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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1/5] 복수는 나의 힘,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 하고 도망치다

by प्रज्ञा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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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伍子胥, ? ~ 기원전 48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이 비무기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해바침)으로 평왕(平王)의 노여움을 사 처형된 뒤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갔다.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장관에 해당하는 관직) 올라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고 수도를 함락시켰다. 오나라가 강해지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와 사이가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舉,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는(伍子胥者), 초나라 사람이며(楚人也), 이름은 원이다(名員). 원의 아버지는(員父) 오사이다(曰伍奢). 원의 형은(員兄) 오상이다(曰伍尙). 그의 선조는(其先) 오거인데(曰伍舉), 바르 간언으로(以直諫) 초나라 장왕을 섬겨(事楚莊王), 높은 지위에 있었고(有顯), 그러므로(故) 그 후세에도(其後世) 초나라에서 명성이 있었다(有名於楚). 

 

* 顯(현) : 지위가 높고 귀하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명성(名聲)이 있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 使伍奢爲太傅, 費無忌爲少傅. 無忌不忠於太子建. 平王使無忌爲太子取婦於秦, 秦女好, 無忌馳歸報平王曰: "秦女絶美, 王可自取, 而更爲太子取婦." 平王遂自取秦女而絶愛幸之, 生子軫. 更爲太子取婦. 

초나라 평왕에게(楚平王) 태자가 있었는데(有太子) 이름이 건이고(名曰建), 오사를(使伍奢) 태부가 되도록 하여(爲太傅), 비무기를(費無忌) 소부가 되도록 했다(爲少傅). 비무기가(無忌) 태자 건에게 충성하지 않았다(不忠於太子建). 평왕이(平王) 비무기로 하여금(使無忌) 태자를 위해(爲太子) 진나라에서 아내를 데려오도록 했는데(取婦於秦), 진나라 여자가 미인이므로(秦女好), 비무기가(無忌) 말을 달려 돌아와(馳歸) 평왕에게 보고하며 말하길(報平王曰): "진나라 여인이(秦女) 매우 아름다워(絶美), 왕께서(王) 스스로 취할만하니(可自取, 而) 다시(更) 태자를 위해(爲太子) 여자를 맞으시지요(取婦)."라고 했다. 평왕이(平王) 마침내(遂) 스스로(自) 진나라 여인을 취하여(取秦女而) 그녀를 매우 아끼고(絶愛幸之), 아들 진을 낳았다(生子軫). 다시(更) 태자를 위하여(爲太子) 아내를 얻어 주었다(取婦). 

 

* 楚 平王(초 평왕) : 기원전 ?년 ~ 기원전 516년. 춘추시대 초나라의 제28대 왕. 이름은 기질(棄疾)이었는데, 즉위한 뒤에 거(居)로 고쳤다. 기원전 523년 평왕 기질은 아들 태자 건(建)의 태자비를 진나라(秦)로부터 맞으려, 소부 비무기(費無忌)를 진나라에 보냈다. 그러나 비무기는 진나라 공주의 아름다움을 보고, 진나라 공주를 평왕의 측실로 삼을 것을 건의했다. 초 평왕도 공주의 아름다운 용모에 마음에 들어서, 평왕은 자신의 측실로서 삼았다. 이 사건으로 의해서 초 평왕은 비무기를 신뢰하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 愛幸(애행): 임금이 사랑함.

 

無忌旣以秦女自媚於平王, 因去太子而事平王. 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 殺己, 乃因讒太子建. 建母, 蔡女也, 無寵於平王. 平王稍益疏建, 使建守城父, 備邊兵. 

비무기가(無忌) 진나라 여자로(以秦女) 평왕에게 잘 보이고 나서(自媚於平王), 이어(因) 태자를 버리고(去太子而) 평왕을 섬겼다(事平王). 하루아침에(一旦) 평왕이 죽고(平王卒而) 태자가 왕이 되면(太子立),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殺己), 이에(乃) 이어(因) 태자 건을 헐뜯었다(讒太子建). 건의 어머니는(建母), 채나라 여인이고(蔡女也), 평왕에게(於平王) 총애를 받지 못했다(無寵). 평왕이(平王) 점점 더욱(稍益) 건을 멀리하고(疏建), 건으로 하여금(使建) 성보를 지키고(守城父), 변방의 군대를 방비하도록 했다(備邊兵). 


頃之, 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 "太子以秦女之故, 不能無怨望, 願王少自備也. 自太子居城父, 將兵, 外交諸侯, 且欲入爲亂矣." 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 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 因曰: "王獨柰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 無忌曰: "王今不制, 其事成矣. 王且見禽." 於是平王怒, 囚伍奢, 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 行未至, 奮揚使人先告太子: "太子急去, 不然將誅." 太子建亡奔宋. 

얼마 뒤(頃之), 비무기가(無忌) 또(又) 밤낮으로(日夜) 왕에게(於王) 태자의 단점을 말하길(言太子短曰): "태자가(太子) 진나라 여자 때문에(以秦女之故), 원망이 없을 수 없으니(不能無怨望), 원컨대(願) 왕께서는(王) 어느 정도(少) 스스로 대비하시기 바랍니다(自備也). 태자가 성보에 머물면서부터(自太子居城父), 군대를 거느리고(將兵), 밖으로 제후들과 교류하여(外交諸侯), 또(且) <도성에> 들어와(入) 난을 일으키려고 합니다(爲亂矣)."라고 했다. 평왕이(平王) 이에(乃) 그 태부 오사를 불러(召其太傅伍奢) 심문했다(考問之). 오사가(伍奢) 비무기가(無忌) 평왕에게(於平王) 태자를 헐뜯은 것을 알았고(讒太子), 이어 말하길(因曰): "왕께서는(王) 유독 어찌(獨柰何) 참언하는 소인배 때문에(以讒賊小臣) 골육지친을 멀리 하려고 하십니까(疏骨肉之親乎)?"라고 했다. 비무기가 말하길(無忌曰): "왕께서(王) 지금 제압하지 못하면(今不制),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其事成矣). 왕께서는(王) 또한(且) 사로잡힐 것입니다(見禽)."라고 했다. 이에(於是) 평왕이 노하여(平王怒), 오사를 가두고(囚伍奢, 而) 성보의 사마 분양으로 하여금(使城父司馬奮揚) 가서(往) 태자를 죽이도록 했다(殺太子). 행군이 이르지 못했을 때(行未至), 분양이(奮揚) 사람을 시켜(使人) 먼저 태자에게 고하기를(先告太子): "태자는(太子) 급히 떠나십시오(急去), 그렇지 않으면(不然)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將誅)."라고 했다. 태자 건이(太子建) 송나라로 탈출했다(亡奔宋). 

 

* 見禽(견금) : 포로가 됨. 禽은 擒과 같다.

 

無忌言於平王曰: "伍奢有二子, 皆賢, 不誅且爲楚憂. 可以其父質而召之, 不然且爲楚患." 王使使謂伍奢曰: "能致汝二子則生, 不能則死." 伍奢曰: "尙爲人仁, 呼必來. 員爲人剛戾忍訽, 能成大事, 彼見來之并禽, 其勢必不來." 

비무기가(無忌) 평왕에게 말하길(言於平王曰): "오사에게(伍奢) 자식이 둘 있는데(有二子), 모두 현명하니(皆賢), 죽이지 않으면 또(不誅且) 초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爲楚憂). 그 아버지를 인질로 하고 불러들일 수 있으니(可以其父質而召之), 그렇지 않으면(不然) 또(且) 초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爲楚患)."라고 했다. 왕이(王) 사자로 하여금(使使) 오사에게 말하길(謂伍奢曰): "너의 두 아들이 올 수 있다면(能致汝二子則) 살 것이고(生), 올 수 없다면(不能則) 죽을 것이다(死)."라고 했다. 오사가 말하길(伍奢曰): "오상의(尙) 사람됨이 어질어서(爲人仁), 부르면(呼) 반드시 올 것이다(必來). 오운의 사람됨이(員爲人) 굳세고 모질며(剛戾) 치욕을 참을 수 있으니(忍訽), 큰 일을 이룰 수 있어(能成大事), 그가(彼) 와서(來之) 함께 사로잡힐 것을(并禽) 알 수 있으므로(見), 그 기세가(其勢) 반드시 오지 않을 것닙니다(必不來)."라고 했다. 

 

* 剛戾忍訽(강려인구) : 성미가 깔깔하며 괴팍하고 치욕을 견딤. 戾는 포악하다. 訽는 치욕(恥辱).

 

王不聽, 使人召二子曰: "來, 吾生汝父; 不來, 今殺奢也." 伍尙欲往, 員曰: "楚之召我兄弟, 非欲以生我父也, 恐有脫者後生患, 故以父爲質, 詐召二子. 二子到, 則父子俱死. 何益父之死? 往而令讎不得報耳. 不如奔他國, 借力以雪父之恥, 俱滅, 無爲也." 伍尙曰: "我知往終不能全父命. 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 後不能雪恥, 終爲天下笑耳." 謂員: "可去矣!汝能報殺父之讎, 我將歸死." 尙旣就執, 使者捕伍胥. 伍胥貫弓執矢向使者, 使者不敢進, 伍胥遂亡. 聞太子建之在宋, 往從之. 奢聞子胥之亡也, 曰: "楚國君臣且苦兵矣." 伍尙至楚, 楚并殺奢與尙也. 

왕이 듣지 않고(王不聽), 사람을 시켜(使人) 두 아들을 부르며 말하길(召二子曰): "온다면(來), 내가(吾) 너의 아버지를 살려주고(生汝父); 오지 않으면(不來), 지금(今) 오사를 죽일 것이다(殺奢也)."라고 했다. 오상이(伍尙) 가려고 하자(欲往), 오운이 말하길(員曰): "초왕이(楚之) 우리 형제를 부른 것은(召我兄弟), 아버지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고(非欲以生我父也), 도망친 사람이 있어(有脫者) 훗날(後) 후환거리가 생길까 두려워한 것이고(生患), 그러므로(故) 아버지를(以父) 인질로 삼아(爲質), 두 자식을 속임수로 부르는 것입니다(詐召二子). 두 아들이 도착하면(二子到, 則) 아버지와 아들이(父子) 함께 죽을 것입니다(俱死). 아버지의 죽음에(父之死)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何益)? 간다면(往而) 원수로 하여금(令讎) 갚을 수 없게 될 뿐입니다(不得報耳). 다르 나라로(他國) 달아나(奔), 힘을 빌려서(借力以) 아버지의 치욕을 씻는 것만(雪父之恥) 못하니(不如), 함께 죽으면(俱滅),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無爲也)."라고 했다. 오상이 말하길(伍尙曰): "나도(我) 가더라도(往) 끝내(終) 아버지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음을(不能全父命) 안다(知). 그러나(然) 恨아버지가 나를 불러서(父召我以) 목숨을 구하려는데(求生而) 가지 않고(不往), 나중에(後) 치욕을 씻지 못하면(不能雪恥), 끝내(終)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爲天下笑耳)."라고 했다. 오운에게 말하길(謂員): "달아나라(可去矣)! 너는(汝)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殺父之讎) 복수할 수 있지만(能報), 나는(我) 돌아가 죽을 것이다(將歸死)."라고 했다. 오상이(尙) 나아가서(就) 붙잡히고 나서(執), 사자가(使者) 자서를 잡으려 했다(捕伍胥). 오자사가(伍胥) 활을 당겨(貫弓) 화살을 쥐고(執矢) 사자를 겨누자(向使者), 사자가(使者)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不敢進), 오자서가(伍胥) 마침내 도망갔다(遂亡).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聞太子建之在宋), 가서(往) 그를 따랐다(從之). 오사가(奢) 자서가 도망갔다는 것을 듣고(聞子胥之亡也), 말하길(曰): "초나라의(楚國) 군신이(君臣) 또한(且) 군대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苦兵矣)."라고 했다. 자상이 초나라에 이르자(伍尙至楚), 초나라가(楚) 오사와 오상을(奢與尙) 함께 죽였다(并殺也). 

 

* 雪父之恥(설부지치) :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씻다. 雪은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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