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頃公元年, 楚莊王彊, 伐陳; 二年, 圍鄭, 鄭伯降, 已復國鄭伯.
53 경공 원년에(頃公元年), 초 장왕이 강해져서(楚莊王彊), 진나라를 치고(伐陳); 2년에(二年), 정나라를 포위하고(圍鄭), 정백이 항복했지만(鄭伯降), 얼마 뒤(已) 정백에게(鄭伯) 나라를 돌려주었다(復國).
54 六年春, 晉使郤克於齊, 齊使夫人帷中而觀之. 郤克上, 夫人笑之. 郤克曰: "不是報, 不復涉河!" 歸, 請伐齊, 晉侯弗許. 齊使至晉, 郤克執齊使者四人河內, 殺之. 八年. 晉伐齊, 齊以公子彊質晉, 晉兵去. 十年春, 齊伐魯·衛. 魯·衛大夫如晉請師, 皆因郤克. 晉使郤克以車八百乘爲中軍將, 士燮將上軍, 欒書將下軍, 以救魯·衛, 伐齊. 六月壬申, 與齊侯兵合靡笄下. 癸酉, 陳于礱逄丑父爲齊頃公右. 頃公曰: "馳之, 破晉軍會食." 射傷郤克, 流血至履. 克欲還入壁, 其御曰: "我始入, 再傷, 不敢言疾, 恐懼士卒, 願子忍之." 遂復戰. 戰, 齊急, 丑父恐齊侯得, 乃易處, 頃公爲右, 車絓於木而止. 晉小將韓厥伏齊侯車前, 曰'寡君使臣救魯·衛」, 戲之. 丑父使頃公下取飲, 因得亡, 脫去, 入其軍. 晉郤克欲殺丑父. 丑父曰: "代君死而見僇, 後人臣無忠其君者矣." 克捨之, 丑父遂得亡歸齊. 於是晉軍追齊至馬陵. 齊侯請以寶器謝, 不聽; 必得笑克者蕭桐叔子, 令齊東畝. 對曰: "叔子, 齊君母. 齊君母亦猶晉君母, 子安置之? 且子以義伐而以暴爲後, 其可乎?" 於是乃許, 令反魯·衛之侵地.
54 6년 봄에(六年春), 진나라가(晉) 각극을(郤克)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고(使於齊), 제나라가(齊) 부인으로 하여금(使夫人) 휘장 안에서(帷中而) 그를 살피도록 했다(觀之). 각극이 올라가자(郤克上), 부인이(夫人) 그를 비웃었다(笑之).
각극이 말하길(郤克曰): "이것을 갚지 못하면(不是報), 다시 황하를 건너지 않을 것이다(不復涉河)!"라고 했다.
돌아가서(歸), 제나라 치기를 청했지만(請伐齊), 진후가(晉侯) 허락하지 않았다(弗許). 제나라 사신이(齊使) 진나라에 이르자(至晉), 각극이(郤克) 하내에서(河內) 제나라 사자 넷을 잡아(執齊使者四人), 죽였다(殺之).
8년에(八年). 진나라가(晉) 제나라를 치자(伐齊), 제나라가(齊) 공자 강을(以公子彊)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고(質晉), 진나라 군사가 물러갔다(晉兵去).
10년 봄에(十年春), 제나라가(齊) 노나라와 위나라를 쳤다(伐魯·衛). 노나라와 위나라 대부가(魯·衛大夫) 진나라에 가서(如晉) 군대를 요청했는데(請師), 모두(皆) 각극을 통했다(因郤克). 진나라가(晉) 각극으로 하여금(使郤克) 전차 800승으로(以車八百乘) 중군장을 삼고(爲中軍將), 사섭을(士燮) 상장군으로 삼고(將上軍), 난서를 하장군으로 삼아(欒書將下軍), 이것으로(以) 노나라와 위나라를 구하고(救魯·衛), 제나라를 쳤다(伐齊).
6월 임신일에(六月壬申), 제후의 군대와(與齊侯兵) 미계산 아래서 만났다(合靡笄下). 계유일에(癸酉), 안에 진을 치고(陳于礱) 방추보가(逄丑父) 제 경공의 우측이 되었다(爲齊頃公右).
경공이 말하길(頃公曰): "달려가서(馳之), 진나라 군대를 깨뜨리고(破晉軍) 밥 먹자(會食)."라고 했다.
화살로(射) 각극에게 상처를 입히고(傷郤克), 피를 흘려(流血) 발에 이르렀다(至履). 각극이(克) 돌아가 보루에 들어가려고 하자(欲還入壁), 말몰이가 말하길(其御曰): "내가(我) 싸움을 시작하고(始入), 두 번 다쳤는데(再傷), 감히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것은(不敢言疾), 병사들이 두려워할 것을 걱정한 것이니(恐懼士卒), 원컨대(願) 그대가 참으시오(子忍之)."라고 했다.
마침내(遂) 다시 싸웠다(復戰). 싸우다가(戰), 제나라가 위급해졌고(齊急), 방추보는(丑父) 제후가 잡힐 것을 걱정해서(恐齊侯得, 乃) 자리를 바꾸고(易處), 경공이(頃公) 우측이 되었는데(爲右), 전차가(車) 나무에 걸려(絓於木而) 멈췄다(止). 진나라 소장(晉小將) 한궐이(韓厥) 제후의 전차 앞에 엎드려(伏齊侯車前), 말하길(曰) '우리 군이(寡君) 신으로 하여금(使臣) 노나라와 위나라를 구하라고 했습니다(救魯·衛)'라고 하며, 비웃었다(戲之). 방추보가(丑父) 경공으로 하여금(使頃公) 내려서(下) 물을 가져오도록 하고(取飲), 이에(因) 도망쳐서(得亡), 벗어나(脫去), 그 군대에 들어갔다(入其軍). 진나라 각극이(晉郤克) 방추보를 죽이려고 했다(欲殺丑父).
방추보가 말하길(丑父曰): "임금을 대신해서 죽는데(代君死而) 죽임을 당한다면(見僇), 뒷사람인 신하 가운데(後人臣) 그 임금에게 충성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無忠其君者矣)."라고 했다.
각극이 그를 풀어주고(克捨之), 방추보가(丑父) 마침내(遂) 도망쳐 제나라로 돌아갔다(得亡歸齊). 이에(於是) 진나라 군대가(晉軍) 제나라를 추격해서(追齊) 마릉에 이르렀다(至馬陵). 제후가(齊侯) 보물로 사죄를 청했지만(請以寶器謝), 듣지 않았고(不聽); 반드시(必) 각극을 비웃은 사람인(笑克者) 소동숙자를 얻고(得蕭桐叔子), 제나라로 하여금(令齊) 동쪽으로 밭고랑을 내도록 했다(東畝).
대답하여 말하길(對曰): "숙자는(叔子), 제나라 임금의 어머니다(齊君母). 제군의 어머니도 또한(齊君母亦) 진군의 어머니와 같은데(猶晉君母), 그대가(子) 어찌하겠는가(安置之)? 또한(且) 그대가(子) 의로써(以義) 정벌하면서(伐而) 포악함으로(以暴) 뒤를 삼으니(爲後), 그것이 옳은가(其可乎)?"라고 했다.
이에(於是) 허락하고(乃許), 노나라와 위나라의 침략한 땅을 돌려주도록 했다(令反魯·衛之侵地).
* 礱(농): 안(鞍), 택리지에 ‘안성(鞍城)은 지금의 마안성(馬鞍城)으로 제주(濟州) 평음현(平陰縣)에 있었다‘고 하였다.
55 十一年, 晉初置六卿, 賞鞌之功. 齊頃公朝晉, 欲尊王晉景公, 晉景公不敢受, 乃歸. 歸而頃公弛苑囿, 薄賦斂, 振孤問疾, 虛積聚以救民, 民亦大說. 厚禮諸侯. 竟頃公卒, 百姓附, 諸侯不犯.
55 11년에(十一年), 진나라가(晉) 처음(初) 육경을 두고(置六卿), 안 싸움의 공을 상주는 것이었다(賞鞌之功). 제 경공이(齊頃公) 진나라에 조회하고(朝晉), 진 경공을 왕으로 높이려고 하고(欲尊王晉景公), 진 경공이(晉景公) 감히 받지 못했고(不敢受), 이에 돌아갔다(乃歸). 돌아가서(歸而) 경공이(頃公) 원유의 금지를 풀고(弛苑囿), 부렴을 약하게 하고(薄賦斂), 고아를 돌보고 병든 사람은 문안하고(振孤問疾), <창고에> 모은 것을 꺼내(虛積聚以) 백성을 구제하니(救民), 백성이 또한(民亦) 크게 기뻐했다(大說). 두터운 예로(厚禮) 제후를 대했다(諸侯). 마침내(竟) 경공이 죽을 때까지(頃公卒), 백성이 따랐고(百姓附), 제후도 침범하지 않았다(諸侯不犯).
* 虛(허): 꺼내다.
56 十七年, 頃公卒, 子靈公環立.
56 17년에(十七年), 경공이 죽고(頃公卒), 아들 영공 환이 즉위했다(子靈公環立).
57 靈公九年, 晉欒書弒其君厲公. 十年, 晉悼公伐齊, 齊令公子光質晉. 十九年, 立子光爲太子, 高厚傅之, 令會諸侯盟於鐘離. 二十七年, 晉使中行獻子伐齊. 齊師敗, 靈公走入臨菑. 晏嬰止靈公, 靈公弗從. 曰: "君亦無勇矣!" 晉兵遂圍臨菑, 臨菑城守不敢出, 晉焚郭中而去.
57 영공 9년에(靈公九年), 진나라 낙서가(晉欒書) 그 임금 여공을 시해했다(弒其君厲公).
10년에(十年), 진 탁공이(晉悼公) 제나라를 쳤고(伐齊), 제나라가(齊) 공자 광으로 하여금(令公子光) 진나라에 인질이 되도록 했다(質晉).
19년에(十九年), 아들 광을 세워(立子光) 태자로 삼고(爲太子), 고후가(高厚) 그를 보좌하고(傅之), 종리에서(於鐘離) 제후와 회맹하도록 했다(令會諸侯盟).
27년에(二十七年), 진나라가(晉) 중행헌자를 시켜(使中行獻子) 제나라를 쳤다(伐齊). 제나라 군대가 져서(齊師敗), 영공이 달아나(靈公走) 임치에 들어갔다(入臨菑). 안영이(晏嬰) 영공을 막았는데(止靈公), 영공이 따르지 않았다(靈公弗從).
말하길(曰): "임금도 또한(君亦) 용맹함이 없구나(無勇矣)!"라고 했다.
진나라 군대가(晉兵) 마침내(遂) 임치를 포위하고(圍臨菑), 임치성의 수비가(臨菑城守) 감히 나가지 못했고(不敢出), 진나라가(晉) 곽중을 불태우고(焚郭中而) 물러갔다(去).
58 二十八年, 初, 靈公取魯女, 生子光, 以爲太子. 仲姬, 戎姬. 戎姬嬖, 仲姬生子牙, 屬之戎姬. 戎姬請以爲太子, 公許之. 仲姬曰: "不可. 光之立, 列於諸侯矣, 今無故廢之, 君必悔之." 公曰: "在我耳." 遂東太子光, 使高厚傅牙爲太子. 靈公疾, 崔杼迎故太子光而立之, 是爲莊公. 莊公殺戎姬. 五月壬辰, 靈公卒, 莊公即位, 執太子牙於句竇之丘, 殺之. 八月, 崔杼殺高厚. 晉聞齊亂, 伐齊, 至高唐.
58 28년에(二十八年), 처음(初), 영공이(靈公) 노나라 여인을 취해서(取魯女), 아들 광을 낳았고(生子光), 태자로 삼았다(以爲太子). 중희와 융희가 있었다(仲姬, 戎姬). 융희가 총애를 받았고(戎姬嬖), 중희가(仲姬) 자아를 낳아서(生子牙), 융의에게 맡겼다(屬之戎姬). 융희가(戎姬)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하자(請以爲太子), 공이 허락했다(公許之).
중희가 말하길(仲姬曰): "안됩니다(不可). 광을 세워서(光之立), 제후에 서열이 되었는데(列於諸侯矣), 지금(今) 까닭 없이(無故) 폐하면(廢之), 임금께서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君必悔之)."라고 했다.
공이 말하길(公曰): "나에게 달렸을 뿐이다(在我耳)."라고 했다.
마침내(遂) 태자 광을 동쪽으로 보내고(東太子光), 고후로 하여금(使高厚) 아를 보좌하도록 해서(傅牙)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영공이 병에 걸렸을 때(靈公疾), 최저가(崔杼) 옛 태자 광을 맞이해서(迎故太子光而) 세우니(立之), 이 사람이 장공이다(是爲莊公). 장공이 융희를 죽였다(莊公殺戎姬).
5월 임진일에(五月壬辰), 영공이 죽고(靈公卒), 장공이 즉위해서(莊公即位), 구두 언덕에서(於句竇之丘) 태자 아를 붙잡고(執太子牙), 죽였다(殺之).
8월에(八月), 최저가(崔杼) 고후를 죽였다(殺高厚). 진나라가(晉) 제나라의 혼란을 듣고(聞齊亂), 제나라를 쳐서(伐齊), 고당에 이르렀다(至高唐).
59 莊公三年, 晉大夫欒盈奔齊, 莊公厚客待之. 晏嬰·田文子諫, 公弗聽. 四年, 齊莊公使欒盈閒入晉曲沃爲內應, 以兵隨之, 上太行, 入孟門. 欒盈敗, 齊兵還, 取朝歌.
59 장공 3년에(莊公三年), 진나라 대부(晉大夫) 난영이(欒盈) 제나라로 도망쳤고(奔齊), 장공이(莊公) 후하게 손님으로 대우했다(厚客待之). 안영과 전문자가 간했지만(晏嬰·田文子諫), 공이 듣지 않았다(公弗聽).
4년에(四年), 제 장공이(齊莊公) 난영을 시켜(使欒盈) 비밀리에 진나라 곡옥에 들어가(閒入晉曲沃) 내응하도록 하고(爲內應), 군대로 그를 따라서(以兵隨之), 태행산에 올라(上太行), 맹문으로 들어갔다(入孟門). 난영이 패하고(欒盈敗), 제나라 군대가 돌아오면서(齊兵還), 조가를 빼앗았다(取朝歌).
60 六年, 初, 棠公妻好, 棠公死, 崔杼取之. 莊公通之, 數如崔氏, 以崔杼之冠賜人. 待者曰: "不可." 崔杼怒, 因其伐晉, 欲與晉合謀襲齊而不得閒. 莊公嘗笞宦者賈舉, 賈舉復侍, 爲崔杼閒公以報怨. 五月, 莒子朝齊, 齊以甲戌饗之. 崔杼稱病不視事. 乙亥, 公問崔杼病, 遂從崔杼妻. 崔杼妻入室, 與崔杼自閉戶不出, 公擁柱而歌. 宦者賈舉遮公從官而入, 閉門, 崔杼之徒持兵從中起. 公登臺而請解, 不許; 請盟, 不許; 請自殺於廟, 不許. 皆曰: "君之臣杼疾病, 不能聽命. 近於公宮. 陪臣爭趣有淫者, 不知二命." 公踰墻, 射中公股, 公反墜, 遂弒之. 晏嬰立崔杼門外, 曰: "君爲社稷死則死之, 爲社稷亡則亡之. 若爲己死己亡, 非其私暱, 誰敢任之!" 門開而入, 枕公尸而哭, 三踴而出. 人謂崔杼: "必殺之." 崔杼曰: "民之望也, 捨之得民."
60 6년에(六年), 애초(初), 당공의 아내가 예뻤는데(棠公妻好), 당공이 죽자(棠公死), 최저가 취했다(崔杼取之). 장공이(莊公) 사통하며(通之), 자주(數) 최저에게 갔는데(如崔氏), 최저의 모자를(以崔杼之冠)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賜人).
따르는 사람이 말하길(待者曰):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최저가 화가 났고(崔杼怒), 그(장공)가 진나라를 칠 때를 틈타(因其伐晉), 진나라와 모의해서(欲與晉合謀) 제나라를 습격하려고 했지만(襲齊而) 틈을 얻지 못했다(不得閒). 장공이(莊公) 일찍이(嘗) 환관 가거를 매질했는데(笞宦者賈舉), 가거가(賈舉) 다시 내시가 되었고(復侍), 최저를 위해(爲崔杼) 공을 엿보아(閒公以) 원한을 갚으려고 했다(報怨). 5월에(五月), 거자가(莒子) 제나라에 조회했고(朝齊), 제나라는(齊) 갑술일에(以甲戌) 연회를 열었다(饗之). 최저가(崔杼) 병을 핑계로(稱病) 일을 돌보지 않았다(不視事). 을해일에(乙亥), 공이(公) 최저를 문병하면서(問崔杼病), 마침내(遂) 최저의 처를 따랐다(從崔杼妻). 최저의 처가(崔杼妻) 방에 들어가고(入室), 최저와 함께(與崔杼) 스스로 문을 닫고(自閉戶) 나오지 않았고(不出), 공이(公) 기둥을 안고(擁柱而) 노래 불렀다(歌). 환관 가거가(宦者賈舉) 공의 수행원을 가리고(遮公從官而) 들어가(入), 문을 닫았고(閉門), 최저의 무리가(崔杼之徒) 무기를 가지고(持兵) 따라 일어났다(從中起). 공이(公) 대에 올라가(登臺而) 화해를 청했는데(請解), 허락하지 않고(不許); 맹약을 청했지만(請盟), 허락하지 않고(不許); 사당에서(於廟) 자살하기를 청했지만(請自殺), 허락하지 않았다(不許).
모두 말하길(皆曰): "군주의 신하 최저가(君之臣杼) 병이 들었고(疾病), 명을 들을 수 없습니다(不能聽命). 공의 방에서 가깝습니다(近於公宮). 신하들은(陪臣) 음행이 있는 사람을(有淫者) 잡으려는 것이고(爭趣), 다른 명을 알지 못합니다(不知二命)."라고 했다.
공이(公) 담을 넘었고(踰墻), 화살이(射) 공의 넓적다리에 적중해서(中公股), 공이(公) 반대로 떨어져서(反墜), 마침내(遂) 시해했다(弒之).
안영이(晏嬰) 최저의 문 바깥에 서서(立崔杼門外), 말하길(曰): "군이(君) 사직을 위해 죽으면(爲社稷死則) 그를 위해 죽고(死之), 사직을 위해 도망가면(爲社稷亡則) 도망간다(亡之). 만약(若) 자기를 위해 죽거나 자기를 위해 도망치면(爲己死己亡), 그 사사롭게 가까운 것이 아니라면(非其私暱), 누가 감히 감당하겠는가(誰敢任之)!"라고 했다.
문이 열리고(門開而) 들어가서(入), 공의 시신을 받치고(枕公尸而) 곡하고(哭), 세 번 발을 구르고(三踴而) 나왔다(出).
사람들이(人) 최저에게 말하길(謂崔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必殺之)."라고 했다.
최저가 말하길(崔杼曰): "백성들이(民之) 바라보는 사람이니(望也), 그를 내버려 두어(捨之) 민심을 얻어야 한다(得民)."라고 했다.
61 丁丑, 崔杼立莊公異母弟杵臼, 是爲景公. 景公母, 魯叔孫宣伯女也. 景公立, 以崔杼爲右相, 慶封爲左相. 二相恐亂起, 乃與國人盟曰: "不與崔慶者死!" 晏子仰天曰: "嬰所不(獲)唯忠於君利社稷者是從!" 不肯盟. 慶封欲殺晏子, 崔杼曰: "忠臣也, 捨之." 齊太史書曰'崔杼弒莊公」, 崔杼殺之. 其弟復書, 崔杼復殺之. 少弟復書, 崔杼乃捨之.
61 정축일에(丁丑), 최저가(崔杼) 장공의 어머니가 다른 동생(莊公異母弟) 저구를 세웠고( 立杵臼), 이 사람이 경공이다(是爲景公). 경공의 어머니는(景公母), 노나라 숙손선백의 딸이다(魯叔孫宣伯女也). 경공이 즉위하고(景公立), 최저를(以崔杼) 우상으로 삼고(爲右相), 경봉을 좌상으로 삼았다(慶封爲左相). 두 재상은(二相) 난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서(恐亂起), 나라 사람들과 맹세하길(乃與國人盟曰): "최저 경봉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不與崔慶者) 죽는다(死)!"라고 했다.
안자가(晏子) 하늘을 우러러 말하길(仰天曰): "안영이(嬰) 오직 임금에게 충성하고(所不(獲)唯忠於君) 사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利社稷者是) 따를 것이다(從)!"라고 했다.
기꺼이 맹세하지 않았다(不肯盟). 경봉이(慶封) 안자를 죽이려고 하자(欲殺晏子), 최저가 말하길(崔杼曰): "충신이니(忠臣也), 그를 내버려 두어라(捨之)."라고 했다.
제 태사가(齊太史) 써서 말하길(書曰) '최저가(崔杼) 장공을 시해했다(弒莊公)'라고 하자, 최저가 그를 죽였다(崔杼殺之). 그 동생이 다시 쓰자(其弟復書), 최저가 그를 다시 죽였다(崔杼復殺之). 작은 동생이 다시 쓰자(少弟復書), 최저가 그를 내버려 두었다(崔杼乃捨之).
62 景公元年, 初, 崔杼生子成及彊, 其母死, 取東郭女, 生明. 東郭女使其前夫子無咎與其弟偃相崔氏. 成有罪, 二相急治之, 立明爲太子. 成請老於崔[杼], 崔杼許之, 二相弗聽, 曰: "崔, 宗邑, 不可." 成·彊怒, 告慶封. 慶封與崔杼有郤, 欲其敗也. 成·彊殺無咎·偃於崔杼家, 家皆奔亡. 崔杼怒, 無人, 使一宦者御, 見慶封. 慶封曰: "請爲子誅之." 使崔杼仇盧蒲嫳攻崔氏, 殺成·彊, 盡滅崔氏, 崔杼婦自殺. 崔杼毋歸, 亦自殺. 慶封爲相國, 專權.
62 경공 원년에(景公元年), 애초(初), 최저가(崔杼) 아들 성과 강을 낳았는데(生子成及彊), 그 어머니가 죽자(其母死), 동곽녀를 취해서(取東郭女), 명을 낳았다(生明). 동곽녀가(東郭女) 전 남편 무구와(使其前夫子無咎與) 그 동생 언으로 하여금(其弟偃) 최씨를 돕도록 했다(相崔氏). 성에게(成) 죄가 있어(有罪), 두 재상이(二相) 그를 급하게 다스렸고(急治之), 명을 세워(立明) 태자로 삼았다(爲太子).
성이(成) 최읍에서 늙기를 청해서(請老於崔杼), 최저가 허락했는데(崔杼許之), 두 재상이 듣지 않고(二相弗聽), 말하길(曰): "최읍은(崔), 종묘가 있는 읍이니(宗邑),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성과 강이 노하여(成·彊怒), 경봉에게 알렸다(告慶封). 경봉과 최저에게(慶封與崔杼) 틈이 있었고(有郤), 그를 실패하게 하려고 했다(欲其敗也). 성과 강이(成·彊) 최저의 집에서(於崔杼家) 무구와 언을 죽였고(殺無咎·偃), 집안사람들이(家) 모두 도망쳤다(皆奔亡). 최저가 화가 났지만(崔杼怒), 사람이 없어(無人), 환관 하나를 시켜(使一宦者) 말을 몰도록 하고(御), 경봉을 만났다(見慶封).
경봉이 말하길(慶封曰): "청컨대(請) 그대를 위해(爲子) 그대를 죽이겠다(誅之)."라고 했다.
최저의 원수(崔杼仇) 노포벌을 시켜(使盧蒲嫳) 최씨를 공격하게 하고(攻崔氏), 성과 강을 죽였고(殺成·彊), 최씨를 모두 없애니(盡滅崔氏), 최저의 부인이 자살했다(崔杼婦自殺). 최저도(崔杼) 돌아갈 곳이 없었고(毋歸), 또한 자살했다(亦自殺). 경봉이(慶封) 상국이 되어(爲相國), 권력을 오로지 했다(專權).
63 三年十月, 慶封出獵. 初, 慶封已殺崔杼, 益驕, 嗜酒好獵, 不聽政令. 慶舍用政, 已有內郤. 田文子謂桓子曰: "亂將作." 田·鮑·高·欒氏相與謀慶氏. 慶舍發甲圍慶封宮, 四家徒共擊破之. 慶封還, 不得入, 奔魯. 齊人讓魯, 封奔吳. 吳與之朱方, 聚其族而居之, 富於在齊. 其秋, 齊人徙葬莊公, 僇崔杼尸於市以說衆.
63 3년 10월에(三年十月), 경봉이(慶封) 사냥을 나갔다(出獵). 애초에(初), 경봉이(慶封) 최저를 죽이고 나서(已殺崔杼), 더욱 교만해졌고(益驕), 술을 즐기고(嗜酒) 사냥을 좋아해서(好獵), 정치와 명령을 처리하지 않았다(不聽政令). 경사가(慶舍) 정사를 행했는데(用政), 이미(已) 안에 틈이 있었다(有內郤).
전문자가(田文子) 환자에게 말하길(謂桓子曰): "난이(亂) 일어날 것이다(將作)."라고 했다.
전씨와 포씨, 고씨, 섭씨가(田·鮑·高·欒氏) 서로 함께(相與) 경씨를 도모했다(謀慶氏). 경사가(慶舍) 갑사를 뽑아서(發甲) 경봉의 집을 둘러싸자(圍慶封宮), 네 집안의 무리가(四家徒) 함께(共) 습격해서 깨뜨렸다(擊破之). 경봉이 돌아왔지만(慶封還), 들어갈 수 없었고(不得入), 노나라로 도망쳤다(奔魯).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노나라를 꾸짖자(讓魯), 경봉이 오나라로 달아났다(封奔吳). 오나라가(吳) 그에게 주방을 주고(與之朱方), 그 가족을 모아(聚其族而) 머물게 하니(居之), 제나라에 있을 때보다 부유했다(富於在齊). 그 가을에(其秋),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장공을 이장하고(徙葬莊公), 시장에서(於市) 최저의 시신을 모욕해서(僇崔杼尸以) 백성을 기쁘게 했다(說衆).
64 九年, 景公使晏嬰之晉, 與叔向私語曰: "齊政卒歸田氏. 田氏雖無大德, 以公權私, 有德於民, 民愛之." 十二年, 景公如晉, 見平公, 欲與伐燕. 十八年, 公復如晉, 見昭公. 二十六年, 獵魯郊, 因入魯, 與晏嬰俱問魯禮. 三十一年, 魯昭公辟季氏難, 奔齊. 齊欲以千社封之, 子家止昭公, 昭公乃請齊伐魯, 取鄆以居昭公.
64 9년에(九年), 경공이(景公) 안영으로 하여금(使晏嬰) 진나라에 가도록 했는데(之晉), 숙향과(與叔向) 사사로이 말하길(私語曰): "제나라 정권이(齊政) 끝내(卒) 전씨에게 돌아갈 것이다(歸田氏). 전씨에게(田氏) 비록(雖) 큰 덕이 없지만(無大德), 공권력으로(以公權) 사사로이 해서(私), 백성에게 덕이 있으니(有德於民), 백성들이 그를 아낀다(民愛之)."라고 했다.
12년에(十二年), 경공이(景公) 진나라에 가서(如晉), 평공을 만나고(見平公), 함께 연나라를 치려고 했다(欲與伐燕).
18년에(十八年), 공이(公) 다시 진나라에 가서(復如晉), 소공을 만났다(見昭公).
26년에(二十六年), 노나라 교외에서 사냥하다(獵魯郊), 이에(因) 노나라에 들어가서(入魯), 안영과 함께(與晏嬰) 노나라의 예법을 같이 물었다(俱問魯禮).
31년에(三十一年), 노 소공이(魯昭公) 계씨의 난을 피해서(辟季氏難), 제나라로 도망쳤다(奔齊). 제나라가(齊) 1천사로(欲以千社) 봉하려고 하자(封之), 자가가(子家) 소공을 말렸지만(止昭公), 소공이(昭公乃) 제나라가 노나라를 칠 것을 청했고(請齊伐魯), 운읍을 취해서(取鄆以) 소공을 살도록 했다(居昭公).
65 三十二年, 彗星見. 景公坐柏寢, 嘆曰: "堂堂! 誰有此乎?" 群臣皆泣, 晏子笑, 公怒. 晏子曰: "臣笑群臣諛甚." 景公曰: "彗星出東北, 當齊分野, 寡人以爲憂." 晏子曰: "君高臺深池, 賦斂如弗得, 刑罰恐弗勝, 茀星將出, 彗星何懼乎?" 公曰: "可禳否?" 晏子曰: "使神可祝而來, 亦可禳而去也. 百姓苦怨以萬數, 而君令一人禳之, 安能勝衆口乎?" 是時景公好治宮室, 聚狗馬, 奢侈, 厚賦重刑, 故晏子以此諫之.
65 32년에(三十二年), 혜성을 보았다(彗星見). 경공이(景公) 백침대에 앉아 있다가(坐柏寢), 탄식하며 말하길(嘆曰): "당당하구나(堂堂)! 누가(誰) 이것을 가질 것인가(有此乎)?"라고 했다.
군신이 모두 우는데(群臣皆泣), 안자가 웃었고(晏子笑), 공이 화를 냈다(公怒).
안자가 말하길(晏子曰): "신은(臣) 군신의 아첨힘 심한 것을(群臣諛甚) 비웃었습니다(笑)."라고 했다.
경공이 말하길( 景公曰): "혜성이(彗星) 동북쪽에서 나왔고(出東北), 제나라의 영역에 해당하니(當齊分野), 내가(寡人) 걱정거리로 여겼다(以爲憂)."라고 했다.
안자가 말하길(晏子曰): "임금께서(君) 대를 높이고(高臺) 연못을 깊이 파면서(深池), 세금이(賦斂) 얻어지지 못하고(如弗得), 형벌이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는데(刑罰恐弗勝), 패성도 장차 나올 것인데(茀星將出), 혜성을(彗星) 어찌 두려워합니까(何懼乎)?"라고 했다.
공이 말하길(公曰):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아닌가(可禳否)?"라고 했다.
안자가 말하길(晏子曰): "신으로 하여금(使神) 기도해서 오도록 할 수 있다면(可祝而來), 또한(亦) 제사 지내서 <재앙을> 없앨 수 있습니다(可禳而去也). 백성의 원망이(百姓苦怨) 만 가지이니(以萬數, 而) 임금이(君) 한 사람을 시켜(令一人) 그것을 없애더라도(禳之), 어찌(安) 여러 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能勝衆口乎)?"라고 했다.
이때(是時) 경공이(景公) 궁궐 꾸미기를 좋아하고(好治宮室), 말과 개를 모으고(聚狗馬), 사치하며(奢侈), 무거운 세금과(厚賦) 중한 형벌을 가했고(重刑), 그러므로(故) 안자가(晏子) 이것으로(以此) 간한 것이다(諫之).
* 禳(양): 액막이. 재앙을 쫓는 제사.
66 四十二年, 吳王闔閭伐楚, 入郢. 67 四十七年, 魯陽虎攻其君, 不勝, 奔齊, 請齊伐魯. 鮑子諫景公, 乃囚陽虎. 陽虎得亡, 奔晉.
66 42년에(四十二年), 오왕 합려가(吳王闔閭) 초나라를 치고(伐楚), 영에 들어갔다(入郢).
67 47년에(四十七年), 노나라 양호가(魯陽虎) 그 임금을 공격했다가(攻其君), 이기지 못하고(不勝), 제나라로 도망쳤고(奔齊), 제나라가 노나라를 칠 것을 요청했다(請齊伐魯). 포자가(鮑子) 경공에게 간했고(諫景公), 이에(乃) 양호를 가두었다(囚陽虎). 양호가 도망쳐서(陽虎得亡), 진나라로 달아났다(奔晉).
68 四十八年, 與魯定公好會夾谷. 犁鉏曰: "孔丘知禮而怯, 請令萊人爲樂, 因執魯君, 可得志." 景公害孔丘相魯, 懼其霸, 故從犁鉏之計. 方會, 進萊樂, 孔子歷階上, 使有司執萊人斬之, 以禮讓景公. 景公慚, 乃歸魯侵地以謝, 而罷去. 是歲, 晏嬰卒.
68 48년에(四十八年), 노 정공과(與魯定公) 협곡에서 우호를 위해 회맹했다(好會夾谷).
이서가 말하길(犁鉏曰): "공구가(孔丘) 예를 알지만(知禮而) 겁쟁이니(怯), 청컨대(請) 내인을 시켜(令萊人)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고(爲樂), 이것을 통해(因) 노나라 임금을 잡는다면(執魯君),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可得志)."라고 했다.
경공이(景公) 공자가 노나라에서 재상 되는 것을(孔丘相魯) 걱정하고(害), 그 패주가 될 것을 두려워했고(懼其霸), 그러므로(故) 이서의 계책을 따랐다(從犁鉏之計). 막 모였을 때(方會), 나아가(進) 내인이 음악을 연주하고(萊樂), 공자가(孔子) 계단을 밟고 올라가(歷階上), 유사로 하여금(使有司) 내인을 잡아(執萊人) 베도록 하고(斬之), 예로(以禮) 경공에게 사과했다(讓景公). 경공이 부끄러워했고(景公慚), 이에(乃) 노나라에(魯)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歸侵地以) 사과했고(謝, 而) 마치고 떠났다(罷去). 이 해에(是歲), 안영이 죽었다(晏嬰卒).
69 五十五年, 范·中行反其君於晉, 晉攻之急, 來請粟. 田乞欲爲亂, 樹黨於逆臣, 說景公曰: "范·中行數有德於齊, 不可不救." 及使乞救而輸之粟.
69 55년에(五十五年), 범씨와 중항씨가(范·中行) 진나라에서(於晉)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켰고(反其君), 진나라의 공격이(晉攻之) 급하자(急), 와서(來) 곡식을 청했다(請粟).
전을이(田乞) 혼란스럽게 만들려고(欲爲亂), 역신에게 당을 세워주려고(樹黨於逆臣), 경공을 설득해 말하길(說景公曰): "범씨와 중항씨에게(范·中行) 제나라에(於齊) 자주 덕이 있으니(數有德),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不可不救)."라고 했다. 전을 시켜(及使乞) 구하도록 하고(救而) 곡식을 주었다(輸之粟).
70 五十八年夏, 景公夫人燕姬適子死. 景公寵妾芮姬生子荼, 荼少, 其母賤, 無行, 諸大夫恐其爲嗣, 乃言願擇諸子長賢者爲太子. 景公老, 惡言嗣事, 又愛荼母, 欲立之, 憚發之口, 乃謂諸大夫曰: "爲樂耳, 國何患無君乎?" 秋, 景公病, 命國惠子·高昭子立少子荼爲太子, 逐群公子, 遷之萊. 景公卒, 太子荼立, 是爲晏孺子. 冬, 未葬, 而群公子畏誅, 皆出亡. 荼諸異母兄公子壽·駒·黔奔衛, 公子駔·陽生奔魯. 萊人歌之曰: "景公死乎弗與埋, 三軍事乎弗與謀, 師乎師乎, 胡黨之乎?"
70 58년 여름에(五十八年夏), 경공의 부인(景公夫人) 연희의 적자가 죽었다(燕姬適子死). 경공의 총애하는 첩(景公寵妾) 예희가(芮姬) 아들 도를 낳았지만(生子荼), 도가 어렸고(荼少), 그 어머니가 천해서(其母賤), 행실이 없었으므로(無行), 여러 대부가(諸大夫) 그가 대를 이을까 걱정했고(恐其爲嗣), 이에(乃) 여러 아들 가운데(諸子) 나이가 많고 현명한 사람을 택해서(擇長賢者) 태자 삼기를 원한다고(願爲太子) 말했다(言).
경공이 늙어서(景公老), 대를 잇는 일 말하기를 싫어했고(惡言嗣事), 또(又) 도의 어머니를 아꼈으므로(愛荼母), 그를 세우고 싶었지만(欲立之), 말하기를 꺼렸고(憚發之口), 이에(乃) 여러 대부에게 말하길(謂諸大夫曰): "즐길 뿐이니(爲樂耳), 나라에(國) 군주 없는 것을(無君) 어찌 걱정하는가(何患乎)?"라고 했다.
가을에(秋), 경공이 병들자(景公病), 국혜자와 고소자에게 명해서(命國惠子·高昭子) 어린 아들 도를 세워(立少子荼) 태자로 삼고(爲太子), 여러 공자를 쫓아내서(逐群公子), 내 땅으로 옮겼다(遷之萊). 경공이 죽고(景公卒), 태자 도가 즉위했는데(太子荼立), 이 사람이 안유자다(是爲晏孺子). 겨울에(冬), 장례를 마치지 못했는데(未葬, 而) 여러 공자가(群公子) 죽임 당할까 두려워하며(畏誅), 모두 도망쳤다(皆出亡). 도의(荼) 여러 어머니가 다른 형 가운데(諸異母兄) 공자 도와 구, 검은 위나라로 달아났고(公子壽·駒·黔奔衛), 공자 서와 양생은 노나라로 달아났다(公子駔·陽生奔魯).
내 사람들이 노래 부르길(萊人歌之曰): "경공이 죽었는데(景公死乎) 함께 묻지 못하고(弗與埋), 삼군의 일도(三軍事乎) 함께 도모하지 못했으니(弗與謀), 공자들아 공자들아(師乎師乎), 어느 곳으로 가는가(胡黨之乎)?"라고 했다.
* 憚發之口(탄발지구): 말을 입 밖에 내기를 꺼리다.
* 師(사) : 뭇사람. 5 공자를 말한다.
* 胡黨之(호당지) :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黨은 거처이고, 之는 가다.
71 晏孺子元年春, 田乞偽事高·國者, 每朝, 乞驂乘, 言曰: "子得君, 大夫皆自危, 欲謀作亂." 又謂諸大夫曰: "高昭子可畏, 及未發, 先之." 大夫從之. 六月, 田乞·鮑牧乃與大夫以兵入公宮, 攻高昭子. 昭子聞之, 與國惠子救公. 公師敗, 田乞之徒追之, 國惠子奔莒, 遂反殺高昭子. 晏圉奔魯. 八月, 齊秉意茲. 田乞敗二相, 乃使人之魯召公子陽生. 陽生至齊, 私匿田乞家. 十月戊子, 田乞請諸大夫曰: "常之母有魚菽之祭, 幸來會飲." 會飲, 田乞盛陽生橐中, 置坐中央, 發橐出陽生, 曰: "此乃齊君矣!" 大夫皆伏謁. 將與大夫盟而立之, 鮑牧醉, 乞誣大夫曰: "吾與鮑牧謀共立陽生." 鮑牧怒曰: "子忘景公之命乎?" 諸大夫相視欲悔, 陽生前, 頓首曰: "可則立之, 否則已." 鮑牧恐禍起, 乃復曰: "皆景公子也, 何爲不可!" 乃與盟, 立陽生, 是爲悼公. 悼公入宮, 使人遷晏孺子於駘, 殺之幕下, 而逐孺子母芮子. 芮子故賤而孺子少, 故無權, 國人輕之.
71 안유자 원년 봄에(晏孺子元年春), 전걸이(田乞) 거짓으로(偽) 고씨와 국씨를 섬기면서(事高·國者), 조회할 때마다(每朝), 전걸이 참승하고(乞驂乘), 말하길(言曰): "그대가(子) 임금의 총애를 얻어서(得君), 대부들이 모두(大夫皆) 스스로 위험하다고 여겨(自危), 모의해서 난을 일으키려고 합니다(欲謀作亂)."라고 했다.
또(又) 여러 대부에게 말하길(謂諸大夫曰): "고소자를 두려워할만하니(高昭子可畏), 난을 일으키지 않았을 때(及未發), 먼저 해야 합니다(先之)."라고 했다.
대부들이(大夫) 그를 따랐다(從之). 6월에(六月), 전걸과 포목이(田乞·鮑牧乃) 대부와 함께(與大夫) 군사들로(以兵) 공의 궁에 들어가서(入公宮), 고소자를 공격했다(攻高昭子). 고소자가 이것을 듣고(昭子聞之), 국혜자와 함께(與國惠子) 공을 구원했다(救公). 공의 군대가 패하고(公師敗), 전걸의 무리가(田乞之徒) 추격했고(追之), 국혜자는 거나라로 달아났고(國惠子奔莒), 마침내 되돌아와(遂反) 고소자를 죽였다(殺高昭子). 안어가(晏圉) 노나라로 달아났다(奔魯). 8월에(八月), 병의자가 제나라에 왔다(齊秉意茲). 전걸이(田乞) 두 재상을 무찌르고(敗二相, 乃) 사람을 시켜(使人) 노나라에 가서(之魯) 공자 양생을 부르도록 했다(召公子陽生). 양생이(陽生) 제나라에 이르러(至齊), 몰래(私) 전걸의 집에 숨었다(匿田乞家).
10월 무자일에(十月戊子), 전걸이(田乞) 여러 대부를 청해 말하길(請諸大夫曰): "상의 모친에게(常之母) 제사가 있었는데(有魚菽之祭), 부디(幸) 와서 모여 마시기 바랍니다(來會飲)."라고 했다.
모여 마시는데(會飲), 전걸이(田乞) 양생을(陽生) 자루에 담아서(盛橐中), 좌중 가운데 두었다가(置坐中央), 자루를 열어(發橐) 양생을 나오게 하며 말하길(出陽生, 曰): "이 사람이 곧(此乃) 제나라의 군주다(齊君矣)!"라고 했다.
대부들이 모두(大夫皆) 엎드려 알현했다(伏謁).
장차(將) 대부들과 맹세하고(與大夫盟而) 세우려는데(立之), 포목이 취했고(鮑牧醉), 전걸이(乞) 거짓으로 대부들에게 말하길(誣大夫曰): "나와 포목이(吾與鮑牧) 모의해서(謀) 함께(共) 양생을 즉위시킬 것이다(立陽生)."라고 했다.
포목이 노하여 말하길(鮑牧怒曰): "그대는(子) 경공의 명을 잊었는가(忘景公之命乎)?"라고 했다.
여러 대부가(諸大夫) 서로 쳐다보며(相視) 후회하려고 하자(欲悔), 양생이 나서(陽生前),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길(頓首曰): "될만하면(可則) 즉위하고(立之), 안될듯하면 그만둘 것입니다(否則已)."라고 했다.
포목은(鮑牧) 화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서(恐禍起), 다시 말하길(乃復曰): "모두(皆) 경공의 자식이니(景公子也), 어찌(何) 안될까요(爲不可)!"라고 했다.
이에(乃) 함께 맹세하고(與盟), 양생을 세우니(立陽生), 이 사람이 도공이다(是爲悼公). 도공이 궁에 들어가(悼公入宮), 사람을 시켜(使人) 안유자를 태로 옮기면서(遷晏孺子於駘), 막하에서 죽였고(殺之幕下, 而) 유자의 어머니 예희를 내쫓았다(逐孺子母芮子). 예자가(芮子) 천했기 때문이고(故賤而) 유자가 어렸고(孺子少), 그러므로(故) 권력이 없어서(無權), 나라 사람들이 가벼이 여겼다(國人輕之).
* 魚菽之祭(어숙지제): 물고기와 콩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 祭需(제수)가 변변치 못한 제사라는 뜻으로 자신의 집 제사를 낮추어 말한 것이다.
72 悼公元年, 齊伐魯, 取讙·闡. 初, 陽生亡在魯, 季康子以其妹妻之. 及歸即位, 使迎之. 季姬與季魴侯通, 言其情, 魯弗敢與, 故齊伐魯, 竟迎季姬. 季姬嬖, 齊復歸魯侵地.
72 도공 원년에(悼公元年), 제나라가 노나라를 쳤고(齊伐魯), 환읍과 천읍을 취했다(取讙·闡). 처음(初), 양생이 도망쳐(陽生亡) 노나라에 있을 때(在魯), 계강자가(季康子) 그 동생을(以其妹) 시집보냈다(妻之). 돌아와서 즉위했을 때(及歸即位), 맞이하도록 했다(使迎之). 계희와 계방후가(季姬與季魴侯) 사통했는데(通), 그 사정을 말하자(言其情), 노나라가(魯) 감히 보내지 못했고(弗敢與), 그러므로(故)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서(齊伐魯), 마침내(竟) 계희를 맞이했다(迎季姬). 계희가 총애를 받았고(季姬嬖), 제나라가(齊) 빼앗을 땅을 노나라에 다시 돌려주었다(復歸魯侵地).
73 鮑子與悼公有郤, 不善. 四年, 吳·魯伐齊南方. 鮑子弒悼公, 赴于吳. 吳王夫差哭於軍門外三日, 將從海入討齊. 齊人敗之, 吳師乃去. 晉趙鞅伐齊, 至賴而去. 齊人共立悼公子壬, 是爲簡公.
73 포자와 도공에게(鮑子與悼公) 틈이 있었고(有郤), 사이가 좋지 못했다(不善).
4년에(四年), 오나라와 노나라가(吳·魯) 남쪽에서 제나라를 쳤다(伐齊南方). 포자가(鮑子) 도공을 시해하고(弒悼公), 오나라에 부고를 보냈다(赴于吳). 오왕 부차가(吳王夫差) 문 밖에서 3일 동안 곡하고(哭於軍門外三日), 바다를 따라(將從海) 들어와(入) 제나라를 토벌했다(討齊). 제나라가 물리쳤고(齊人敗之), 오나라 군대가(吳師乃) 물러갔다(去). 진날 조앙이(晉趙鞅) 제나라를 쳐서(伐齊), 뇌읍에 이르렀다(至賴而) 물러갔다(去).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도공의 아들 임을 세우니(共立悼公子壬), 이 사람이 간공이다(是爲簡公).
74 簡公四年春, 初, 簡公與父陽生俱在魯也, 監止有寵焉. 及即位, 使爲政. 田成子憚之, 驟顧於朝. 御鞅言簡公曰: "田·監不可并也, 君其擇焉." 弗聽. 子我夕, 田逆殺人, 逢之, 遂捕以入. 田氏方睦, 使囚病而遺守囚者酒, 醉而殺守者, 得亡. 子我盟諸田於陳宗. 初, 田豹欲爲子我臣, 使公孫言豹, 豹有喪而止. 後卒以爲臣, 幸於子我. 子我謂曰: "吾盡逐田氏而立女, 可乎?" 對曰: "我遠田氏矣. 且其違者不過數人, 何盡逐焉!" 遂告田氏. 子行曰: "彼得君, 弗先, 必禍子." 子行舍於公宮.
74 간공 4년 봄에(簡公四年春), 애초에(初), 간공과 부 양생이(簡公與父陽生) 모두(俱) 노나라에 있을 때(在魯也), 감지에게(監止) 총애가 있었다(有寵焉). 즉위해서(及即位), 국정을 맡겼다(使爲政). 전성자가(田成子) 그를 꺼렸고(憚之), 조정에서 자주 돌아보았다(驟顧於朝).
어앙이(御鞅) 간공에게 말하길(言簡公曰): "전성자와 감지를(田·監) 함께 둘 수 없으니(不可并也), 군주가(君) 택해야 합니다(其擇焉)."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弗聽). 자아가(子我) 저녁에(夕), 전역이(田逆) 사람을 죽였을 때(殺人), 만나서(逢之), 붙잡아서(遂捕以) 들어갔다(入). 전씨가(田氏) 막(方) 화목할 때라서(睦), 간수에게 병을 핑계대도록 시키고(使囚病而) 간수에게 술을 주어(遺守囚者酒), 취하자(醉而ㅒ) 간수를 죽이고(殺守者), 도망쳤다(得亡). 자아가(子我) 진종에서(於陳宗) 여러 전씨와 맹약했다(盟諸田). 애초에(初), 전표가(田豹) 자아의 가신이 되려고(欲爲子我臣), 공손을 시켜(使公孫) 전표를 말해달라고 했는데(言豹), 전표에게(豹) 상이 있어서(有喪而) 그만두었다(止). 나중에 결국(後卒) 가신이 되어(以爲臣), 자아에게 총애를 받았다(幸於子我).
자아가 말하길(子我謂曰): "내가(吾) 전씨를 모두 쫓아내고(盡逐田氏而) 너를 세우려는데(立女), 괜찮은가(可乎)?"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저는(我) 전씨와 멉니다(遠田氏矣). 또(且) 그 거슬리는 사람은(其違者) 몇 명에 지나지 않는데(不過數人), 어찌(何) 모두 쫓아냅니까(盡逐焉)!"라고 했다. 결국(遂) 전씨에게 일렀다(告田氏).
자행이 말하길(子行曰): "그대가(彼) 임금을 얻었으니(得君), 먼저 하지 않으면(弗先), 반드시(必) 그대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禍子)."라고 했다.
자행이(子行) 공의 궁실에서 묵었다(舍於公宮).
75 夏五月壬申, 成子兄弟四乘如公. 子我在幄, 出迎之, 遂入, 閉門. 宦者御之, 子行殺宦者. 公與婦人飲酒於檀臺, 成子遷諸寢. 公執戈將擊之, 太史子餘曰: "非不利也, 將除害也." 成子出舍于庫, 聞公猶怒, 將出, 曰: "何所無君!" 子行拔劍曰: "需, 事之賊也. 誰非田宗? 所不殺子者有如田宗." 乃止. 子我歸, 屬徒攻闈與大門, 皆弗勝, 乃出. 田氏追之. 豐丘人執子我以告, 殺之郭關. 成子將殺大陸子方, 田逆請而免之. 以公命取車於道, 出雍門. 田豹與之車, 弗受, 曰: "逆爲余請, 豹與余車, 余有私焉. 事子我而有私於其讎, 何以見魯·衛之士?"
75 여름(夏) 5월 임신일에(五月壬申), 성자의 형제 넷이(成子兄弟四) 수레를 타고(乘) 간공에게 갔다(如公). 자아가(子我) 장막에 있다가(在幄), 나가서 맞이하고(出迎之), 마침내 들어서자(遂入), 문을 닫았다(閉門). 환관이(宦者) 그를 막았는데(御之), 자행이(子行) 환관을 죽였다(殺宦者). 공과 부인이(公與婦人) 단대에서 술을 마셨는데(飲酒於檀臺), 전성자가(成子) 침실로 옮기도록 했다(遷諸寢).
공이(公) 창을 잡고(執戈) 그를 공격하려고 하자(將擊之), 태사 자여가 말하길(太史子餘曰): "불리한 것이 아니고(非不利也),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將除害也)."라고 했다.
전성자가(成子) 나와서(出) 창고에 묵었다가(舍于庫), 간공이(聞公) 여전히 화를 내므로(猶怒), 나가며 말하길(將出, 曰): "어디든(何) 군주 없는 곳이 있겠는가(所無君)!"라고 했다.
자행이(子行) 검을 뽑아 말하길(拔劍曰): "머뭇거림은(需), 일의 적입니다(事之賊也). 누가(誰) 전씨의 일족이 아닌가요(非田宗)? 그대를 죽이지 않는 것은(所不殺子者) 전씨 종족을 따름이 있어서다(有如田宗)."라고 하니 그만두었다(乃止). 자아가 돌아와(子我歸), 무리를 모아(屬徒) 쪽문과 큰 문을 공격하니(攻闈與大門), 모두(皆) 이기지 못하고(弗勝), 달아났다(乃出). 전씨가 이들을 추격했다(田氏追之). 풍구 사람이(豐丘人) 자아를 잡아(執子我以) 고하고(告), 성곽 문에서(郭關) 죽였다(殺之). 전성자가(成子) 대륙자방을 죽이려고 했지만(將殺大陸子方), 전역이 청하여(田逆請而) 풀어주었다(免之). 공의 명령으로(以公命) 길에서 마차를 취해(取車於道), 옹문으로 나갔다(出雍門).
전표가(田豹) 마차를 주었지만(與之車), 받지 않으며(弗受), 말하길(曰): "전역이(逆) 나를 위해(爲余) 청했는데(請), 전표가(豹) 나에게 수레를 주면(與余車), 나에게(余)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다(有私焉). 자아를 섬기면서(事子我而) 그 원수에게 사사로움이 있으면(有私於其讎), 어찌(何以) 노나라와 위나라 사를 보겠는가(見魯·衛之士)?"라고 했다.
76 庚辰, 田常執簡公于俆州. 公曰: "余蚤從御鞅言, 不及此." 甲午, 田常弒簡公于俆州. 田常乃立簡公弟驁, 是爲平公. 平公即位, 田常相之, 專齊之政, 割齊安平以東爲田氏封邑.
76 경진일에(庚辰), 전상이(田常) 서주에서(于俆州) 간공을 잡았다(執簡公).
공이 말하길(公曰): "내가(余) 일찍이(蚤) 어앙의 말을 따랐다면(從御鞅言), 이런 정도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不及此)."라고 했다.
갑오일에(甲午), 전상이(田常) 서주에서 간공을 시해했다(弒簡公于俆州). 전상이 이에(田常乃) 간공의 동생 오를(簡公弟驁) 세우니(立), 이 사람이 평공이다(是爲平公). 평공이 즉위하고(平公即位), 전상이 그를 보좌하며(田常相之), 제나라의 정권을(齊之政) 독차지하고(專), 제나라 안평 동쪽을 떼어(割齊安平以東) 전씨의 봉읍으로 삼았다(爲田氏封邑).
77 平公八年, 越滅吳. 二十五年卒, 子宣公積立.
77 평공 8년에(平公八年), 월나라가(越) 오나라를 멸망시켰다(滅吳). 25년에 죽고(二十五年卒), 아들(子) 선공 적이 즉위했다(宣公積立).
78 宣公五十一年卒, 子康公貸立. 田會反廩丘. 康公二年, 韓·魏·趙始列爲諸侯. 十九年, 田常曾孫田和始爲諸侯, 遷康公海濱.
78 선공이(宣公) 51년에 죽고(五十一年卒), 아들(子) 강공 대가 즉위했다(康公貸立). 전회가(田會) 늠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反廩丘). 강공 2년에(康公二年), 한나라와 위나라, 조나라가(韓·魏·趙) 비로소(始) 제후가 되어(爲諸侯) 늘어섰다(列). 19년에(十九年), 전상의 증손자(田常曾孫) 전화가(田和) 비로소(始) 제후가 되었고(爲諸侯), 강공을(康公) 바닷가로 옮겼다(遷海濱).
79 二十六年, 康公卒, 呂氏遂絶其祀. 田氏卒有齊國, 爲齊威王, 彊於天下.
79 26년에(二十六年), 강공이 죽고(康公卒), 여씨가(呂氏) 마침내(遂) 그 제사가 끊어졌다(絶其祀). 전씨가(田氏) 마침내(卒) 제나라를 가져서(有齊國), 제 위왕이 되었고(爲齊威王), 천하에서 강해졌다(彊於天下).
80 太史公曰:吾適齊, 自泰山屬之瑯邪, 北被于海, 膏壤二千里, 其民闊達多匿知, 其天性也. 以太公之聖, 建國本, 桓公之盛, 修善政, 以爲諸侯會盟, 稱伯, 不亦宜乎? 洋洋哉, 固大國之風也!
80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내가(吾) 제나라에 가서(適齊), 태산부터(自泰山) 낭야까지 이어졌고(屬之瑯邪), 북쪽으로(北) 바다에 미쳐(被于海), 기름진 땅이(膏壤) 2천리이고(二千里), 그 백성은(其民) 자유롭고 통달해서(闊達) 지혜 숨긴 것이 많았는데(多匿知), 그 천성이었다(其天性也). 태공의 성스러움으로(以太公之聖),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建國本), 환공의 융성함으로(桓公之盛), 좋은 정치를 베풀고(修善政), 제후의 회맹으로(以爲諸侯會盟), 백이라 일컬어졌으니(稱伯),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不亦宜乎)? 넓고 넓구나(洋洋哉), 참으로(固) 큰 나라의 풍속이다(大國之風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