(布軍) 패주하며(敗走), 회하를 건넜고(渡淮), 여러번(數) 멈춰서 싸웠는데(止戰), 불리해지자(不利), 100여 명과 함께(與百餘人) 강남으로 달아났다(走江南). 영포가(布) 본래(故) 파군의 딸과 결혼했는데(與番君婚), 이 때문에(以故) 장사 애왕이(長沙哀王) 사람을 시켜(使人) 영포를 속이고(紿布), 거짓으로(偽) 함께 도망가서(與亡), 월나라로 달아나자고 꾀었고(誘走越), 그러므로(故) 믿고서(信而) 그를 따라(隨之) 파양으로 갔다(番陽). 파양 사람들이(番陽人) 자향의 농가에서(茲鄕民田舍) 영포를 죽이고(殺布), 마침내(遂) 영포의 일족을 없앴다(滅黥布).

황자 유장을 세워(立皇子長) 회남왕으로 삼고(爲淮南王), 비혁을 봉하여(封賁赫) 기사후로 삼았으며(爲期思侯), 여러 장수도(諸將) 대체로(率) 공적에 따라 봉한 사람이(以功封者) 많았다(多).

 

12. 太史公曰: 英布者, 其先豈春秋所見楚滅英ㆍ六, 皐陶之後哉? 身被刑法, 何其拔興之暴也! 項氏之所阬殺人以千萬數, 而布常爲首虐. 功冠諸侯, 用此得王, 亦不免於身爲世大僇. 禍之興自愛姫殖, 妒媢生患, 竟以滅國!

12.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영포는(英布者), 그 선조가(其先) 아마(豈) 춘추에(春秋) 초나라가 영과 육을 멸망시켰다는 것을(楚滅英六) 볼 수 있는데(所見), 고요의 후손이 아닐까(皐陶之後哉)? 몸은(身) 형벌을 받고(被刑法), 오찌(何) 그 발흥이(其拔興之) 빠른 것인가(暴也)! 항씨가(項氏之) 사람을 묻어 죽인 것이(所阬殺人以) 천만인이데(千萬數, 而) 영포는(布) 늘(常) 포악한 우두머리였다(爲首虐). 공은(功) 제후 가운데 으뜸이었고(冠諸侯), 이것을 써서(用此) 왕이 되었지만(得王), 또한(亦) 자신은 세상에서 큰 치욕으로 여기는 것에서(於身爲世大僇) 벗어나지 못했다(不免). 화가 일어난 것이(禍之興) 애첩을 아낀 것으로부터(自愛姫) 커졌고(殖), 질투가(妒媢) 걱정거리를 만들어(生患), 마침내(竟以)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滅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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