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太公望呂尙者, 東海上人. 其先祖嘗爲四嶽, 佐禹平水土甚有功. 虞夏之際封於呂, 或封於申, 姓姜氏. 夏商之時, 申·呂或封枝庶子孫, 或爲庶人, 尙其後苗裔也. 本姓姜氏, 從其封姓, 故曰呂尙.
1 태공망 여상은(太公望呂尙者), 동해 사람이다(東海上人). 그 선조가(其先祖) 일찍이(嘗) 사악이 되어(爲四嶽), 우를 보좌해서(佐禹) 물과 땅을 고르는 것에(平水土) 매우(甚) 공이 있었다(有功). 우하 때에는(虞夏之際) 여에 봉해졌고(封於呂), 혹(或) 신에 봉해져서(封於申), 강씨가 되었다(姓姜氏). 하상 시기에(夏商之時), 신과 여에(申·呂) 혹(或) 방계 자손이 봉해지기도 하고(封枝庶子孫), 혹 평민이 되기도 했는데(或爲庶人), 상은(尙) 그 먼 후손이다(其後苗裔也). 본래 성은(本姓) 강씨인데(姜氏), 그 봉지를 따라(從其封) 성을 삼았고(姓), 그러므로(故) 여상이라고 한다(曰呂尙).
* 四嶽(사악): 고대(古代) 중국(中國)에서, 사방(四方)의 네 큰 산인 동쪽(東-)의 타이산산(泰山山), 서쪽(西-)의 화산(華山), 남쪽(南-)의 헝산(衡山),衡山山 북쪽(北-)의 헝산(恒山)을恒山山 통틀어 이르는 말, 고대(古代) 중국(中國)에서, 사방(四方)의 제후(諸侯)를 이르던 말.
* 庶人(서인):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身分的) 특권(特權)을 갖지 못한 일반(一般) 사람.
* 苗裔(묘예): 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後代)의 자손(子孫).
2 呂尙蓋嘗窮困, 年老矣, 以漁釣奸周西伯. 西伯將出獵, 卜之, 曰'所獲非龍非彨非虎非羆; 所獲霸王之輔'. 於是周西伯獵, 果遇太公於渭之陽, 與語大說, 曰: "自吾先君太公曰『當有聖人適周, 周以興』. 子眞是邪? 吾太公望子久矣." 故號之曰'太公望」, 載與俱歸, 立爲師.
2 여상은(呂尙) 일찍이 가난했고(蓋嘗窮困), 나이가 들어(年老矣), 낚시를 하며(以漁釣) 주 서백을 만나려고 했다(奸周西伯). 서백이(西伯) 사냥을 나가려고 하면서(將出獵), 점을 쳤는데(卜之), 말하길(曰) '잡은 것이(所獲) 용도 아니고(非龍) 이무기도 아니고(非彨) 호랑이도 아니고(非虎) 곰도 아니며(非羆); 잡을 것이(所獲) 패왕의 보좌관이다(霸王之輔)'라고 했다. 이에(於是) 주 서백이(周西伯) 사냥을 나갔는데(獵), 과연(果) 위수 북쪽에서(於渭之陽) 태공을 만나서(遇太公),
함께 이야기하고(與語) 크게 기뻐하며 말하길(大說, 曰): "우리 선군 태공으로부터 말하길(自吾先君太公曰) '마땅히(當) 성인이 있어(有聖人) 주나라에 가고(適周), 주나라가(周) 흥할 것이다(以興)'라고 했다. 그대로(子) 참으로(眞)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是邪)? 우리 태공이(吾太公) 그대를 기다린 것이(望子) 오래되었다(久矣)."라고 했다.
그러므로(故) 불러 말하길(號之曰) '태공망(太公望)'이라 하고, 수레를 타고(載) 함께 돌아와서(與俱歸), 세워서(立) 스승으로 삼았다(爲師).
* 奸(간): 干과 통용된다. 구하다. 요구하다.
* 陽(양): 강의 북쪽과 또는 산의 남쪽을 陽이라고 한다.
3 或曰, 太公博聞, 嘗事紂. 紂無道, 去之. 游說諸侯, 無所遇, 而卒西歸周西伯. 或曰, 呂尙處士, 隱海濱. 周西伯拘羑里, 散宜生·閎夭素知而招呂尙. 呂尙亦曰'吾聞西伯賢, 又善養老, 盍往焉'. 三人者爲西伯求美女奇物, 獻之於紂, 以贖西伯. 西伯得以出, 反國. 言呂尙所以事周雖異, 然要之爲文武師.
3 누군가 말하길(或曰), 태공이(太公) 널리 배우고 들었는데(博聞), 일찍이(嘗) 주왕을 섬겼다(事紂). 주왕에게 도가 없으므로(紂無道), 떠났다(去之). 제후에게 유세했지만(游說諸侯), 만난 사람이 없어서(無所遇, 而) 마침내(卒) 서쪽으로 가서(西) 주 서백에게 귀의했다(歸周西伯).
누군가 말하길(或曰), 여상이(呂尙) 처사였는데(處士), 바닷가에 숨어 살았다(隱海濱). 주 서백이(周西伯) 유리에 갇혔을 때(拘羑里), 산의생과 굉요가(散宜生·閎夭) 평소 알아서(素知而) 여상을 초청했다(招呂尙). 여상이 또한 말하길(呂尙亦曰) '내가 듣기로(吾聞) 서백이 현명하고(西伯賢), 또(又) 노인을 잘 봉양하므로(善養老), 어찌 가지 않겠는가(盍往焉)'라고 했다. 세 사람이(三人者) 서백을 위해(爲西伯) 미녀와 기이한 물건을 구해서(求美女奇物), 주왕에게 바쳤고(獻之於紂), 그것으로(以) 서백을 속죄했다(贖西伯). 서백이(西伯) 나와서(得以出), 나라로 돌아왔다(反國). 여상이(呂尙) 주나라를 섬긴 까닭은(所以事周) 비록 다르다고 말하지만(言雖異), 그러나(然) 요약하면(要之) 문왕의 스승이 되었다(爲文武師).
* 三人者(삼인자): 산의생(散宜生), 굉요(閎夭), 여상(呂尙).
* 贖(속): 속죄하다. 재물을 바치고 죄를 면제받다.
4 周西伯昌之脫羑里歸, 與呂尙陰謀修德以傾商政, 其事多兵權與奇計, 故後世之言兵及周之陰權皆宗太公爲本謀. 周西伯政平, 及斷虞芮之訟, 而詩人稱西伯受命曰文王. 伐崇·密須·犬夷, 大作豐邑. 天下三分, 其二歸周者, 太公之謀計居多.
4 주 서백 창이(周西伯昌之) 유리에서 벗어나(脫羑里) 돌아와서(歸), 여상과(與呂尙) 계획을 꾸미고(陰謀) 덕을 닦아(修德以) 상나라 정권을 뒤집었으니(傾商政), 그 일에(其事) 용병술과 기이한 계책이 많았고(多兵權與奇計), 그러므로(故) 후세에(後世之) 군사와 주나라의 은밀한 술수를 말할 때면(言兵及周之陰權) 모두(皆) 태공이 만든 책략을(太公爲本謀) 기본으로 보았다(宗). 주 서백의 정치가(周西伯政) 공평하고(平), 우와 예의 소송을 잘 해결함에 이르러(及斷虞芮之訟, 而) 시인들이(詩人) 서백이(西伯) 천명을 받아(受命) 문왕이 되었다고(曰文王) 칭송했다(稱). 숭과 밀수, 견이를 정벌하고(伐崇·密須·犬夷), 풍읍을 크게 지었다(大作豐邑). 천하가(天下) 셋으로 나뉘어(三分), 그 둘이(其二) 주나라에 귀의한 것은(歸周者), 태공의 계책이(太公之謀計) 많은 것이 있다(居多).
* 兵權(병권): 용병술.
5 文王崩, 武王即位. 九年, 欲修文王業, 東伐以觀諸侯集否. 師行, 師尙父左杖黃鉞, 右把白旄以誓, 曰: "蒼兕蒼兕, 總爾衆庶, 與爾舟楫, 後至者斬!" 遂至盟津. 諸侯不期而會者八百諸侯. 諸侯皆曰: "紂可伐也." 武王曰: "未可." 還師, 與太公作此太誓.
5 문왕이 죽고(文王崩), 무왕이 즉위했다(武王即位). 9년에(九年), 문왕의 업적을 이으려고 하며(欲修文王業), 동으로 정벌에 나서(東伐以) 제후가 모이는지 모이지 않는지 살폈다(觀諸侯集否). 군대가 길을 나서(師行), 사상보가(師尙父) 왼손에(左) 황금 도끼를 잡고(杖黃鉞), 오른손에(右) 백모를 들고(把白旄以) 맹세하여 말하길(誓, 曰): "창사여 창사여(蒼兕蒼兕), 너무 무리를 모아서(總爾衆庶), 너와 함께(與爾) 배를 타고(舟楫), 늦게 오는 사람은 베어라(後至者斬)!"라고 했다.
마침내(遂) 맹진에 이르렀다(至盟津). 제후 가운데(諸侯) 기약하지 않았는데(不期而) 모인 사람이(會者) 800이었다(八百諸侯).
제후가 모두 말하길(諸侯皆曰): "주왕을(紂) 칠 수 있습니다(可伐也)."라고 했다.
무왕이 말하길(武王曰): "안된다(未可)."라고 했다. 군대를 돌려(還師), 태공과 함께(與太公) 이것을 대서로 지었다(作此太誓).
* 白旄(백모): 털이 긴 쇠꼬리를 장대 끝에 매달아 놓은 기(旗).
* 舟楫(주즙): ‘배와 삿대’라는 뜻으로, 배 전체(全體)를 이르는 말.
6 居二年, 紂殺王子比干, 囚箕子. 武王將伐紂, 卜龜兆, 不吉, 風雨暴至. 群公盡懼, 唯太公彊之勸武王, 武王於是遂行. 十一年正月甲子, 誓於牧野, 伐商紂. 紂師敗績. 紂反走, 登鹿臺, 遂追斬紂. 明日, 武王立于社, 群公奉明水, 衛康叔封布采席, 師尙父牽牲, 史佚策祝, 以告神討紂之罪. 散鹿臺之錢, 發鉅橋之粟, 以振貧民. 封比干墓, 釋箕子囚. 遷九鼎, 修周政, 與天下更始. 師尙父謀居多.
6 2년이 지나(居二年), 주왕이(紂) 왕자 비간을 죽이고(殺王子比干), 기자를 가두었다(囚箕子). 무왕이(武王) 주왕을 치려고 하면서(將伐紂), 점을 쳐서(卜) 조짐을 보았는데(龜兆), 불길했고(不吉), 비바람이(風雨) 세차게 몰아쳤다(暴至). 여러 공이(群公) 모두 두려워했는데(盡懼), 오직(唯) 태공이(太公) 강하게 무왕에게 권했고(彊之勸武王), 무왕이(武王) 이에(於是) 마침내 길을 나섰다(遂行). 11년 정월 갑자일에(十一年正月甲子), 목야에서 맹세하고(誓於牧野), 상주를 쳤다(伐商紂). 주왕의 군대가(紂師) 싸움에 졌다(敗績). 주왕이(紂) 되돌아 달아나(反走), 녹대에 올랐고(登鹿臺), 마침내(遂) 쫓아서(追) 주왕을 베었다(斬紂). 다음날(明日), 무왕이(武王) 사에서 즉위하고(立于社), 여러 공이(群公) 맑은 물을 받들고(奉明水), 위강숙 봉이(衛康叔封) 자리를 펴고(布采席), 사상보가(師尙父) 희생을 끌어 오고(牽牲), 사일이(史佚) 책문을 지어(策祝), 주왕의 죄를 토벌한 것을(討紂之罪) 신에고 고했다(以告神). 녹대의 돈을(鹿臺之錢) 풀고(散), 거교의 곡식을 풀어(發鉅橋之粟, 以) 가난한 백성을 구휼했다(振貧民). 비간의 무덤을 봉토하고(封比干墓), 기자를 죄수인에서 풀어주었다(釋箕子囚). 구정을 옮겨(遷九鼎), 주나라의 정치를 다듬고(修周政), 천하와(與天下) 다시 시작했다(更始). 사상보의 계책이(師尙父謀) 많이 있었다(居多).
* 卜龜(복귀): 거북의 등껍질을 태워 나타나는 문양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
* 敗績(패적): 자기(自己) 나라에 패전(敗戰)을 일컫는 말.
* 策祝(책축): 筴祝(책축). 죽책(竹冊)의 제문(祭文).
7 於是武王已平商而王天下, 封師尙父於齊營丘. 東就國, 道宿行遲. 逆旅之人曰: "吾聞時難得而易失. 客寢甚安, 殆非就國者也." 太公聞之, 夜衣而行, 犁明至國. 萊侯來伐, 與之爭營丘. 營丘邊萊. 萊人, 夷也, 會紂之亂而周初定, 未能集遠方, 是以與太公爭國.
7 이에(於是) 무왕이(武王) 상나라를 평정하고 나서(已平商而) 천하에 왕노릇 하고(王天下), 사상보를(師尙父) 제나라 영구에 봉했다(封於齊營丘). 동쪽으로(東) 나라에 나아가면서(就國), 길에 머무느라(道宿) 행렬이 느려졌다(行遲).
숙소의 누군가 말하길(逆旅之人曰): "내가 듣기로(吾聞) 시간은(時) 얻기 어렵지만(難得而) 잃기 쉽다고 합니다(易失). 손님의 잠자리가(客寢) 아주 편안하니(甚安), 아마도(殆) 나라에 나아가는 사람이 아는 것 같습니다(非就國者也)."라고 했다.
태공이 이것을 듣고(太公聞之), 밤에(夜) 옷을 입고 나가서(衣而行), 동틀 무렵(犁明) 나라에 도착했다(至國). 내후가(萊侯) 와서 공격했고(來伐), 그와(與之) 영구에서 싸웠다(爭營丘). 영구는(營丘) 내와 국경을 접했다(邊萊). 내 사람은(萊人), 이족이고(夷也), 마침(會) 주왕이 어지럽히고(紂之亂而) 주나라가(周) 처음 안정되어(初定), 먼 곳에 <힘을> 모으지 못했으므로(未能集遠方), 이 때문에(是以) 태공과(與太公) 나라를 다투었다(爭國).
* 逆旅(역려): 여인숙.
* 犁明(리명): 犁(리)는 黎(여)와 통용된다. 黎明(여명)은 동틀 무렵.
8 太公至國, 修政, 因其俗, 簡其禮, 通商工之業, 便魚鹽之利, 而人民多歸齊, 齊爲大國. 及周成王少時, 管蔡作亂, 淮夷畔周, 乃使召康公命太公曰: "東至海, 西至河, 南至穆陵, 北至無棣, 五侯九伯, 實得征之." 齊由此得征伐, 爲大國. 都營丘.
8 태공이(太公) 나라에 이르러(至國), 정치를 닦고(修政), 그 풍속을 따라(因其俗), 예를 간략하게 하고(簡其禮), 상공업을 통하게 해서(通商工之業), 어업과 염업의 이익을 편하게 해서(便魚鹽之利, 而) 백성이(人民) 제나라에 많이 귀의하니(多歸齊), 제나라가(齊) 큰 나라가 되었다(爲大國). 주 성왕이 어렸을 때(及周成王少時), 관숙과 채숙이(管蔡) 반란을 일으켰고(作亂), 회이가(淮夷) 주나라를 배반하니(畔周),
소강공을 보내(乃使召康公) 태공에게 명령하길(命太公曰): "동으로(東) 바다에 이르고(至海), 서쪽으로(西) 황하에 이르고(至河), 남으로(南) 목릉에 이르고(至穆陵), 북으로(北) 무체에 이르기까지(至無棣), 다섯 제후와 아홉 우두머리가(五侯九伯), 잘못이 있으면(實得) 정벌하라(征之)."라고 했다.
제나라가(齊) 이것을 따라(由此) 정벌해서(得征伐), 대국이 되었다(爲大國). 영구에 도읍했다(都營丘).
* 五侯九伯(오후구백) : 오후(五侯)는 다섯 등급의 제후(諸侯). 곧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을 말하며, 九伯(구백)은 구주(九州) 각지의 장관.
9 蓋太公之卒百有餘年, 子丁公呂伋立. 丁公卒, 子乙公得立. 乙公卒, 子癸公慈母立. 癸公卒, 子哀公不辰立.
9 대개(蓋) 태공이 죽은 것이(太公之卒) 백여 년이 지나서였고(百有餘年), 아들(子) 정공 여급이 즉위했다(丁公呂伋立). 정공이 죽고(丁公卒), 아들 을공이 즉위했다(子乙公得立). 을공이 죽고(乙公卒), 아들 계공 자모가 즉위했다(子癸公慈母立). 계공이 죽고(癸公卒), 아들 애공 부진이 즉위했다(子哀公不辰立).
10 哀公時, 紀侯譖之周, 周烹哀公而立其弟靜, 是爲胡公. 胡公徙都薄泵, 而當周夷王之時.
10 애공 때(哀公時), 기후가(紀侯) 그를 주나라에 참소했고(譖之周), 주나라가(周) 애공을 삶아 죽이고(烹哀公而) 그 동생 정을 세웠는데(立其弟靜), 이 사람이(是) 호공이다(爲胡公). 호공이(胡公) 도읍을 박고로 옮겼는데(徙都薄泵, 而) 주나라 이왕 때에 해당한다(當周夷王之時).
11 哀公之同母少弟山怨胡公, 乃與其黨率營丘人襲攻殺胡公而自立, 是爲獻公. 獻公元年, 盡逐胡公子, 因徙薄泵都, 治臨菑.
11 애공의 어머니가 같은 동생 산이(哀公之同母少弟山) 호공에게 원한을 품고(怨胡公, 乃) 그 무리와 함께(與其黨) 영구 사람들을 이끌고(率營丘人) 습격해서(襲攻) 호공을 죽이고(殺胡公而) 스스로 즉위하니(自立), 이 사람이 헌공이다(是爲獻公). 헌공 원년에(獻公元年), 호공의 아들을(胡公子) 모두 쫓아내고(盡逐), 이어(因) 박고에서 옮겨서(徙薄泵都), 임치에서 다스렸다(治臨菑).
12 九年, 獻公卒, 子武公壽立. 武公九年, 周厲王出奔, 居彘. 十年, 王室亂, 大臣行政, 號曰'共和'. 二十四年, 周宣王初立.
12 9년에(九年), 헌공이 죽고(獻公卒), 아들 무공 수가 즉위했다(子武公壽立). 무공 9년에(武公九年), 주 려왕이(周厲王) 도망쳐 나와(出奔), 체읍에 머물렀다(居彘). 10년에(十年), 왕실이 어지러워지고(王室亂), 대신이 정권을 행사하니(大臣行政), 불러서(號) 공화라고 했다(曰'共和'). 24년에(二十四年), 주 선왕이 즉위했다(周宣王初立).
13 二十六年, 武公卒, 子厲公無忌立. 厲公暴虐, 故胡公子復入齊, 齊人欲立之, 乃與攻殺厲公. 胡公子亦戰死. 齊人乃立厲公子赤爲君, 是爲文公, 而誅殺厲公者七十人.
13 26년에(二十六年), 무공이 죽고(武公卒), 아들 여공 무기가 즉위했다(子厲公無忌立). 여공이(厲公) 포악하고 잔학햇고(暴虐), 그러므로(故) 호공의 아들이(胡公子) 다시(復) 제나라에 들어왔을 때(入齊),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그를 세우려고 했고(欲立之, 乃) 함께(與) 여공을 공격해서 죽였다(攻殺厲公). 호공의 아들도 또한(胡公子亦) 싸움에서 죽었다(戰死).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이에(乃) 여공의 아들 적을 세워(立厲公子赤) 임금으로 삼으니(爲君), 이 사람이 문공이고(是爲文公, 而) 여공을 죽인 사람(殺厲公者) 70여 명을 죽였다(誅七十人).
14 文公十二年卒, 子成公脫立. 成公九年卒, 子莊公購立.
14 문공이 12년 만에 죽고(文公十二年卒), 아들 성공 탈이 즉위했다(子成公脫立). 성공이 9년 만에 죽고(成公九年卒), 아들 장공 구가 즉위했다(子莊公購立).
15 莊公二十四年, 犬戎殺幽王, 周東徙雒. 秦始列爲諸侯. 五十六年, 晉弒其君昭侯.
15 장공 24년에(莊公二十四年), 견융이(犬戎) 유왕을 죽이고(殺幽王), 동주가(周東) 낙읍으로 옮겼다(徙雒). 진나라가(秦) 처음으로(始) 반열에 들어(列) 제후가 되었다(爲諸侯). 56년에(五十六年), 진나라가(晉) 그 임금 소후를 시했다(弒其君昭侯).
16 六十四年, 莊公卒, 子釐公祿甫立.
16 64년에(六十四年), 장공이 죽고(莊公卒), 아들 희공 녹보가 즉위했다(子釐公祿甫立).
17 釐公九年, 魯隱公初立. 十九年, 魯桓公弒其兄隱公而自立爲君.
17 희공 9년에(釐公九年), 노 은공이(魯隱公) 처음 즉위했다(初立). 19년에(十九年), 노 환공이(魯桓公) 그 형 은공을 시해하고(弒其兄隱公而) 스스로 즉위해서(自立) 임금이 되었다(爲君).
18 二十五年, 北戎伐齊. 鄭使太子忽來救齊, 齊欲妻之. 忽曰: "鄭小齊大, 非我敵." 遂辭之.
18 25년에(二十五年), 북융이(北戎) 제나라를 쳤다(伐齊). 정나라가(鄭) 태자 홀을 보내(使太子忽) 와서(來) 제나라를 구했고(救齊), 제나라가(齊)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다(欲妻之).
홀이 말하길(忽曰): "정나라는 작고(鄭小) 제나라 크기 때문에(齊大), 내게 맞지 않습니다(非我敵)."라고 했다. 마침내(遂) 사양했다(辭之).
19 三十二年, 釐公同母弟夷仲年死. 其子曰公孫無知, 釐公愛之, 令其秩服奉養比太子.
19 32년에(三十二年), 희공과(釐公) 어머니가 같은 동생(同母弟) 이중년이 죽었다(夷仲年死). 그 아들이(其子) 공손무지인데(曰公孫無知), 희공이 그를 아꼈고(釐公愛之), 그 녹봉과 거마의 복실을(令其秩服) 태자와 같게 대우했다(奉養比太子).
* 秩服(질복) : 녹봉 등급과 거마 복식(服飾).
* 奉養(봉양) : 대우하다.
* 比(비) : ~에 따라. ~에 근거하여.
20 三十三年, 釐公卒, 太子諸兒立, 是爲襄公.
20 33년에(三十三年), 희공이 죽고(釐公卒), 태자 제아가 즉위했고(太子諸兒立), 이 사람이 양공이다(是爲襄公).
21 襄公元年, 始爲太子時, 嘗與無知鬬, 及立, 絀無知秩服, 無知怨.
21 양공 원년에(襄公元年), 처음(始) 태자가 되었을 때(爲太子時), 일찍이(嘗) 무지와 싸웠으므로(與無知鬬), 즉위해서(及立), 무지의 복식과 등급을 떨어뜨려서(絀無知秩服), 무지가 원한을 품었다(無知怨).
22 四年, 魯桓公與夫人如齊. 齊襄公故嘗私通魯夫人. 魯夫人者, 襄公女弟也, 自釐公時嫁爲魯桓公婦, 及桓公來而襄公復通焉. 魯桓公知之, 怒夫人, 夫人以告齊襄公. 齊襄公與魯君飲, 醉之, 使力士彭生抱上魯君車, 因拉殺魯桓公, 桓公下車則死矣. 魯人以爲讓, 而齊襄公殺彭生以謝魯.
22 4년에(四年), 노 환공이(魯桓公) 부인과(與夫人) 제나라에 갔다(如齊). 제 양공이(齊襄公) 일찍이(嘗) 노 부인과 사통했기 때문이다(故私通魯夫人). 노 부인은(魯夫人者), 양공의 여동생이고(襄公女弟也), 희공 때부터(自釐公時) 시집가서(嫁) 노 환공의 부인이 되었는데(爲魯桓公婦), 환공이 왔을 때(及桓公來而) 양공이(襄公) 다시 사통했다(復通焉). 노 환공이(魯桓公) 이것을 알고(知之), 부인에게 화를 냈고(怒夫人), 부인이(夫人) 이것을(以) 제 양공에게 알렸다(告齊襄公). 제 양공이(齊襄公) 노군과 술을 마시다(與魯君飲), 취해서(醉之), 역사 팽생을 시켜(使力士彭生) 노군을 마차에서 끌어안고(抱上魯君車), 이에(因) 제 환공을 늑골을 부러뜨려 죽였고(拉殺魯桓公), 환공이 마차에서 내려(桓公下車則) 죽었다(死矣). 노나라 사람들이(魯人) 양공을 꾸짖었고(以爲讓, 而) 제 양공이(齊襄公) 팽생을 죽여(殺彭生以) 노나라에 사죄했다(謝魯).
* 拉殺(납살): 늑골을 부러뜨려 죽이다.
23 八年, 伐紀, 紀遷去其邑.
23 8년에(八年), 기나라를 쳤고(伐紀), 기나라가(紀) 그 읍을 옮겨 도망갔다(遷去其邑).
24 十二年, 初, 襄公使連稱·管至父戍葵丘, 瓜時而往, 及瓜而代. 往戍一歲, 卒瓜時而公弗爲發代. 或爲請代, 公弗許. 故此二人怒, 因公孫無知謀作亂. 連稱有從妹在公宮, 無寵, 使之閒襄公, 曰'事成以女爲無知夫人'. 冬十二月, 襄公游姑棼, 遂獵沛丘. 見彘, 從者曰'彭生'. 公怒, 射之, 彘人立而啼. 公懼, 墜車傷足, 失屨. 反而鞭主屨者茀三百. 茀出宮. 而無知·連稱·管至父等聞公傷, 乃遂率其衆襲宮. 逢主屨茀, 茀曰: "且無入驚宮, 驚宮未易入也." 無知弗信, 茀示之創, 乃信之. 待宮外, 令茀先入. 茀先入, 即匿襄公戶閒. 良久, 無知等恐, 遂入宮. 茀反與宮中及公之幸臣攻無知等, 不勝, 皆死. 無知入宮, 求公不得. 或見人足於戶閒, 發視, 乃襄公, 遂弒之, 而無知自立爲齊君.
24 12년에(十二年), 애초(初), 양공이(襄公) 연칭과 관지보를 시켜(使連稱·管至父) 규구를 지키도록 하면서(戍葵丘), 오이가 익을 때(瓜時而) 가서(往), 오이가 익을 때(及瓜而) 바꾸기로 했다(代). 가서 변방을 지킨 것이(往戍) 1년이 지나고(一歲), 마침내(卒) 오이가 익었을 때(瓜時而) 공이(公) <군사를> 징발해서 대신하도록 하지 않았다(弗爲發代). 누군가(或) 대신해줄 것을 청했지만(爲請代), 공이 허락하지 않았다(公弗許). 그러므로(故) 이 두 사람이(此二人) 원한을 품었고(怒), 이에(因) 공손무지와 모의해서(公孫無知謀) 반란을 일으켰다(作亂). 연칭에게(連稱) 누이동생이 있어(有從妹) 공의 궁에 있었는데(在公宮), 총애가 없으므로(無寵), 양공을 살피도록 시키면서(使之閒襄公), 말하길(曰) '일이 이루어지면(事成以) 너는(女) 무지의 부인이 될 것이다(爲無知夫人)'고 했다.
겨울(冬) 12월에(十二月), 양공이(襄公) 고분을 유람하고(游姑棼), 마침내(遂) 패구에서 사냥했다(獵沛丘). 큰 돼지를 보자(見彘), 종자가 말하길(從者曰) '팽생(彭生)'이라고 했다. 공이 노하여(公怒), 화살을 쏘았는데(射之), 돼지가 일어나(彘人立而) 울부짖었다(啼). 공이 두려워(公懼), 마차에서 떨어져(墜車) 발을 다쳤고(傷足), 신발을 잃어버렸다(失屨). 돌아와(反而) 신발을 담당하는 불에게 300대의 채찍질을 했다(鞭主屨者茀三百). 불이 궁을 나가는데(茀出宮. 而) 무지와 연칭, 관지보 등이(無知·連稱·管至父等) 공이 다친 것을 듣고(聞公傷), 마침내(乃遂) 그 무리를 이끌고(率其衆) 궁을 습격했다(襲宮).
신발을 담당하는 불을 만나자(逢主屨茀), 불이 말하길(茀曰): "다만(且) 궁을 놀라게 하면서 들어가지 말아야 하니(無入驚宮), 궁을 놀라게 하는 것은(驚宮)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未易入也)."라고 했다.
무지가(無知) 믿지 않자(弗信), 불이(茀) 다친 것을 보여주었고(示之創), 이에 믿었다(乃信之). 궁 밖에서 기다리면서(待宮外), 불로 하여금(令茀) 먼저 들어가도록 했다(先入). 불이 먼저 들어가서(茀先入), 바로(即) 문 사이에(戶閒) 양공을 숨겼다(匿襄公). 오래 지나서(良久), 무지 등이 두려워졌고(無知等恐), 마침내 궁에 들어갔다(遂入宮). 불이 배반해서(茀反) 궁중 사람들과 공이 총애하는 신하와 함께(與宮中及公之幸臣) 무지 등을 공격했지만(攻無知等), 이기지 못하고(不勝), 모두 죽었다(皆死). 무지가(無知) 궁에 들어갔지만(入宮), 공을 구하는데 실패했다(求公不得). 누군가(或) 문 사이에서(於戶閒) 사람의 발을 보고(見人足), 열어서(發) 보니(視), 양공이었고(乃襄公), 마침내 공을 죽이고(遂弒之, 而) 무지가(無知) 스스로 즉위해서(自立) 제군이 되었다(爲齊君).
* 戍(수): 수자리. 변방을 지키다.
* 瓜時(과시): 칠월에 오이가 익으므로 칠월을 말한다. 벼슬아치의 교체 시기. 과월(瓜月). 과만(瓜滿). <좌전(左傳) 장공(莊公)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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