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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사기열전(史記列傳)

[사기열전(史記列傳) 70 장의열전(張儀列傳) 3/14] 깃털이 쌓이면 배가 가라앉는다 / 적우침주 군경절축(積羽沈舟 群輕折軸)

by प्रज्ञा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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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秦惠王十年, 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 降之. 儀因言秦復與魏, 而使公子繇質於魏. 儀因說魏王曰: "秦王之遇魏甚厚, 魏不可以無禮." 魏因入上郡·少梁, 謝秦惠王. 惠王乃以張儀爲相, 更名少梁曰夏陽. 

10 진 혜왕 10년에(秦惠王十年), 공자 화와 장의로 하여금(使公子華與張儀) 포양을 포위하게 하여(圍蒲陽), 항복을 받아냈다(降之). 장의가(儀) 진나라에 말해서(因言秦) 다시(復) 위나라에 돌려주고(與魏, 而) 공자 요를(使公子繇) 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質於魏). 장의가(儀) 인하여(因) 위왕에게 말하길(說魏王曰): "진왕이(秦王之) 위나라를(魏) 매우 두텁게 대우하고 있으니(甚厚), 위나라가(魏) 예가 없을 수 없다(不可以無禮)."라고 했다. 위나라가(魏) 인하여(因) 상군과 소량을 들여보내(바쳐)(入上郡·少梁), 진 혜왕에게 보답했다(謝秦惠王). 혜왕이(惠王) 이에(乃) 장의를 상으로 삼고(以張儀爲相), 이름을 고쳐(更名) 소량을(少梁) 하양으로 불렀다(曰夏陽). 

 

11 儀相秦四歲, 立惠王爲王. 居一歲, 爲秦將, 取陜. 筑上郡塞. 

11 장의가(儀) 진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지 4년 만에(相秦四歲), 혜왕을 세워(立惠王) 왕이 되도록 했다(爲王). 일 년이 지나(居一歲), 진나라 장수가 되어(爲秦將), 섬 땅을 취했다(取陜). 상군에 요새를 쌓았다(筑上郡塞). 

 

12 其後二年, 使與齊·楚之相會齧桑. 東還而免相, 相魏以爲秦, 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 魏王不肯聽儀. 秦王怒, 伐取魏之曲沃·平周, 復陰厚張儀益甚. 張儀慚, 無以歸報. 留魏四歲而魏襄王卒, 哀王立. 張儀復說哀王, 哀王不聽. 於是張儀陰令秦伐魏. 魏與秦戰, 敗. 

12 그로부터 2년이 지나(其後二年), 사자로 가서(使)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과(與齊·楚之相) 설상에서 만났다(會齧桑). 동쪽에서 돌아와(東還而) 재상을 그만두고(免相), 위나라에서 상이 되어(相魏以) 진나라를 위해(爲秦), 위나라로 하여금(欲令魏) 먼저 진나라를 섬기도록 해서(先事秦而) 제후들이 본받도록 하려고 했다(諸侯效之). 위왕이(魏王) 기꺼이 장의의 말을 듣지 않았다(不肯聽儀). 진왕이 노하여(秦王怒), 위나라의 곡옥과 평주를 쳐서 빼앗고(伐取魏之曲沃·平周), 다시(復) 은밀하게(陰) 장의를 두텁게 대하는 것이(厚張儀) 더욱 심했다(益甚). 장의가(張儀), 돌아가 보고할 것이 없음을(無以歸報) 부끄럽게 여겼다(慚). 위나라에 머문 지(留魏) 4년이 지나(四歲而) 위 양왕이 죽고(魏襄王卒), 애왕이 즉위했다(哀王立). 장의가(張儀) 다시(復) 애왕을 설득하자(說哀王), 애왕이 듣지 않았다(哀王不聽). 이에(於是) 장의가(張儀) 은밀히(陰) 진나라로 하여금(令秦) 위나라를 치도록 했다(伐魏). 위나라가(魏) 진나라와 싸워(與秦戰), 졌다(敗). 

 

13 明年, 齊又來敗魏於觀津. 秦復欲攻魏, 先敗韓申差軍, 斬首八萬, 諸侯震恐. 而張儀復說魏王曰: "魏地方不至千里, 卒不過三十萬. 地四平, 諸侯四通輻湊, 無名山大川之限. 從鄭至梁二百餘里, 車馳人走, 不待力而至. 梁南與楚境, 西與韓境, 北與趙境, 東與齊境, 卒戍四方, 守亭鄣者不下十萬. 梁之地勢, 固戰場也. 梁南與楚而不與齊, 則齊攻其東;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不合於韓, 則韓攻其西; 不親於楚, 則楚攻其南: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13 다음 해에(明年), 제나라가(齊) 또(又) 와서(來) 관진에서 위나라를 물리쳤다(敗魏於觀津). 진나라가(秦) 다시(復) 위나라를 공격하려고(欲攻魏), 먼저(先) 한나라 신차의 군대를 깨뜨리고(敗韓申差軍), 8만 명의 머리를 베니(斬首八萬), 제후들이 떨면서 두려워했다(諸侯震恐). 그러자(而) 장의가(張儀) 다시(復) 위왕에게 말하길(說魏王曰): "위나라 땅이(魏地) 사방(方) 천 리에 미치지 못하고(不至千里), 군사는(卒) 30만을 넘지 못합니다(不過三十萬). 땅은(地) 사방이 평지여서(四平), 제후가(諸侯) 사방으로 통하고(四通) 마치 바퀴통에 바큇살이 모이듯 합니다(輻湊), 이름난 산과 큰 하천의 막힘이 없습니다(無名山大川之限). 신정에서(從鄭) 대량에 이르기까지(至梁) 2백여 리는(二百餘里), 마차나 말이 달리고(車馳) 사람이 달려도(人走), 힘들이지 않고도 이릅니다(不待力而至). 위나라는(梁) 남쪽으로(南) 초나라와(與楚) 국경이 있고(境), 서쪽으로(西) 한나라와 국경이 있고(與韓境), 북쪽으로(北) 조나라와 국경이 있고(與趙境), 동쪽으로(東) 제나라와 국경이 있습니다(與齊境), 사방을 지키는 변방의 수비병과(卒戍四方), 요새를 지키는 사람이(守亭鄣者) 10만 아래가 아닙니다(不下十萬). 위나라 땅의 형세는(梁之地勢), 정말로(固) 싸움터입니다(戰場也). 위나라가(梁) 남쪽으로(南) 초나라와 함께 하고(與楚而) 제나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不與齊, 則) 제나라가 그 동쪽을 치고(齊攻其東); 동쪽으로(東) 제나라와 함께 하고(與齊而) 조나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不與趙, 則) 조나락 그 북쪽을 공격하고(趙攻其北); 한나라와 합치지 않는다면(不合於韓, 則) 한나라가 그 서쪽을 공격하고(韓攻其西);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면(不親於楚, 則) 초나라가 그 남쪽을 공격합니다(楚攻其南): 이것이(此) 이르바(所謂) 사분오열의 길입니다(四分五裂之道也). 

 

* 震恐(진공): 떨면서 무서워함.

* 輻湊(폭주): ‘수레의 바퀴통(--)에 바큇살이 모이듯 한다.’는 뜻으로, 한 곳으로 많이 몰려듦을 이르는 말.

* 亭鄣(정장): (예전에) 요새(要塞)처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검열()하던 곳.

 

14 「且夫諸侯之爲從者, 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今從者一天下, 約爲昆弟, 刑白馬以盟洹水之上, 以相堅也. 而親昆弟同父母, 尚有爭錢財, 而欲恃詐偽反覆蘇秦之餘謀, 其不可成亦明矣. 

14 또(且) 저(夫) 제후들이(諸侯之) 합종책을 쓰는 것은(爲從者), 장차(將) 그것으로(以) 사직을 안정시키고(安社稷) 임금을 높이며(尊主) 군대를 강하게 해서(彊兵) 이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顯名也). 지금(今) 합종을 쓰는 자들은(從者) 천하를 통일해서(一天下), 형제가 될 것을 약속하고(約爲昆弟), 원수 가에서(洹水之上) 백마를 잡아 맹세하고(刑白馬以盟, 以) 서로 굳게 지키기로 했습니다(相堅也). 그러나(而) 같은 부모에게서 난(同父母) 친형제라도(親昆弟), 오히려(尚) 재물을 다투는 일이 있는데(有爭錢財, 而) 속이고 거짓말을 반복하는(詐偽反覆) 소진의 쓸데없는 계책을(蘇秦之餘謀) 믿으려 하니(欲恃), 그것은(其)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不可成) 또한(亦) 분명합니다(明矣). 

 

15 「大王不事秦, 秦下兵攻河外, 據卷·衍·燕·酸棗, 劫衛取陽晉, 則趙不南, 趙不南而梁不北, 梁不北則從道絕, 從道絕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 秦折韓而攻梁, 韓怯於秦, 秦韓爲一, 梁之亡可立而須也. 此臣之所爲大王患也. 

15 대왕께서(大王)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不事秦), 진나라가(秦) 병사를 내려보내(下兵) 하외를 공격하고(攻河外), 권, 연, 연, 산조에 의지해서(據卷·衍·燕·酸棗), 위나라를 협박하고(劫衛) 양진을 취한다면(取陽晉, 則) 조나라가(趙) 남으로 내려오지 않고(不南), 조나라가 남으로 오지 않으면(趙不南而) 위나라도 북으로 올라가지 않고(梁不北), 위나라가 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梁不北則) 합종의 길이 끊어지고(從道絕),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從道絕則) 대왕의 나라가(大王之國) 위험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欲毋危) 그럴 수 없습니다(不可得也). 진나라가(秦) 한나라를 꺾고(折韓而) 위나라를 공격하면(攻梁), 한나라가(韓) 진나라를 두려워해서(怯於秦), 진과 한이 하나가 될 것이고(秦韓爲一), 위나라가 망하는 것은(梁之亡) 서서도(可立而) 그렇게 될 것입니다(須也). 이것이(此) 신이(臣之) 대왕을 위하여 걱정하는 것입니다(所爲大王患也). 

 

16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則楚·韓必不敢動;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 

16 대왕을 위해(爲大王) 계책을 낸다면(計), 무엇도(莫) 진나라를 섬기는 것만 못합니다(事秦). 진나라를 섬기면(事秦則) 초나라와 한나라가(楚·韓) 반드시(必)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不敢動); 초나라와 한나라의 걱정거리가 없다면(無楚·韓之患, 則) 대왕께서(大王) 베개를 높이고 누워서(高枕而臥), 나라에(國) 반드시(必)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無憂矣). 

 

17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 而能弱楚者莫如梁. 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 其卒雖多, 然而輕走易北, 不能堅戰. 悉梁之兵南面而伐楚, 勝之必矣. 割楚而益梁, 虧楚而適秦, 嫁禍安國, 此善事也. 大王不聽臣, 秦下甲士而東伐, 雖欲事秦, 不可得矣. 

17 또(且) 저(夫) 진나라가(秦之) 약하게 하려는 것은(所欲弱者) 초나라와 같은 것이 없고(莫如楚, 而) 초나라를 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能弱楚者) 위나라 같은 나라가 없습니다(莫如梁). 초나라가(楚) 비록(雖) 부유하고 큰 나라라는 명성이 있지만(有富大之名而) 실제는(實) 공허하고(空虛); 그 군사가(其卒) 비록 많지만(雖多), 그렇지만(然而) 가벼이 달아나고(輕走) 쉽게 패배하여(易北), 싸움을 굳세게 하지 못합니다(不能堅戰). 모든(悉) 양나라의 군대를(梁之兵) 남쪽으로 보내(南面而) 초나라를 치면(伐楚), 승리를(勝之) 기약할 수 있습니다(必矣). 초나라를 나눠(割楚而) 위나라에 보태고(益梁), 초나라를 갈라(虧楚而) 진나라에 돌려주면(適秦), 화를 남에게 돌려(嫁禍)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安國), 이것은(此) 좋은 일입니다(善事也). 대왕께서(大王) 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不聽臣), 진나라가(秦) 군대를 내려보내(下甲士而) 동쪽을 칠 것이고(東伐), 비록(雖) 진나라를 섬기려고 해도(欲事秦), <그때는 이미> 그럴 수 없습니다(不可得矣). 

 

* 嫁禍(가화): 자신()에게 닥친 화()를 남에게 넘겨씌움.

 

18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 說一諸侯而成封侯, 是故天下之游談士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 以說人主. 人主賢其辯而牽其說, 豈得無眩哉. 

18 또(且) 저(夫) 합종책을 쓰는 사람들이(從人) 말을 내뱉는 것이 많지만(多奮辭而) 믿을만한 것이 적고(少可信), 한 제후를 설득하면(說一諸侯而) 후에 봉해지는 것을 이룰 수 있으니(成封侯), 이 때문에(是故) 천하의 유세하는 선비들이(天下之游談士) 밤낮을 가리지 않고(不日夜) 팔을 걷어붙이고(搤腕) 눈을 부라리며(瞋目) 이를 갈면서(切齒以) 합종의 편리함을 말하고(言從之便, 以) 군주를 설득합니다(說人主). 군주가(人主) 그 말을 현명하다고 여겨(賢其辯而) 그 말에 끌리고(牽其說), 어찌(豈) 어지러움이 없겠습니까(得無眩哉). 

 

19 「臣聞之, 積羽沈舟, 群輕折軸, 衆口鑠金, 積毀銷骨, 故願大王審定計議, 且賜骸骨辟魏." 

19 신이 듣건대(臣聞之), 깃털이 쌓이면(積羽) 배가 가라앉고(沈舟), 가벼운 것이 많으면(群輕) 수레축을 부러뜨리고(折軸), 여러 사람의 입은(衆口) 쇠를 녹이고(鑠金), 비방이 쌓이면(積毀) 뼈를 녹이고(銷骨), 그러므로(故) 원컨대(願) 대왕께서(大王) 깊리 살펴(審) 계책과 의논을 정하시기 바라며(定計議), 또(且) 위나라를 떠나는 것을(辟魏) 허락해 주십시오(賜骸骨)."라고 했다. 

 

20 哀王於是乃倍從約而因儀請成於秦. 張儀歸, 復相秦. 三歲而魏復背秦爲從. 秦攻魏, 取曲沃. 明年, 魏復事秦. 

20 애왕이(哀王) 이에(於是) 곧(乃) 합종의 약속을 배반하고(倍從約而) 장의로 인하여(儀請) 진나라에 가담했다(成於秦). 장의가 돌아가서(張儀歸), 다시(復)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相秦). 삼 년이 지나(三歲而) 위나라가(魏) 다시(復) 진나라를 배반하고(背秦) 합종을 했다(爲從).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秦攻魏), 곡옥을 빼앗았다(取曲沃). 다음 해에(明年), 위나라가 다시 진나라를 섬겼다(魏復事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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