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 39] 한유(韓愈) 송석홍처사서(送石洪處士序) - 석홍 처사를 전송하며

by प्रज्ञा 2024. 12. 21.
반응형

河陽軍節度使烏公, 爲節度之三月, 求士於從事之賢者, 有薦石先生者. 公曰: “先生何如?” 曰: “先生居嵩邙瀍穀之間, 冬一裘, 夏一葛, 朝夕飯一盂, 蔬一盤. 人與之錢則辭, 請與出遊, 未嘗以事免, 勸之仕則不應. 坐一室, 左右圖書, 與之語道理, 辦古今事當否, 論人高下, 事後當成敗. 若河決下流而東注也, 若駟馬駕輕車就熟路而王良ㆍ造父爲之先後也, 若燭照數計而龜卜也.” 大夫曰: “先生有以自老, 無求於人, 其肯爲某來邪?” 從事曰: “大夫文武忠孝, 求士爲國, 不私於家. 方今寇聚於恒, 師環其强, 農不耕收, 財粟殫亡. 吾所處地, 歸輸之塗, 治法征謀, 宜有所出. 先生仁且勇, 若以義請而强委重焉, 其何說之辭.”

하양군 절도사(河陽軍節度使) 오공이(烏公), 절도사가 되어(爲節度之) 3개월 지나(三月), 부하 가운데 현명한 사람에게(於從事之賢者) 선비를 구하라고 하자(求士), 석선생을 천거한 사람이 있었다(有薦石先生者).

공이 말하길(公曰): “선생은 어떤 사람인가(先生何如)?”라고 했다.

말하길(曰): “선생은(先生) 숭산과 망산(嵩邙) 전수와 곡수 사이에(瀍穀之間) 살면서(居), 겨울에는(冬) 갖옷 한 벌을 입고(一裘), 여름에는 갈옷 한 벌을 입고(夏一葛), 아침저녁으로(朝夕) 밥 한 그릇과(飯一盂), 나물 한 접시로 삽니다(蔬一盤). 사람들이(人) 그에게 돈을 주면(與之錢則) 사양하고(辭), 함께 나가 놀기를(與出遊) 청하면(請), 일찍이(未嘗) 일을 핑계로 거절한 적이 없지만(以事免), 그에게 벼슬을 권하면(勸之仕則) 응하지 않습니다(不應). 앉는 방에는(坐一室), 좌우로 책이 있고(左右圖書), 그것으로(與之) 도리를 말하고(語道理), 옛날과 지금 일의(古今事) 옳고 그름을(當否) 분별하고(辦), 사람들의 고하를 논하고(論人高下), 사후에(事後) 성패를 말합니다(當成敗). 마치(若) 황하가(河) 아래로 터져서(決下流而) 동으로 흐르는 것 같고(東注也), 마치(若) 네 마리 말이(駟馬) 가벼운 마차를 메고(駕輕車) 익숙한 길로 나아가(就熟路而) 왕량과 조부가(王良造父) 앞과 뒤에서 하는 것과 같고(爲之先後也), 마치(若) 촛불이(燭) 여러 계책을 비춰(照數計而) 거북점을 친 것과 같습니다(龜卜也).”라고 했다.

대부가 말하길(大夫曰): “선생이(先生) 혼자 늙으면서(自老), 남에게 바라는 것이 없을 수(無求於人) 있다면(有以), 어찌(其) 기꺼이(肯) 와서 모의하려고 하겠습니까(爲某來邪)?”라고 했다.

종사가 말하길(從事曰): “대부께서(大夫) 문무와(文武) 충효를 겸하셨고(忠孝), 선비를 구하는 것은(求士) 나라를 위한 것이고(爲國), 집안에서 사사로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不私於家). 방금(方今) 도적이(寇) 항주에 모였고(聚於恒), 군대가(師) 그 지역을 포위하여(環其疆), 농부들은(農) 밭 갈고 추수하지 못하고(不耕收), 재물과 곡식이(財粟) 바닥났습니다(殫亡). 우리가(吾) 머무는 곳이(所處地), 들여보낼 수 있는(歸輸之) 길이니(塗), 다스리는 방법과(治法) 정벌하는 계략이(征謀), 마땅히(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有所出). 선생은(先生) 인자하고 용감하니(仁且勇), 만약(若) 의로써 요청해서(以義請而) 억지로(强) 중요한 일을 맡긴다면(委重焉), 그가(其) 무슨 말로(何說之) 사양하겠습니까(辭).”라고 했다.

 

* 從事(종사): 어떤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함, 누군가를 따라 일하는 사람(부하).

* 嵩邙瀍穀(숭망전곡): 숭산과 명산, 전수와 곡수로 모두 낙양 주변의 지명이다.

* 熟路(숙로): 익숙하게 잘 아는 길. 또는 여러 번 다니어 본 길.

 

於是譔書詞, 具馬幣, 卜日以授使者, 求先生之廬而請焉. 先生不告於妻子, 不謀於朋友, 冠帶出見客, 拜受書, 禮於門內. 宵則沐浴, 戒行李, 載書冊, 問道所由, 告行於常所來往, 晨則畢至. 張筵於上東門外, 酒三行, 且起, 有執爵而言者曰: “大夫眞能以義取人, 先生眞能以道自任, 決去就, 爲先生別.” 又酌而祝曰: “凡去就出處何常, 惟義之歸, 遂以爲先生壽.” 又酌而祝曰: “使大夫恒, 無變其初, 無務富其家而飢其師, 無甘受佞人而外敬正士, 無味於諂言, 惟先生是聽, 以能有成功, 保天子之寵命.” 又祝曰: “使先生無圖利於大夫而私便其身.” 先生起拜祝辭曰: “敢不敬蚤夜, 以求從祝規” 於是東都之人, 咸知大夫與先生, 果能相與以有成也. 遂各爲歌詩六韻, 遣愈爲之序云.

이에(於是) 글을 짓고(譔書詞), 말과 폐백을 준비해서(具馬幣), 좋은 날을 점치고(卜日以) 사자에게 주어(授使者), 선생의 초막에 가서(求先生之廬而) 요청했다(請焉). 선생이(先生) 처자에게(於妻子) 알리지 않고(不告), 벗에게 의논하지 않고(不謀於朋友), 관을 쓰고 대를 두르고(冠帶) 나와서(出) 객을 만나서(見客), 절하고(拜) 글을 받아(受書), 문 안에서 예를 취했다(禮於門內). 밤이 되어(宵則) 목욕하고(沐浴), 여행짐을 꾸리고(戒行李), 서책을 싣고(載書冊), 길이 따라야 할 곳을 묻고(問道所由), 늘 오가는 사람에게(於常所來往) 떠나는 것을 알리니(告行), 아침이 되어(晨則) 모두 왔다(畢至).

상동문 밖에서(於上東門外) 연회를 베풀고(張筵), 술이 세 번 돌고 나서(酒三行), 막 일어나려는데(且起), 술잔을 들고서 말한 사람이 있어 말하길(有執爵而言者曰): “대부께서(大夫) 참으로(眞) 의로써 사람을 얻었고(能以義取人), 선생은(先生) 참으로(眞) 도로써(能以道) 스스로 임무를 맡아(自任), 거취를 결정했으니(決去就), 선생을 위해(爲先生) 이별합니다(別).”라고 했다.

또(又) 술잔을 들고(酌而) 축원하며 말하길(祝曰): “모든(凡) 물러나고 나아가는 것이(去就出處) 어찌(何) 일정할까요(常), 오직(惟) 의에 돌아가는 것이니(義之歸), 마침내(遂) 선생의 장수를 빕니다(以爲先生壽).”라고 했다.

또(又) 술잔을 들고 축원하여 말하길(酌而祝曰): “대부 환으로 하여금(使大夫恒), 그 처음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하고(無變其初),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것에 힘써(務富其家而) 그 군대를 굶기는 일이(飢其師) 없도록 하고(無), 아첨꾼을 달갑게 받아들여 바른 선비를 겉으로만 공경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無甘受佞人而外敬正士), 참언에 맛들이는 일이 없도록 해서(無味於諂言), 오직(惟) 선생의 청을 옳게 여기고(先生是聽), 성공이 있을 수 있어서(以能有成功), 천자의 총애와 명을 보전하기를 바랍니다(保天子之寵命).”라고 했다.

또 축원하여 말하길(又祝曰): “선생으로 하여금(使先生) 대부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도모하고(圖利於大夫而) 그 몸을 사사로이 편안하게 하는 일이(私便其身) 없도록 하소서(無).”라고 했다.

선생이(先生) 일어나 절하며(起拜) 축사하여 말하길(祝辭曰): “감히(敢) 아침부터 밤까지 불경하지 않고(不敬蚤夜, 以) 축원하는 법규를(祝規) 따르기를 바랍니다(求從).”라고 했다.

이에(於是) 동도(낙양) 사람들이(東都之人), 모두(咸) 대부와 선생이(大夫與先生), 과연(果) 사로 함께해서(能相與以) 성공이 있을 것을(有成) 알았다(也). 마침내(遂) 각자(各) 6운이 있는 시를 짓고(爲歌詩六韻), 나에게 보내어(遣愈) 이 서를 짓도록 하자고 말했다(爲之序云).

 

* 行李(행리): 군대()의 전투() 또는 숙영에 필요()한 물품()을 실은 치중(), 길 가는 데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차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