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劉敬者, 齊人也. 漢五年, 戍隴西, 過洛陽, 高帝在焉. 婁敬脫輓輅, 衣其羊裘, 見齊人虞將軍曰: “臣願見上言便事.” 虞將軍欲與之鮮衣, 婁敬曰: “臣衣帛, 衣帛見: 衣褐, 衣褐見: 終不敢易衣.” 於是虞將軍入言上. 上召入見, 賜食. 已而問婁敬, 婁敬說曰: “陛下都洛陽, 豈欲與周室比隆哉?” 上曰: “然.” 婁敬曰: “陛下取天下與周室異. 周之先自后稷, 堯封之邰, 積德累善十有餘世. 公劉避桀居豳. 太王以狄伐故, 去豳, 杖馬箠居岐, 國人爭隨之. 及文王爲西伯, 斷虞芮之訟, 始受命, 呂望ㆍ伯夷自海浜來歸之. 武王伐紂, 不期而會孟津之上八百諸侯, 皆曰紂可伐矣, 遂滅殷.
1. 유경은(劉敬者), 제나라 사람이다(齊人也). 한나라 5년에(漢五年), 농서에서 국경을 수비했고(戍隴西), 낙양을 지날 때(過洛陽), 고제가 거기에 있었다(高帝在焉).
누경이(婁敬) 수레 가로대를 풀고(脫輓輅), 양가죽 옷을 입고(衣其羊裘), 제나라 사람 우장군을 만나 말하길(見齊人虞將軍曰): “제가 원컨대(臣願) 황제를 뵙고(見上) 큰일을 말하고 싶습니다(言便事).”라고 했다.
우장군이(虞將軍) 그에게 좋은 옷을 주려고 하자(欲與之鮮衣), 누경이 말하길(婁敬曰): “제가(臣) 비단옷을 입었으면(衣帛), 비단옷으로 뵙고(衣帛見): 갈옷을 입었으면(衣褐), 갈옷으로 만날 것이고(衣褐見): 결코(終) 감히 옷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不敢易衣).”라고 했다.
이에(於是) 우장군이(虞將軍) 들어가(入) 황제에게 말했다(言上). 황제가(上) 불러 들어가 만났고(召入見), 음식을 내려주었다(賜食).
얼마 안 되어(已而) 누경에게 묻자(問婁敬), 누경이 말하길(婁敬說曰): “폐하께서(陛下) 낙양에 도읍하는 것이(都洛陽), 아마(豈) 주실과(與周室) 융성함을 비교하려는 것인가요(欲比隆哉)?”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그렇다(然).”라고 했다.
누경이 말하길(婁敬曰): “폐하가(陛下) 천하를 취하는 것이(取天下) 주실과 다릅니다(與周室異). 주나라의 선조는(周之先) 후직으로부터 시작해서(自后稷), 요가(堯) 태에 봉하고(封之邰), 덕을 쌓고(積德) 선을 쌓은 것이(累善) 10 세대입니다(十有餘世). 공류가(公劉) 걸왕을 피해(避桀) 빈에 살았습니다(居豳). 태왕이(太王) 이적을 침략을 당했기 때문에(以狄伐故), 빈을 떠나(去豳), 말채찍만 잡고(杖馬箠) 기에 살았고(居岐), 나라 사람들이(國人) 다투어 그를 따랐습니다(爭隨之). 문왕이 서백이 되었을 때(及文王爲西伯), 우와 예의 송사를 결론내고(斷虞芮之訟), 비로소(始) 천명을 받았고(受命), 여망과 백이가(呂望ㆍ伯夷) 바닷가에서(自海浜) 와서 귀의했습니다(來歸之). 무왕이(武王) 주왕을 칠 때(伐紂), 기약하지 않았지만(不期而) 맹진 가에 모인 것이(會孟津之上) 제후가 800이었고(八百諸侯), 모두(皆) 주왕을 칠만하다고 말해서(曰紂可伐矣), 마침내(遂) 은을 멸망시켰습니다(滅殷).
* 婁敬(누경): 유경(劉敬). 전한(前漢) 제(齊)나라 사람으로 한고조(漢高祖) 때 장안(長安)으로 도읍을 정할 것을 주장했다. 나중에 유씨(劉氏) 성을 하사 받아 유경(劉敬)이라 불렸다.
* 輓輅(만핵): 輓은 끌다. 輅(핵)은 수레의 끌채에 가로로 댄 나무.
* 鮮衣(선의): 선명(鮮明)하고 아름다운 옷.
2. 成王卽位, 周公之屬傅相焉, 迺營成周洛邑, 以此爲天下之中也, 諸侯四方納貢職, 道里均矣, 有德則易以王, 無德則易以亡. 凡居此者, 欲令周務以德致人, 不欲依阻險, 令後世 驕奢以虐民也. 及周之盛時, 天下和洽, 四夷鄕風, 慕義懷德, 附離而竝事天子, 不屯一卒, 不戰一士, 八夷大國之民莫不賓服, 效其貢職. 及周之衰也, 分而爲兩, 天下莫朝, 周不能制也. 非其德薄也, 而形勢弱也. 今陛下起豊沛, 收卒三千人, 以之徑往而卷蜀漢, 定三秦, 與項羽戰滎陽, 爭成皐之口, 大戰七十, 小戰四十, 使天下之民肝脳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 哭泣之聲未絶, 傷痍者未起, 而欲比隆於成康之時, 臣竊以爲不侔也.
2. 성왕이(成王) 즉위하고(卽位), 주공의 무리가(周公之屬) 그를 스승처럼 도와서(傅相焉), 이에(迺) 낙읍에 성주를 세웠고(營成周洛邑), 이것으로(以此) 천하의 중심이 되어(爲天下之中也), 제후가(諸侯) 사방에서(四方) 공물을 바치는 것에(納貢職), 거리가(道里) 비슷했고(均矣), 덕이 있으면(有德則) 왕 노릇이 쉬웠고(易以王), 덕이 없으면(無德則) 망하기 쉬웠습니다(易以亡). 무릇(凡) 이곳에 머무는 것은(居此者), 주나로 하여금(令周) 힘써(務) 덕으로 사람을 이르게 하려는 것이고(欲以德致人), 험한 지형에 의지하고(依阻險), 후세에(令後世) 교만과 사치로(驕奢以) 백성을 학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不欲虐民也). 주나라가 융성할 때(及周之盛時), 천하가 화합했고(天下和洽), 사방 오랑캐가 귀순했고(四夷鄕風), 의를 사모하고(慕義) 덕을 품어(懷德), 더불어(附離而) 천자를 함께 섬기고(竝事天子), 병사 하나를 주둔시키지 않고(不屯一卒), 사 한 명을 싸우게 하지 않고도(不戰一士), 팔이와 대국 백성 가운데(八夷大國之民) 누구도(莫) 복종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不賓服), 그 공물을 바쳤습니다(效其貢職). 주나라가 약해졌을 때(及周之衰也), 나뉘어(分而) 둘이 되었고(爲兩), 천하에서(天下) 누구도 조회하지 않고(莫朝), 주나라가(周)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不能制也). 그 덕이 박한 것이 아니라(非其德薄也, 而) 형세가 약한 것입니다(形勢弱也).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풍패에서 봉기하고(起豊沛), 병사 3천을 거두어(收卒三千人), 그것으로 급히 와서(以之徑往而) 촉과 한을 석권하고(卷蜀漢), 삼진을 평정하고(定三秦), 항우와(與項羽) 형양에서 싸워(戰滎陽), 성고의 입구를 다투며(爭成皐之口), 큰 싸움이 70번이고(大戰七十), 작은 싸움이 40번이니(小戰四十), 천하 백성으로 하여금(使天下之民) 간과 뇌를 땅에 칠하게 하고(肝脳塗地), 부자가(父子) 들판에 뼈를 드러내도록 한 것을(暴骨中野), 이루 헤아릴 수 없고(不可勝數), 울부짖는 소리가(哭泣之聲) 끊이지 않고(未絶), 다친 사람이(傷痍者) 일어설 수 없는데(未起, 而) 성왕과 강왕의 시절에(於成康之時) 융성함을 비교하려고 하니(欲比隆), 제가(臣) 참으로(竊)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以爲不侔也).
* 貢職(공직): 세금과 공물.
* 鄉風(향풍): 귀화하다. 귀순하다.
* 附離(부리): 덧붙이다.
* 肝腦塗地(간뇌도지): 간장과 뇌수가 땅에 쏟아진다는 뜻으로 끔찍한 죽음을 통한 희생 또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뜻한다. 涂地는 진흙처럼 땅에 어지러이 흩어지다.
* 暴骨中野(폭골중야): 들판에 뼈를 드러내놓다. 暴은 曝과 같다.
3. 且夫秦地被山帶河, 四塞以爲固, 卒然有急, 百萬之衆可具也. 因秦之故, 資甚美膏腴之地, 此所謂天府者也. 陛下入關而都之, 山東雖亂, 秦之故地可全而有也. 夫與人鬪, 不搤其亢, 拊其背, 未能全其勝也. 今陛下入關而都, 案秦之故地, 此亦搤天下之亢而拊其背也.” 高帝問群臣, 群臣皆山東人, 爭言周王數百年, 秦二世卽亡, 不如都周. 上疑未能決. 及留侯明言入關便, 卽日車駕西都關中. 於是上曰: “本言都秦地者婁敬, “婁” 者乃“劉” 也.” 賜姓劉氏, 拜爲郎中, 號爲奉春君.
3. 또(且) 저 진나라 땅은(夫秦地) 산을 두르고(被山) 강을 둘러서(帶河), 사방의 요새가(四塞) 견고하고(以爲固), 갑작스럽게(卒然) 급한 일이 있으면(有急), 백만의 무리라도(百萬之衆) 배치할 수 있습니다(可具也). 진나라의 옛 땅을 따라(因秦之故), 매우 좋고 비옥한 땅에(甚美膏腴之地) 의지한다면(資), 이것은(此) 이른바(所謂) 천연의 곳간입니다(天府者也). 폐하께서(陛下) 함곡관에 들어가(入關而) 그곳에 도읍하면(都之), 산동에(山東) 비록 혼란이 있더라도(雖亂), 진나라의 옛 땅을(秦之故地) 보전하고 가질 수 있습니다(可全而有也). 무릇(夫) 남과 다툴 때(與人鬪), 목을 조르고(不搤其亢), 등을 치지 않으면(拊其背), 그 승리를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未能全其勝也).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함곡관에 들어가서 도읍하고(入關而都), 진나라의 옛 땅을 제압하는 것은(案秦之故地), 이것도 또한(此亦) 천하의 목을 누르고(搤天下之亢而) 그 등을 치는 것입니다(拊其背也).”라고 했다.
고제가(高帝) 여러 신하게 물으니(問群臣), 여러 신하가(群臣) 모두(皆) 산동 사람이었으므로(山東人), 다투어 말하길(爭言) 주나라는(周) 수백 년 왕 노릇했고(王數百年), 진나라는(秦) 2대가 지나 망했으니(二世卽亡), 주에 도읍하는 것만 못하다(不如都周)라고 했다. 황제가 주저하며(上疑) 결정할 수 없었다(未能決). 유후가(及留侯) 함곡관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入關便) 분명하게 말했고(明言), 그날(卽日) 수레를 서쪽으로 몰아(車駕西) 관중에 도읍했다(都關中).
이에(於是) 황제가 말하길(上曰): “본래(本) 진나라 땅에 도읍하겠다고 말한 사람은(言都秦地者) 누경이고(婁敬), 누가 곧 유다(“婁” 者乃“劉” 也).”라고 했다.
유씨 성을 하사하고(賜姓劉氏), 등용해서(拜) 낭중으로 삼았고(爲郎中), 호는(號) 봉춘군이 되었다(爲奉春君).
* 案(안): 按과 통하여 제압하다.
4. 漢七年, 韓王信反, 高帝自往擊之. 至晉陽, 聞信與匈奴欲共擊漢, 上大怒, 使人使匈奴. 匈奴匿其壯士肥牛馬, 但見老弱及羸畜. 使者十輩來, 皆言匈奴可擊. 上使劉敬複往使匈奴, 還報曰: “兩國相擊, 此宜誇矜見所長. 今臣往, 徒見羸瘠老弱, 此必欲見短, 伏奇兵以爭利. 愚以爲匈奴不可擊也.” 是時漢兵已踰句注, 二十餘萬兵已業行. 上怒, 罵劉敬曰: “齊虜! 以口舌得官, 今迺妄言沮吾軍.” 械繋敬廣武. 遂往, 至平城, 匈奴果出奇兵圍高帝白登, 七日然後得解. 高帝至廣武, 赦敬, 曰: “吾不用公言, 以困平城. 吾皆已斬前使十輩言可擊者矣.” 迺封敬二千戸, 爲關內侯, 號爲建信侯.
4. 한나라 7년(漢七年), 한왕 신이(韓王信) 배반하자(反), 고제가(高帝) 직접 가서(自往) 공격했다(擊之). 진양에 이르러(至晉陽), 한신과 흉노가(信與匈奴) 함께 한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을(欲共擊漢) 듣고(聞), 황제가(上) 크게 노하여(大怒), 사람을 시켜(使人) 흉노에 사신을 보냈다(使匈奴). 흉노가(匈奴) 그 장사와 살진 소와 말을 숨기고(匿其壯士肥牛馬), 다만(但) 늙고 약하며 야윈 짐승만 보여줬다(見老弱及羸畜). 사자가(使者) 열 번 갔는데(十輩來), 모두(皆) 흉노를 공격할만하다고 말했다(言匈奴可擊).
황제가(上) 유경을 시켜(使劉敬) 다시 흉노에 사신으로 가도록 했는데(複往使匈奴), 돌아와 보고하길(還報曰): “두 나라가(兩國) 서로 공격할 때(相擊), 이것은(此) 그 장점인 것을 자랑하는 것이 맞습니다(宜誇矜見所長). 지금(今) 신이 가서(臣往), 다만(徒) 야위고 늙고 약한 것들만 보았는데(見羸瘠老弱), 이것은(此) 반드시(必) 단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니(欲見短), 기병을 숨겨서(伏奇兵以) 이익을 다투는 것입니다(爭利). 제 생각으로(愚以爲) 흉노를(匈奴) 공격할 수 없습니다(不可擊也).”라고 했다.
이때(是時) 한나라 군대가(漢兵) 이미 구주를 넘었고(已踰句注), 20여만 병사가(二十餘萬兵) 이미 진격했다(已業行).
황제가 노하여(上怒), 유경을 꾸짖기를(罵劉敬曰): “제나라의 어린놈아(齊虜)! 입과 혀로(以口舌) 관직을 얻어서(得官), 지금(今迺) 망령된 말로(妄言) 우리 군사를 막는구나(沮吾軍).”라고 했다.
유경을 형구에 매어(械繋敬) 광무에 가뒀다(廣武). 마침내 가서(遂往), 평성에 이르렀는데(至平城), 흉노가(匈奴) 정말(果) 기병을 내보내(出奇兵) 백등에서 고제를 포위했고(圍高帝白登), 7일이 지나서(七日然後) 풀려났다(得解).
고제가(高帝) 광무에 이르러(至廣武), 유경을 용서하며 말하길(赦敬, 曰): “내가(吾) 공의 말을 듣지 않아서(不用公言, 以) 평성에서 곤란을 당했다(困平城). 내가(吾) 공격할만하다고 말한(言可擊者) 전의 사신 열 명을(前使十輩) 모두 참수했다(皆已斬矣).”라고 했다.
이에(迺) 유경에게 2천 호를 봉하고(封敬二千戸), 관내후로 삼았고(爲關內侯), 호는 건신후가 되었다(號爲建信侯).
* 誇矜(과긍): 자랑하거나 칭찬(稱讚)함.
5. 高帝罷平城歸, 韓王信亡入胡. 當是時, 冒頓爲單於, 兵彊, 控弦三十萬, 數苦北邊. 上患之, 問劉敬. 劉敬曰: “天下初定, 士卒罷於兵, 未可以武服也. 冒頓殺父代立, 妻群母, 以力爲威, 未可以仁義說也. 獨可以計久遠子孫爲臣耳, 然恐陛下不能爲.” 上曰: “誠可, 何爲不能! 顧爲奈何?” 劉敬對曰: “陛下誠能以適長公主妻之, 厚奉遺之, 彼知漢適女送厚, 蠻夷必慕以爲閼氏, 生子必爲太子. 代單於. 何者? 貪漢重幣. 陛下以歲時漢所餘彼所鮮數問遺, 因使辯士風諭以禮節. 冒頓在, 固爲子婿: 死, 則外孫爲單於.
5. 고제가(高帝) 평성에서 군대를 물리고(罷平城) 돌아왔고(歸), 한왕 신이(韓王信) 도망쳐(亡) 오랑캐 땅에 들어갔다(入胡). 당시에(當是時), 묵특이(冒頓) 선우가 되었는데(爲單於), 군대가 강하고(兵彊), 활 쏘는 군사(控弦) 30만이(三十萬), 자주(數) 북쪽 국경을 고달프게 했다(苦北邊). 황제가 이것을 걱정해서(上患之), 유경에게 물었다(問劉敬).
유경이 말하길(劉敬曰): “천하가(天下) 처음 안정되어(初定), 사졸이(士卒) 전쟁에 지쳤고(罷於兵), 무력으로 복종시킬 수 없습니다(未可以武服也). 묵특이(冒頓) 아버지를 죽이고(殺父) 자리를 이었고(代立), 많은 첩을 아내로 삼았고(妻群母), 힘으로(以力) 위력을 떨치니(爲威), 인의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未可以仁義說也). 오직(獨) 오래되고 먼 자손을(久遠子孫) 신하로 만드는(爲臣耳) 계책을 쓸 수 있는데(可以計), 하지만(然) 폐하께서 할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恐陛下不能爲).”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참으로 할 수 있다면(誠可), 어찌(何) 하지 못하겠는가(爲不能)! 다만(顧) 어찌해야 하는가(爲奈何)?”라고 했다.
유경이 대답하길(劉敬對曰): “폐하께서(陛下) 참으로(誠) 적장자인 공주를(以適長公主) 그에게 시집보내고(妻之), 두터운 예물을(厚奉) 그에게 준다면(能遺之), 저들이(彼) 한나라 공주와 두터운 예물을 알아서(知漢適女送厚), 오랑캐라도(蠻夷) 반드시(必) 흠모하여(慕) 연지로 삼고(以爲閼氏), 아들을 낳으면(生子) 반드시 태자가 될 것입니다(必爲太子). 선우를 이을 것입니다(代單於). 어째서 그런가요(何者)? 한나라의 많은 예물을 탐내기 때문입니다(貪漢重幣). 폐하께서(陛下) 철마다(以歲時) 한나라에 남고(漢所餘) 저들에게 드문 것으로(彼所鮮) 자주 위문하고 보내며(數問遺), 이에(因) 변사로 하여금(使辯士) 예절로 일깨우도록 하십시오(風諭以禮節). 묵특이 있으면(冒頓在), 참으로(固) 사위가 되고(爲子婿): 죽으면(死, 則) 외손자가 선우가 됩니다(外孫爲單於).
* 風諭(풍유) : 권고하다. 일깨우다. 風은 諷과 통한다.
6. 豈嘗聞外孫敢與大父抗禮者哉? 兵可無戰以漸臣也. 若陛下不能遣長公主, 而令宗室及後宮詐稱公主, 彼亦知, 不肯貴近, 無益也.” 高帝曰: “善.” 欲遣長公主. 呂後日夜泣, 曰: “妾唯太子ㆍ一女, 奈何棄之匈奴!” 上竟不能遣長公主, 而取家人子名爲長公主, 妻單於. 使劉敬往結和親約. 劉敬從匈奴來, 因言“匈奴河南白羊ㆍ樓煩王, 去長安近者七百里, 輕騎一日一夜可以至秦中. 秦中新破, 少民, 地肥饒, 可益實. 夫諸侯初起時, 非齊諸田, 楚昭ㆍ屈ㆍ景莫能興. 今陛下雖都關中, 實少人. 北近胡冦, 東有六國之族, 宗彊, 一日有變, 陛下亦未得高枕而臥也. 臣願陛下徙齊諸田, 楚昭ㆍ屈ㆍ景, 燕ㆍ趙ㆍ韓ㆍ魏後, 及豪桀名家居關中. 無事, 可以備胡: 諸侯有變, 亦足率以東伐. 此彊本弱末之術也”. 上曰: “善.” 迺使劉敬徙所言關中十餘萬口.
6. 어찌(豈) 일찍이(嘗) 외손이(外孫) 감히(敢) 외할아버지와(與大父) 예를 대등하게 한 것을(抗禮者) 들었습니까(聞哉)? 군사로(兵) 싸움이 없더라도(可無戰) 점차 신하가 될 것입니다(以漸臣也). 만약(若) 폐하께서(陛下) 장공주를 보낼 수 없어서(不能遣長公主, 而) 종실과 후궁에게 명해서(令宗室及後宮) 공주를 사칭하게 한다면(詐稱公主), 저들도 또한 알고(彼亦知), 기꺼이 귀하게 여기고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니(不肯貴近), 이익이 없습니다(無益也).”라고 했다.
고제가 말하길(高帝曰): “좋다(善).”라고 했다.
장공주를 보내려고 했다(欲遣長公主). 여후가(呂後) 밤낮으로 울며 말하길(日夜泣, 曰): “저에게(妾) 오직(唯) 태자와 딸 하나가 있는데(太子ㆍ一女), 어찌(奈何) 그들을 흉노에게 버립니까(棄之匈奴)!”라고 했다.
황제가(上) 결국(竟) 장공주를 보낼 수 없었고(不能遣長公主, 而) 가인자를 취해(取家人子) 이름을 장공주로 하고(名爲長公主), 선우에게 시집보냈다(妻單於). 유경으로 하여금(使劉敬) 가서(往) 화친의 약속을 맺었다(結和親約).
유경이(劉敬) 흉노에서 와서 말하길(從匈奴來, 因言): “흉노(匈奴) 하남의(河南) 백양왕과 누번왕이(白羊ㆍ樓煩王), 장안과의 거리가(去長安) 가까운 것이(近者) 700리이고(七百里), 가벼운 기병으로(輕騎) 하루 낮밤이면(一日一夜) 진나라 중심에 올 수 있습니다(可以至秦中). 진나라 중심이(秦中) 최근 파괴되어(新破), 백성이 적지만(少民), 땅이 비옥하니(地肥饒), 더 채울 수 있습니다(可益實). 제후가(夫諸侯) 처음(初) 일어났을 때(起時), 제나라의 여러 전씨와 초의 소씨, 굴씨, 경씨가 아니었다면(非齊諸田, 楚昭ㆍ屈ㆍ景) 누구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莫能興). 지금(今) 폐하께서(陛下) 비록(雖) 관중에 도읍했지만(都關中), 실제(實) 사람이 적습니다(少人). 북쪽으로(北) 흉노와 가깝고(近胡冦), 동쪽에(東) 육국의 종족이 있어(有六國之族), 종족이 강해서(宗彊), 하루라도(一日) 변란이 있으면(有變), 폐하께서 또한(陛下亦) 베게를 높이 베고 누울 수 없습니다(未得高枕而臥也). 신이 원컨대(臣願) 폐하께서(陛下) 제나라 여러 전씨와 초의 소씨, 굴씨 경씨와(徙齊諸田, 楚昭ㆍ屈ㆍ景), 연과 조, 한, 위의 후손과(燕ㆍ趙ㆍ韓ㆍ魏後, 及) 호걸과 명문가를 옮겨서(豪桀名家) 관중에 살도록 하고 싶습니다(居關中). 일이 없으면(無事), 흉노를 대비할 수 있고(可以備胡): 제후에게 변고가 있으면(諸侯有變), 또한(亦) 이끌고 동으로 정벌할 수 있습니다(足率以東伐). 이것은(此) 근본을 강하게 하고(彊本) 말단을 약하게 하는(弱末之) 방법입니다(術也)”라고 했다.
황제가 말하길(上曰): “좋다(善).”라고 했다. 이에(迺) 유경을 시켜(使劉敬) 말한 대로 관중으로 10만 호를 옮겼다(徙所言關中十餘萬口).
* 抗禮(항례) : 대등한 지위나 예의로써 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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