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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세가(史記世家)

[사기세가(史記世家) 31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2/3] 제 환공(齊 桓公)과 관중(管仲), 그리고 다섯 자식들

by प्रज्ञा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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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桓公元年春, 齊君無知游於雍林. 雍林人嘗有怨無知, 及其往游, 雍林人襲殺無知, 告齊大夫曰: "無知弒襄公自立, 臣謹行誅. 唯大夫更立公子之當立者, 唯命是聽." 

25 환공 원년 봄에(桓公元年春), 제군 무지가(齊君無知) 옹림에서 유람했다(游於雍林). 옹림 사람들에게(雍林人) 일찍이(嘗) 무지와 원한이 있었고(有怨無知), 그가 와서 유람할 때(及其往游), 옹림 사람들이(雍林人) 무지를 습격해 죽이고(襲殺無知), 제나라 대부에 이르길(告齊大夫曰): "무지가(無知) 양공을 시해하고(弒襄公) 스스로 즉위했으므로(自立), 신이(臣) 삼가(謹) 죽였습니다(行誅). 오직(唯) 대부들이(大夫) 다시(更) 공자 가운데 마땅한 사람을 세운다면(立公子之當立者), 오직(唯) 명을(命是) 따를 것입니다(聽)."라고 했다. 


26 初, 襄公之醉殺魯桓公, 通其夫人, 殺誅數不當, 淫於婦人, 數欺大臣, 群弟恐禍及, 故次弟糾奔魯. 其母魯女也. 管仲·召忽傅之. 次弟小白奔莒, 鮑叔傅之. 小白母, 衛女也, 有寵於釐公. 小白自少好善大夫高傒. 及雍林人殺無知, 議立君, 高·國先陰召小白於莒. 魯聞無知死, 亦發兵送公子糾, 而使管仲別將兵遮莒道, 射中小白帶鉤. 小白詳死, 管仲使人馳報魯. 魯送糾者行益遲, 六日至齊, 則小白已入, 高傒立之, 是爲桓公. 

26 애초에(初), 양공이(襄公之) 취해서(醉) 노 환공을 죽이고(殺魯桓公), 그 부인과 정을 통했고(通其夫人), 여러 사람을 죽인 것이(殺誅數) 마땅하지 않았으며(不當), 부인들과 음탕한 짓을 하고(淫於婦人), 자주(數) 대신을 속여(欺大臣), 여러 동생들이(群弟)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했고(恐禍及), 그러므로(故) 아래 동생 규가(次弟糾) 노나라로 달아났다(奔魯). 그 어머니가(其母) 노나라 여자였다(魯女也). 관중과 소홀이(管仲·召忽) 그를 보좌했다(傅之). 다음 동생 소백이(次弟小白) 여나라로 달아났고(奔莒), 포숙이 그를 보좌했다(鮑叔傅之). 소백의 어머니는(小白母), 위나라 여자로(衛女也), 희공에게 총애를 받았다(有寵於釐公). 소백이(小白) 어려서부터(自少) 대부 고해와 사이가 좋았다(好善大夫高傒). 옹림 사람들이 무지를 죽였을 때(及雍林人殺無知), 군주 세우는 일을 의논하고(議立君), 고해와 국의중이(高·國) 먼저(先) 여에서(於莒) 소백을 은밀하게 불렀다(陰召小白). 노나라가(魯) 무지가 죽은 것을 듣고(聞無知死), 또한(亦) 군사를 일으켜(發兵) 공자 규를 보내고(送公子糾, 而) 관중을 시켜(使管仲) 별도로(別) 병사를 이끌고(將兵) 여나라로 통하는 길을 막도록 했고(遮莒道), 활을 쏴서(射) 소백의 쇠고리를 맞췄다(中小白帶鉤). 소백이(小白)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詳死), 관중이(管仲) 사람을 시켜(使人) 노나라로 가서 보고하도록 했다(馳報魯). 노나라가(魯) 규를 보내는 것이(送糾者) 행렬이 더욱 늦어졌고(行益遲), 6일 만에(六日) 제나라에 도착하니(至齊, 則) 소백이(小白) 이미 들어왔고(已入), 고해가 그를 즉위시켰으니(高傒立之), 이 사람이(是) 환공이다(爲桓公). 

 

* 帶鉤(대구): 버클(buckle). 허리띠 따위를 죄어 고정(固定)하는 장치(裝置)가 되어 있는 장식물(裝飾物).


27 桓公之中鉤, 詳死以誤管仲, 已而載溫車中馳行, 亦有高·國內應, 故得先入立, 發兵距魯. 秋, 與魯戰于乾時, 魯兵敗走, 齊兵掩絶魯歸道. 齊遺魯書曰: "子糾兄弟, 弗忍誅, 請魯自殺之. 召忽·管仲讎也, 請得而甘心醢之. 不然, 將圍魯." 魯人患之, 遂殺子糾于笙瀆. 召忽自殺, 管仲請囚. 桓公之立, 發兵攻魯, 心欲殺管仲. 鮑叔牙曰: "臣幸得從君, 君竟以立. 君之尊, 臣無以增君. 君將治齊, 即高傒與叔牙足也. 君且欲霸王, 非管夷吾不可. 夷吾所居國國重, 不可失也." 於是桓公從之. 乃詳爲召管仲欲甘心, 實欲用之. 管仲知之, 故請往. 鮑叔牙迎受管仲, 及堂阜而脫桎梏, 齋祓而見桓公. 桓公厚禮以爲大夫, 任政. 

27 환공이(桓公之) 허리띠에 맞고(中鉤), 거짓으로 죽은 척해서(詳死以) 관중을 오해하도록 했고(誤管仲), 나중에(已而) 온거를 타고(載溫車中) 달렸고(馳行), 또한(亦) 고해와 고해와 국의중이 있어(有高·國) 안에서 호응했고(內應), 그러므로(故) 먼저 들어가서 즉위할 수 있었고(得先入立), 병사를 징발해서(發兵) 노나라를 막았다(距魯). 가을에(秋), 노나라와(與魯) 간시에서 싸웠는데(戰于乾時), 노나라 군사가(魯兵) 패하여 달아났고(敗走), 제나라 병사가(齊兵) 노나라의 돌아가는 길을 막아 끊었다(掩絶魯歸道).

제나라가(齊) 노나라에 편지를 보내 말하길(遺魯書曰): "자규는(子糾) 형제라서(兄弟), 차마 죽일 수 없으니(弗忍誅), 청컨대(請) 노나라가(魯) 스스로 그를 죽여라(自殺之). 소홀과 관중은(召忽·管仲) 원수이니(讎也), 청컨대(請) 잡아서(得而) 해형에 처하는 것으로(醢之) 만족할 것이다(甘心). 그렇지 않으면(不然), 장차(將) 노나라를 포위할 것이다(圍魯)."라고 했다.

노나라가(魯人) 이것을 걱정해서(患之), 마침내(遂) 생독에서 죽였다(殺子糾于笙瀆). 소홀은(召忽) 자살하고(自殺), 관중은(管仲) 죄인을 청했다(請囚). 환공이 즉위해서(桓公之立), 군사를 뽑아(發兵) 노나라를 공격하고(攻魯), 마음으로(心) 관중을 죽이려고 했다(欲殺管仲).

포숙아가 말하길(鮑叔牙曰): "신이 다행히(臣幸) 군을 따랐고(得從君), 군이(君) 마침내 즉위했습니다(竟以立). 군의 존엄함에(君之尊), 저는(臣) 군에게 보탤 것이 없습니다(無以增君). 군이(君) 장차 제나라를 다스린다면(將治齊), 곧 고해와 포숙아면 충분합니다(即高傒與叔牙足也). 군이 다만(君且) 패왕이 되려면(欲霸王), 관이오가 아니면(非管夷吾) 안됩니다(不可). 이오가(夷吾) 머무는 나라는(所居國) 나라가 중해질 것이니(國重), 잃을 수 없습니다(不可失也)."라고 했다.

이에(於是) 환공이 그 말을 따랐다(桓公從之). 이에(乃) 거짓으로(詳) 관중을 불러(爲召管仲) 마음을 달래겠다고 했지만(欲甘心), 실제는(實) 그를 등용하려는 것이었다(欲用之). 관중은(管仲) 이것을 알았고(知之), 그러므로(故) 가기를 청했다(請往). 포숙아가(鮑叔牙) 관중을 맞이해 받아들이고(迎受管仲), 당부에 이르러(及堂阜而) 차꼬와 수갑을 풀고(脫桎梏), 재계하고(齋祓而) 환공을 만나도록 했다(見桓公). 환공이(桓公) 두터운 예로(厚禮) 대부로 삼고(以爲大夫), 정치를 맡겼다(任政). 

 

* 甘心(감심): 만족해하다. 달가워하다.
* 醢(해): 육장(肉醬). 죽여서 소금에 절이는 혹형이다.


28 桓公既得管仲, 與鮑叔·隰朋·高傒修齊國政, 連五家之兵, 設輕重魚鹽之利, 以贍貧窮, 祿賢能, 齊人皆說. 

28 환공이(桓公) 관중을 얻고서(既得管仲), 포숙과 습붕, 고해와 함께(與鮑叔·隰朋·高傒) 제나라의 정치를 닦았고(修齊國政), 다섯 가구의 병사를 연결하고(連五家之兵), 가벼움을 베풀고(設輕) 어업과 소금의 이익을 중히 여겨(重魚鹽之利, 以) 비민을 구제하고(贍貧窮), 현능한 사람에게 녹봉을 주니(祿賢能),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모두 기뻐했다(皆說). 

 

* 連五家之兵(연오가지병): 관중이 제정한 군사제도. 국도(國都)를 제어하여 다섯 가구를 궤(軌)라는 조직으로 만들고 궤(軌)에는 그 장(長)을 두고, 10궤는 리(里)로 만들어 리(里)에는 유사(有司)를 두고, 4里는 연(連)으로 만들고 連에 그 장(長)을 두고, 10연(連)을 향(鄕)으로 만들고 향(鄕)에 양인(良人)을 두었다.<국어(國語) 제어(齊語)>


29 二年, 伐滅郯, 郯子奔莒. 初, 桓公亡時, 過郯, 郯無禮, 故伐之. 

29 2년에(二年), 담을 정벌했고(伐滅郯), 담자가(郯子) 거로 달아났다(奔莒). 처음(初), 환공이(桓公) 도망칠 때(亡時), 담을 지나갔는데(過郯), 담에게(郯) 예가 없었고(無禮), 그러므로 정벌했다(故伐之). 


30 五年, 伐魯, 魯將師敗. 魯莊公請獻遂邑以平, 桓公許, 與魯會柯而盟. 魯將盟, 曹沬以匕首劫桓公於壇上, 曰: "反魯之侵地!" 桓公許之. 已而曹沬去匕首, 北面就臣位. 桓公後悔, 欲無與魯地而殺曹沬. 管仲曰: "夫劫許之而倍信殺之, 愈一小快耳, 而棄信於諸侯, 失天下之援, 不可." 於是遂與曹沬三敗所亡地於魯. 諸侯聞之, 皆信齊而欲附焉. 七年, 諸侯會桓公於甄, 而桓公於是始霸焉. 

30 5년에(五年), 노나라를 쳤고(伐魯), 노나라가 군대가 패했다(魯將師敗). 노 장공이(魯莊公) 수읍을 바치며(獻遂邑以) 평화를 청하자(平), 환공이 허락하고(桓公許), 노나라와(與魯) 가에서 모여서(會柯而) 맹약을 맺었다(盟).

노나라가(魯) 맹약을 하려는데(將盟), 조말이(曹沬) 비수로(以匕首) 단상에서 환공을 협박하며 말하길(劫桓公於壇上, 曰): "노나라의 빼앗은 땅을(魯之侵地) 돌려주시오(反)!"라고 했다.

환공이 허락했다(桓公許之). 이에(已而) 조말이(曹沬) 비수를 버리고(去匕首), 북면하여(北面) 신하의 자리로 나아갔다(就臣位). 환공이 후회하며(桓公後悔), 노나라에 땅을 주지 않고(無與魯地而) 조말을 죽이려고 했다(殺曹沬).

관중이 말하길(管仲曰): "무릇(夫) 협박으로(劫) 허락했지만(許之而) 믿음을 배반하고(倍信) 죽이는 것은(殺之), 한 번의 작은 쾌감을 즐기는 것일 뿐이지만(愈一小快耳, 而) 제후의 믿음을 버리고(棄信於諸侯), 천하의 지지를 잃는 것은(失天下之援),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이에(於是) 마침내(遂) 조말이(曹沬) 세 번 져서(三敗) 잃은 땅을(所亡地) 노나라에 주었다(於魯). 제후들이 이것을 듣고(諸侯聞之), 모두(皆) 제나라를 믿었고(信齊而) 가까이하려고 했다(欲附焉). 7년에(七年), 제후들이(諸侯) 견에서(於甄) 환공을 만났고(會桓公, 而) 환공이(桓公) 이에(於是) 비로소 패자가 되었다(始霸焉). 


31 十四年, 陳厲公子完, 號敬仲, 來奔齊. 齊桓公欲以爲卿, 讓; 於是以爲工正. 田成子常之祖也. 

31 14년에(十四年), 진 여공의 아들(陳厲公子) 완이(完), 호가(號) 경중인데(敬仲), 제나라로 도망쳤다(來奔齊). 제 환공이(齊桓公) 경으로 삼으려고 했지만(欲以爲卿), 사양했고(讓); 이에(於是) 공정으로 삼았다(以爲工正). 전성자 전상의(田成子常之) 시조다(祖也). 


32 二十三年, 山戎伐燕, 燕告急於齊. 齊桓公救燕, 遂伐山戎, 至于孤竹而還. 燕莊公遂送桓公入齊境. 桓公曰: "非天子, 諸侯相送不出境, 吾不可以無禮於燕." 於是分溝割燕君所至與燕, 命燕君復修召公之政, 納貢于周, 如成康之時. 諸侯聞之, 皆從齊. 

32 23년에(二十三年), 산융이(山戎) 연나라를 치자(伐燕), 연나라가(燕)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告急於齊). 제 환공이(齊桓公) 연나라를 구하고(救燕), 마침내(遂) 산융을 쳐서(伐山戎), 고죽에 이르러(至于孤竹而) 돌아왔다(還). 연 장공이(燕莊公) 환공을 전송하다(遂送桓公) 제나라 국경에 들어왔다(入齊境).

환공이 말하길(桓公曰): "천자가 아니면(非天子), 제후가(諸侯) 서로(相) 환송할 때(送) 국경을 나갈 수 없으니(不出境), 내가(吾) 연나를 무례하게 대할 수 없다(不可以無禮於燕)."라고 했다.

이에(於是) 나누어(分) 도랑을 파고(溝) 연군이 이른 곳을 떼어(割燕君所至) 연나라에 주고(與燕), 연군에게 명하여(命燕君) 다시(復) 소공의 정치를 가다듬고(修召公之政), 주나라에 공물을 들이도록 해서(納貢于周), 성왕과 강왕의 시대처럼 하도록 했다(如成康之時). 제후들이 이것을 듣고(諸侯聞之), 모두(皆) 제나라를 따랐다(從齊). 


33 二十七年, 魯湣公母曰哀姜, 桓公女弟也. 哀姜淫於魯公子慶父, 慶父弒湣公, 哀姜欲立慶父, 魯人更立釐公. 桓公召哀姜, 殺之. 

33 27년에(二十七年), 노 민공의 어머니는(魯湣公母) 애강인데(曰哀姜), 환공의 여동생이다(桓公女弟也). 애강이(哀姜) 노나라 공자 경보와(於魯公子慶父) 음란한 짓을 벌였고(淫), 경보가(慶父) 민공을 시해하고(弒湣公), 애강이(哀姜) 경보를 세우려고 하자(欲立慶父), 노나라 사람들이(魯人) 다시(更) 희공을 세웠다(立釐公). 환공이(桓公) 애공을 불러(召哀姜), 죽였다(殺之). 


34 二十八年, 衛文公有狄亂, 告急於齊. 齊率諸侯城楚丘而立衛君. 

34 28년에(二十八年), 위 문공에게(衛文公) 적의 난이 있으므로(有狄亂),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告急於齊). 제나라가(齊) 제후를 이끌고(率諸侯) 초구에 성을 쌓고(城楚丘而) 위군을 세웠다(立衛君). 


35 二十九年, 桓公與夫人蔡姬戲船中. 蔡姬習水, 蕩公, 公懼, 止之, 不止, 出船, 怒, 歸蔡姬, 弗絶. 蔡亦怒, 嫁其女. 桓公聞而怒, 興師往伐. 

35 29년에(二十九年), 환공과(桓公與) 부인 채희가(夫人蔡姬) 배 안에서 놀았다(戲船中). 채희가(蔡姬) 물에 익숙했고(習水), 공을 흔들었는데(蕩公), 공이 두려워하면(公懼), 그만두도록 했지만(止之), 그만두지 않았고(不止), 배에서 나와(出船), 화를 내며(怒), 채희를 돌려보내고(歸蔡姬), <혼인을> 끊지 않았다(弗絶). 채후도(蔡) 또한 화가 나서(亦怒), 그 여자를 시집보냈다(嫁其女). 환공이 듣고(桓公聞而) 노하여(怒), 군사를 일으켜(興師) 가서 정벌했다(往伐). 


36 三十年春, 齊桓公率諸侯伐蔡, 蔡潰. 遂伐楚. 楚成王興師問曰: "何故涉吾地?" 管仲對曰: "昔召康公命我先君太公曰:『五侯九伯, 若實征之, 以夾輔周室. 』賜我先君履, 東至海, 西至河, 南至穆陵, 北至無棣. 楚貢包茅不入, 王祭不具, 是以來責. 昭王南征不復, 是以來問." 楚王曰: "貢之不入, 有之, 寡人罪也, 敢不共乎! 昭王之出不復, 君其問之水濱." 齊師進次于陘. 夏, 楚王使屈完將兵捍齊, 齊師退次召陵. 桓公矜屈完以其衆. 屈完曰: "君以道則可; 若不, 則楚方城以爲城, 江·漢以爲溝, 君安能進乎?" 乃與屈完盟而去. 過陳, 陳袁濤涂詐齊, 令出東方, 覺. 秋, 齊伐陳. 是歲, 晉殺太子申生. 

36 30년 봄에(三十年春), 제 환공이(齊桓公) 제후를 이끌고(率諸侯) 채나라를 쳤고(伐蔡), 채나라가 무너졌다(蔡潰). 마침내(遂) 초나라를 쳤다(伐楚).

초 성왕이(楚成王) 군사를 일으켜 묻기를(興師問曰): "무슨 까닭으로(何故) 우리 땅에 넘어오는가(涉吾地)?"라고 했다.

관중이 대답하길(管仲對曰): "옛날(昔) 소강공이(召康公) 우리 선군인 태공에게 명하길(命我先君太公曰): '다섯 제후와 구백이(五侯九伯), <죄가 있으면> 네가(若) 그들을 정벌하고(實征之, 以) 주 왕실을 도와라(夾輔周室).'라고 했다. 우리 선군이 밟은 것이(賜我先君履), 동으로(東) 바다에 이르고(至海), 서로 황하에 이르고(西至河), 남으로 목릉에 이르고(南至穆陵), 북으로 무체에 이른다(北至無棣). 초나라의 공물(楚貢) 포모가 들어오지 않으므로(包茅不入), 와의 제사가(王祭) 갖춰지지 못하고(不具), 이 때문에(是以) 와서 꾸짖는 것이다(來責). 소왕이(昭王) 남으로 정벌했다가(南征) 돌아오지 않았으니(不復), 이 때문에(是以) 와서 묻는다(來問)."라고 했다.

초왕이 말하길(楚王曰): "공물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貢之不入), 그런 일이 있으니(有之), 나의 죄이니(寡人罪也), 감히(敢) 바치지 않겠는가(不共乎)! 소왕이 나가서(昭王之出) 돌아오지 않은 것은(不復), 그대가(君) 한수 가에서(水濱) 그것을 물어라(其問之)."라고 했다.

제나라 군대가(齊師) 나아가서(進) 형에 주둔했다(次于陘). 여름에(夏), 초왕이(楚王) 굴완을 시켜(使屈完) 병사를 이끌고(將兵) 제나라를 막도록 하니(捍齊), 제나라 군대가(齊師) 물러나(退) 소릉에 주둔했다(次召陵). 환공이(桓公) 그 무리의 수로(以其衆) 굴완에게 과시했다(矜屈完).

굴완이 말하길(屈完曰): "군께서(君) 도로써 하면(以道則) 괜찮지만(可); 만약 그렇지 않으면(若不, 則) 초나라가(楚) 방성산으로 성을 삼고(方城以爲城), 장강과 한수로(江·漢以) 도랑을 삼을 것이니(爲溝), 군께서(君) 어찌(安) 나아갈 수 있을까요(能進乎)?"라고 했다.

이에(乃) 굴완과 맹약하고(與屈完盟而) 물러났다(去). 진나라를 지날 때(過陳), 진의 원도도가(陳袁濤涂) 제나라를 속여(詐齊), 동쪽으로 나가도록 하려다가(令出東方), 발각되었다(覺). 가을에(秋), 제나라가(齊) 진나라를 쳤다(伐陳). 이 해에(是歲), 진나라가(晉) 태자 신생을 죽였다(殺太子申生). 


37 三十五年夏, 會諸侯于葵丘. 周襄王使宰孔賜桓公文武胙·彤弓矢·大路, 命無拜. 桓公欲許之, 管仲曰'不可」, 乃下拜受賜. 秋, 復會諸侯於葵丘, 益有驕色. 周使宰孔會. 諸侯頗有叛者. 晉侯病, 後, 遇宰孔. 宰孔曰: "齊侯驕矣, 弟無行." 從之. 是歲, 晉獻公卒, 裏克殺奚齊·卓子, 秦穆公以夫人入公子夷吾爲晉君. 桓公於是討晉亂, 至高梁, 使隰朋立晉君, 還. 

37 35년 여름에(三十五年夏), 제후가(諸侯) 규구에서 모였다(于葵丘). 주 양왕이(周襄王) 재공을 시켜(使宰孔) 문왕과 무왕의 제사 고기와(文武胙) 붉은 화살(彤弓矢) 큰 수레를(大路) 환공에게 주면서(賜桓公), 명하여(命) 절하지 않도록 했다(無拜). 환공이(桓公) 허락하려고 하자(欲許之), 관중이(管仲) 안된다고 말했고(曰'不可'), 이에(乃) 내려가 절하고 받았다(下拜受賜). 가을에(秋), 다시(復) 규구에서 제후를 모았는데(會諸侯於葵丘), 더욱(益) 교만한 기색이 있었다(有驕色). 주나라가(周) 재공을 시켜(使宰孔) 회맹에 참석하도록 했다(會). 제후 가운데(諸侯) 자못(頗) 배반한 사람이 있었다(有叛者). 진나라 후가 병이 나서(晉侯病), 늦었는데(後), 재공을 만났다(遇宰孔).

재공이 말하길(宰孔曰): "제후가 교만해졌으니(齊侯驕矣), 마음 놓고(弟) 가지 마시오(無行)."라고 했고, 이 말을 따랐다(從之).

이 해에(是歲), 진 헌공이 죽고(晉獻公卒), 이극이(裏克) 해제와 탁자를 죽이고(殺奚齊·卓子), 진 목공이(秦穆公) 부인 때문에(以夫人) 공자 이오를 들여보내(入公子夷吾) 진군으로 삼았다(爲晉君). 환공이(桓公) 이에(於是) 진나라의 혼란을 토벌했고(討晉亂), 고량에 이르러(至高梁), 습붕으로 하여금(使隰朋) 진군을 세우도록 하고(立晉君), 돌아갔다(還). 

 

* 弟(제): 第와 통하여 마음 놓다. 얼마든지.


38 是時周室微, 唯齊·楚·秦·晉爲彊. 晉初與會, 獻公死, 國內亂. 秦穆公辟遠, 不與中國會盟. 楚成王初收荊蠻有之, 夷狄自置. 唯獨齊爲中國會盟, 而桓公能宣其德, 故諸侯賓會. 於是桓公稱曰: "寡人南伐至召陵, 望熊山; 北伐山戎·離枝·孤竹; 西伐大夏, 涉流沙; 束馬懸車登太行, 至卑耳山而還. 諸侯莫違寡人. 寡人兵車之會三, 乘車之會六, 九合諸侯, 一匡天下. 昔三代受命, 有何以異於此乎? 吾欲封泰山, 禪梁父." 管仲固諫, 不聽; 乃說桓公以遠方珍怪物至乃得封, 桓公乃止. 

38 이때(是時) 주 왕실이 약해지고(周室微), 오직(唯) 제와 초, 진, 진이 강성했다(齊·楚·秦·晉爲彊). 진나라가(晉) 처음에(初) 회맹에 참여했는데(與會), 헌공이 죽고(獻公死), 나라 안이 혼란스워졌다(國內亂). 진 목공은(秦穆公) <나라가> 외지고 멀어(辟遠), 중국의 회맹에 참여하지 않았다(不與中國會盟). 초 성왕이(楚成王) 막(初) 형만을 거두어 가졌는데(收荊蠻有之), 이적을(夷狄) 스스로 자처했다(自置). 오직(唯獨) 제나라가(齊) 중국의 회맹을 소집했고(爲中國會盟, 而) 환공이(桓公) 그 덕을 널리 퍼뜨렸고(能宣其德), 그러므로(故) 제후들이 회맹에 복종했다(諸侯賓會).

이에(於是) 환공이 말하길(桓公稱曰): "내가(寡人) 남으로 정벌해서(南伐) 소릉에 이르고(至召陵), 웅산을 바라보았고(望熊山); 북으로 산융과 이지, 고죽을 정벌했고(北伐山戎·離枝·孤竹); 서로 대하를 정벌하고(西伐大夏), 유사를 건넜고(涉流沙); 말을 묶고(束馬) 수레를 매달아(懸車) 태행산에 오르고(登太行), 비이산에 이르러(至卑耳山而) 돌아왔다(還). 제후 가운데(諸侯) 누구도(莫) 나를 거스르지 않았다(違寡人). 내가(寡人) 병거를 타고 모인 것이(兵車之會) 세 번이고(三), 수레를 타고 모인 것이 여섯 번이니(乘車之會六), 제후를 아홉 번 모아서(九合諸侯),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았다(一匡天下). 옛날(昔) 삼대가(三代) 천명을 받은 것이(受命), 무엇이(何以) 이것과 다른 것이(異於此) 있겠는가(乎)? 내가(吾) 태산에 올라(欲封泰山), 양보에서 봉선 행사를 하려고 한다(禪梁父)."라고 했다.

관중이(管仲) 굳게 간했지만(固諫), 듣지 않았고(不聽); 이에(乃) 환공을 설득해서(說桓公以) 원방의(遠方) 진기한 물건이 이르면(珍怪物至乃) 봉선할 수 있다고 하자(得封), 환공이 그만두었다(桓公乃止). 


39 三十八年, 周襄王弟帶與戎·翟合謀伐周, 齊使管仲平戎於周. 周欲以上卿禮管仲, 管仲頓首曰: "臣陪臣, 安敢!" 三讓, 乃受下卿禮以見. 三十九年, 周襄王弟帶來奔齊. 齊使仲孫請王, 爲帶謝. 襄王怒, 弗聽. 

39 38년에(三十八年), 주 양왕의 동생(周襄王弟) 자대가(帶) 융, 적과 함께(與戎·翟) 모의해서(合謀) 주나라를 쳤고(伐周), 제나라가(齊) 관중을 시켜(使管仲) 주에서(於周) 융과 평화롭게 지내도록 했다(平戎).

주나라가(周) 상경으로(欲以上卿) 관중을 대우하려고 하자(禮管仲), 관중이(管仲)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길(頓首曰): "저는(臣) 제후의 신하이니(陪臣), 어찌 감히(安敢)!"라고 했다.

세 번 사양하고(三讓), 이에(乃) 하경의 예를 받아(受下卿禮以) 인사했다(見). 39년에(三十九年), 주 양왕의 동생 주대가(周襄王弟帶) 제나라로 도망쳤다(來奔齊). 제나라가(齊) 중손을 시켜(使仲孫) 왕에게 청하길(請王), 주대를 위해(爲帶) 용서를 구했다(謝). 양왕이 노하여(襄王怒), 들어주지 않았다(弗聽). 

 

* 陪臣(배신): 신하의 신하. 곧 제후의 신하. 제후의 신하인 대부(大夫)가 천자를 대할 때 자신을 칭하는 말. 


40 四十一年, 秦穆公虜晉惠公, 復歸之. 是歲, 管仲·隰朋皆卒. 管仲病, 桓公問曰: "群臣誰可相者?" 管仲曰: "知臣莫如君." 公曰: "易牙如何?" 對曰: "殺子以適君, 非人情, 不可." 公曰: "開方如何?" 對曰: "倍親以適君, 非人情, 難近." 公曰: "豎刀如何?" 對曰: "自宮以適君, 非人情, 難親." 管仲死, 而桓公不用管仲言, 卒近用三子, 三子專權. 

40 41년에(四十一年), 진 목공이(秦穆公) 진 혜공을 사로잡았다가(虜晉惠公), 다시 돌려보냈다(復歸之). 이 해에(是歲), 관중과 습붕이 죽었다(管仲·隰朋皆卒).

관중이 병이 나자(管仲病), 환공이 묻기를(桓公問曰): "여러 신하 가운데(群臣) 누가(誰) 재상이 될만한 사람인가(可相者)?"라고 했다.

관중이 말하길(管仲曰): "신을 아는 것은(知臣) 누구도(莫) 군과 같지 않습니다(如君)."라고 했다.

공이 말하길(公曰): "역아는(易牙) 어떤가(如何)?"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자식을 죽여(殺子以) 임금에게 맞추었으니(適君), 인정에 어긋나서(非人情), 안됩니다(不可)."라고 했다.

공이 말하길(公曰): "개방은 어떤가(開方如何)?"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고(倍親以) 임금에게 맞추었으니(適君), 인정에 어긋나서(非人情), 가까이하기 어렵습니다(難近)."라고 했다.

공이 말하길(公曰): "수도는 어떤가(豎刀如何)?"라고 했다.

대답하길(對曰): "스스로 궁형을 받아(自宮以) 임금에게 맞추었으니(適君), 인정에 어긋나서(非人情), 친하 대하기 어렵습니다(難親)."라고 했다.

관중이 죽고(管仲死, 而) 환공은(桓公) 관중의 말을 듣지 않았고(不用管仲言), 마침내(卒) 세 사람을 가까이 두고(近用三子), 세 사람이(三子) 권력을 오로지 했다(專權). 


41 四十二年, 戎伐周, 周告急於齊, 齊令諸侯各發卒戍周. 是歲, 晉公子重耳來, 桓公妻之. 

41 41년에(四十二年), 융이(戎) 주나라를 치고(伐周), 주나라가(周)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리자(告急於齊), 제나라가(齊) 제후를 시켜(令諸侯) 각자 병사를 뽑아(各發卒) 주나라를 지키도록 했다(戍周). 이 해에(是歲), 진공자 중이가(晉公子重耳) 왔고(來), 환공이(桓公)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妻之). 


42 四十三年. 初, 齊桓公之夫人三:曰王姬·徐姬·蔡姬, 皆無子. 桓公好內, 多內寵, 如夫人者六人, 長衛姬, 生無詭; 少衛姬, 生惠公元; 鄭姬, 生孝公昭; 葛嬴, 生昭公潘; 密姬, 生懿公商人; 宋華子, 生公子雍. 桓公與管仲屬孝公於宋襄公, 以爲太子. 雍巫有寵於衛共姬, 因宦者豎刀以厚獻於桓公, 亦有寵, 桓公許之立無詭. 管仲卒, 五公子皆求立. 冬十月乙亥, 齊桓公卒. 易牙入, 與豎刀因內寵殺群吏, 而立公子無詭爲君. 太子昭奔宋. 

42 43년이었다(四十三年). 애초에(初), 제 환공의 부인이(齊桓公之夫人) 셋인데(三): 왕희와 서희, 채희라고 했고(曰王姬·徐姬·蔡姬), 모두(皆) 자식이 없었다(無子). 환공이(桓公) 여색을 좋아해서(好內,) 총애하는 첩이 많았고(多內寵), 부인과 같은 사람이(如夫人者) 여섯이었고(六人), 장위희가(長衛姬), 무궤를 낳았고(生無詭); 소위희가 혜공 원을 낳았고(少衛姬, 生惠公元); 정희가 효공 소를 낳았고(鄭姬, 生孝公昭); 갈영이 소공 반을 낳았고(葛嬴, 生昭公潘); 밀희가 의공 상인을 낳았고(密姬, 生懿公商人); 송화자가 공자 옹을 낳았다(宋華子, 生公子雍). 환공과 관중이(桓公與管仲) 송 양공에게(於宋襄公) 효공을 맡기고( 屬孝公), 태자로 삼았다(以爲太子). 옹무(역아)에게(雍巫) 위공희의 총애가 있었는데(有寵於衛共姬), 내시 수도를 통해(因宦者豎刀) 두터운 예물을(以厚) 환공에게 바치고(獻於桓公), 또한(亦) 총애가 있어서(有寵), 환공이(桓公) 무궤를 세우는 것을(立無詭) 그에게 허락했다(許之). 관중이 죽고(管仲卒), 다섯 공자가(五公子) 모두(皆) 태자가 되려고 했다(求立). 겨울 10월 을해일에(冬十月乙亥), 제 환공이 죽었다(齊桓公卒). 역아가 들어가서(易牙入), 수도와 함께(與豎刀) 총애받는 첩을 통해서(因內寵) 여러 관리를 죽이고(殺群吏, 而) 공자 무궤를 세워(立公子無詭) 임금으로 삼았다(爲君). 태자 소가(太子昭) 송나라로 달아났다(奔宋). 


43 桓公病, 五公子各樹黨爭立. 及桓公卒, 遂相攻, 以故宮中空, 莫敢棺. 桓公尸在床上六十七日, 尸蟲出于戶. 十二月乙亥, 無詭立, 乃棺赴. 辛巳夜, 斂殯. 

43 환공이 병들었을 때(桓公病), 다섯 공자가(五公子) 각자(各) 당을 만들어(樹黨) 태자 되기를 다퉜다(爭立). 환공이 죽자(及桓公卒), 마침내(遂) 서로 공격했고(相攻), 이 때문에(以故) 궁중이 비어서(宮中空), 누구도 감히 입관하지 못했다(莫敢棺). 환공의 시신이(桓公尸) 상에 있은 것이(在床上) 67일이 지나(六十七日), 시신의 구더기가(尸蟲) 문 밖으로 나왔다(出于戶). 12월 을해일에(十二月乙亥), 무궤가 즉위하고(無詭立), 이에(乃) 관이 다다랐다(棺赴). 신사일 밤에(辛巳夜), 염하고 빈소를 차렸다(斂殯). 


44 桓公十有餘子, 要其後立者五人:無詭立三月死, 無謚; 次孝公; 次昭公; 次懿公; 次惠公. 孝公元年三月, 宋襄公率諸侯兵送齊太子昭而伐齊. 齊人恐, 殺其君無詭. 齊人將立太子昭, 四公子之徒攻太子, 太子走宋, 宋遂與齊人四公子戰. 五月, 宋敗齊四公子師而立太子昭, 是爲齊孝公. 宋以桓公與管仲屬之太子, 故來征之. 以亂故, 八月乃葬齊桓公. 

44 환공이(桓公) 십여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十有餘子), 모두(要) 그 뒤에 군주된 사람이(其後立者) 다섯이고(五人): 무궤가 즉위해서(無詭立) 3개월만에 죽어(三月死), 시호가 없고(無謚); 다음이 효공(次孝公); 다음이 소공(次昭公); 다음이 의공(次懿公); 다음이 혜공이다(次惠公). 효공 원년 3월에(孝公元年三月), 송 양공이(宋襄公) 제후의 군사를 이끌고(率諸侯兵) 제 태자 소를 보내서(送齊太子昭而) 제나라를 쳤다(伐齊).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齊人恐), 그 임금 무궤를 죽였다(殺其君無詭).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태자 소를 (太子昭) 세우려고 하자(將立), 네 공자의 무리가(四公子之徒) 태자를 공격했고(攻太子), 태자가 송으로 달아나니(太子走宋), 송나라가(宋) 마침내(遂) 제나라 네 공자와 싸웠다(與齊人四公子戰). 5월에(五月), 송나라가(宋) 제나라 네 공자의 군대를 무찌르고(敗齊四公子師而) 태자 소를 즉위시켰으니(立太子昭), 이 사람이(是) 제 효공이다(爲齊孝公). 송나라는(宋) 환공과 관중이 태자를 맡겼기 때문에(以桓公與管仲屬之太子), 그러므로(故) 와서 정벌했다(來征之). 혼란 때문에(以亂故), 8월이 되어(八月乃) 제 환공을 장사 지냈다(葬齊桓公). 


45 六年春, 齊伐宋, 以其不同盟于齊也. 夏, 宋襄公卒. 七年, 晉文公立. 

45 6년 봄에(六年春), 제나라가 송나라를 쳤는데(齊伐宋), 그 제나라와 동맹에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以其不同盟于齊也). 여름에(夏), 송 양공이 죽었다(宋襄公卒). 7년에(七年), 진 문공이 즉위했다(晉文公立). 


46 十年, 孝公卒, 孝公弟潘因衛公子開方殺孝公子而立潘, 是爲昭公. 昭公, 桓公子也, 其母曰葛嬴. 

46 10년에(十年), 효공이 죽고(孝公卒), 효공의 동생 반이(孝公弟潘) 위공자 개방과 함께(因衛公子開方) 효공의 아들을 죽이고(殺孝公子而) 반을 즉위시켰는데(立潘), 이 사람이 소공이다(是爲昭公). 소공은(昭公), 환공의 아들이고(桓公子也), 그 어머니는 갈영이다(其母曰葛嬴). 


47 昭公元年, 晉文公敗楚於城濮, 而會諸侯踐土, 朝周, 天子使晉稱伯. 六年, 翟侵齊. 晉文公卒. 秦兵敗於殽. 十二年, 秦穆公卒. 

47 소공 원년에(昭公元年), 진 문공이(晉文公) 성복에서(於城濮) 초나라를 무찌르고(敗楚, 而) 천토에서 제후를 모으고(會諸侯踐土), 주나라에 조회하니(朝周), 천자가(天子) 진나라를 백으로 칭하도록 했다(使晉稱伯). 6년에(六年), 적이 제나라를 침략했다(翟侵齊). 진 문공이 죽었다(晉文公卒). 진나라 군대가(秦兵) 효산에서 패했다(敗於殽). 12년에(十二年), 진 목공이 죽었다(秦穆公卒). 


48 十九年五月, 昭公卒, 子舍立爲齊君. 捨之母無寵於昭公, 國人莫畏. 昭公之弟商人以桓公死爭立而不得, 陰交賢士, 附愛百姓, 百姓說. 及昭公卒, 子舍立, 孤弱, 即與衆十月即墓上弒齊君舍, 而商人自立, 是爲懿公. 懿公, 桓公子也, 其母曰密姬. 

48 19년 5월에(十九年五月), 소공이 죽고(昭公卒), 아들 사가 즉위해서(子舍立) 제군이 되었따(爲齊君). 사의 어머니에게(捨之母) 소공의 총애가 없었고(無寵於昭公), 나라 사람들 가운데(國人)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따(莫畏). 소공의 동생(昭公之弟) 상인이(商人) 환공이 죽고 자리를 다투다 얻지 못했기 때문에(以桓公死爭立而不得), 은밀하게(陰) 현사와 교유하고(交賢士), 백성을 가까이 하고 아껴서(附愛百姓), 백성이 기뻐했다(百姓說). 소공이 죽었을 때(及昭公卒), 아들 사가 즉위했지만(子舍立), 외롭고 약해서(孤弱), 곧(即) 무리와 함께(與衆) 10월에(十月即) 묘 앞에서(墓上) 제군 사를 시해하고(弒齊君舍, 而) 상인이 스스로 즉위하니(商人自立), 이 사람이 의공이다(是爲懿公). 의공은(懿公), 환공의 아들이고(桓公子也), 그 어머니가 밀희다(其母曰密姬). 


49 懿公四年春, 初, 懿公爲公子時, 與丙戎之父獵, 爭獲不勝, 及即位, 斷丙戎父足, 而使丙戎仆. 庸職之妻好, 公內之宮, 使庸職驂乘. 五月, 懿公游於申池, 二人浴, 戲. 職曰: "斷足子!" 戎曰: "奪妻者!" 二人俱病此言, 乃怨. 謀與公游竹中, 二人弒懿公車上, 棄竹中而亡去. 

49 의공 4년 봄에(懿公四年春), 애초에(初), 의공이(懿公) 공자였을 때(爲公子時), 병융의 아버지와 함께(與丙戎之父) 사냥하다가(獵), 잡은 것을 다투었는데(爭獲) 이기지 못했고(不勝), 즉위했을 때(及即位), 병융 아버지의 발을 자르고(斷丙戎父足, 而) 병융으로 하여금 마부가 되도록 했다(使丙戎仆). 용직의 처가(庸職之妻) 예뻤는데(好), 공이(公) 궁으로 거두어들이고(內之宮), 용직으로 하여금(使庸職) 참승이 되도록 했다(驂乘.) 5월에(五月), 의공이(懿公) 신지에서 유람하는데(游於申池), 두 사람이 목욕하면서(二人浴), 농담했다(戲). 

용직이 말하길(職曰): "발 잘린 사람의 아들아(斷足子)!"라고 했다.

병융이 말하길(戎曰): "아내를 빼앗긴 놈아(奪妻者)!"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二人俱) 이 말에 상처를 받고(病此言), 이에 원한을 품었다(乃怨). 모의해서(謀) 의공과(與公) 대나무 숲에 놀러 가서(游竹中), 두 사람이(二人) 의공을 마차 위에서 시해하고(弒懿公車上), 대숲에 버리고(棄竹中而) 도망쳤다(亡去). 

 

* 内(납): 納과 같다. 거두어 들이다.


50 懿公之立, 驕, 民不附. 齊人廢其子而迎公子元於衛, 立之, 是爲惠公. 惠公, 桓公子也. 其母衛女, 曰少衛姬, 避齊亂, 故在衛. 

50 의공이 즉위했을 때(懿公之立), 교만했고(驕),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民不附). 제나라 사람들이(齊人) 그 자식을 폐하고(廢其子而) 위나라에서(於衛) 공자 영을 맞이해서(迎公子元), 그를 세우니(立之), 이 사람이 혜공이다(是爲惠公). 혜공은 환공의 아들이다(惠公, 桓公子也). 그 어머니는 위나라 여자로(其母衛女), 소위희인데(曰少衛姬), 제나라의 혼란을 피했고(避齊亂), 그러므로 위나라에 있었다(故在衛). 


51 惠公二年, 長翟來, 王子城父攻殺之, 埋之於北門. 晉趙穿弒其君靈公. 

51 혜공 2년에(惠公二年), 장적이 왔고(長翟來), 왕자 성보가(王子城父) 공격해서(攻) 그를 죽이고(殺之), 북문에 묻었다(埋之於北門). 진나라 조아가(晉趙穿) 그 임금 영공을 시해했다(弒其君靈公). 


52 十年, 惠公卒, 子頃公無野立. 初, 崔杼有寵於惠公, 惠公卒, 高·國畏其偪也, 逐之, 崔杼奔衛. 

52 10년에(十年), 혜공이 죽고(惠公卒), 아들(子) 경공 무야가 즉위했다(頃公無野立). 애초에(初), 최자에게(崔杼) 혜공의 총애가 있었고(有寵於惠公), 혜공이 죽었을 때(惠公卒), 고와 국 일족이(高·國) 그 핍박을 두려워해서(畏其偪也), 쫓아냈고(逐之), 최자가(崔杼) 위나라로 도망갔다(奔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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