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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2/5] 깽판 치는 자로와 낮잠 자는 재여 / ⑥仲由(중유 자로 子路, 季路) ⑦宰予(재여 자아 子我)

by प्रज्ञा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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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유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로(子路)다. 계로(季路)라고도 부르며 공자보다 9살 아래다. 본래 야인(野人) 출신으로 공자가 강론하는 자리에서 깽판 치다가 공자의 말에 감동받아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자의 말에 의하면 자로가 제자가 된 후에는 공자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공자는 그의 과한 용맹에 대해 ‘유(由)는 용맹을 좋아함이 나보다 지나치지만 취하여 쓸 바가 없다.’라고 염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위나라의 권력 다툼에 끼어 전쟁터에서 횡사하고 말았다. 공자는 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자로의 강직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예견했다고 한다. "아이고, 자로가 죽었겠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전에 자로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고 말았다. <위키백과>

 

6.仲由(중유)

 

仲由字子路, 卞人也. 少孔子九歲. 子路性鄙, 好勇力, 志伉直, 冠雄雞, 佩豭豚, 陵暴孔子. 孔子設禮稍誘子路, 子路後儒服委質, 因門人請爲弟子. 

중유는(仲由) 자가 자로이고(字子路), 변 사람이다(卞人也). 공자보다 9살 어렸다(少孔子九歲). 자로의 성품이 거칠고(子路性鄙), 힘쓰기를 좋아하고(好勇力), 뜻이 곧고 굳세며(志伉直), 수탉 꼬리로 관을 만들어 쓰고(冠雄雞), 수퇘지 가죽 장식을 허리에 차고(佩豭豚), 공자를 업신여기고 난폭하게 굴었다(陵暴孔子). 공자가 예를 말하고(孔子設禮) 자로를 점점 이끌어(稍誘子路), 자로가(子路) 나중에(後) 유자 옷을 입고(儒服) 예물을 바쳐서(委質), 문인을 통해(因門人) 제자가 되기를 요청했다(請爲弟子). 

 

* 伉直(항직): 곧고도 굳셈

* 儒服委質(유복위지) : 유생(儒生)의 옷을 입고 학생이 선생을 뵙는 예물을 올리다. 質(지)는 예물.

 

子路問政, 孔子曰: "先之, 勞之." 請益, 曰: "無倦." 子路問: "君子尚勇乎?" 孔子曰: "義之爲上. 君子好勇而無義則亂, 小人好勇而無義則盜."

자로가 정치를 묻자(子路問政),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먼저 하고(先之), 부지런히 해라(勞之)."라고 했다. 더 일러줄 것을 요구하자(請益), 말하길(曰): "게을리하지 마라(無倦)."라고 했다. 자로가 묻기를(子路問): "군자는(君子) 용맹을 숭상합니까(尚勇乎)?"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의리가(義之) 최고다(爲上). 군자가(君子) 용맹을 좋아하면서(好勇而) 의리가 없으면(無義則) 난을 일으키고(亂), 소인이(小人) 용맹을 좋아하면서(好勇而) 의리가 없으면(無義則) 도적이 된다(盜)."라고 했다.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孔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若由也, 不得其死然." "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 而不恥者, 其由也與!"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자로가(子路) <좋은 말을> 들은 것이 있어(有聞), 아직 잘 실천하지 못했는데(未之能行), 오직(唯) <또> 듣는 것이 있을까 걱정했다(恐有聞).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한마디 말로(片言) 송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可以折獄者), 아마도(其) 유일 것이다(由也與)!"라고 했고, "유는(由也) 용맹을 좋아하는 것이(好勇) 나를 뛰어넘지만(過我), 취할 것이 없다(無所取材)."라고 했고, "유는(若由也),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不得其死然)."라고 했고, "해진 솜옷을 입고(衣敝縕袍), 가죽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與衣狐貉者) 서더라도(立, 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不恥者), 아마도(其) 유일 것이다(由也與)!"라고 했고, "유는(由也) 당에 올랐지만(升堂矣),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다(未入於室也)."라고 했다. 

 

* 편언(片言)은 원고 또는 피고를 만나서 하는 말로 일방적인 말이다. 절(折)은 결단함이다.

* 폐(敝)는 해짐이다. 온(縕)은 수삼으로 둔 솜이다. 포(袍)는 옷에 솜을 둔 것이니, 이는 천한 옷이다. 호학(狐貉)은 여우나 담비의 가죽으로 갖옷을 만든 것이니, 귀한 옷이다.

 

季康子問: "仲由仁乎?" 孔子曰: "千乘之國可使治其賦, 不知其仁." 子路喜從游, 遇長沮、桀溺、荷蓧丈人. 子路爲季氏宰, 季孫問曰: "子路可謂大臣與?" 孔子曰: "可謂具臣矣." 

계강자가 묻기를(季康子問): "중유가 인한가요(仲由仁乎)?"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천승지국에서(千乘之國) 그 군대의 일을 다스릴 수 있지만(可使治其賦), 그가 인한 지는 알지 못합니다(不知其仁)."라고 했다. 자로가(子路) <공자를> 따라다니는 것을(從游) 좋아해서(喜), 장저, 걸익, 하조장인을 만났다(遇長沮桀溺荷蓧丈人). 자로가(子路) 계씨의 재가 되어(爲季氏宰), 계손이 물어 말하길(季孫問曰): "자로를(子路) 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可謂大臣與)?"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숫자를> 갖추는 신하라고 할만합니다(可謂具臣矣)."라고 했다.

子路爲蒲大夫, 辭孔子. 孔子曰: "蒲多壯士, 又難治. 然吾語汝:恭以敬, 可以執勇;寬以正, 可以比眾;恭正以靜, 可以報上." 

자로가(子路) 포의 대부가 되어(爲蒲大夫), 공자에게 <하직> 인사했다(辭孔子).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포에는(蒲) 장사가 많고(多壯士), 또(又) 다스리기 어렵다(難治). 그래서(然)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吾語汝): 공손하고(恭以) 공경하며(敬), 용맹한 사람을 잡을 수 있고(可以執勇): 관대하고(寬以) 올바르면(正), 백성을 따르게 할 수 있고(可以比眾); 공손하고 올바르며(恭正以) 편안하면(靜), 윗사람에 보답할 수 있다(可以報上)."라고 했다. 

 

* 比衆(비중) : 백성들이 따르다. 比는 친하다. 따르다는 뜻.

 

初, 衛靈公有寵姬曰南子. 靈公太子蕢聵得過南子, 懼誅出奔. 及靈公卒而夫人欲立公子郢. 郢不肯, 曰: "亡人太子之子輒在." 於是衛立輒爲君, 是爲出公. 

애초에(初), 위령공에게(衛靈公) 총애하는 첩이 있었는데(有寵姬) 남자라고 했다(曰南子). 령공의 태자(靈公太子) 괴외가(蕢聵) 남자에게 잘못하여(得過南子),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懼誅) 도망갔다(出奔). 영공이 죽음에 이르러(及靈公卒而) 부인이(夫人) 태자 영을 세우려고 했다(欲立公子郢). 영이 요구를 듣지 않고(郢不肯), 말하기를(曰): "도망간 태자의 아들(亡人太子之子) 첩이 있습니다(輒在)."라고 했다. 이에(於是) 위나라가 첩을 세우고(衛立輒) 임금이 되었으니(爲君), 이 사람이(是) 출공이다(爲出公).

 

* 不肯(불긍): 즐기어하지 아니함, 요구() 따위를 즐기어 듣지 아니함.

 

出公立十二年, 其父蕢聵居外, 不得入. 子路爲衛大夫孔悝之邑宰. 蕢聵乃與孔悝作亂, 謀入孔悝家, 遂與其徒襲攻出公. 出公奔魯, 而蕢聵入立, 是爲莊公. 

출공이 즉위하고(出公) 12년이 지나(立十二年), 그 아버지(其父) 괴외가 외국에 살면서(蕢聵居外), 들어오지 못했다(不得入). 자로가(子路) 위나라 대부(衛大夫) 공회의 읍재가 되었다(孔悝之邑宰). 괴외가(蕢聵) 이에(乃) 공회와 더불어(與孔悝) 난을 일으키려고(作亂), 공회의 집에 들어가 모의하고(謀入孔悝家), 마침내(遂) 그 무리와 더불어(與其徒) 출공을 습격했다(襲攻出公). 출공이(出公) 노나라로 달아나고(奔魯, 而) 괴외가 들어와 즉위하니(蕢聵入立), 이 사람이(是) 장왕이다(爲莊公).

 

方孔悝作亂, 子路在外, 聞之而馳往. 遇子羔出衛城門, 謂子路曰: "出公去矣, 而門已閉, 子可還矣, 毋空受其禍." 子路曰: "食其食者不避其難." 子羔卒去. 有使者入城, 城門開, 子路隨而入. 

막(方) 공회가 난을 일으켰을 때(孔悝作亂), 자로가 바깥에 있었는데(子路在外), 그 소식을 듣고(聞之而) 달려왔다(馳往). 자고가(子羔) 위나라 성문을 나오며(出衛城門) 만났는데(遇), 자로에게 말하길(謂子路曰): "출공이 달아났고(出公去矣, 而) 문이 이미 닫혔으니(門已閉), 그대는 돌아가는 것이 좋다(子可還矣), 공연히(空) 그 화를 당하지 말라(受其禍)."라고 했다.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그 녹봉을 먹는 사람이(食其食者) 그 난을 피할 수 없다(不避其難)."라고 했다. 자고는 결국 떠났다(子羔卒去). 사자가 있어(有使者) 성으로 들어가자(入城), 성문이 열렸는데(城門開), 자로가(子路) 따라서 들어갔다(隨而入).

 

造蕢聵, 蕢聵與孔悝登臺. 子路曰: "君焉用孔悝?請得而殺之." 蕢聵弗聽. 於是子路欲燔臺, 蕢聵懼, 乃下石乞、壺黶攻子路, 擊斷子路之纓. 子路曰: "君子死而冠不免." 遂結纓而死.

괴외를 만났는데(造蕢聵), 괴외와 공회가(蕢聵與孔悝) 대에 올라 있었다(登臺).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그대는(君) 어찌(焉) 공회를 등용하는가(用孔悝)? 청컨대(請) 그를 죽여라(得而殺之)."라고 했다. 괴외가 듣지 않았다(蕢聵弗聽). 이에(於是) 자로가(子路) 대를 불태우려고 하자(欲燔臺), 괴외가 두려워하여(蕢聵懼), 바로(乃) 석걸과 호엽을 내려보내(下石乞壺黶) 자로를 공격하며(攻子路), 자로의 갓끈을(子路之纓) 잘랐다(擊斷).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군자가 죽을 때는(君子死而) 관을 벗지 않는다(冠不免)."라고 했다. 마침내(遂) 갓끈을 매고 죽었다(結纓而死).

 

* 擊斷(격단): 쳐서 끊음, 함부로 처벌()함.

 

孔子聞衛亂, 曰: "嗟乎, 由死矣!" 已而果死. 故孔子曰: "自吾得由, 惡言不聞於耳." 是時子貢爲魯使於齊. 

공자가(孔子) 위나라에 난리가 났다는 것을 듣고(聞衛亂), 말하길(曰): "아(嗟乎), 자로가 죽겠구나(由死矣)!"라고 했다. 과연 결국 죽었다(已而果死).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길(故孔子曰): "내가(吾) 자로를 얻은 뒤로부터(得由), 나쁜 말이(惡言) 내 귀에(於耳) 들리지 않았다(不聞)."라고 했다. 이때에(是時) 자공이(子貢) 노나라를 위해(爲魯)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使於齊). 
  
7.宰予(재여)


宰予字子我. 利口辯辭. 既受業, 問: "三年之喪不已久乎?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既沒, 新穀既升, 鉆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於汝安乎?" 曰: "安." 「汝安則爲之. 君子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故弗爲也."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義也." 
재여는(宰予) 자가 자아다(字子我). 말주변이 있고(利口) 변론을 잘했다(辯辭). 수업을 받고 나서(既受業), 묻기를(問): "3년 상은(三年之喪) 너무 길지 않은지요(不已久乎)? 군자가(君子) 3년 동안(三年) 예를 행하지 않으면(不爲禮),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禮必壞); 3년 동안(三年) 음악을 하지 않으면(不爲樂), 음악이 반드시 무너집니다(樂必崩). 옛날 곡식이(舊穀) 이미 없어졌고(既沒), 햇곡식이(新穀) 이미 올라왔고(既升), 불 피우는 나무가(鉆燧) 바뀌었으니(改火), 1년이면(期) 그칠만하지 않을까요(可已矣)."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子曰): "너에게는(於汝) 편안한가(安乎)?"라고 했다. 말하길(曰): "편안합니다(安)."라고 했다. "네가 편안하면(汝安則) 그렇게 해라(爲之). 군자가(君子) 상을 당해서(居喪), 맛있는 음식이(食旨) 달지 않고(不甘), 음악을 듣는 것이(聞樂) 즐겁지 않고(不樂), 그러므로(故) 하지 않는 것이다(弗爲也)."라고 했다. 재아가 나가자(宰我出), 공자가 말하길(子曰): "재여가(予之) 불인하구나(不仁也)! 자식이 태어나고(子生) 3년이 지나서야(三年然後)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免於父母之懷). 무릇(夫) 3년의 상은(三年之喪), 천하에 통하는(天下之通) 도리다(義也)."라고 했다.

 

* 利口(이구) : 말주변이 있다. 말을 교묘하게 잘 함. 

* 鉆燧改火(첩수개화) : =鑽燧改火(찬수개화). 고대의 나무를 서로 비벼 불을 일으키는 방법.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나무가 다르다. 燧(수)는 부싯돌.

* 食旨(식지) : 맛있는 음식.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不可圬也." 宰我問五帝之德, 子曰: "予非其人也." 宰我爲臨菑大夫, 與田常作亂, 以夷其族, 孔子恥之. 

재여가 낮잠을 잤다(宰予晝寢). 공자가 말하길(子曰): "썩은 나무를(朽木) 조각할 수 없고(不可雕也), 썩은 흙담장을(糞土之墻) 흙손질 할 수 없다(不可圬也)."라고 했다. 재아가(宰我) 오제의 적을 묻자(問五帝之德), 공자가 말하길(子曰): "너는(予) 그런 사람이 아니다(非其人也)."라고 했다. 재아가(宰我) 임치의 대부가 되어(爲臨菑大夫), 전상과 더불어(與田常) 난을 일으켜서(作亂, 以) 그 일족이 없어졌고(夷其族), 공자가 부끄럽게 여겼다(孔子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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