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孟嘗君名文, 姓田氏. 文之父曰靖郭君田嬰. 田嬰者,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 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 成侯與田忌爭寵, 成侯賣田忌. 田忌懼, 襲齊之邊邑, 不勝, 亡走. 會威王卒, 宣王立, 知成侯賣田忌, 乃複召田忌以爲將. 宣王二年, 田忌與孫臏ㆍ田嬰俱伐魏, 敗之馬陵, 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 宣王七年, 田嬰使於韓ㆍ魏, 韓ㆍ魏服於齊. 嬰與韓昭侯ㆍ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 盟而去. 明年, 複與梁惠王會甄. 是歲, 梁惠王卒. 宣王九年, 田嬰相齊. 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 楚威王聞之, 怒田嬰. 明年, 楚伐敗齊師於徐州, 而使人逐田嬰. 田嬰使張醜說楚威王, 威王乃止. 田嬰相齊十一年, 宣王卒, 湣王卽位. 卽位三年, 而封田嬰於薛.
맹상군의 이름은 문이고(孟嘗君名文), 성은 전씨다(姓田氏). 맹상군의 아버지는(文之父) 정곽군 전영이다(曰靖郭君田嬰). 전영은(田嬰者), 제나라 위왕의 첩에게서 난 아들로(齊威王少子而) 제나라 선왕의 배다른 동생이다(齊宣王庶弟也). 전영이(田嬰) 위왕 때부터(自威王時) 관직에 임용되어(任職) 일에 관여했는데(用事), 성후 추기, 전기와 더불어(與成侯鄒忌及田忌) 장수가 되어(將而) 한나라를 구하고(救韓) 위나라를 쳤다(伐魏). 성후와 전기가 총애를 다투자(成侯與田忌爭寵), 성후가 전기를 매도했다(成侯賣田忌). 전기가 두려워(田忌懼), 제나라의 변방 고을을 습격했지만(襲齊之邊邑), 이기지 못하고(不勝), 도망쳤다(亡走). 위왕이 죽고(會威王卒), 선왕이 즉위해서(宣王立), 성후가 전기를 매도한 것을 알고(知成侯賣田忌), 이에(乃) ㄷ시(複) 전기를 불러(召田忌) 장군으로 삼았다(以爲將).
선왕 2년(宣王二年), 전기와 손빈, 전영이(田忌與孫臏ㆍ田嬰) 함께(俱) 위나라를 쳐서(伐魏), 마릉에서 무찌르고(敗之馬陵),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고(虜魏太子申而) 위나라 장수 방연을 죽였다(殺魏將龐涓).
선왕 7년(宣王七年), 전영이(田嬰) 한나라와 위나라에 사신으로 가서(使於韓ㆍ魏), 한나라와 위나라가(韓ㆍ魏) 제나라에 복종하도록 했다(服於齊). 전영은(嬰) 한나라 소후와 위 혜왕이(與韓昭侯ㆍ魏惠王) 동아 남쪽에서 제 선왕을 만나(會齊宣王東阿南), 맹약을 맺게 하고(盟而) 보냈다(去). 다음 해에(明年), 다시(複) 양 혜왕과(與梁惠王) 견에서 만났다(會甄). 이 해에(是歲), 양 혜왕이 죽었다(梁惠王卒).
선왕 9년(宣王九年), 전영이 제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田嬰相齊). 제 선왕과(齊宣王與) 위 양왕이(魏襄王) 서주에서 만나서(會徐州而) 서로 왕을 칭했다(相王也). 초 위왕이 이것을 듣고(楚威王聞之), 전영에게 화를 냈다(怒田嬰). 다음 해에(明年), 초나라가 침공해서(楚伐) 서주에서 제나라를 무찌르고(敗齊師於徐州, 而) 사람들로 하여금(使人) 전영을 쫓도록 했다(逐田嬰). 전영이(田嬰) 장추를 시켜(使張醜) 초 위왕을 설득해서(說楚威王), 위왕이 이에 그만두었다(威王乃止). 전영이(田嬰) 제나라에서 11년 동안 재상을 하고(相齊十一年), 선왕이 죽고(宣王卒), 민왕이 즉위했다(湣王卽位). 즉위한 지(卽位) 3년이 지나서(三年, 而) 전영을 설 땅에 봉했다(封田嬰於薛).
* 庶弟(서제) : 서모(庶母)에게서 태어난 동생. 이복동생.
* 亡走(망주) : 도망가다. 달아나다.
* 用事(용사) : 권력을 장악함.
2 初, 田嬰有子四十餘人. 其賤妾有子名文, 文以五月五日生. 嬰告其母曰: “勿擧也.” 其母竊擧生之. 及長, 其母因兄弟而見其子文於田嬰. 田嬰怒其母曰: “吾令若去此子, 而敢生之, 何也?” 文頓首, 因曰: “君所以不擧五月子者, 何故?” 嬰曰: “五月子者, 長與戸齊, 將不利其父母.” 文曰: “人生受命於天乎? 將受命於戸邪?” 嬰黙然. 文曰: “必受命於天, 君何憂焉. 必受命於戸, 則可高其戸耳, 誰能至者!” 嬰曰: “子休矣.”
2 처음에(初), 전영에게(田嬰) 자식이 40여 명 있었다(有子四十餘人). 그 천한 첩에게(其賤妾) 자식이 있어(有子) 이름이 문이었는데(名文), 문은(文) 5월 5일 생이다(以五月五日生).
전영이(嬰) 그 어미에게 일러 말하길(告其母曰): “키우지 말아라(勿擧也).”라고 했다.
그 어미가(其母) 몰래(竊) 거두어(擧) 길렀다(生之). 장성해서(及長), 그 어미가(其母) 형제들을 통해서(因兄弟而) 그 자식 문을(其子文) 전영에게 보였다(見於田嬰).
전영이(田嬰) 화내며 그 어미에게 말하길怒其母曰: “내가(吾) 너에게 명하길(令若)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去此子, 而) 감히(敢) 길렀으니(生之), 어찌 된 일이냐(何也)?”라고 했다.
문이(文) 머리를 조아리며(頓首), 말하길(因曰): “군께서(君) 5월에 태어난 자식을 거두지 않은 것은(所以不擧五月子者), 어째서입니까(何故)?”라고 했다.
전영이 말하길(嬰曰): “5월에 태어난 자식은(五月子者), 자라서(長) 지게문과 같아지면(與戸齊), 장차(將) 그 부모에게 이롭지 않다(不利其父母).”라고 했다.
문이 말하길(文曰): “사람이(人生) 하늘에서 명을 받습니까(受命於天乎)? 장차(將) 지게문에게서 받습니까(受命於戸邪)?”라고 했다. 전영이 말이 없었다(嬰黙然).
문이 말하길(文曰): “반드시(必) 하늘에서 명을 받으니(受命於天), 군께서(君) 무엇을 걱정하십니까(何憂焉). 반드시(必) 지게문에서 명을 받는다면(受命於戸, 則) 그 지게문을 높일 수 있으니(可高其戸耳), 누가(誰) 이를 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能至者)!”라고 했다.
전영이 말하길(嬰曰): “너는 그만하거라(子休矣).”라고 했다.
3 久之, 文承閒問其父嬰曰: “子之子爲何?” 曰: “爲孫.” “孫之孫爲何?” 曰: “爲玄孫.” “玄孫之孫爲何?” 曰: “不能知也.” 文曰: “君用事相齊, 至今三王矣, 齊不加廣而君私家富累萬金, 門下不見一賢者. 文聞將門必有將, 相門必有相. 今君後宮蹈綺縠而士不得(短[裋]褐, 僕妾餘粱肉而士不厭糟糠. 今君又尙厚積餘藏, 欲以遺所不知何人, 而忘公家之事日損, 文竊怪之.” 於是嬰迺禮文, 使主家待賓客. 賓客日進, 名聲聞於諸侯. 諸侯皆使人請薛公田嬰以文爲太子, 嬰許之. 嬰卒, 謚爲靖郭君. 而文果代立於薛, 是爲孟嘗君.
3 얼마 지나서(久之), 문이(文) 한가한 틈에(承閒) 그 아버지 전영에게 물어 말하길(問其父嬰曰): “아들의 아들을(子之子) 무엇이라고 합니까(爲何)?”라고 했다.
<전영이> 말하길(曰): “손자다(爲孫).”라고 했다.
<문이 말하길> “손자의 손자를(孫之孫) 무엇이라고 합니까(爲何)?”라고 했다.
<전영이> 말하길(曰): “현손이다(爲玄孫).”라고 했다.
<문이 말하길> “현손의 손자를(玄孫之孫) 무엇이라고 합니까(爲何)?”라고 했다.
<전영이> 말하길(曰): “알 수 없다(不能知也).”라고 했다.
문이 말하길(文曰): “군께서(君) 일을 맡아서 하고(用事) 제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는데(相齊), 지금에 이르러(至今) 3명의 왕인데(三王矣), 제나라는(齊) 더 넓어지지 않았는데(不加廣而) 군의 사가에는(君私家) 부가(富) 만금이 쌓였지만(累萬金), 문하에(門下) 어진 사람 하나를 볼 수 없습니다(不見一賢者). 제가 듣기로(文聞) 장수 가문에는(將門) 반드시 장수가 있고(必有將), 재상의 가문에는(相門)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必有相). 지금(今) 군의 후궁은(君後宮) 비단 주름옷을 밟고 다니지만(蹈綺縠而士) 사는(不) 베옷도 얻지 못하고(得(短 [裋]褐),僕妾) 밥과 고기가 남아돌지만(餘粱肉而) 선비들은(士) 지게미와 쌀겨도 싫어하지 않습니다(不厭糟糠). 지금(今) 군께서(君) 또(又) 오히려(尙) 많이 쌓아서(厚積) 남아돌지만(餘藏), 그것을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 남겨주려고 하고(欲以遺所不知何人, 而) 공가(나라)의 일이(公家之事) 날로 손해를 보는 것을(日損) 잊고 있으니(忘), 저는(文) 실로(竊) 그것이 이상합니다(怪之).”라고 했다.
이에(於是) 전영이(嬰) 이에(迺) 문을 예우하고(禮文), 집안의 중용한 일과 빈객 접대하는 일을 시켰다(使主家待賓客). 빈객이(賓客) 날로 늘어나(日進), 명성이(名聲) 제후에게 알려졌다(聞於諸侯). 제후가(諸侯) 모두(皆) 사람들을 시켜(使人) 설공 전영이(薛公田嬰) 문을(以文) 태자로 삼도록(爲太子) 청하자(請), 전영이 허락했다(嬰許之). 전영이 죽고(嬰卒), 시호가(謚) 정곽군이 되었다(爲靖郭君). 그리고(而) 문이(文) 과연(果) 설에서 대를 이어 자리에 올랐으니(代立於薛), 이 사람이(是) 맹상군이다(爲孟嘗君).
* 承閒(승한) : ~틈타서,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 粱肉(양육): 쌀밥과 고기반찬. 粱(양)은 좋은 곡식.
* 糟糠(조강): ‘지게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치 못한 음식(飮食)을 이르는 말.
4 孟嘗君在薛, 招致諸侯賓客及亡人有罪者, 皆歸孟嘗君. 孟嘗君舍業厚遇之, 以故傾天下之士. 食客數千人, 無貴賤一與文等. 孟嘗君待客坐語, 而屛風後常有侍史, 主記君所與客語, 問親戚居處. 客去, 孟嘗君已使使存問, 獻遺其親戚.
孟嘗君曾待客夜食, 有一人蔽火光. 客怒, 以飯不等, 輟食辭去. 孟嘗君起, 自持其飯比之. 客慚, 自剄. 士以此多歸孟嘗君. 孟嘗君客無所擇, 皆善遇之. 人人各自以爲孟嘗君親己.
4 맹상군이(孟嘗君) 설에 있으면서(在薛), 제후의 빈객과(諸侯賓客及) 도망친 사람 중에 죄인까지(亡人有罪者) 불러 모으자(招致), 모두(皆) 맹상군에게 왔다(歸孟嘗君). 맹상군이(孟嘗君) 재산을 써가며(舍業) 후하게 대우했고(厚遇之, 以) 그러므로(故) 천하의 선비가 모여들었다(傾天下之士). 식객이(食客) 수천 명이고(數千人), 귀천을 가리지 않고(無貴賤) 한결같이(一) 자신과 동등하게 여겼다(與文等). 맹상군이(孟嘗君) 손님을 대접하고(待客) 앉아서 이야기하고(坐語, 而) 병풍 뒤에는(屛風後) 늘(常) 기록하는 사람이 있어(有侍史), 맹상군과 객이 말하는 것과(君所與客語), 친척과 사는 곳을 묻고(問親戚居處) 주로 기록했다(主記). 객이 떠나면(客去), 맹상군이(孟嘗君) 사자를 시켜(已使使) 안부를 묻고(存問), 그 친척에게 선물을 주었다(獻遺其親戚).
맹상군이(孟嘗君) 일찍이(曾) 손님을 대접하며(待客) 밤참을 먹었는데(夜食), 한 사람이 있어(有一人) 불빛을 가렸다(蔽火光). 손님이(客), 반찬이 같지 않은 것으로 여겨(以飯不等), 화를 내고(怒) 식사를 그만두고(輟食) 사양하며 떠나려 했다(辭去). 맹상군이 일어나(孟嘗君起), 자기 것과 대접하는 사람의 것을(自持其飯) 비교해 보였다(比之). 손님이 부끄러워하며(客慚),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自剄). 선비들이(士) 이것 때문에(以此) 많이 맹상군에게 모여들었다(多歸孟嘗君). 맹상군의 손님에는(孟嘗君客) 가리는 것이 없어서(無所擇), 모두(皆) 잘 대우를 받았다(善遇之). 사람마다(人人) 각자(各自) 맹상군이 자기와 친하다고 여겼다(以爲孟嘗君親己).
* 舍業(사업) : 가업(家業)을 포기하다.
* 使使存問(시사존문) : 사람을 보내 위문하다. 앞의 使는 보낼 ‘시’, 뒤의 使는 사자(使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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