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五年, 楚之亡臣伍子胥來奔, 公子光客之. 公子光者, 王諸樊之子也. 常以爲吾父兄弟四人, 當傳至季子. 季子卽不受國, 光父先立. 卽不傳季子, 光當立. 陰納賢士, 欲以襲王僚.
18 요왕 5년(五年), 초나라의 망명한 신하(楚之亡臣) 오자서가(伍子胥) 도망쳐 오자(來奔), 공자 광이(公子光) 그를 객으로 대우했다(客之). 공자 광은(公子光者), 왕 제번의 아들이다(王諸樊之子也). 일찍이(常) 우리 아버지의 형제가 넷인데(吾父兄弟四人), 마땅히(當) 계찰에게 전해져 이르러야 한다고(傳至季子) 생각했다(以爲). 계찰이(季子) 나라를 받지 않았고(卽不受國), 광의 아버지가(光父) 먼저 즉위했다(先立). 곧(卽) 계찰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므로(不傳季子), 광이 마땅히 즉위해야 한다(光當立). 은밀하게(陰) 현명한 사를 들이고(納賢士), 요왕을 습격하려고 했다(欲以襲王僚).
19 八年, 吳使公子光伐楚, 敗楚師, 迎楚故太子建母於居巢以歸. 因北伐, 敗陳ㆍ蔡之師. 九年, 公子光伐楚, 拔居巢ㆍ鐘離. 初, 楚邊邑卑梁氏之處女與吳邊邑之女爭桑, 二女家怒相滅, 兩國邊邑長聞之, 怒而相攻, 滅吳之邊邑. 吳王怒, 故遂伐楚, 取兩都而去.
19 8년에(八年), 오나라가(吳) 공자 광으로 하여금(使公子光) 초나라를 치게 해서(伐楚), 초나라 군대를 물리치고(敗楚師), 초나라 옛 태자 건의 어머니를(楚故太子建母) 거소에서 맞이해서(迎於居巢以) 돌아왔다(歸). 이어(因) 북으로(北) 공격해서(伐), 진나라와 채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다(敗陳ㆍ蔡之師). 9년에(九年), 공자 광이(公子光) 초나라를 치고(伐楚), 거소와 종리를 빼앗았다(拔居巢ㆍ鐘離). 처음에(初), 초나라 국경 읍(楚邊邑) 비량씨의 처녀들과(卑梁氏之處女與) 오나라 국경 읍의 여자들이(吳邊邑之女) 뽕나무로 다퉜는데(爭桑), 두 여자 집안이(二女家) 노하여(怒) 서로 멸해서(相滅), 두 나라 국경의(兩國邊) 읍장이 이것을 듣고(邑長聞之), 노하여(怒而) 서로 공격해서(相攻), 오나라의 변경 읍을 없앴다(滅吳之邊邑). 오왕이 화가 났고(吳王怒), 그러므로(故) 마침내 초나라를 쳐서(遂伐楚), 두 도읍을 취하고 물러났다(取兩都而去).
20 伍子胥之初奔吳, 說吳王僚以伐楚之利. 公子光曰: "胥之父兄爲僇於楚, 欲自報其仇耳. 未見其利. 於是伍員知光有他志, 乃求勇士專諸, 見之光. 光喜, 乃客伍子胥. 子胥退而耕於野, 以待專諸之事.
20 오자서가(伍子胥之) 처음(初) 오나라로 도망 와서(奔吳), 초나라를 치는 이익으로(以伐楚之利) 오왕 요를 설득했다(說吳王僚).
공자 광이 말하길(公子光曰):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胥之父兄) 초나라에 죽임 당했고(爲僇於楚), 그 원한을 갚으려는 것일 뿐입니다(欲自報其仇耳). 그 이익을 볼 수 없습니다(未見其利). 이에(於是) 오원이(伍員) 광에게 뜻이 있음을 알았고(知光有他志), 이에(乃) 용사 전제를 구해서(求勇士專諸), 그가 광을 만났다(見之光). 광이 기뻐하며(光喜, 乃) 오자서를 빈객으로 대우했다(客伍子胥). 오자서가 물러나(子胥退而) 들에서 밭 갈며(耕於野, 以) 전제의 일을 기다렸다(待專諸之事).
21 十二年冬, 楚平王卒. 十三年春, 吳欲因楚喪而伐之, 使公子蓋餘ㆍ燭庸以兵圍楚之六ㆍ𤅬. 使季札於晉, 以觀諸侯之變. 楚發兵絕吳兵後, 吳兵不得還. 於是吳公子光曰: "此時不可失也. 告專諸曰: "不索何獲! 我眞王嗣, 當立, 吾欲求之. 季子雖至, 不吾廢也. 專諸曰: "王僚可殺也. 母老子弱, 而兩公子將兵攻楚, 楚絕其路. 方今吳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是無柰我何. 光曰: "我身, 子之身也. 四月丙子, 光伏甲士於窟室, 而謁王僚飮. 王僚使兵陳於道, 自王宮至光之家, 門階戶席, 皆王僚之親也, 人夾持鈹. 公子光詳爲足疾, 入于窟室, 使專諸置匕首於炙魚之中以進食. 手匕首刺王僚, 鈹交於匈, 遂弒王僚. 公子光竟代立爲王, 是爲吳王闔廬. 闔廬乃以專諸子爲卿.
21 12년 겨울에(十二年冬), 초 평왕이 죽었다(楚平王卒). 13년 봄에(十三年春), 오나라가(吳) 초나라의 초상을 틈타(欲因楚喪而) 치려고 했고(伐之), 공자 개여와 촉용으로 하여금(使公子蓋餘ㆍ燭庸) 군사를 이끌고(以兵) 초나라의 육현과 첨현을 포위하도록 했다(圍楚之六ㆍ𤅬). 계찰로 하여금(使季札) 진나라에서(於晉), 제후들의 변화를 보도록 했다(以觀諸侯之變). 초나라가(楚) 군사를 일으켜(發兵) 오나라 병사의 뒤를 끊었고(絕吳兵後), 오나라 병사가(吳兵) 돌아갈 수 없었다(不得還).
이에(於是) 오공자 광이 말하길(吳公子光曰): "이때를(此時) 놓칠 수 없다(不可失也)"라고 했다.
전제에게 일러 말하길(告專諸曰): "구하지 않으면(不索) 얻을 수 없다(何獲)! 내가(我) 진정한 왕의 계승자이고(眞王嗣), 마땅히 즉위해야 하니(當立), 내가(吾) 그것을 구하려는 것이다(欲求之). 계찰이 비록 오더라도(季子雖至), 나를 폐하지 않을 것이다(不吾廢也)"라고 했다.
전제가 말하길(專諸曰): "요왕을(王僚) 죽일 수 있습니다(可殺也). 어머니는 늙었고(母老) 자식이 어리니(子弱, 而) 두 공자가(兩公子) 군사를 이끌고(將兵) 초나라를 공격했는데(攻楚), 초나라가(楚) 그 길을 끊었습니다(絕其路). 막 지금(方今) 오나라가(吳) 바깥에서(外) 초나라에게 곤경을 당했고(困於楚, 而) 안이 비어(內空) 골경지신이 없으니(無骨鯁之臣), 곧(是) 나를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無柰我何)"라고 했다.
공자 광이 말하길(光曰): "내 몸이(我身), 그대의 몸이다(子之身也)"라고 했다.
4월 병자일에(四月丙子), 광이(光) 굴 안에(於窟室) 갑사를 숨기고(伏甲士, 而) 요왕을 술자리에 불렀다(謁王僚飮). 요왕이(王僚) 병사들로 하여금(使兵) 길에 진을 치도록 하고(陳於道), 왕궁에서(自王宮) 광의 집에 이르렀는데(至光之家), 문과 계단, 술자리에(門階戶席), 모두(皆) 요왕의 측근이었고(王僚之親也), 사람들이(人) 장검을 지녔다(夾持鈹). 공자 광이(公子光) 거짓으로(詳) 발이 아픈 척하며(爲足疾), 지하실에 들어가(入于窟室), 전제로 하여금(使專諸) 구운 물고기 배에(於炙魚之中) 비수를 두고(置匕首以)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進食). 비수를 손으로 잡아(手匕首) 요왕을 찔렀고(刺王僚), 칼이(鈹) 가슴에 교차했지만(交於匈), 마침내(遂) 요왕을 시해했다(弒王僚). 공자 광이(公子光) 마침내(竟) 대신 즉위해서(代立) 왕이 되었으니(爲王), 이 사람이(是) 오왕 합려이다(爲吳王闔廬). 합려가(闔廬乃) 전제의 아들을(以專諸子) 경으로 삼았다(爲卿).
* 骨鯁之臣(골경지신):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 骨鯁은 생선의 뼈.
* 窟室(굴실): 굴 안에 만든 공간(空間).
22 季子至, 曰: "茍先君無廢祀, 民人無廢主, 社稷有奉, 乃吾君也. 吾敢誰怨乎? 哀死事生, 以待天命. 非我生亂, 立者從之, 先人之道也. 復命, 哭僚墓, 復位而待. 吳公子燭庸ㆍ蓋餘二人將兵遇圍於楚者, 聞公子光弒王僚自立, 乃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22 계자가 이르러 말하길(季子至, 曰): "참으로(茍) 선군에게(先君) 제사가 없어지는 일이 없고(無廢祀), 백성에게(民人) 주인 없는 일이 없고(無廢主), 사직에(社稷) 받들어지는 일이 있다면(有奉), 곧(乃) 내 임금이다(吾君也). 내가 감히(吾敢) 누구를 원망하겠는가(誰怨乎)?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哀死) 산 사람을 섬기며(事生, 以) 천명을 기다릴 뿐이다(待天命). 내가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면(非我生亂), 세워진 사람을 따르는 것이(立者從之), 선인의 도리다(先人之道也)"라고 했다. 복명하고(復命), 요의 무덤에 곡하고(哭僚墓), 자리로 돌아가(復位而) 기다렸다(待). 오공자 촉용과 여개 두 사람이(吳公子燭庸ㆍ蓋餘二人) 병사를 이끌고(將兵) 초나라에 포위되었을 때(遇圍於楚者), 공자 광이(公子光) 요왕을 시해하고(弒王僚) 스스로 즉위한 것을(自立) 들었고(聞), 이에(乃) 그 병사로(以其兵) 초나라에 항복하니(降楚), 초나라가(楚) 서에 봉했다(封之於舒).
오왕(吳王) 합려(闔廬)
23 王闔廬元年, 舉伍子胥爲行人而與謀國事. 楚誅伯州犁, 其孫伯嚭亡奔吳, 吳以爲大夫. 24 三年, 吳王闔廬與子胥ㆍ伯嚭將兵伐楚, 拔舒, 殺吳亡將二公子. 光謀欲入郢, 將軍孫武曰: "民勞, 未可, 待之. 四年, 伐楚, 取六與𤅬. 五年, 伐越, 敗之. 六年, 楚使子常囊瓦伐吳. 迎而擊之, 大敗楚軍於豫章, 取楚之居巢而還.
23 합려 원년에(王闔廬元年), 오자서를 등용해서(舉伍子胥) 행인으로 삼고(爲行人而) 함께 나라일을 의논했다(與謀國事). 초나라가(楚) 백주려를 죽이자(誅伯州犁), 그 자손(其孫) 백비가(伯嚭) 오나라에 도망 왔고(亡奔吳), 오나라가(吳) 대부로 삼았다(以爲大夫).
24 3년에(三年), 오왕 합려와(吳王闔廬與) 오자서, 백비가(子胥ㆍ伯嚭) 병사를 이끌고(將兵) 초를 쳤고(伐楚), 서를 빼앗고(拔舒), 오나라의 망명한 두 공자를 죽였다(殺吳亡將二公子). 광이 계획하여(光謀) 영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欲入郢), 장군 손무가 말하길(將軍孫武曰): "백성들이 지쳐서(民勞), 안되니(未可), 기다려야 합니다(待之)"라고 했다.
4년에(四年), 초나라를 치고(伐楚), 육현과 점현을 취했다(取六與𤅬).
5년에(五年), 월을 쳐서(伐越), 물리쳤다(敗之).
6년에(六年), 초나라가(楚) 자상 낭와를 시켜(使子常囊瓦) 오나라를 쳤다(伐吳). 맞이해서 공격하고(迎而擊之), 예장에서(於豫章)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치고(大敗楚軍), 초나라의 거소를 취하고(取楚之居巢而) 돌아왔다(還).
25 九年, 吳王闔廬請伍子胥ㆍ孫武曰: "始子之言郢未可入, 今果如何? 二子對曰: "楚將子常貪, 而唐ㆍ蔡皆怨之. 王必欲大伐, 必得唐ㆍ蔡乃可. 闔廬從之, 悉興師, 與唐ㆍ蔡西伐楚, 至於漢水. 楚亦發兵拒吳, 夾水陳. 吳王闔廬弟夫欲戰, 闔廬弗許. 夫曰: "王已屬臣兵, 兵以利爲上, 尙何待焉? 遂以其部五千人襲冒楚, 楚兵大敗, 走. 於是吳王遂縱兵追之. 比至郢, 五戰, 楚五敗. 楚昭王亡出郢, 奔鄖. 鄖公弟欲弒昭王, 昭王與鄖公奔隨. 而吳兵遂入郢. 子胥ㆍ伯嚭鞭平王之尸以報父讎.
25 9년에(九年), 오왕 합려가(吳王闔廬) 오자서와 손무에게 청해 말하길(請伍子胥ㆍ孫武曰): "처음에(始) 그대들이(子之) 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는데(言郢未可入), 지금은(今) 과연 어떤까(果如何)?"라고 했다.
두 사람이 대답하길(二子對曰): "초나라의 장수 자상이(楚將子常) 탐욕스럽고(貪, 而) 당과 채가(唐ㆍ蔡) 모두 그를 원망합니다(皆怨之). 왕께서(王) 반드시(必) 크게 치려고 한다면(欲大伐), 반드시(必) 당과 채를 얻는다면(得唐ㆍ蔡乃) 가능합니다(可)"라고 했다.
합려가 이것을 따라서(闔廬從之), 모든 군대를 일으키고(悉興師), 당, 채와 함께(與唐ㆍ蔡) 서쪽으로(西) 초나라를 쳐서(伐楚), 한수에 이르렀다(至於漢水). 초나라도 또한(楚亦) 군사를 일으켜(發兵) 오나라를 막고(拒吳), 물을 끼고(夾水) 진을 쳤다(陳). 오왕 합려의 동생 부가(吳王闔廬弟夫) 싸우려고 하자(欲戰), 합려가 허락하지 않았다(闔廬弗許).
부가 말하길(夫曰): "왕께서(王) 이미(已) 신에게 병사를 맡겼고(屬臣兵), 전세가 이익인 것이(兵以利) 위인데(爲上), 여전히(尙) 기다립니까(何待焉)?"라고 했다.
마침내(遂) 자기 부대 5천 명으로(以其部五千人) 초나라를 습격하고(襲冒楚), 초나라 군사가(楚兵) 크게 패하여(大敗), 달아났다(走). 이에(於是) 오왕이(吳王) 마침내(遂) 군사를 풀어(縱兵) 쫓았다(追之). 영에 이르기까지(比至郢), 다섯 번 싸워(五戰), 초나라가 다섯 번 졌다(楚五敗). 초 소왕이(楚昭王) 영에서 도망쳐 나가(亡出郢), 운으로 달아났다(奔鄖). 운공의 동생이(鄖公弟) 소왕을 시해하려고 하자(欲弒昭王), 수왕과 운공이(昭王與鄖公) 수로 달아났다(奔隨). 그리고(而) 오나라 군대가(吳兵) 마침내 영에 들어갔다(遂入郢). 오자서와 백비가(子胥ㆍ伯嚭) 평왕의 시신에 채찍질하고(鞭平王之尸以)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報父讎).
26 十年春, 越聞吳王之在郢, 國空, 乃伐吳. 吳使別兵擊越. 楚告急秦, 秦遣兵救楚擊吳, 吳師敗. 闔廬弟夫見秦越交敗吳, 吳王留楚不去, 夫亡歸吳而自立爲吳王. 闔廬聞之, 乃引兵歸, 攻夫. 夫敗奔楚. 楚昭王乃得以九月復入郢, 而封夫槩於堂谿, 爲堂谿氏. 十一年, 吳王使太子夫差伐楚, 取番. 楚恐而去郢徙鄀. 27 十五年, 孔子相魯.
26 10년 봄에(十年春), 월나라는(越) 오왕이 영에 있고(吳王之在郢), 나라가 비었다는 것을(國空) 듣고(聞, 乃) 오나라를 쳤다(伐吳). 오나라가(吳) 별도의 군사를 시켜(使別兵) 월나라를 치도록 했다(擊越). 초나라가(楚) 진나라에 위급함을 알렸고(告急秦), 진나라가(秦) 군사를 보내(遣兵) 초를 구원하고(救楚) 오를 치니(擊吳), 오나라 군대가 패했다(吳師敗). 합려의 동생 부개는(闔廬弟夫) 진나라와 월나라가 오나라를 차례로 물리치고(秦越交敗吳), 오왕이 초에 머물며(吳王留楚)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見不去), 부개가(夫) 도망쳐(亡) 오나라에 돌아와(歸吳而) 스스로 즉위해(自立) 오왕이 되었다(爲吳王). 합려가 듣고(闔廬聞之),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乃引兵歸), 부개를 공격했다(攻夫). 부개가 패하여(夫敗) 초나라로 달아났다(奔楚). 초 소왕이(楚昭王) 이에(乃) 9월에(九月) 다시(復) 영에 들어갈 수 있었고(得以入郢, 而) 부개를 당계에 봉해서(封夫槩於堂谿), 당계씨가 되었다(爲堂谿氏). 11년에(十一年), 오왕이(吳王) 태자 부차로 하여금(使太子夫差) 월나라를 치게 하고(伐楚), 번읍을 취했다(取番). 초나라가 두려워하여(楚恐而) 영을 떠나(去郢) 약으로 옮겼다(徙鄀). 27 15년에(十五年), 공자가(孔子) 노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魯).
28 十九年夏, 吳伐越, 越王句踐迎擊之檇李. 越使死士挑戰, 三行造吳師, 呼, 自剄. 吳師觀之, 越因伐吳, 敗之姑蘇, 傷吳王闔廬指, 軍卻七里. 吳王病傷而死. 闔廬使立太子夫差, 謂曰: "爾而忘句踐殺汝父乎? 對曰: "不敢! 三年, 乃報越.
28 19년 여름에(十九年夏), 오나라가 월나라를 쳐서(吳伐越),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취리에서 맞이해 싸웠다(迎擊之檇李). 월나라가(越) 죽음을 각오한 전사를 시켜(使死士) 싸우게 하고(挑戰), 죄수로 꾸린 부대 셋이(三行) 오나라 군대에 돌진해서(造吳師), 소리 지르며(呼), 스스로 목을 찔렀다(自剄). 오나라 군대가(吳師) 이것을 보는데(觀之), 월나라가 이에(越因) 오나라를 쳐서(伐吳), 고소에서 무찌르고(敗之姑蘇), 오왕 합려의 손가락을 다치게 했다(傷吳王闔廬指), 군대가(軍) 7리를 물러났다(卻七里). 오왕이(吳王) 상처에 병이 생겨(病傷而) 죽었다(死). 합려는(闔廬) 태자 부차가 즉위하도록 하고(使立太子夫差), 말하길(謂曰): "너는(爾而) 구천이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을(句踐殺汝父) 잊을 수 있느냐(忘乎)?"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不敢)! 3년 안에(三年, 乃) 월나라에 복수할 것입니다(報越)"라고 했다.
* 死士(사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
* 三行(삼행): 죄인들로 편성된 세 소대(小隊)를 말한다.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월왕(越王) 구천(句踐)
29 王夫差元年, 以大夫伯嚭爲太宰. 習戰射, 常以報越爲志. 二年, 吳王悉精兵以伐越, 敗之夫椒, 報姑蘇也. 越王句踐乃以甲兵五千人棲於會稽, 使大夫種因吳太宰嚭而行成, 請委國爲臣妾. 吳王將許之, 伍子胥諫曰: "昔有過氏殺斟灌以伐斟尋, 滅夏后帝相. 帝相之妃后緡方娠, 逃於有仍而生少康. 少康爲有仍牧正. 有過又欲殺少康, 少康奔有虞. 有虞思夏德, 於是妻之以二女而邑之於綸, 有田一成, 有衆一旅. 後遂收夏衆, 撫其官職. 使人誘之, 遂滅有過氏, 復禹之績, 祀夏配天, 不失舊物. 今吳不如有過之彊, 而句踐大於少康. 今不因此而滅之, 又將寬之, 不亦難乎! 且句踐爲人能辛苦, 今不滅, 後必悔之. 吳王不聽, 聽太宰嚭, 卒許越平, 與盟而罷兵去.
29 오왕 부차 원년에(王夫差元年), 대부 백비를(以大夫伯嚭) 태재로 삼았다(爲太宰). 싸움과 활쏘기를 익히도록 하고(習戰射), 늘(常) 월나라에 복수할 것을(以報越) 뜻으로 삼았다(爲志).
2년에(二年), 오왕이(吳王) 정예병을 모두모아(悉精兵以) 월나라를 쳤고(伐越), 부소에서 무찌르고(敗之夫椒), 고소에서 복수했다(報姑蘇也). 월왕 구천은(越王句踐) 이에(乃) 갑병 5천 명으로(以甲兵五千人) 회계산에 숨어들어(棲於會稽), 대부 문종을 시켜(使大夫種) 오나라 태재 백비를 통해(因吳太宰嚭而) 화친을 청하고(行成), 나라를 맡겨(委國) 노비가 되기를(爲臣妾) 청했다(請).
오왕이 허락하려고 하자(吳王將許之), 오자서가 간하길(伍子胥諫曰): "옛날(昔) 유과씨가(有過氏) 짐관을 죽이고(殺斟灌以) 짐심을 쳐서(伐斟尋), 하후제상을 없앴습니다(滅夏后帝相). 제상의 왕비(帝相之妃) 후민이(后緡) 마침(方) 임신하고 있었고(娠), 유잉국에 도망가서(逃於有仍而) 소강을 낳았습니다(生少康). 소강이(少康) 유잉국의 목정이 되었습니다(爲有仍牧正). 유과씨가(有過) 또(又) 소강을 죽이려고 해서(欲殺少康), 소강이(少康) 유우로 달아났습니다(奔有虞). 유우가(有虞) 하나라의 은혜를 생각하고(思夏德), 이이(於是) 그에게 두 딸을 시집보내고(妻之以二女而) 운 땅에 읍을 주었고(邑之於綸), 땅 1성(사방 10리)을 가지고(有田一成), 무리 500을 가졌습니다(有衆一旅). 나중에(後) 마침내(遂) 하나라 백성을 거두어(收夏衆), 그 관직을 정돈했습니다(撫其官職). 사람을 시켜(使人) 유혹하고(誘之), 마침내(遂) 유우씨를 없애고(滅有過氏), 우의 공적을 회복시켜(復禹之績), 하나라에 제사 지내고(祀夏) 하늘에 짝해서(配天), 옛 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不失舊物). 지금(今) 오나라는(吳) 유과씨의 강력함보다 못하고(不如有過之彊, 而) 구천은(句踐) 소강보다 큽니다(大於少康). 지금(今) 이것을 따라 그를 없애지 않고(不因此而滅之), 또(又) 그에게 관용을 베풀면(將寬之), 또한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不亦難乎)! 또(且) 구천의 사람됨이(句踐爲人) 고난을 잘 견디므로(能辛苦), 지금 없애지 않으면(今不滅), 나중에(後)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必悔之)"라고 했다.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태재 백비의 말을 들어(聽太宰嚭), 마침내(卒) 월나라와 강화를 허락하고(許越平), 맹약하고(與盟而) 군대를 파하고 물러났다(罷兵去).
* 行成(행성): 화친을 청하다.
* 斟灌(짐관), 斟尋(짐심) : 모두 고대의 나라 이름이다.
* 牧正(목정): 새와 짐승을 기르는 관리의 우두머리.
30 七年, 吳王夫差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 新君弱, 乃興師北伐齊. 子胥諫曰: "越王句踐食不重味, 衣不重采, 弔死問疾, 且欲有所用其衆. 此人不死, 必爲吳患. 今越在腹心疾而王不先, 而務齊, 不亦謬乎! 吳王不聽, 遂北伐齊, 敗齊師於艾陵. 至繒, 召魯哀公而徵百牢. 季康子使子貢以周禮說太宰嚭, 乃得止. 因留略地於齊魯之南. 九年, 爲騶伐魯, 至與魯盟乃去. 十年, 因伐齊而歸. 十一年, 復北伐齊.
30 7년에(七年), 오왕 부차는(吳王夫差) 제나라 경공이 죽고(齊景公死而) 대신이 권력을 다투고(大臣爭寵), 새로운 임금이 어리다는 것을(新君弱) 듣고(聞, 乃) 군대를 일으켜(興師) 북으로 제나라를 쳤다(北伐齊).
오자서가 간하길(子胥諫曰): "월왕 구천의(越王句踐) 식사에(食) 둘 이상의 반찬이 없고(不重味), 옷에(衣) 둘 이상의 색을 쓰지 않고(不重采), 죽은 사람을 조문하고(弔死) 병든 사람을 문안하며(問疾), 또한(且) 그 백성을 쓸 곳이 있으려고 합니다(欲有所用其衆). 이 사람이(此人) 죽지 않으면(不死), 반드시(必) 오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爲吳患). 지금(今) 월나라는(越) 뱃속에 있는 병과 같아서(在腹心疾而) 왕께서 먼저 <손쓰지> 않고(王不先, 而) 제나라에 힘을 쏟는 것은(務齊),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不亦謬乎)!"라고 했다.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마침내(遂) 북으로(北) 제나라를 치고(伐齊), 애릉에서(於艾陵) 제나라 군대에 패했다(敗齊師). 증읍에 이르러(至繒), 노 애공을 불러(召魯哀公而) 백뢰를 요구했다(徵百牢). 계강자가(季康子) 자공을 시켜(使子貢) 주례로(以周禮) 태재 백비를 설득해서(說太宰嚭, 乃) 그만두도록 했다(得止). 이에(因) 머물려(留) 제나라와 노나라 남쪽에서(於齊魯之南) 땅을 공략했다(略地).
9년에(九年), 추나라를 위해(爲騶) 노나라를 치고(伐魯), 노나라와 맹약에 이르고(至與魯盟乃) 떠났다(去).
10년에(十年), 제나라를 치고(因伐齊而) 돌아왔다(歸).
11년에(十一年), 다시 북으로(復北) 제나라를 쳤다(伐齊).
* 重味(중미): 두 가지 이상의 반찬.
* 重采(중채): 두 가지 이상의 색깔.
* 百牢(백뢰): 소(牛)‧양(羊)‧돼지(豕)가 1뢰(牢)이니, 소‧양‧돼지를 각각 1백 마리씩 잡아서 베푸는 향연이다.
31 越王句踐率其衆以朝吳, 厚獻遺之, 吳王喜. 唯子胥懼, 曰: "是棄吳也. 諫曰: "越在腹心, 今得志於齊, 猶石田, 無所用. 且盤庚之誥有顛越勿遺, 商之以興. 吳王不聽, 使子胥於齊, 子胥屬其子於齊鮑氏, 還報吳王. 吳王聞之, 大怒, 賜子胥屬鏤之劍以死. 將死, 曰: "樹吾墓上以梓, 令可爲器. 抉吾眼置之吳東門, 以觀越之滅吳也.
31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그 무리를 이끌고(率其衆以) 오나라에 조회하면서(朝吳), 후하게(厚) 예물을 바치자(獻遺之), 오왕이 기뻐했다(吳王喜).
오직(唯) 오자서만이 두려워하며(子胥懼), 말하길(曰): "이것은(是) 오나라를 버리는 것이다(棄吳也)"라고 했다. 간하여 말하길(諫曰): "월나라에(越) 복심이 있으니(在腹心), 지금(今) 제나라에서 뜻을 얻었지만(승리했지만)(得志於齊), 돌밭과 같아서(猶石田), 쓸 데가 없습니다無所用). 또(且) 반경지고(盤庚之誥) 법도를 어겨 남기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有顛越勿遺), 상나라가(商之) 이것으로 흥했습니다(以興)"라고 했다.
오왕이 듣지 않고(吳王不聽),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고(使子胥於齊), 오자서가(子胥) 제나라 포씨에게(於齊鮑氏) 자식을 맡기고(屬其子), 돌아와(還) 오왕에게 보고했다(報吳王). 오왕이 이것을 듣고(吳王聞之), 크게 노하여(大怒),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주어(賜子胥屬鏤之劍以) 죽도록 했다(死).
죽으려 하며 말하길(將死, 曰): "내 묘 위에(吾墓上) 가래나무르 심고(樹以梓), 기물(오왕의 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令可爲器). 내 눈을 도려내(抉吾眼) 오나라 동문에 두고(置之吳東門, 以) 월나라가 오나라를 없애는 것을 보게 하라(觀越之滅吳也)"라고 했다.
* 石田(석전): 돌밭, 무용지물.
* 顛越(전월): 전락하다. 법도를 어김.
32 齊鮑氏弒齊悼公. 吳王聞之, 哭於軍門外三日, 乃從海上攻齊. 齊人敗吳, 吳王乃引兵歸. 33 十三年, 吳召魯ㆍ衛之君會於橐皋.
32 제나라 포씨가(齊鮑氏) 제 도공을 시해했다(弒齊悼公). 오왕이 이것을 듣고(吳王聞之), 군문 밖에서(於軍門外) 3일 동안 곡하고(哭三日, 乃) 바닷가로부터(從海上) 제나라를 쳤다(攻齊). 제나라가(齊人) 오나라를 물리쳤고(敗吳), 오왕이(吳王乃)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引兵歸). 33 13년에(十三年), 오나라가(吳) 노나라와 위나라 임금을 불러(召魯ㆍ衛之君) 탁고에서 회맹했다(會於橐皋).
34 十四年春, 吳王北會諸侯於黃池, 欲霸中國以全周室. 六月(戊)[丙]子, 越王句踐伐吳. 乙酉, 越五千人與吳戰. 丙戌, 虜吳太子友. 丁亥, 入吳. 吳人告敗於王夫差, 夫差惡其聞也. 或泄其語, 吳王怒, 斬七人於幕下. 七月辛丑, 吳王與晉定公爭長. 吳王曰: "於周室我爲長. 晉定公曰: "於姬姓我爲伯. 趙鞅怒, 將伐吳, 乃長晉定公. 吳王已盟, 與晉別, 欲伐宋. 太宰嚭曰: "可勝而不能居也. 乃引兵歸國. 國亡太子, 內空, 王居外久, 士皆罷敝, 於是乃使厚幣以與越平.
34 14년 봄에(十四年春), 오왕이(吳王) 북으로(北) 황지에서(於黃池) 제후를 모으고(會諸侯), 중국의 패자가 되어(欲霸中國以) 주나라 왕실을 보전하려고 했다(全周室).
6월 병자일에(六月(戊)[丙]子),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오나라를 쳤다(伐吳). 을유일에(乙酉), 월나라 5천 군사가(越五千人) 오나라와 싸웠다(與吳戰).
병술일에(丙戌), 오태자 우가 붙잡혔다(虜吳太子友).
정해일에(丁亥), 오나라에 들어왔다(入吳). 오나라 사람들이(吳人) 오왕 부차에게(於王夫差) 패한 것을 고했고(告敗), 부차는(夫差) 그 소문나는 것을 싫어했다(惡其聞也). 누구라도(或) 그 말을 새도록 하자(泄其語), 오왕이 노하여(吳王怒), 막하에서(於幕下) 7명을 베었다(斬七人).
7월 신축일에(七月辛丑), 오왕과(吳王與) 진 정공이(晉定公) 우두머리를 다투었다(爭長). 오왕이 말하길(吳王曰): "주실에서는(於周室) 내가(我) 윗사람이다(爲長)"라고 했다. '진 정공이 말하길(晉定公曰): "희성 가운데(於姬姓) 내가 맏이다(我爲伯). 조앙이 노하여(趙鞅怒), 오나라를 치려고 했고(將伐吳, 乃) 진 정공이 우두머리가 되었다(長晉定公). 오왕이 맹약하고 나서(吳王已盟), 진나라와 별도로(與晉別), 송나라를 치려고 했다(欲伐宋).
태재 백비가 말하길(太宰嚭曰): "이길 수 있지만(可勝而) 머물 수 없습니다(不能居也)"라고 했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乃引兵) 나라로 돌아왔다(歸國). 나라가(國) 태자를 잃었고(亡太子), 안이 비었는데(內空), 왕이(王) 바깥에 머문 것이 오래되어(居外久), 사가 모두(士皆) 지쳤고(罷敝), 이에(於是乃) 후한 뇌물로(使厚幣以) 월나라와(與越) 화친했다(平).
35 十五年, 齊田常殺簡公. 36 十八年, 越益彊. 越王句踐率兵(使)[復]伐敗吳師於笠澤. 楚滅陳.
35 15년에(十五年), 제나라 전상이(齊田常) 간공을 시해했다(殺簡公). 36 18년에(十八年), 월나라가 더욱 강해졌다(越益彊).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병사를 이끌고(率兵(使)) 다시 쳐서([復]伐) 입택에서 오나라 군사를 물리쳤다(敗吳師於笠澤).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켰다(楚滅陳).
37 二十年, 越王句踐復伐吳. 二十一年, 遂圍吳. 二十三年十一月丁卯, 越敗吳. 越王句踐欲遷吳王夫差於甬東, 予百家居之. 吳王曰: "孤老矣, 不能事君王也. 吾悔不用子胥之言, 自令陷此. 遂自剄死. 越王滅吳, 誅太宰嚭, 以爲不忠, 而歸.
37 20년에(二十年),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다시 오나라를 쳤다(復伐吳).
21년에(二十一年), 마침내(遂) 오나라를 포위했다(圍吳).
23년(二十三年) 10월 정묘일에(十一月丁卯), 월나라가 오나라를 물리쳤다(越敗吳). 월왕 구천이(越王句踐) 오왕부차를(吳王夫差) 용동에 옮기고(欲遷於甬東), 100호를 주어(予百家) 살도록 하려고 했다(居之).
오왕이 말하길(吳王曰): "내가 늙어서(孤老矣), 군왕을 섬길 수 없다(不能事君王也). 내가(吾)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不用子胥之言), 스스로(自) 이지경에 빠지도록 한 것을(令陷此) 후회한다(悔). 마침내(遂)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自剄死). 월왕이(越王) 오를 없애고(滅吳), 태재 백비가 불충한 것으로 죽이고(誅太宰嚭, 以爲不忠, 而) 돌아갔다(歸).
38 太史公曰: 孔子言‘太伯可謂至德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余讀春秋古文, 乃知中國之虞與荊蠻句吳兄弟也. 延陵季子之仁心, 慕義無窮, 見微而知淸濁. 嗚呼, 又何其閎覽博物君子也!
38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공자가 말하길(孔子言) ‘태백은(太伯) 지극히 덕이 있다고 할만하다(可謂至德矣), 세 번 천하를 양보했지만(三以天下讓), 백성이(民) 칭송할 수 없었다(無得而稱焉)’라고 했다. 내가(余) 춘추고문을 읽고서(讀春秋古文, 乃) 중국의 우나라와(中國之虞與) 형만의 구오가(荊蠻句吳) 형제인 것을(兄弟) 알았다(知也). 연릉계자의 인자한 마음이(延陵季子之仁心), 의리를 사모한 것이(慕義) 무궁하고(無窮), 미세한 것을 보고도(見微而) 청탁을 알았다(知淸濁). 아(嗚呼), 또(又) 얼마나(何其) 식견이 넓고(閎覽) 박식한(博物) 군자인가(君子也)!
* 閎覽(굉람): 보고 들은 것이 많고 식견이 넓다.
* 博物(박물) : 박식하다. 두루 많이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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