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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신불해(申不害), 형명지학의 대가

by प्रज्ञा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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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해(申不害, 하남성 정주시 형양시 ? ~ 기원전 337년)는 한(韓) 나라의 명재상이며, 형명지학의 대가였다. 법가 사상 중 술(術)을 강조했고, 한나라의 소후(昭侯) 시절 재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사기》(史記)에 “신자(申子: 신불해를 높여 부른 말)의 학문은 황로(黃老)에 근거를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저서는 《사기》에서는 <신자(申子) 2편>, 《한서》(漢書)에서는 <신자 6편>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송(宋) 나라 때에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군서치요》(群書治要),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 전해지는 일문(逸文)을 모은 책이 남아 있다. <위키백과>

 

* 중국 韓非子(한비자) 등이 제창한 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학설. 출전 韓非子(한비자) 主道篇(주도편).

 

申不害者, 京人也, 故鄭之賤臣. 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內修政教, 外應諸侯, 十五年. 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申子之學本於黃老而主刑名. 著書二篇, 號曰申子. 

신불해는(申不害者), 경읍 사람이고(京人也), 그러므로(故) 정나라의 낮은 신하였다(鄭之賤臣). <법가의> 술을 배워(學術以) 한나라 소후에게 벼슬을 구했고(干韓昭侯), 소후가 등용하여(昭侯用) 재상이 되었다(爲相). 안으로(內) 정치와 교육을 닦고(修政教), 밖으로(外) 제후에게 대응해서(應諸侯), 15년이 되었다(十五年). 마침내() 신불해의 몸이 <자리에 있을 때(終申子之身), 나라가 다스려지고(國治) 군대가 강성해져서(兵彊), 한나라를 침범하려는 나라가 없었다(無侵韓者). 신불해의 학문은(申子之學) 황노에 근본을 두고(本於黃老而) 형명을 주로 했다(主刑名). 책을 지은 것이 2편이 있어(著書二篇), 신자라고 한다(號曰申子). 

 

* 干(간): 구하다, 요구하다, 범하다, 간하다.

 

* 신불해의 법치는 술(術)을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효율적인 관료제를 운용하고 이를 위해서 강력한 군주권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때 사용하는 것이 술이라는 겁니다. 한(韓) 나라는 신불해의 변법으로 강국이 되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변법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술'은 군주의 통치술로 구체적으로는 '계략과 모략'으로 관료들을 감독하고 군주의 권력을 다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군주와 신하가 서로를 견제하고, 속이려 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눈치 싸움이 계속되어 나라가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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