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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5/6] ⑨言偃(언언 자유) ⑩卜商(복상 자하) ⑪顓孫師(단손사 자장) ⑫曾參(증삼 자여) ⑬澹台滅明(담대멸명 자우)

by प्रज्ञा 2024.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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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言偃(언언, 子游자유) / 牛刀割鷄(우도할계,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言偃(언언), 吳人(오인), 字子游(자자유). ​少孔子四十五歲(소공자사십오세). 

언언은(言偃), 오나라 사람이고(吳人), 자는 자유다(字子游). 공자보다 45세 어리다(​少孔子四十五歲). 

子游旣已受業(자유기이수업), 爲武城宰(위무성재). 孔子過(공자과), 聞弦歌之聲(문현가지성). 孔子莞爾而笑曰(공자완이이소왈): "割雞焉用牛刀(할계언용우도)?" 

자유가(子游) 이미(旣已) 가르침을 받고 나서(受業), 무성의 읍재가 되었다(爲武城宰). 공자가 지나다가(孔子過), 거문고 타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聞弦歌之聲). 공자가(孔子) 빙긋이 웃으며 말하기를(莞爾而笑曰): "닭 잡는데(割雞) 어찌(焉) 소 잡는 칼을 쓰느냐(用牛刀)?"라고 했다.

子游曰(자유왈): "昔者偃聞諸夫子曰(석자언문제부자왈), 君子學道則愛人(군자학도즉애인), 小人學道則易使(소인학도즉이사)." 

자유가 말하길(子游曰): "예전(昔者) 제가(偃) 선생님께 들었는데(聞諸夫子曰), 군자는(君子) 도를 배우면 남을 사랑하고(學道則愛人), 소인은(小人)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學道則易使)."라고 했습니다. 

孔子曰(공자왈): "二三子(이삼자), 偃之言是也(언지언시야). 前言戲之耳(전언희지이)." 孔子以爲子游習於文學(공자이위자유습어문학).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제자들아(二三子), 자유의 말이 옳다(偃之言是也). 아까 한 말은(前言) 농담일 뿐이다(戲之耳)."라고 했다. 공자는(孔子) 자유가(子游) 문학에 뛰어나다고 여겼다(以爲習於文學). 

10.卜商(복상 子夏 자하) / 過猶不及(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卜商字子夏(복상자자하). 少孔子四十四歲(소공자사십사세). 

복상은 자가 자하다(卜商字子夏).공자보다 44살 어리다( 少孔子四十四歲). 

子夏問(자하문): "'巧笑倩兮(교소천혜), 美目盼兮(미목반혜), 素以爲絢兮(소이위현혜)', 何謂也(하위야)?" 

자하가 묻기를(子夏問): "'고운 미소와(巧笑) 예쁜 보조개(倩兮), 아름다운 눈과(美目) 또렷한 눈동자(盼兮), 흰 바탕에(素以) 색칠했구나(爲絢兮)'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요(何謂也)?"라고 했다. 

子曰(자왈): "繪事後素(회사후소)." 曰(왈): "禮後乎(예후호)?" 孔子曰(공자왈): "商始可與言詩已矣(상시가여언시이의)." 

공자가 말하길(子曰): "그림 그리는 일은(繪事) 흰 바탕보다 뒤에 한다(後素)."라고 했다. <자하가> 말하기를(曰): "예는 나중인가요(禮後乎)?"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상이(商) 비로소(始) 더불어 시를 말할만 하구나(可與言詩已矣)." 

子貢問(자공문): "師與商孰賢(사여상숙현)?" 子曰(자왈): "師也過(사야과), 商也不及(상야불급)." "然則師愈與(연즉사유여)?" 曰(왈): "過猶不及(과유불급)." 

자공이 묻기를(子貢問): "사와 상 중에서(師與商) 누가 더 현명한가요(孰賢)?"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 子曰): "사는 지나치고(師也過), 상은(商也) 미치지 못한다(不及)."라고 했다. "그렇다면(然則) 사가 더 뛰어난 가요(師愈與)?"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曰): "지나침은(過) 미치지 못함과 같다(猶不及)."라고 했다. 


子謂子夏曰(자위자하왈): "汝爲君子儒(여위군자유), 無爲小人儒(무위소인유)." 

공자가(子) 자하에게 말하길(謂子夏曰): "너는 군자유가 되어라(汝爲君子儒), 소인유가 되지 말아라(無爲小人儒)."라고 했다.

孔子旣沒(공자기몰), 子夏居西河教授(자하거서하교수), 爲魏文侯師(위위문후사). 其子死(기자사), 哭之失明(곡지실명). 

공자가(孔子) 죽고 나서(旣沒), 자하가(子夏) 서하에 살면서(居西河) 가르침을 전수하다가(教授),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다(爲魏文侯師). 그의 자식이 죽자(其子死), 곡하다가(哭之) 눈이 멀었다(失明). 

11. 顓孫師(전손사 子張 자장)

 

孫師(전손사), 陳人(진인), 字子張(자자장). 少孔子四十八歲(소공자사십팔세). 
전손사는(顓孫師), 진나라 사람이다(陳人), 자는 자장이다(字子張). 공자보다 48살 어리다(少孔子四十八歲). 


子張問干祿(자장문간록), 孔子曰(공자왈): "多聞闕疑(다문궐의), 慎言其餘(신언기여), 則寡尤(즉과우);多見闕殆(다견궐태), 慎行其餘(신행기여), 則寡悔(즉과회). 言寡尤(언과우), 行寡悔(행과회), 祿在其中矣(녹재기중의)." 

자장이(子張) 벼슬 얻는 방법을 물었고(問干祿),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많이 듣고(多聞) 의심스러운 것은 버리고(闕疑),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慎言其餘, 則) 과실이 적고(寡尤); 많이 보고(多見) 위태로운 것을 버리고(闕殆),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하면(慎行其餘, 則) 후회할 일이 적다(寡悔). 말에(言) 허물이 적고(寡尤), 행동에(行) 후회할 일이 적으면(寡悔), 벼슬이(祿) 그 가운데 있다(在其中矣)."라고 했다. 

他日從在陳蔡閒(타일종재진채간), 困(곤), 問行(문행). 孔子曰(공자왈): "言忠信(언충신), 行篤敬(행독경), 雖蠻貊之國行也(수만맥지국행야);言不忠信(언불충신), 行不篤敬(행불독경), 雖州裏行乎哉(수주리행호재)!立則見其參於前也(입즉견기삼어전야), 在輿則見其倚於衡(재여즉견기의어형), 夫然後行(부연후행)."  子張書諸紳(자장서제신). 

나중에(他日) <공자를> 따라서(從)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 있다가(在陳蔡閒), 곤란을 겪고(困), 행동거지의 도리를 물었다(問行).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말이(言) 진실하고(忠信), 행동이(行)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篤敬), 비록(雖) 오랑캐의 나라에서도(蠻貊之國) 행해질 것이고(行也); 말이(言) 진실하지 않고(不忠信), 행동이(行) 독실하고 공경스럽지 않으면(不篤敬), 비록(雖) <중원의> 동네라 하더라도(州裏) 행해질 수 있겠는가(行乎哉)! 일어서면(立則) 앞에서(於前) 그것이 나오는 것을 보고(見其參也), 수레에 있으면(在輿則) 멍에에(於衡) 그것이 의지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見其倚), 그런 뒤에 행해질 것이다(夫然後行)."라고 했다.자장이 허리띠에 그것을 적었다(子張書諸紳). 

 

* 참(參)은 “가서 끼여들지 말라(毋往參焉).”는 말의 참(參)과 같이 읽고, 나와 서로 참여함을 말한다. 형(衡)은 멍에다.

 

子張問(자장문): "士何如斯可謂之達矣(사하여사가위지달의)?" 孔子曰(공자왈): "何哉(하재), 爾所謂達者(이소위달자)?" 子張對曰(자장대왈): "在國必聞(재국필문), 在家必聞(재가필문)." 

자장이 묻기를(子張問): "선비가(士) 어떠하면(何如) 곧(斯) 통달했다고 말할만할까요(可謂之達矣)?"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무엇인가(何哉), 네가(爾) 말하는(所謂) 통달이란 것이(達者)?"라고 했다. 자장이 대답하여 말하길(子張對曰): "나라에서(在國) 반드시 명성이 들리고(必聞), 집안에서(在家) 반드시 명성이 들리는 것입니다(必聞)."라고 했다. 

孔子曰(공자왈): "是聞也(시문야), 非達也(비달야). 夫達者(부달자), 質直而好義(질직이호의), 察言而觀色(찰언이관색), 慮以下人(여이하인), 在國及家必達(재국급가필달). 夫聞也者(부문야자), 色取仁而行違(색취인이생위), 居之不疑(거지불의), 在國及家必聞(재국급가필문)."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그것은(是) 소문난 것이고(聞也), 통달한 것이 아니다(非達也). 통달한 사람이란(夫達者), 질박하고 정직하며(質直而) 의를 좋아하고(好義), 말을 살피고(察言而) 얼굴빛을 보고(觀色), 생각해서(慮以) 남에게 낮추니(下人), 나라와 집안에서(在國及家) 반드시 통달한다(必達). 소문난 사람은(夫聞也者), 얼굴빛은 인을 취하지만(色取仁而) 행실이 어긋나고(行違), 머물면서도(居之) 의심하지 않으니(不疑), 나라와 집안에서(在國及家) 반드시 소문난다(必聞)." 

12.曾參(증삼 子輿 자여) / 효경을 짓고 노나라에서 죽었다 / 戰戰兢兢(전전긍긍)

 

曾參(증삼), 南武城人(남무성인), 字子輿(자자여). 少孔子四十六歲(소공자사십육세). 

증삼은(曾參), 남무성 사람이고(南武城人), 자는 자여다(字子輿). 공자보다 46살 어렸다(少孔子四十六歲). 

孔子以爲能通孝道(공자이위능통효도), 故授之業(고수지업). 作《孝經》(작<효경>). 死於魯(사어노). 

공자가(孔子) 효도를 잘한다고 여겼고(以爲能通孝道), 그러므로(故) 그에게 학업을 전했다(授之業). 효경을 지었다(作《孝經》). 노나라에서 죽었다(死於魯). 

13. 澹台滅明(담대멸명 子羽 자우) / 지름길로 다니지 않았다 / 行不由徑(행유불경)

 

澹臺滅明(담대멸명), 武城人(무성인), 字子羽(자자우). 少孔子三十九歲(소공자삼십구세).  狀貌甚惡(상모심악). 

담대멸명은(澹臺滅明), 무성 사람이고(武城人), 자는 자우다(字子羽). 공자보다 39살 어렸다(少孔子三十九歲). 얼굴이(狀貌) 매우 못생겼다(甚惡). 

 

* 狀貌(상모), 相貌(상모): 얼굴의 생김새

 

欲事孔子(욕사공자), 孔子以爲材薄(공자이위재박). 旣已受業(기이수업), 退而修行(퇴이수행), 行不由徑(행불유경), 非公事不見卿大夫(비공사불현경대부). 

공자를 모시려고 했으나(欲事孔子), 공자가(孔子) 재주가 없다고 여겼다(以爲材薄). 학업을 전수받고 나서(旣已受業), 물러나(退而) 행실을 닦고(修行), 다니는데(行) 지름길을 거치지 않고(不由徑), 공적인 일이 아니면(非公事) 경대부를 만나지 않았다(不見卿大夫). 

南游至江(남유지강), 從弟子三百人(종제자삼백인), 設取予去就(설취여거취), 名施乎諸侯(명시호제후). 

남쪽으로 떠돌다가(南游) 강가에 이르렀는데(至江), 따르는 제자가(從弟子) 300 명이고(三百人), <재물을> 취하고 주고(取予) <벼슬을> 떠나고 나아가는 것을(去就) <분명하게> 말해서(), 명성이(名) 제후들에게 퍼졌다(施乎諸侯). 

孔子聞之(공자문지), 曰(왈): "吾以言取人(오이언취인), 失之宰予(실지재여);以貌取人(이모취인), 失之子羽(실지자우)." 

공자가 소문을 듣고 말하길(孔子聞之, 曰): "내가(吾) 말로(以言) 사람을 취했다가(평가했다가)(取人), 재여에게 실수했고(失之宰予); 외모로(以貌) 사람을 취했다가(평가했다가)(取人), 자우에게 실수했다(失之子羽)."라고 했다.

14. 宓不齊(복부제 子賤 자천)

 

宓不齊字子賤(복부제자자천). 少孔子三十歲(소공자삼십세). 

복부제의 자는 자천이다(宓不齊字子賤). 공자보다 30살 어렸다(少孔子三十歲). 

孔子謂子賤(공자위자천), "君子哉(군자재)!魯無君子(노무군자), 斯焉取斯(사언취사)?" 

공자가(孔子) 자천을 평가하기를(謂子賤), "군자답구나(君子哉)! 노나라에(魯) 군자가 없다면(無君子, 斯) 어디서 이런 것을 취했겠는가(焉取斯)?"라고 했다. 

子賤爲單父宰(자천위선보재), 反命於孔子(반명어공자), 曰(왈): "此國有賢不齊者五人(차국유현부제자오인), 教不齊所以治者(교부제소이치자)." 孔子曰(공자왈): "惜哉不齊所治者小(석재부제소치자소), 所治者大則庶幾矣(소치자대즉서기의)." 

자천이(子賤) 단보의 재가 되어(爲單父宰), 공자에게 보고하여 말하길(反命於孔子, 曰): "이 나라에(此國) 부제(저)보다 오진 사람이 다섯 있으니(有賢不齊者五人), 다스리는 도리로(所以治者) 저를 가르쳤습니다( 教不齊)."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아깝구나(惜哉) 네가 다스리는 곳이(不齊所治者) 작구나(小), 다스리는 곳이 크면(所治者大則) 거의 경지를 이루었을 텐데(庶幾矣)."라고 했다.

 

* 反命(반명), 復命(복명): 명령(命令) 받은 일을 집행(執行)하고 나서 그 결과(結果)를 보고(報告)함.

 

15. 原憲(원헌 子思 자사) / 邦有道 邦無道穀(방유도곡 방무도곡)

 

原憲字子思(원헌자자사). 子思問恥(자사문치). 孔子曰(공자왈): "國有道(국유도), 穀(곡), 國無道(국무도), 穀(곡), 恥也(치야)." 

원헌의 자는 자사다(原憲字子思). 자사가 부끄러움을 물었다(子思問恥).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나라에 도가 있는데(國有道), 녹봉을 먹기만 하고(穀), 나라에 도가 없는데(國無道), 녹봉을 받는 것이(穀), 부끄러움이다(恥也)."라고 했다. 

子思曰(자사왈): "克、伐、怨、欲不行焉(극벌원욕불행언), 可以爲仁乎(가이위인호)?" 孔子曰(공자왈): "可以爲難矣(가이위난의), 仁則吾弗知也(인즉오불지야)." 

자사가 말하길(子思曰): "이기려는 마음, 자랑하려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욕심부리는 마음을(克伐怨欲) 행하지 않으면(不行焉), 인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可以爲仁乎)?"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실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지만(可以爲難矣), 인이라면(仁則) 내가 알지 못하겠다(吾弗知也)."라고 했다. 

孔子卒(공자졸), 原憲遂亡在草澤中(원헌수망재초택중). 子貢相衛(자공상위), 而結駟連騎(이결사연기), 排藜藿入窮閻(배려곽입궁염), 過謝原憲(과사원헌). 憲攝敝衣冠見子貢(헌섭폐의관견자공). 

공자가 죽고(孔子卒), 원헌이(原憲) 마침내 숨어서(遂亡) 풀이 많은 늪지에 살았다(在草澤中). 자공이(子貢) 위나라에서 재상이 되고(相衛, 而) 사두마차와(結駟) 기마병을 끌고(連騎), 명아주와 콩잎을 헤치고(排藜藿) 가난한 집에 들어와(入窮閻), 원헌에게 인사했다(過謝原憲). 원헌이(憲) 해진 옷과 관을 착용하고(攝敝衣冠) 자공을 만났다(見子貢). 

子貢恥之(자공치지), 曰(왈): "夫子豈病乎(부자기병호)?" 原憲曰(원헌왈): "吾聞之(오문지), 無財者謂之貧(무재자위지빈), 學道而不能行者謂之病(학도이불능행위자위지병). 若憲(약헌), 貧也(빈야), 非病也(비병야)." 子貢慚(자공참), 不懌而去(불역이거), 終身恥其言之過也(종신치기언지과야). 

자공이 부끄러워하며 말하길(子貢恥之, 曰): "선생은 어찌(夫子豈) 병이 있는 것인가(病乎)?"라고 했다. 원헌이 말하길(原憲曰): "내가 듣기로(吾聞之), 재물이 없는 사람을(無財者) 가난하다고 하고(謂之貧), 도를 배웠지만(學道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不能行者) 병들었다고 한다(謂之病). 나 같은 경우는(若憲), 가난하지만(貧也), 병든 것이 아니다(非病也)."라고 했다. 자공이 부끄러워하며(子貢慚), 언짢아하며 떠나고(不懌而去), 종신토록(終身) 그 말실수를 부끄러워했다(恥其言之過也). 

16. 公冶長(공야장 子長 자장) / 長可妻也(장가처야, 사위 삼을만 하다)

 

公冶長(공야장), 齊人(제인), 字子長(자자장). 

공야장은(公冶長), 제나라 사람이고(齊人), 자는 자장이다(字子長). 

孔子曰(공자왈): "長可妻也(장가처야), 雖在累紲之中(수재루설지중), 非其罪也(비기죄야)." 以其子妻之(이기자처지).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장은(長) 사위 삼을만하니(可妻也), 비록(雖) 죄인의 몸으로 옥중에 있지만(在累紲之中), 그 사람의 죄가 아니다(非其罪也)."라고 했다. 자기 딸을(以其子) 그에게 시집보냈다(妻之). 

17. 南宮括(남궁괄 子容 자용)

 

南宮括字子容(남궁괄자자용). 

남궁괄은(南宮括) 자가 자용이다(字子容). 

問孔子曰(문공자왈): "羿善射(예선사), 奡盪舟(오탕주), 俱不得其死然(구부득기사연);禹稷躬稼而有天下(우직궁가이유천하)?" 孔子弗答(공자불답). 容出(용출), 孔子曰(공자왈): "君子哉若人(군자재약인)!上德哉若人(상덕재약인)!"

공자에게 물어 말하길(問孔子曰): "예는(羿) 활을 잘 쐈고(善射), 오는(奡) <육지에서> 배를 끌었지만(盪舟), 모두(俱) 제대로 죽지 못했고(不得其死然); 우와 직은(禹稷) 몸소 농사지었지만(躬稼而) 천하를 가진 것은 왜인가요(有天下)?"라고 했다. 공자가 대답하지 않았다(孔子弗答). 남궁괄이 나가자(容出),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군자로구나(君子哉) 저런 사람은(若人)! 덕을 숭상하는구나(上德哉) 저런 사람은(若人)!"라고 했다.

"國有道(국유도), 不廢(불폐);國無道(국무도), 免於刑戮(면어형륙)." 三復(삼복)"白珪之玷(백규지점)", 以其兄之子妻之(이기형지자처지). 

"나라에 도가 있으면(國有道), 버려지지 않고(不廢); 나라에 도가 없으면(國無道), 벌을 받아 죽는 일을 면한 것이다(免於刑戮)."라고 했다. 백규의 점을 세 번 반복해서 외웠으니(三復"白珪之玷"), 그 형의 딸을(以其兄之子) 시집보냈다(妻之). 

18. 公皙哀(공석애 季次 계차)

 

公皙哀字季次(공석애자계차). 孔子曰(공자왈): "天下無行(천하무행), 多爲家臣(다위가신), 仕於都(사어도);唯季次未嘗仕(유계차미상사)." 

공석애는 자가 계차다(公皙哀字季次). 공자가 말하길( 孔子曰): "천하에(天下)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無行), 많은 사람이(多) 가신이 되어(爲家臣), 도성에서 벼슬하는데(仕於都); 오직(唯) 계차는(季次) 아직 벼슬하지 않았다(未嘗仕)."라고 했다. 

 

19. 曾蒧(증점 皙 석)


曾蒧字皙(증점자석). 侍孔子(시공자), 孔子曰(공자왈): "言爾志(언이지)." 

증점은 자가 석이다(曾蒧字皙).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侍孔子),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너의 뜻을 말해보아라(言爾志)."라고 했다. 

蒧曰(점왈): "春服旣成(춘복기성), 冠者五六人(관자오륙인), 童子六七人(동자육칠인), 浴乎沂(욕호기), 風乎舞雩(풍호무우), 詠而歸(영이귀)." 孔子喟爾嘆曰(공자위이탄왈): "吾與蒧也(오여점야)!"

증점이 말하길(蒧曰): "봄옷이(春服) 만들어지고 나서(旣成), 관자 5~6명과(冠者五六人), 동자 6~7명과(童子六七人), 기수에서 목욕하고(浴乎沂), 무우에서 바람 쐬고(風乎舞雩),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詠而歸)."라고 했다. 공자가(孔子) 감탄하여 말하길(喟爾嘆曰): "나는(吾) 점과 함께 하겠다(與蒧也)!"라고 했다.

20. 顏無繇(안무요 路 로)

 

顏無繇字路(안무요자로). 路者(로자), 顏回父(안회부), 父子嘗各異時事孔子(부자상각이시사공자). 顏回死(안회사), 顏路貧(안로빈), 請孔子車以葬(청공자거이장). 

안무요는 자가 로다(顏無繇字路). 로는( 路者), 안회의 아버지고(顏回父), 아버지와 아들이(父子) 일찍이(嘗) 각자(各) 다른 시기에(異時) 공자를 모셨다(事孔子). 안회가 죽자(顏回死), 안로가 가난하여(顏路貧), 공자의 마차로(孔子車以) 장사 지내게 해달라고 청했다(葬). 


孔子曰(공자왈): "材不材(재부재), 亦各言其子也(역각언기자야). 鯉也死(이야사), 有棺而無槨(유관이무곽), 吾不徒行以爲之槨(오부도행이위지곽), 以吾從大夫之後(이오종대부지후), 不可以徒行(불가이도행)."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재주가 있거나(材) 재주가 없거나(不材), 또한(亦) 각자(各) 자기 자식을 말한다(言其子也). 리가 죽었을 대(鯉也死), 관은 있었지만(有棺而) 곽은 없었고(無槨), 내가(吾) <수레를 팔아> 걸어 다니며(徒行以) 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은(爲之槨),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以吾從大夫之後), 걸어 다닐 수 없어서이다(不可以徒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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