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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97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한 고조의 책사들: 역이기, 육가, 평원군, 벽양후

by प्रज्ञा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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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기(酈食其)
1. 酈生食其者, 陳留高陽人也. 好讀書, 家貧落魄, 無以爲衣食業, 爲里監門吏. 然縣中賢豪不敢役, 縣中皆謂之狂生. 及陳勝ㆍ項梁等起, 諸將徇地過高陽者數十人, 酈生聞其將皆握齱好苛禮自用, 不能聽大度之言, 酈生乃深自藏匿. 後聞沛公將兵略地陳留郊, 沛公麾下騎士適酈生里中子也, 沛公時時問邑中賢士豪俊. 騎士歸, 酈生見謂之曰: “吾聞沛公慢而易人, 多大略, 此眞吾所願從遊, 莫爲我先. 若見沛公, 謂曰: “臣里中有酈生, 年六十餘, 長八尺, 人皆謂之狂生, 生自謂我非狂生”.” 騎士曰: “沛公不好儒, 諸客冠儒冠來者, 沛公輒解其冠, 溲溺其中. 與人言, 常大罵. 未可以儒生說也.” 酈生曰: “弟言之.” 騎士從容言如酈生所誡者.

1. 역생 이기는(酈生食其者), 진류 고양 사람이다(陳留高陽人也). 독서를 좋아했지만(好讀書), 집안이 가난하고(家貧) 세력이 없어(落魄), 생계를 이을 수 없어(無以爲衣食業), 마을 문을 감시하는 관리가 되었다(爲里監門吏). 그러나(然) 마을의(縣中) 현인이나 호걸이(賢豪) 감히 부리지 못했고(不敢役), 마을에서(縣中) 모두(皆) 그를 광생이라 불렀다(謂之狂生). 진승과 항량 등일 일어났을 때(及陳勝ㆍ項梁等起), 여러 장수가(諸將) 땅을 돌며(徇地) 고양을 거쳐간 사람이(過高陽者) 수십 명이었는데(數十人), 역생은(酈生) 그 장수들이 모두(其將皆) 도량이 좁고(握齱) 번거로운 예의를 좋아하고(好苛禮) 스스로 옳다고 여겨(自用), 큰 도량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不能聽大度之言) 듣고(聞), 역생이 이에(酈生乃) 깊이(深) 자신을 감추었다(自藏匿). 나중에(後) 패공이(沛公) 군사를 이끌고(將兵) 진류 교외를 공략한다고(略地陳留郊) 들었는데(聞), 패공 휘하의(沛公麾下) 기사가(騎士) 마침(適) 역생의 마을 가운데(酈生里中) 사람이었는데(子也), 패공은(沛公) 때때로(時時) 마음 가운데 현사와 호걸을 물었다(問邑中賢士豪俊).

기사가 돌아왔을 때(騎士歸), 역생이(酈生) 그를 보며 말하길(見謂之曰): “내가 듣기로(吾聞) 패공은(沛公) 오만하고(慢而) 남을 가벼이 여기지만(易人), 큰 지략이 많다고 하는데(多大略), 이 사람이(此) 참으로(眞) 내가 따라 사귀기를 원하는 사람이지만(吾所願從遊), 누구도(莫) 나를 위해 나서지 않는다(爲我先). 그대가(若) 패공을 보면(見沛公), 말하길(謂曰): “신의 마을에(臣里中) 역생이 있는데(有酈生), 나이는 60여 살이고(年六十餘), 키가 8척이고(長八尺), 사람들이 모두(人皆) 광생이라 부르는데(謂之狂生), 역생이 스스로(生自) 나는 광생이 아니라고 한다(謂我非狂生)”라고 말해주겠는가?”라고 했다.

기사가 말하길(騎士曰): “패공이(沛公) 유자를 좋아하지 않아서(不好儒), 여러 빈객 가운데(諸客) 유관을 쓰고 오면(冠儒冠來者), 패공이(沛公) 바로(輒) 그 관을 풀어(解其冠), 그 안에 오줌을 쌉니다(溲溺其中). 남과 말하며(與人言), 늘(常) 크게 꾸짖습니다(大罵). 유생으로 유세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未可以儒生說也).”라고 했다.

역생이 말하길(酈生曰): “다만(弟) 그것을 말해주게(言之).”라고 했다.

기사가(騎士) 침착하게(從容) 역생이 일러준 것처럼 말했다(言如酈生所誡者).

 

* 落魄(낙백): 넋을 잃음, 세력(勢力)이나 살림이 줄어들어 보잘것이 없음.

* 握齱(악착): 齷齪(악착)과 같다. 악착같다. 도량이 좁다.
* 苛禮(가례): 까다로운 예절. 지나치게 번거로운 예의.
* 自用(자용) : 스스로 옳다고 여기다.

 

2. 沛公至高陽傳舍, 使人召酈生. 酈生至, 入謁, 沛公方倨床使兩女子洗足, 而見酈生. 酈生入, 則長揖不拜, 曰: “足下欲助秦攻諸侯乎? 且欲率諸侯破秦也?” 沛公罵曰: “豎儒! 夫天下同苦秦久矣, 故諸侯相率而攻秦, 何謂助秦攻諸侯乎?” 酈生曰: “必聚徒合義兵誅無道秦, 不宜倨見長者.” 於是沛公輟洗, 起攝衣, 延酈生上坐, 謝之. 酈生因言六國從橫時. 沛公喜, 賜酈生食, 問曰: “計將安出?” 酈生曰: “足下起糾合之衆, 收散亂之兵, 不滿萬人, 欲以徑入強秦, 此所謂探虎口者也. 夫陳留, 天下之衝, 四通五達之郊也, 今其城又多積粟. 臣善其令, 請得使之, 令下足下. 卽不聽, 足下擧兵攻之, 臣爲內應.” 於是遣酈生行, 沛公引兵隨之, 遂下陳留. 號酈食其爲廣野君. 酈生言其弟酈商, 使將數千人從沛公西南略地. 酈生常爲說客, 馳使諸侯.

2. 패공이(沛公) 고양 전사에 이르자(至高陽傳舍), 사람을 시켜(使人) 역생을 불렀다(召酈生). 역생이 이르러(酈生至), 들어가 알현할 때(入謁), 패공은(沛公) 막(方) 평상에 걸터앉아(倨床) 두 여자로 하여금(使兩女子) 발을 씻기도록 하다가(洗足, 而) 역생을 보았다(見酈生).

역생이 들어가서(酈生入, 則) 길게 읍하고(長揖) 절하지 않고 말하길(不拜, 曰): “그대는(足下)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하려는가(欲助秦攻諸侯乎)? 아니면(且) 제후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가(欲率諸侯破秦也)?”라고 했다.

패공이 꾸짖어 말하길(沛公罵曰): “유생 놈이(豎儒)! 무릇(夫) 천하가(天下) 모두 진나라에 고통받은 것이(同苦秦) 오래되었고(久矣), 그러므로(故) 제후가(諸侯) 서로 이끌어(相率而) 진나라를 공격하는데(攻秦), 어찌(何)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한다고 말하는가(謂助秦攻諸侯乎)?”라고 했다.

역생이 말하길(酈生曰): “반드시(必) 무리를 모아(聚徒) 의병을 합쳐서(合義兵) 무도한 진나라를 없애려고 한다면(誅無道秦), 마땅히 거만하게 장자를 만나면 안 됩니다(不宜倨見長者).”라고 했다.

이에(於是) 패공이(沛公) 씻던 것을 그만두고(輟洗), 일어나(起) 옷을 여미고(攝衣), 역생을 끌어(延酈生) 윗자리에 앉히고(上坐), 사과했다(謝之). 역생은(酈生) 이에(因) 여섯 나라의 합종연횡하던 때를 말했다(言六國從橫時).

패공이 기뻐하며(沛公喜), 역생에게 먹을 것을 주고(賜酈生食), 묻기를(問曰): “계책이(計) 장차(將) 어디로 가는가(安出)?”라고 했다.

역생이 말하길(酈生曰): “그대가(足下) 일어나(起) 무리를 모으고(糾合之衆), 흩어진 병사를 거두어도(收散亂之兵), 만 명을 채우지 못했는데(不滿萬人), 이것으로 강한 진나라에 빨리 들어가려는 것은(欲以徑入強秦), 이것은(此) 이른바(所謂) 호랑이 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探虎口者也). 무릇 진류는(夫陳留), 천하의 요충이고(天下之衝), 사방으로 통하는(四通五達之) 길목이고(郊也), 지금(今) 그 성에(其城) 또(又) 쌓인 곡식이 많습니다(多積粟). 제가(臣) 그 현령과 잘 사귀었으니(善其令), 청컨대(請) 그에게 사신으로 가면(得使之), 그대에게 항복하도록 하겠습니다(令下足下).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卽不聽), 그대가(足下) 군사를 일으켜(擧兵) 그를 공격하고(攻之), 제가(臣) 안에서 응하겠습니다(爲內應).”라고 했다.

이에(於是) 역생을 보내 가도록 하고(遣酈生行), 패공이(沛公) 군사를 이끌고 그를 따라가서(引兵隨之), 마침내(遂) 진류를 함락시켰다(下陳留). 역이기를 광야군이라 불렀다(號酈食其爲廣野君). 역생이(酈生) 그 동생 역상을 말해서(言其弟酈商), 수천 명을 이끌고(使將數千人) 패공을 따라(從沛公) 서남쪽으로 가서(西南) 땅을 얻도록 했다(略地). 역생이(酈生) 늘(常) 세객이 되어(爲說客), 제후에게 사신으로 뛰어다녔다(馳使諸侯).

 

* 傳舍(전사): 일정(一定)한 돈을 받고 손님을 묵게 하는 집.

 

3. 漢三年秋, 項羽擊漢, 拔滎陽, 漢兵遁保鞏ㆍ洛. 楚人聞淮陰侯破趙, 彭越數反梁地, 則分兵救之. 淮陰方東擊齊, 漢王數困滎陽ㆍ成皐, 計欲捐成皐以東, 屯鞏ㆍ洛以拒楚. 酈生因曰: “臣聞知天之天者, 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 王事不可成. 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夫敖倉, 天下転輸久矣, 臣聞其下迺有藏粟甚多, 楚人拔滎陽, 不堅守敖倉, 迺引而東, 令適卒分守成皐, 此乃天所以資漢也. 方今楚易取而漢反郤, 自奪其便, 臣竊以爲過矣. 且兩雄不俱立, 楚漢久相持不決, 百姓騒動, 海內搖蕩, 農夫釋耒, 工女下機, 天下之心未有所定也. 願足下急複進兵, 收取滎陽, 據敖倉之粟, 塞成皐之險, 杜大行之道, 距蜚狐之口, 守白馬之津, 以示諸侯效實形制之勢, 則天下知所歸矣. 方今燕ㆍ趙已定, 唯齊未下. 

3. 한나라 3년 가을에(漢三年秋), 항우가(項羽) 한을 공격해서(擊漢), 형양을 함락시키자(拔滎陽), 한나라 군사가(漢兵) 공현과 낙양현에 주둔해서 지켰다(遁保鞏ㆍ洛). 초나라는(楚人) 회음후가 조나라를 깨뜨리고(聞淮陰侯破趙), 팽월이 여러 번 양나라 땅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듣고(彭越數反梁地, 則) 군사를 나누어(分兵) 구원했다(救之). 회음후가(淮陰) 막(方) 동쪽으로(東) 제나라를 공격할 때(擊齊), 한왕은(漢王) 형양과 성고에서 여러 번 곤궁에 처했고(數困滎陽ㆍ成皐), 계책을 세워(計) 성고 동쪽을 버리고(欲捐成皐以東), 공현과 낙양현에 주둔하며(屯鞏ㆍ洛以) 초나라를 막으려 했다(拒楚).

역생이 말하길(酈生因曰): “신이 듣기로(臣聞) 하늘이 하늘이 된 것을 아는 사람은(知天之天者), 왕의 일을 이룰 수 있고(王事可成): 하늘이 하늘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不知天之天者), 왕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王事不可成). 왕은(王者) 백성을(以民人) 하늘로 삼고(爲天, 而) 백성은(民人) 먹을 것을(以食) 하늘로 삼습니다(爲天). 오창은(夫敖倉), 천하에서 <곡식을> 실어온 것이(天下転輸) 오래되었고(久矣), 제가 듣기로(臣聞) 그 아래에(其下迺) 곡식을 보관한 것이(有藏粟) 매우 많으니(甚多), 초나라가(楚人) 형양을 함락시키고(拔滎陽),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있으며(不堅守敖倉), 오히려(迺) <군사를> 이끌고(引而) 동쪽으로 가서(東), 적졸로 하여금(令適卒) 성고를 나눠 지키도록 했으니(分守成皐), 이것은 곧(此乃) 하늘이(天) 한나라를 돕는 것입니다(所以資漢也). 바야흐로 지금(方今) 초나라가(楚) 쉽게 취해지는데(易取而) 한나라가 도리어 물러나는 것은(漢反郤), 그 이익을 스스로 빼앗기는 것이니(自奪其便), 신은(臣) 참으로(竊)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以爲過矣). 또(且) 두 영웅은(兩雄) 함께 설 수 없으니(不俱立), 초나라와 한나라가(楚漢) 오래 서로 맞서고(久相持) 결판이 나지 않으면(不決), 백성은(百姓) 동요하고(騒動), 해내는 요동칠 것이니(海內搖蕩), 농부는 쟁기를 놓고(農夫釋耒), 여공은 베틀에서 내려와(工女下機), 천하의 민심에(天下之心) 안정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未有所定也). 원컨대(願) 그대가(足下) 급히 다시(急複) 군사를 나아가도록 해서(進兵), 형양을 취하고(收取滎陽), 오창의 곡식을 근거로 삼고(據敖倉之粟), 성고의 험한 지형으로 막고(塞成皐之險), 태행산의 길목을 끊고(杜大行之道), 비호 입구를 가로막고(距蜚狐之口), 백마 나루터를 지켜서(守白馬之津, 以) 제후에게 실력을 밝히고 형세를 제어하는 세를 보여준다면(示諸侯效實形制之勢, 則) 천하가(天下) 돌아갈 곳을 알 것입니다(知所歸矣). 막(方今) 연나라와 조나라가 이미 안정되었고(燕ㆍ趙已定), 오직(唯) 제나라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齊未下). 

 

* 敖倉(오창): 진(秦)나라 때 오산(敖山:現 河南省 滎陽 북쪽)에 설치했던 곡식 창고인데 뒤에는 창고의 범칭으로 쓰였다.

* 適卒(적졸): 죄로 인하여 변방(邊方)에 수자리 보낸 군사. 適은 謫과 통하여 귀양가다란 뜻이다.

 

4. 今田廣據千里之齊, 田閒將二十萬之衆, 軍於歷城, 諸田宗彊, 負海阻河濟, 南近楚, 人多變詐, 足下雖遣數十萬師, 未可以歲月破也. 臣請得奉明詔說齊王, 使爲漢而稱東藩.” 上曰: “善.” 迺從其畫, 複守敖倉, 而使酈生說齊王曰: “王知天下之所歸乎?” 王曰: “不知也.” 曰: “王知天下之所歸, 則齊國可得而有也: 若不知天下之所歸, 卽齊國未可得保也.” 齊王曰: “天下何所歸?” 曰: “歸漢.” 曰: “先生何以言之?” 曰: “漢王與項王戮力西面擊秦, 約先入鹹陽者王之. 漢王先入鹹陽, 項王負約不與而王之漢中. 項王遷殺義帝, 漢王聞之, 起蜀漢之兵擊三秦, 出關而責義帝之處, 收天下之兵, 立諸侯之後. 降城卽以侯其將, 得賂卽以分其士, 與天下同其利, 豪英賢才皆樂爲之用. 諸侯之兵四面而至, 蜀漢之粟方船而下.

4. 지금(今) 전광이(田廣) 천리나 되는 제나라를 차지하고(據千里之齊), 전간이(田閒) 20만 무리를 이끌고(將二十萬之衆), 역성에 주둔하고 있으며(軍於歷城), 여러 전씨 일족이(諸田宗) 강성하고(彊), 바다를 등지고(負海) 하수와 제수로 앞을 막고(阻河濟), 남으로 초나라와 가깝고(南近楚), 사람들에게(人) 권모술수가 많으니(多變詐), 그대가(足下) 비록(雖) 수십만 군대를 보내더라도(遣數十萬師), 짧은 시간에 깨뜨릴 수 없습니다(未可以歲月破也). 신이 청컨대(臣請) 밝은 조칙을 받들어(得奉明詔) 제왕을 설득하고(說齊王), 한나라를 위해(爲漢而) 동쪽 속국을 칭하도록 하겠습니다(使稱東藩).”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迺) 그 계획에 따라(從其畫), 다시(複) 오창을 지키고(守敖倉, 而) 역생으로 하여금(使酈生) 제왕에게 설득해 말하길(說齊王曰): “왕께서(王) 천하가 어디로 갈지(天下之所歸) 아십니까(乎)?”라고 했다.

왕이 말하길(王曰): “알지 못한다(不知也).”라고 했다.

말하길(曰): “왕께서(王) 천하가 갈 곳을 안다면(知天下之所歸, 則) 제나를 얻어(齊國可得而) 가질 수 있지만(有也): 천하가 갈 곳을 알지 못한다면(若不知天下之所歸), 제나라를 얻어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卽齊國未可得保也).”라고 했다.

제왕이 말하길(齊王曰): “천하가(天下) 어디로 돌아가겠는가(何所歸)?”라고 했다.

말하길(曰): “한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歸漢).”라고 했다.

말하길(曰): “선생은(先生) 무엇 때문에(何以) 그것을 말하는가(言之)?”라고 했다.

말하길(曰): “한왕과 항왕은(漢王與項王) 힘을 합쳐(戮力) 서쪽으로(西面) 진나라를 공격하고(擊秦), 먼저 함양에 들어가 사람이(先入鹹陽者) 왕노릇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王之). 한왕이(漢王) 함양에 먼저 들어갔지만(先入鹹陽), 항왕이(項王) 약속을 등지고(負約) 주지 않고(不與而) 왕이(王) 한중으로 갔습니다(之漢中). 항왕이(項王) 의제를 옮겨 죽였고(遷殺義帝), 한왕이 그것을 듣고(漢王聞之), 촉한의 병사를 일으켜(起蜀漢之兵) 삼진을 공격했고(擊三秦), 관을 나와(出關而) 의제의 처리에 대해 책임을 묻고(責義帝之處), 천하의 병사를 거두어(收天下之兵), 제후의 후손을 세웠습니다(立諸侯之後). 성을 항복시키면(降城卽以) 그 장수를 제후로 삼고(侯其將), 재물을 얻으면(得賂卽以) 그 사졸에게 나눠주고(分其士), 천하와 함께(與天下) 그 이익을 같이하고(同其利), 호걸과 영웅, 현인, 재사가(豪英賢才) 모두(皆) 즐겁게(樂) 쓰이려고 합니다(爲之用). 제후의 병사가(諸侯之兵) 사방에서(四面而) 이르러(至), 촉한의 곡식이(蜀漢之粟) 배에 실려(方船而) 내려옵니다(下).

 

* 形制(형제): 形勝과 같다. 형세의 좋음을 얻는 것. 지형이 험고하기 때문에 적을 이길 수 있으니, 지형을 따라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5. 項王有倍約之名, 殺義帝之負: 於人之功無所記, 於人之罪無所忘: 戰勝而不得其賞, 拔城而不得其封: 非項氏莫得用事: 爲人刻印, 刓而不能授: 攻城得賂, 積而不能賞: 天下畔之, 賢才怨之, 而莫爲之用. 故天下之士歸於漢王, 可坐而策也. 夫漢王發蜀漢, 定三秦: 涉西河之外, 援上黨之兵: 下井陘, 誅成安君: 破北魏, 擧三十二城: 此蚩尤之兵也, 非人之力也, 天之福也. 今已據敖倉之粟, 塞成皐之險, 守白馬之津, 杜大行之阪, 距蜚狐之口, 天下後服者先亡矣. 王疾先下漢王, 齊國社稷可得而保也: 不下漢王, 危亡可立而待也.” 田廣以爲然, 迺聽酈生, 罷歷下兵守戰備, 與酈生日縱酒.

5. 항왕에게는(項王) 약속을 어긴 오명과(有倍約之名), 의제를 죽인 저버림이 있고(殺義帝之負): 사람들의 공에(於人之功) 기억하는 것이 없고(無所記), 사람들의 죄에(於人之罪) 잊는 것이 없으니(無所忘): 싸움에서 이기고(戰勝而) 그 상을 얻지 못하고(不得其賞), 성을 함락시키고(拔城而) 그 봉함을 얻지 못하고(不得其封): 항씨가 아니면(非項氏) 누구도 쓰이지 못하고(莫得用事): 남을 위해(爲人) 인수를 새기고도(刻印), 닳아 없어져도(刓而) 주지 못하고(不能授): 성을 공격해서(攻城) 재물을 얻어도(得賂), 쌓아두고(積而) 상으로 주지 못하니(不能賞): 천하가 그를 배반하고(天下畔之), 현자와 재사가 그를 원망해서(賢才怨之, 而) 누구도 그에게 쓰이지 않습니다(莫爲之用). 그러므로(故) 천하의 사가(天下之士) 한왕에게 돌아갔고(歸於漢王), 앉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可坐而策也). 한왕이(夫漢王) 촉한에서 <군사를> 징발하고(發蜀漢), 삼진을 평정하고(定三秦): 서하의 바깥을 건너(涉西河之外), 상당의 군사를 모아(援上黨之兵): 정형으로 내려와서(下井陘), 성안군을 죽이고(誅成安君): 북위를 깨뜨려(破北魏), 32개 성을 함락시켰으니(擧三十二城): 이것은(此) 치우의 군대와 같고(蚩尤之兵也), 사람의 힘이 아니며(非人之力也), 하늘의 복입니다(天之福也). 지금(今已)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고(據敖倉之粟), 성고의 험한 지형으로 막고(塞成皐之險), 백마 나루터를 지키고(守白馬之津), 태행산의 길목을 막고(杜大行之阪), 비호 어귀를 가로막아(距蜚狐之口), 천하에서(天下) 늦게 항복하는 사람은(後服者) 먼저 망할 것입니다(先亡矣). 왕께서(王) 한왕에게 빨리 먼저 항복하면(疾先下漢王), 제나라의 사직을(齊國社稷) 얻어 보전할 수 있고(可得而保也): 한왕에게 항복하지 않으면(不下漢王), 망하는 것을(危亡) 서서 기다릴 것입니다(可立而待也).”라고 했다.

전광이(田廣) 그럴듯하다고 여기고(以爲然), 이에(迺) 역생의 말을 듣고(聽酈生), 역하의 수비 군사를 풀고(罷歷下兵守戰備), 역생과(與酈生) 종일(日) 술을 마셨다(縱酒).

 

* 刓(완): 모서리가 닳는 것이다. 봉작(封爵)하는 인장(印章)을 비록 이미 새겨 놓았으나 손으로 만지작거려 모서리가 닳아도 차마 주지 못한 것이다. 刓은 玩과 통한다.

* 坐而策(좌이책): 앉아서도 따져볼 수 있다.

 

6. 淮陰侯聞酈生伏軾下齊七十餘城, 迺夜度兵平原襲齊. 齊王田廣聞漢兵至, 以爲酈生賣己, 迺曰: “汝能止漢軍, 我活汝: 不然, 我將亨汝!” 酈生曰: “擧大事不細謹, 盛德不辭讓. 而公不爲若更言!” 齊王遂亨酈生, 引兵東走. 漢十二年, 曲周侯酈商以丞相將兵擊黥布有功. 高祖擧列侯功臣, 思酈食其. 酈食其子疥數將兵, 功未當侯, 上以其父故, 封疥爲高梁侯. 後更食武遂, 嗣三世. 元狩元年中, 武遂侯平坐詐詔衡山王取百斤金, 當棄市, 病死, 國除也.

6. 회음후는(淮陰侯) 역생이(酈生) 수레에 기댄 채로(伏軾) 제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켰다는 것을 듣고(下齊七十餘城), 이에(迺) 밤에(夜) 군사들이 평원을 건너도록 해서(度兵平原) 제나라를 공격했다(襲齊). 제왕 전광은(齊王田廣) 한나라 군사가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聞漢兵至), 역생이 자기를 팔았다 여기고(以爲酈生賣己),

말하길(迺曰): “네가(汝) 한나라 군사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能止漢軍),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고(我活汝): 그렇지 않다면(不然), 내가 너를 삶아 죽일 것이다(我將亨汝)!”라고 했다.

역생이 말하길(酈生曰): “대사를 행하는 사람은(擧大事) 작은 것을 신경쓰지 않고(T不細謹), 덕이 가득한 사람은(盛德) 비난을 돌아보지 않습니다(不辭讓). 그러므로(而) 공은(公) 나를 위해(不爲若) 말을 바꾸지 말라(更言)!”라고 했다.

제왕이(齊王) 마침내(遂) 역생을 삶아 죽이고(亨酈生), 병사를 이끌고 동으로 달아났다(引兵東走). 한나라 12년에(漢十二年), 곡주후 역상이(曲周侯酈商) 승상으로(以丞相) 군사를 이끌고(將兵) 경포를 습격해(擊黥布) 공이 있었다(有功). 고조가(高祖) 열후와 공신을 열거할 때(擧列侯功臣), 역이기를 생각했다(思酈食其). 역이기의 아들(酈食其子) 역개는(疥) 자주(數) 군사를 이끌었지만(將兵), 공이(功) 후에 해당하지 못했지만(未當侯), 황제가(上) 그 아버지 때문에(以其父故), 역개를 봉하고(封疥) 고량후로 삼았다(爲高梁侯). 뒤에(後) 다시(更) 무수를 식읍으로 주었고(食武遂), 삼대를 이었다(嗣三世). 원수 원년에(元狩元年中), 무수후 평이(武遂侯平) 거짓 조서로(詐詔) 형산왕에게 금 백 근을 취한 죄로(衡山王取百斤金), 기시를 당했고(當棄市), 병으로 죽어(病死), 나라가 없어졌다(國除也).

 

* 伏軾(복식): 수레에 기댐. 伏은 기대는 것이고, 軾은 수레 앞턱의 횡목.

* 細謹(세근): 사소(些少)한 일을 삼감.

 

육가(陸賈)
7.  陸賈者, 楚人也. 以客從高祖定天下, 名爲有口辯士, 居左右, 常使諸侯. 及高祖時, 中國初定, 尉他平南越, 因王之. 高祖使陸賈賜尉他印爲南越王. 陸生至, 尉他魋結箕倨見陸生. 陸生因進說他曰: “足下中國人, 親戚昆弟墳在眞定. 今足下反天性, 棄冠帶, 欲以區區之越與天子抗衡爲敵國, 禍且及身矣. 且夫秦失其政, 諸侯豪桀竝起, 唯漢王先入關, 據鹹陽. 項羽倍約, 自立爲西楚霸王, 諸侯皆屬, 可謂至彊. 然漢王起巴蜀, 鞭笞天下, 劫略諸侯, 遂誅項羽滅之.

7.  육가는 초나라 사람이다(陸賈者, 楚人也). 빈객으로(以客) 고조를 따라(從高祖) 천하를 안정시키고(定天下), 명성이(名) 말재주가 있는 변사로 이름났고(爲有口辯士), 곁에 머물면서(居左右), 늘(常) 제후에게 사신으로 갔다(使諸侯). 고조 때에 이르러(及高祖時), 중국이 처음 안정되고(中國初定), 위타가(尉他) 남월을 평정해서(平南越), 이에(因)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王之). 고조가(高祖) 육가로 하여금(使陸賈) 위타에게 인수를 주어(賜尉他印) 남월왕으로 삼았다(爲南越王). 육생이 이르자(陸生至), 위타가(尉他) 상투를 틀고(魋結) 다리를 벌리고 앉아(箕倨) 육생을 만났다(見陸生).

육생이(陸生) 이에(因) 나아가 위타를 설득하길(進說他曰): “그대는(足下) 중국 사람이고(中國人), 친척과 형제의 묘가(親戚昆弟墳) 진정에 있다(在眞定). 지금(今) 그대가(足下) 천성에 반대로 하고(反天性), 관대를 버리고(棄冠帶), 보잘것없는 월나라로(欲以區區之越) 천자와(與天子) 맞서(抗衡) 적국이 되려고 하니(爲敵國), 화가 또(禍且) 몸에 이를 것이다(及身矣). 또(且) 진나라가(夫秦) 그 정치에 실패해서(失其政), 제후와 호걸이(諸侯豪桀) 함께 일어섰고(竝起), 오직(唯) 한왕이(漢王) 먼저 관에 들어가서(先入關), 함양을 차지했다(據鹹陽). 항우가 약속을 어기고(項羽倍約), 스스로 즉위해서(自立) 서초패왕이 되어(爲西楚霸王), 제후가 모두 속했으니(諸侯皆屬), 매우 강하다고 할만하다(可謂至彊). 그러나(然) 한왕이(漢王) 파촉에서 일어나(起巴蜀), 천하를 채찍질하고(鞭笞天下), 제후를 위협하여 공략하고(劫略諸侯), 마침내(遂) 항우를 죽이고(誅項羽) 없앴다(滅之).

 

* 箕倨(기거): 두 다리를 뻗어 키(箕) 모양으로 하다. 즉, 무례한 자세를 말한다.

* 區區(구구): 떳떳하지 못하고 구차()스러움, 떳떳하지 못하고 구차()스러움.

* 抗衡(항형): 서로 지지 않고 대항()함.

 

8. 五年之閒, 海內平定, 此非人力, 天之所建也. 天子聞君王王南越, 不助天下誅暴逆, 將相欲移兵而誅王, 天子憐百姓新勞苦, 故且休之, 遣臣授君王印, 剖符通使. 君王宜郊迎, 北面稱臣, 迺欲以新造未集之越, 屈彊於此. 漢誠聞之, 掘燒王先人塚, 夷滅宗族, 使一偏將將十萬衆臨越, 則越殺王降漢, 如反覆手耳.” 於是尉他迺蹶然起坐, 謝陸生曰: “居蠻夷中久, 殊失禮義.” 因問陸生曰: “我孰與蕭何ㆍ曹參ㆍ韓信賢?” 陸生曰: “王似賢.” 複曰: “我孰與皇帝賢?” 陸生曰: “皇帝起豊沛, 討暴秦, 誅彊楚, 爲天下興利除害, 繼五帝三王之業, 統理中國. 中國之人以億計, 地方萬里, 居天下之膏腴, 人衆車轝, 萬物殷富, 政由一家, 自天地剖泮未始有也. 今王衆不過數十萬, 皆蠻夷, 崎嶇山海閒, 譬若漢一郡, 王何乃比於漢!”

8. 5년 사이에(五年之閒), 해내가 평정되었으니(海內平定), 이것은(此) 사람의 힘이 아니고(非人力), 하늘이(天之) 세운 것이다(所建也). 천자가(天子) 군왕이(君王) 남월에서 왕 노릇하면서(王南越), 천하를 도와(助天下) 폭도와 반역자를 죽이지 않아서(誅暴逆), 장군과 재상이(將相) 병사를 옮겨 왕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欲移兵而誅王) 듣고(聞), 천자께서(天子) 백성이 또 고생하는 것을 가엾게 여겼고(憐百姓新勞苦), 그러므로(故) 또 그것을 그만두도록 하고(且休之), 신을 보내(遣臣) 군왕의인수를 주고(授君王印), 부절을 나누어(剖符) 사신을 통하게 하려고 했다(通使). 군왕은(君王) 마땅히(宜) 교외에서 맞이하고(郊迎), 북면하고(北面) 신을 칭해야 하는데(稱臣), 도리어(迺) 새로이 세워져 모이지 않은 월나라로(以新造未集之越), 이곳에서 강하게 버티려고 한다(屈彊於此). 한나라(漢) 참으로(誠) 이것을 듣는다면(聞之), 왕의 조상 묘를 파혜쳐 불사르고(掘燒王先人塚), 일족을 죽이고(夷滅宗族), 편장군 한 명을 시켜(使一偏將) 10만 무리를 이끌고(將十萬衆) 월나라에 이르면(臨越, 則) 월나라 사람들이(越) 왕을 죽이고(殺王) 한나라에 항복하는 것은(降漢),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뿐이다(如反覆手耳).”라고 했다.

이에(於是) 위타가(尉他迺) 벌떡 일어나(蹶然起) 앉으며(坐), 육생에게 사죄하며 말하길(謝陸生曰): “오랑캐 땅에 머문 것이(居蠻夷中) 오래되어(久), 단지(殊) 예의를 잃었을 뿐이다(失禮義).”라고 했다.

이에(因) 육생에게 묻기를(問陸生曰): “나는(我) 소하와 조참, 산힌과 비교해서(與蕭何ㆍ曹參ㆍ韓信) 누가 더 현명한가(賢)?”라고 했다.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왕께서 현명한듯 합니다(王似賢).”라고 했다.

다시 말하길(複曰): “나는 황제와 비교해서 누가 더 현명한가(我孰與皇帝賢)?”라고 했다.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황제는(皇帝) 풍패에서 일어나(起豊沛), 포악한 진나라를 토벌하고(討暴秦), 강한 초나라를 없애고(誅彊楚), 천하를 위해(爲天下) 이익을 일으키고(興利) 해악을 없애고(除害), 황제와 삼왕의 업적을 이어(繼五帝三王之業), 중국을 통일해서 다스린다(統理中國). 중국의 사람은(中國之人) 억으로 헤아리고(以億計), 지방은(地方) 만리에 이르고(萬里), 천하의 비옥한 곳에 머물며(居天下之膏腴), 사람은 많고(人衆) 수레가 많으며(車轝), 만물이 넉넉하고(萬物殷富), 정치는(政) 일가에서 나오니(由一家), 천지가 생겨난 때부터(自天地剖泮) 일찍이 있지 않은 일이다(未始有也). 지금(今) 왕의 무리는(王衆) 수십 만을 넘지 못하고(不過數十萬), 모두(皆) 오랑캐로(蠻夷), 험한 산과 바다 사이에 있으니(崎嶇山海閒), 비유하자면(譬若) 한나라의 한 군과 같으니(漢一郡), 왕께서(王) 어찌(何乃) 한나라에 비교하겠는가(比於漢)!”라고 했다.

 

* 夷滅(이멸): 멸하다.

* 蹶然(궐연): 갑자기 뛰어 일어남. 벌떡 일어남.

* 殷富(은부): 넉넉하고 풍성()함.

* 天地剖泮(천지부반): 천지개벽.

 

9. 尉他大笑曰: “吾不起中國, 故王此. 使我居中國, 何渠不若漢?” 迺大說陸生, 留與飮數月. 曰: “越中無足與語, 至生來, 令我日聞所不聞.” 賜陸生橐中裝直千金, 他送亦千金. 陸生卒拜尉他爲南越王, 令稱臣奉漢約. 歸報, 高祖大悅, 拜賈爲太中大夫. 陸生時時前說稱詩書. 高帝罵之曰: “迺公居馬上而得之, 安事詩書!” 陸生曰: “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 且湯武逆取而以順守之, 文武竝用, 長久之術也. 昔者吳王夫差ㆍ智伯極武而亡: 秦任刑法不變, 卒滅趙氏. 鄕使秦已竝天下, 行仁義, 法先聖, 陛下安得而有之?” 高帝不懌而有慚色, 迺謂陸生曰: “試爲我著秦所以失天下, 吾所以得之者何, 及古成敗之國.” 陸生迺粗述存亡之徴, 凡著十二篇. 每奏一篇, 高帝未嘗不稱善, 左右呼萬歲, 號其書曰: “新語”.

9. 위타가(尉他) 크게 웃으며 말하길(大笑曰): “나는(吾)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고(不起中國), 그러므로 이곳에서 왕 노릇했다(故王此). 만약(使) 내가 중국에 있었다면(我居中國), 어찌(何渠) 한나라보다 못하겠는가(不若漢)?”라고 했다.

이에(迺) 육생을 크게 기뻐하며(大說陸生), 머물며(留) 함께 술 마신 것이(與飮) 몇 달이 지났다(數月). 말하길(曰): “월나라에(越中) 더불어 말할만한 사람이 없었는데(無足與語), 그대가 오니(至生來), 나로 하여금(令我) 듣지 못한 것을(所不聞) 매일 듣도록 해주는구나(日聞).”라고 했다.

육생에게 자루에 천금 값어치를 넣어 주고(賜陸生橐中裝直千金), 위타가 보낸 것이(他送) 또한(亦) 천금이었다(千金). 육생이(陸生) 마침내(卒) 위타에게 벼슬을 주고(拜尉他) 남월왕으로 삼고(爲南越王), 신하를 칭하며 한나라를 섬기는 약속을 하도록 했다(令稱臣奉漢約). 돌아와 보고하자(歸報), 고조가 크게 기뻐하며(高祖大悅), 육가에게 벼슬을 내려(拜賈) 태중대부로 삼았다(爲太中大夫). 육생이(陸生) 때때로(時時) 앞에서 이야기하며(前說) 시와 서를 말했다(稱詩書).

고조가 꾸짖어 말하길(高帝罵之曰): “나는(迺公) 말 위에 있으면서(居馬上而) 천하를 얻었는데(得之), 어찌(安) 시와 서를 일삼겠는가(事詩書)!”라고 했다.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말 위에서 얻었지만(居馬上得之), 어찌(寧)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을까요(可以馬上治之乎)? 또(且) 탕왕과 무왕은(湯武) 거슬러 얻었지만(逆取而) 순응함으로(以順) 지켰으니(守之), 문과 무를 함께 쓰는 것이(文武竝用), 오래가는 방법입니다(長久之術也). 옛날(昔者) 오왕 부차와 지백은(吳王夫差ㆍ智伯) 무를 지극히 해서 망했고(極武而亡): 진나라가 형법에 의지해서(秦任刑法) 바꾸지 않다가(不變), 마침내(卒) 조씨를 망쳤습니다(滅趙氏). 만약(鄕使)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고 나서(秦已竝天下), 인의를 행하고(行仁義), 선성을 본받았다면(法先聖), 폐하께서(陛下) 어찌 얻어서(安得而) 가졌을까요(有之)?”라고 했다.

고제가(高帝) 기뻐하지 않으며(不懌而) 부끄러운 기색이 있었고(有慚色), 육생에게 말하길(迺謂陸生曰): “시험삼아(試) 나를 위해(爲我)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것과(秦所以失天下),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이 어떠한지와(吾所以得之者何, 及) 옛날 성공하고 실패한 나라에 대해(古成敗之國) 글을 써라(著).”라고 했다.

육생이(陸生) 이에(迺) 존망의 징조를 대략 쓰니(粗述存亡之徴), 모두(凡) 12편을 지었다(著十二篇). 한 편을 올릴 때마다(每奏一篇), 고제가(高帝) 좋다고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고(未嘗不稱善), 좌우가(左右) 만세를 불렀는데(呼萬歲), 그 책을 부르기를(號其書) 신어라고 했다(曰: “新語”).

 

10. 孝惠帝時, 呂太後用事, 欲王諸呂, 畏大臣有口者, 陸生自度不能爭之, 迺病免家居. 以好畤田地善, 可以家焉. 有五男, 迺出所使越得橐中裝賣千金, 分其子, 子二百金, 令爲生産. 陸生常安車駟馬, 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 寶劍直百金, 謂其子曰: “與汝約: 過汝, 汝給吾人馬酒食, 極欲, 十日而更. 所死家, 得寶劍車騎侍從者. 一歲中往來過他客, 率不過再三過, 數見不鮮, 無久慁公爲也.” 呂太後時, 王諸呂, 諸呂擅權, 欲劫少主, 危劉氏. 右丞相陳平患之, 力不能爭, 恐禍及己, 常燕居深念. 陸生往請, 直入坐, 而陳丞相方深念, 不時見陸生. 陸生曰: “何念之深也?” 陳平曰: “生揣我何念?” 陸生曰: “足下位爲上相, 食三萬戸侯, 可謂極富貴無欲矣. 然有憂念, 不過患諸呂ㆍ少主耳.”

10. 효혜제 때(孝惠帝時), 여태후가(呂太後) 정권을 잡고(用事), 여러 여씨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는데(欲王諸呂), 대신에게 입이 있는 것을 두려워했고(畏大臣有口者), 육생은(陸生) 그와 싸울 없다는 것을(不能爭之) 스스로 헤아려(自度), 이에(迺)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病免) 집에 머물렀다(家居). 호치현의 땅이 좋았기 때문에(以好畤田地善), 그것에 살 수 있었다(可以家焉).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有五男), 월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얻은 자루에 있는 것을 꺼내(迺出所使越得橐中裝) 팔아서(賣) 천금을 만들어(千金), 그 아들에게 나눠주니(分其子), 각 자식에게(子) 200금을 주고(二百金), 생계를 꾸리도록 했다(令爲生産). 육생은(陸生) 늘(常)  말 네 마리가 끄는 안거를 타고(安車駟馬), 노래하고 춤추고, 비파타는 시종 열 명을 따르게 하고(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 100금의 가치가 있는 보검을 차고(寶劍直百金),

아들에게 말하길(謂其子曰): “너희들과 약속하니(與汝約): 너희에게 가면(過汝), 너희는(汝) 나의 인마에게 술과 음식을 주고(給吾人馬酒食), 지극히 즐기다가(極欲), 10일이 되면(十日而) 옮길 것이다(更). 죽은 집에(所死家), 보검과 마차, 말과 시종을 갖도록 해라(得寶劍車騎侍從者). 1년 동안(一歲中) 오가며(往來) 다른 객으로 지나며(過他客), 대략(率) 두세 번을 넘지 않을 것이고(不過再三過), 자주 보는 것은(數見) 좋지 않고(不鮮), 오래되어 근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無久慁公爲也).”라고 했다.

여태후 때(呂太後時), 여러 여씨가 왕이 되었고(王諸呂), 여러 여씨가(諸呂) 권력을 농단해서(擅權), 어린 황제를 겁주고 유씨를 위태롭게 하려고 했다(欲劫少主, 危劉氏). 우승상 진평이(右丞相陳平) 걱정했지만(患之), 힘으로(力) 싸울 수 없었고(不能爭),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걱정하며(恐禍及己), 늘(常) 조용히 있으며(燕居) 깊이 생각했다(深念). 육생이(陸生) 가서 청하며(往請), 바로 들어가 앉았지만(直入坐, 而) 진승상은(陳丞相) 막(方) 깊이 생각하면서(深念), 육생을 보지 못했다(不時見陸生).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무슨 생각이(何念之) 깊은가요(深也)?”라고 했다.

진평이 말하길(陳平曰): “그대는(生)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我何念) 맞출 수 있겠는가(揣)?”라고 했다.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그대의지위가(足下位) 우승상이고(爲上相), 3만호의 식읍을 가진 후이니(食三萬戸侯), 부귀에 욕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있습니다(可謂極富貴無欲矣). 그러나(然) 걱정스런 생각이 있다면(有憂念), 여러 여씨와 어린 황제를 걱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不過患諸呂ㆍ少主耳).”라고 했다.

 

11. 陳平曰: “然. 爲之奈何?” 陸生曰: “天下安, 注意相: 天下危, 注意將. 將相和調, 則士務附: 士務附, 天下雖有變, 卽權不分. 爲社稷計, 在兩君掌握耳. 臣常欲謂太尉絳侯, 絳侯與我戲, 易吾言. 君何不交驩太尉, 深相結?” 爲陳平畫呂氏數事. 陳平用其計, 迺以五百金爲絳侯壽, 厚具樂飮: 太尉亦報如之. 此兩人深相結, 則呂氏謀益衰. 陳平迺以奴婢百人, 車馬五十乘, 錢五百萬, 遺陸生爲飮食費. 陸生以此遊漢廷公卿閒, 名聲藉甚. 及誅諸呂, 立孝文帝, 陸生頗有力焉. 孝文帝卽位, 欲使人之南越. 陳丞相等乃言陸生爲太中大夫, 往使尉他, 令尉他去黃屋稱制, 令比諸侯, 皆如意旨. 語在南越語中. 陸生竟以壽終.

11. 진평이 말하길(陳平曰): “그렇다(然). 어찌해야 하는가(爲之奈何)?”라고 했다.

육생이 말하길(陸生曰): “천하가 안정되면(天下安), 승상에게 관심을 가지지만(注意相): 천하가 위태로우면(天下危), 장군에게 관심을 가집니다(注意將). 장군과 재상이 조화로우면(將相和調, 則) 사가 힘써 따르고(士務附): 사가 힘써 따르면(士務附), 천하에 비록(天下雖) 변고가 있더라도(有變), 권력이 나뉘지 않습니다(卽權不分). 사직을 위한 계책은(爲社稷計), 두 사람이(兩君) 손을 잡는 것에 달렸을 뿐입니다(掌握耳). 제가(臣) 늘(常) 태위 강후에게 말하려고 했지만(欲謂太尉絳侯), 강후와 내가(絳侯與我) 농담을 하는 사이이니(戲), 내 말을 가벼이 여깁니다(易吾言). 그대는(君) 어찌(何) 태위와 교분을 맺어(不交驩太尉), 깊이(深) 서로 결탁하지 않습니까(相結)?”라고 했다.

진평을 위해(爲陳平) 여씨의 여러 일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畫呂氏數事). 진평이(陳平) 그 계책을 써서(用其計, 迺) 500금으로(以五百金) 강후를 위해 장수를 기원하고(爲絳侯壽), 술자리를 두텁게 갖추니(厚具樂飮): 태위도(太尉)( 또한(亦) 보답하는 것이 그와 같았다(報如之). 이 두 사람이(此兩人) 깊이 서로 결탁하며(深相結, 則) 여씨의 음모가(呂氏謀) 더욱 약해졌다(益衰). 진평이(陳平) 이에(迺) 노비 100명과(以奴婢百人), 수레와 말 50승(車馬五十乘), 500만 전을(錢五百萬), 육생에게 보내(遺陸生) 음주를 위해 쓰도록 했다(爲飮食費). 육생은(陸生) 이것으로(以此) 한나라 조정의 공경과 교유하며(遊漢廷公卿閒), 명성이 드러나고 커졌다(名聲藉甚). 여러 여씨를 죽이고(及誅諸呂), 효문제를 세운 것은(立孝文帝), 육생에게(陸生) 자못(頗) 공이 있다(有力焉). 효문제가 즉위하고(孝文帝卽位), 사람을 시켜(欲使人) 남월로 가게 하려했다(之南越). 진승상 등이(陳丞相等) 이에(乃) 육생을 언급해서(言陸生) 태중대부로 삼고(爲太中大夫), 위타에게 사신으로 갔고(往使尉他), 위타로 하여금(令尉他) 황색 덮개와 제(황제의 명령)이라고 부르는 것을 없애고(去黃屋稱制), 제후와 같게 하도록 해서(令比諸侯), 모두(皆) 황제의 마음에 들게 했다(如意旨). 이야기가(語) 남월열전에 있다(在南越語中). 육생이(陸生) 마침내(竟以) 수명대로 살다 죽었다(壽終).

 

* 黃屋稱制(황옥칭제): 황옥(黃屋)은 황색비단으로 수레 덮개로 사용하는 것. 제(制)는 황제의 명령을 말하며 황제가 직접 임석하여 그 의논을 보고 가부를 결단하는 것이다.

 

평원군(平原君) 벽양후(辟陽侯) 심이기(審食其)

12. 平原君朱建者, 楚人也. 故嘗爲淮南王黥布相, 有罪去, 後複事黥布. 布欲反時, 問平原君, 平原君非之, 布不聽而聽梁父侯, 遂反. 漢已誅布, 聞平原君諫不與謀, 得不誅. 語在黥布語中. 平原君爲人辯有口, 刻廉剛直, 家於長安. 行不苟合, 義不取容. 辟陽侯行不正, 得幸呂太後. 時辟陽侯欲知平原君, 平原君不肯見. 及平原君母死, 陸生素與平原君善, 過之. 平原君家貧, 未有以發喪, 方假貸服具, 陸生令平原君發喪. 陸生往見辟陽侯, 賀曰: “平原君母死.” 辟陽侯曰: “平原君母死, 何乃賀我乎?” 陸賈曰: “前日君侯欲知平原君, 平原君義不知君, 以其母故. 今其母死, 君誠厚送喪, 則彼爲君死矣.” 辟陽侯乃奉百金往稅. 列侯貴人以辟陽侯故, 往稅凡五百金.

12. 평원군 주건은(平原君朱建者), 초나라 사람이다(楚人也). 그러므로(故) 일찍이(嘗) 회남왕 경포의 재상이 되었고(爲淮南王黥布相), 죄가 있어 버려졌다가(有罪去), 나중에(後) 다시(複) 경포를 섬겼다(事黥布). 경포가(布) 반란을 일으키려고 할 때(欲反時), 평원군에게 물었는데(問平原君), 평원군이 비판했고(平原君非之), 경포가(布) 듣지 않고(不聽而) 양보후의 말을 듣고(聽梁父侯),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遂反). 한나라가(漢) 경포를 죽이고(已誅布), 평원군이(平原君) 간하고(諫) 모의에 함께 하지 않은 것을(不與謀) 듣고(聞), 죽이지 않았다(得不誅). 이야기가(語) 경포열전에 있다(在黥布語中). 평원군의(平原君) 사람됨이(爲人) 말재주가 있고(辯有口), 엄격하고 강직했으며(刻廉剛直), 장안에 살았다(家於長安). 행실이(行) 구차하게 영합하지 않았고(不苟合), 의리로(義)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不取容). 벽양후의 행실이(辟陽侯行) 바르지 않았지만(不正), 여태후의 총애를 얻었다(得幸呂太後). 당시(時) 벽양후가 평원군을 알았지만(辟陽侯欲知平原君), 평원군은(平原君) 기꺼이 만나지 않았다(不肯見). 평원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及平原君母死), 육생이(陸生) 평소(素) 평원군과 잘 지냈기에(與平原君善), 그에게 들렀다(過之). 평원군의 집이(平原君家) 가난해서(貧), 상을 치를 수 없었고(未有以發喪), 막(方) 상복과 도구를 빌리려고 했는데(假貸服具), 육생이(陸生) 평원군으로 하여금(令平原君) 상을 치르도록 했다(發喪).

육생이(陸生) 가서(往) 벽양후를 만나서(見辟陽侯), 축하하며 말하길(賀曰): “평원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平原君母死).”라고 했다.

벽양후가 말하길(辟陽侯曰):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는데(平原君母死), 어찌(何乃) 나에게 축하하는가(賀我乎)?”라고 했다.

육가가 말하길(陸賈曰): “전에(前日) 그대가(君侯) 평원군을 알려고 했는데(欲知平原君), 평원군의 의리로(平原君義) 그대를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은(不知君), 그 어머니 때문이다(以其母故). 지금(今)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其母死), 그대가(君) 진실로(誠) 상에 후하게 조의를 표하면(厚送喪, 則) 그대를 위해 죽을 것이다(彼爲君死矣).”라고 했다.

벽양후가(辟陽侯) 이에(乃) 백금을 받들고(奉百金) 가서 냈다(往稅). 열후와 귀인이(列侯貴人) 벽양후 때문에(以辟陽侯故), 가서 조의하니(往稅) 모두(凡) 500금이었다(五百金).

 

* 刻廉(해렴): 엄격()하고 염직()함.

* 苟合(구합): 겨우 합치(合致)함, 아부(阿附)함.

* 取容(취용): 비위를 맞추다.

 

13. 辟陽侯幸呂太後, 人或毁辟陽侯於孝惠帝, 孝惠帝大怒, 下吏, 欲誅之. 呂太後慚, 不可以言. 大臣多害辟陽侯行, 欲遂誅之. 辟陽侯急, 因使人欲見平原君. 平原君辭曰: “獄急, 不敢見君.” 迺求見孝惠幸臣閎籍孺, 說之曰: “君所以得幸帝, 天下莫不聞. 今辟陽侯幸太後而下吏, 道路皆言君讒, 欲殺之. 今日辟陽侯誅, 旦日太後含怒, 亦誅君. 何不肉袒爲辟陽侯言於帝? 帝聽君出辟陽侯, 太後大驩. 兩主共幸君, 君貴富益倍矣.” 於是閎籍孺大恐, 從其計, 言帝, 果出辟陽侯. 辟陽侯之囚, 欲見平原君, 平原君不見辟陽侯, 辟陽侯以爲倍己, 大怒. 及其成功出之, 迺大驚.

13. 벽양후가(辟陽侯) 여태후에게 총애를 받자(幸呂太後), 누군가(人或) 효혜제에게(於孝惠帝) 벽양후를 헐뜯었는데(毁辟陽侯), 효혜제가 크게 노해서(孝惠帝大怒), 형리에게 내려 보내고(下吏), 죽이려고 했다(欲誅之). 여태후가  부끄러워(呂太後慚), 말할 수 없었다(不可以言). 대신이(大臣) 벽양후의 행실을(辟陽侯行) 많이 미워해서(多害), 마침내 그를 죽이려고 했다(欲遂誅之). 벽양후가 급해졌고(辟陽侯急), 이에(因) 사람을 시켜(使人) 평원군을 만나려고 했다(欲見平原君).

평원군이 거절하며 말하길(平原君辭曰): “옥사가 임박했으므로(獄急), 감히 그대를 만날 수 없습니다(不敢見君).”라고 했다.

그리고(迺) 효혜제가 아끼는 신하 굉적유를(孝惠幸臣閎籍孺) 만나(求見), 설득하길(說之曰): “그대가(君) 황제에게 총애를 받는 까닭은(所以得幸帝), 천하에(天下) 누구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莫不聞). 지금(今) 벽양후가(辟陽侯) 태후에게 총애를 받아서(幸太後而) 옥에 갇혔는데(下吏), 도로에서(道路) 모두(皆) 그대를 험담하는 말을 하고(言君讒), 그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합니다(欲殺之). 오늘(今日) 벽양후가 죽는다면(辟陽侯誅), 내일 아침(旦日) 태후가 원한을 품고(太後含怒), 또한(亦) 그대를 죽일 것입니다(誅君). 어찌(何不) 웃통을 벗고(肉袒) 벽양후를 위해(爲辟陽侯) 황제에게 말하지 않습니까(言於帝)? 황제가 그대의 말을 듣고(帝聽君) 벽양후를 내보낸다면(出辟陽侯), 태후가(太後)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大驩). 두 주인이(兩主) 함께(共) 그대를 총애할 것이니(幸君), 그대의 부귀가(君貴富) 더욱 배가 될 것입니다(益倍矣).”라고 했다.

이에(於是) 굉적유가(閎籍孺) 크게 두려워하며(大恐), 그 계책을 따랐고(從其計), 황제에게 말하니(言帝), 과연(果) 벽양후를 풀어주었다(出辟陽侯). 벽양후가 죄수일 때(辟陽侯之囚), 평원군을 만나려고 했지만(欲見平原君), 평원군이 벽양후를 만나주지 않자(平原君不見辟陽侯), 벽양후는(辟陽侯) 자기를 배신했다고 여기고(以爲倍己), 크게 노했다(大怒). 그 계획이 성공해서 풀려났을 때(及其成功出之), 곧(迺) 크게 놀랐다(大驚).

 

14. 呂太後崩, 大臣誅諸呂, 辟陽侯於諸呂至深, 而卒不誅. 計畫所以全者, 皆陸生ㆍ平原君之力也. 孝文帝時, 淮南厲王殺辟陽侯, 以諸呂故. 文帝聞其客平原君爲計策, 使吏捕欲治. 聞吏至門, 平原君欲自殺. 諸子及吏皆曰: “事未可知, 何早自殺爲?” 平原君曰: “我死禍絶, 不及而身矣.” 遂自剄. 孝文帝聞而惜之, 曰: “吾無意殺之.” 迺召其子, 拜爲中大夫. 使匈奴, 單於無禮, 迺罵單於, 遂死匈奴中.

14. 여태후가 죽고(呂太後崩), 대신들이(大臣) 여러 여씨를 죽일 때(誅諸呂), 벽양후가(辟陽侯) 여러 여씨와(於諸呂) 매우 친했지만(至深, 而) 마침내(卒) 죽이지 않았다(不誅). 계획이(計畫) 완벽한 것은(所以全者), 모두(皆) 육생과 평원군의 힘이었다(陸生ㆍ平原君之力也). 효문제 때(孝文帝時), 회남여왕이(淮南厲王) 벽양후를 죽였는데(殺辟陽侯), 여러 여씨 때문이었다(以諸呂故). 문제는(文帝) 그 빈객 평원군이(其客平原君)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爲計策) 듣고(聞), 옥리를 시켜(使吏) 체포해서 다스리려고 했다(捕欲治). 옥리가 문에 이른 것을 듣고(聞吏至門), 평원군이(平原君) 자살하려고 했다(欲自殺).

여러 아들과 옥리가(諸子及吏) 모두 말하길(皆曰): “일을 알 수 없는데(事未可知), 어찌(何) 일찍(早) 자살합니까(自殺爲)?”라고 했다.

평원군이 말하길(平原君曰): “내 죽음으로(我死) 화가 끊어지고(禍絶), 너희 몸에 미치지 않을 것이다(不及而身矣).”라고 했다.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렀다(遂自剄). 효문제가 듣고(孝文帝聞而) 안타까워하며 말하길(惜之, 曰): “나에게(吾) 그를 죽일 뜻이 없었다(無意殺之).”라고 했다.

이에(迺) 그 아들을 불러(召其子), 벼슬을 주어(拜) 중대부로 삼았다(爲中大夫). 흉노에 사신으로 가서(使匈奴), 선우가(單於) 무례하므로(無禮), 이에(迺) 선우를 꾸짖다가(罵單於), 끝내(遂) 흉노 땅에서 죽었다(死匈奴中).

 

역이기와 유방(酈食其ㆍ劉邦)

15. 初, 沛公引兵過陳留, 酈生踵軍門上謁曰: “高陽賤民酈食其, 竊聞沛公暴露, 將兵助楚討不義, 敬勞從者, 願得望見, 口畫天下便事.” 使者入通, 沛公方洗, 問使者曰: “何如人也?” 使者對曰: “狀貌類大儒, 衣儒衣, 冠側注.” 沛公曰: “爲我謝之, 言我方以天下爲事, 未暇見儒人也.” 使者出謝曰: “沛公敬謝先生, 方以天下爲事, 未暇見儒人也.” 酈生瞋目案劍叱使者曰: “走! 複入言沛公, 吾高陽酒徒也, 非儒人也.” 使者懼而失謁, 跪拾謁, 還走, 複入報曰: “客, 天下壯士也, 叱臣, 臣恐, 至失謁. 曰: “走! 複入言, 而公高陽酒徒也”.” 沛公遽雪足杖矛曰: “延客入!”

15. 처음에(初), 패공이(沛公) 군사를 이끌고(引兵) 진류를 지나다가(過陳留), 역생이(酈生) 군문에 이르러(踵軍門) 명패를 올리고 (上謁曰): “고양 천민(高陽賤民) 역이기가(酈食其), 삼가(竊) 패공이 비바람을 무릅쓰고(沛公暴露), 군사를 이끌고(將兵) 초나라를 도와(助楚) 불의를 토벌한다는 것을(討不義) 듣고(聞), 삼가(敬) 따르는 사람을 위로하고(勞從者), 원컨대(願) 뵙기를 바라니(得望見), 천하의 큰일을 말하려고 합니다(口畫天下便事).”라고 했다.

사자가(使者) 들어가 통보하자(入通), 패공은(沛公) 막 세수하면서(方洗), 사자에게 묻기를(問使者曰): “어떤 사람인가(何如人也)?”라고 했다.

사자가 대답하길(使者對曰): “모습이(狀貌) 큰 유생과 비슷하고(類大儒), 유자의 옷을 입었고(衣儒衣), 측주관을 썼습니다(冠側注).”라고 했다.

패공이 말하길(沛公曰): “나를 위해(爲我) 그에게 사양하고(謝之), 내가 막(我方) 천하를 일로 삼아서(以天下爲事), 유자를 만날 틈이 없다고(未暇見儒人) 말해라(也).”라고 했다.

사자가 나가서(使者出) 사양하며 말하길(謝曰): “패공이(沛公) 삼가(敬) 선생에게 감사하지만(謝先生), 막(方) 천하를 일 삼았기 때문에(以天下爲事), 유자를 만날 틈이 없습니다(未暇見儒人也).”라고 했다.

역생이(酈生) 눈을 부릅뜨고(瞋目) 칼을 어루만지며(案劍) 사자를 꾸짖기를(叱使者曰): “달려가라(走)! 다시 들어가(複入) 패공에게(沛公), 나는(吾) 고양의 술꾼이고(高陽酒徒也), 유자가 아니라고(非儒人也) 말해라(言).”라고 했다.

사자가(使者) 두려워하며(懼而) 명패를 떨어뜨리고(失謁), 꿇어앉아(跪) 명패를 주워(拾謁), 되돌아 달려서(還走), 다시 들어가 말하길(複入報曰): “손님이(客), 천하의 장사인데(天下壯士也), 신을 꾸짖어(叱臣), 신이 두려워(臣恐), 명패를 떨어뜨렸습니다(至失謁). 말하길(曰): “달려가라(走)! 다시 들어가 고양 술주정뱅이라고 말해라(複入言, 而公高陽酒徒也)”라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패공이(沛公) 급히(遽) 발을 닦고(雪足) 창에 기대어 말하길(杖矛曰): “안으로(延) 손님을 들어오도록 해라(客入)!”라고 했다.

 

* 上謁(상알): 알현하다. 여기서의 謁(알)은 명함(名片).

* 暴露(폭로): 비바람에 직접() 노출()됨. 풍우에 드러남.

* 便事(편사): 대사(大事).

* 瞋目(진목): 두 눈을 부릅뜸.

 

16. 酈生入, 揖沛公曰: “足下甚苦, 暴衣露冠, 將兵助楚討不義, 足不何不自喜也? 臣願以事見, 而曰: “吾方以天下爲事, 未暇見儒人也”. 夫足下欲興天下之大事而成天下之大功, 而以目皮相, 恐失天下之能士. 且吾度足下之智不如吾, 勇又不如吾. 若欲就天下而不相見, 竊爲足下失之.” 沛公謝曰: “鄕者聞先生之容, 今見先生之意矣.” 迺延而坐之, 問所以取天下者. 酈生曰: “夫足下欲成大功, 不如止陳留. 陳留者, 天下之據衝也, 兵之會地也, 積粟數千萬石, 城守甚堅. 臣素善其令, 願爲足下說之. 不聽臣, 臣請爲足下殺之, 而下陳留. 足下將陳留之衆, 據陳留之城, 而食其積粟, 招天下之從兵: 從兵已成, 足下橫行天下, 莫能有害足下者矣.” 沛公曰: “敬聞命矣.”

16. 역생이 들어와(酈生入), 패공에게 읍하며 말하길(揖沛公曰): “그대가(足下) 매우 고생하며(甚苦), 옷을 햇볕에 쪼이고(暴衣) 관에 이슬을 맞고(露冠), 병사를 이끌고(將兵) 초나라를 도와(助楚) 불의를 토벌하면서(討不義), 그대는(足不) 어찌(何) 스스로 아끼지 않는가(不自喜也)? 신이 원컨대(臣願) 큰일로(以事) 만나려는데(見, 而) 말하길(曰): “내가 막(吾方) 천하를 일 삼았기 때문에(以天下爲事), 유자를 만날 틈이 없다(未暇見儒人也)”라고 했다. 그대가(夫足下) 천하의 큰일을 일으키고(欲興天下之大事而) 천하의 큰 공을 이루려고 한다면(成天下之大功, 而)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以目皮相), 천하의 능력 있는 사를 잃을까 두렵다(恐失天下之能士). 또(且) 나는(吾) 그대의 지혜가(足下之智) 나보다 못하고(不如吾), 용맹도 또한(勇又) 나보다 못한 것을(不如吾) 알겠다(度). 만약(若) 천하에 나아가려고 하면서(欲就天下而)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不相見), 삼가(竊) 그대가 실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爲足下失之).”라고 했다.

패공이 사과하며 말하길(沛公謝曰): “옛날(鄕者) 선생의 모습을 들었는데(聞先生之容), 지금(今) 선생의 뜻을 만났습니다(見先生之意矣).”라고 했다.

이에 이끌어(迺延而) 자리에 앉히고(坐之), 천하를 취할 방법을 물었다(問所以取天下者).

역생이 말하길(酈生曰): “그대가(夫足下) 큰 공을 이루려고 하면(欲成大功), 진류에 머무는 것만 못하다(不如止陳留). 진류는(陳留者), 천하의 근거가 되는 요충이고(天下之據衝也), 군사가 모이는 땅이고(兵之會地也), 곡식을 쌓아둔 것이 수만 석이고(積粟數千萬石), 성의 수비가(城守) 매우 견고합니다(甚堅). 신이(臣) 평소(素) 그 현령과 잘 사귀었으니(善其令), 원컨대(願) 그대를 위해(爲足下) 그를 설득하겠습니다(說之). 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不聽臣), 신이 청컨대(臣請) 그대를 위해(爲足下) 그를 죽이고(殺之, 而) 진류를 함락시킬 것입니다(下陳留). 그대가(足下) 진류의 무리를 이끌고(將陳留之衆), 진류성에 의지해서(據陳留之城, 而) 그 쌓아둔 곡식을 먹으며(食其積粟), 천하의 병사를 부르고(招天下之從兵): 따르는 병사가 이루이지고 나서(從兵已成), 그대가 천하를 횡행하면(足下橫行天下), 누구도(莫) 그대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없습니다(能有害足下者矣).”라고 했다.

패공이 말하길(沛公曰): “삼가(敬) 가르침을 듣습니다(聞命矣).”라고 했다.

 

17. 於是酈生迺夜見陳留令, 說之曰: “夫秦爲無道而天下畔之, 今足下與天下從則可以成大功. 今獨爲亡秦嬰城而堅守, 臣竊爲足下危之.” 陳留令曰: “秦法至重也, 不可以妄言, 妄言者無類, 吾不可以應. 先生所以敎臣者, 非臣之意也, 願勿複道.” 酈生留宿臥, 夜半時斬陳留令首, 踰城而下報沛公. 沛公引兵攻城, 縣令首於長竿以示城上人, 曰: “趣下, 而令頭已斷矣! 今後下者必先斬之!” 於是陳留人見令已死, 遂相率而下沛公. 沛公舍陳留南城門上, 因其庫兵, 食積粟, 留出入三月, 從兵以萬數, 遂入破秦.

17. 이에(於是) 역생이(酈生) 밤에(迺夜) 진류 현령을 만나(見陳留令), 설득하여 말하길(說之曰): “진나라는(夫秦) 무도하고(爲無道而) 천하가 배반했는데(天下畔之), 지금(今) 그대가(足下) 천하와(與天下) 합종한다면(從則) 큰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可以成大功). 지금(今) 혼자(獨) 망한 진나라를 위해(爲亡秦) 성을 굳게 지키는 것은(嬰城而堅守), 신이(臣) 생각하기에(竊爲) 그대가 위험합니다(足下危之).”라고 했다.

진류 현령이 말하길(陳留令曰): “진나라 법이(秦法) 지극히 엄중하고(至重也),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不可以妄言),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는(妄言者) 일족이 없을 것이므로(無類), 내가 응할 수 없다(吾不可以應). 선생이(先生) 나에게 가르친 것은(所以敎臣者), 나의 뜻이 아니니(非臣之意也), 원컨대(願) 다시 말하지 말라(勿複道).”라고 했다.

역생이(酈生) 머물며(留) 자다가(宿臥), 한밤에(夜半時) 진류 현령의 머리를 베고(斬陳留令首), 성을 넘어(踰城而) 내려가(下) 패공에게 보고했다(報沛公).

패공이(沛公) 군사를 이끌고(引兵) 성을 공격하면서(攻城), 장대에(於長竿) 현령의 머리를 걸고(縣令首以) 성 위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하길(示城上人, 曰): “빨리 항복해라(趣下, 而) 현령의 머리가(令頭) 이미 잘렸다(已斷矣)! 지금 늦게(今後) 항복하는 사람은(下者) 반드시(必) 먼저 벨 것이다(先斬之)!”라고 했다.

이에(於是) 진류 사람들이(陳留人) 현령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見令已死), 마침내(遂) 서로 이끌어(相率而) 패공에게 항복했다(下沛公). 패공이(沛公) 진류 남쪽 성문 위에 머물며(舍陳留南城門上), 그 창고의 병기를 쓰고(因其庫兵), 쌓아둔 곡식을 먹으며(食積粟\), 머문 것이(留) 석 달에 이르자(出入三月), 따르는 병사가(從兵) 수만이 되었고(以萬數), 마침내 들어가(遂入) 진나라를 깨뜨렸다(破秦).

 

* 嬰城(영성): ‘농성()하여 굳게 지킨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몰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8. 太史公曰: 世之傳酈生書, 多曰漢王已拔三秦, 東擊項籍而引軍於鞏洛之閒, 酈生被儒衣往說漢王. 迺非也. 自沛公未入關, 與項羽別而至高陽, 得酈生兄弟. 餘讀陸生新語書十二篇, 固當世之辯士. 至平原君子與餘善, 是以得具論之.

18.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세상에(世之) 역생의 이야기를 전한 글은(傳酈生書), 대부분(多) 한왕이 삼진을 점령하고(漢王已拔三秦), 동쪽으로(東) 항우를 공격해서(擊項籍而) 공과 낙양 사이로 군사를 이끌고 갔을 때(引軍於鞏洛之閒), 역생이(酈生) 유생 옷을 입고(被儒衣) 와서 한왕을 설득했다고(往說漢王) 말한다(曰). 잘못된 것이다(迺非也). 패공이 함곡관에 들어가지 않고(沛公未入關), 항우와 헤어져(與項羽別而) 고양에 이르렀을 때부터(至高陽), 역생 형제를 얻었다(得酈生兄弟). 내가(餘) 육생의 신어 12편을 읽었을 때(讀陸生新語書十二篇), 참으로(固) 당세의 변사였다(當世之辯士). 평원군의 아들과 내가(至平原君子與餘) 친분이 있었고(善), 이 때문에(是以) 구체적으로 논할 수 있다(得具論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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