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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4/5] 오나라에게 월나라는 뱃속의 병과 같습니다 / 심복지환(心腹之患) 와신상담(臥薪嘗膽)

by प्रज्ञा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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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해진 오나라는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지만 월왕 구천의 참모 범려와 지혜 대결에서 패하고, 오군은 월나라에 대패하게 된다. 이때의 상처로 합려는 사망하게 된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후사를 잇고, 부왕의 복수를 맹세하면서 오자서도 그를 보좌하였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와 싸워 대승하게 된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창하지만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신 백비는 성실하고 정직한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하고, 마침내 부차는 오자서에게 명검 촉루를 내려 자결을 명한다. 

 

其後四年, 孔子相魯.

그 뒤로 4년이 지나(其後四年), 공자가(孔子) 노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魯).

 

後五年, 伐越. 越王句踐迎擊, 敗吳於姑蘇, 傷闔廬指, 軍卻. 闔廬病創將死, 謂太子夫差曰: "爾忘句踐殺爾父乎?" 夫差對曰: "不敢忘." 是夕, 闔廬死. 

뒤로(後) 5년이 지나(五年), 월나라를 정벌했다(伐越).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맞이해서 싸워(迎擊), 고소에서(於姑蘇) 오군을 물리치고(敗吳), 합려의 손가락에(闔廬指) 상처를 입혀(傷), 군대가 물러났다(軍卻). 합려의 병이(闔廬 病) 커져(創) 장차 죽으려 할 때(將死), 태자 부차에게 일러 말하길(謂太子夫差曰): "너는(爾) 구천이(句踐)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殺爾父) 잊겠느냐(乎)?"라고 했다. 부차가 대답하여 말하길(夫差對曰): "감히 잊지 않겠습니다(不敢忘)."라고 했다. 이날 저녁(是夕), 합려가 죽었다(闔廬死).

 

夫差旣立爲王, 以伯嚭爲太宰, 習戰射. 二年後伐越, 敗越於夫湫. 越王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 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 求委國爲臣妾. 吳王將許之. 伍子胥諫曰: "越王爲人能辛苦. 今王不滅, 後必悔之." 吳王不聽, 用太宰嚭計, 與越平.

부차가(夫差) 자리에 올라(旣立) 왕이 되고(爲王, 以) 백비가(伯嚭) 태재가 되어(爲太宰), 병사들이 활쏘기를 익혔다(習戰射). 2년 뒤에(二年後) 월나라를 정벌해서(伐越), 부추산에서(於夫湫) 월나라를 물리쳤다(敗越).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이에(乃) 남은 병사 5천 명으로(以餘兵五千人) 회계산 위에 머무르면서(棲於會稽之上), 대부 종으로 하여금(使大夫種) 오나라 태재 백비에게(吳太宰嚭) 후한 예물을 보내서(厚幣遺以) 화친을 청하고(請和), 나라를 맡기고(委國) 신첩이 되겠다고(爲臣妾) 요청했다(求). 오왕이(吳王) 허락했다(將許之).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길(伍子胥諫曰): "월왕의 사람됨이(越王爲人) 고생을 잘 견딥니다(能辛苦). 지금(今) 왕께서 멸망시키지 않으면(王不滅), 나중에(後) 반드시(必) 후회할 것입니다(悔之)."라고 했다.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태재 백비의 계책을 써서(用太宰嚭計), 월나라와 화친을 맺었다(與越平).

 

* 辛苦(신고): 매운 것과 쓴 것, 괴롭고 고생(苦生)스럽게 애를 씀.

 

其後五年, 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 新君弱, 乃興師北伐齊. 伍子胥諫曰: "句踐食不重味, 弔死問疾, 且欲有所用之也. 此人不死, 必爲吳患. 今吳之有越, 猶人之有腹心疾也. 而王不先越而乃務齊, 不亦謬乎!" 吳王不聽, 伐齊, 大敗齊師於艾陵, 遂威鄒魯之君以歸. 益疏子胥之謀.

그 뒤로(其後) 5년이 지나(五年, 而) 오왕이(吳王) 제 경공이 죽고(齊景公死而) 대신들이 영예를 다투고(大臣爭寵), 새로운 임금이 약하다는 것을(新君弱) 듣고(聞), 이에(乃) 군대를 일으켜(興師) 북으로(北) 제나라를 정벌했다(伐齊).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길(伍子胥諫曰): "구천은(句踐) 먹을 때(食) 맛을 둘 이상 즐기지 않고(不重味), 죽은 사람을 조문하고(弔死) 병든 사람을 위문하며(問疾), 또한(且) 쓸 곳이 있게 하려고 합니다(欲有所用之也). 이 사람이(此人) 죽지 않으면(不死), 반드시(必) 오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爲吳患). 지금(今) 오나라에게(吳之) 월나라가 있는 것은(有越), 사람에게(人之) 뱃속의 병이 있는 것과(有腹心疾也) 같습니다(猶). 그런데(而) 왕께서(王) 월나라를 먼저 하지 않고(不先越而) 이에(乃) 제나라에 힘쓴다면(務齊),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不亦謬乎)!"라고 했다.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제나라를 정벌하고(伐齊), 애릉에서(於艾陵) 제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大敗齊師), 이어서(遂) 추나라와 노나라 군주를 위협하고(威鄒魯之君以) 돌아왔다(歸). 더욱(益) 오자서의 계책과 멀어졌다(疏子胥之謀).

 

其後四年, 吳王將北伐齊, 越王句踐用子貢之謀, 乃率其衆以助吳, 而重寶以獻遺太宰嚭. 太宰嚭旣數受越賂, 其愛信越殊甚, 日夜爲言於吳王. 吳王信用嚭之計. 

그 뒤 4년이 지나(其後四年), 오왕이(吳王) 장차(將) 북으로(北) 제나라를 쳐들어가려 하자(伐齊),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자공의 계책을 써서(用子貢之謀), 이에(乃) 그 무리를 이끌고(率其衆以) 오나라를 돕고(助吳, 而) 귀중한 보물을(重寶以) 태재 백비에게(太宰嚭) 바쳤다(獻遺). 태재 백비가(太宰嚭) 이미(旣) 자주(數)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受越賂), 그가(其) 월나라를 좋아하고 믿는 것이(愛信越) 더욱 심해져서(殊甚), 밤낮으로(日夜) 오왕에게 말했다(爲言於吳王). 오왕은(吳王) 백비의 계책을(嚭之計) 믿고 따랐다(信用).

 

伍子胥諫曰: "夫越, 腹心之病, 今信其浮辭詐僞而貪齊. 破齊, 譬猶石田, 無所用之. 且盤庚之誥曰: '有顛越不恭, 劓殄滅之, 俾無遺育, 無使易種于茲邑.' 此商之所以興. 願王釋齊而先越;若不然, 後將悔之無及." 而吳王不聽, 使子胥於齊. 子胥臨行, 謂其子曰: "吾數諫王, 王不用, 吾今見吳之亡矣. 汝與吳俱亡, 無益也." 乃屬其子於齊鮑牧, 而還報吳.

오자서가 간하여 말하길(伍子胥諫曰): "저 월나라는(夫越), 뱃속의 병이니(腹心之病), 지금(今) 그 허황된 말과 속임수를 믿고(信其浮辭詐僞而) 제나라를 욕심내고 있습니다(貪齊). 제나라를 격파하는 것은(破齊), 비유하자면(譬) 돌밭과 같아서(猶石田), 쓸 곳이 없습니다(無所用之). 또(且) 반경지고에 이르길(盤庚之誥曰): '법도를 어기고(顛越) 공손하지 않음이 있으면(不恭), 코를 베고(劓) 모두 죽여 없애서(殄滅之), 자손까지도 없도록 하여(俾無遺育), 이 읍에(于茲邑) 뿌리 내림이 없도록 해라(無使易種).'라고 했습니다. 이것이(此) 상나라가(商之) 흥한 까닭입니다(所以興). 원컨대(願) 왕께서는(王) 제나라를 놓아두고(釋齊而) 월나라를 먼저 도모하여(先越); 만약(若) 그렇지 않는다면(不然), 나중에(後) 장차 후회해도(將悔之) 미칠 것이 없습니다(無及)."라고 했다. 그러나(而)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제나라에(於齊) 오자서를 사신으로 보냈다(使子胥). 오자서가(子胥) 출발에 임해서(臨行), 그 자식에게 말하길(謂其子曰): "내가(吾) 자주(數) 왕에게 간했고(諫王), 왕이 듣지 않으니(王不用), 내가(吾) 지금(今)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볼 것이다(見吳之亡矣). 너와 오나라를(汝與吳) 함께 망하는 것이(俱亡), 이익될 것이 없다(無益也)."라고 했다. 이에(乃) 그 자식을(其子) 제나라 포목에게(於齊鮑牧) 맡기고(, 而) 돌아와(還) 오나라에 보고했다(報吳).

 

* 顛越(전월) : 전락하다. 법도를 어김.

 

吳太宰嚭旣與子胥有隙, 因讒曰: "子胥爲人剛暴, 少恩, 猜賊, 其怨望恐爲深禍也. 前日王欲伐齊, 子胥以爲不可, 王卒伐之而有大功. 子胥恥其計謀不用, 乃反怨望. 而今王又復伐齊, 子胥專愎彊諫, 沮毀用事, 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 今王自行, 悉國中武力以伐齊, 而子胥諫不用, 因輟謝, 詳病不行. 王不可不備, 此起禍不難. 且嚭使人微伺之, 其使於齊也, 乃屬其子於齊之鮑氏. 夫爲人臣, 內不得意, 外倚諸侯, 自以爲先王之謀臣, 今不見用, 常鞅鞅怨望. 願王早圖之." 

오나라 태재 백비가(吳太宰嚭) 이미(旣) 오자서와 더불어(與子胥) 틈이 있으므로(有隙), 이로 인하여 험담하여 말하길(因讒曰): "오자서의(子胥) 사람됨이(爲人) 강하고 난폭하여(剛暴), 은혜가 작고(少恩), 시기하고 악독하니(猜賊), 그 원망이(其怨望) 깊은 화가 될까 두렵습니다(恐爲深禍也). 전에(前日) 왕께서(王) 제나라를 치려 했을 때(欲伐齊), 오자서가(子胥) 안된다고 여겼지만(以爲不可), 왕께서(王) 마침내(卒) 정벌해서 큰 공이 있었습니다(伐之而有大功). 오자서가(子胥) 그 계책이 쓰이지 않을 것을(其計謀不用) 부끄러워하여(恥), 이에(乃) 도리어 원망을 품었습니다(反怨望). 그런데(而) 지금(今) 왕께서(王)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는데(又復伐齊), 오자서가(子胥) 고집스럽고 강하게 간하여(專愎彊諫), 일 벌이는 거을 막으니(沮毀用事), 단지(徒) 오나라가 패해서(吳之敗以) 자기 계책이 좋다는 것을(自勝其計謀)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耳). 지금(今) 왕께서 직접 가시는데(王自行), 모든(悉) 나라의 무력으로(國中武力以) 제나라를 정벌하는데(伐齊, 而) 오자서의 간언을 쓰지 않았고(子胥諫不用), 이에(因) 핑계를 꾸며(輟謝), 거짓 병으로(詳病)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不行). 왕께서(王) 대비하지 않는 것이 불가하니(不可不備), 그가(此) 난을 일으키는 것이(起禍) 어렵지 않습니다(不難). 또(且) 제가(嚭) 사람을 시켜(使人) 조금 알아보니(微伺之), 그가(其)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使於齊也), 이에(乃) 그 자식을(其子) 제나라 포씨에게(於齊之鮑氏) 맡겼습니다(屬). 무릇(夫) 신하가 되어(爲人臣), 안으로(內) 뜻을 얻지 못하자(不得意), 바깥에서(外) 제후에게 의지했으니(倚諸侯), 스스로(自) 선왕의 모신이었는데(以爲先王之謀臣), 지금(今) 쓰이지 않아서(不見用), 늘(常) 섭섭한 마음으로 원망하고 있습니다(鞅鞅怨望). 원컨대(願) 왕께서는(王) 일찍 그를 도모하십시오(早圖之)."라고 했다. 

 

* 猜賊(시적) : 시기하며 악독하다. 賊은 사악함.

* 專愎(전퍅) : =강퍅(剛愎). 성미가 깐깐하고 고집이 셈. 愎은 강퍅(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

* 徒幸(도행) : 단지 희망하다.

* 自勝(자승): 자기(自己)가 남보다 나은 줄로만 여김.

* 輟謝(철사) : 핑계로 꾸며대는 말로 중지시키려 하다.

* 詳(양) : 佯(거짓 ‘양’)과 통하여 ‘거짓으로 꾸미다’.

鞅鞅(앙앙) : 「怏怏」과 통하여 섭섭하여 앙심을 품은 모양을 말한다.

 

吳王曰: "微子之言, 吾亦疑之."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 曰: "子以此死." 伍子胥仰天嘆曰: "嗟乎!讒臣嚭爲亂矣, 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 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 幾不得立. 若旣得立, 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오왕이 말하길(吳王曰): "그대가 말하지(子之言) 않았더라도(微), 나도 또한 의심했다(吾亦疑之)."라고 했다. 이에(乃) 사자를 보내(使使)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내리고(賜伍子胥屬鏤之劍), 말하길(曰): "그대는(子) 이것으로 죽어라(以此死)."라고 했다. 오자서가(伍子胥) 하늘을 보며(仰天) 한탄하여 말하길(嘆曰): "안타깝구나(嗟乎)! 참소하는 신하인(讒臣) 백비가(嚭)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 것인데(爲亂矣), 왕이(王乃) 도리어(反) 나를 죽이는구나(誅我). 내가(我) 그대의 아버지를(令若父) 패자로 만들었다(霸). 그대가 즉위하지 못한 때부터(自若未立時), 여러 공자가(諸公子) 자리를 다툴 때(爭立), 내가(我) 죽음으로(以死) 선왕에게 그것을 싸웠고(爭之於先王), 아마도(幾)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不得立). 그대가(若) 이미 자리에 올라(旣得立), 오나라를 나누어(分吳國) 나에게 주려고 했어도(予我), 나는(我) 감히 바라지 않았다(顧不敢望也). 그러나(然) 지금(今) 그대가(若)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듣고(聽諛臣言以) 연장자를 죽이려 하는구나(殺長者)."라고 했다.

 

* 微子之言(미자지언) : 그대가 말하지 않았어도. 微는 아니다(非). 子는 당신.

讒臣(참신): 육사(六端)의 하나. 참소(讒訴譖訴)를 잘하는 신하(臣下).

 

乃告其舍人曰: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爲器;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 以觀越寇之入滅吳也." 乃自剄死. 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 浮之江中. 吳人憐之, 爲立祠於江上, 因命曰胥山. 

이에(乃) 그 심부름꾼에게 고하여 말하길(告其舍人曰): "반드시(必) 내 묘 위에(吾墓上) 가래나무를 심어서(以梓), 관을 짜도록 하고(令可以爲器); 그리고(而) 내 눈을 도려내(抉吾眼)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서(縣吳東門之上, 以) 월나라의 도적이 들어와(越寇之入) 오나라를 없애는 것을(滅吳) 볼 수 있도록 해라(也)."라고 했다. 그리고(乃)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自剄死). 오왕이(吳王) 그것을 듣고 크게 화내며(聞之大怒, 乃) 오자서의 시신을 거둬(取子胥尸盛以) 가죽부대에 담아(鴟夷革), 강 가운데로 띄워 보냈다(浮之江中). 오나라 사람들이(吳人) 불쌍하게 여겨(憐之), 강가에(於江上) 사당을 세우고(爲立祠, 因) 서산이라고 했다(命曰胥山). 

 

* 鴟夷(치이) :가죽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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