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君相秦十年, 宗室貴戚多怨望者. 趙良見商君. 商君曰: "鞅之得見也, 從孟蘭皋, 今鞅請得交, 可乎?" 趙良曰: "仆弗敢願也. 孔丘有言曰: '推賢而戴者進, 聚不肖而王者退.' 仆不肖, 故不敢受命. 仆聞之曰: '非其位而居之曰貪位, 非其名而有之曰貪名.' 仆聽君之義, 則恐仆貪位貪名也. 故不敢聞命."
상군이(商君) 진나에서 재상을 하고(相秦) 10년이 지나자(十年), 종실의(宗室) 왕의 인척 중에(貴戚)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多怨望者). 조량이 상군을 만나러 왔다(趙良見商君).
상군이 말하길(商君曰): "위앙이(鞅之)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은(得見也), 맹난고를 따라서인데(從孟蘭皋), 지금(今) 제가(鞅) 친교를 맺기를 청하니(請得交), 가능하겠소(可乎)?"라고 했다.
조량이 말하길(趙良曰): "제가(仆) 감히 바라지 모한 것입니다(弗敢願也). 공자의 말 중에서 말하길(孔丘有言曰): '어진 사람을 추천하여(推賢而) 받드는 사람은 발전하고(戴者進), 어리석은 사람을 모아(聚不肖而) 왕 노릇하는 사람은(王者) 퇴보한다(退).'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리석고(仆不肖), 그러므로(故) 감히 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不敢受命). 제가 들은 것 중에서 말하길(仆聞之曰): '그 자리가 아니면(非其位而) 머무는 것을(居之) 자리를 탐한다고 하고(曰貪位), 非其名而有之曰貪名.' 仆聽君之義, 則恐仆貪位貪名也. 故不敢聞命."
* 貴戚(귀척): 임금의 인척
商君曰: "子不說吾治秦與?" 趙良曰: "反聽之謂聰, 內視之謂明, 自勝之謂彊. 虞舜有言曰: '自卑也尙矣.' 君不若道虞舜之道, 無爲問仆矣." 商君曰: "始秦戎翟之教, 父子無別, 同室而居. 今我更制其教, 而爲其男女之別, 大筑冀闕, 營如魯衛矣. 子觀我治秦也, 孰與五羖大夫賢?" 趙良曰: "千羊之皮, 不如一狐之掖; 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 武王諤諤以昌, 殷紂墨墨以亡. 君若不非武王乎, 則仆請終日正言而無誅, 可乎?"
상군이 말하길(商君曰): "그대는(子) 내가 진나라를 통치하는 방식이(吾治秦) 마음에 들지 않는가(不說與)?"라고 했다.
조량이 말하길(趙良曰): "돌이켜 듣는 것을(反聽之謂) 총이라 하고(聰), 안으로 살피는 것을(內視之) 명이라 하고(謂明), 자기를 이기는 것을(自勝之) 강이라 한다(謂彊). 우순에게 말이 있는데(虞舜有言曰):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自卑也) 높이는 것이다(尙矣).'라고 했다. 그대가(君) 우순의 것만 못하고(不若道虞舜之道), 나에게 물을 것이 없다(無爲問仆矣)."라고 했다.
상군이 말하길(商君曰): "애초에(始) 진나라에(秦) 융적(오랑캐)의 가르침이 있어(戎翟之教), 부자에게 구별이 없고(父子無別), 같은 집에 살았다(同室而居). 지금(今) 내가(我) 그 가르침을 바꿔서(更制其教, 而) 남녀의 구별을 만들고(爲其男女之別), 궁궐을 크게 지어(大筑冀闕), 노나라와 위나라처럼 통치한다(營如魯衛矣). 그대가(子) 내가 진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보면(觀我治秦也), 오 고대부와 더불어(與五羖大夫) 누가 더 현명한가(孰賢)?"라고 했다. 조량이 말하길(趙良曰): "천 마리 양가죽이(千羊之皮), 한 마리 여우 겨드랑이 가죽보다 못하고(不如一狐之掖); 천 명의 아부가(千人之諾諾), 한 선비의 바르말보다 못하다(不如一士之諤諤). 무왕은(武王) <신하의> 바른말로 번성했고(諤諤以昌), 은나라 주왕은(殷紂) 말을 못 하게 해서 망했다(墨墨以亡). 그대가(君) 만약(若) 무왕이 그르다고 여기지 않는다면(不非武王乎, 則) 제가(仆) 청컨대(請) 종일토록(終日) 바른말 해도(正言而) 죽이지 않는 것이(無誅), 가능하겠습니까(可乎)?"라고 했다.
* 諾諾(낙낙): 예, 예 하면서 오로지 남의 말대로 순종(順從)하여 응낙(應諾)함.
* 諤諤(악악): 아무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함.
商君曰: "語有之矣, 貌言華也, 至言實也, 苦言藥也, 甘言疾也. 夫子果肯終日正言, 鞅之藥也. 鞅將事子, 子又何辭焉!" 趙良曰: "夫五羖大夫, 荊之鄙人也. 聞秦繆公之賢而願望見, 行而無資, 自粥於秦客, 被褐食牛. 期年, 繆公知之, 舉之牛口之下, 而加之百姓之上, 秦國莫敢望焉. 相秦六七年, 而東伐鄭, 三置晉國之君, 一救荊國之禍. 發教封內, 而巴人致貢; 施德諸侯, 而八戎來服. 由余聞之, 款關請見. 五羖大夫之相秦也, 勞不坐乘, 暑不張蓋, 行於國中, 不從車乘, 不操干戈, 功名藏於府庫, 德行施於後世. 五羖大夫死, 秦國男女流涕, 童子不歌謠, 舂者不相杵. 此五羖大夫之德也.
상군이 말하길(商君曰): "말에 이런 것이 있으니(語有之矣), 그럴듯한 말은 화려하고(貌言華也), 지극한 말은 진실되고(至言實也),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苦言藥也), 달콤한 말은 병이 된다(甘言疾也). 선생이(夫子) 정말(果) 종일토록 바른말을 한다면(肯終日正言), 내가(鞅之) 약으로 여길 것입니다(藥也). 내가(鞅) 그대를 섬기려고 하는데(將事子), 그대도(子) 또한(又) 어찌 사양하려는가(何辭焉)!"라고 했다.
조량이 말하길(趙良曰): "저 오고대부는(夫五羖大夫), 형나라의 비속한 사람이다(荊之鄙人也). 진나라 목공의 현명함을 듣고(聞秦繆公之賢而) 멀리서 보기를 원해서(願望見), 가려고 했지만(行而) 여비가 없어서(無資), 진나라에 <가는> 식객에게(於秦客) 자기를 팔아(自粥), 갈옷을 입고 소를 먹였다(被褐食牛). 1년이 지나(期年), 목공이 그를 알아(繆公知之), 소 먹이던 그를 천거해서(舉之牛口之下, 而) 백성의 윗자리에 두었지만(加之百姓之上), 진나라에서(秦國) 누구도 감히 원망하지 않았다(莫敢望焉).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相秦) 6~7년이 지나(六七年, 而) 동쪽으로 정나라를 치고(東伐鄭), 진나라 임금을(晉國之君) 세 번 세우고(三置), 형나라의 재앙을(荊國之禍) 한 번 구했다(一救). 나라 사람에게 가르침을 열어(發教封內, 而) 파 당 사람들이 공물을 바치고(巴人致貢); 제후에게 덕을 베풀어(施德諸侯, 而) 여덟 오랑캐가 와서 복속했다(八戎來服). 유여가 이것을 듣고(由余聞之), 관문을 두드리며(款關) 만나기를 청했습니다(請見). 오고대부가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고(五羖大夫之相秦也), 힘들어도(勞) 수레에 앉지 않고(不坐乘), 더워도(暑) 덮개를 펴지 않고(不張蓋), 나라 안을 다니면서도(行於國中), 수레를 따르게 하지 않고(不從車乘), 군사를 부리지 않고(不操干戈), 공명이(功名) 창고에 보관되고(藏於府庫), 덕행이(德行) 후세에 베풀어졌습니다(施於後世). 오고대부가 죽자(五羖大夫死), 진나라 남녀가(秦國男女) 눈물을 흘리고(流涕), 아이들이(童子) 노래를 부르지 않고(不歌謠), 절구질하는 사람이(舂者)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不相杵). 이것은(此) 오고대부의 덕 때문입니다(五羖大夫之德也).
今君之見秦王也, 因嬖人景監以爲主, 非所以爲名也. 相秦不以百姓爲事, 而大筑冀闕, 非所以爲功也. 刑黥太子之師傅, 殘傷民以駿刑, 是積怨畜禍也. 教之化民也深於命, 民之效上也捷於令. 今君又左建外易, 非所以爲教也. 君又南面而稱寡人, 日繩秦之貴公子.
지금(今) 그대가 진왕을 만난 것은(君之見秦王也), 아끼는 사람인 경감으로 인해서(因嬖人景監) 주가 되었고(以爲主), 명예로운 것이 아닙니다(非所以爲名也). 진나라에서 재상 하면서(相秦) 백성을 위해 일하지 않고(不以百姓爲事, 而) 궁궐을 크게 지은 것은(大筑冀闕), 공이 될 수 없습니다(非所以爲功也). 태자의 태사와 태부에게(太子之師傅) 형벌을 내리고 먹물을 들여(刑黥), 백성을 상하게 하고(殘傷民以) 형벌을 굳세게 한 것은(駿刑), 이것은(是) 원한을 쌓고(積怨) 재앙을 쌓은 것입니다(畜禍也). 가르치고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教之化民也) 명보다 더 깊고(深於命), 백성이 윗사람을 본받는 것이(民之效上也) 명령보다 빠릅니다(捷於令). 지금(今) 그대는(君) 또(又) 左建外易, 가르침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非所以爲教也). 그대는(君) 또(又) 남면하여(南面而) 과인이라고 칭하면서(稱寡人), 날마다(日) 진나라 공자들을 통제합니다(繩秦之貴公子).
《詩》曰: '相鼠有體, 人而無禮, 人而無禮, 何不遄死.' 以詩觀之, 非所以爲壽也. 公子虔杜門不出已八年矣, 君又殺祝懽而黥公孫賈. 《詩》曰: '得人者興, 失人者崩.' 此數事者, 非所以得人也. 君之出也, 後車十數, 從車載甲, 多力而駢脅者爲驂乘, 持矛而操闟戟者旁車而趨. 此一物不具, 君固不出.
시에 이르길(《詩》曰): '쥐에게도(相鼠) 체면이 있는데(有體), 사람인데도(人而) 예의가 없고(無禮), 사람인데 예의가 없으면(人而無禮), 어찌(何) 빨리 죽지 않겠는가(不遄死).'라고 했다. 이 시로 보면(以詩觀之), 목숨을 다 누릴 수 없습니다(非所以爲壽也). 공자 건이(公子虔) 문을 닫고 나오지 않은 것인(杜門不出已) 이미 8년이 지났고(八年矣), 그대가 또(君又) 축환을 죽이고(殺祝懽而) 공손가를 경형으로 처벌했습니다(黥公孫賈). 시에 이르길(《詩》曰): '사람을 얻는 사람은 흥하고(得人者興), 사람을 잃은 자는 무너진다(失人者崩).'라고 했다. 이 몇 가지 일은(此數事者), 사람을 얻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非所以得人也). 그대가(君之) 나가면(出也), 수레 수십이 뒤따르고(後車十數), 병사가 뒤따르고(從車載甲), 힘세고(多力而) 駢脅者爲驂乘, 창을 지니고(持矛而) 창을 가진 사람이(操闟戟者) 수레 옆에 서서(旁車而) 달립니다(趨). 이것은(此) 한 물건이라도(一物) 갖추어지지 않으면(不具), 그대는 결코 나가지 못합니다(君固不出).
《書》曰: '恃德者昌, 恃力者亡.' 君之危若朝露, 尙將欲延年益壽乎? 則何不歸十五都, 灌園於鄙, 勸秦王顯巖穴之士, 養老存孤, 敬父兄, 序有功, 尊有德, 可以少安. 君尙將貪商於之富, 寵秦國之教, 畜百姓之怨, 秦王一旦捐賓客而不立朝, 秦國之所以收君者, 豈其微哉? 亡可翹足而待." 商君弗從.
서에 이르길(《書》曰): '덕을 의지하는 사람은 성하고(恃德者昌), 힘을 의지하는 사람은 망한다(恃力者亡).'라고 했다. 그대의 위태로움이(君之危) 아침 이슬과 같으니(若朝露), 오히려(尙) 목숨을 연장해 장수를 누리기를 바라겠습니까(將欲延年益壽乎)? 그렇다면(則) 어찌(何) 열다섯 성을 돌려주고(歸十五都), 성 밖 마을에서(於鄙) 뜰에 물대며 살지 않고(不灌園), 동굴의 숨은 선비를 드러내어(顯巖穴之士) 진왕에게 추천하고(勸秦王),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돌보며(養老存孤), 부형을 공경하고(敬父兄), 공이 있는 자를 세우고(序有功), 덕 있는 사람을 존중하면(尊有德), 다소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可以少安). 그대는(君) 오히려(尙) 상과 오의 부유함을 탐내고(將貪商於之富), 진나라의 교화를 영예로 여기며(寵秦國之教), 백성의 원한을 쌓고 있으니(畜百姓之怨), 진왕이(秦王) 하루아침에(一旦) 빈객을 잃고(捐賓客而) 조정에 서지 못하면(不立朝), 진나라가(秦國之) 그대를 거두려는 것이(所以收君者), 어찌(豈) 없겠습니까(其微哉)? 망하는 것은(亡) 한 발을 든 것처럼(可翹足而) 기다릴 것입니다(待)."라고 했다. 상군이 따르지 않았다(商君弗從).
後五月而秦孝公卒, 太子立. 公子虔之徒告商君欲反, 發吏捕商君. 商君亡至關下, 欲舍客舍. 客人不知其是商君也, 曰: "商君之法, 舍人無驗者坐之." 商君喟然嘆曰: "嗟乎, 爲法之敝一至此哉!" 去之魏. 魏人怨其欺公子卬而破魏師, 弗受. 商君欲之他國. 魏人曰: "商君, 秦之賊. 秦彊而賊入魏, 弗歸, 不可." 遂內秦. 商君旣復入秦, 走商邑, 與其徒屬發邑兵北出擊鄭. 秦發兵攻商君, 殺之於鄭黽池. 秦惠王車裂商君以徇, 曰: "莫如商鞅反者!" 遂滅商君之家.
다섯 달 뒤에(後五月而) 진 효공이 죽었다(秦孝公卒), 태자가 자리에 올랐다(太子立). 공자 건의 무리가(公子虔之徒) 상군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고했고(告商君欲反), 관리를 일으켜(發吏) 상군을 잡았다(捕商君). 상군이(商君) 관하까지 도망가서(亡至關下), 객사에 머물려고 했다(欲舍客舍). 객사 사람이(客人) 그가 바로 상군임을(其是商君) 알지 못하고(不知也), 말하길(曰): "상군의 법에서(商君之法), 객사 사람이(舍人) 증명이 없는 사람을 묵게 하면(無驗者) 그와 연좌로 처벌받는다(坐之)."라고 했다. 상군이(商君) 한탄하며 말하길(喟然嘆曰): "아(嗟乎), 법을 만든 폐해가(爲法之敝) 여기까지 이르렀구나(一至此哉)!"라고 했다 떠나서(去) 위나라로 갔다(之魏). 위나라 사람들이(魏人) 그 공자 앙을 속이고(其欺公子卬而) 위나라 군대를 격파한 것에(破魏師) 원한을 품고(怨), 받아들이지 않았다(弗受). 상군이(商君) 다르나라로 가려고 했다(欲之他國). 위나라 사람들이 말하길(魏人曰): "상군은(商君), 진나라의 적이다(秦之賊). 진나라가 강한데(秦彊而) 적이 위나라에 들어왔으니(賊入魏), 돌려보내지 않으면(弗歸), 안된다(不可)."라고 했다. 마침내(遂) 진나라로 들어갔다(內秦). 상군이(商君) 다시 진나라에 들어와서(旣復入秦), 상읍으로 달아나(走商邑), 그 무리에 속한 읍의 군대를 일으켜(與其徒屬發邑兵) 북으로(北) 정나라를 쳤다(出擊鄭). 진나라가(秦) 군대를 일으켜(發兵) 상군을 공격하고(攻商君), 맹지에서 죽였다(殺之於鄭黽池). 진 혜왕이(秦惠王) 상군을 거열형에 처하고(車裂商君以) 본보기로 보이며 말하길(徇, 曰): "누구도(莫) 상앙처럼(如商鞅) 모반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反者)!"라고 했다. 마침내(遂) 상군의 가족을 모두 죽였다(滅商君之家).
太史公曰: 商君, 其天資刻薄人也. 跡其欲干孝公以帝王術, 挾持浮說, 非其質矣. 且所因由嬖臣, 及得用, 刑公子虔, 欺魏將卬, 不師趙良之言, 亦足發明商君之少恩矣. 余嘗讀商君開塞耕戰書, 與其人行事相類. 卒受惡名於秦, 有以也夫!
태사공이 말하길(太史公曰): 상군은(商君), 그 타고한 성품이(其天資) 각박한 사람이다(刻薄人也). 그가(其) 제왕의 술로(以帝王術) 효공에게 벼슬을 구한 것을(欲干孝公) 더듬어보면(跡), 지엽적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이며(挾持浮說), 그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非其質矣). 또(且) 총애를 받는 신하를 말미암아(所因由嬖臣), 등용되었고(及得用), 공자 건을 처벌하고(刑公子虔), 위나라 장수 앙을 속이고(欺魏將卬), 조량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은(不師趙良之言), 또한(亦) 상군의 작은 은혜를(商君之少恩) 드러내기 충분하다(足發明矣). 나는(余) 일찍이(嘗) 상군서의(商君) 개색, 경전 편을 읽었는데(讀開塞耕戰書), 그 사람의 일을 행한 것과(與其人行事) 서로 같은 부류다(相類). 미참내(卒) 진나라에서(於秦) 오명을 받은 것이(受惡名), 이유가 있구나(有以也夫)!"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