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張蒼)
1. 張丞相蒼者, 陽武人也. 好書律暦. 秦時爲禦史, 主柱下方書. 有罪, 亡歸. 及沛公略地過陽武, 蒼以客從攻南陽. 蒼坐法當斬, 解衣伏質, 身長大, 肥白如瓠, 時王陵見而怪其美士, 乃言沛公, 赦勿斬. 遂從西入武關, 至鹹陽. 沛公立爲漢王, 入漢中, 還定三秦. 陳餘擊走常山王張耳, 耳歸漢, 漢乃以張蒼爲常山守. 從淮陰侯擊趙, 蒼得陳餘. 趙地已平, 漢王以蒼爲代相, 備邊冦. 已而徙爲趙相, 相趙王耳. 耳卒, 相趙王敖. 複徙相代王. 燕王臧荼反, 高祖往擊之. 蒼以代相從攻臧荼有功, 以六年中封爲北平侯, 食邑千二百戸. 遷爲計相, 一月, 更以列侯爲主計四歲. 是時蕭何爲相國, 而張蒼乃自秦時爲柱下史, 明習天下圖書計籍. 蒼又善用算律暦, 故令蒼以列侯居相府, 領主郡國上計者. 黥布反亡, 漢立皇子長爲淮南王, 而張蒼相之. 十四年, 遷爲禦史大夫.
1. 장승상 창은(張丞相蒼者), 양무 사람이다(陽武人也). 독서와 음률, 역법을 좋아했다(好書律暦). 진나라 때(秦時) 어사가 되어(爲禦史), 궁전의 도서를 맡았다(主柱下方書). 죄가 있어(有罪), 도망쳐 고향에 돌아왔다(亡歸). 패공이(及沛公) 땅을 공략하며 양무를 지날 때(略地過陽武), 장창이(蒼) 빈객으로 따라가(以客從) 남양을 공격했다(攻南陽). 장창이(蒼) 법에 걸려(坐法) 참형을 당할 때(當斬), 옷을 벗기고(解衣) 질에 엎드리도록 했는데(伏質), 몸이 크고(身長大), 살찌고 하얀 것이(肥白) 박속같았고(如)瓠, 이때(時) 왕릉이 보고(王陵見而) 그 아름다운 선비를 괴이하게 여겨(怪其美士, 乃) 패공에게 말해서(言沛公), 사면하고(赦) 죽이지 못하게 했다(勿斬). <고조를> 따라(遂從) 서쪽으로 가서(西) 무관에 들어갔다가(入武關), 함양에 이르렀다(至鹹陽). 패공이 즉위해서(沛公立) 한왕이 되고(爲漢王), 한중에 들어갔다가(入漢中), 돌아와(還) 삼진을 평정했다(定三秦). 진여가(陳餘) 상산왕 장이를 공격하자(擊走常山王張耳), 장이가 한날에 귀순했고(耳歸漢), 한나라가 이에(漢乃) 장창을(以張蒼) 상산태수로 삼았다(爲常山守). 회음후를 따라(從淮陰侯) 조나라를 공격하고(擊趙), 장창이(蒼) 진여를 사로잡았다(得陳餘). 조나라 땅이(趙地) 평정되고 나서(已平), 한왕이(漢王) 장창을(以蒼) 대의 재상으로 삼아(爲代相), 변경의 도적을 대비하도록 했다(備邊冦). 얼마 안 있어(已而) 옮겨(徙) 조나라 재상이 되어(爲趙相), 조왕 장이를 도왔다(相趙王耳). 장이가 죽고(耳卒), 조왕 장오를 도왔다(相趙王敖). 다시 옮겨(複徙) 대왕을 도왔다(相代王). 연왕 장도가(燕王臧荼) 반란을 일으키자(反), 고조가 가서(高祖往) 그를 공격했다(擊之). 장창이(蒼) 대의 재상으로(以代相) 따라가(從) 장도를 공격하는데(攻臧荼) 공이 있었고(有功), 이것으로(以) 6년에(六年中) 봉해서(封) 북평후가 되었고(爲北平侯), 식읍이(食邑) 1200호가 되었다(千二百戸). 옮겨서(遷) 계상이 되었고(爲計相), 1월에(一月), 다시(更) 열후로(以列侯) 주계가 되어(爲主計) 4년이 지났다(四歲). 이때(是時) 소하가(蕭何) 상국이 되었고(爲相國, 而) 장창이(張蒼乃) 진나라 때부터(自秦時) 주하사가 되어(爲柱下史), 천하의 도서와 재정, 호적에 밝고 익숙했다(明習天下圖書計籍). 장창이(蒼) 또(又) 산수와 음률, 역법을 잘했고(善用算律暦), 그러므로(故) 장창으로 하여금(令蒼以) 열후로(列侯) 상부에 머물면서(居相府), 주와 군국의 상계자를 거느리도록 했다(領主郡國上計者). 경포가 반란을 일으켰다 망하고(黥布反亡), 한나라가(漢) 황자 유장을 세워(立皇子長) 회남왕으로 삼았고(爲淮南王, 而) 장창이 그를 도왔다(張蒼相之). 14년에(十四年), 옮겨서(遷)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 主柱下方書(주주하방서): 황궁에서 각종 문서를 담당하다. 柱下(주하)는 궁전의 기둥 밑이란 뜻으로 궁전을 말한다.
* 質(질): 鑕(질)과 같다. 고대 형구의 하나로 허리를 자를 때 밑에 대는 받침대.
주창(周昌) 기기애애(期期艾艾)
2. 周昌者, 沛人也. 其從兄曰周苛, 秦時皆爲泗水卒史. 及高祖起沛, 擊破泗水守監, 於是周昌ㆍ周苛自卒史從沛公, 沛公以周昌爲職志, 周苛爲客. 從入關, 破秦. 沛公立爲漢王, 以周苛爲禦史大夫, 周昌爲中尉. 漢王四年, 楚圍漢王滎陽急, 漢王遁出去, 而使周苛守滎陽城. 楚破滎陽城, 欲令周苛將. 苛罵曰: “若趣降漢王! 不然, 今爲虜矣!” 項羽怒, 亨周苛. 於是乃拜周昌爲禦史大夫. 常從擊破項籍. 以六年中與蕭ㆍ曹等俱封: 封周昌爲汾陰侯: 周苛子周成以父死事, 封爲高景侯. 昌爲人彊力, 敢直言, 自蕭ㆍ曹等皆卑下之. 昌嘗燕時入奏事, 高帝方擁戚姫, 昌還走, 高帝逐得, 騎周昌項, 問曰: “我何如主也?” 昌仰曰: “陛下卽桀紂之主也.” 於是上笑之, 然尤憚周昌.
2. 주창은(周昌者), 패현 사람이다(沛人也). 그 종형은(其從兄) 주가라고 하는데(曰周苛), 진나라 때(秦時) 모두(皆) 사수의 졸사가 되었다(爲泗水卒史). 고조가 패현에서 일어났을 때(及高祖起沛), 사수의 수감을 공격했고(擊破泗水守監), 이에(於是) 주창과 주가는(周昌ㆍ周苛) 하급관리로(自卒史) 패공을 따랐고(從沛公), 패공이(沛公) 주창을(以周昌) 직지로 삼았고(爲職志), 주가를(周苛) 빈객으로 삼았다(爲客). <고조를> 따라(從) 관중으로 들어가(入關), 진나라를 격파했다(破秦). 패공이 즉위해서(沛公立) 한왕이 되어(爲漢王), 주가를(以周苛) 어사대부로 삼고(爲禦史大夫), 주창을(周昌) 중위로 삼았다(爲中尉). 한나라 4년에(漢王四年), 초나라가(楚) 형양에서 한왕을 포위해서(圍漢王滎陽) 급해지자(急), 한왕이(漢王) 달아나며(遁出去, 而) 주가로 하여금(使周苛) 형양성을 지키도록 했다(守滎陽城). 초나라가(楚) 형양성을 깨뜨리자(破滎陽城), 주가로 하여금 장수가 되도록 하려고 했다(欲令周苛將).
주가가 꾸짖어 말하길(苛罵曰): “너는(若) 달려가서(趣) 한왕에게 항복해라(降漢王)! 그렇지 않으면(不然), 지금(今) 포로가 될 것이다(爲虜矣)!”라고 했다.
항우가 노하여(項羽怒), 주가를 삶아 죽였다(亨周苛). 이에(於是) 주창에게 벼슬을 주어(乃拜周昌) 어사대부로 삼았다(爲禦史大夫). 늘 따르며(常從) 항적을 공격해서 깨뜨렸다(擊破項籍). 6년에(以六年中) 소호와 조참 등과 함께(與蕭ㆍ曹等俱) 봉해졌고(封): 주창을 봉해서(封周昌) 분음후로 삼고(爲汾陰侯): 주가의 아들 주성은(周苛子周成) 아버지가 <나라를> 섬기다 죽었기 때문에(以父死事), 봉해서(封) 고경후로 삼았다(爲高景侯). 주창의 사람됨이(昌爲人) 강하고 힘이 세며(彊力), 감히 곧바로 말하니(敢直言), 소하와 조참 등으로부터 모두(自蕭ㆍ曹等皆) 그에게 낮추었다(卑下之). 주창이(昌) 일찍이(嘗) 한가로이 쉴 때(燕時) 들어가(入) 일을 아뢰는데(奏事), 고제가(高帝) 마침(方) 척희를 안고 있었기에(擁戚姫), 주창이 되돌아 도망쳤고(昌還走), 고제가 쫓아와 붙잡으며(高帝逐得), 주창의 목을 올라타고(騎周昌項), 묻기를(問曰): “내가(我) 어떤 주인인가(何如主也)?”라고 했다.
주창이 올려보며 말하길(昌仰曰): “폐하는(陛下) 곧(卽) 걸왕이나 주왕같은 임금입니다(桀紂之主也).”라과 했다.
이에(於是) 황제가 웃었지만(上笑之), 그러나(然) 더욱(尤) 주창을 꺼렸다(憚周昌).
3. 及帝欲廢太子, 而立戚姫子如意爲太子, 大臣固爭之, 莫能得: 上以留侯策卽止. 而周昌廷爭之彊, 上問其說, 昌爲人吃, 又盛怒, 曰: “臣口不能言, 然臣期期知其不可. 陛下雖欲廢太子, 臣期期不奉詔.” 上欣然而笑. 旣罷, 呂後側耳於東箱聽, 見周昌, 爲跪謝曰: “微君, 太子幾廢.” 是後戚姫子如意爲趙王, 年十歲, 高祖憂卽萬歲之後不全也. 趙堯年少, 爲符璽禦史. 趙人方與公謂禦史大夫周昌曰: “君之史趙堯, 年雖少, 然奇才也, 君必異之, 是且代君之位.” 周昌笑曰: “堯年少, 刀筆吏耳, 何能至是乎!” 居頃之, 趙堯侍高祖. 高祖獨心不樂, 悲歌, 群臣不知上之所以然. 趙堯進請問曰: “陛下所爲不樂, 非爲趙王年少而戚夫人與呂後有卻邪? 備萬歲之後而趙王不能自全乎?” 高祖曰: “然. 吾私憂之, 不知所出.”
3. 고제가 태자를 폐하고(及帝欲廢太子, 而) 척희의 아들 여의를 세워(立戚姫子如意) 태자로 삼으려고 할 때(爲太子), 대신이(大臣) 강하게 다퉜지만(固爭之), 누구도(莫) 얻을 수 없었는데(能得): 황제가(上) 유후(장량)의 계책 때문에(以留侯策) 바로 그만두었다(卽止).
그런데(而) 주창이(周昌) 조정에서 다투는 것이 강력했기에(廷爭之彊), 황제가(上) 그 설을 물으니(問其說), 주창의 사람됨이(昌爲人) 말을 더듬고(吃), 또 매우 화가 나서 말하길(又盛怒, 曰): “신의 입으로(臣口) 말할 수 없지만(不能言), 그러나(然) 저는(臣) 기필코 기필코(期期) 그것이 불가한 것임을 압니다(知其不可). 폐하께서(陛下) 비록(雖) 태자를 폐하려고 하지만(欲廢太子), 신은(臣) 기필코(期期)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不奉詔).”라고 했다.
황제가(上) 기분좋게 웃었다(欣然而笑). 끝나고 나서(旣罷), 여후가(呂後) 동적에서(於東箱) 귀를 기울여 듣다가(側耳聽), 주창을 보고(見周昌), 꿇어앉아(爲跪) 감사하며 말하길(謝曰): “그대가 아니었다면(微君), 태자가(太子) 거의 폐위되었을 것이다(幾廢).”라고 했다.
이 뒤로(是後) 척희아 아들 여의가(戚姫子如意) 조왕이 되었고(爲趙王), 나이가 10살이었는데(年十歲), 고조는(高祖) 자기가 죽은 뒤에 온전하지 못할 것을(卽萬歲之後不全) 걱정했다(憂也). 조요가(趙堯) 어린 나이로(年少), 부새어사가 되었다(爲符璽禦史).
조나라 사람(趙人) 방여공이(方與公) 어사대부 주창에게 말하길(謂禦史大夫周昌曰): “그대의 관리(君之史) 조요가(趙堯),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年雖少), 그러나(然) 기재이니(奇才也), 그대는(君) 반드시(必) 그를 다르게 대해야 하고(異之), 이 사람이(是) 또()且) 당산의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代君之位).”라고 했다.
주창이(周昌) 웃으며 말하길(笑曰): “조요의 나이가 어리고(堯年少), 도필리일 뿐인데(刀筆吏耳), 어찌(何) 어기에 이르겠는가(能至是乎)!”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居頃之), 조요가(趙堯) 고조를 모셨다(侍高祖). 고조가(高祖) 홀로(獨) 마음이 즐겁지 않아(心不樂), 슬프게 노래 부르는데(悲歌), 여러 신하가(群臣) 임금이 그런 까닭을 알지 못했다(不知上之所以然).
조요가(趙堯) 나아가(進) 청하여 묻기를(請問曰): “폐하께서(陛下) 즐겁게 여기지 않는 것이(所爲不樂), 조왕이 어리고(趙王年少而) 척부인과 여후에게(戚夫人與呂後) 다툼이 있기(有卻) 때문이 아닌가요(非爲邪)? 황제가 죽은 뒤를 대비하더라도(備萬歲之後而) 조왕이(趙王) 스스로 지킬 수 없기 때문 아닌가요(不能自全乎)?”라고 했다.
고조가 말하길(高祖曰): “그렇다(然). 내가(吾) 마음속으로(私) 걱정하지만(憂之), 내보일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不知所出).”라고 했다.
* 廷爭(정쟁): 조정(朝廷)에서, 임금의 면전(面前)에서 간(諫)하여 다툼.
* 吃(흘): 말을 더듬음.
* 期期(기기): 말을 더듬는 모양(模樣). 중국(中國) 전한(前漢)의 주창(周昌)은 원래(元來ㆍ原來) 말을 더듬는 데다 몹시 성이 나서 간(諫)하느라 황제(皇帝) 앞에서 “신(臣)은 기(期), 기필코(期必) 그것이 불가(不可)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臣期期知其不可).”라고 말을 더듬었다는 데서 유래(由來)한다.
* 欣然(흔연):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氣分)이 좋은 모양(模樣).
* 萬歲之後(만세지후) : 황제가 죽은 후.
4. 堯曰: “陛下獨宜爲趙王置貴彊相, 及呂後ㆍ太子ㆍ群臣素所敬憚乃可.” 高祖曰: “然. 吾念之欲如是, 而群臣誰可者?” 堯曰: “禦史大夫周昌, 其人堅忍質直, 且自呂後ㆍ太子及大臣皆素敬憚之. 獨昌可.” 高祖曰: “善.” 於是乃召周昌, 謂曰: “吾欲固煩公, 公彊爲我相趙王.” 周昌泣曰: “臣初起從陛下, 陛下獨奈何中道而棄之於諸侯乎?” 高祖曰: “吾極知其左遷, 然吾私憂趙王, 念非公無可者. 公不得已彊行!” 於是徙禦史大夫周昌爲趙相.
4. 조요가 말하길(堯曰): “폐하께서(陛下) 다만(獨) 조왕을 위해(爲趙王) 마땅히 귀하고 강한 재상을 두고(宜置貴彊相, 及) 여후와 태자, 군신이(呂後ㆍ太子ㆍ群臣) 평소(素) 공경하면서 꺼리는 사람이라면(所敬憚乃) 괜찮을 것입니다(可).”라고 했다.
고조가 말하길(高祖曰): “그렇다(然). 내가(吾) 그것을 생각해서(念之) 이와 같이 하려면(欲如是, 而) 군신 가운데(群臣) 누가 좋은가(誰可者)?”라고 했다.
조요가 말하길(堯曰): “어사대부 주창은(禦史大夫周昌), 그 사람됨이(其人) 강인하고(堅忍) 정직하고(質直), 또(且) 여후와 태자, 대신으로부터(自呂後ㆍ太子及大臣) 모두(皆) 평소(素) 그를 경탄합니다(敬憚之). 오직(獨) 주창이 가능합니다(昌可).”라고 했다.
고조가 말하길(高祖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於是) 주창을 불러(乃召周昌), 말하길(謂曰): “내가(吾) 참으로 그대를 번거롭게 하려는데(欲固煩公), 공이 억지로라도(公彊) 나를 위해(爲我) 조왕을 도와야겠다(相趙王).”라고 했다.
주창이(周昌) 울며 말하길(泣曰): “신이(臣) 처음 일어나(初起) 폐하를 따랐는데(從陛下), 폐하께서(陛下) 다만(獨) 어찌 중도에(奈何中道而) 제후에게 버리려고 합니까(棄之於諸侯乎)?”라고 했다.
고조가 말하길(高祖曰): “내가(吾) 그것이 좌천인 것을(其左遷) 잘 알지만(極知), 그러나(然) 내가(吾) 마음으로(私) 조왕을 걱정하고 있고(憂趙王), 공이 아니라면(非公) 가능한 사람이 없다고(無可者) 생각했다(念). 공이(公)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不得已彊行)!”라고 했다.
이에(於是) 어사대부 주창을 옮겨서(徙禦史大夫周昌) 조나라 재상으로 삼았다(爲趙相).
* 敬憚(경탄): 공경(恭敬)하면서도 꺼림.
5. 旣行久之, 高祖持禦史大夫印弄之, 曰: “誰可以爲御史大夫者?” 孰視趙堯, 曰: “無以易堯.” 遂拜趙堯爲禦史大夫. 堯亦前有軍功食邑, 及以禦史大夫從擊陳豨有功, 封爲江邑侯. 高祖崩, 呂太後使使召趙王, 其相周昌令王稱疾不行. 使者三反, 周昌固爲不遣趙王. 於是高后患之, 乃使使召周昌. 周昌至, 謁高后, 高后怒而罵周昌曰: “爾不知我之怨戚氏乎? 而不遣趙王, 何?” 昌旣徴, 高后使使召趙王, 趙王果來. 至長安月餘, 飮藥而死. 周昌因謝病不朝見, 三歲而死. 後五歲, 高后聞禦史大夫江邑侯趙堯高祖時定趙王如意之畫, 乃抵堯罪, 以廣阿侯任敖爲禦史大夫.
5. 떠나고 나서(旣行) 한참이 지나고(久之), 고조가(高祖) 어사대부 인수를 가지고(持禦史大夫印) 손에 굴리며 말하길(弄之, 曰): “누가(誰) 어사대부가 될 수 있을까(可以爲御史大夫者)?”라고 했다.
조요를 오래 한참 쳐다보며 말하길(孰視趙堯, 曰): “조요를 바꿀 수 없다(조요만 한 사람이 없다)(無以易堯).”라고 했다.
마침내(遂) 조요에게 벼슬을 내려(拜趙堯) 어사대부로 삼았다(爲禦史大夫). 조요도 또한(堯亦) 전에(前) 군공이 있어(有軍功) 식읍을 받았고(食邑), 어사대부가 되었을 때(及以禦史大夫) 따라서(從) 진희를 공격한 것에(擊陳豨) 공이 있으므로(有功), 봉하여(封) 강읍후로 삼았다(爲江邑侯). 고조가 죽고(高祖崩), 여태후가(呂太後) 사신을 보내(使使) 조왕을 불렀는데(召趙王), 그 재상 주창이(其相周昌) 조왕으로 하여금(令王) 병을 핑계로(稱疾) 가지 못하도록 했다(不行). 사자가 세 번 다녀갔지만(使者三反), 주창이(周昌) 기어코(固) 조왕을 보내지 않았다(爲不遣趙王). 이에(於是) 고후가 그것을 걱정하며(高后患之, 乃) 사자를 보내(使使) 주창을 불러들였다(召周昌).
주창이 이르러(周昌至), 고후를 알현하자(謁高后), 고후가 노하여(高后怒而) 주창을 꾸짖어 말하길(罵周昌曰): “너는(爾) 내가(我之) 척씨에게 원한이 있는 것을(怨戚氏) 알지 못하는가(不知乎)? 그런데(而) 조왕을 보내지 않은 것은(不遣趙王), 어째서인가(何)?”라고 했다.
주창이 불려오고 나서(昌旣徴), 고후가(高后) 사자를 보내(使使) 조왕을 불렀고(召趙王), 조왕이 결국 왔다(趙王果來). 장안에 이르러(至長安) 한 달여가 지나(月餘), 약을 먹고 죽었다(飮藥而死). 주창이(周昌) 이에(因) 병을 핑계로(謝病) 조회에 나가지 않았고(不朝見), 삼 년이 지나 죽었다(三歲而死). 5년이 지나(後五歲), 고후는(高后) 어사대부 강읍후 조요가(禦史大夫江邑侯趙堯) 고조 때(高祖時) 조왕 여의를 안정시키려는 계획이 있었음을(定趙王如意之畫) 들었고(聞), 이에(乃) 조요에게 죄를 물리고(抵堯罪), 광아후 임오를(以廣阿侯任敖) 어사대부로 삼았다(爲禦史大夫).
임오(任敖)
6. 任敖者, 故沛獄吏. 高祖嘗辟吏, 吏繋呂後, 遇之不謹. 任敖素善高祖, 怒, 擊傷主呂後吏. 及高祖初起, 敖以客從爲禦史, 守豊二歲, 高祖立爲漢王, 東擊項籍, 敖遷爲上黨守. 陳豨反時, 敖堅守, 封爲廣阿侯, 食千八百戸. 高后時爲禦史大夫. 三歲免, 以平陽侯曹窋爲禦史大夫. 高后崩, (不與大臣共誅呂祿等. 免, 以淮南相張蒼爲禦史大夫.
6. 임오는(任敖者), 본래(故) 패현 옥사의 관리였다(沛獄吏). 고조가 일찍이(高祖嘗) 관리들을 피했을 때(辟吏), 관리들이(吏) 여후를 잡아다가(繋呂後), 대우하는 것이(遇之) 공경스럽지 않았다(不謹). 임오가(任敖) 평소(素) 고조와 잘 지냈고(善高祖), 화가 나서(怒), 여후를 맡은 관리를(主呂後吏) 때려 상하게 했다(擊傷). 고초가 처음 일어났을 때(及高祖初起), 임오가(敖) 빈객으로 따라서(以客從) 어사가 되었고(爲禦史), 풍현을 지킨 것이(守豊) 2년이 되었고(二歲), 고조가 즉위해서(高祖立) 한왕이 되어(爲漢王), 동으로(東) 항적을 공격했을 때(擊項籍), 임오가 옮겨가(敖遷) 상당 태수가 되었다(爲上黨守).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陳豨反時), 임오가 굳게 지켜서(敖堅守), 봉하여(封) 광아후가 되었고(爲廣阿侯), 식읍이 1800호였다(食千八百戸). 고후 대(高后時)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3년 만에 물러나고(三歲免, 以) 평양후 조줄이(平陽侯曹窋)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고후가 죽었을 때(高后崩), 여록 등을 함께 죽이는 일에(共誅呂祿等) 대신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不與大臣). 물러나고(免, 以) 회남의 재상(淮南相) 장창이(張蒼)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장창(張蒼)
7. 蒼與絳侯等尊立代王爲孝文皇帝. 四年, 丞相灌嬰卒, 張蒼爲丞相. 自漢興至孝文二十餘年, 會天下初定, 將相公卿皆軍吏. 張蒼爲計相時, 緒正律暦. 以高祖十月始至霸上, 因故秦時本以十月爲歲首, 弗革. 推五德之運, 以爲漢當水德之時, 尙黒如故. 吹律調樂, 入之音聲, 及以比定律令. 若百工, 天下作程品. 至於爲丞相, 卒就之, 故漢家言律暦者, 本之張蒼. 蒼本好書, 無所不觀, 無所不通, 而尤善律暦. 張蒼德王陵. 王陵者, 安國侯也. 及蒼貴, 常父事王陵. 陵死後, 蒼爲丞相, 洗沐, 常先朝陵夫人上食, 然後敢歸家.
7. 장창과 강후 등이(蒼與絳侯等) 대왕을 높여 세워(尊立代王) 효문황제가 되었다(爲孝文皇帝). 4년에(四年), 승상 관영이 죽고(丞相灌嬰卒), 장창이(張蒼) 승상이 되었다(爲丞相). 한나라가 일어나고부터(自漢興) 효문에 이르기까지(至孝文) 20여 년이 되었고(二十餘年), 마침(會) 천하가 안정되었지만(天下初定), 장상과 공경이 모두(將相公卿皆) 군대의 벼슬아치였다(軍吏). 장창이(張蒼) 계상이 되었을 때(爲計相時), 음률과 역법을 바로잡았다(緒正律暦). 고조가(以高祖) 10월에(十月) 패상에 처음 왔고(始至霸上), 원래(因故) 진나라 때(秦時) 본래(本) 10월을(以十月) 해의 시작으로 삼았는데(爲歲首), 바꾸지 않았다(弗革). 오덕의 운을 헤아려(推五德之運, 以) 한나라가 수덕의 때에 해당하니(爲漢當水德之時), 검은색을 숭상하는 것이(尙黒) 옛날과 같았다(如故). 음률을 불고(吹律) 가락을 조화시켜(調樂), 음성에 넣고(入之音聲), 이것으로 비교해서(及以比) 율령을 바로잡았다(定律令). 모든 장인이(若百工), 천하에서(天下) 규격에 맞도록 만들었다(作程品). 승상이 되었을 때(至於爲丞相), 마침내 이것에 나아갔고(卒就之), 그러므로(故) 한나라 집안이(漢家) 율과 역을 말하는 것은(言律暦者), 장창에게 뿌리를 둔다(本之張蒼). 장창은(蒼) 본래(本) 책을 좋아해서(好書), 보지 않은 것이 없고(無所不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無所不通, 而) 율과 역을 더욱 잘 만들었다(尤善律暦). 장창은(張蒼) 왕릉에게 덕을 입었다(德王陵). 왕릉은(王陵者), 안국후다(安國侯也). 장창이 귀하게 되어서도(及蒼貴), 늘(常) 왕릉을 아버지처럼 모셨다(父事王陵). 왕릉이 죽고 나서(陵死後), 장창이(蒼) 승상이 되었을 때(爲丞相), 쉴 때는(洗沐), 늘(常) 왕릉의 부인에게 먼저 아침 인사하고(先朝陵夫人) 음식을 올리고 나서(上食, 然後) 집으로 돌아갔다(敢歸家).
* 緒正(서정): 근본(根本)을 캐어 찾아서 바로잡음.
* 程品(정품): 규칙, 규격.
8. 蒼爲丞相十餘年, 魯人公孫臣上書言漢土德時, 其符有黃龍當見. 詔下其議張蒼, 張蒼以爲非是, 罷之. 其後黃龍見成紀, 於是文帝召公孫臣以爲博士, 草土德之暦制度, 更元年. 張丞相由此自絀, 謝病稱老. 蒼任人爲中候, 大爲姦利, 上以讓蒼, 蒼遂病免. 蒼爲丞相十五歲而免. 孝景前五年, 蒼卒, 謚爲文侯. 子康侯代, 八年卒. 子類代爲侯, 八年, 坐臨諸侯喪後就位不敬, 國除. 初, 張蒼父長不滿五尺, 及生蒼, 蒼長八尺餘, 爲侯ㆍ丞相. 蒼子複長. 及孫類, 長六尺餘, 坐法失侯. 蒼之免相後, 老, 口中無齒, 食乳, 女子爲乳母. 妻妾以百數, 嘗孕者不複幸. 蒼年百有餘歲而卒.
8. 장창이(蒼) 승상이 되어(爲丞相) 10여 년이 지나서(十餘年), 노나라 사람(魯人) 공손신이(公孫臣) 글을 올려(上書) 한나라는 토덕의 시대이고(漢土德時), 그 징조에(其符) 황룡이 마땅히 나타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有黃龍當見) 말했다(言). 조서를 내려(詔下) 그것을 장창에게 의논하니(其議張蒼), 장창이(張蒼) 옳지 않다고 여기고(以爲非是), 물리쳤다(罷之). 그뒤(其後) 황룡이(黃龍) 성기에서 나타났고(見成紀), 이에(於是) 문제가(文帝) 공손신을 불러(召公孫臣) 박사로 삼고(以爲博士), 토덕의 달력 제도(土德之暦制度) 초안을 만들도록 하고(草), 원년을 바꿨다(更元年). 장승상이(張丞相) 이것 때문에(由此) 스스로 물러나(自絀),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謝病稱) 늙었다(老). 장창이(蒼) 사람을 믿어(任人) 중후로 삼았는데(爲中候), 바르지 못한 이익을 크게 챙기고(大爲姦利), 황제가(上) 이것으로(以) 장창을 꾸짖으니(讓蒼), 장창이(蒼) 마침내(遂)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病免). 장창이(蒼) 승상이 되어(爲丞相) 15년 만에(十五歲而) 물러났다(免). 효경제 전원 5년에(孝景前五年), 장창이 죽고(蒼卒), 시호가(謚) 문후가 되었다(爲文侯). 아들 강후가(子康侯) 대를 이었고(代), 8년 만에 죽었다(八年卒). 자류가(子類) 대를 이어(代) 후가 되었는데(爲侯), 8년 만에(八年), 제후의 상에 다녀온 뒤에(坐臨諸侯喪後) 자리에 나아간 것이(就位) 불경하다고 여겨(不敬), 나라가 없어졌다(國除). 애초에(初), 장창의 아버지는(張蒼父) 키가(長) 5척에도 차지 않았는데(不滿五尺), 장창을 낳았을 때(及生蒼), 장창의 키가(蒼長) 8척이나 되었고(八尺餘), 후와 승상이 되었다(爲侯ㆍ丞相). 장창의 아들이(蒼子) 다시 키가 컸다(複長). 자류에 이르러(及孫類), 키가 6척 남짓이었는데(長六尺餘), 법에 저촉되어(坐法) 후를 잃었다(失侯). 장창이(蒼之) 재상을 그만둔 뒤에(免相後), 늙어서(老), 입에(口中) 이빨이 없었고(無齒), 젖을 먹었는데(食乳), 여자가(女子) 유모가 되었다(爲乳母). 처첩이(妻妾) 수백이었는데(以百數), 일찍이(嘗) 임신한 사람은(孕者) 다시 사랑하지 않았다(不複幸). 장창의 나이가(蒼年) 100여 살이 넘어(百有餘歲而) 죽었다(卒).
신도가(申屠嘉)
9. 申屠丞相嘉者, 梁人, 以材官蹶張從高帝擊項籍, 遷爲隊率. 從擊黥布軍, 爲都尉. 孝惠時, 爲淮陽守. 孝文帝元年, 擧故吏士二千石從高皇帝者, 悉以爲關內侯, 食邑二十四人, 而申屠嘉食邑五百戸. 張蒼已爲丞相, 嘉遷爲禦史大夫. 張蒼免相, 孝文帝欲用皇後弟竇廣國爲丞相, 曰: “恐天下以吾私廣國.” 廣國賢有行, 故欲相之, 念久之不可, 而高帝時大臣又皆多死, 餘見無可者, 乃以禦史大夫嘉爲丞相, 因故邑封爲故安侯. 嘉爲人廉直, 門不受私謁. 是時太中大夫鄧通方隆愛幸, 賞賜累巨萬. 文帝嘗燕飮通家, 其寵如是. 是時丞相入朝, 而通居上傍, 有怠慢之禮.
9. 승상 신도가는(申屠丞相嘉者), 양나라 사람으로(梁人), 재관 부대의 궐장으로(以材官蹶張) 고제를 따라서(從高帝) 항적을 공격했고(擊項籍), 옮겨서(遷) 부대의 수장이 되었다(爲隊率). 따라서(從) 경포의 군대를 공격했고(擊黥布軍), 도위가 되었다(爲都尉). 효제 시절에(孝惠時), 회양의 태수가 되었다(爲淮陽守). 효문제 원년에(孝文帝元年), 옛날 관리 가운데(擧故吏士) 2천 석을 받고(二千石) 고제를 따른 사람은(從高皇帝者), 모두(悉) 관내후로 삼고(以爲關內侯), 24명에게 식읍을 주었는데(食邑二十四人, 而) 신도가는(申屠嘉) 5백 호를 식읍으로 받았다(食邑五百戸). 장창이(張蒼) 승상이 되고 나서(已爲丞相), 신도가가 옮겨서(嘉遷)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장창이 (張蒼) 재상에서 물러나자(免相), 효문제가(孝文帝) 황후의 동생(皇後弟) 두광국을(竇廣國) 승상으로 삼아(爲丞相) 쓰려고 하면서(欲用), 말하길(曰): “천하 사람들이(天下) 내가 광국을 사사로이 여긴다고 생각할까(以吾私廣國) 두렵다(恐).”라고 했다.
광국이 현명하고(廣國賢) 행실이 있었고(有行), 그러므로(故)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지만(欲相之), 생각이 오래되어도(念久之) 안되겠다고 여겼고(不可, 而) 고제 때의(高帝時) 대신이(大臣) 또한(又) 모두 죽었고(皆多死), 나머지를 보면(餘見) 할만한 사람이 없으므로(無可者), 이에(乃) 어사대부 신도가를(以禦史大夫嘉) 승상으로 삼고(爲丞相), 옛 읍을 따라(因故邑) 봉해서(封) 고안후로 삼았다(爲故安侯). 신도가의 사람됨이(嘉爲人) 청렴하고 강직해서(廉直), 문에서(門) 사사로운 만남을 받지 않았다(不受私謁). 이때(是時) 태중대부 등통이(太中大夫鄧通) 막(方) 사랑과 총애가 높았고(隆愛幸), 상으로 받은 것이(賞賜) 억만금을 쌓았다(累巨萬). 문제가(文帝) 일찍이(嘗) 등통의집에서 연회를 즐겼으니(燕飮通家), 그 총애가(其寵) 이와 같았다(如是). 이때(是時) 승상이 조정에 들어갔는데(丞相入朝, 而) 등통이(通) 윗자라에 있으면서(居上傍), 태만한 예를 행함이 있었다(有怠慢之禮).
* 材官蹶張(재관궐장): 용감하고 힘이 센 재관 부대의 궁노수(弓弩手). 材官(재관)은 용감하고 힘이 센 병사로 구성된 부대이고 蹶張(궐장)은 궐장로(蹶張路)라는 발로 밟는 노를 다루는 무관이다.
10. 丞相奏事畢, 因言曰: “陛下愛幸臣, 則富貴之: 至於朝廷之禮, 不可以不肅!” 上曰: “君勿言, 吾私之.” 罷朝坐府中, 嘉爲檄召鄧通詣丞相府, 不來, 且斬通. 通恐, 入言文帝. 文帝曰: “汝第往, 吾今使人召若.” 通至丞相府, 免冠, 徒跣, 頓首謝. 嘉坐自如, 故不爲禮, 責曰: “夫朝廷者, 高皇帝之朝廷也. 通小臣, 戲殿上, 大不敬, 當斬. 吏今行斬之!” 通頓首, 首盡出血, 不解. 文帝度丞相已困通, 使使者持節召通, 而謝丞相曰: “此吾弄臣, 君釋之.” 鄧通旣至, 爲文帝泣曰: “丞相幾殺臣.”
10. 승상이(丞相) 일을 보고하는 것이(奏事) 끝나고(畢), 이어 말하길(因言曰): “폐하께서(陛下) 총애하는 신하라면(愛幸臣, 則) 그를 부귀하게 하지만(富貴之): 조정의 예에 이르면(至於朝廷之禮), 엄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可以不肅)!”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그대는(君) 말하지 말라(勿言), 내가 그를 아낀다(吾私之).”라고 했다.
조정이 끝나고(罷朝) 부중에 앉아서(坐府中), 신도가가(嘉) 격문을 만들어(爲檄) 등통을 불러(召鄧通) 승상부에 이르도록 하고(詣丞相府), 오지 않으면(不來), 또(且) 등통을 참하도록 했다(斬通). 등통이 두려워하며(通恐), 들어가(入) 문제에게 말했다(言文帝).
문제가 말하길(文帝曰): “그대는(汝) 먼저 가거라(第往), 내가(吾) 지금(今) 사람을 시켜(使人) 너를 부를 것이다(召若).”라고 했다.
등통이(通) 승상부에 이르러(至丞相府), 관을 벗고(免冠), 맨발로(徒跣),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頓首謝). 신도가가(嘉) 앉아서(坐) 태연했고(自如), 그러므로(故) 예를 차리지 않고(不爲禮), 꾸짖어 말하길(責曰): “무릇(夫) 조정이란(朝廷者), 고황제의 조정이다(高皇帝之朝廷也). 등통은(通) 작은 신하로(小臣), 어전을 희롱했으니(戲殿上), 매우 공경스럽지 않은 것이고(大不敬), 마땅히 참해야 한다(當斬). 관리는(吏) 지금(今) 그를 참해라(行斬之)!”라고 했다.
등통이(通) 머리를 조아리며(頓首), 머리가(首) 모두 피를 내보냈지만(盡出血), 풀어주지 않았다(不解). 문제가(文帝) 승상이 이미(丞相已) 등통을 곤궁에 빠뜨렸다고 생각하고(度困通), 사자를 시켜(使使者) 부절을 가지고(持節) 등통을 불서(召通, 而) 승상에게 사죄하며 말하길(謝丞相曰): “이 사람은(此) 나의 농신이니(吾弄臣), 그대가 그를 풀어주시오(君釋之).”라고 했다.
등통이 이른 뒤에(鄧通旣至), 문제에게 울며 말하길(爲文帝泣曰): “승상이(丞相) 거의(幾) 신을 죽였습니다(殺臣).”라고 했다.
* 徒跣(도선): 맨발. 아무것도 신지 아니한 발.
* 弄臣(농신): 임금의 놀이 상대(相對)가 되는 신하(臣下).
11. 嘉爲丞相五歲, 孝文帝崩, 孝景帝卽位. 二年, 晁錯爲內史, 貴幸用事, 諸法令多所請變更, 議以謫罰侵削諸侯. 而丞相嘉自絀所言不用, 疾錯. 錯爲內史, 門東出, 不便, 更穿一門南出. 南出者, 太上皇廟堧垣. 嘉聞之, 欲因此以法錯擅穿宗廟垣爲門, 奏請誅錯. 錯客有語錯, 錯恐, 夜入宮上謁, 自歸景帝. 至朝, 丞相奏請誅內史錯. 景帝曰: “錯所穿非眞廟垣, 乃外堧垣, 故他官居其中, 且又我使爲之, 錯無罪.”
11. 신도가가(嘉) 승상이 되고(爲丞相) 5년이 지나(五歲), 효문제가 죽고(孝文帝崩), 효경제가 즉위했다(孝景帝卽位). 2년에(二年), 조조가 내사가 되어(晁錯爲內史), 총애를 받아(貴幸) 권려을 써서(用事), 모든 법령을(諸法令) 많이(多) 고칠 것을 청하고(所請變更), 의논하여(議以) 죄를 찾아 처벌하고(謫罰) 제후의 영지를 깎았다(侵削諸侯). 그런데(而) 승상 신도가는(丞相嘉) 말한 것이 쓰이지 않아서(所言不用) 스스로 굴욕으로 여기고(自絀), 조조를 미워했다(疾錯). 조조가(錯) 내사가 되어(爲內史), 문이(門) 동쪽으로 나가도록 되었는데(東出), 불편하므로(不便), 문 하나를 남쪽으로 나가도록(一門南出) 다시 뚫었다(更穿). 남쪽으로 나오면(南出者), 태상황 묘의(太上皇廟) 바깥 담장이었다(堧垣). 신도가가 그것을 듣고(嘉聞之), 이것 때문에(欲因此) 조조가(錯) 종묘 담장을 멋대로 뚫어(擅穿宗廟垣) 문을 만든 것을(爲門) 죄목으로(以法), 아뢰어(奏) 조조를 죽일 것을 청했다(請誅錯). 조조의 빈객에게(錯客) 조조에게 말한 사람이 있어(有語錯), 조조가 두려워서(錯恐), 밤에(夜) 궁에 들어가(入宮) 황제를 찾아 뵙고(上謁), 경제에게 죄를 시인했다(自歸景帝). 아침이 되어(至朝), 승상이(丞相) 내사 조조를 죽일 것을(誅內史錯) 아뢰어 청했다(奏請).
경제가 말하길(景帝曰): “조조가 뚫은 것은(錯所穿) 진짜 묘의 담장이 아니고(非眞廟垣), 곧(乃) 바깥 공터의 담장이고(外堧垣), 그러므로(故) 다른 관리가(他官) 그 가운데 머물고 있으며(居其中), 또(且又) 내가(我) 그에게 하도록 시켰으니(使爲之), 조조에게(錯) 죄가 없다(無罪).”라고 했다.
* 用事(용사): 용권(用權), 권력을 장악하다.
* 謫罰(적벌): 잘못을 찾아 처벌을 하다.
* 上謁(상알): 지체가 높고 귀(貴)한 사람을 찾아가 뵘.
12. 罷朝, 嘉謂長史曰: “吾悔不先斬錯, 乃先請之, 爲錯所賣.” 至舍, 因歐血而死. 謚爲節侯. 子共侯蔑代, 三年卒. 子侯去病代, 三十一年卒. 子侯臾代, 六歲, 坐爲九江太守受故官送有罪, 國除. 自申屠嘉死之後, 景帝時開封侯陶靑ㆍ桃侯劉舍爲丞相. 及今上時, 柏至侯許昌ㆍ平棘侯薛澤ㆍ武彊侯莊靑翟ㆍ高陵侯趙周等爲丞相. 皆以列侯繼嗣, 娖娖廉謹, 爲丞相備員而已, 無所能發明功名有著於當世者. 太史公曰: 張蒼文學律暦, 爲漢名相, 而絀賈生ㆍ公孫臣等言正朔服色事而不遵, 明用秦之顓頊暦, 何哉? 周昌, 木彊人也. 任敖以舊德用. 申屠嘉可謂剛毅守節矣, 然無術學, 殆與蕭ㆍ曹ㆍ陳平異矣.
12. 조회가 끝나고(罷朝), 신도가가(嘉) 장사에게 말하길(謂長史曰): “내가(吾) 먼저 조조를 죽이지 않고(不先斬錯) , 바로(乃) 먼저 청해서(先請之), 조조에게 굴욕을 당한 것을(爲錯所賣) 후회한다(悔).”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至舍), 이에(因) 피를 토하고 죽었다(歐血而死). 시호가(謚) 절후가 되었다(爲節侯). 아들 공후 멸이(子共侯蔑) 대신했는데(代), 삼년 만에 죽었다(三年卒). 아들 거병이(子侯去病) 대를 이었는데(代), 31년 만에 죽었다(三十一年卒). 아들 유가(子侯臾) 대를 이었는데(代), 6년 만에(六歲), 구강 태수가 되었다가(坐爲九江太守) 전임 태수를 보내며 받은 것에(受故官送) 죄가 있어(有罪), 나라가 없어졌다(國除). 신도가가 죽은 뒤로부터(自申屠嘉死之後), 경제 때(景帝時) 개봉후 도청과 도후 유사가(開封侯陶靑ㆍ桃侯劉舍) 승상이 되었다(爲丞相). 지금의 황제 때에 이르러서(及今上時), 백지후 허청과 평극후 설택, 무강후 장청적, 고릉후 조주 등이(柏至侯許昌ㆍ平棘侯薛澤ㆍ武彊侯莊靑翟ㆍ高陵侯趙周等) 승상이 되었다(爲丞相). 모두(皆) 열후로(以列侯) 대를 이었고(繼嗣), 삼가고 청렴하고 조심해서(娖娖廉謹), 승상이 되었지만(爲丞相) 인원을 채웠을 뿐이니(備員而已), 공명을 드러내어(發明功名) 당세에 드러난 사람은 없다(無所能有著於當世者).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장창은(張蒼) 문학과 음률, 역법을 잘했고(文學律暦), 한나라의 명 재상이 되었지만(爲漢名相, 而) 가생과 공손신 등이 역법과 복색의 일을 말한 것을 배척하고(絀賈生ㆍ公孫臣等言正朔服色事而) 따르지 않았고(不遵), 진나라의 전욱력을 사용한 것은(明用秦之顓頊暦), 어째서인가(何哉)? 주창은(周昌), 목강인이다(木彊人也). 임오가(任敖) 옛 은덕으로(以舊德) 쓰였다(用). 신도가는(申屠嘉) 강직하고 지조를 지켰다고 말할 만 하지만(可謂剛毅守節矣), 그러나(然) 학술이 없었고(無術學), 거의(殆) 소하나 조참, 진평과 다르다(與蕭ㆍ曹ㆍ陳平異矣).
13. 孝武時丞相多甚, 不記, 莫錄其行起居狀略, 且紀征和以來. 有車丞相, 長陵人也. 卒而有韋丞相代. 韋丞相賢者, 魯人也. 以讀書術爲吏, 至大鴻臚. 有相工相之, 當至丞相. 有男四人, 使相工相之, 至第二子, 其名玄成. 相工曰: “此子貴, 當封.” 韋丞相言曰: “我卽爲丞相, 有長子, 是安從得之?” 後竟爲丞相, 病死, 而長子有罪論, 不得嗣, 而立玄成. 玄成時佯狂, 不肯立, 竟立之, 有讓國之名. 後坐騎至廟, 不敬, 有詔奪爵一級, 爲關內侯, 失列侯, 得食其故國邑. 韋丞相卒, 有魏丞相代.
13. 효무제 시절에는(孝武時) 승상이 매우 많아서(丞相多甚), 기록하지 않고(不記), 무엇도(莫) 그 행적과 살았던 모습을 기록하지 않았으니(錄其行起居狀略), 다만(且) 정화 이후를 기록한다(紀征和以來). 차 승상이 있었는데(有車丞相), 장릉 사람이다(長陵人也). 죽고서(卒而) 위승상이 있어(有韋丞相) 대신했다(代). 위승상 현은(韋丞相賢者), 노나라 사람이다(魯人也). 독서와 역술로(以讀書術) 관리가 되어(爲吏), 대홍려에 이르렀다(至大鴻臚). 관상쟁이가 있어(有相工) 관상을 보고(相之), 마땅히(當) 승상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至丞相). 네 아들이 있어(有男四人), 관상쟁이로 하여금(使相工) 상을 보도록 했는데(相之), 둘째 아들에 이르러(至第二子), 그 이름이 현성이다(其名玄成).
관상쟁이가 말하길(相工曰): “이 아들이(此子) 귀하게 될 것이니(貴), 마땅히 봉해질 것이다(當封).”라고 했다.
위승상이 말하길(韋丞相言曰): “내가 곧(我卽) 승상이 되면(爲丞相), 큰아들이 있는데(有長子), 이 아들이 어찌(是安) 그것을 얻겠는가(從得之)?”라고 했다.
나중에(後) 마침내(竟) 승상이 되어(爲丞相), 병들어 죽었고(病死, 而) 큰아들에게(長子) 죄를 논한 것이 있어(有罪論), 대를 잇지 못하고(不得嗣, 而) 현성을 세웠다(立玄成). 현성이(玄成) 당시(時)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佯狂), 기꺼이 되려고 하지 않았지만(不肯立), 마침내 이어받아(竟立之), 나라를 양보했다는 명성이 있었다(有讓國之名). 나중에(後) 말을 타고 조묘에 이른 것이(騎至廟), 불경하다고(不敬) 연좌되어(坐), 조서가 있어(有詔) 작위 1급을 빼앗겨(奪爵一級), 관내후가 되어(爲關內侯), 열후를 잃고(失列侯), 옛 국급을(其故國邑) 식읍으로 받았다(得食). 위승상이 죽고(韋丞相卒), 위승상이 있어(有魏丞相) 대신했다(代).
14. 魏丞相相者, 濟陰人也. 以文吏至丞相. 其人好武, 皆令諸吏帶劍, 帶劍前奏事. 或有不帶劍者, 當入奏事, 至乃借劍而敢入奏事. 其時京兆尹趙君, 丞相奏以免罪, 使人執魏丞相, 欲求脫罪而不聽. 複使人脅恐魏丞相, 以夫人賊殺待婢事而私獨奏請験之, 發吏卒至丞相舍, 捕奴婢笞擊問之, 實不以兵刃殺也. 而丞相司直繁君奏京兆尹趙君迫脅丞相, 誣以夫人賊殺婢, 發吏卒圍捕丞相舍, 不道: 又得擅屛騎士事, 趙京兆坐要斬. 又有使掾陳平等劾中尙書, 疑以獨擅劫事而坐之, 大不敬, 長史以下皆坐死, 或下蠶室. 而魏丞相竟以丞相病死. 子嗣. 後坐騎至廟, 不敬, 有詔奪爵一級, 爲關內侯, 失列侯, 得食其故國邑. 魏丞相卒, 以禦史大夫邴吉代.
14. 위승상 상은(魏丞相相者), 제음 사람이다(濟陰人也). 문서 관리로(以文吏) 승상에 이르렀다(至丞相). 그 사람이(其人) 무를 좋아하고(好武), 모든 관리게 명하여(皆令諸吏) 검을 차도록 하고(帶劍), 검을 차고(帶劍) 앞에서(前) 일을 아뢰도록 했다(奏事). 누군가(或) 검을 차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有不帶劍者), 들어가 일을 보고함에 당해서(當入奏事), 검을 빌려서 들어가 보고하는 것에 이르렀다(至乃借劍而敢入奏事). 그때(其時) 경조윤 조군은(京兆尹趙君), 승상이 죄를 아뢰자(丞相奏以免罪), 사람을 시켜(使人) 위승상을 붙잡고(執魏丞相), 죄를 벗어나기를 구하려고 했지만(欲求脫罪而) 들어주지 않았다(不聽). 다시(複) 사람을 시켜(使人) 위승상을 협박했는데(脅恐魏丞相), 부인이 하녀를 죽였다는 일과(以夫人賊殺待婢事而) 사적으로(私) 獨奏請験之, 發吏卒至丞相舍, 捕奴婢笞擊問之, 實不以兵刃殺也. 而丞相司直繁君奏京兆尹趙君迫脅丞相, 誣以夫人賊殺婢, 發吏卒圍捕丞相舍, 不道: 又得擅屛騎士事, 趙京兆坐要斬. 又有使掾陳平等劾中尙書, 疑以獨擅劫事而坐之, 大不敬, 長史以下皆坐死, 或下蠶室. 而魏丞相竟以丞相病死. 子嗣. 後坐騎至廟, 不敬, 有詔奪爵一級, 爲關內侯, 失列侯, 得食其故國邑. 魏丞相卒, 以禦史大夫邴吉代.
* 免罪(면죄): 파면되는 죄에 해당함을 말함.
15. 邴丞相吉者, 魯國人也. 以讀書好法令至禦史大夫. 孝宣帝時, 以有舊故, 封爲列侯, 而因爲丞相. 明於事, 有大智, 後世稱之. 以丞相病死. 子顯嗣. 後坐騎至廟, 不敬, 有詔奪爵一級, 失列侯, 得食故國邑. 顯爲吏至太僕, 坐官秏亂, 身及子男有姦贓, 免爲庶人. 邴丞相卒, 黃丞相代. 長安中有善相工田文者, 與韋丞相ㆍ魏丞相ㆍ邴丞相微賤時會於客家, 田文言曰: “今此三君者, 皆丞相也.” 其後三人竟更相代爲丞相, 何見之明也.
15. 병승상 길은(邴丞相吉者), 노나라 사람이다(魯國人也). 독서로(以讀書) 법령을 좋아해서(好法令) 어사대부에 이르렀다(至禦史大夫). 효선제 시절에(孝宣帝時), 옛 인연이 있기 때문에(以有舊故), 봉해서(封) 열후가 되었고(爲列侯, 而) 이어(因) 승상이 되었다(爲丞相). 일에 밝고(明於事), 큰 지혜가 있어(有大智), 후세에(後世) 그를 칭찬했다(稱之). 승상이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以丞相病死), 아들 현이 뒤를 이었다(子顯嗣). 뒤에(後) 말을 타고 종묘에 이른 불경으로 죄를 받아(坐騎至廟, 不敬), 조서가 있어(有詔) 작위 한 등급을 빼앗겨(奪爵一級), 열후를 잃고(失列侯), 옛 국읍을 식읍으로 받았다(得食故國邑). 현이(顯) 이전이 되어(爲吏) 태복에 이르렀으나(至太僕), 부패와 타락으로 죄를 받고(坐官秏亂), 자신과 아들 남에게(身及子男) 뇌물을 받은 일이 있어(有姦贓), 파면되어(免) 서인이 되었다(爲庶人). 병 승상이 죽고(邴丞相卒), 황 승상이 대신했다(黃丞相代). 장안 가운데(長安中) 관상을 잘 보는 전문이라는 사람이 있어(有善相工田文者), 위승상과 위승상, 병승상이(與韋丞相ㆍ魏丞相ㆍ邴丞相) 미천한 시절에(微賤時) 빈객의 집에 모였는데(會於客家), 전문이 말하길(田文言曰): “지금(今) 이 세 사람은(此三君者), 모두 승상이 될 것이다(皆丞相也).”라고 했다. 그 뒤(其後) 세 사람이(三人) 마침내(竟) 번갈아(更) 서로 이어(相代) 승상이 되었으니(爲丞相), 얼마나(何) 본 것이 분명한가(見之明也).
* 秏亂(모란): 부패하고 타락함.
* 姦贓(간장) : 남모르게 은밀히 주고받은 뇌물.
黃霸(황패)
16. 黃丞相霸者, 淮陽人也. 以讀書爲吏, 至潁川太守. 治潁川, 以禮義條敎喩告化之. 犯法者, 風暁令自殺. 化大行, 名聲聞. 孝宣帝下制曰: “潁川太守霸, 以宣布詔令治民, 道不拾遺, 男女異路, 獄中無重囚. 賜爵關內侯, 黃金百斤.” 徴爲京兆尹而至丞相, 複以禮義爲治. 以丞相病死. 子嗣, 後爲列侯. 黃丞相卒, 以禦史大夫於定國代. 於丞相已有廷尉傳, 在張廷尉語中. 於丞相去, 禦史大夫韋玄成代.
16. 황승상 패는(黃丞相霸者), 회양 사람이다(淮陽人也). 글을 읽어(以讀書) 관리가 되었고(爲吏), 영천태수에 이르렀다(至潁川太守). 영천을 다스릴 때(治潁川), 예의로 하고(以禮義) 조목으로 가르치고 깨우쳐(條敎喩告) 교화시켰다(化之). 범을 어긴 사람은(犯法者), 둘러 말하고(風暁) 스스로 죽이도록 햇따(令自殺).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化大行), 명성이 들렸다(名聲聞).
효선제가(孝宣帝) 조서를 내려 말하길(下制曰): “영천태수 패는(潁川太守霸), 조정의 법령을 널리 알려(以宣布詔令) 백성을 다스리고(治民), 길에(道) 떨어진 것을 줍지 않고(不拾遺), 남녀가(男女) 길을 달리하고(異路), 옥중에(獄中) 중범죄를 지은 사람이 없다(無重囚). 관내후 작위와 황금 100근을 내린다(賜爵關內侯, 黃金百斤).”라고 했다.
불러서(徴) 경조윤으로 삼았다가(爲京兆尹而) 승상에 이르러(至丞相), 다시(複) 예의로(以禮義) 다스렸다(爲治). 승상이 병 때문에 죽었다(以丞相病死). 아들이 이어받아(子嗣), 나중에(後) 열후가 되었다(爲列侯). 황승상이 죽고(黃丞相卒), 어사대부 정국이(以禦史大夫於定國) 대신했다(代). 승상에게(於丞相) 이미(已) 정위전이 있으며(有廷尉傳), 장 정원 가운데도 있도(在張廷尉語中). 우승상이 죽고(於丞相去), 어사대부 위현성이 대신했다(禦史大夫韋玄成代).
* 風曉(풍효):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여 깨우치게 만듦.
* 下制(하제): 칙서를 내림.
丞相(승상) 韋玄成(위현성)
17. 韋丞相玄成者, 卽前韋丞相子也. 代父, 後失列侯. 其人少時好讀書, 明於詩ㆍ論語. 爲吏至衛尉, 徙爲太子太傅. 禦史大夫薛君免, 爲禦史大夫. 於丞相乞骸骨免, 而爲丞相, 因封故邑爲扶陽侯. 數年, 病死. 孝元帝親臨喪, 賜賞甚厚. 子嗣後. 其治容容隨世俗浮沈, 而見謂諂巧. 而相工本謂之當爲侯代父, 而後失之: 複自遊宦而起, 至丞相. 父子俱爲丞相, 世閒美之, 豈不命哉! 相工其先知之. 韋丞相卒, 禦史大夫匡衡代.
17. 위승상 현성은(韋丞相玄成者), 곧(卽) 이전(前) 위승상의 아들이다(韋丞相子也). 아버지를 이었다가(代父), 뒤에(後) 열후를 잃었다(失列侯). 그 사람이(其人) 어렸을 때(少時) 독서를 좋아했고(好讀書), 시와 논어에 밝았다(明於詩ㆍ論語). 관리가 되어(爲吏) 위위에 이르렀고(至衛尉), 옮겨서(徙) 태자태부가 되었다(爲太子太傅). 어사대부 설군이 그만두고(禦史大夫薛君免),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우승상이(於丞相) 그만두기를 청했고(乞骸骨免, 而) 승상이 되어(爲丞相), 이에(因) 옛 읍에 봉해서(封故邑) 부양후가 되었다(爲扶陽侯). 몇 년이 지나(數年), 병으로 죽었다(病死). 효원제가(孝元帝) 직접(親) 초상에 왔고(臨喪), 상을 내린 것이(賜賞) 매우 후했다(甚厚). 아들이 뒤를 이었다(子嗣後). 그 모습이 평범하고(其治容容) 세속의 부침을 따라(隨世俗浮沈, 而) 아첨한다고 일컬어졌지만(見謂諂巧, 而) 관상쟁이가(相工) 본래(本) 그가 마땅히 후가 되어(之當爲侯) 아버지를 잇지만(代父, 而) 나중에 잃을 것이라고 말했는데(謂後失之): 다시(複) 타향에서 벼슬을 시작해서(自遊宦而) 일어나(起), 승상에 이르렀다(至丞相). 부자가(父子) 함께(俱) 승상이 되어(爲丞相), 세간에서 아름답게 여겼으니(世閒美之), 어찌(豈) 운명이 아니겠는가(不命哉)! 관상쟁이가(相工) 먼저 그것을 알았다(其先知之). 위승상이 죽고(韋丞相卒), 어사대부 광형이 대신했다(禦史大夫匡衡代).
* 容容(용용): 庸庸과 같다. 세상과 화합하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음.
* 諂巧(함교): 아첨하다. 알랑거리다.
丞相(승상) 匡衡(광형)
18. 丞相匡衡者, 東海人也. 好讀書, 從博士受詩. 家貧, 衡傭作以給食飮. 才下, 數射策不中, 至九, 乃中丙科. 其經以不中科故明習. 補平原文學卒史. 數年, 郡不尊敬. 禦史徴之, 以補百石屬薦爲郎, 而補博士, 拜爲太子少傅, 而事孝元帝. 孝元好詩, 而遷爲光祿勳, 居殿中爲師, 授敎左右, 而縣官坐其旁聽, 甚善之, 日以尊貴. 禦史大夫鄭弘坐事免, 而匡君爲禦史大夫. 歲餘, 韋丞相死, 匡君代爲丞相, 封樂安侯. 以十年之閒, 不出長安城門而至丞相, 豈非遇時而命也哉!
18. 승상 광형은(丞相匡衡者), 동해 사람이다(東海人也). 독서를 좋아하고(好讀書), 박사를 따라(從博士) 시를 배웠다(受詩). 집안이 가난해서(家貧), 머슴살이로(衡傭作以) 생계를 이었다(給食飮). 재주가 하찮고(才下), 여러 번(數) 사책을 보았지만(射策) 맞추지 못하다가(不中), 아홉 번에 이르러(至九), 마침내(乃) 병과에 합격했다(中丙科). 그 경서 실력으로(其經以) 중과에 합격하지 못했고(不中科) 그러므로(故) 열심히 익혔다(明習). 평원의 문학 졸사가 되었다(補平原文學卒史). 몇 년이 지나(數年), 군에서(郡) 존경받지 못햇따(不尊敬). 어사가(禦史) 그를 불러(徴之), 100석의 관리 삼았다가(以補百石屬) 추천해서(薦) 랑으로 삼았고(爲郎, 而) 박사로 삼았다가(補博士), 벼슬을 받아(拜) 태자소부가 되어(爲太子少傅, 而) 효원제를 섬겼다(事孝元帝). 효원제가(孝元) 시를 좋아했고(好詩, 而) 옮겨서(遷) 광록훈이 되어(爲光祿勳), 궁전에 머물면서(居殿中) 스승이 되어(爲師), 주변 사람들을 가르쳤고(授敎左右, 而) 황제가(縣官) 그 곁에 앉아서(坐其旁) 듣고(聽), 매우 좋게 여겨서(甚善之), 날로 존귀해졌다(日以尊貴). 어사대부 정홍이(禦史大夫鄭弘) 일로 벌을 받아(坐事) 그만두고(免, 而) 광군이(匡君) 어사대부가 되었다(爲禦史大夫). 1년여가 지나(歲餘), 위승상이 죽고(韋丞相死), 광군이 대신해서(匡君代) 승상이 되었고(爲丞相), 낙안후에 봉해졌다(封樂安侯). 10년 사이에(以十年之閒), 장안성 문을 나서지 않고(不出長安城門而) 승상에 이르렀으니(至丞相), 어찌(豈) 때를 만난 운명이 아닐 뿐이겠는가(非遇時而命也哉)!
* 傭作(용작): 고용(雇用)되어 일을 함.
* 數射策不中(수사책부중): 여러 차례 조정의 고시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射策(사책)은 고대의 고시(考試)의 하나로 출제자가 시험문제를 내면 죽간에 답을 쓰는 방식이다.
* 縣官(현관): 황제(皇帝)를 말하다. 현(縣)의 우두머리라는 뜻.
19. 太史公曰: 深惟士之遊宦所以至封侯者, 微甚. 然多至禦史大夫卽去者. 諸爲大夫而丞相次也, 其心冀幸丞相物故也. 或乃陰私相毁害, 欲代之. 然守之日久不得, 或爲之日少而得之, 至於封侯, 眞命也夫! 禦史大夫鄭君守之數年不得, 匡君居之未滿歲, 而韋丞相死, 卽代之矣, 豈可以智巧得哉! 多有賢聖之才, 困厄不得者衆甚也.
19.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깊이 생각해보면(深惟) 선비가(士之) 먼 곳에서 벼슬해서(遊宦所以) 봉후에 이른 사람은(至封侯者), 매우 적다(微甚). 그러나(然) 대부분(多) 어사대부에 이르러(至禦史大夫) 그만두었다(卽去者). 모두(諸) 대부가 되어(爲大夫而) 승상이 다음이고(丞相次也), 그 마음은(其心) 승상이 죽기를 바란다(冀幸丞相物故也). 혹(或) 암암리에(乃陰私) 서로 헐뜯고 해를 끼쳐(相毁害), 대신하려고 한다(欲代之). 그러나(然) 지키는 날이 오래되어도(守之日久) 얻지 못하고(不得), 혹(或) 된 날이 적지만(爲之日少而) 얻으니(得之), 봉후에 이르느 ㄴ것은(至於封侯), 참으로 명이 아니겠는가(眞命也夫)! 어사대부 정군은(禦史大夫鄭君) 지킨 것이(守之) 몇 년이었지만(數年) 얻지 못했고(不得), 광군이 머문 것은(匡君居之)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未滿歲, 而) 위승상이 죽어(韋丞相死), 바로 대신했으니(卽代之矣), 어찌(豈) 지혜와 계책으로 얻을 수 있는가(可以智巧得哉)! 많은 경우(多) 성현의 재능이 있으면서도(有賢聖之才), 곤궁하고 횡액을 당해(困厄) 얻지 못한 사람이(不得者) 매우 많다(衆甚也).
* 遊宦(유환): 다른 나라 또는 먼 곳에 가서 벼슬을 함.
* 物故(물고):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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