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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3/6] ⑧ 端木賜(단목사 자공 子貢) (1/2) / 문일지십 문일지이(聞一知十 聞一知二)

by प्रज्ञा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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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단목사(端木賜). 자공은 자(字)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31살 연하였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언변에 뛰어났으며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또한, 장사에도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나무위키>

 

8. 端木賜(단목사 자공 子貢)

 

端木賜(단목사), 衛人(위인), 字子貢(자자공). 少孔子三十一歲(소공자삼십일세). 

단목사는(端木賜), 위나라 사람으로(衛人), 자는 자공이다(字子貢). 공자보다 31살 어렸다(少孔子三十一歲). 

 

子貢利口巧辭(자공리구교사), 孔子常黜其辯(공자상출기변). 問曰(문왈): "汝與回也孰愈(여여회야숙유)?" 對曰(대왈): "賜也何敢望回(사야하감망회)!回也聞一以知十(회야문일이지십), 賜也聞一以知二(사야문일이지이)." 子貢旣已受業(자공기이수업), 問曰(문왈): "賜何人也(사하인야)?" 孔子曰(공자왈): "汝器也(여기야)." 曰(왈): "何器也(하기야)?" 曰(왈): "瑚璉也(호련야)." 

자공이(子貢) 말을 잘했고(利口) 말솜씨가 있어(巧辭), 공자가(孔子) 늘(常) 언변을 배척하곤 했다(黜其辯). 물어 말하길(問曰): "너와 안회 중에(汝與回也) 누가 더 뛰어난가(孰愈)?"라고 했다.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제가(賜也) 어찌 감히(何敢) 안회를 바라보겠습니까(望回)! 안회는(回也) 하나를 들으면(聞一以) 열을 알고(知十), 저는(賜也) 하나를 들으면(聞一以) 둘을 압니다(知二)."라고 했다. 자공이(子貢) 수업을 끝내고 나서(旣已受業), 물어 말하길(問曰): "저는(賜) 어떤 사람인가요(何人也)?"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너는 그릇이다(汝器也)."라고 했다. 말하길(曰): "어떤 그릇입니까(何器也)?"라고 했다. 말하길(曰): "호련이다(瑚璉也)."라고 했다. 

 

* 利口(이구): 말을 교묘하게 잘함

 

陳子禽問子貢曰(진자금문자공왈): "仲尼焉學(중니언학)?" 子貢曰(자공왈): "文武之道未墜於地(문무지도미추어지), 在人(재인), 賢者識其大者(현자지기대자), 不賢者識其小者(불현자지기소자), 莫不有文武之道(막불유문무지도). 夫子焉不學(부자언불학), 而亦何常師之有(이역하상사지유)!" 又問曰(우문왈): "孔子適是國必聞其政(공자적시국필문기정). 求之與(구지여)?抑與之與(억여지여)?" 子貢曰(자공왈):"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부자온량공검양이득지). 夫子之求之也(부자지구지야), 其諸異乎人之求之也(기제이호인지구지야)." 

진자금이(陳子禽) 자공에게 물어 말하길(問子貢曰): "중니는(仲尼) 어디에서 배웠습니까(焉學)?"라고 했다.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문왕과 무왕의 도가(文武之道) 아직(未)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墜於地), 사람들에게 <남아> 있으니(在人), 현자가(賢者) 그 큰 것을 알고(識其大者), 불현자는(不賢者) 그 작은 것을 알아서(識其小者), 누구도(莫) 문무의 도를(文武之道) 갖지 않은 사람이 없다( 不有 ). 부자는(夫子) 어디에서든(焉) 배우지 못했을 것이며(不學, 而) 또한(亦) 어찌(何) 일정한 시승이(常師之) 있겠는가(有)!"라고 했다. 또 묻기를(又問曰): "공자께서(孔子) 어느 나라에 가면(適是國) 반드시(必) 그 나라의 정치를 듣습니다(聞其政). 구한 것인가요(求之與)? 아니면(抑) 주어지는 것인가요(與之與)?" 자공이 말하길(子貢曰):"부자께서는(夫子) 온화함, 선량함, 공경함, 검소함과 겸양으로(溫·良·恭·儉·讓以) 얻었다(得之). 선생님이 구하신 것이(夫子之求之也), 아마도(其)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乎人之求之) 다를 것이다(也)."라고 했다.

 

子貢問曰(자공문왈): "富而無驕(부이무교), 貧而無諂(빈이무첨), 何如(하여)?" 孔子曰(공자왈): "可也(가야); 不如貧而樂道(불여빈이락도), 富而好禮(부이호례)." 

자공이 물어 말하길(子貢問曰): "부유하면서도(富而) 교만하지 않고(無驕),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면(貧而無諂), 어떠한가요(何如)?"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좋지만(可也);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貧而樂道),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富而好禮) 것만 못하다(不如)."라고 했다. 

 

田常欲作亂於齊(전상욕작란어제), 憚高·國·鮑·晏(탄고국포안), 故移其兵欲以伐魯(고이기병용기벌노). 孔子聞之(공자문지), 謂門弟子曰(위문제자왈): "夫魯(부노), 墳墓所處(분묘소처), 父母之國(부모지국), 國危如此(국위여차), 二三子何為莫出(이삼자하위막출)?" 子路請出(자로청출), 孔子止之(공자지지). 子張·子石請行(자장,자석청행), 孔子弗許(공자불허). 

전상이(田常) 제나라에서(於齊) 난리를 일으키려고 했지만(欲作亂), 고씨, 국씨, 포씨, 안씨가 두려웠고(憚高·國·鮑·晏),憚高·國·鮑·晏), 그러므로(故) 그 군대를 움직여(移其兵) 노나라를 치려고 했다(欲以伐魯). 공자가 이것을 듣고(孔子聞之), 문하 제자들에게 말하길(謂門弟子曰): "노나라는(夫魯),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墳墓所處), 부모의 나라인데(父母之國), 나라의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國危如此), 그대들은(二三子) 어찌(何為) 아무도 나서지 않는가(莫出)?"라고 했다. 자로가 나서기를 청하자(子路請出), 공자가 막았다(孔子止之). 자장과 자석이 가기를 청했는데(子張·子石請行),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孔子弗許). 

子貢請行(자공청행), 孔子許之(공자허지). 遂行(수행), 至齊(지제), 說田常曰(세전상왈): "君之伐魯過矣(군지벌노과의). 夫魯(부노), 難伐之國(난벌지국), 其城薄以卑(기성박이비), 其地狹以泄(기지협이설), 其君愚而不仁(기군우이불인), 大臣偽而無用(대신위이무용), 其士民又惡甲兵之事(기사민우오갑병지사), 此不可與戰(차불가여전). 君不如伐吳(군불요벌오). 夫吳(부오), 城高以厚(성고이후), 地廣以深(지광이심), 甲堅以新(갑견이신), 士選以飽(사선이포), 重器精兵盡在其中(중기정병진재기중), 又使明大夫守之(우사명대부수지), 此易伐也(차이벌야)." 

자공이 가기를 청하자(子貢請行), 공자가 허락했다(孔子許之). 마침내 길을 떠나(遂行), 제나라에 이르러(至齊), 전상에게 유세하며 말하길(說田常曰): "그대가(君之) 노나라를 치는 것은(伐魯) 과하다(過矣). 노나라는(夫魯), 정벌하기 어려운 나라이고(難伐之國), 그 성벽이(其城) 얇고 낮으며(薄以卑), 그 해자가(其地) 좁고 얕으며(狹以泄), 그 임금이(其君) 어리석고 불인하며(愚而不仁), 대신이(大臣) 거짓스럽고 무능하며(偽而無用), 그 사와 백성이(其士民) 또한(又) 싸우기를 싫어하니(惡甲兵之事), 이것은(此) 더불어 전쟁할 수 없습니다(不可與戰). 그대가(君) 오나라를 정벌하는 것만 못합니다(不如伐吳). 오나라는(夫吳), 성이 높고 두터우며(城高以厚), 해자가 넓고 깊으며(地廣以深), 무기가 견고하고 새것이며(甲堅以新), 사졸이 선발되어(정예이고) 배부르고(양식이 충분하고)(士選以飽), 중무기와 정예 병사가(重器精兵) 모두(盡) 그 안에 있으며(在其中), 또(又) 밝은 대부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으니(使明大夫守之), 이것은(此) 쉽게 칠 수 있습니다(易伐也)."라고 했다.

 

* 其地狹以泄(기지협이설) :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地는 池라 했고, 泄은 淺이라 하였다. 池(지)는 해자(垓子, 성을 지키기 위해 성 주위에 둘러 판 못)다.

 

田常忿然作色曰(전상분연작색왈): "子之所難(자지소난), 人之所易(인지소이); 子之所易(자지소이), 人之所難(인지소난):而以教常(이이교상), 何也(하야)?" 

전상이(田常) 성을 내며(忿然) 얼굴빛을 바로 하고 말하길(作色曰): "그대가 어렵다고 한 것은(子之所難), 사람들이 쉽다고 하고(人之所易); 그대가 쉽다고 한 것은(子之所易),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니(人之所難): 그것으로(而以) 나를 가르치는 것은(教常), 무엇인가(何也)?"라고 했다.

 

子貢曰(자공왈): "臣聞之(신문지), 憂在內者攻彊(우재내자공강), 憂在外者攻弱(우재외자공약). 今君憂在內(금군우재내). 吾聞君三封而三不成者(오문군삼봉이삼불성자), 大臣有不聽者也(대신유불청자야). 今君破魯以廣齊(금군파노이광제), 戰勝以驕主(전승이교주), 破國以尊臣(파국이존신), 而君之功不與焉(이군지공불여언), 則交日疏於主(즉교일소어주).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신이 듣건대(臣聞之), 걱정거리가 나라 안에 있는 사람은(憂在內者) 강한 나라를 치고(攻彊), 걱정거리가 바깥에 있는 사람은(憂在外者) 약한 나라를 친다고 합니다(攻弱). 지금(今) 그대의 걱정거리가(君憂) 안에 있습니다(在內). 제가 듣건대( 吾聞) 임금이(君) 세 번 봉하려고 했지만(三封而) 세 번 이루지 못한 것은(三不成者), 대신 중에(大臣) 듣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有不聽者也). 지금(今) 그대가(君) 노나라를 격파하고(破魯以) 제나라의 땅을 넓히면(廣齊), 전쟁에서 승리해서(戰勝以) 임금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고(驕主), 노나라를 격하해서(破國以) 대신들이 존귀하게 되어(尊臣, 而) 그대의 공이(君之功) 주어지지 않는다면(不與焉, 則) 날로(交日) 임금과 멀어질 것입니다(疏於主). 

是君上驕主心(시군상교주심), 下恣群臣(하자군신), 求以成大事(구이성대사), 難矣(난의). 夫上驕則恣(부상교즉자), 臣驕則爭(신교즉쟁), 是君上與主有卻(시군상여주유각), 下與大臣交爭也(하여대신교쟁야). 如此(여차), 則君之立於齊危矣(즉군지립어제위의). 故曰不如伐吳(고왈불여벌오). 伐吳不勝(벌오불승), 民人外死(민인외사), 大臣內空(대신내공), 是君上無彊臣之敵(시군상무강신지적), 下無民人之過(하무문인지과), 孤主制齊者唯君也(고주제제자유군야)." 

이로써(是) 그대가(君) 위로는(上) 군주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고(驕主心), 아래로(下) 군신을 방자하게 만들면(恣群臣), 구하여(求以) 큰 일을 이루는 것이(成大事), 어렵습니다(難矣). 무릇(夫) 윗사람이 교만하면(上驕則) 방자해지고(恣), 신하가 교만하면(臣驕則) 다투니(爭), 이로써(是) 그대는(君) 위로(上) 군주와 멀어짐이 있게 되고(與主有卻), 아래로(下) 대신과 더불어 서로 다투게 됩니다(與大臣交爭也). 이와 같으면(如此, 則) 그대가(君之) 제나라에서 설 곳이 위태롭습니다(立於齊危矣). 그러므로 말하길(故) 오나라를 정벌하는 것만 못하다(不如伐吳)라고 했습니다(曰). 오나라를 쳐서(伐吳) 이기지 못하면(不勝), 백성들이 바깥에서 죽고(民人外死), 대신들이(大臣) 안에서 비게 되어(內空), 이것은(是) 그대가(君) 위로는(上) 강한 신하인 적이 없고(無彊臣之敵), 아래로는(下) 백성의 허물이 없게 되니(無民人之過), 군주를 고립시켜(孤主) 제나라를 통제하는 사람은(制齊者) 오직(唯) 그대일 것입니다(君也)."라고 했다.


田常曰(전상왈): "善(선). 雖然(수연), 吾兵業已加魯矣(오병업이가노의), 去而之吳(거이지오), 大臣疑我(대신의아), 柰何(내하)?" 子貢曰(자공왈): "君按兵無伐(군안병무벌), 臣請往使吳王(신청왕사오왕), 令之救魯而伐齊(영지구노이벌제), 君因以兵迎之(군인이병영지)." 田常許之(전상허지), 使子貢南見吳王(사자공남현오왕). 

전상이 말하길(田常曰): "좋다(善). 그렇지만(雖然), 나의 병사가(吾兵) 벌써(業已) 노나라를 공격하는데(加魯矣), 물려서(去而) 오나라로 가면(之吳), 대신들이 나를 의심할 것이니(大臣疑我), 어찌하면 되는가(柰何)?"라고 했다.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그대가(君) 군대를 멈추고(按兵) <노나라를> 치지 않으면(無伐), 신이(臣) 청컨대(請) 사신으로 오왕에게 가서(往使吳王), 그로 하여금(令之) 노나라를 구원하고(救魯而) 제나라를 치도록 할 것이니(伐齊), 그대가(君) 따라서(因) 군대로(兵) 맞이하면 됩니다(迎之)."라고 했다. 田전상이 허락하고(常許之), 자공으로 하여금(使子貢) 남으로 가서(南) 오왕을 만나도록 했다(見吳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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