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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戰國策)

[전국책(戰國策) 진책1(秦策 一) 47(3-2)] 소진시장연횡(蘇秦始將連橫) / 사람이 어찌 부귀를 소홀히 하겠는가

by प्रज्ञा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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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蘇秦始將連橫, 說秦惠王曰: "大王之國, 西有巴、蜀、漢中之利, 北有胡貉、代馬之用, 南有巫山、黔中之限, 東有餚、函之固. 田肥美, 民殷富, 戰車萬乘, 奮擊百萬,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此所以天府之, 天下之雄國也. 以大王之賢, 士民之衆, 車騎之用, 兵法之教, 可以並諸侯, 吞天下, 稱帝而治, 願大王少留意, 臣請奏其效." 

1 소진이(蘇秦) 처음(始將) 연횡설을(連橫), 진 혜왕에게 유세하기를(說秦惠王曰): "대왕의 나라는(大王之國), 서쪽에(西) 파, 촉, 한중의 이로운 땅이 있고(有巴、蜀、漢中之利), 북쪽에 호맥과 대 땅에서 나는 말이 있고(北有胡貉、代馬之用), 남쪽에 무산과 검중의 험한 경계가 있고(南有巫山、黔中之限), 동쪽에 효산과 함곡관의 굳셈이 있습니다(東有餚、函之固). 전답이(田) 기름지고 좋으며(肥美), 백성이 많고 부유하며(民殷富), 전차가 만 승이고(戰車萬乘), 奮擊百萬,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此所以天府之, 天下之雄國也. 以大王之賢, 士民之衆, 車騎之用, 兵法之教, 可以並諸侯, 吞天下, 稱帝而治, 願大王少留意, 臣請奏其效." 

 

* 蘇秦(소진): 소진(蘇秦, ? ~ 기원전 317년?)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자는 계자(季子)이다. 낙양에서 태어나 제나라 귀곡자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것 정도가 사기에 기록된 부분이다. 하산 후 소진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세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소진은 가장 강력한 진(秦)나라를 막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해야 한다는 합종의 전략을 주장했다. 소진의 노력으로 여섯 나라는 합종을 이루고 굳게 단결하였으며 소진은 합종의 책임자가 되었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여섯 나라의 합종 이후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 밖으로 군대를 보내지 못하였으며 그런 상태는 1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 秦 惠王(진 혜왕): 秦나라 惠文王이고 이름은 駟이다. 秦 孝公의 아들로 蘇秦이 惠王에게 유세한 것은 惠王 元年(B.C.337)이다.

* 肥美(비미): 땅이 기름지고 좋음.

* 殷富(은부): 풍성(豐盛)하고 넉넉함.


2 秦王曰: "寡人聞之, 羽不豐滿者不可以高飛, 文章不成者不可以誅罰, 道德不厚者不可以使民, 政教不順者不可以煩大臣. 今先生儼然不遠千里而庭教之, 願以異日." 蘇秦曰: "臣固疑大王不能用也. 昔者神農伐補遂, 黃帝伐涿鹿而禽蚩尤, 堯伐驩兜, 舜伐三苗, 禹伐共工, 湯伐有夏, 文王伐崇, 武王伐紂, 齊桓任戰而伯天下. 由此觀之, 惡有不戰者乎? 古者使車轂擊馳, 言語相結, 天下爲一; 約連橫, 兵革不藏; 文士並餝, 諸侯亂惑; 萬端俱起, 不可勝理; 科條既備, 民多偽態; 書策稠注, 百姓不足, 上下相愁, 民無所聊; 明言章理, 兵甲愈起; 辯言偉服, 戰攻不息; 繁稱文辭, 天下不治; 舌弊耳聾, 不見成功; 行義約信, 天下不親. 於是, 乃廢文任武, 厚養死士, 綴甲厲兵, 效勝於戰場. 夫徒處而致利, 安坐而廣地, 雖古五帝、三王、五伯, 明主賢君, 常欲而致之, 其勢不能, 故以戰續之. 寬則兩軍相攻, 迫則杖戟相橦, 然後可建大功. 是故兵勝於外, 義強於內; 立於上, 民服於下. 今欲並天下, 凌萬乘, 詘敵國, 制海內, 子元元, 臣諸侯, 非兵不可! 今之嗣主, 忽於至道, 皆惛於教, 亂於治, 迷於言, 惑於語, 沈於辯, 溺於辭. 以此論之, 王國不能行也." 

2 진왕이 말하길(秦王曰): "과인이 듣기로(寡人聞之), 깃발이( 羽) 충분하지 않으면(不豐滿者) 높이 날 수 없고(不可以高飛), 문장을 이루지 못하면(文章不成者) 죄인을 주벌할 수 없고(不可以誅罰), 도덕이 두텁지 않으면(道德不厚者) 백성을 부릴 수 없고(不可以使民), 정교가 순하지 않으면(政教不順者) 대신을 번거롭게 부릴 수 없다(不可以煩大臣)라고 했다. 지금(今) 선생께서(先生) 엄연히(儼然)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와서(不遠千里而) 조정에서 가르치시는데(庭教之), 원컨대(願) 다른 날로 했으면 합니다(以異日)." 

소진이 말하길(蘇秦曰): "신은(臣) 본래(固) 대왕께서 <제 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大王不能用) 의심했습니다(也). 옛날(昔者) 신농씨가(神農) 보수를 정벌하고(伐補遂), 황제가(黃帝) 탁록을 정벌해서(伐涿鹿而) 치우를 사로잡고(禽蚩尤), 요임금이 환두를 정벌하고(堯伐驩兜), 순임금이 삼묘를 정벌하고(舜伐三苗), 우임금이 공공을 정벌하고(禹伐共工), 탕임금이 유하를 정벌하고(湯伐有夏), 문왕이 숭을 정벌하고(文王伐崇), 무왕이 주를 정벌하고(武王伐紂), 제 환공이 전쟁에 임하여(齊桓任戰而) 천하에서 패자가 되었습니다(伯天下). 이것으로 보자면(由此觀之), 어찌(惡)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有不戰者乎)? 옛날에는(古者) 사자의 수레바퀴가(使車轂) <길에서> 치고 달리며(擊馳), 말이 서로 맺어져(言語相結), 천하가 하나가 되었는데(天下爲一); 합종과 연횡의 약속이 있더라도(約連橫), 병기를 감출 수 없고(兵革不藏); 문사들이(文士) 함께 말을 꾸미고(並餝), 제후들이(諸侯) 어지러이 현혹되어(亂惑); 온갖 문제가 함께 일어나(萬端俱起), 다스릴 수 없게 되었고(不可勝理); 법령이(科條) 이미 갖추어졌지만(既備), 백성은(民) 거짓된 모습이 많아지고(多偽態); 서책이 많아졌지만(書策稠注), 백성은 부족해지고(百姓不足), 상하가 서로 근심하지만(上下相愁), 백성에게(民) 의지할 곳이 없고(無所聊); 말을 명확하게 하고(明言) 이치가 드러날수록(章理), 전쟁이 더욱 일어나고(兵甲愈起); 변언과 위복에도(辯言偉服), 전쟁이 그치지 않고(戰攻不息); 번거롭고 화려한 문사로도(繁稱文辭),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고(天下不治); 혀가 닳고(舌弊) 귀가 먹어도(耳聾), 성공이 보이지 않고(不見成功); 의를 행하고(行義) 신의를 약속해도(約信), 천하가 친해지지 않습니다(天下不親).

이에(於是), 이에(乃) 문을 폐하고(廢文) 무에 맡겨서(任武), 죽음을 각오한 용사를 두터이 기르고(厚養死士), 갑옷을 수리하고 병기를 연마해서(綴甲厲兵),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이깁니다(效勝於戰場). 무릇(夫) 아무 일 없이 이익을 구하고(徒處而致利), 편안히 앉아서 땅을 넓히려고 한다면(安坐而廣地), 비록(雖) 옛날(古) 오제나 삼왕, 오백, 밝은 군주나 현명한 임금이라도(五帝、三王、五伯, 明主賢君), 늘(常) 앉아서 그것을 이루려고 한다면(欲而致之), 그 형세는 불가능하고(其勢不能), 그러므로(故) 전쟁으로(以戰) 계속합니다(續之). <서로> 멀다면(寬則) 두 군대가(兩軍) 서로 공격하고(相攻), 마주치면(迫則) 몽둥이나 창으로(杖戟) 서로 찌르고 나서(相橦, 然後) 큰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可建大功). 이 때문에(是故) 군대가(兵) 바깥에서 이기고(勝於外), 도의가(義) 안에서 강해지고(強於內); 위엄이(威) 위에서 서고(立於上), 백성이(民) 아래서 복종합니다(服於下). 지금(今) 천하를 병하하고(並天下), 만승의 나라를 짓누르고(凌萬乘), 적국을 굴복시키고(詘敵國), 해내를 제압하고(制海內), 백성을 사랑하고(子元元), 제후를 신하로 삼으려고 하면(臣諸侯), 군대가 아니면 안 됩니다(非兵不可)! 지금 계승한 주인은(今之嗣主), 지극한 도를 소홀히 하고(忽於至道), 모두(皆) 가르침에 어둡고(惛於教), 다스림에 혼란스럽고(亂於治), 말에 미혹되고(迷於言), 말에 혹해서(惑於語), 변론에 빠졌고(沈於辯), 사설에 휘말려 있습니다(溺於辭). 이것으로 논하자면(以此論之), 왕께서는(王國) 행할 수 없습니다(不能行也)."

 

* 豐滿(풍만): 풍족(豐足)하여 그득함.

* 文章(문장): 文物制度와 典章 法式. 원주에는 “文章은 旌旟의 文章이다. 靑과 赤을 文이라 하며, 赤과 白을 章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 科條(과조): 법률(法律), 명령(命令), 규칙(規則) 따위의 조목(條目).

* 子元元(자원원): 子는 愛이며 元은 善이란 뜻이고 元元은 백성을 가리킨다.. 錢藻本과 劉敞本에는 元자가 하나만 있다.

 

3 說秦王書十上而說不行. 黑貂之裘弊, 黃金百斤盡, 資用乏絕, 去秦而歸. 羸滕履蹻, 負書擔橐, 形容枯槁, 面目犁黑, 狀有歸色. 歸至家, 妻不下紉, 嫂不爲炊, 父母不與言. 蘇秦喟歎曰: "妻不以爲爲夫, 嫂不以我爲叔, 父母不以我爲子, 是皆秦之罪也." 乃夜發書, 陳篋,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揣摩.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曰: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 取卿相之尊者乎?" 期年揣摩成, 曰: "此真可以說當世之君矣!" 

3 진왕을 설득하려고(說秦王) 글을 열 번 이상 올렸지만(書十上而) 설득이 행해지지 않았다(說不行).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갖옷이(黑貂之裘) 다 닳았고(弊), 황금 100근이 다 없어지고(黃金百斤盡), 밑천이 다 떨어지자(資用乏絕), 진나라를 떠나(去秦而) 돌아갔다(歸). 파리한 모습으로 발에 천을 감고(羸滕) 짚신을 신고(履蹻), 책을 짊어지고(負書) 전대를 메고(擔橐), 모습은 비쩍 마르고(形容枯槁), 얼굴은 까맣게 변해서(面目犁黑), 모습에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다(狀有歸色). 돌아와 집에 이르자(歸至家), 처는(妻) 베틀에서 내려오지 않고(不下紉), 형수는 밥을 해주지 않았고(嫂不爲炊), 부모도(父母)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不與言).

소진이(蘇秦) 탄식하며 말하길(喟歎曰): "처가(妻) <나를> 지아비로 여기지 않고(不以爲爲夫), 형수가 <나를> 시동생으로 여기지 않고(嫂不以我爲叔), 부모가(父母)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니(不以我爲子), 이것은 모두(是皆) 진나라의 잘못이다(秦之罪也)."라고 했다.

이에(乃) 밤에(夜) 책을 펴고(發書), 책 궤짝 수십 개를 펼쳐 놓고(陳篋十), 태공 음부경의 계책을 얻어(得《太公陰符》之謀), 엎드려 외우고(伏而誦之), 가려 뽑아 연습하며(簡練以) 연구했다(爲揣摩). 책을 읽다가(讀書) 잠이 오면(欲睡), 송곳을 끌어(引錐) 스스로(自) 자기 허벅지를 찔러(刺其股), 피가 흘러(血流) 발까지 이르렀다(至足).

말하기를(曰): "어찌(安) 임금을 설득해서(說人主) 그 금옥이나 비단을 내놓게 하지 못하는 일이(不能出其金玉錦繡) 있다면(有), 경상의 높은 자리를 얻겠는가(取卿相之尊者乎)?"라고 했다.

일 년이 지나(期年) 연구가 이루어지자(揣摩成), 말하길(曰): "이것으로(此) 참으로(真) 당세의 임금을 설득할 수 있다(可以說當世之君矣)!"라고 했다. 

 

* 黑貂之裘弊(흑초지구폐): 黑貂는 검은 담비 가죽인데 귀한 물건으로 친다. 蘇秦이 처음 趙나라에 들어가 재상 兌를 알현하자 兌가 蘇秦의 재주를 두려워해서 등용하지 않고 珠璧‧貂裘‧黃金 등 후한 선물을 주어 秦으로 보내 주었다. 蘇秦이 趙나라에서 벼슬하자, 趙王이 貂裘와 黃金을 밑천으로 주어 秦王에게 유세하여, 關中의 連橫을 깨뜨리고, 진나라로 하여금 趙나라와 合從토록 하였다. 秦王이 合從을 거부하여 그 때문에 蘇秦은 밑천과 황금을 다 쓰고, 貂裘도 다 닳았다고 한 것이다.

* 資用(자용): 필요(必要)한 돈과 물품(物品), 밑천.

* 枯槁(고고): 초목(草木)이 바짝 마름, 야위어서 파리함.

* 狀有歸(愧)色(상유귀색): 원문 歸는 愧의 誤字로 본다.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있었다.”의 뜻.

* 揣摩(췌마):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어 그에 따라 설득시키는 일종의 心靈 話術法. 또는 참뜻을 연구하는 일. → 忖度(촌탁))


4 於是乃摩燕烏集闕, 見說趙王於華屋之下, 抵掌而談. 趙王大悅, 封爲武安君. 受相印, 革車百乘, 綿繡千純, 白壁百雙, 黃金萬溢, 以隨其後, 約從散橫, 以抑強秦. 故蘇秦相於趙而關不通. 當此之時, 天下之大, 萬民之衆, 王侯之威, 謀臣之權, 皆欲決蘇秦之策. 不費斗糧, 未煩一兵, 未戰一士, 未絕一弦, 未折一矢, 諸侯相親, 賢於兄弟. 夫賢人在而天下服, 一人用而天下從. 故曰:式於政, 不式於勇; 式於廊廟, 不式於四境之外. 當秦之隆, 黃金萬溢爲用, 轉轂連騎, 炫熿於道, 山東之國, 從風而服, 使趙大重. 且夫蘇秦特窮巷掘門、桑戶棬樞之士耳,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4 이에 곧(於是乃) 연나라 오집궐에 이르러(摩燕烏集闕), 화옥 아래에서(於華屋之下) 조왕을 만나 유세했는데(見說趙王), 손바닥을 마주 잡고(抵掌而) 이야기했다(談). 조왕이 크게 기뻐하며(趙王大悅), 봉해서(封) 무안군으로 삼았다(爲武安君). 상의 인수와(相印), 혁거 100승(革車百乘), 비단 1000순(綿繡千純), 백벽 100쌍(白壁百雙), 황금 10000일을 받고(黃金萬溢, 以) 그 뒤를 따르게 하고(隨其後), 합종을 맺고(約從) 연횡을 깨도록 해서(散橫, 以) 강한 진나라를 억눌렀다(抑強秦).

그러므로9故) 소진이(蘇秦) 조나라에서 재상이 되어(相於趙而) 함곡관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關不通). 이때에(當此之時), 천하의 큰 나라와(天下之大), 만민의 백성(萬民之衆), 왕후의 위엄(王侯之威), 모신의 권력이(謀臣之權), 모두(皆) 소진의 책략으로 결정되었다(欲決蘇秦之策). 1두의 곡식을 쓰지 않고(不費斗糧), 한 명의 병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未煩一兵), 한 명의 전사도 싸움에 나가지 않고(未戰一士), 한 개의 활시위도 끊어지지 않고(未絕一弦), 한 개의 화살도 부러지지 않고(未折一矢), 제후가 서로 친해지고(諸侯相親), 형제보다 <우애가> 두터워졌다(賢於兄弟). 무릇(夫) 현인이 있으면(賢人在而) 천하가 복종하고(天下服), 한 사람을 등용해서(一人用而) 천하가 따르게 된다(天下從).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정치에 쓰고(式於政), 용맹함에 쓰지 않고(不式於勇); 종묘에 쓰고(式於廊廟), 국경 바깥에 쓰지 않는다(不式於四境之外)고 했다. 소진의 <권위가> 왕성할 때는(當秦之隆), 황금 10000이(黃金萬溢) 비용이 되고(爲用), 바퀴글 굴려 이어지는 말이(轉轂連騎), 도로에서 빛났고(炫熿於道), 산동의 나라가(山東之國), 바람을 따라(從風而) 복종하여(服), 조나라로 하여금(使趙)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게 만들었다(大重). 또(且) 소진은(夫蘇秦) 원래(特) 궁벽한 거리의(窮巷) 뚫린 문과 뽕나무 지게문과 나무 돌쩌귀 집에 살던(掘門、桑戶棬樞之) 선비였을 뿐인데(士耳), 수레에 올라(伏軾) 위엄을 뽐내며(撙銜), 천하를 횡행하고(橫歷天下), 조정에서(廷) 제후에게 유세하여(說諸侯之王), 측근의 입을 막고(杜左右之口), 천하에서(天下) 누구도 맞서지 못했다(莫之能伉). 

 

* 摩燕烏集闕(마연조집궐): 摩는 ‘가까이 이르다[迫近]’의 뜻. 烏集闕은 요새 이름.

* 賢於兄弟(현어형제): 賢은 厚와 같다.


5 將說楚王路過洛陽, 父母聞之, 清宮除道, 張樂設飲, 郊迎三十里. 妻側目而視, 傾耳而聽; 嫂蛇行匍伏, 四拜自跪謝. 蘇秦曰: "嫂, 何前倨而後卑也?" 嫂曰: "以季子之位尊而多金." 蘇秦曰: "嗟乎! 貧窮則父母不子, 富貴則親戚畏懼. 人生世上, 勢位富貴, 盍可忽乎哉!" 

5 장차(將) 초왕에게 유세하려고(說楚王) 길이 낙양을 지날 때(路過洛陽), 부모가 그것을 듣고(父母聞之), 집을 청소하고(清宮) 길을 치워(除道), 음악을 울리고(張樂) 음식을 준비해서(設飲), 교외에서(郊) 30리를 나와 맞이했다(迎三十里). 처는(妻) 곁눈질로 보고(側目而視), 귀를 기울여 들었고(傾耳而聽); 형수는(嫂) 뱀처럼 기어(蛇行) 길에 엎드려(匍伏),네 번 절하고(四拜) 스스로 꿇어앉아 사죄했다(自跪謝).

소진이 말하길(蘇秦曰): "형수는(嫂), 어찌(何) 전에는 거만했는데(前倨而) 나중에는 비굴합니까(後卑也)?"라고 했따.

형수가 말하길(嫂曰): "시숙의 지위가 높고(季子之位尊而)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多金)."라고 했다.

소진이 말하길(蘇秦曰): "아(嗟乎)! 가난하면(貧窮則) 부모가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父母不子), 부유하고귀하면(富貴則) 친척이 두려워한다(親戚畏懼).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人生世上), 권세와 지위, 부유함과 귀함을(勢位富貴),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盍可忽乎哉)!"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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