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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史記列傳(사기열전) 80 악의열전(樂毅列傳) 1/3] 벌제위명(伐齊爲名) / 충신이 역적이 되는 순간

by प्रज्ञा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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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樂毅者, 其先祖曰樂羊. 樂羊爲魏文侯將, 伐取中山, 魏文侯封樂羊以靈壽. 樂羊死, 葬於靈壽, 其後子孫因家焉. 中山復國, 至趙武靈王時復滅中山, 而樂氏後有樂毅. 

1 악의는(樂毅者), 그 선조가(其先祖) 악양이다(曰樂羊). 악양은(樂羊) 위 문호의 장수였고(爲魏文侯將), 중산을 쳐서 빼앗고(伐取中山), 위 문후가(魏文侯) 악양을(樂羊) 영수에(以靈壽) 봉했다(封). 악양이 죽고(樂羊死), 영수에 장사 지냈고(葬於靈壽), 그 후(其後) 자손이(子孫) 그곳에서 집안을 이루었다(因家焉). 중산이(中山) 다시 나라가 되었으나(復國), 조 무령왕에 이르러(至趙武靈王時) 다시(復) 중산을 멸망시켰고(滅中山, 而) 악씨의 후손 중에(樂氏後) 악의가 있었다(有樂毅). 


선시어외(先始於隗)

2 樂毅賢, 好兵, 趙人舉之. 及武靈王有沙丘之亂, 乃去趙適魏. 聞燕昭王以子之之亂而齊大敗燕, 燕昭王怨齊, 未嘗一日而忘報齊也. 燕國小, 辟遠, 力不能制, 於是屈身下士, 先禮郭隗以招賢者. 樂毅於是爲魏昭王使於燕, 燕王以客禮待之. 樂毅辭讓, 遂委質爲臣, 燕昭王以爲亞卿, 久之. 

2 악의가 어질고(樂毅賢), 병법을 좋아해서(好兵), 조나라가(趙人) 그를 천거했다(舉之). 무령왕에 이르러(及武靈王) 사구의 난이 있었고(有沙丘之亂), 이에(乃) 조나라를 떠나(去趙) 위나라로 갔다(適魏). 연 소왕 때(燕昭王) 자지의 난 때문에(以子之之亂而) 제나라가 연나라를 크게 무찔렀고(齊大敗燕), 연 소왕이 제나라에 원한을 가져(燕昭王怨齊), 하루라도(未嘗一日而) 제나라에 보복할 것이 잊지 않았다는(忘報齊) 소문이 있었다(也). 연나라가 작고(燕國小), 외지고 멀러(辟遠), 힘으로(力) 제압할 수 없었고(不能制), 이에(於是) 몸을 굽혀(屈身) 선비들에게 <자기를> 낮추었고(下士), 곽외에게 먼저 예로 대하여(先禮郭隗以) 현명한 사람을 불러들였다(招賢者). 악의가(樂毅) 이에(於是) 위 소왕을 위해(爲魏昭王) 연나라에 사신으로 갔고(使於燕), 연왕이(燕王) 빈객의 예로(以客禮) 그를 대접했다(待之). 악의가(樂毅) 사양하며(辭讓), 마침내(遂) 예물을 바치고(委質) 신하가 되니(爲臣), 연 소왕이(燕昭王) 아경으로 삼고(以爲亞卿), 오랜 시간이 지났다(久之). 

 

* 沙丘之亂(사구지란) : 기원전 295년,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은 진(秦)나라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만 전념하겠다고 왕위를 태자인 하(何)에게 물려주니 바로 혜문왕(惠文王)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주보(主父:太上王과 같음)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애초 태자를 정할 때 장자(長子)인 장(章)을 버리고 王子 何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장자 장(章)이 원한을 품어 혜왕(惠王) 4년에 부자(父子) 세 사람이 사궁(沙丘)의 행궁으로 놀러 갔을 때 태자 장이 난을 일으켰다. 그때 서울에 있던 다른 공자(公子) 성(成)과 대부인 이태(李兌)가 동조하여 주보(主父:武靈王)를 행궁 사궁(沙宮)에 석 달 남짓 가두어 버렸는데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이미 마른 해골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 선시어외(先始於隗):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인재를 구하려고 곽외(郭외)에게 조언을 구하자 천리마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한 왕이 천리마를 구한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천리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간 사람이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을 주고 사 왔습니다. 왕이 화를 내자 그는 ‘이제 사람들은 천리마의 뼈도 거금으로 사니 살아 있는 천리마라면 비싼 값을 쳐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1년도 안 되어 천하의 명마를 세 필이나 얻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진정으로 인재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외)부터 등용하십시오. 저 같은 자가 중용되었다는 소문이 나면 저보다 어진이가 천리 길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때 악의(樂毅)가 위나라로부터 왔고, 추연(鄒衍)이 제나라로부터 왔고, 극신(劇辛)이 조나라로부터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

* 委質(위질): 고대 신하가 군주에게 헌신의 표시로 바치는 예물. 質은 贄(폐백 ‘지’)와 통한다.


3 當是時, 齊湣王彊, 南敗楚相唐眛於重丘, 西摧三晉於觀津, 遂與三晉擊秦, 助趙滅中山, 破宋, 廣地千餘里. 與秦昭王爭重爲帝, 已而復歸之. 諸侯皆欲背秦而服於齊. 湣王自矜, 百姓弗堪. 於是燕昭王問伐齊之事. 樂毅對曰: "齊, 霸國之餘業也, 地大人眾, 未易獨攻也. 王必欲伐之, 莫如與趙及楚·魏." 於是使樂毅約趙惠文王, 別使連楚·魏, 令趙嚪說秦以伐齊之利. 諸侯害齊湣王之驕暴, 皆爭合從與燕伐齊. 樂毅還報, 燕昭王悉起兵, 使樂毅爲上將軍, 趙惠文王以相國印授樂毅. 樂毅於是并護趙·楚·韓·魏·燕之兵以伐齊, 破之濟西. 諸侯兵罷歸, 而燕軍樂毅獨追, 至于臨菑. 齊湣王之敗濟西, 亡走, 保於莒. 樂毅獨留徇齊, 齊皆城守. 樂毅攻入臨菑, 盡取齊寶財物祭器輸之燕. 燕昭王大說, 親至濟上勞軍, 行賞饗士, 封樂毅於昌國, 號爲昌國君. 於是燕昭王收齊鹵獲以歸, 而使樂毅復以兵平齊城之不下者. 

3 당시에(當是時), 제 민왕이 강력해서(齊湣王彊), 남으로(南) 중구에서(重丘) 초나라 재상 장말을 무찌르고(敗楚相唐眛於), 서쪽으로(西) 관진에서 삼진을 꺾고(摧三晉於觀津), 마침내(遂) 삼진과 함께(與三晉) 진나라를 공격하고(擊秦), 조나라를 도와(助趙) 중산을 멸망시키고(滅中山), 송나라를 깨뜨려(破宋), 땅을 넓힌 것이(廣地) 천여 리였다(千餘里). 진 소왕과(與秦昭王) 위세를 다투어(爭重) 제가 되었다가(爲帝), 얼마 안 있어(已而) 다시 돌아갔다(復歸之). 제후들이 모두(諸侯皆) 진나라를 배반하고(背秦而) 제나라에 복종하려고 했다(欲服於齊). 민왕이 스스로 교만해져서(湣王自矜), 백성이 견딜 수 없었다(百姓弗堪). 이에(於是) 연 소왕이(燕昭王) 제나라를 치는 일을 물었다(問伐齊之事).

악의가 대답하여 말하길(樂毅對曰): "제나라는(齊), 패자였던 나라의(霸國之) 남은 업적이 있고(餘業也), 땅이 넓고 백성이 많아(地大人眾), 홀로 공격하기 쉽지 않습니다(未易獨攻也). 왕께서(王) 반드시(必) 치려고 한다면(欲伐之), 조나라와 초나라, 위나라와 함께 하는 것만(與趙及楚·魏) 못합니다(莫如)."라고 했다.

이에(於是) 악의를 시켜(使樂毅) 조 혜문왕과 약속하게 하고(約趙惠文王), 별도로(別) 사자를 보내(使)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하고(連楚·魏), 조나라로 하여금(令趙) 제나라를 치는 이익으로(以伐齊之利) 진나라를 설득하게 했다(嚪說秦). 제후들은(諸侯) 제 민왕의 교만함과 난폭함을 싫어해서(害齊湣王之驕暴), 모두(皆) 다투어(爭) 연나라와 합종하고(合從與燕) 제나라를 쳤다(伐齊). 악의가 돌아와 보고하자(樂毅還報), 연 소왕이(燕昭王) 모든 군대를 일으켜(悉起兵), 악의로 하여금(使樂毅) 상장군이 되게 하고(爲上將軍), 조 혜문왕은(趙惠文王) 상국의 인수를(以相國印) 악의에게 주었다(授樂毅). 악의가(樂毅) 이에(於是) 조, 초, 한, 위, 연나라의 군대를 합쳐 통솔하고(并護趙·楚·韓·魏·燕之兵以) 제나라를 쳐서(伐齊), 제수 서쪽에서 깨뜨렸다(破之濟西). 제후의 군대가(諸侯兵) 싸움을 마치고 돌아가고(罷歸, 而) 연나라 군대는(燕軍) 악의가 홀로 쫓아(樂毅獨追), 임치에 이르렀다(至于臨菑). 제 민왕이(齊湣王之) 제수 서쪽에서 패하고(敗濟西), 도망쳐 달아나(亡走), 거에서 지키고 있었다(保於莒). 악의가(樂毅) 홀로(獨) 머무르며(留) 제나라를 공격했지만(徇齊), 제나라의 모든 성이 지키기만 했다(齊皆城守). 악의가(樂毅) 공격해서(攻) 임치에 들어가(入臨菑), 제나라의 보물과 재물, 제기를 모두 빼앗아(盡取齊寶財物祭器) 연나라로 보냈다(輸之燕). 연 소왕이 크게 기뻐하며(燕昭王大說), 직접(親) 제수 가에 이르러(至濟上) 군대를 위호라혹(勞軍), 상을 주고(行賞) 군사들에게 잔치를 열어 주고(饗士), 악의를 창국에 봉하고(封樂毅於昌國), 부르기를 창국군이라 했다(號爲昌國君). 이에(於是) 연 소왕이(燕昭王) 제나라의 노획물을 거두어(收齊鹵獲以) 돌아가고(歸, 而) 악의로 하여금(使樂毅) 다시 군대를 일으켜(復以兵) 제나라의 성 중에 항복하지 않은 것을 평정하도록 했다(平齊城之不下者). 

 

* 爭重為帝(쟁중위제): 기원전 288년, 진 소양왕은 자칭 서제(西帝)라 칭하였고, 제 민왕은 동제(東帝)라 칭하였다.

* 嚪說(담설): 이익이 있다고 남을 꾀는 말. 嚪(담)은 속이다. (속임수로) 꾀다.

* 饗士(향사):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임.

* 鹵獲(노획): 전쟁(戰爭)에서 적()의 군용품(軍用品)을 빼앗아 가짐.


벌제위명(伐齊爲名)

4 樂毅留徇齊五歲, 下齊七十餘城, 皆爲郡縣以屬燕, 唯獨莒·即墨未服. 會燕昭王死, 子立爲燕惠王. 惠王自爲太子時嘗不快於樂毅, 及即位, 齊之田單聞之, 乃縱反閒於燕, 曰: "齊城不下者兩城耳. 然所以不早拔者, 聞樂毅與燕新王有隙, 欲連兵且留齊, 南面而王齊. 齊之所患, 唯恐他將之來." 於是燕惠王固已疑樂毅, 得齊反閒, 乃使騎劫代將, 而召樂毅. 樂毅知燕惠王之不善代之, 畏誅, 遂西降趙. 趙封樂毅於觀津, 號曰望諸君. 尊寵樂毅以警動於燕·齊. 

4 악의가 머무르며(樂毅留) 제나라를 돌아다닌 것이(徇齊) 5년이었고(五歲), 제나라 70여 개 성을 함락시키고(下齊七十餘城), 모두(皆) 군현을 만들어(爲郡縣以) 연나라에 속하게 하고(屬燕), 오직(唯) 거와 즉묵 만이(獨莒·即墨) 항복하지 않았다(未服). 마침(會) 연 소왕이 죽고(燕昭王死), 아들이 즉위하니(子立) 연 혜왕이다(爲燕惠王). 혜왕이(惠王) 태자 시절부터(自爲太子時) 일찍이(嘗) 악의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不快於樂毅), 즉위함에 이르자(及即位), 제나라의 전단이(齊之田單) 이것을 듣고(聞之), 이에(乃) 연나라에 반간계를 부추겨(縱反閒於燕),

말하길(曰): "제나라 성 중에서(齊城) 무너지지 않은 것은(不下者) 두 개의 성뿐이다(兩城耳). 그러나(然) 일찍 빼앗지 않은 까닭은(所以不早拔者), 악의가 연나라의 새로운 왕과(樂毅與燕新王) 틈이 있어(有隙), 싸움을 이어가면서(連兵) 또(且) 제나라에 머물며(留齊), 남면하여(南面而) 제나라에서 왕이 되려고 한다(王齊)는 소문이 있다(聞). 제나라가(齊之) 걱정하는 것은(所患), 오직(唯) 다른 장수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恐他將之來)."라고 했다.

이에(於是) 연 혜왕이(燕惠王) 본래(固) 이미(已) 악의를 의심하고 있었고(疑樂毅), 제나라의 반간계를 듣자(得齊反閒), 이에(乃) 기겁을 시켜(使騎劫) 대신 장수로 삼고(代將, 而) 악의를 불러들였다(召樂毅). 악의는(樂毅) 연 혜왕이(燕惠王之) 좋게 여기지 않아 대신하게 한 것을(不善代之) 알고(知),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畏誅), 마침내(遂) 서쪽으로 가(西) 조나라에 항복했다(降趙). 조나라가(趙) 관진에(於觀津) 악의를 봉하고(封樂毅), 망제군이라 했다(號曰望諸君). 악의를 높이 떠받들자(尊寵樂毅以) 연나라와 제나라에서 놀라서 동요했다(警動於燕·齊). 

 

* 尊寵(존총): 총애()를 주는 사람을 높여서 그에게서 받는 총애()를 말함.

* 伐齊爲名(벌제위명):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짓을 함을 이르는 말. 중국의 전국 시대에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제나라를 칠 때에 제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를 정복한 뒤에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자, 연왕이 의심하여 악의를 불러들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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