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翟公罷廷尉, 賓客無一人至者, 其後復用, 賓客欲往. 翟公大書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世以爲口實. 然余嘗薄其爲人, 以爲客則陋矣, 而公之所以待客者, 獨不爲小哉.
옛날(昔) 적공이(翟公) 정위 자리에서 물러나고(罷廷尉), 빈객 가운데(賓客) 이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無一人至者), 그 뒤에(其後) 다시 등용되자(復用), 빈객이 오려고 했다(賓客欲往). 적공이(翟公) 그 문에(其門) 크게 글을 써서 말하길(大書曰): “한 번 죽었다 한 번 살아나니(一死一生), 교류하는 정을 알았고(乃知交情), 한 번 가난했다가 한 번 부유해지니(一貧一富), 교류하는 실태를 알았고(乃知交態), 한 번 귀해졌다가 한 번 천해지니(一貴一賤), 교류하는 정이 드러났다(交情乃見).”라고 했다. 세상이(世) 이야깃거리로 삼았다(以爲口實). 그러나(然) 내가 일찍이(余嘗) 그 사람됨을 박하게 여겨서(薄其爲人), 손님이 비루하지만(客則陋矣, 而) 적공도(公之) 손님을 대하는 것도(所以待客者), 단지(獨) 졸렬한 것이 아닌가 했다(以爲不爲小哉).
* 口實(구실): 핑계를 삼을 만한 재료(材料).
故太子太師歐陽公好士, 爲天下第一. 士有一言中於道, 不遠千里而求之, 甚於士之求公. 以故盡致天下豪傑, 自庸衆人, 以顯於世者固多矣. 然士之負公者亦時有之. 蓋嘗慨然太息, 以人之難知, 爲好士者之戒.
그러므로(故) 태자태사인(太子太師) 구양공이(歐陽公)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好士), 천하제일이 되었다(爲天下第一). 선비에게(士) 말 한마디라도 도에 맞음이 있으면(有一言中於道), 천리를 멀다고 여기지 않고(不遠千里而) 그를 찾았고(求之), 선비가 공을 찾는 것보다(於士之求公) 더했다(甚). 이 때문에(以故) 천하의 호걸을(天下豪傑) 모두 이르게 하니(盡致), 보통사람으로부터(自庸衆人),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사람이(以顯於世者) 진실로 많았다(固多矣). 그러나(然) 선비가(士之) 공을 등진 것도(負公者) 또한(亦) 때때로(時) 있었다(有之). 일찍이(蓋嘗) 분해하며(慨然) 한숨을 쉬고(太息),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렵다는 것으로(以人之難知),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계로 삼았다(爲好士者之戒).
* 庸衆人(용중인): 용렬한 보통 사람.
* 慨然(개연): 억울(抑鬱)하고 원통(冤痛)하여 몹시 분(憤)함.
意公之於士, 自是少倦, 而其退老於潁水之上, 余往見之, 則猶論士之賢者, 惟恐其不聞於世也, 至於負者, 則曰: “是罪在我, 非其過.” 翟公之客, 負公於死生貴賤之間, 而公之士, 判公於瞬息俄頃之際, 翟公罪客, 而公罪己, 與士益厚, 賢於古人遠矣.
공이(意公之) 선비에 대해서(於士), 이때부터(自是) 다소 싫증이 났고(少倦, 而) 그가(其) 영수 가에서(於潁水之上) 물러나 늙어가면서(退老), 내가(余) 가서 뵈었을 때(往見之, 則) 여전히(猶) 선비 가운데 현명한 사람을 논했지만(論士之賢者), 오직(惟) 그가(其)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못할까(不聞於世) 두려워했고(恐也), 배반한 사람에 이르러서는(至於負者, 則) 말하길(曰): “이 죄는(是罪) 나에게 있고(在我), 그의 잘못이 아니다(非其過).”라고 했다. 저공의 손님이(翟公之客), 생사귀천의 사이에서(於死生貴賤之間) 공을 등지고(負公, 而) 구양공의 선비는(公之士), 눈 깜짝할 사이에(於瞬息俄頃之際) 공을 등졌는데(判公), 적공은(翟公) 객에게 죄를 물었고(罪客, 而) 공은 자기에게 죄를 물었으니(公罪己), 선비와(與士) 더욱 두터웠고(益厚), 옛사람의 현명함보다(賢於古人) 멀었다(遠矣).
* 瞬息(순식):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아주 짧은 동안.
* 俄頃(아경): 조금 있다가. 아간(俄間).
公不喜佛老,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 必引而進之. 佛者惠勤, 從公遊三十餘年,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 尤長於詩.
공이(公) 불교와 도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不喜佛老), 그 무리 가운데(其徒) 시서를 익히고(治詩書) 인의의 설을 배운 사람이 있으면(有學仁義之說者), 반드시(必) 끌어들여(引而) 나아가도록 했다(進之). 불자 혜근은(佛者惠勤), 공을 따라(從公) 삼십여 년을 노닐었는데(遊三十餘年), 공이(公) 일찍이(嘗) 총명하고 재주가 많으며(爲聰明才智) 학문을 갖춘 사람이라고(有學問者) 그를 칭찬했고(稱之), 시에 더욱 장점이 있었다(尤長於詩).
公薨於汝陰, 余哭之於其室, 其後見之, 語及於公, 未嘗不涕泣也. 勤固無求於世, 而公又非有德於勤者, 其所以涕泣不忘, 豈爲利哉. 余然後益知勤之賢,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而從事於功名, 其不負公也審矣.
공이(公) 여음에서 돌아가시고(薨於汝陰), 내가(余) 그 집에서(於其室) 그를 곡하고(哭之), 그 뒤에(其後) 그(혜근)를 만났는데(見之), 이야기가(語) 공에 이르러서(及於公), 일찍이(未嘗)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不涕泣也). 혜근에게(勤) 진실로(固)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없고(無求於世, 而) 공이(公) 또한(又) 혜근에게 덕을 베푼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非有德於勤者), 그가(其) 울며 잊지 못하는 것이(所以涕泣不忘), 어찌(豈) 이익 때문이겠는가(爲利哉). 내가(余) 그 뒤에(然後) 혜근의 현명함을(勤之賢) 더욱 알게 되어(益知), 그로 하여금(使其) 사대부 사이에 늘어서서(得列於士大夫之間而) 공명에 종사하도록 한다면(從事於功名), 그가(其) 공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不負公也) 확실했다(審矣).
熙寧七年, 予自錢塘, 將赴高密, 勤出其詩若干篇, 求予文以傳於世. 余以爲詩, 非待文而傳者也, 若其爲人之大略, 則非斯文, 莫之傳也.
희녕 7년에(熙寧七年), 내가(予) 전당에서(自錢塘), 고밀로 떠나려 할 때(將赴高密), 혜근이(勤) 그의 시 몇 편을(其詩若干篇) 내서(出), 나의 글을 구해서(求予文以) 세상에 전하려고 했다(傳於世). 나는(余) 그의 시는(詩), 글을 기다려 전해질 것이 아니지만(非待文而傳者也), 그 사람됨의 대략은(若其爲人之大略, 則) 이 글이 아니라면(非斯文), 누구도 전하지 못할 것이라고(莫之傳) 여겨진다(以爲也).
* 若干(약간): 정도(程度)나 양 따위가 얼마 되지 아니함.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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