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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005-1] 거짓 조서를 내니 제후가 조조에게 호응하고 《發矯詔諸鎮應曹公》

by प्रज्ञा 202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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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卻說陳宮正欲下手殺曹操, 忽轉念曰: "我爲國家跟他到此, 殺之不義. 不若棄而他往." 插劍上馬, 不等天明, 自投東郡去了. 操覺, 不見陳宮, 尋思: "此人見我說了這兩句, 疑我不仁, 棄我而去; 吾當急行, 不可久留." 遂連夜到陳留, 尋見父親, 備說前事; 欲散家資, 招募義兵. 父言: "資少恐不成事. 此間有孝廉衛弘, 疏財仗義, 其家巨富; 若得相助, 事可圖矣." 

1 한편(卻說) 진궁은(陳宮) 바로(正) 손을 써서 조조를 죽이려고 하다가(欲下手殺曹操), 문득(忽) 생각을 바꿔 말하길(轉念曰): "내가(我) 나라를 위해(爲國家) 남을 따라(跟他) 여기에 이르렀는데(到此), 죽이는 것은(殺之) 불의한 짓이다(不義). 버리고(棄而) 다른 주인을 모시는 것만(他往) 못하다(不若)."라고 했다.

검을 다시 꽂고(插劍) 말에 올라(上馬),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不等天明), 동군으로(自投東郡) 가버렸다(去了).

조조가 일어나서(操覺), 진궁이 보이지 않자(不見陳宮), 깊이 생각하며(尋思): "이 사람이(此人) 내가 이 두 구절을 말한 것을 보고(見我說了這兩句), 내가 불인하다고 생각해서(疑我不仁),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棄我而去); 나도(吾) 마땅히(當) 급히 가야 하니(急行), 오래 머물 수 없겠구나(不可久留)."라고 했다. 마침내(遂) 밤을 이어(連夜) 진류에 도착해서(到陳留), 부친을 찾아뵙고(尋見父親), 이전의 일을 자세히 말하고(備說前事); 집안의 재산을 흩어서(欲散家資), 의병을 모집하려고 한다고 했다(招募義兵).

아버지가 말하길(父言): "재산이 적어(資少)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恐不成事). 여기에(此間) 효렴 위홍이 있는데(有孝廉衛弘),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疏財) 의를 높이는데(仗義), 그 집안이(其家) 큰 부자이니(巨富); 만약(若) 서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得相助), 일을 도모할만하다(事可圖矣)."라고 했다. 


2 操置酒張筵, 拜請衛弘到家, 告曰: "今漢室無主, 董卓專權, 欺君害民, 天下切齒. 操欲力扶社稷, 恨力不足. 公乃忠義之士, 敢求相助." 衛弘曰: "吾有是心久矣, 恨未遇英雄耳. 旣孟德有大志, 願將家資相助." 操大喜; 於是先發矯詔, 馳報各道, 然後招集義兵, 豎起招兵白旗一面, 上書「忠義」二字. 不數日間, 應募之士, 如雨駢集. 

2 조조가(操) 술자리를 만들어(置酒) 연회를 베풀고(張筵), 절하여(拜) 위홍을 청하여(請衛弘) 집에 이르도록 하고(到家), 말하길(告曰): "지금(今) 한실에(漢室) 주인이 없고(無主), 동탁이 권력을 제멋대로 하면서(董卓專權), 임금을 속이고(欺君) 백성을 해쳐서(害民), 천하 사람들이 이를 갈고 있습니다(天下切齒). 제가(操) 힘써(力) 사직을 붙잡고 싶지만(扶社稷), 한스럽게도(恨) 힘이 부족합니다(力不足). 공은 곧(公乃) 충의지사이니(忠義之士), 감히(敢) 서로 도울 것을 요청합니다(求相助)."라고 했다.

위홍이 말하길(衛弘曰): "나에게(吾) 이런 마음이 있은 것이(有是心) 오래되었는데(久矣), 한스럽게도(恨) 영웅을 만나지 못했을 뿐입니다(未遇英雄耳). 이미(旣) 맹덕에게(孟德) 큰 뜻이 있으니(有大志), 원컨대(願) 장차(將) 집안의 재물을 써서(家資) 서로 도울 것입니다(相助)."라고 했다.

조조가 기뻐하며(操大喜); 이에(於是) 거짓 조서를 먼저 발표하고(先發矯詔), 말을 달려(馳) 각 도에 알리고 나서(報各道, 然後) 의병을 모집했는데(招集義兵), 병사를 일으키는 깃발을 세웠는데(豎起招兵白旗) 한 면 위에(一面, 上) 충의 두 글자를 썼다(書「忠義」二字). 며칠이 지나지 않아(不數日間), 모집에 응한 용사가(應募之士), 비처럼 모여들었다(如雨駢集). 

 

* 矯詔(교조): 임금의 명령()이라고 속임.


3 一日, 有一個陽平衛國人, 姓樂, 名進, 字文謙, 來投曹操. 又有一個山陽鉅鹿人, 姓李, 名典, 字曼成, 也來投曹操. 操皆留爲帳前吏. 又有沛國譙人, 夏侯惇, 字元讓, 乃夏侯嬰之後; 自小習鎗棒; 年十四從師學武, 有人辱罵其師, 惇殺之, 逃於外方; 聞知曹操起兵, 與其族弟夏侯淵兩個, 各引壯士千人來會. 此二人本操之弟兄: 操父曹嵩原是夏侯氏之子, 過房與曹家, 因此是同族. 

3 하루는(一日), 양평 위국 사람이 있어(有一個陽平衛國人), 성이 악이고(姓樂), 이름이 진이고(名進), 자가 문겸인 사람이(字文謙), 와서 조조에게 의지했다(來投曹操). 또(又) 산양 거록 사람이 있어(有一個山陽鉅鹿人), 성이 이이고(姓李), 이름이 전(名典), 자가 만성인(字曼成) 사람이, 와서(也來) 조조에게 의지했다(投曹操). 조조가(操) 모두(皆) 머물게 하고(留) 장막 앞의 관리로 삼았다(爲帳前吏). 또(又) 패국 초 사람인 하후돈이 있어(有沛國譙人, 夏侯惇), 자는 원양이고(字元讓), 곧(乃) 하후영의 후손이니(夏侯嬰之後); 어려서부터(自小) 창과 봉을 배웠는데(習鎗棒); 나이 열넷에(年十四) 스승을 따라 무술을 배우다가(從師學武), 그 스승을 욕하는 사람이 있어(有人辱罵其師), 하후돈이 그를 죽이고(惇殺之), 외지로 도망갔다가(逃於外方); 조조가 의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聞知曹操起兵), 그 족제인 하우연과 함께(與其族弟夏侯淵) 두 사람이(兩個), 각자(各) 장사 천 명을 이끌고(引壯士千人) 와서 합류했다(來會). 이 두 사람이(此二人) 원래(本) 조조의 형제로(操之弟兄): 조조의 아버지(操父) 조숭이(曹嵩) 원래(原) 이 하후씨의 아들로(是夏侯氏之子), 양자로(過房) 조씨 집안에 가서(與曹家), 이것 때문에(因此) 바로(是) 동족이다(同族). 


4 不數日, 曹氏兄弟曹仁, 曹洪, 各引兵千餘來助. 曹仁字子孝, 曹洪字子廉; 二人兵馬嫺熟, 武藝精通. 操大喜, 於村中調諫軍馬. 衛弘盡出家財, 置辦衣甲旗旛. 四方送糧者, 不計其數. 

4 며칠이 지나지 않아(不數日), 조씨 형제인(曹氏兄弟) 조인과 조홍이(曹仁, 曹洪), 각자(各) 천여 명을 이끌고 와서 도왔다(引兵千餘來助). 조인은(曹仁) 자가 자효이고(字子孝), 조홍은(曹洪) 자가 자렴이고(字子廉); 두 사람이(二人) 병마에 익숙하고(兵馬嫺熟), 무예에 정통했다(武藝精通).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操大喜), 마을 가운데서(於村中) 병마를 훈련시켰다(調諫軍馬). 위홍이(衛弘) 집안의 재산을 모두 내놓아(盡出家財), 갑옷과 깃발을 준비했다(置辦衣甲旗旛). 사방에서(四方) 식량을 보내는 사람이(送糧者),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不計其數). 

 

* 嫺熟(한숙): 鍊熟(연숙), 익숙함


5 時袁紹得操矯詔, 乃聚麾下文武, 引兵三萬, 離渤海來與曹操會盟. 操作檄文以達諸郡. 檄文曰: 操等謹以大義布告天下: 董卓欺天罔地, 滅國弑君; 穢亂宮禁, 殘害生靈; 狼戾不仁, 罪惡充積! 今奉天子密詔, 大集義兵, 誓欲掃清華夏, 剿戮群凶. 望興義師, 共洩公憤; 扶持王室, 拯救黎民. 檄文到日, 可速奉行! 

5 이때(時) 원소가(袁紹) 조조의 거짓 조서를 받고(得操矯詔), 이에(乃) 휘하의 문무 관리를 모아(聚麾下文武), 병사 3만을 이끌고(引兵三萬), 발해를 떠나(離渤海) 와서 조조와 함께(來與曹操) 회맹했다(會盟). 조조가(操) 격문을 써서(作檄文以) 모든 군에 보냈다(達諸郡).

격문에서 말하길(檄文曰): 조조 등은(操等) 삼가(謹) 대의로써(以大義) 천하에 알리니(布告天下): 동탁이(董卓) 하늘을 속이고(欺天) 땅을 속여(罔地), 나라를 없애고(滅國) 임금을 죽였으며(弑君); 금궁을 더럽히고 어지럽히고(穢亂宮禁), 백성을 잔혹하게 해치고(殘害生靈); 이리처럼 탐욕스럽고 불인하여(狼戾不仁), 죄악이(罪惡) 가득 쌓였다(充積)! 지금(今) 천자의 밀서를 받들어(奉天子密詔), 의병을 크게 모집하니(大集義兵), 화하를 청소하고(掃清華夏), 흉악한 무리를 죽일 것을 맹세한다(誓欲剿戮群凶). 의로운 군대를 일으켜(興義師), 함께 공분을 폴고(共洩公憤); 왕실을 붙잡고 지지해(扶持王室), 백성을 구하기를 바란다(拯救黎民). 격문이 도착하 날에(檄文到日), 가능한 한 빨리(可速) 받들어 행하라(奉行)! 

 

* 狼戾(낭려): 이리처럼 욕심()이 많고 도리()에 어긋남.


6 操發檄文去後, 各鎮諸侯, 皆起兵相應: 第一鎮, 後將軍南陽太守袁術. 第二鎮, 冀州刺史韓馥. 第三鎮, 豫州刺史孔伷. 第四鎮, 兗州刺史劉岱. 第五鎮, 河內郡太守王匡. 第六鎮, 陳留太守張邈. 第七鎮, 東郡太守喬瑁. 第八鎮, 山陽太守劉遺. 第九鎮, 濟北相鮑信. 第十鎮, 北海太守孔融. 第十一鎮, 廣陵太守張超. 第十二鎮, 徐州刺史陶謙. 第十三鎮, 西涼太守馬騰. 第十四鎮, 北平太守公孫瓚. 第十五鎮, 上黨太守張楊. 第十六鎮, 烏程侯長沙太守孫堅. 第十七鎮, 祁鄉侯渤海太守袁紹. 諸路軍馬, 少不等, 一有三萬者, 有一二萬者一, 各領文官武將, 投洛陽來. 

6 조조가(操) 격문을 보내고 나서(發檄文去後), 각 진의 제후가(各鎮諸侯), 모두 군대를 일으켜(皆起兵) 서로 응하니(相應): 제1진은(第一鎮), 후장군 남양태수 원술이었다(後將軍南陽太守袁術). 제2진은(第二鎮), 기주자사한복(冀州刺史韓馥), 제3진은(第三鎮), 예주자사 공주(豫州刺史孔伷), 제4진은(第四鎮), 연주자사 유대(兗州刺史劉岱), 제5진은(第五鎮), 하내군태수 왕광(河內郡太守王匡), 제6진은(第六鎮), 진류태수 장모(陳留太守張邈), 제7진은(第七鎮), 동군태수 교모(東郡太守喬瑁), 제8진은(第八鎮), 산양태수 유유유(山陽太守劉遺), 제9진은(第九鎮), 제북상 포신(濟北相鮑信), 제109진은(第十鎮), 북해태수 공융(北海太守孔融), 제11진은(第十一鎮), 광릉태수 장초(廣陵太守張超), 제12진은(第十二鎮), 서주자사 도겸(徐州刺史陶謙), 제13진은(第十三鎮), 서량태수 마등(西涼太守馬騰), 제14진은(第十四鎮), 북평태수 공손찬(北平太守公孫瓚), 제15진은(第十五鎮), 상당태수 장양(上黨太守張楊), 제16진은(第十六鎮), 오정후 장사태수 손견(烏程侯長沙太守孫堅), 제17진은(第十七鎮), 기향후 발해태수 원소였다(祁鄉侯渤海太守袁紹). 모든 길의 군마가(諸路軍馬), 조금(少) 같지 않지만(不等), 한 사람에게(一) 삼만이 있거나(有三萬者), 1~2만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有一二萬者一), 각자(各) 문관과 무장을 거느리고(領文官武將), 낙양으로 왔다(投洛陽來). 


7 且說北平太守公孫瓚, 統領精兵一萬五千, 路經德州平原縣. 正行之間, 遙見桑樹叢中, 一面黃旗, 數騎來迎. 瓚視之, 乃劉玄德也. 瓚問曰: "賢弟何故在此?" 玄德曰: "舊日蒙兄保備爲平原縣令, 今聞大軍過此, 特來奉候, 就請兄長入城歇馬." 瓚指關·張而問曰: "此何人也?" 玄德曰: "此關羽, 張飛, 備結義兄弟也." 瓚曰: "乃同破黃巾者乎?" 玄德曰: "皆此二人之力." 瓚曰: "今居何職?" 玄德答曰: "關羽爲馬弓手, 張飛爲步弓手." 瓚歎曰: "如此可謂埋沒英雄! 今董卓作亂, 天下諸侯, 共往誅之. 賢弟可棄此卑官, 一同討賊, 力扶漢室, 若何?" 玄德曰: "願往." 張飛曰: "當時若容我殺了此賊, 免有今日之事." 雲長曰: "事已至此, 即當收拾前去." 

7 한편(且說) 북평태수 공손찬은(北平太守公孫瓚), 정예 병사 1만 5천을 이끌고(統領精兵一萬五千), 덕주 평원현을 거쳐갔다(路經德州平原縣). 바로(正) 지나는 사이에(行之間), 멀리 뽕나무 숲 사이에서(遙桑樹叢中), 한쪽이 황색인 깃발을 하고(一面黃旗), 말을 탄 몇 사람이 마중 나오는 것을(數騎來迎) 보았다(見). 공손찬이 보니(瓚視之), 바로(乃) 유현덕이었다(劉玄德也).

공손찬이 묻기를(瓚問曰): "현제가(賢弟) 무슨 까닭으로(何故) 이곳에 있는가(在此)?"라고 했다.

현덕이 말하길(玄德曰): "예전(舊日) 형님이(蒙兄) 보증해 주셔서(保備) 평원 현령이 되었는데(爲平原縣令), 지금(今) 대군이 이곳을 지난다는 것을 듣고(聞大軍過此), 특별히 와서(特來) 받들어 문안드리고(奉候), 나아가 청하니(就請) 형님은(兄長) 성에 들어가(入城) 말을 쉬게 하시지요(歇馬)."라고 했다.

공손찬이(瓚) 관우와 장비를 가리켜 묻기를(指關·張而問曰): "이 사람들은(此) 누구인가(何人也)?"라고 했다.

현덕이 말하길(玄德曰): "이들은(此) 관우와 장비로(關羽, 張飛), 저의 결의형제입니다(備結義兄弟也)."라고 했다.

공손찬이 말하길(瓚曰): "바로(乃) 함께(同) 황건적을 깨뜨린 사람들인가(破黃巾者乎)?"라고 했다.

현덕이 말하길(玄德曰): "모두(皆) 이 두 사람의 공입니다(此二人之力)."라고 했다.

공손찬이 말하길(瓚曰): "지금(今) 어느 직책에 있는가(居何職)?"라고 했다.

현덕이 답하여 말하길(玄德答曰): "관우는(關羽) 마궁수이고(爲馬弓手), 장비는(張飛) 보궁수입니다(爲步弓手)."라고 했다.

공손찬이 한탄하며 말하길(瓚歎曰): "이와 같다면(如此) 영웅을 묻어버렸다고 할만하구나(可謂埋沒英雄)! 지금(今) 동탁이 난을 일으켜(董卓作亂), 천하의 제후가(天下諸侯), 함께 가서 죽이려고 한다(共往誅之). 동생도(賢弟) 이 낮은 관직을 버릴 수 있다면(可棄此卑官), 모두(一) 함께 도적을 토벌하고(同討賊), 힘써(力) 한실을 지탱하는 것이(扶漢室), 어떤가(若何)?"라고 했다.

현덕이 말하길(玄德曰): "가기를 원합니다(願往)."라고 했다.

장비가 말하길(張飛曰): "당시(當時) 만약(若) 내가 그 도적을 죽여버리는 것을 허락했다면(容我殺了此賊), 오늘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면했을 것입니다(免有今日之事)."라고 했다.

운장이 말하길(雲長曰): "일이(事)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已至此), 곧(即) 마땅히(當) 수습해서(收拾) 떠나야 합니다(前去)."라고 했다. 

 

* 叢中(총중): 떼를 지은 뭇사람.


8 玄德·關·張引數騎跟公孫瓚來. 曹操接著. 衆諸侯亦陸續皆至, 各自安營下寨, 連接二百餘里. 操乃宰牛殺馬, 大會諸侯, 商議進兵之策. 太守王匡曰: "今奉大義, 必立盟主; 衆聽約束, 然後進兵." 操曰: "袁本初四世三公, 門多故吏, 漢朝名相之裔, 可爲盟主." 紹再三推辭. 衆皆曰: "非本初不可." 紹方應允. 次日築臺三層, 遍列五方旗幟, 上建白旄黃鉞, 兵符將印, 請紹登壇. 紹整衣佩劍, 慨然而上, 焚香再拜. 其盟曰: 漢室不幸, 皇綱失統. 賊臣董卓, 乘釁縱害, 禍加至尊, 虐流百姓. 紹等懼社稷淪喪, 糾合義兵, 並赴國難. 凡我同盟, 齊心戮力, 以致臣節, 必無二志. 有渝此盟, 俾墜其命, 無克遺育. 皇天后土, 祖宗明靈, 實皆鑒之! 

8 현덕과 관우, 장비가(玄德·關·張引) 몇 명의 기병을 이끌고(數騎跟) 공손찬에게 왔다(公孫瓚來). 조조가 맞이했다(曹操接著). 여러 제후도 또한(衆諸侯亦) 계속하여 모두 이르자(陸續皆至), 각자(各) 스스로 안정하고(自安) 영채를 세웠는데(營下寨), 연이어 접한 것이(連接) 200여 리였다(二百餘里). 조조가(操) 곧(乃) 소와 말을 잡아(宰牛殺馬), 제후를 크게 모아(大會諸侯), 병사를 진격시킬 계책을 상의했다(商議進兵之策).

태수 왕광이 말하길(太守王匡曰): "지금(今) 대의를 받들어(奉大義), 반드시(必) 맹주를 세워야 하니(立盟主); 모두가(衆) <맹주의 말을 듣기로> 약속한 것을 듣고 나서(聽約束, 然後) 군대를 진격시켜야 합니다(進兵)."라고 했다.

조조가 말하길(操曰): "원본초가(袁本初) 사세 삼공의 집안이고(四世三公), 문하에(門) 오래된 관리가 많으며(多故吏), 한조의 명 재상의 후예이니(漢朝名相之裔), 맹주가 될만합니다(可爲盟主)."라고 했다. 원소가(紹) 계속 미루어 사양했다(再三推辭).

모두가 말하길(衆皆曰): "본초가 아니면(非本初) 할 수 없다(不可)."라고 했다.

원소가(紹) 마침내 승낙했다(方應允). 다음날(次日) 대를 삼층으로 쌓고(築臺三層), 오방색 깃발을 둘러 세우고(遍列五方旗幟), 위에(上) 쇠꼬리를 장식한 깃대와 황금 도끼를 세우고(建白旄黃鉞), 병부와 장군의 인수를 갖추고(兵符將印), 원소가 단에 오르기를 청했다(請紹登壇). 원소가(紹) 옷을 갖춰 입고(整衣) 검을 차고(佩劍), 분에 차서 오르더니(慨然而上), 향을 사르고 두 번 절했다(焚香再拜).

그가 맹세하여 말하길(其盟曰): 한실이 불행을 당해(漢室不幸), 황제의 법도가 통제력을 잃었다(皇綱失統). 역적 ㅈ동탁이(賊臣董卓), 이 틈을 타고(乘) 함부로 해쳐서(釁縱害), 재앙이(禍) 지존에 이르렀고(加至尊), 잔혹함이(虐) 백성에게 미쳤습니다(流百姓). 원소 등은(紹等) 사직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해서(懼社稷淪喪), 의병을 모아(糾合義兵), 함께(並) 나라의 어려움을 향해 가려고 합니다(赴國難). 무릇(凡) 우리 동맹은(我同盟),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齊心) 힘을 모아(戮力, 以) 신하의 절개를 다하고(致臣節), 반드시(必) 두 마음을 갖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無二志). 이 맹세를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有渝此盟), 그 목숨이 떨어지도록 하고(俾墜其命), <후손을> 없도록 해서 기를 수 없을 것입니다(無克遺育). 하늘과 땅(皇天后土), 조종의 밝은 영령이(祖宗明靈), 실제(實) 모두(皆) 살필 것입니다(鑒之)!라고 했다.

 

* 陸續(육속): 계속()하여 끊이지 않음.

* 白旄(백모): (옛날에) 털이 긴 쇠꼬리를 장대 끝에 달아 놓은 기().

* 慨然(개연): 억울()하고 원통(冤)하여 몹시 분()함.


9 讀畢, 歃血. 衆因其辭氣慷慨, 皆涕泗橫流. 歃血已罷, 下壇. 衆扶紹升帳而坐, 兩行依爵位年齒分列坐定. 操行酒數巡, 言曰: "今日旣立盟主, 各聽調遣, 同扶國家, 勿以強弱計較." 袁紹曰: "紹雖不才, 旣承公等推爲盟主, 有功必賞, 有罪必罰. 國有常刑, 軍有紀律; 各宜遵守, 勿得違犯." 衆皆曰: "惟命是聽." 紹曰: "吾弟袁術總督糧草, 應付諸營, 無使有缺. 更須一人爲先鋒, 直抵汜水關挑戰. 餘各據險要, 以爲接應." 長沙太守孫堅出曰: "堅願爲前部." 紹曰: "文臺勇烈, 可當此任." 堅遂引本部人馬殺奔汜水關來. 守關將士, 差流星馬往洛陽丞相府告急. 董卓自專大權之後, 每日飲宴. 李儒接得告急文書, 逕來稟卓. 卓大驚, 急聚衆將商議. 溫侯呂布挺身出曰: "父親勿慮: 關外諸侯, 布視之如草芥. 願提虎狼之師, 盡斬其首, 懸於都門." 卓大喜曰: "吾有奉先, 高枕無憂矣!" 言未絕, 呂布背後一人高聲出曰: "『割雞焉用牛刀?』不勞溫侯親往. 吾斬衆諸侯首級, 如探囊取物耳." 卓視之, 其人身長九尺, 虎體狼腰, 豹頭猿臂: 關西人也; 姓華, 名雄. 卓聞言大喜, 加爲驍騎校尉, 撥馬步軍五萬, 同李肅, 胡軫, 趙岑星夜赴關迎敵. 衆諸侯內有濟北相鮑信, 尋思孫堅旣爲前部, 怕他奪了頭功, 暗撥其弟鮑忠, 先將馬步軍三千, 逕抄小路, 直到關下搦戰. 華雄引鐵騎五百, 飛下關來, 大喝: "賊將休走!" 鮑忠急待退, 被華雄手起刀落, 斬於馬下, 生擒將校極多. 華雄遣人將鮑忠首級來相府報捷, 卓加雄爲都督. 

9 읽기를 마치고(讀畢), 피를 마시며 맹세했다(歃血). 여러 사람이(衆) 그 말로 인하여(因其辭氣) 원통하고 슬퍼하며(慷慨), 모두(皆) 눈물을 흘렸다(涕泗橫流). 피의 맹세가 끝나고(歃血已罷), 단을 내려왔다(下壇). 모두(衆) 원소를 부축하여(扶紹) 장막에 올라앉도록 하고(升帳而坐), 두 줄로(兩行) 작위와 나이에 따라(依爵位年齒) 벌려 앉았다(分列坐定).

조조가(操) 술일 몇 차례 돌고서 말하길(行酒數巡, 言曰): "오늘(今日) 이미(旣) 맹주를 세웠으니(立盟主), 각자(各) 맹주의 지시를 듣고(聽調遣), 함께 나라를 붙잡으며(同扶國家), 강약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勿以強弱計較)."라고 했다.

원소가 말하길(袁紹曰): "제가(紹) 비록(雖) 재주가 없지만(不才), 이미(旣) 공 등의 추대에 올라타(承公等推) 맹주가 되었으니(爲盟主),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고(有功必賞),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줄 것입니다(有罪必罰). 국가에(國) 늘(常) 형벌이 있고(刑), 군대에는(軍) 기율이 있으니(有紀律); 각자(各) 마땅히 지켜서(宜遵守),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勿得違犯)."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말하길(衆皆曰): "오직(惟) 명이 있으면(命) 바로 들을 것입니다(是聽)."라고 했다.

원소가 말하길(紹曰): "내 동생(吾弟) 원술이(袁術) 군량과 건초를 총괄하고(總督糧草), 모든 영채에 응하여 줄 것이니(應付諸營), 빠짐이 있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無使有缺). 한편(更) 모름지기(須) 한 사람이 선봉이 되어(一人爲先鋒), 바로(直) 사수관을 막고(抵汜水關) 싸워야 합니다(挑戰). 나머지는(餘) 각자(各) 요충지에 의지해서(據險要), 그것으로(以) 대응해야 합니다(爲接應)."라고 했다.

장사태수 손견이(長沙太守孫堅) 나서며 말하길(出曰): "제가(堅) 선봉이 되기를 원합니다(願爲前部)."라고 했다.

원소가 말하길(紹曰): "문대가(文臺) 용맹스러우니(勇烈), 마땅히 이것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可當此任)."라고 했다.

손견이(堅) 마침내(遂) 본부 인마를 이끌고(引本部人馬) 서둘러(殺奔) 사수관으로 갔다(汜水關來). 관을 지키는 장사가(守關將士), 빠른 말을 보내어(差流星馬往) 낙양 승상부에(洛陽丞相府) 위급함을 알렸다(告急). 동탁이(董卓) 대권을 제멋대로 하고 나서는(自專大權之後), 매일(每日) 술 마시고 잔치를 열었다(飲宴). 이유가(李儒) 위급함을 고하는 문서를 받고(接得告急文書), 급히 가서(逕來) 동탁에게 알렸다(稟卓). 동탁이 놀라(卓大驚), 급히(急) 여러 장수를 모아(聚衆將) 상의했다(商議).

온후 여포가(溫侯呂布) 앞장서 나서며 말하길(挺身出曰): "부친은(父親) 염려하지 마시고(勿慮): 괸외의 제후는(關外諸侯), 제가 보기에(布視之) 하찮은 것들입니다(如草芥). 원컨대(願) 범과 이리 같은 군대를 이끌고(提虎狼之師), 그 머리를 모두 베어(盡斬其首), 도성 문에 걸겠습니다(懸於都門)."라고 했다.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길(卓大喜曰): "나에게(吾) 봉선이 있으니(有奉先), 베개를 높여도(高枕) 걱정이 없구나(無憂矣)!"라고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言未絕), 여포 뒤에서(呂布背後) 한 사람이(一人) 크게 소리치며 나와 말하길(高聲出曰): "닭을 잡는 일에(割雞) 어찌(焉)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用牛刀)? 온후가 직접 가서(溫侯親往) 애쓸 것 없습니다(不勞). 제가(吾) 여러 제후의 머리를 베는 것은(斬衆諸侯首級), 주머니를 뒤져 물건을 찾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如探囊取物耳)."라고 했다.

동탁이 보니(卓視之), 그 사람의 키가 9척이고(其人身長九尺), 호랑이 같은 몸에(虎體) 이리 같은 허리(狼腰), 표범 같은 머리와(豹頭) 원숭이 같은 팔을 가졌고(猿臂): 관서 사람이니(關西人也); 성은 화이고(姓華), 이름은 웅이었다(名雄). 동탁이(卓) 말을 듣고(聞言) 크게 기뻐하며(大喜), 효기교위를 더해주고(加爲驍騎校尉), 마보군 5만을 배치해서(撥馬步軍五萬), 이숙, 호진, 조잠과 함께(同李肅, 胡軫, 趙岑) 밤새(星夜) 사수관으로 가서(赴關) 적을 맞도록 했다(迎敵). 여러 제후 중에(衆諸侯內) 제북상 포신이 있어(有濟北相鮑信), 한참 생각하기를(尋思) 손견이 이미 선봉이 되었으니(孫堅旣爲前部), 남이 으뜸가는 공을 빼앗을까 걱정하여(怕他奪了頭功), 몰래(暗) 그 동생 포충에게(撥其弟鮑忠), 먼저 마보군 3천을 거느리고(先將馬步軍三千), 길 중에(逕) 좁은 길을 뽑아(抄小路), 바로(直) 관 아래에 이르러(到關下) 싸움을 걸도록 했다(搦戰). 화웅이(華雄) 철기 5백을 이끌고(引鐵騎五百), 나는 듯이(飛) 관을 내려와서(下關來), 크게 소리치길(大喝): "적장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라(賊將休走)!"라고 했다.

포충이(鮑忠) 급히 물러나려고 하는데(急待退), 화웅의 손이(被華雄手) 칼을 들어 내치리니(起刀落), 베어져 말 아래로 떨어지고(斬於馬下), 살아서 잡힌 장교가 매우 많았다(生擒將校極多). 화웅이(華雄) 사람을 보내(遣人) 포충의 머리를 들고 와서(將鮑忠首級來) 승상부에(相府) 승리를 보고하니(報捷), 동탁이(卓) 화웅을 승진시켜(加雄) 도독으로 삼았다(爲都督). 

 

* 歃血(삽혈): 맹세()하여 굳게 언약()할 때에 그 표시()로 짐승의 피를 서로 먹거나 또는 입가에 바르던 일.

* 辭氣(사기):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 慷慨(강개):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冤)하고 슬픔.

* 涕泗(체사): (울어서 흐르는) 눈물이나 콧물 따위.

* 橫流(횡류): 물 따위가 제 곬을 흐르지 아니하고 옆으로 꿰져 흐름. 

* 挺身(연신): 무슨 일에 앞장서서 나아감.

* 草芥(초개):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0 卻說孫堅引四將直至關前. 那四將: 第一個, 右北平土垠人: 姓程, 名普, 字德謀, 使一條鐵脊蛇矛; 第二個, 姓黃, 名蓋, 字公覆, 零陵人也, 使鐵鞭: 第三個, 姓韓, 名當, 字義公, 遼西令支人也, 使一口大刀; 第四個, 姓祖, 名茂, 字大榮, 吳郡富春人也, 使雙刀. 孫堅披爛銀鎧, 裏赤幘, 橫古錠刀, 騎花鬃馬, 指關上而罵曰: "助惡匹夫, 何不早降!" 

10 한편(卻說) 손견이(孫堅) 네 장수를 이끌고(引四將) 바로(直) 관 앞에 이르렀다(至關前). 이 4명의 장수는(那四將): 첫 번째는(第一個), 우북평 토은 사람으로(右北平土垠人): 성은 정이고(姓程), 이름은 보이고(名普), 자는 덕모였다(字德謀), 한 자루 철척사모를 잘 다루었고(使一條鐵脊蛇矛); 두 번째는(第二個), 성은 황이고(姓黃), 이름은 개(名蓋), 자는 공복인데(字公覆), 영릉 사람으로(零陵人也), 철편을 잘 다루었고(使鐵鞭): 세 번째는(第三個), 상은 한이고(姓韓), 이름은 당(名當), 자는 의공인데(字義公), 요서 영지 사람으로(遼西令支人也), 한 자루 대도를 잘 두루었고(使一口大刀); 네 번째는(第四個), 성은 조(姓祖), 이름은 무(名茂), 자는 대영인데(字大榮), 오군 부춘 사람으로(吳郡富春人也), 쌍도를 다루었다(使雙刀).

손견이(孫堅) 빛나는 은빛 갑옷을 두르고(披爛銀鎧), 붉은 두건을 두르고(裏赤幘), 고정도를 휘두르며(橫古錠刀), 화종마를 타고(騎花鬃馬), 관 위를 가리키며(指關上而) 꾸짖어 말하길(罵曰): "악을 돕는 필부는(助惡匹夫),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느냐(何不早降)!"라고 했다.

 

11 華雄副將胡軫引兵五千出關迎戰. 程普飛馬挺矛, 直取胡軫. 鬥不數合, 程普刺中胡軫咽喉, 死於馬下. 堅揮軍直殺至關前, 關上矢石如雨. 孫堅引兵回至梁東屯住, 使人於袁紹處報捷, 就於袁術處催糧. 或說術曰: "孫堅乃江東猛虎; 若打破洛陽, 殺了董卓, 正是除狼而得虎也. 今不與糧, 彼軍必散." 術聽之, 不發糧草. 孫堅軍缺食, 軍中自亂, 細作報上關來. 李肅爲華雄謀曰: "今夜我引一軍從小路下關, 襲孫堅寨後, 將軍揮其前寨, 堅可擒矣." 

11 화웅의 부장(華雄副將) 호진이(胡軫) 병사 5천을 이끌고(引兵五千) 관을 나와(出關) 맞아 싸웠다(迎戰). 정보가(程普) 나는 듯이 말을 달려(飛馬) 사모를 들고(挺矛), 바로(直) 호진을 취했다(取胡軫). 싸우기를(鬥) 몇 합 하지도 못하고(不數合), 정보가(程普) 호진의 목을 찔러(刺中胡軫咽喉), 죽여서(死) 말에서 떨어뜨렸다(於馬下). 손견이(堅) 군대를 지휘하여(揮軍) 바로(直) 관 앞에 이르렀는데(殺至關前), 관 위에서(關上) 화살과 돌이(矢石) 비처럼 쏟아졌다(如雨). 손견이(孫堅) 병사를 이끌고(引兵) 되돌아와(回) 양현 동쪽에 와서(至梁東) 주둔하고(屯住), 사람을 시켜(使人) 원소가 있는 곳에(於袁紹處) 승리를 보고하고(報捷), 원술이 있는 곳에 가서(就於袁術處) 식량을 재촉했다(催糧).

누군가(或) 원술에게 말하길(說術曰): "손견은(孫堅) 곧(乃) 강동의 맹호이니(江東猛虎); 만약(若) 낙양을 깨뜨리고(打破洛陽), 동탁을 죽인다면(殺了董卓), 바로 이것은(正是) 이리를 없애고(除狼而) 호랑이를 만나는 것입니다(得虎也). 지금(今) 식량을 주지 않는다면(不與糧), 저 군대가(彼軍) 반드시 흩어질 것입니다(必散)."라고 했다.

원술이 그의 말을 드고(術聽之), 식량과 건초를 풀지 않았다(不發糧草). 손견 군대가(孫堅軍) 식량이 모자라자(缺食), 군중이(軍中) 자연스럽게 혼란스러워졌고(自亂), 세작이(細作) 관에 와서 보고했다(報上關來).

이숙이(李肅) 화웅을 위해(爲華雄) 계책을 내어 말하길(謀曰): "오늘밤(今夜) 내가 일군을 이끌고(我引一軍) 소로를 따라 관 아래로 내려가서(從小路下關), 손견 영채의 뒤를 습격하면(襲孫堅寨後), 장군이(將軍) 그 앞 영채를 치면(揮其前寨), 손견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堅可擒矣)."라고 했다. 

 

12 雄從之, 傳令軍士飽餐, 乘夜下關. 是夜月白風清. 到堅寨時, 已是半夜, 鼓譟直進. 堅慌忙披掛上馬, 正遇華雄. 兩馬相交, 鬥不數合, 後面李肅軍到, 令軍士放起火來. 堅軍亂竄. 衆將各自混戰, 止有祖茂跟定孫堅, 突圍而走. 背後華雄追來. 堅取箭, 連放兩箭, 皆被華雄躲過. 再放第三箭時, 因用力太猛, 拽折了鵲畫弓, 只得棄弓縱馬而奔. 祖茂曰: "主公頭上赤幘射目, 爲賊所識認. 可脫幘與某戴之." 堅就脫幘換茂盔, 分兩路而走. 雄軍只望赤幘者追趕, 堅乃從小路得脫. 祖茂被華雄追急, 將赤幘挂於人家燒不盡的庭柱上, 卻入樹林潛躲. 

2 화웅이 그것을 따라(雄從之), 군사들에게 명을 전하여(傳令軍士) 배불리 먹도록 하고(飽餐), 밤을 틈타(乘夜) 관을 내려왔다(下關). 이날 밤(是夜) 달이 밝고(月白) 바람이 차가웠다(風清). 손견의 영채에 도착했을 때(到堅寨時), 이미(已) 한밤중이었고(是半夜), 북을 울리고 소리를 치며(鼓譟) 바로 진격했다(直進). 손견이(堅) 황급히(慌忙) 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서(披掛上馬), 바로(正) 화웅을 만났다(遇華雄). 두 마리 말이 서로 지나면서(兩馬相交), 싸움이 몇 합 되지 않아서(鬥不數合), 뒤에서(後面) 이숙의 군대가 도착해서(李肅軍到),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令軍士) 불을 질렀다(放起火來). 손견의 군대가(堅軍) 혼란스럽게 달아났다(亂竄). 여러 장수가(衆將) 각자(各自) 뒤섞여 싸우는데(混戰), 겨우(止) 조무가 손견을 뒤따라(有祖茂跟定孫堅), 포위를 뚫고(突圍而) 달아났다(走). 뒤에서(背後) 화웅이 쫓아왔다(華雄追來). 손견이 화살을 들어(堅取箭), 연이어(連) 두 대를 쐈지만(放兩箭), 모두 피하고(皆) 화웅을 피해서(被華雄) 지나갔다(躲過). 다시(再) 세 번째 화살을 쏘려는데(放第三箭時), 힘을 쓴 것이 너무 강해서(因用力太猛), 적화궁을 부러뜨리고(拽折了鵲畫弓), 다만(只得) 활을 버리고(棄弓) 말을 몰아 달아났다(縱馬而奔).

조무가 말하길(祖茂曰): "주공의 머리 위에 있는(主公頭上) 빨간 두건이(赤幘) 활 쏘는 과녁이 되니(射目), 적이 인식하게 됩니다(爲賊所識認). 두건을 벗어(可脫幘) 저에게 주면(與某) 그것을 쓰겠습니다(戴之)."라고 했다.

손견이(堅) 두건을 벗어(就脫幘) 조무의 투구와 바꾸고(換茂盔), 두 길로 나눠 달아났다(分兩路而走). 화웅의 군사가(雄軍) 단지(只) 빨간 두건 쓴 사람을 보고(望赤幘者) 쫓아오므로(追趕), 손견이(堅) 마침내(乃) 작은 길을 따라 벗어날 수 있었다(從小路得脫). 조무는(祖茂) 화웅의 추격이 급박하게 되자(被華雄追急), 장차(將) 빨간 두건을(赤幘) 인가의 타다 남은 뜰 기둥 위에(於人家燒不盡的庭柱上) 걸어 두고(挂), 수풀로 들어가(卻入樹林) 몸을 숨겼다(潛躲). 

 

* 鼓譟(고조): 북을 치며 떠들어 댐.

 

13 華雄軍於下遙月見赤幘, 四面圍定, 不敢近前. 用箭射之, 方知是計, 遂向前取了赤幘. 祖茂於林後殺出, 揮雙刀欲劈華雄; 雄大喝一聲, 將祖茂一刀砍於馬下. 殺至天明, 雄方引兵上關. 程普, 黃蓋, 韓當都來尋見孫堅, 再收拾軍馬屯紮. 堅爲折了祖茂, 傷感不已, 星夜遣人報知袁紹. 紹大驚曰: "不想孫文臺敗於華雄之手!" 便聚衆諸侯商議. 衆人都到, 只有公孫瓚後至, 紹請入帳列坐. 紹曰: "前日鮑將軍之弟不遵調遣, 擅自進兵, 殺身喪命, 折了許多軍士. 今者孫文臺又敗於華雄: 挫動銳氣, 爲之奈何?" 諸侯並皆不語. 

13 화웅의 군사가(華雄軍) 멀리 달빛 아래에서(於下遙月) 붉은 두건을 보고(見赤幘), 사방을 포위하고(四面圍定), 감히 앞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不敢近前). 화살을 쏘아대다가(用箭射之), 비로소(方) 이 계략을 알아채고(知是計), 마침내(遂) 앞으로 나아가(向前) 붉은 두건을 취했다(取了赤幘). 조무가(祖茂) 수풀 뒤에서(於林後) 갑자기 나오며(殺出), 쌍도를 휘둘러(揮雙刀) 화웅을 베려고 했는데(欲劈華雄); 화웅이 크게 소리 지르며(雄大喝一聲), 조무를(將祖茂) 한 칼에 베어(一刀砍) 말에서 떨어뜨렸다(於馬下). 날이 밝을 때까지 죽이다가(殺至天明), 화웅이 군사를 이끌고(雄方引兵) 관으로 올라갔다(上關). 정보와 황개, 한당이(程普, 黃蓋, 韓當) 모두 와서(都來) 손견을 찾아 만나서(尋見孫堅), 다시(再) 군마를 수습해서(收拾軍馬) 주둔했다(屯紮). 손견이(堅) 조무를 잃은 것 때문에(爲折了祖茂), 상심한 것이 그치지 않았고(傷感不已), 밤새(星夜) 사람을 보내(遣人) 원소에게 보고해서 알렸다(報知袁紹).

원소가 크게 놀라 말하길(紹大驚曰): "손문대가(孫文臺) 화웅의 손에 패할 것을(敗於華雄之手) 생각하지도 못했다(不想)!"라고 했다.

다시(便) 여러 제후를 모아(聚衆諸侯) 상의했다(商議). 여러 사람이 모두 도착하고(衆人都到), 단지(只) 공손찬이 늦게 왔는데(有公孫瓚後至), 원소가(紹) 장막에 들어오길 청해서(請入帳) 벌려 앉았다(列坐).

원소가 말하길(紹曰): "전날(前日) 포장군의 동생이(鮑將軍之弟) 명령을 지키지 않고(不遵調遣), 독단적으로(擅自) 군대를 내보내(進兵), 목숨을 잃고(殺身喪命), 허다한 군사를 죽였소(折了許多軍士). 지금(今者) 손문대가(孫文臺) 또(又) 화웅에게 패해서(敗於華雄): 예기를 동요하게 만들었으니(挫動銳氣),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까요(爲之奈何)?"라고 했다. 제후들이(諸侯) 모두(並皆) 말이 없었다(不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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