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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2/5] 아직 때가 아니니 기다려야 합니다

by प्रज्ञा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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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형을 잃고 송(宋)나라로 도망 온 오자서는 송나라의 화씨지란으로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나라 군주 경공의 부추김을 받아 정나라 군주를 없애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되었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망쳤다.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 "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太子乃還鄭.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產誅殺太子建. 

오자서가(伍胥) 송나라에 다다르고 나서(旣至宋), 송나라에(宋) 화씨의 난이 있었고(有華氏之亂), 이에(乃) 태자 건과 함께(與太子建俱) 정나라로 달아났다(奔於鄭). 정나라 사람들이(鄭人) 그를 매우 잘 대했다(甚善之). 태자 건이(太子建) 또(又) 진나라에 가자(適晉), 진 경공이 말하길(晉頃公曰): "태자가(太子) 이미 진나라에 잘 지내고(旣善鄭), 정나라가(鄭) 태자를 믿고 있다(信太子). 태자가(太子) 우리를 위해(爲我) 안에서 호응하면(內應, 而) 우리가(我) 그 바깥을 공격해서(攻其外),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滅鄭必矣). 정나라를 없애고(滅鄭而) 태자를 봉하겠다(封太子)."라고 했다. 태자가(太子) 이에(乃) 정나라에 돌아갔다(還鄭). 일이(事) 시기가 되지 못해서(未會), 공교롭게도(會) 자신의 사적인 일로(自私) 그 종자를 죽이려 했는데(欲殺其從者), 종자가(從者) 그 계획을 알고(知其謀), 이에(乃) 정나라에 그것을 고했다(告之於鄭). 정나라 정공이(鄭定公) 자산과 함께(與子產誅) 태자 건을 죽였다(殺太子建).

 

* 事未會(사미회) : 일의 시기가 오기 전에. 會는 시기(時機).

* 會自私(회자사) : 공교롭게도 자신의 사적인 일로. 會는 공교롭게도. 自私는 개인적인 일.

 

建有子名勝. 伍胥懼, 乃與勝俱奔吳. 到昭關, 昭關欲執之. 伍胥遂與勝獨身步走, 幾不得脫. 追者在後.

건에게(建) 아들이 있어(有子) 이름이 승이었다(名勝). 오자서가 두려워했고(伍胥懼), 이에(乃) 승과 함께(與勝) 모두(俱) 오나라로 달아났다(奔吳). 소관에 도착해서(到昭關), 소관의 <병사들이>(昭關) 그를 잡으려 했다(欲執之). 오자서가(伍胥) 승과 떨어져(遂與勝) 맨 몸으로(獨身) 도망갔는데(步走), 거의(幾) 벗어날 수 없었다(不得脫). 추격자가(追者) 뒤에 있었다(在後).

 

* 幾不得脫(기부득탈) : 거의 벗어날 수 없다. 幾는 거의. 자칫하면.

 

至江, 江上有一漁父乘船, 知伍胥之急, 乃渡伍胥. 伍胥旣渡, 解其劍曰: "此劍直百金, 以與父." 父曰: "楚國之法, 得伍胥者賜粟五萬石, 爵執珪, 豈徒百金劍邪!" 不受. 伍胥未至吳而疾, 止中道, 乞食. 至於吳, 吳王僚方用事, 公子光爲將. 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강에 이르러(至江), 강가에(江上) 한 어부가 있어(有一漁父) 배를 타고 있었는데(乘船), 오자서의 위급함을 알고(知伍胥之急), 이에(乃) 오자서를 건네주었다(渡伍胥). 오자서가(伍胥) 건너고 나서(旣渡), 그의 검을 풀어 말하길(解其劍曰): "이 검은(此劍) 백금의 가치가 있으니(直百金), 이것을(以) 그대에게 주겠소(與父)."라고 했다. 어부가 말하길(父曰): "초나라의 법에(楚國之法), 오자서를 잡은 사람에게(得伍胥者) 곡식 5만 석과(粟五萬石), 집규의 작위를 준다고 했는데(爵執珪), 어찌 다만(豈徒) 백금의 칼이겠소(百金劍邪)!"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不受). 오자서가(伍胥) 오나라에 도착하지 못하고(未至吳而) 병에 걸려(疾), 중도에 멈추어(止中道), 밥을 빌어 먹었다(乞食). 오나라에 이르렀을 때(至於吳), 오왕 요가(吳王僚) 막(方) 정권을 잡았고(用事), 공자 광이(公子光) 장군이 되었다(爲將). 오자서가 이에(伍胥乃) 공자 광으로 말미암아(因公子光以) 오왕을 뵙기를 청했다(求見吳王). 

久之, 楚平王以其邊邑鐘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 兩女子爭桑相攻, 乃大怒, 至於兩國舉兵相伐. 吳使公子光伐楚, 拔其鐘離、居巢而歸. 

한참이 지나(久之), 초 평왕이(楚平王) 그 국경 마을인(其邊邑) 종리와(鐘離與) 오나라 국경 마을인 비량씨가(吳邊邑卑梁氏) 모두(俱) 누에를 쳤는데(蠶), 양쪽 여자들이(兩女子) 뽕나무를 다투어(爭桑) 서로 공격한 것(相攻) 때문에(以), 이에 크게 화를 내고(乃大怒), 두 나라에서(於兩國) 군대를 일으켜(舉兵) 서로 쳐들어가기에 이르렀다(相伐). 오나라가(吳) 공자 광으로 하여금(使公子光)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하고(伐楚), 그 종리와 거소를 빼앗고(拔其鐘離居巢而) 돌아왔다(歸). 

 

伍子胥說吳王僚曰: "楚可破也. 願復遣公子光." 公子光謂吳王曰: "彼伍胥父兄爲戮於楚, 而勸王伐楚者, 欲以自報其讎耳. 伐楚未可破也." 伍胥知公子光有內志, 欲殺王而自立, 未可說以外事, 乃進專諸於公子光, 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오자서가(伍子胥) 오왕 요를 설득하여(說吳王僚) 말하길(曰): "초나라를(楚) 격파할 수 있습니다(可破也). 원컨대(願) 다시(復) 공자 광을 보내십시오(遣公子光)."라고 했다. 공자 광이(公子光) 오왕에게 말하길(謂吳王曰): "저(彼) 오자서의 부형이(伍胥父兄) 초나라에서(於楚) 죽임을 당해서(爲戮, 而) 왕이 초나라를 정벌할 것을 권하는 것이니(勸王伐楚者), 스스로(以自) 그 원수에에 보복하려는(報其讎) 것일 뿐입니다(耳). 초나를 정벌해서(伐楚) 격파할 수 없습니다(未可破也)."라고 했다. 오자서가(伍胥) 공자 광에게(公子光), 왕을 죽이고(殺王而)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는(自立), 내심이 있어(有內志), 바깥의 일로(以外事)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았고(未可說), 이에(乃) 공자 광에게(於公子光) 전제를 추천하고(進專諸), 물러나서(退而)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與太子建之子勝) 들에서 농사를 지었다(耕於野). 

五年而楚平王卒. 初, 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 及平王卒, 軫竟立爲後, 是爲昭王. 吳王僚因楚喪, 使二公子將兵往襲楚. 楚發兵絶吳兵之後, 不得歸. 吳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爲吳王闔廬. 闔廬旣立, 得志, 乃召伍員以爲行人, 而與謀國事. 

5년이 지나(五年而) 초 평왕이 죽었다(楚平王卒). 처음에(初), 평왕이(平王) 태자 건에게 빼앗은(所奪太子建) 진나라 여자가(秦女) 아들 진을 낳았는데(生子軫), 초 평왕이 죽음에 이르러(及平王卒), 진이 마침내(軫竟) 왕위에 올라(立) 뒤를 이었으니(爲後), 이 사람이(是) 소왕이다(爲昭王). 오왕 요가( 吳王僚) 초나라의 상을 이용해서(因楚喪), 두 공자의 장병으로 하여금(使二公子將兵) 가서(往) 초나라를 습격하도록 했다(襲楚). 초나라가(楚) 병사를 일으켜(發兵) 오나라의 뒤를 끊으니(絶吳兵之後), 돌아가지 못했다(不得歸). 오나라의 내부가(吳國內) 비게 되었고(空, 而) 공자 광이(公子光) 이에(乃) 전제를 시켜(令專諸) 오왕 요를 습격하여 죽이고(襲刺吳王僚而)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니(自立), 이 사람이(是) 오왕 합려다(爲吳王闔廬). 합려가 즉위하고 나서(闔廬旣立), 뜻을 얻으니(得志), 이에(乃) 오자서를 불러(召伍員) 행인으로 삼고(以爲行人, 而) 국사를 함께 도모했다(與謀國事). 

 

* 二公子(2공자) : 오왕(吳王) 요(僚)의 어머니가 같은 형제 개여(蓋余)와 촉용(燭庸)이다.

* 楚發兵絕吳兵之後(초발병절오병지후) : 오왕 요 13년 기원전 516년 봄, 초나라에 국상이 난 틈을 타서 공자 개여(盖餘)와 촉용(燭庸)이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의 육(六)과 잠(潛) 두 고을을 포위했다. 그러나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오나라 군사들의 퇴로를 끊으니 오나라 군사들은 본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사기 권 31, 吳太伯世家>

* 專諸襲刺吳王僚(전제습자오왕요) : 오왕 요 14년 기원전 515년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전제에게 구운 생선 요리를 왕에게 올리게 했는데, 생선의 뱃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왕 앞에 나아간 전제는 생선을 찢어 가르고 그 비수로 요를 찔렀다. 요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전제도 왕의 측근들에게 살해되었다. <사기 권 31, 吳太伯世家> <사기 자객열전>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 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 吳亦以嚭爲大夫.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 道絶不得歸. 後聞闔廬弑王僚自立, 遂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초나라에서(楚) 그 대신 백극완과 백주리가(其大臣郤宛伯州犁) 주살당하고(誅), 백주리의 손자(伯州犁之孫) 백비가(伯嚭) 오나라로 도망 왔고(亡奔吳), 오나라가(吳) 또한(亦)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以嚭爲大夫). 전왕 요가(前王僚) 두 공자의 장병을 보내서(所遣二公子將兵) 초나라를 쳐들어간 사람들은(伐楚者), 길이 끊어져(道絶) 돌아갈 수 없었다(不得歸). 나중에(後) 합려가(闔廬) 왕 요를 시해하고(弑王僚)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自立), 마침내(遂) 그 병사로(以其兵) 초나라에 항복하니(降楚), 초나라가(楚) 서 땅에(於舒) 그들을 봉했다(封之)

 

闔廬立三年, 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 拔舒, 遂禽故吳反二將軍. 因欲至郢, 將軍孫武曰: "民勞, 未可, 且待之." 乃歸. 

합려가(闔廬) 자리에 올라(立) 3년이 지나(三年), 이에(乃) 군대를 일으켜(興師) 오자서, 백비와 함께(與伍胥伯嚭) 초나라를 쳐들어가(伐楚), 서 땅을 빼앗고(拔舒), 마침내(遂) 옛 오나라의 배신자(故吳反) 두 장군을 사로잡았다(二將軍). 이에(因) 영읍으로 가려고 했지만(欲至郢), 장군 손무가 말하길(將軍孫武曰): "백성들이 치쳤으니(民勞), 아직 안됩니다(未可), 우선(且) 기다려야 합니다(待之)."라고 했다. 이에 돌아왔다(乃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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