衛鞅亡魏入秦, 孝公以爲相, 封之於商, 號曰商君. 商君治秦, 法令至行, 公平無私, 罰不諱强大, 賞不私親近. 法及太子, 黥劓其傅. 期年之後, 道不拾遺, 民不妄取, 兵革大强, 諸侯畏懼. 然刻深寡恩, 特以强服之耳.
黥劓
위앙이(衛鞅) 위나라에서 도망쳐(亡魏) 진나라에 들어가자(入秦), 효공이(孝公) 상으로 삼고(以爲相), 어 땅과 상 땅에 그를 봉해서(封之於商), 상군으로도 불린다(號曰商君). 상군이 진나라를 다스리면서(商君治秦), 법령이 크게 행해지고(法令至行), 공평무사해서(公平無私), 벌은(罰) 강대한 사람도 피하지 않았고(不諱强大), 상은(賞) 친근한 사람에게도 사사로이 하지 않았다(不私親近). 법이 태자에게 미치자(法及太子), 그 사부를 경의형에 처했다(黥劓其傅). 1년이 지나(期年之後), 도로에서(道) 잃어버린 물건을 줍지 않고(不拾遺), 백성들이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고(民不妄取), 군대가 매우 강성해져(兵革大强), 제후들이 두려워했다(諸侯畏懼). 그러나(然) 각박함이 심하고(刻深) 은덕이 적어(寡恩), 다만(特) 강제로(以强) 복종하게 했을 뿐이다(服之耳).
* 衛鞅(위앙): 본명은 공손앙(公孫鞅)이고 위나라 군주의 서자 출신이라 '위앙'(衛鞅)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나라에서 상읍(商邑)을 봉지로 받아 상을 씨로 사용하여 '상앙(商鞅)'이라고 부른다.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재상이자 법가 정치가. 강제의 관중, 북송의 왕안석, 명의 장거정 등과 더불어 중국사에 이름을 남긴 변법가이기도 하다. 상앙의 변법은 변방 강국에 불과했던 진나라를 단숨에 강대국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훗날 진나라의 천하통일의 기틀이 되었다. 가혹한 법률과 억압적인 정치는 반대파를 양산했고 결국 상앙은 자신이 만든 법에 목숨을 잃었다.
* 孝公(효공): 秦 穆公의 15세 손, 이름은 渠梁, 재위 B.C.361~B.C.338년. 戰國 初에 中原의 제후들이 秦을 야만시하자 德政을 베풀고 商鞅을 등용하여 국세를 크게 떨쳤다.
* 法及太子(법급태자): 《史記》 〈商君列傳〉에 “태자가 법을 범하니, 위앙이 말하기를 ‘법이 행해지지 않은 것은 위에서부터 범하기 때문이다. 태자에게 법을 시행해야 하나 태자는 임금의 자리를 이을 분이어서 시행할 수가 없으니, 그 傅인 公子 虔을 형벌하고 師인 公孫賈는 黥形에 처한다’하자 이튿날 진나라 사람들이 모두 법을 따랐다. [太子犯法 衛鞅曰 法之不行 自上犯之 將法太子 太子君嗣也 不可施刑 刑其傅公子虔 黥其師公孫賈 明日 秦人皆趨令]”라고 하였다. 이때의 태자가 바로 惠王이다.
* 黥劓(경의): 黥은 이마에 文身을 하는 것, 劓는 코를 베는 형벌.
孝公行之八年, 疾且不起, 欲傳商君, 辭不受. 孝公已死, 惠王代後, 莅政有頃, 商君告歸. 人說惠王曰: “大臣太重者國危, 左右太親者身危. 今秦婦人嬰兒皆言商君之法, 莫言大王之法, 是商君反爲主, 大王更爲臣也. 且夫商君, 固大王仇讎也, 願大王圖之.” 商君歸還, 惠王車裂之, 而秦人不憐.
효공이(孝公) 이것을 행하고 8년이 지나(行之八年), 병들어(疾) 또 일어나지 못하자(且不起), 상군에게 <나라를> 넘기려고 했지만(欲傳商君),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辭不受). 효공이 죽고 나서(孝公已死), 혜왕이 뒤를 이었고(惠王代後), 정사에 임하 것에(莅政) 얼마 지나지 않아(有頃), 상군이 돌아가기를 고했다(사직을 청했다)(商君告歸).
어떤 사람이 혜왕에게 말하길(人說惠王曰): “대신이 너무 권력이 세면(大臣太重者) 나라가 위태롭고(國危), 측근이 너무 친하면(左右太親者) 몸이 위험합니다(身危). 지금(今) 진나라의 부인이나(秦婦人) 어린아이가(嬰兒) 모두(皆) 상군의 법을 말하고(言商君之法), 누구도 대왕을 법을 말하지 않으니(莫言大王之法), 이것은(是) 상군이(商君) 도리어 주인이 되고(反爲主), 대왕이(大王) 곧(更) 신하가 된 것입니다(爲臣也). 또한(且) 저 상군은(夫商君), 본래(固) 대왕의 원수이니(大王仇讎也), 원컨대(願) 대왕께서 잘 헤아리시기 바랍니다(大王圖之).”라고 했다.
상군이 돌아오자(商君歸還), 혜왕이(惠王) 거열형에 처했지만(車裂之, 而) 진나라 사람들이(秦人)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不憐).
* 欲傳商君(욕전상군): 원주에 “劉敞本에는 傳이 傅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경우 '상군을 태자의 사부로 삼으려고 했다'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보아 “讓位하려 하다.”의 뜻으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 商君歸還(상군귀환): 《史記》 〈商君列傳〉에 “상군이 떠나 魏나라로 가니, 위나라 사람이 公子 卬을 속이고 위나라 군사를 격파한 것을 원망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군이 다른 나라로 가려하니, 위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상군은 秦나라의 賊이다. 진나라는 강한데 적이 위나라에 들어와 돌아가지 않음은 불가하다’하므로 마침내 진나라로 들어갔다. [商君去之魏 魏人怨其欺公子卬而破魏師 弗受 商君欲之他國 魏人曰 商君秦之賊 秦强而賊入魏 弗歸 不可 遂內秦]”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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