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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14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나, 돌아갈래!

by प्रज्ञा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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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이 41세가 되던 해 가을, 팽택(彭澤, 장시성 심양 부근)의 현령을 그만두고 고향(심양)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산문시다. 어느 날 도연명은 군에서 보낸 감독관에게 예복을 입고 가서 뵈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탄식하며 "내 닷 말 곡식 때문에 소인 앞에 허리를 꺾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그날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글을 지은 배경

 

朱文公曰: “「歸去來辭」者, 晉處士陶淵明之所作也. 潛有高志遠識, 不能俯仰時俗. 嘗爲彭澤令, 督郵行縣且至, 吏白‘當束帶見之,’ 潛歎曰: ‘吾安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耶?’ 卽日解印綏去, 作此詞, 以見志. 後以劉裕將移晉祚, 恥事二姓, 遂不復仕, 宋文帝時, 特徵不至, 卒諡靖節徵士. 歐陽公言, ‘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 然其詞義夷曠蕭散, 雖託『楚』聲, 而無其尤怨切蹙之病云.”

주문공이 이르길(朱文公曰): “귀거래사란 것은(歸去來辭者), 진나라 처사(晉處士_) 도연명이(陶淵明之) 지은 것이다(所作也). 도잠에게는(潛) 높은 뜻과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고(有高志遠識), 시속을 굽어보거나 우러러보지 않았다(不能俯仰時俗). 일찍이(嘗) 팽택의 수령이 되어(爲彭澤令), 독우가 현에 행차하여(督郵行縣) 이르렀고(且至), 아전이 말하길(吏白) ‘마땅히 예복을 입고(當束帶) 뵈어야 합니다(見之),’라고 했다. 도잠이 탄식하며 말하길(潛歎曰): ‘내가(吾) 어찌(安) 다섯 말 곡식을 위하여(能爲五斗米), 향리의 어린놈을 향해(向鄕里小兒) 굽실거리겠느냐(折腰耶)?’라고 했다. 바로 그날(卽日) 인수를 풀고(解印) 그만두고 떠나며(綏去), 이 사를 지어(作此詞, 以) 뜻을 보였다(見志). 훗날(後以) 유유가(劉裕) 장차(將) 진나라 제위를 옮기려 하자(移晉祚), 두 성씨를 섬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恥事二姓), 마침내(遂)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不復仕), 송나라 문제 때(宋文帝時), 특별히 불러도(特徵) 가지 않고(不至), 마침내(卒) 정절징사를 시호로 받았다(諡靖節徵士). 구양수가 말하길(歐陽公言), ‘양진 시대에(兩晉), 문장이 없었지만(無文章), 다행히(幸) 오직(獨) 이 편이 있을 뿐이다(有此篇耳). 그러나(然) 그 사의 뜻이(其詞義) 편안하고 공허하며(夷曠) 쓸쓸하고 어둡다(蕭散), 비록(雖) 초나라 노래에 의탁했지만(託『楚』聲, 而) 그것이 더욱 원망하고 애절하며 긴박한 병통이 없다(無其尤怨切蹙之病云).”라고 했다.

 

* 時俗(시속): 그 시대(時代)의 풍속(風俗), 그 당시(當時)의 속()된 것.

* 俯仰(부앙):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봄.

* 束帶(속대): ‘관()을 쓰고 띠를 맨다.’는 뜻으로, 예복(禮服)을 입음을 이르는 말.

* 折腰(절요): ‘허리를 꺾는다.’는 뜻으로, 절개(節槪節介)를 굽히고 남에게 굽실거림을 이르는 말.

 

淵明元序曰: “余家賓, 幼稚盈室, 甁無儲粟. 親故多勸余爲長吏, 脫然有懷. 家叔, 以余貧苦, 遂見用爲小邑. 于時, 風波未靜, 心憚遠役. 彭澤, 去家百里, 公田之利, 足以爲潤. 及少日, 眷然有歸歟之情, 何則? 質性自然, 非矯勵所得, 飢凍雖切, 違己交病. 於是, 悵然慷慨, 深愧平生之志, 猶望一稔, 當歛裳宵逝. 尋程氏妹喪于武昌, 情在駿奔, 自免去職. 仲秋至冬, 在官八十餘日. 因事順心, 命之曰‘歸去來兮,’ 乙巳歲十一月也.” ○ 淵明時年, 四十一歲.

연명이(淵明) 원래(元) 서문에서 말하길(序曰): “우리 집이 가난하여(余家賓), 어린 아이들이 집을 가득 채웠으니(幼稚盈室), 살통에(甁) 쌓인 곡식이 없었다(無儲粟). 친우들이(親) 그러므로(故) 많이(多) 내가 지방관이 되라고 권했고(勸余爲長吏), 태연히(脫然) 마음이 있었다(有懷). 가숙은(家叔), 내가 가난하고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여(以余貧苦), 마침내(遂) 등용하여(見用) 소읍을 다스리게 했다(爲小邑). 이때는(于時), 풍파가 진정되지 않았고(風波未靜), 마음이(心) 멀리 일하러 가는 것을 꺼렸다(憚遠役). 팽택은(彭澤), 집과의 거리가 100리이고(去家百里), 공전의 이로움은(公田之利), <집안을> 윤택하게 할 수 있었다(足以爲潤). 얼마 지나지 않아서(及少日), 뒤돌아보며(眷然)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긴 것은(有歸歟之情), 어째서인가(何則)? 성질의 자연스러움이고(質性自然),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니(非矯勵所得), 배고픔과 추위가(飢凍) 비록 절실하지만(雖切), 나의 뜻과 어긋나(違己) 병을 만났다(交病). 이에(於是), 서글프고(悵然) 의기가 북받쳐(慷慨), 깊이(深) 평생의 뜻을 부끄러워했지만(愧平生之志), 오히려(猶) 望一稔, 마땅히(當) 치마를 걷고(歛裳) 밤길을 떠나야 했다(宵逝). 얼마 되지 않아(尋) 정씨 집안에 시집간 누이가(程氏妹) 무창에서 죽고(喪于武昌), 마음이(情) 빨리 가려는 것에 있으므로(在駿奔), 스스로 그만두고(自免) 직을 떠났다(去職). 중추부터 동지까지(仲秋至冬), 관직에 80여 일 있었다(在官八十餘日). 일을 따르고(因事) 마음을 순하게 하여(順心), 이름을 귀거래혜로 했으니(命之曰‘歸去來兮,’) 을사년 11월이다(乙巳歲十一月也).”라고 했다. ○ 도연명의 당시 나이가(淵明時年), 41세였다(四十一歲).

 

* 眷然(권연): 사모하여 뒤를 돌아봄.

* 矯勵(교려): 잘못을 고치고 힘씀.

* 悵然(창연): 몹시 서운하고 섭섭함.

* 慷慨(강개):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義氣)가 북받쳐 원통(冤痛)하고 슬픔.

* 一稔(일임): ‘곡물(穀物)이 한 번() 여물어 익는다.’는 뜻으로, ‘일 년(一年)’을 이르는 말.

 

본문

 

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乃瞻衡宇, 載欣載奔. 僮僕歡迎, 稚子候門.

돌아가자(歸去來兮)! 논밭과 동산이(田園) 장차 황폐해지려고 하니(將蕪),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胡不歸)? 이미(旣) 스스로(自) 마음이(以心) 육체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니(爲形役), 어찌(奚) 마음이 산란하고 원망스러워하며(惆悵而) 홀로 슬퍼만 하겠는가(獨悲)? 이미 지나간 것을(已往之) 바로잡을 수 없음을(不諫) 깨달았고(悟), 올 것을(來者之) 바르게 고쳐나갈 수 있음을(可追) 알았다(知). 실로(實) 길을 잃었지만(迷塗) 그것이 아직 멀지 않고(其未遠), 지금이 옳고(今是而) 어제가 틀렸음을(昨非) 깨달았다(覺). 배는(舟) 흔들리면서(搖搖以) 가벼이 떠오르고(輕颺), 바람이 나부끼면서(風飄飄而) 옷자락을 날린다(吹衣). 먼길 가는 사람에게(征夫) 앞길을 물으니(問以前路), 아침 햇살이(晨光之) 흐릿한 것이 한스럽다(恨熹微). 이내(乃) 허술한 집을 보고(瞻衡宇), 문득 기뻐서(載欣) 뛰어가니(載奔). 심부름하는 아이가(僮僕) 반겨주고(歡迎), 어린아이들이 문에서 기다린다(稚子候門).

 

* 形役(형역): 「마음이 육체(肉體)의 부리는 바가 된다.」는 뜻으로, 「정신(精神)이 물질(物質)의 지배(支配)를 받음.」을 이름.
* 惆悵(추창): 슬퍼하고 근심하는 모습.
* 來者可追(내자가추):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앞으로의 일을 조심(操心)하면 지금(只今)까지와 같은 잘못은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나오는 말이다.
* 征夫(정부): 출정(出征)하는 군사(軍士), 먼길을 가는 사람.
* 衡宇(형우): 衡은 기둥 2개에 횡목 1개를 가로질러 만든 허술한 대문이고, 宇는 집의 처마다. 
* 載欣: 載는 則과 같은 뜻이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携幼入室, 有酒盈樽,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雲無心以出峀,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삼경은(三徑) 거칠어졌지만(就荒), 소나무와 국화는(松菊) 여전히 있다(猶存). 어린아이 <손을> 잡고(携幼) 방으로 들어서니(入室), 술이 항아리에 가득하고(有酒盈樽), 술병과 잔을 끌어다가(引壺觴以) 혼자서 따르고(自酌), 뜰에 심은 나무 바라보며(眄庭柯以) 안색이 부드러워진다(怡顔). 남창에 기대어(倚南窓以) 편안하게 있으니(寄傲), 겨우(審) 무릎 들일 만한 것의(容膝之) 편안함이랴(易安). 동산에서(園) 날마다 거닐며(日涉以) 뜻을 이루고(成趣), 문은(門) 비록(雖) 세웠지만(設而) 늘 잠겨있네(常關). 지팡이 짚고(策) 늙은 몸 부축해서(扶老以) 이리저리 거닐다가(流憩), 때때로(時) 머리 들고(矯首而) 멀리 바라보니(遐觀), 구름은(雲) 무심하게(無心以) 산봉우리에서 나오고(出峀), 새는(鳥) 날기에 지치면(倦飛而) 돌아올 줄 안다(知還). 햇빛 어둑해져서(景翳翳以) 장차 들어가려 하니(將入),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撫孤松而) 서성거리는구나(盤桓).

 

* 三徑(삼경): 은자()의 문안(-)에 있는 뜰. 또는 은자()가 사는 곳. 한나라(--)의 은자() 장후()가 정원()에 세 개()의 좁은 길을 내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 庭柯(정가): 뜰에 심은 나무. 또는 그 나무의 가지.

* 怡顔(태이): 기쁜 낯을 함. 안색()을 부드럽게 함.

* 寄傲(기오): 떳떳해서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편안한 것.

* 流憩(유계): 이리저리 거닐며 쉼.

* 景翳翳(경예예): 景은 '햇빛', 翳翳는 '어둑어둑한 모양'을 말한다. 

* 盤桓(반환): 어정어정 머뭇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일.

 

歸去來兮! 請息交以絶游.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于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돌아가자(歸去來兮)! 청컨대(請) 사귀기를 그만두고(息交以) 왕래를 끊자(絶游). 세상과 내가(世與我而) 서로 어긋났으니(相違), 다시 멍에 매어서(復駕言兮) 무엇을 구하겠는가(焉求). 친척의 정다운 이야기를 좋아하고(悅親戚之情話),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樂琴書以) 근심을 없앤다(消憂). 농부가 내가 이르기를(農人告余以) 봄이 왔다고 하고(春及), 장차(將) 서쪽밭에 일이 있을 것이다(有事于西疇). 혹(或) 헝겊으로 씌운 수레 몰고(命巾車), 혹 배 한 척 노 저어서(或棹孤舟). 이미(旣) 깊은 골짜기(窈窕以) 시냇물 찾고(尋壑), 또(亦) 험악한 산길로(崎嶇而) 언덕을 지나며(經丘), 나무는(木) 즐거운 듯이(欣欣以) 무성하고(向榮), 냇물은(泉) 졸졸(涓涓而) 흐르다(始流). 만물이 때를 얻은 것을 부러워하고(羨萬物之得時), 내 생이 끝나가는 것을 느낀다(感吾生之行休).

 

* 駕言(가언): 駕는 '수레에 멍에 매다'는 뜻이고, 言은 여기서 조사로 쓰였다. 

* 窈窕(요조): 산수가 구불구불하고 속이 깊은 곳을 말한다.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그만두어라(已矣乎)! 형체를 우주에 붙여 두는 것이(寓形宇內) 다시(復) 얼마나 될까(幾時), 어찌(曷) 마음에 맡겨(委心) 가고 머무는 것에 맡기지 않는가(任去留), 무엇 때문에(胡爲乎) 바삐 서둘어(遑遑) 하려고 하는가(欲何之)? 부귀는(富貴) 내가 원한 것이 아니고(非吾願), 임금 계신 곳은(帝鄕) 기약할 수 없구나(不可期). 좋은 시절행각하면서(懷良辰以) 외로이 가고(孤往), 혹(或) 지팡이 꽂고서(植杖而) 김매고 북돋우리라(耘耔). 동쪽언덕에 올라(登東皐以) 휘파람 불고(舒嘯), 맑을 물에 임해서(臨淸流而) 시를 짓는구나(賦詩). 그대로(聊) 변화에 올라타고(乘化以) 다함으로 돌아가고(歸盡), 저 천명을 즐기니(樂夫天命) 다시(復) 무엇을 의심할까(奚疑).

 

* 良辰(양신): 좋은 시절()이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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