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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54] 유종원(柳宗元) 여한유론사서(與韓愈論史書)

by प्रज्ञा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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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二十一日, 某頓首十八丈退之侍者. 前獲書, 言史事云, 具與劉秀才書, 及今見書槀, 私心甚不喜. 與退之往年言史事, 甚大謬, 若書中言, 退之不宜一日在館下, 安有探宰相意, 以爲苟以史筆, 榮一韓退之邪. 若果爾, 退之豈宜虛受宰相榮己, 而冒居館下近密地, 食奉養, 役使掌故, 利紙筆爲私書, 取以供子弟費. 古之志於道者, 不宜若是.

정월 21일에(正月二十一日), 제가(某) 퇴지 선생님께(十八丈退之侍者) 머리를 조아립니다(頓首). 전에(前) 편지를 얻은 것에서(獲書), 사관의 일을 말은 것에서(言史事) 말씀하시길(云), 유수재에게 준 편지에(與劉秀才書) 모두 있다(具)라고 했는데, 지금(及今) 그 편지글을 보니(見書槀), 개인적으로(私心) 매우 기쁘지 않습니다(甚不喜). 선생이 예전에(退之往年) 사관의 일을 언급한 것과(言史事), 많이 어긋나고(甚大謬), 편지의 말과 같다면(若書中言), 선생은(退之) 마땅히 하루라도(宜一日) 사관의 자리에 있지 말아야 하니(在館下), 어찌(安) 재상의 뜻을(宰相意) 살피고(探), 구차하게(以爲苟) 사관의 자리로(以史筆), 한 명의 한퇴지를 영예롭게 하는 일이(榮一韓退之) 있을 수 있습니까(邪). 만약 그렇다면(若果爾), 선생이(退之) 어찌(豈) 마땅히(宜) 재상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宰相榮己) 헛되이 받아들이고(虛受, 而) 사관 자리에 있으면서(居館下) 비밀스러운 곳에 접근하는 것을 사칭하여(近密地), 봉록을 받아먹고(食奉養), 관리를 부려 먹으며(役使掌故), 지필을 이용해서(利紙筆) 사사로운 책을 만들고(爲私書), 자제의 비용을 얻는 것을(以供子弟費) 취합니까(取). 옛날(古之) 도에 뜻을 둔 사람은(志於道者), 마땅히 이와 같지 않았습니다(不宜若是).

 

* 頓首(돈수):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리다. 편지의 앞이나 뒤에 쓰는 겸양의 표현이다.

* 十八丈(십팔장): 한유의 배행(排行)이 18번째이다. 한유의 형인 한회가 유종원의 아버지와 친구 관계였으므로 유종원이 한유를 자기 집안 형제자매의 나이 순서에서 18번째에 해당되어 그의 별칭으로 쓴 것이다. 丈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에 대한 존칭이다.

* 退之(퇴지): 한유(韓愈)의 자(字)

* 侍者(시자): 左右(좌우)라고도 쓴다. 편지에 존경하는 뜻으로 상대방을 직접 지칭하지 않고 ‘侍者’로 지칭한 것이다.

* 私心(사심):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 掌故(장고): 한나라 때의 관직명. 예약과 제도 등의 고사(故事)를 관장했다.

 

且退之以爲紀錄者有刑禍, 避不肯就尤非也. 史以名爲褒貶, 猶且恐懼不敢爲, 設使退之爲御史中丞大夫, 其褒貶成敗人愈益顯, 其宜恐懼尤大也. 則又將揚揚入臺府, 美食安坐, 行呼唱於朝廷而已邪. 在御史猶爾, 設使退之爲宰相, 生殺出入升黜天下士, 其敵益衆, 則又將揚揚入政事堂, 美食安坐, 行呼唱於內庭外衢已邪. 何以異不爲史而榮其號利其祿者也.

또한(且) 선생은(退之) 기록하는 사람에게(紀錄者) 형벌과 재앙이 있다고(有刑禍) 여기고(以爲), 피하여(避) 기꺼이 나아가지 않은 것은(不肯就) 더욱 잘못입니다(尤非也). 역사는(史) 명분으로(以名)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爲褒貶), 오히려 더욱(猶且) 두려워하고(恐懼) 감히 하지 못하니(不敢爲), 만약(設使) 선생이(退之) 어사중승대부가 된다면(爲御史中丞大夫), 그(其) 사람을(人) 포폄하고 성패를 논하는 것이(褒貶成敗) 더욱 드러날 것이니(愈益顯), 마땅히(其宜) 두려워하는 것이(恐懼) 더욱 클 것입니다(尤大也). 그렇다면(則) 또한(又) 의기양양하게(將揚揚) 어사대에 들어가(入臺府), 좋은 음식을 먹고(美食) 편안한 자리에 앉아(安坐), 조정에서(於朝廷) 호창을 행하고 말 것인가요(行呼唱而已邪). 어사에 있으면서(在御史) 이러할 뿐이면(猶爾), 만약(設使) 선생이 재상이 되어(退之爲宰相), 천하의 선비를(天下士) 죽이고 살리고(生殺) 내보내고 들이고(出入) 승진시키고 내쫓아서(升黜), 그 적이(其敵) 더욱 많은 것인데(益衆), 그렇다면(則) 또(又) 의기양양하게(將揚揚) 정사당에 들어가(入政事堂), 좋은 음식을 먹고(美食) 편안한 자리에 앉아(安坐), 궁전의 안과 밖에서(於內庭外衢) 호창만 하고 있을 것인가요(行呼唱已邪). 사관의 일은 하지 않고( 不爲史而) 그 호칭의 영예를 누리고(榮其號) 그 봉록을 탐하는 것과(利其祿者) 무엇이 다른가요(何以異也).

 

* 褒貶(포폄):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判斷)하여 결정(決定)함.

* 揚揚(양양): 의기양양하다.

* 行呼唱(행호창): 호창이란 백관이 조정에 모여 조회할 때 어사대부·중승이 열을 정렬하고 지휘하는 것을 말한다. 

 

又言不有人禍, 必有天刑, 若以罪夫前古之爲史者然, 亦甚惑. 凡居其位, 思直其道, 道苟直, 雖死不可回也, 如回之, 莫若亟去其位. 孔子之困于魯衛陳宋蔡齊楚者是也, 其時暗諸侯不能以也, 其不遇而死, 不以作『春秋』故也. 當是時, 雖不作『春秋』, 孔子猶不遇而死也. 若周公史佚, 雖紀言書事, 猶遇且顯也, 又不得以『春秋』, 爲孔子累. 范曄悖亂, 雖不爲史, 其宗族亦誅. 司馬遷觸天子喜怒, 班固不撿下, 崔浩沽其直, 以鬪暴虜, 皆非中道. 左丘明以疾盲, 出於不幸. 子夏不爲史亦盲, 不可以是爲戒, 其餘皆不出此. 是退之宜守中道, 不忘其直, 無以他事自恐, 退之之恐, 惟在不直不得中道, 刑禍非所恐也.

또 말하길(又言) 인화가 있지 않으면(不有人禍), 반드시(必) 천형이 있을 것이라고(有天刑) 했는데, 예전 역사를 기록한 사람을(夫前古之爲史者) 나무라는 것과 같으니(若以罪然), 또한(亦) 매우 미혹하게 합니다(甚惑). 무릇(凡) 그 지위에 있으면(居其位), 그 도를 바르게 할 것을 생각하고(思直其道), 도가(道) 진실로 바르다면(苟直), 비록(雖) 죽음으로도(死) 피할 수 없으니(不可回也), 만약 피한다면(如回之), 그 지위를(其位) 빨리 떠나는 것만 못합니다(莫若亟去). 공자가(孔子之) 노와 위, 진, 송, 채, 제, 초에서 곤란은 당한 것은(困于魯衛陳宋蔡齊楚者是也), 그때가(其時) 어둡고(暗) 제후가 쓰지 못했고(諸侯不能以也), 그가(其) 때를 만나지 못하고 죽은 것은(不遇而死), 춘추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不以作『春秋』故也). 이때에(當是時), 비록(雖) 춘추를 짓지 않았더라도(不作『春秋』), 공자는(孔子) 오히려(猶) 때를 만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不遇而死也). 주공과 사일 같은 경우라면(若周公史佚), 비록(雖) 말을 기록하고(紀言) 일을 적었지만(書事), 오히려(猶) 때를 만나고 또 드러났으니(遇且顯也), 또(又) 춘추를 지은 것으로(以『春秋』), 공자의 잘못을(孔子累) 삼을 수 없습니다(不得爲). 범엽은 정도를 어지럽혔고(范曄悖亂), 비록(雖) 역사를 적지 않았더라도(不爲史), 그 종족이(其宗族) 또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亦誅). 사마천은(司馬遷) 천자의 노여움을 건드렸고(觸天子喜怒), 반고는(班固) 아랫사람을 단속하지 않았고(不撿下), 최호는(崔浩) 자기 곧음을 과시하고(沽其直, 以) 포악한 무리와 다퉜으니(鬪暴虜), 모두(皆) 중도가 아닙니다(非中道). 좌구명은(左丘明) 병으로(以疾) 맹인이 되었으니(盲), 불행에서 나온 것입니다(出於不幸). 자하는(子夏) 역사를 쓰지 않았지만(不爲史) 또한 맹인이 되었으니(亦盲), 이것을 경계로 삼을 수 없고(不可以是爲戒), 그 나머지는(其餘) 모두(皆) 이것을 넘지 않습니다(不出此). 바로(是) 선생은(退之) 마땅히(宜) 중도를 지키고(守中道), 그 곧음을 잊지 않고(不忘其直), 다른 일로(以他事) 스스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니(自恐), 선생이(退之之) 두려워할 것은(恐), 오직(惟) 정직하지 못하고(不直) 중도를 얻지 못하는 것에(不得中道) 있고(在), 형벌과 재앙은(刑禍)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非所恐也).

 

* 罪(죄): 나무라다, 回(회): 어기다. 위배하다.

* 悖亂(패란): 정의(正義)에 어그러지고 정도(正道)를 어지럽힘, 모반.

* 沽直(고직): 자신의 정직함을 과시하여 명성을 추구하다.

 

凡言二百年文武士多, 有誠如此者, 今退之曰: “我一人也何能明?” 則同職者又所云若是, 後來繼今者又所云若是, 人人皆曰: “我一人.” 則卒誰能紀傳之邪? 如退之但以所聞知, 孜孜不敢怠, 同職者, 後來繼今者亦各以所聞知, 孜孜不敢怠, 則庶幾不墜, 使卒有明也. 不然, 徒信人口語, 每每異辭, 日以滋久, 則所云磊磊軒天地者, 決(未)必不沈沒, 且亂雜無可考, 非有志者所忍恣也, 果有志, 豈當待人督責迫蹙然後, 爲官守邪?

무릇(凡) 이백 년 사이에(二百年) 문무의 선비가 많다고(文武士多) 했는데(言), 진실로(誠) 이와 같은 것이 있고(如此者), 지금(今) 선생이 말하길(退之曰): “나 한 사람이(我一人也) 어찌 밝힐 수 있겠는가(何能明)?”라고 했으니, 그렇다면(則) 같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同職者) 또(又) 이와 같이 말하고(所云若是), 나중에(後來) 지금을 잇는 사람도(繼今者) 또(又) 이와 같이 말해서(所云若是), 사람마다 모두(人人皆) 말하길(曰): “나 한 사람이다(我一人).”라고 한다면, ( 則) 마침내(卒) 누가(誰) 그것을 기록하고 전할 수 있을까요(能紀傳之邪)? 만약(如) 선생이(退之) 다만(但) 듣고 아는 것으로(以所聞知), 부지런하고(孜孜) 감히 태만하지 않고(不敢怠), 같은 직책에 있는 사람과(同職者), 뒤에 지금을 잇는 사람도(後來繼今者) 또한(亦) 각자(各) 듣고 아는 것으로(以所聞知), 부지런하고 감히 태만하지 않는다면(孜孜不敢怠, 則) 거의 떨어지지 않고(庶幾不墜), 결국(使卒) 밝혀짐이 있을 것입니다(有明也). 그렇지 않고(不然), 다만(徒) 사람들의 말을 믿고(信人口語), 늘(每每) 말을 다르게 하고(異辭), 날로(日) 계속해서 오래간다면(以滋久, 則) 이른바(所云) 하늘과 땅에(天地) 겹겹이 쌓인 높은 것이(磊磊軒者), 마침내(決必) 침몰하지 않고(不沈沒), 또(且) 난잡한 것을(亂雜) 고증할 수 없으니(無可考), 뜻이 있는 사람이(有志者) 참고 방치할 것이(所忍恣) 아니고(也), 정말(果) 뜻이 있다면(有志), 어찌(豈) 남의 독촉과 재촉을 당하기를(人督責迫蹙) 기다리고 나서야(待然後), 관리의 임무를 수행합니까(爲官守邪)?

 

* 孜孜(자자): 부지런하다. 근면하다.

* 庶幾不墜(서기불추): 거의 실추하지 않다. 사관이 본분이 실추되지 않음이다.

* 磊磊(뇌뢰): 돌이 겹겹이 싸인 무더기, 마음이 너그럽고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음.

* 督責迫蹙(독책박축): 독촉하여 재촉하다.

 

又凡鬼神事, 眇茫荒惑, 無可準, 明者所不道. 退之之智, 而猶懼於此, 今學如退之, 辭如退之, 好言論, 如退之, 慷慨自謂正直行行焉, 如退之, 猶所云, 若是則唐之史述, 其卒無可託乎? 明天子賢宰相, 得史才如此, 而又不果, 甚可痛哉. 退之宜更思, 可爲速爲, 果卒以爲恐懼不敢, 則一日可引去, 又何以云行且謀也. 今當爲而不爲, 又誘館中他人及後生者, 此大惑已. 不勉己而欲勉人, 難矣哉.

또(又) 모든 귀신의 일은(凡鬼神事), 아득하고 황당무계하여(眇茫荒惑), 본보기로 삼을 수 없고(無可準), 밝은 사람은(明者)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所不道). 선생이 지혜로운데도(退之之智, 而) 오히려(猶) 이것을 두려워하니(懼於此), 지금(今) 배움이(學) 선생과 같고(如退之), 문장이 선생과 같으며(辭如退之), 토론을 좋아하는 것이(好言論), 선생과 같은데(如退之), 의기롭게(慷慨) 정직하게 행동한다고(正直行行焉) 스스로 말하는 것이(自謂), 선생과 같은데(如退之), 오히려(猶) 말하는 것이(所云), 이와 같다면(若是則) 당나라의 역사 서술은(唐之史述), 결국(其卒) 맡길 수 없습니까(無可託乎)? 밝은 천자와(明天子) 어진 재상이(賢宰相), 역사에 대한 재주가(史才) 이와 같은 사람을(如此) 얻었는데(, 而) 또(又) 결과가 없다면(不果), 매우 애통합니다(甚可痛哉). 선생이(退之) 마땅히(宜) 생각을 바꾸고(更思), 할 수 있는 것을(速爲) 해야 하니(可爲), 결국(果卒) 두렵게 여기고(以爲恐懼) 감히 하지 못한다면(不敢, 則) 빨리(一日) 떠나야 하니(可引去), 또(又) 어찌(何以) 해보고 <떠날 것을> 생각한다고 말합니까(云行且謀也). 지금(今) 마땅히 해야 하지만(當爲而) 하지 않고(不爲), 또(又) 사관 가운데 다른 사람이나(館中他人及) 후배를(後生者) 끌어들이는 것은(誘), 이것은(此) 큰 미혹입니다(大惑已). 자기를 근면하게 하지 않으면서(不勉己而) 남을 부지런하게 하려는 것은(欲勉人), 어려운 일이 아닌가요(難矣哉).

 

* 渺茫荒惑(묘망황혹): 황당무계하여 매우 아득하다.

* 眇茫(묘망): 아득하여 망망함. 
* 荒惑(황혹): 황당무계하고 미혹스러움.

* 慷慨(강개):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冤)하고 슬픔.

* 行且謀(행차모): 한유가 <답유수재론사서(答劉秀才論史書)>에서 “나는 그대의 가르침을 감히 거역할 수 없으므로 장차 기회를 보아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賤不敢逆盛指 行且謀引去)”라고 한 것을 이른다. 

 

[解說]

 

迂齋云: “掊擊辨難之體, 沈著痛快.”

우제가 말하길(迂齋云): “배격하고(掊擊) 논란을 판별하는 것이(辨難之體), 침착하고 통쾌하다(沈著痛快).”라고 했다.

 

○ 退之爲史官, 柳子厚ㆍ劉秀才皆勉以作史. 柳書首云: “前獲書言史事.” 退之集中, 與柳子之書不存, 所存者, 答劉秀才論史書, 今載外集.

○ 한유가(退之) 사관이 되어(爲史官), 유수후와 유수재(柳子厚ㆍ劉秀才) 모두(皆) 부지런히(勉以) 역사를 기술하도록 했다(作史). 유종원의 편지(柳書) 머리에서 말하길(首云): “전에(前) 편지를 받았는데(獲書) 사관의 일을 언급했습니다(言史事).”라고 했다. 한유의 문집 가운데(退之集中), 유종원에게 준(與柳子之) 편지는(書) 있지 않고(不存), 남은 것은(所存者), 답유수재논사서이며(答劉秀才論史書), 지금(今) 외집에 실려 있다(載外集).

 

○ 云: “辱問敎, 勉以所宜務. 愚以爲, 凡史氏褒貶大法, 『春秋』已備之矣. 後之作者, 在據事跡實錄則善惡自見. 然此尙非淺陋偸惰者所能就, 況褒貶邪. 孔子聖人, 作『春秋』, 辱於魯衛陳宋齊楚, 卒不遇而死. 齊太史氏, 兄弟幾盡, 左丘明, 紀春秋時事, 以失明, 司馬遷作『史記』刑誅, 班固瘦死, 陳壽起又廢, 卒亦無所至, 王隱謗退死家, 習鑿齒無一足, 崔浩ㆍ范曄亦誅, 魏收夭絶, 宋孝王誅死, 足下所稱吳競, 亦不聞身貴而今其後有聞也. 夫爲史者, 不有人禍則有天刑, 豈可不畏懼而輕爲之? 唐有天下二百年, 聖君賢相, 相踵, 其餘文武之士立功名, 跨越前後者, 不可勝數, 豈一人卒卒能紀而傳之邪? 僕年志已就衰退, 不可自敦率. 宰相, 知其無他才能, 不足用, 哀其老窮齟齬而無所合, 不欲令四海內, 有戚戚者 猥言之上, 苟加一職榮之耳, 非必督責迫蹙, 令就功役也. 賤不敢逆盛指, 行且謀引去. 夫盛唐鉅跡, 及賢士大夫事, 皆磊磊軒天地, 決不沈沒, 今館中非無人, 將必有作者勤而纂之. 後生可畏, 安知不在足下? 亦宜勉之.”

○ 말하길(云): “감히() 묻고 가르쳐서(辱問敎), 마땅히 힘써야 할 것으로(以所宜務) 권면했습니다(勉). 제가 생각건대(愚以爲), 무릇(凡) 사관이(史氏) 포폄하는 본보기는(褒貶大法), 춘추에(『春秋』) 이미 갖춰졌습니다(已備之矣). 후대의 짓는 사람은(後之作者), 사적과 실록에 근거함이 있으면(在據事跡實錄則) 선악이 저절로 드러납니다(善惡自見). 그러나(然) 이것도(此) 오히려(尙) 천하고 비루하며 게으른 사람이(淺陋偸惰者) 취할 것이 아닌데(所能就), 하물며(況) 포폄은 어떻겠습니까(褒貶邪). 공자는 성인으로(孔子聖人), 춘추를 짓고(作『春秋』), 노나라와 위, 진, 송, 제, 초에서 모욕을 당하고(辱於魯衛陳宋齊楚), 끝내(卒) 불우하게 죽었습니다(不遇而死). 제나라의(齊) 태사 씨는(太史氏), 형제가(兄弟) 거의 죽었고(幾盡), 좌구명은(左丘明), 춘추 시대의 일을 기록하고(紀春秋時事, 以) 눈을 잃었고(失明), 사마천은(司馬遷) 사기를 짓고(作『史記』) 형벌을 받았으며(刑誅), 반고는 수척하여 죽었고(班固瘦死), 진수는 기용되었다가(陳壽起) 또 버려져서(又廢), 끝내 또한(卒亦) 이룬 것이 없고(無所至), 왕은은(王隱) 비난받고 물러나(謗退) 집에서 죽었고(死家), 습착치는(習鑿齒) 발 하나가 없어졌고(無一足), 최호와 범엽은(崔浩ㆍ范曄) 또한 벌을 받아 죽었고(亦誅), 위수는 요절했고(魏收夭絶), 송효왕은 벌을 받아 죽었고(宋孝王誅死), 그대가(足下) 칭찬한 사람인 오경도(所稱吳競), 또한(亦) 몸이 귀하게 된 것을(身貴) 듣지 못했고(不聞而) 지금(今) 그 후손이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其後有聞也). 무릇(夫) 역사를 쓰는 것은(爲史者), 사람의 재앙이 있지 않으면(不有人禍則) 하늘의 형벌이 있으니(有天刑), 어찌(豈) 두려워하지 않고(可不畏懼而) 가벼이 여길 수 있습니까(輕爲之)? 당나라가(唐) 천하를 가진 것이(有天下) 200년이 되었고(二百年), 성스러운 인금과 어진 재상이(聖君賢相), 서로 뒤를 이었고(相踵), 그 나머지(其) 문무의 명사는(餘文武之士) 공을 세워(立功) 이름을 날리고(名), 전후를 뛰어넘은 것은(跨越前後者), 이루 셀 수 없으니(不可勝數), 어찌(豈) 한 사람이(一人) 분주하게 기록해서(卒卒能紀而) 전할 수 있겠습니까(傳之邪)? 전의 나이와 뜻이(僕年志) 이미(已) 쇠퇴하는 것을 취하여(就衰退), 스스로 분발할 수 없습니다(不可自敦率). 재상은(宰相), 다른 재능이 없음을 알아서(知其無他才能), 등용할 수 없었지만(不足用), 그 늙고 궁하며(其老窮) 뜻이 맞이 않아서(齟齬而) 합하는 것이 없지만(無所合), 사해로 하여금(令四海內),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지 않으려는 것을(不欲有戚戚者) 불쌍히 여기고(哀), 외람되게(猥) 임금에게 말해서(言之上), 구차하게(苟) 한 직책의 영예를 베풀었을 뿐이니(加一職榮之耳), 반드시(必) 독촉하고 재촉하(督責迫蹙), 일을 이루도록 한 것이 아닙니다(令就功役也). 천하지만(賤) 감히 성지를 거역할 수 없으니(不敢逆盛指), 해보고(行且) 떠날 것을 생각하려고 합니다(謀引去). 무릇(夫) 성대한 당나라의(盛唐) 큰 자취와(鉅跡, 及) 어진 사대부의 일은(賢士大夫事), 모두(皆) 천지에 높이 드러났으니(磊磊軒天地), 결코(決) 침몰하지 않을 것이고(不沈沒), 지금(今) 사관 가운데(館中)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니(非無人), 장차 반드시(將必) 짓는 사람이 있어(有作者) 부지런히(勤而) 편찬할 것입니다(纂之). 후배를 두려워할만 하니(後生可畏), 어지(安) 그대에게 있지 않은 것을(不在足下) 알겠습니까(知)? 또한(亦) 마땅히 힘쓸 것입니다(宜勉之).”라고 했다.

 

○ 讀退之此書然後, 讀子厚此書, 皆是排闢退之書中所說, 意了然矣. 居其職則宜稱其職, 柳之以史事責韓, 與韓之以諫責陽城, 一也. 以韓之平生剛正而有不敢作史之失, 受責何疑? 然卒能成『順宗實錄』五卷, 亦可以塞責矣. 與陽城救陸贄, 沮延齡, 略足相當, 能補過如此, 何損二子之賢哉? 亦朋友責善之力也.

○ 퇴지의(退之) 이 편지를(此書) 읽고 나서(然後), 유종원의 이 편지를 읽으면(讀子厚此書), 모두(皆) 이것이(是) 퇴지의 편지에 있는 설을(退之書中所說) 배척한 것이며(排闢), 뜻이 분명하다(意了然矣). 그 지위에 있으면서(居其職則) 마땅히(宜) 직위에 걸맞아야 하고(稱其職), 유종원이(柳之) 사관의 일로(以史事) 한유를 꾸짖은 것과(責韓, 與) 한유가(韓之) 간의 일로 양성을 꾸짖은 것은(以諫責陽城), 같다(一也). 한유가(以韓之) 평생(平生) 강직하고 정직했기 때문에(剛正而) 감히 사관이 되지 못하는 실수가 있으니(有不敢作史之失), 꾸짖음 받는 것을(受責) 무엇을 의심하겠는가(何疑)? 그러나(然) 마침내(卒) 순종실록 5권을 완성했으니(能成『順宗實錄』五卷), 또한(亦) 책임을 메꿨다고 할 수 있다(可以塞責矣). 양성이(與陽城) 육지를 구하고(救陸贄), 연령을 막은 것과(沮延齡), 대략(略) 서로 걸맞다고 할 수 있고(足相當), 잘못을 보충한 것이(能補過) 이와 같으니(如此), 어찌(何) 두 사람의 현명을 덜어내겠는가(損二子之賢哉)? 또한(亦) 벗이 선을 권면한 힘이다(朋友責善之力也).

 

元和八年三月乙亥, 國子博士韓愈, 遷比部郞中史館修撰. 先是, 愈數黜官, 又下遷, 乃作「進學解」以自喩, 執政覽之, 以其有史才, 故除是官. 制詞曰: “太學博士韓愈, 學術精博, 文力雄健, 立詞措意, 有班馬之風, 求之一時, 甚不易得. 加以性方道直, 介然有守, 不交勢利, 自致名望, 可使執簡, 列爲史官, 記事書法, 必無所苟, 仍遷郞位, 用示褒升.” 白居易詞也. 觀此, 豈可謂宰相苟加史職榮之邪?

원화 8년 3월 을해일에(元和八年三月乙亥), 국자박사 한유가(國子博士韓愈), 비부낭중사관추찬으로 옮겼다(遷比部郞中史館修撰). 이에 앞서(先是), 한유가(愈) 몇 번(數) 관직에서 쫓겨나고(黜官), 또(又) 좌천되어(下遷), 이에(乃) 진학해를 지어(作「進學解」以) 자기를 비유했고(自喩), 집정이(執政) 이것을 보고(覽之), 그에게 사관의 재주가 있다고 여겼고(以其有史才), 그러므로(故) 이 관직을 내렸다(除是官). 제사에 이르길(制詞曰): “태학박사 한유가(太學博士韓愈), 학술이(學術) 정밀하고 넓으며(精博), 문장력이 크고 굳세어(文力雄健), 말을 세우고(立詞) 뜻을 두는 것에(措意), 반고와 사마천의 기풍이 있으니(有班馬之風), 한 시대에서 구하더라도(求之一時), 매우(甚) 얻기 쉽지 않다(不易得). 더구나(加) 성품이 방정하고 말이 곧기 때문에(以性方道直), 절개 있게(介然) 지키는 것이 있고(有守), 세력과 이익을 사귀지 않고(不交勢利), 스스로(自) 명망에 이르러(致名望), 집간을 하도록 할만하니(可使執簡), 나열하여(列) 사관이 되도록 하고(爲史官), 일을 기록하는 서법에(記事書法), 반드시(必) 구차한 것이 없을 것이니(無所苟), 이에(仍) 낭위로 옮겨서(遷郞位), 쓴 것이 보인다(用示褒升).”라고 했다. 백거이의 제사다(白居易詞也). 이것으로 보면(觀此), 어찌(豈) 재상이(宰相) 구차하게(苟) 사관 직의 영예를 베풀었다고(加史職榮之) 말할 수 있겠는가(可謂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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