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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6/6] 칠조개(漆彫開) 사마경(司馬耕) 번수(樊須) 유약(有若) 공서적(公西赤) 등

by प्रज्ञा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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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商瞿(상구子木 자목) / 주역의 전수

 

商瞿(상구), 魯人(노인), 字子木(자자목). 少孔子二十九歲(소공자이십구세). 

상구는(商瞿), 노나라 사람이고(魯人), 자는 자목이다(字子木). 공자보다 29살 어리다(少孔子二十九歲). 


孔子傳易於瞿(공자전역어구), 瞿傳楚人馯臂子弘(구전초인한비자홍), 弘傳江東人矯子庸疵(홍전강동인교자용자), 疵傳燕人周子家豎(자전연인주자가수), 豎傳淳于人光子乘羽(수전순우인광자승우), 羽傳齊人田子莊何(우전제인전자장하), 何傳東武人王子中同(하전동무인왕자중동), 同傳菑川人楊何(동전치천인양하). 何元朔中以治易爲漢中大夫(하원삭중이치역위한중대부). 

공자가(孔子) 상구에게(於瞿) 주역을 전했고(傳易), 상구가(瞿) 초나라 사람 한비자홍에게 전했고(傳楚人馯臂子弘), 홍은(弘) 강동사람 교자용자에게 전했고(傳江東人矯子庸疵), 자는(疵) 연나라 사람 주자가수에게 전했고(傳燕人周子家豎), 수는(豎) 순우 사람 광자승우에게 전했고(傳淳于人光子乘羽), 우는(羽) 제나라 사람 전자장하에게 전했고(傳齊人田子莊何), 하는(何) 동무사람 왕자중동에게 전했고(傳東武人王子中同), 동은(同) 치천사람 양하에게 전했고(傳菑川人楊何). 양하는(何) <무제> 원삭 연간에(元朔中) 역을 잘 다스려서(以治易) 한나라 중대부가 되었다(爲漢中大夫). 

22. 高柴(고시 子羔 자고) / 惡夫佞者(오부녕자, 내가 그래서 말재주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

 

高柴字子羔(고시자자고). 少孔子三十歲(소공자삼십세). 子羔長不盈五尺(자고장불영오척), 受業孔子(수업공자), 孔子以爲愚(공자이위우). 

고시는(高柴) 자가 자고다(字子羔). 공자보다 30살 어렸다(少孔子三十歲).  자고가 커서(子羔長) <키가> 5척이 되지 않았는데(不盈五尺), 공자에게 가르침 받을 때(受業孔子(), 공자는 어리석다고 여겼다(孔子以爲愚).

 

子路使子羔爲費郈宰(자로사자고위비후재), 孔子曰(공자왈): "賊夫人之子(적부인지자)!" 子路曰(자로왈): "有民人焉(유민인언), 有社稷焉(유사직언), 何必讀書然後爲學(하필독서연후위학)!" 孔子曰(공자왈): "是故惡夫佞者(시고오부녕자)." 

자로가(子路) 자고로 하여금(使子羔) 비읍의 읍재를 하도록 하자(爲費郈宰),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남의 자식을(夫人之子) 해치려고 하는구나()!"라고 했다. 자로가 말하길(子路曰): "백성이 있고(有民人焉), 사직이 있으니(有社稷焉), 어찌 반드시(何必) 책을 읽고 나서야(讀書然後) 배우는 것입니까(爲學)!"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이 때문에(是故) 말재주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惡夫佞者)."라고 했다.

23. 漆彫開(칠조개 子開 자개) / 吾斯之未能信(오사지미능신, 저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漆彫開字子開(칠조개자자개).  孔子使開仕(공자사개사), 對曰(대왈): "吾斯之未能信(오사지미능신)." 孔子說(공자열). 

칠조개는 자가 자개다(漆彫開字子開).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도록 하자(孔子使開仕),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제가(吾) 그것을(斯之)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未能信)."라고 했다. 공자가 기뻐했다(孔子說). 

24. 公伯繚(공백료 子周 자주)

 

公伯繚字子周(공백료자자주). 周訴子路於季孫(주소자로어계손), 子服景伯以告孔子(자복경백이고공자), 曰(왈): "夫子固有惑志(부자고유혹지), 繚也(요야), 吾力猶能肆諸市朝(오력유능사제시조)." 

공백료는(公伯繚) 자가 자주다(字子周). 자주가( 周) 계손에게 자로를 참소하자(訴子路於季孫), 자복경백이(子服景伯) 공자에게 고해서(以告孔子), 말하길(曰): "부자(계손)가(夫子) 진실로(固) <공백료의 말에> 의혹되는 마음이 있으니(有惑志), 료는(繚也), 내 힘이면(吾力) 오히려(猶) <죽여서>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걸 수 있습니다(能肆諸市朝)."라고 했다. 

孔子曰(공자왈): "道之將行(도지수행), 命也(명야); 道之將廢(도지장폐), 命也(명야). 公伯繚其如命何(공백료기여명하)!"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도가(道之) 장차 행해지는 것도(將行), 천명이고(命也); 도가 창자 없어지는 것도(道之將廢), 천명이다(命也). 공백료(公伯繚) 그가(其) 천명을 어찌 하겠는가(如命何)!"라고 했다. 

25. 司馬耕(사마경 子牛 자우) / 內省不疚(내성불구, 마음으로 반성해서 꺼림직하지 않으면)

 

司馬耕字子牛(사마경자자우). 牛多言而躁(우다언이조). 

사마경은(司馬耕) 자가 자우다(字子牛). 우가(牛) 말이 많고 조급했다(多言而躁). 

 

問仁於孔子(문인어공자), 孔子曰(공자왈): "仁者其言也訒(인자기언야인)." 曰(왈): "其言也訒(기언야인), 斯可謂之仁乎(사가위지인호)?" 子曰(자왈): "爲之難(위지난), 言之得無訒乎(언지득무인호)!" 

공자에게 인을 묻자(問仁於孔子),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인이란(仁者) 그 말이(其言也)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訒)."라고 했다. 말하기를(曰): "그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其言也訒), 그러면(斯) 인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可謂之仁乎)?"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니(爲之難), 말을(言之) 함부로 하지 않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得無訒乎)!"라고 했다. 

 

問君子(문군자), 子曰(자왈): "君子不憂不懼(군자불우불구)." 曰(왈): "不憂不懼(불우불구), 斯可謂之君子乎(사가위지군자호)?" 子曰(자왈): "內省不疚(내성불구), 夫何憂何懼(부하우하구)!" 

군자를 묻자(問君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군자는(君子)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不憂不懼)." 말하길(曰):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不憂不懼), 그러면(斯) 군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之君子乎)?"라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안으로 살펴(內省) 꺼림칙하지 않으면(不疚),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夫何憂何懼)!"라고 했다. 

26.樊須(번수 子遲 자지) / 樊遲請學稼(번지청학가)

 

樊須字子遲(번수자자지). 少孔子三十六歲(소공자삼십육세). 

번수는 자가 자지다(樊須字子遲). 공자보다 36살 어렸다(少孔子三十六歲). 


樊遲請學稼(번지청학가), 孔子曰(공자왈): "吾不如老農(오불여로농)." 請學圃(청학포), 曰(왈): "吾不如老圃(오불여로포)." 樊遲出(번지출), 孔子曰(공자왈): "小人哉樊須也(소인재번수야)!上好禮(상호례), 則民莫敢不敬(즉민막감불경); 上好義(상호의), 則民莫敢不服(즉민막감불복); 上好信(상호신), 則民莫敢不用情(즉민막감불용정). 夫如是(부여시), 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즉사방지민강부기자이지의), 焉用稼(언용가)!" 

번지가(樊遲) 농사일 배우기를 청했고(請學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孔子曰): "나는(吾)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不如老農)."라고 했다. 채소 가꾸는 법 배우기를 청하자(請學圃), 말하길(曰): "나는(吾) 늙은 채소 심는 사람보다 못하다(不如老圃)."라고 했다. 번지가 나가자(樊遲出),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소인이로구나(小人哉) 번지가(樊須也)!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上好禮, 則) 백성 중에(民) 누구도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莫敢不敬);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上好義, 則) 백성 중에(民) 누구도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莫敢不服); 윗사람이 믿음을 좋아하면(上好信, 則) 백성 중에(民) 누구도 감히 진정을 쓰지 않을 수 없다(莫敢不用情). 이와 같다면(夫如是, 則) 사방의 백성이(四方之民) 자기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襁負其子而) 올 텐데(至矣), 어찌(焉) 농사짓는 법을 쓰겠는가(用稼)!"라고 했다. 


樊遲問仁(번지문인), 子曰(자왈): "愛人(애인)." 問智(문지), 曰(왈): "知人(지인)." 

번지가 인을 물었다(樊遲問仁),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子曰):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했다. 지혜를 묻자(問智), 말씀하시길(曰): "남을 아는 것이다(知人)."라고 했다. 

27.有若(유약 子有 자유)

 

有若少孔子四十三歲(유약소공자사십삼세). 

유약은 공자보다 43살 어렸다(有若少孔子四十三歲). 


有若曰(유약왈): "禮之用(예지용), 和爲貴(화위귀), 先王之道斯爲美(선왕지도사위미). 小大由之(소대유지), 有所不行(유소불행); 知和而和(지화이화), 不以禮節之(불이례절지), 亦不可行也(역불가행야)." "信近於義(신근어의), 言可復也(언가복야); 恭近於禮(공근어례), 遠恥辱也(원치욕야); 因不失其親(인불실기친), 亦可宗也(역가종야)." 

유약이 말하길(有若曰): "예의 쓰임에는(禮之用), 조화가 귀하게 여겨지고(和爲貴), 선왕의 도에서(先王之道) 이것이 아름답게 여겨졌다(斯爲美). 작고 큰 것이(小大) 이것을 따르고(由之), 행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有所不行); 조화를 알아(知和而) 조화롭기만 하고(和), 예로 절제하지 않으면(不以禮節之), 또한(亦) 행해지지 않는다(不可行也).", "믿음이(信) 의에 가까우면(近於義), 말을(言) 실천할 수 있고(可復也); 공경이 예에 가까우면(恭近於禮), 치욕을 멀리할 수 있고(遠恥辱也); 그 친한 사람을 잃지 않는다면(因不失其親), 또한(亦) 으뜸이 될 수 있다(可宗也)."라고 했다. 


孔子既沒(공자기몰), 弟子思慕(제자사모), 有若狀似孔子(유약장사공자), 弟子相與共立爲師(제자상여공립위사), 師之如夫子時也(사지여부자시야). 

공자가 죽고 나서(孔子既沒), 제자들이(弟子) 사모하여(思慕), 유약의 모습이(有若狀) 공자와 비슷하니(似孔子), 제자들이(弟子) 서로(相) 함께 세우고(與共立) 스승으로 삼고(爲師),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師之) 공자가 살았을 때와 같았다(如夫子時也).

 

他日(타일), 弟子進問曰(제자진문왈): "昔夫子當行(석부자당행), 使弟子持雨具(사제자지우구), 已而果雨(이이과우). 弟子問曰(제자문왈): '夫子何以知之(부자하이지지)?'夫子曰(부자왈): '《詩》不云乎(<시>불운호)?「月離于畢(월리우필), 俾滂沱矣(비방타의)." 昨暮月不宿畢乎(작모월불숙필호)?' 他日(타일), 月宿畢(월숙필), 竟不雨(경불우). 

어느날(他日), 제자가 나아가 묻기를(弟子進問曰): "옛날(昔) 부자께서 나가실 때(夫子當行), 제자들로 하여금(使弟子) 우산을 가지고 가도록 하면(持雨具),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비가 왔습니다(已而果雨). 제자들이 물어 말하길(弟子問曰): '선생님은(夫子) 어찌(何以) 아셨습니까(知之)?'라고 하면, 선생님이 말씀하시길(夫子曰): '시에서(《詩》) 말하지 않았느냐(不云乎)?, '달이(月) 필(황소자리)에서 떠나면(離于畢), 큰 비가 내린다(俾滂沱矣). 어제 저녁(昨暮) 달이(月) 필성에 머물지 않았느냐(不宿畢乎)?'라고 했다. 다른 날(他日), 달이 필성에서 묵었는데(月宿畢), 결국(竟)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不雨).

 

* 俾(비)는 ~하게 하다. 방타(滂沱)는 큰 비가 죽죽 내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擬態語)이다.

 

商瞿年長無子(상구년장무자), 其母爲取室(기모위취실). 孔子使之齊(공자시지제), 瞿母請之(구모청지). 孔子曰(공자왈): '無憂(무우), 瞿年四十後當有五丈夫子(구년사십후당유오장부자).'已而果然(이이과연). 問夫子何以知此(문부자하이지차)?" 有若默然無以應(유약묵연무이응). 弟子起曰(제자기왈): "有子避之(유자피지), 此非子之座也(차비자지좌야)!" 

상구가(商瞿) 나이가 많아서도(年長) 자식이 없자(無子), 그 어머니가(其母) <새로> 아내를 얻도록 하려고 했다(爲取室). 공자가(孔子) 그를 제나라에 심부름 보내려고 하자(使之齊), 상구의 어머니가(瞿母) <보재지 말 것을 > 청했다(請之). 공자가 말하길( 孔子曰): '걱정하지 말아라(無憂), 상구는(瞿) 나이 40이 넘어서(年四十後) 마땅히(當) 다섯 아들이 있울 것이다(有五丈夫子).'라고 했다. 그런데(已而) 과연 그러했다(果然). 묻건대(問) 부자께서는(夫子) 어찌(何以) 이것을 알 수 있을까요(知此)?"라고 했다. 유약이(有若) 말 없이(默然無) 응대하지 못했다(以應). 제자들이 일어나 말하길(弟子起曰): "유자는(有子) 거기서 물러나시오(避之), 이곳은(此) 그대의 자리가 아닙니다(非子之座也)!"라고 했다.   

28. 公西赤(공서적 子華 자화)

 

公西赤字子華(공서적자자화). 少孔子四十二歲(소공자사십이세). 

공서적은(公西赤) 자가 자화다(字子華). 공자보다 42살 어리다(少孔子四十二歲). 


子華使於齊(자화시어제), 冉有爲其母請粟(염유위기모청속). 孔子曰(공자왈): "與之釜(여지부)." 請益(청익), 曰(왈): "與之庾(여지유)." 冉子與之粟五秉(염자여지속오병). 孔子曰(공자왈): "赤之適齊也(적지적제야), 乘肥馬(승비마), 衣輕裘(의경구). 吾聞君子周急不繼富(오문군자주급불계부)." 

자화가(子華) 제나라에 심부름갈 때(使於齊), 염유가(冉有) 그의 어머니를 위해(爲其母) 곡식을 청했따(請粟).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부를 주어라(與之釜)."라고 했다. 더 청하자(請益), 말하길(曰): "유를 주어라(與之庾)."라고 했다. 염유가(冉子) 곡식 5병을 주었다(與之粟五秉).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적이(赤之) 제나라에 갈 때(適齊也), 살찐 말을 타고(乘肥馬), 가벼운 가죽옷을 입었다(衣輕裘). 내가 듣건대(吾聞) 군자는(君子) 급한 사람을 돌보고(周急) 부유한 사람을 보태주지 않는다(不繼富)."라고 했다.  

29.巫馬施(무마시 子旗 자기)

 

巫馬施字子旗(무마시자자기). 少孔子三十歲(소공자삼십세). 

무마시는(巫馬施) 자가 자기다(字子旗). 공자보다 30살 어렸다(少孔子三十歲). 


陳司敗問孔子曰(진사패문공자왈): "魯昭公知禮乎(노소공지례호)?" 孔子曰(공자왈): "知禮(지례)." 退而揖巫馬旗曰(퇴이읍무마기왈): "吾聞君子不黨(오문군자불당), 君子亦黨乎(군자역당호)? 魯君娶吳女爲夫人(노군취오여위부인), 命之爲孟子(명지위맹자). 孟子姓姬(맹자성희), 諱稱同姓(휘칭동성), 故謂之孟子(고위지맹자). 魯君而知禮(노군이지례), 孰不知禮(숙부지례)!" 

진나라 사패가(陳司敗) 공자에게 묻기를(問孔子曰): "노나라 소공이(魯昭公) 예를 아는가(知禮乎)?"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예를 안다(知禮)."라고 했다. 물러나고(退而) 무마기에게 읍하고 말하길(揖巫馬旗曰): "내가 듣건대(吾聞) 군자는 편을 들지 않는데(君子不黨), 군자도(君子) 또한(亦) 편을 가르나요(黨乎)? 노나라 임금이(魯君) 오나라 여인에게 장가들어서(娶吳女) 부인으로 삼았는데(爲夫人), 이름을 지어(命之) 맹자라고 했다(爲孟子). 맹자의 성이(孟子姓) 희이고(姬), 동성으로 부르는 것을 꺼렸고(諱稱同姓), 그러므로(故) 맹자라고 했다(謂之孟子). 노나라 임금이(魯君而) 예를 안다면(知禮), 누가(孰)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不知禮)!"라고 했다.  
施以告孔子(시이고공자), 孔子曰(공자왈): "丘也幸(구야행), 茍有過(구유과), 人必知之(인필지지). 臣不可言君親之惡(신불가언군친지악), 爲諱者(위휘자), 禮也(예야)." 

무마시가(施) 공자에게 고하자(以告孔子),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나는 다행이로구나(丘也幸), 진실로(茍) 잘못이 있으면(有過), 사람들이(人) 반드시 그것을 일러준다(必知之). 신하는(臣) 임금의 잘못을 말할 수 없으니(不可言君親之惡), 피하는 것이(爲諱者), 예다(禮也)."라고 했다.  

30. 梁鱣(양전)

梁鱣字叔魚(양전자숙어). 少孔子二十九歲(소공자이십구세). 

양전은(梁鱣) 자가 숙어다(字叔魚). 공자보다 29살 어렸다(少孔子二十九歲). 

31. 顏幸(안행)

顏幸字子柳(안행자자류). 少孔子四十六歲(소공자사십육세). 

안행은(顏幸) 자가 자류다(字子柳). 공자보다 46살 어리다(少孔子四十六歲). 

32. 冉孺(염유)

冉孺字子魯(염유자자로), 少孔子五十歲(소공자오십세). 

염유는(冉孺) 자가 자로이고(字子魯), 공자보다 50살 어리다(少孔子五十歲). 

33. 曹卹(조휼)

曹卹字子循(조휼자자순). 少孔子五十歲(소공자오십세). 

조휼은(曹卹) 자가 자순이다(字子循). 공자보다 50살 어리다(少孔子五十歲). 

34. 伯虔(백건)

伯虔字子析(백건자자석), 少孔子五十歲(소공자오십세). 

백건은(伯虔) 자가 자석이고(字子析), 공자보다 50살 어리다(少孔子五十歲). 
 
35. 公孫龍(공손룡)

公孫龍字子石(공손룡자자석). 少孔子五十三歲(소공자오십삼세). 

공손룡(公孫龍) 자가 자석이고(字子石). 공자보다 53살 어리다(少孔子五十三歲). 

自子石已右三十五人(자자석이우삼십오인), 顯有年名及受業見于書傳(현유년명급수업견우서전). 其四十有二人(기사십유이인), 無年及不見書傳者紀于左(무년급불견서전자기우좌)

자석부터(自子石) 위의(已右) 35명은(三十五人), 나이와 이름이 있어 드러나고(顯有年名及) 수업을 받은 것이(受業) 책에 보인다(見于書傳). 그 나머지(其) 42명은(四十有二人), 나이가 없고(無年及) 글에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不見書傳者) 다음처럼 기록한다(紀于左)

 

冉季字子產. 

公祖句茲字子之. 

秦祖字子南. 

漆雕哆字子斂. 

顏高字子驕. 

漆雕徒父. 

壤駟赤字子徒. 

商澤. 

石作蜀字子明. 

任不齊字選. 

公良孺字子正. 

后處字子裏. 

秦冉字開. 

公夏首字乘. 

奚容箴字子皙. 

公肩定字子中. 

顏祖字襄. 

鄡單字子家. 

句井疆. 

罕父黑字子索. 

秦商字子丕. 

申黨字周. 

顏之仆字叔. 

榮旂字子祈. 

縣成字子祺. 

左人郢字行. 

燕伋字思. 

鄭國字子徒. 

秦非字子之. 

施之常字子恒. 

顏噲字子聲. 

步叔乘字子車. 

原亢籍. 

樂欬字子聲. 

廉絜字庸. 

叔仲會字子期. 

顏何字冉. 

狄黑字皙. 

邦巽字子斂. 

孔忠. 

公西輿如字子上. 

公西葴字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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