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대체로 周 赧王(B.C.314~B.C.256) 때에 일어난 일로 보는 것이 通說인데 高誘의 註에서는 아마도 周 顯王(B.C.368~B.C.321) 때의 일이 아닌가라고 적었다. 구정은 우임금이 하나라를 세우고 아홉 지방의 제후들이 바친 청동을 모아 만든 제사용 솥으로 9주를 상징하며, 하나라 이후 나라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秦興師臨周而求九鼎, 周君患之, 以告顔率. 顔率曰: “大王勿憂, 臣請東借救於齊.” 顔率至齊, 謂齊王曰: “夫秦之爲無道也, 欲興兵臨周而求九鼎, 周之君臣內自盡計: 與秦, 不若歸之大國. 夫存危國, 美名也; 得九鼎, 厚寶也. 願大王圖之. 齊王大悅, 發師五萬人, 使陳臣思將以救周, 而秦兵罷.
진나라가(秦) 군대를 일으켜(興師) 주나라에 와서(臨周而) 구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求九鼎), 주군이 걱정하여(周君患之, 以) 안솔에게 알렸다(告顔率).
안솔이 말하길(顔率曰): “대왕은(大王) 걱정하지 마시고(勿憂), 신이(臣) 청컨대(請) 동쪽으로 가서(東) 제나라의 도움을 빌리겠습니다(借救於齊).”라고 했다.
안솔이(顔率) 제나라에 도착해서(至齊), 제나라 왕에게 말하길(謂齊王曰): “대저(夫) 진나라가(秦之) 무도한 짓을 하는 것이(爲無道也), 군대를 일으켜(興兵) 주나라에 와서(臨周而) 구정을 요구하려고 하니(欲求九鼎), 주나라의 군신이(周之君臣) 내부에서(內) 스스로 계책을 다 찾아봤는데(自盡計): 진나라에 주는 것이(與秦), 대국에 그것을 주는 것만 못하다고(不若歸之大國) 결정했습니다. 무릇(夫) 위기에 빠진 나라를 보존하도록 하는 것은(存危國), 아름다운 명분이고(美名也); 구정을 얻는 것은(得九鼎), 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厚寶也). 원컨대(願) 대왕이(大王) 그것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圖之).
제나라 왕이(齊王) 크게 기뻐하고(大悅), 군대 5만을 일으켜(發師五萬人), 진신사로 하여금(使陳臣思) 이끌게 하고 주나라를 구원하니(將以救周, 而) 진나라 군대가(秦兵) 물러났다(罷).
* 周君: 原註에서는 周 현왕(顯王)이라고 하지만 연대가 맞지 않는다. 周 난왕(赧王) 7년(B.C.308)에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齊將求九鼎, 周君又患之. 顔率曰: “大王勿憂. 臣請東解之.” 顔率至齊, 謂齊王曰: “周賴大國之義, 得君臣父子相保也, 願獻九鼎. 不識大國何塗之從而致之齊?” 齊王曰: “寡人將寄徑於梁.” 顔率曰: “不可. 夫梁之君臣欲得九鼎, 謀之暉臺之下, 少海之上, 其日久矣, 鼎入梁必不出.” 齊王曰: “寡人將寄徑於楚.” 對曰: “不可. 楚之君臣欲得九鼎, 謀之於葉庭之中, 其日久矣, 若入楚, 鼎必不出.”
제나라가(齊) 장차(將) 구정을 요구하려고 하자(求九鼎), 주군이(周君) 또(又) 그것을 걱정했다(患之). 안솔이 말하길(顔率曰): “대왕은(大王) 걱정하지 마십시오(勿憂). 신이(臣) 청컨대(請) 동쪽으로 가서(東) 해결하겠습니다(解之).”라고 했다.
안솔이(顔率) 제나라에 도착해서(至齊), 제나라 왕에게 말하길(謂齊王曰): “주나라가(周) 대국의 의리에 힘입어(賴大國之義), 군신과 부자가(君臣父子) 모두 보존할 수 있었으니(得相保也), 원컨대(願) 9정을 바치려고 합니다(獻九鼎). 알지 못하겠지만(不識) 대국이(大國) 어느 길을 따라서(何塗之從而) 그것을 제나라에 이르도록 하려 합니까(致之齊)?”
제나라 왕이 말하길(齊王曰): “과인이(寡人) 장차(將) 양나라에서(於梁) 길을 빌릴 것이다(寄徑).”라고 했다.
안솔이 말하길(顔率曰): “안됩니다(不可). 양나라의 군신이(夫梁之君臣) 구정을 얻는다면(欲得九鼎), 휘대 아래 둘까(暉臺之下), 사해 가에 둘까 하고(少海之上) 모의한 것이(謀之), 그날이(其日) 오래되었으니(久矣), 구정이(鼎) 양나라에 들어간다면(入梁) 반드시(必)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不出).”
제나라 왕이 말하길(齊王曰): “과인이(寡人) 장차(將) 초나라에(於楚) 길을 빌려보겠다(寄徑).”라고 했다. <안솔이>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안됩니다(不可). 초나라의 군신이(楚之君臣) 구정을 얻는다면(欲得九鼎), 섭정궁 가운데 두려고(於葉庭之中) 모의한 것이(謀之), 날이 오래되었으니(其日久矣), 만약(若) 초나라에 들어가면(入楚), 구정이(鼎) 반드시(必)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不出).”
* 暉臺(휘대): 魏나라 수도 大梁에 있는 궁궐 이름.
* 少海(소량): 사해(沙海)라고도 하며, 大梁 근처의 水名.
* 葉庭(섭정): 楚나라의 葉邑에 있던 궁궐 이름. 章華宮이라고도 한다.
王曰: “寡人終何塗之從而致之齊?” 顔率曰: “弊邑固竊爲大王患之. 夫鼎者, 非效醯壺醬甀耳, 可懷挾提挈以至齊者, 非效鳥集烏飛·免興馬逝, 灕然止於齊者. 昔周之伐殷, 得九鼎, 凡一鼎而九萬人輓之, 九九八十一萬人, 士卒師徒, 器械被具, 所以備者稱此. 今大王縱有其人, 何塗 之從而出? 臣竊爲大王私憂之.” 齊王曰: “子之數來者, 猶無與耳.” 顔率曰: “不敢欺大國, 疾定所從出, 弊邑遷鼎以待命.” 齊王乃止.
왕이 말하길(王曰): “과인이(寡人) 결국(終) 어느 길을 따라서(何塗之從而) 제나라에 그것을 이르도록 할 수 있는가(致之齊)?”라고 했다.
안솔이 말하길(顔率曰): “우리 성읍에서도(弊邑) 진실로(固竊) 대왕을 위해(爲大王) 걱정하고 있습니다(患之). 무릇 구정이란(夫鼎者), 술병이나 간장 항아리처럼(效醯壺(醬甀耳) 품에 안거나 손에 들고서(可懷挾提挈以) 제나라에 올만한 것이 아니고(非至齊者), 새가 모이고 까마귀가 날듯(效鳥集烏飛), 토끼가 뛰고 말이 달리듯(免興馬逝), 쉽게(灕然) 제나라에 올 수 있는 것이(止於齊者) 아닙니다(非). 옛날(昔)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신해서(周之伐殷), 구정을 얻었을 때(得九鼎), 무릇(凡) 정 한 개에(一鼎而) 9만 명이 끌었으니(九萬人輓之), 9*9, 81만 명의(九九八十一萬人), 사졸과 군대(士卒師徒), 기계와 도구가(器械被具), 갖추어져야 할 것이(所以備者) 이것과 걸맞아야 합니다(稱此). 지금(今) 대왕께서(大王) 비록(縱)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有其人), 어느 길을 따라서(何塗之從而) 보낼까요(出)? 신이(臣) 정말로(竊) 대왕을 위해(爲大王) 사사로이(私) 근심하고 있습니다(憂之).”라고 했다.
제나라 왕이 말하길(齊王曰): “그대가(子之) 자주 온 것이(數來者), 결국(猶) 줄 수 없다는 것이구나(無與耳).”라고 했다.
안솔이 말하길(顔率曰): “감히(敢) 대국을 속일 수 없으니(不欺大國), 따라 나갈 방법을(所從出) 빨리 정한다면(疾定), 우리는(弊邑) 구정을 옮겨서(遷鼎以) 명을 기다릴 것입니다(待命).”라고 했다.
제나라 왕이(齊王) 이에(乃) 그만두었다(止).
* 周之伐殷: 周나라 武王이 呂尙(姜太公望)‧周公과 더불어 殷(商)의 폭군 紂를 쳐 멸망시킨 사건을 말한다. 상(商)은 탕(湯)이 세운 처음의 국호이며, 반경(盤庚)이 박(亳)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를 은(殷)이라 한다.
* 士卒師徒: 士卒은 兵士를 뜻하며, 士는 甲士이고 卒은 步卒. 師徒 역시 軍隊를 일컫는다. 周나라 군사 제도 士와 卒에 대해서 鮑彪는 “士는 一人이며 2천5백 인을 師라 하고, 1백 인을 卒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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